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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회


제2장 역적놈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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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은 련 이틀째나 공서방과 함께 산판을 헤매였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쑤시는듯 아파났지만 공서방이 미안해할것 같아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자니 곱절이나 베찼다.

김정환이 이렇게 불편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험한 산판을 헤매이는것은 덕쇠 아버지 공서방때문이였다.

며칠전에 그는 산판을 헤매다가 돌아오는 공서방을 우연히 만난 일이 있었다. 행색을 봐선 사냥하러 갔던것이 분명했지만 빈손인것을 보고 무심결에 물었다.

《사냥이 잘되질 않는가보군요.》

공서방은 맥빠진 몸을 가누지도 못하고 풀숲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노루란 놈을 잡아야겠는데…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더니만 그 많던 노루가 필요한 때 나타나주질 않는구려.》

매우 락심한 공서방의 표정을 보고 정환은 의아해났다.

사냥을 못하면 다음날 해도 될 일인데 저렇게 락심할것은 무엇이며 또 하필이면 꼭 노루를 노릴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김정환의 의아해하는 눈길을 대한 공서방이 한숨을 푹 내쉬고나서 혼자 속앓이를 하는 사연을 이야기했다.

《마을사람들속에서 나에 대한 뛰뛰한 뒤말이 나돌지요. 내가 설씨와 어쩌고저쩌고해서 태기를 가지게 했다는거지요.》

김정환도 피끗 그런 소리를 들은적이 있었다.

김정환은 공서방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니 어쨌단 말인가? 그게 사실이란 말인가 아니면 억울하다는것인가. …

공서방의 얼굴에 력력히 드러나있는 내심은 필경 억울함을 하소연하고있었다.

다음 말을 기다리는 김정환에게 공서방은 말을 이었다.

《글쎄 과부홀아비가 된게 죄요? 어째 외기러기가 되여 홀로 가슴속에 멍을 안고 사는 짝짝이들의 아픈 가슴에 그런 험턱을 들씌운단 말이요. …》

공서방은 잠시 격해진 마음을 진정하려는듯 말을 끊고 숨을 톺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 보느라니 그 내인이 병이 든게 적실하더군요. 그게 아마 간이 녹아 배에 물이 차서 생기는 병이 분명한것 같쉐다. 그래 내가 그의 병을 고쳐주어 그 내인이 나때문에 불미한 말밥에 오르지 않게 하려고 이러우다. …》

간에 물이 차는데는 노루가죽이 특효가 있는것이다. 김정환은 머리를 끄덕이다가 공서방을 측은하게 바라보았다.

마을에서 돌아가는 자기에 대한 뒤말보다도 한 녀인의 아픔을 먼저 위하려는 마음에 감복이 되였던것이다. 그를 외면할수 없었다.

그리하여 김정환은 공서방과 함께 노루를 찾아서 이틀째나 산판을 헤매였던것이다.

이틀째 되는 날인 어제 저녁 날이 저물어 산판에서 내려오던 그들은 뜻밖에도 산기슭 오솔길을 지키고 서있는 설씨를 보게 되였다.

설씨는 그들을 보자 눈물부터 왈칵 쏟았다.

누구도 말을 못했다. 굳이 말을 해선 무엇하랴. 자기를 위해 고생을 하는 공서방이 고마와 눈물을 흘리는 설씨나 그의 마음을 알고있는 공서방이나 다같이 정이 그립고 따뜻한 온기가 그리운 사람들인것이다.

설씨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길로 공서방을 바라보며 무엇인가를 내놓았다.

설씨가 내놓은것은 버선이였다.

자기때문에 고생을 하는 공서방을 위하여 자기의 여벌옷을 잘라 버선을 만들어온것이였다.

그걸 바라보는 김정환은 생각이 많았다.

