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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회


제2장 역적놈을 잡아라


2


날이 푸름푸름 밝기 시작하자 밤새 로독들을 말끔히 푼 나그네들이 모두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목부위에 검은 기미가 커다랗게 나있는 《날탕패두목》이 맨 나중에 일어나자 곧 길손들의 아침밥이 들어왔다.

집주인내외가 들여보내주는 아침밥상은 생각지 않게 푸짐했다.

한성량반행차의 구미를 맞추느라 여느때없이 아침상이 푸짐해졌노라는 집주인의 말에 길손들은 손님방을 독차지한 량반님에게 눈먼 욕을 퍼붓던 지난밤의 일은 감감 잊어버린듯 좋아서 입이 귀밑까지 돌아갈 지경이였다.

밥상에 둘러앉은 길손들이 차례진 밥그릇을 반반히 비워버리고났을 때였다. 먼저 밥을 게눈 감추듯 없애치우고 잘 먹고 간다는 인사말 한마디 퉁명스럽게 남기고 밖으로 나갔던 《날탕패두목》이 다시 들어오더니 방가운데 떡 버티고 서서 사람들을 차례차례 노려보았다.

《좋게 말할 때 순순히들 내놓소. 난 길이 바쁜 사람이여서 얼른내놓으면 더 따지지 않겠으나 그렇지 않을 땐 그가 누구든 사등뼈를 분질러놓겠소.》

밑도 끝도 없이 사등뼈를 분질러놓겠다는 으름장에 길손들은 눈이 퀭해서 그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무얼… 내놓으라는거요?》

《우리 집 가보를 잃었소. 누가 훔쳐냈는지 빨리 내놓지 못하겠소?》

가뜩이나 감때사나운 그가 여차하면 방안에 있는 사람들을 몽땅이라도 때려눕힐듯이 얼굴을 험상스럽게 이지러뜨리며 따지고들자 길손들은 가슴이 한줌만해져 서로 얼굴들만 쳐다보았다.

그러는 사람들을 사납게 휘둘러보던 그가 다시 꽥 소리를 쳤다.

《정 시치미를 떼겠으면 모두 자기 보짐들을 헤쳐놓소. 애매한 사람은 다치지 않겠소.》

그의 위협에 사람들이 기분없는 일을 당한다고 투덜대며 자기 보짐들을 펴놓았다.

길손들의 보짐을 와락와락 헤집으며 샅샅이 훑어나가던 그는 어느 한 보짐속에서 나온 가락지 하나를 집어들고 매눈을 지었다.

《이게 누구 보짐이야?》

애리애리하게 생긴 총각이 나섰다.

《그건 내거요.》

그는 대바람에 총각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이 도둑놈의 자식… 당장 대갈통을 박살낼테다.》

목덜미를 어찌나 왁살스레 틀어쥐였는지 총각의 얼굴이 대번에 뻘건 수수떡처럼 되여버렸다. 그바람에 목소리까지 동강났지만 총각은 필사적으로 대들려고 몸부림쳤다.

《이걸… 놓소. … 날강도… 같으니…》

《뭐가 어째?》

그의 주먹이 당장 총각의 면상으로 날아들 판이였다.

방금전 푸짐한 조반상을 받았을 때만 해도 손님덕에 흰쌀밥이라며 좋아서 입아귀가 귀밑까지 돌아갔던 길손들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두사람을 지켜보았다.

승패는 불을 보듯 뻔했다. 물건을 잃었다는 《날탕패두목》의 주먹이 가닿기만 하면 물건을 도적질했다는 총각의 애리애리한 얼굴은 대번에 열두개의 쪼각으로 박살날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잃은 사람보다도 훔친 총각의 편에 서서 쌈을 말리려들었다.

길손들은 물론이고 집주인까지 총각의 멱살을 틀어잡은 《날탕패두목》의 팔뚝에 매여달려 쌈말리기를 하는데 틀어쥔 놈의 완력이 어찌나 황소같은지 사람들은 센 바람을 만난 나무가지에 걸린 헝겊처럼 이리저리 휘둘리웠다.

황해도의 특등 일진회원인 영달이가 힘군들을 달고 나타나지 않았다면 싸움은 어느 지경에 이르렀을지 알수 없었다.

《무슨 소란들이야. 지금 한성의 어른님이 쉬고있는데, 썩 그만두지 못해.》

영달의 위엄스런 호령질에 우악스런 사내가 애된 총각을 콱 밀쳐버렸다. 서슬에 총각은 방구석에 꽝다당 구겨박히고말았다.

《이 도둑놈의 자식, 다시한번 그랬단 봐라. 아예 손목재기를 꺾어버리고말테다.》

그리고는 줌에 쥐고있던 가락지를 자기 품안에 꾹 찔러넣고나서 훌쩍 밖으로 사라져버리고말았다.

총각은 너무도 어이없는 봉변에 기가 질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함께 간다는 령감만이 방바닥을 연방 때리며 행차뒤 나발을 불어대고있었다.

《저런 강도놈이 세상에 어디 있어, 응?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 이노-옴.》

길손들이 노발대발하는 령감을 붙어잡고 물었다.

《령감님, 대체 어찌된 영문인가요. 그 가락지가 저 총각것이 맞긴맞소이까?》