이들이 다같이 정이 그리운 사람들인데 서로 모이면 얼마나 좋으랴. 사람이 한생을 살아가자면 믿고 의지할 곳이 있어야 한다. 믿고 의지할 사람이란 누구이겠는가? 안해에게는 남편이 하늘이고 남편에게는 안해가 따뜻한 온기이며 억척같은 힘인것이다. 부부가 일심동체가 되여 살아도 힘에 부친 세월을 부디 홀로 힘겹게 헤치며 고달픈 생을 보낼건 뭐란 말인가. …

그러한 생각을 하며 처음으로 설씨를 자상히 여겨보던 그는 머리를 기웃거렸다.

설씨의 병이 간때문에 생긴것 같지는 않았던것이다.

의서들을 더러 보아서 이러루한 병을 알고있는 그에게는 그것이 다른 원인일수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

아무래도 의원을 찾아가서 증세를 이야기해주고 똑똑한 처방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리하여 김정환은 약우물골의원을 찾아가보리라 작정을 했다.

김정환이 이른아침에 약우물골로 떠나려는 때에 갑자기 리진룡의병장의 전령이 찾아들었다.

의병장이 급히 부른다는 전갈이였다. 의병장 리진룡은 그때까지 평산의병대지휘처의 거점으로 정한 세곡면에로의 이동을 미루고 바리산에 림시로 처소를 가설해놓고 눌러있었던것이다.

김정환이 의병장의 처소로 달려가니 리진룡과 신근선이 며칠전에 서흥일대의 적정을 내탐하기 위해 나갔던 한정만의 이야기를 듣고있었다.

리진룡은 한정만의 이야기를 들으며 매우 심중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분명 그가 접근했던 그 주막집에 든 큰 행차가 바로 일진회 회장 리용구라는 확신이 들었던것이다. 그럴줄 미리 알았으면 평산의병대를 몽땅 출동시켰을것이다. 그랬더라면 역적 리용구를 기어이 결딴냈으리라는 아쉬움과 때늦은 후회가 심신을 괴롭혀서인지 두눈에는 말할수 없는 분기가 서려있었다.

《그놈이 혹시 아직도 거기에 있지 않을가?》

신근선의 말에 한정만은 머리를 저었다.

《아닐거야. 그때 만났던 강수길이란자가 그놈의 호위를 책임진 모양인데 우리의 습격을 눈치챘으니 아직까지 거기서 어물거릴게 뭔가? 강수길은 일본에서 류학을 한데다가 무술과 사격술에 정통하고 동방의 여러 병법을 탐독한자여서 빈틈이 없다네. 그런데 그 자식이 어떻게 경찰관이 되였는지 모를 일이거던.》

강수길이?… 경찰관?…

김정환은 아직 사연은 알수 없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에 한성공격이 있은 날 밤 창의문부근 골목에서 마주쳤던 사나이의 얼굴이 불쑥 떠올랐다.

그 작자가 도대체 어쨌단 말인가?

김정환이 그들에게 다가서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왔구만. 기다리던 참이네.》

신근선이 그를 자기곁에 앉혔다.

리진룡의병장이 방금 한정만에게서 들은 소리를 간략해서 이야기해주었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난 김정환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그것들이 아침에 서흥주막을 떠났다고 해도 해가 퍼진 다음이라야 움직였겠으니 아직 서흥경내를 채 벗어나지 못했든가 아니면 금방 평산땅에 들어섰을겁니다. 내가 먼저 가서 그것들의 발목을 잡아두겠습니다.》

리진룡이 미타한 표정으로 물었다.

《몸이 일없겠나? 아직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는데…》

《일없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이제 곧 싸움준비를 갖추어야 하니 그런 일쯤은 내가 얼마든지 감당할수 있소이다.》

리진룡이 머리를 끄덕여주었다.

《그럼 불질은 하지 말라구. 그저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빨리 련락을 띄우게. 그러면 우리가 유리한 곳을 골라 매복을 하겠네.》

《알겠소이다.》

김정환이 기봉대와 몇명의 의병들을 이끌고 서흥방향을 향하여 달렸다.

금방 아물기 시작한 상처자리가 땀에 젖어 몹시도 쓰려났지만 그는 기를 쓰고 달렸다.

그렇게 달려 서흥과 평산을 이어놓은 큰길주변에 이르니 상처입은 어혈로 앓고있는 김정환은 물론이고 산길에서는 누구도 자기를 당해낼수가 없노라던 기봉대까지도 혀를 가로물 지경이 되여버렸다.

그리하여 일행은 길가에 있는 어느 나무밑에 퍼더버리고 앉아 숨을 돌려야 했다.

김정환은 잠시 숨을 돌리고나서 인차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빨리 리용구가 이 길을 통과했는지, 아직 서흥경내에 있는지 알아봐야 했던것이다.

마침 서흥쪽에서 허연 수염발을 가슴에까지 내리드리운 웬 늙은 로인과 애리애리한 총각 하나가 그들쪽으로 다가오고있었다.

김정환이 기봉대에게 눈짓을 했다.

봉대가 길가에 나서며 총각을 향해 물었다.

《이보게, 혹시 요란스런 마차 한대와 그를 둘러싸고 숱한 장정들이 함께 따라가는걸 보질 못했나.》

총각이 대꾸했다.

《아침에 서흥주막집에서 떠난 행차말이예요?》

《그렇네.》

《의병대의 습격을 당하구 급히 떠났어요. 왜놈수비대의 마차까지 여러대나 얻어타고 달렸으니 이젠 평산지방을 훨씬 벗어났을거예요.》

봉대가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어이쿠, 행차뒤 나발이로구나. 죽을 기를 쓰고 달려왔는데 이런 랑패를 보다니…》

김정환의 가슴속에서도 분통이 터질듯 한 아쉬움이 끓어올랐다.

일행전원이 마차를 타고 이른아침부터 달렸다면 이제는 어쩔수 없는 일이다. 더우기 놀란 놈들이니… 가만, 그런데?

주먹을 꾹 부르쥐고 먼길쪽을 노려보던 김정환의 뇌리에 문득 비껴드는 의혹이 있었다.

방금 총각의 말이 의병대의 습격을 받았다고 했는데… 어제 밤 한정만이네는 불질 한번 해보지 못하고 거기를 철수했다질 않았는가.

김정환은 총각을 돌아보았다.

《금방 무슨 의병대의 습격이 있었다질 않았나? 그건 무슨 소린가?》

길섶에 있는 풀판에 네활개를 쭉 펴고 벌렁 드러누웠던 봉대도 그 소리를 듣고 벌떡 몸을 일으켜 총각을 바라보았다.

이번엔 령감이 볼부은 소리로 말했다.

《그통에 우리까지 곤욕을 당했네. 아 쏘겠으면 숨통이나 끊어놓을게지 왜 빗맞춘단 말인가. 그리구 지금이 어떤 세월인가? 저 쪽발이들은 련발로 다섯번이나 줄줄 나가는 신식총에 대포까지 가지고있어. 그런데 고망년 조상들이나 흡족해하던 활을 가지고 일을 치겠다고 나다니니 될말인가? 허 참.》

김정환이 칡넌출같이 길어지는 로인의 말을 끊으며 급히 물었다.

《로인장, 좀 자세히 말해주시오이다. 대체 어떤 의병이 그놈을 쏘았다는겁니까?》

김정환의 물음에 로인과 총각이 번갈아 가며 아침에 주막에서 생긴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났지만 김정환은 도무지 무슨 감투끈인지 알수가 없었다.

그게 대체 누구일가? 목부위에 손바닥만 한 기미자리가 있다구? 우리 사람들중에는 그런 사람이 없는데… 더구나 리용구 같은 큰 역적놈을 노리는 의병이라면 하다못해 퉁포라도 들었겠는데 활질을 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암만해도 모를 일이였다.

김정환이 머리를 흔들자 총각은 그럴줄 알았다는듯 기세등등하여 말했다.

《글쎄 그러면 그럴테지. 그딴 놈이 의병일게 뭐나요. 그놈은 도적이예요. 아마 그 량반님의 짐을 털려고 그랬겠지요 뭐.》

《도적이라구?…》

총각은 금시 아침에 당한 봉변이 살아났는지 쓴입을 다셨다.

김정환은 더 묻지를 못했다.

지금껏 마른침을 삼키면서 김정환을 곁눈질하며 묻는 말에 건성건성 대답하던 총각이 두어걸음 떨어진 곳에서 씩씩거리고있는 봉대가 일행중 제일 만문하게 보였던지 그의 팔소매에 매달렸던것이다.

《저, 혹시 거긴 의병이 아니나요?》

봉대는 마뜩지 않은 눈길을 그에게 던지며 총각을 털어버릴듯 잡힌 팔을 나꾸어챘다.

괜히 헛고생만 하고 역적놈은 그림자도 못 봤으니 화가 나서 가슴에 불방망이질인데 거기에 대고 새삼스레 묻는 총각이 아니꼬왔던것이다.

그래서 총각을 대하는 봉대의 말투가 매우 데설궂기 그지없었다.

《그럼 어쩔테니?》

《날 좀 데려가줘요.》

봉대가 대뜸 코방귀를 뀌였다.

《다 큰게 어딜 데려다달라구 칭얼거려?》

《의병대에요.》

《뭘?…》

봉대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령감이 큰일난듯 총각을 막아서며 아부재기를 쳤다.

《필석아, 아서라. 각시두 못 찾았는데 쌈터엘 찾아다니겠다니 말이 되냐?》

총각의 뜻밖의 행동을 아연해서 바라보던 김정환은 괜히 시끄러운일을 당할것 같아 제꺽 말참녜를 하였다.

《이보게, 공연히 우릴 따라다니며 고생줄에 들 생각일랑 말고 로인의 말대로 장가부터 들라구. 의병이 되면 장가들새도 없다네. … 어서 가던 길이나 가라구.》

그러자 이번에는 총각이 김정환의 앞에 두무릎을 꿇고 앉으며 그의 다리를 부둥켜안았다.

허, 이런 난사라구야. …

김정환은 난색을 지었다. 봉대가 그러는 총각을 당장 뜯어내여 팽개쳐버릴듯 다가섰다.

그러나 총각은 김정환을 더욱 꽉 붙잡으며 처량한 모양으로 애원했다.

《제발 부탁이옵니다, 대장님. 사정 좀 봐주소이다. 억울하게 작고하신 저의 부친의 마지막당부가 왜놈들과 싸우는 길이 트이면 선참 나서라 했노라고 저의 큰아버님이 내게 말해줬소이다.》

김정환은 총각이 가리키는 령감을 바라보았다.

령감이 손자밥 떠먹고 천정 쳐다보듯 아닌보살할 심산으로 먼산을 바라보았다.

《그건 사실인데… 약혼녀를 찾으라는 말을 먼저 했거던. …》

《챠- 큰아버님, 얼굴도 모르고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어느 세월에 찾겠소이까?》

《아니, 그럼 찾기를 그만두겠다는 소리냐?》

《그만두다니요? 찾아야지요. 하지만 왜놈과 쌈을 하면서 찾아도 되지 않겠소이까.》

《어이구, 그럼 네 맘 내키는대로 하자꾸나.》

총각이 다시 애원어린 눈빛으로 김정환을 바라보았다.

김정환은 총각의 눈빛에서 결코 쉬이 떨어지지 않을 강의한 의지를 느꼈다.

하기야 지금 세월에 젊은 사람이 나라를 빼앗은 왜놈들과의 싸움에 나서지 못하면 부실한 놈 치부를 받으며 따돌림을 당하는것이 례상사이다. 그러니 총각의 잡도리가 이만저만하지 않을수 없을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마음속 한구석으로는 이 나약해보이는 총각이 의병생활을 꽤 해내겠는지 하는 미타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김정환이 승낙할 기미가 보이자 곁에서 지켜보던 봉대가 코웃음을 치며 두덜거렸다.

《제길, 역적놈잡이를 왔다가 혹이나 붙여가지구 돌아가는 격이로군.》

김정환이 그에게 조용히 일렀다.

《아무 소리나 망탕 하지 말아라. 약방에서 심부름이나 다니던 너나 심심산중에서 화전을 뚜지던 나도 총들고 의병이 되였는데 이 총각이라고 혹이겠느냐. …》

그리고는 총각을 일으켜세우며 말했다.

《그럼 차비를 하게. 빨리 여길 떠야겠네.》

《예, 고맙소이다.》

총각이 자리를 차고 일어나 부산을 피웠다. 옆구리에 끼고있던 보짐을 풀어 부리나케 쑤시다가 구리가락지 하나를 꺼내 품속에 건사하고는 나머지를 다시 싸서 령감에게 내밀었다.

령감이 눈이 올롱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이건 어찌라는거냐?》

《이걸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시오이다.》

령감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총각을 바라보다가 발을 탕 굴렀다.

《뭐 돌아가라구? 에끼 이녀석, 살아있는 조상괄세는 천벌이 없다더냐. 네놈이 뉘 밥 먹고 이만큼 컸길래 날 벌써 괄세하려드느냐?》

총각은 망녕을 부리려드는 령감을 붙어잡고 김정환이네쪽을 민망스럽게 바라보며 어쩔바를 몰라했다.

《괄세라니요? 무엇이 노여운지 말씀하시라구요.》

《난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그건 네가 이담에 갖다줘라.》

《아니, 그럼 어딜 가시겠어요?》

《어디긴 어디야? 나도 의병을 만났으니 따라가서 싸울란다.》

김정환이와 봉대의 입이 쩍 벌어졌다.

총각이 덴겁을 하며 아부재기를 쳤다.

《뭐예요? 정신나갔어요? 그 몸에 어떻게 싸움질을 한다구 그래요?》

《이녀석, 의병대에 사람이 필요없을가봐 쓸데없는 걱정질이냐? 예로부터 사람과 쪽박은 있는대로 쓴다고 했다. 하물며 난 동학란때 관군과의 싸움에서 불질을 싫두룩 해보았다는걸 네 벌써 잊었느냐? 왜놈들과두 싸워봤어. 범이 늙어도 들개 한마리는 물어메친다구 쌈하면 너보다 내가 얼싸 낫지 않으리. 어서 가기나 하자. 저 사람들 눈칠 보면 우릴 팽개치고 달아날 심산인듯 한데 떨어지지 말고 내뒤에 바싹 따라서거라.》

김정환과 봉대는 여전히 입을 항 벌린채 서로 퀭하니 마주 바라보기만 했다.

괜히 이곳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시켰다가 계집애같은 총각을 만났다고 속으로 후회했는데 그쯤은 또 아무것도 아니지 않은가. 머리칼이 모시바구니처럼 새하얗고 흰 수염이 한광주리나 달린 늙은이가 의병이 되겠다고 자기들의 발목을 붙어잡을 심산인것이다.

김정환은 어이가 없었지만 말려낼 재간이 없었다.

그가 아무 말도 없이 발길을 돌리자 령감과 총각은 마치 좀더 간격을 두면 아예 놓치기라도 할듯이 허둥지둥 따라왔다.

금방까지만도 쓴 오이꼭지 보듯 하던 봉대가 산길에 비칠거리는 늙은이를 보고는 어쩔수가 없었던지 되돌아 달려가 령감을 부축해주느라 왼심을 썼다.

김정환은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짓고말았다.

하여 김정환은 리용구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채 회초리같은 총각과 늙은 령감님만을 뒤에 달고 돌아오고말았다.


× ×


한성에 돌아온 리용구는 피로도 풀 사이가 없이 고문인 우찌다의 호출을 받았다. 우찌다가 있는 곳으로 가니 그는 리용구를 한시간이나 문밖에 세워놓고 일본륙군소위 하나와 이야기를 하였다.

선하품을 입아귀가 째지도록 대여섯번이나 하고난 뒤에야 새파랗게 젊은 일본군소위가 돌아가고 방으로 들어오라는 우찌다의 거만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리용구가 방으로 들어가 문안인사를 하였지만 우찌다는 들은듯만듯 한동안이나 까딱않고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찌를듯 한 그 눈길이 무슨 불상사라도 만들어낼듯싶어 속이 오밀조밀해있는데 우찌다의 목소리가 드디여 울렸다.

《이 시각부터 일진회는 황제가 직접 일본〈천황〉페하에게 황위를 양위하도록 하는데 모든 힘을 다하여 협력해야겠소.》

리용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일본족속들이 하는 짓거리란 전탕 이런 례를 찾아보기 힘든 후안무치한것이다.

일본족속들이 요구하는것이 지금까지 저지른 자기들의 행위에 대비도 안될만큼이나 엄청난것이라는것을 느낀 리용구는 입안이 바싹 말라드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리용구는 속으로 도리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못해. 그건 절대로 못해. 그런 죄악은 형벌조항에도 밝히지 못한 대역죄가 아닌가. …

하지만 리용구는 자기가 일본사람들앞에서 자기의 불만을 표현할수 없는 신세에 이르렀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우찌다는 잔뜩 오만상을 쪼프리고있는 리용구를 신경질적인 눈길로 쏘아보았다.

마치 앞에 있는 이자가 저희들, 일본의 국익을 위해 얼마만한 일을 더 할수 있겠는가를 타진해보는듯싶었다.

이미전부터 일본의 국익을 위해 조선에 잠입하여 계획적으로 친일세력을 길러내고 이날껏 조종해온 우찌다는 백성들로부터 무서운 배척을 받고있는 리용구와 일진회의 명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그 잔명을 최대한으로 리용하려는것이 본토에 있는 거룩한 귀족들의 의도였던것이다.

하여 우찌다는 군국주의단체인 흑룡회의 무리들과 면밀한 계획을 세우고 일진회를 사촉하여 공개적으로 《한일합병》을 해버릴수 있는 조건들을 하나하나 마련해나가고있었다.

조선병합후에도 세계여론앞에서 마치도 조선사람들자신이 《한일합병》을 요구한것처럼 외피를 씌워야 조선강점을 합리화할수 있다는것이 일본본토의 궁성에서 울려나오는 칙령이였던것이다.

《합병》은 일본이 수행하는것이 아니라 조선측에서 청원하여오도록 하는 방법으로 할 때만이 다른 렬강들로부터의 간섭이 나올 여지가 없게 할뿐아니라 일본의 성스러운 《덕》을 보일수 있는것이다.

바로 이를 위하여 우찌다자신이 무려 수년간이나 일진회를 길들이고 유인해오지 않았는가.

그러한 우찌다로서는 리용구의 저조한 태도가 눈에 차지 않았다.

우찌다의 음험한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그래 회장은 내 말을 알아들었소?》

리용구가 한숨을 풀 내쉬며 말했다.

《그런데 여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지금 대한협회것들이 우리 일진회를 발가놓겠다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날뛰고있는데…》

우찌다는 눈을 더욱 가늘게 쪼프리고 생각을 굴리였다.

리용구의 근심은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대한협회는 유구한 력사와 문화, 슬기와 전통을 가진 이 나라가 국권을 상실하게 된것은 수백년동안 나라정치가 문란해지고 교육이 발달하지 못하였으며 산업이 극도로 쇠퇴하여진데 기인한것이라고 하면서 정치, 교육, 산업을 발전시킬 대책을 세우며 사회지식을 계발하고 나라의 힘을 증진시키는데 이바지할 목적으로 1907년 11월 장지연 등 애국적인 지식인들의 발기에 따라 한성에서 조직되였다.

2천만동포가 협동한 민회라는 뜻에서 대한협회라고 명명한 단체는 처음부터 잡지, 신문을 통해서뿐아니라 지방유세를 통해서도 대중계몽사업을 활발히 벌리면서 주로 일제의 침략적본성과 악랄한 침략행위를 단죄규탄하며 일진회의 매국배족적본성을 까밝히는데로 협회를 지향시켰다.

협회의 이러한 강령은 민족의 지지를 받아 지방에 30여개의 지회를 가진 무시할수 없는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대한협회는 일본의 정책을 로골적으로 비난하고 의병들을 공공연하게 도울뿐만아니라 특히 일진회의 모든 일들을 빠짐없이 감시하여 공개함으로써 민족의 규탄이 더욱 우심해지도록 조장하였다.

그로 하여 일진회는 대한협회와 앙숙이 되여 앙앙불락하면서 무슨 일을 하나 하자고 해도 항상 두려운 눈으로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던것이였다.

이러한 고충을 잘 알고있는 우찌다도 생각이 많아졌다.

대한협회는 일본정객들의 정치적목적을 실현하는데서도 여간 골치거리가 아닐수 없었다. 기어이 그 대한협회를 제거해야만 자기들의 거사를 성사시킬수 있었다.

이렇게 생각한 우찌다가 리용구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 대한협회우두머리가 남궁억이라고 했던가?》

《예,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회장입지요.》

《그자를 제거해치워야겠소. 그리고 그 자리에 김가진을 들여앉혀서 대한협회의 성질을 바꾸어야 우리의 일이 순조롭게 될거란 말이요.》

리용구는 머리를 끄덕이였다.

《당장 그렇게 일을 꾸미시오. 그리구 황제가 일본〈천황〉페하께 황위를 양위하도록 하는 일을 다그쳐야겠소. 알겠소?》

리용구는 또다시 한숨을 땅꺼지게 내쉬면서 나직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이 한마디가 응당하다는것인지 아니면 그것이면 만족하다는것인지 우찌다는 더 말이 없었다.

이러한 속물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잘 알고있는 우찌다였다.

지난해 일본륙군에서 일진회에 10만원의 돈을 대준것과 이제 인차 일본정부에서 리용구 개인에게 《많은 자금》을 쓸어넣어준다는것을 본인에게 암시를 해준 이상 이 속물은 길 잘 들인 개와 같았던것이다.

우찌다는 이따위 속물에게 많은 자금을 안겨주려는 상관들의 처사가 불만스러웠다. 기름진 조선이란 나라를 통채로 먹기 위한 일환으로 차관정치의 올가미를 이 나라에 들씌우고있는 일본으로서 그에게 주는 돈이란 백사장의 모래 한알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이따위에게 그런 품을 들이지 않은들 자기 민족을 등진 배신자가 이제 더 걸어갈 딴 길은 없는것이다.

《빼앗자면 먼저 주라.》

이것은 통감 이또의 상투적인 수법이다.

먼저 주는 몇묶음의 지페로 산좋고 물맑고 자원이 가득한 나라 하나를 통채로 빼앗아내는것이 바로 일본의 거두들과 이또 같은 정치가들이 노리는 실리있는 등치고 간빼먹는 왜나라족속들의 파렴치한 흉심인것이다.

이를 위해 리완용이나 송병준 등 이 나라의 배신자들에게뿐만아니라 일본을 위해 아직은 더 리용할 가치를 가진 리용구에게도 그런 아량을 베풀라는것이 상전의 책략인것이다.

우찌다는 빈 입을 다시며 리용구를 바라보았다.

자기에게 향한 우찌다의 음험한 눈길에서 그 속심을 읽고있는듯 리용구의 입안으로는 쓴 물이 돌았다.

일본족속들의 더 큰 올가미가 자기의 목줄을 걸고 늘어지는것이다. 목에 가시가 박힌듯 불안스럽기 그지없었다.

지금에 와서 그까짓 돈이 대수냐? 항상 칼벼랑끝에 선듯 한 불안한 마음을 돈이 가셔줄수 있단 말인가. …자기의 시체가 묻힐 한 기장짜리 땅뙈기와 널판 몇장으로 만든 관을 사자고 많은 돈이 필요하단 말인가. …

왜 하필 꼭 자기만이 그런 일을 맡아안아야 한단 말인가?

그런짓을 할 놈이 어디 나뿐이라더냐. 《정미7조약》날조에 가담한 일곱 대신은 무슨 열무자탕국에 조미료로 쓰려고 놓아둔단 말인가. 그것들이야 이런 때 써먹자고 지금껏 길들여놓은것이 아닌가.

가뜩이나 지금까지 저지른 죄행때문에 어느 하루도 맘놓고 발편잠을 잔적이 없는 리용구는 이 일로 해서 난감하였다.

한때는 친미파였고 다음은 친로파였으며 로일전쟁후에는 친일파로 돌아앉아 을사망국조약날조에 동조한 리완용이 친일정권의 총리대신이라는 어마어마한 감투를 뒤집어쓴것은 1907년 5월 새 내각각료 선발때 통감 이또에게 더는 쓸모없게 된 박제순보다도 더 친일적이고 일본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매국역적의 징표를 다 갖춘것때문이 아니였더냐.

그리구 또 자기와 함께 매국친일단체를 만들어내고 그 우두머리로 활약하다가 일약 농상공부대신이라는 권력의 자리우에 올라가앉은 송병준이가 한때 일본군대의 통역관에 불과하였고 모두가 침을 뱉는 불량배였다는 사실은 리용구로 하여금 쓰거운 열물이 서려돌게 하였다.

그따위것들은 모두가 몸사리기를 하는데 리용구 자기는 아직까지도 죽을 구멍만 파고있으니 앞일이 막막해났다.

이미 나라를 배반한 역적인 리용구가 마음속으로나마 가책을 받을리는 만무했으나 백성들이 무서워 더이상 그들을 노엽히는 일을 하고싶지는 않았다. 이제 일제의 도구로 쓰이다가 어느 모퉁이에 가서는 2천만 백성들의 모두매에 들어 뼈다귀도 추리지 못하는 신세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가 한시도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던것이다.

실로 리용구의 그러한 우려는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썩 후에 벌어진 일이기는 하지만 그후 가쯔라의 직접적인 지시밑에 일진회의 고문 스기야마와 우찌다는 일진회를 조종하여 조선을 일본에 《합병》해줄것을 청원하는 매국적인 《한일합병에 관한 상소문과 청원서》를 이또대신 2대통감으로 틀고앉은 소네가 조일 량국정부에 제출하게 하였다.

일제는 이것을 마치 조선인민이 《합병》을 원하는듯이 사태를 날조해냈다. 그런데 실제상 이 청원서란 도꾜에서 가쯔라와 스기야마가 합의를 본데 기초하여 우찌다가 한문으로 번역하고 리용구는 다만 도장만 찍어 날조해낸 협잡문건이였다.

매국역적들에 대한 일제의 조종과 사촉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당시 애국적인 전체 조선인민은 일제와 매국역도들의 더욱 로골적으로 감행되는 《합병운동》을 한결같이 반대하여 목숨걸고 싸울것을 결의해나섰다.

이에 당황한 일제는 일진회로 하여금 치안질서유지를 더욱 강화할것을 제놈들에게 요구케 하였으며 이 요구에 응한다는 명목밑에 일본군무력을 동원하여 반일기세로 가득찬 백성들을 총검으로 탄압하였다.

또한 일진회와 공모하여 대한상무조합, 국민동지찬성회, 신사협의회니 하는 유령단체들을 조작함으로써 일진회의 별동대로 매국청원서를 지지하는 놀음을 벌리게 하였다. 이 어용유령단체들의 우두머리들은 통감부로부터 몇푼 안되는 보수와 뢰물을 받아먹고 《국가 백년의 대계를 정하려면 한일 량국은 마땅히 한집안으로 되여야 한다.》고 떠벌이면서 《합병》지지여론을 퍼뜨리였다.

민족이 분격했다. 예로부터 열사람의 혀바닥질을 당하면 아무리 질긴 명도 지레 결딴난다고 했다. 하물며 일제에게 굴복하여 민족을 욕보이고 나라를 통채로 왜놈에게 떠맡긴 역적들인 《을사5적》, 《정미7적》들과 더불어 반역자 리용구의 말로가 결코 순탄할수는 없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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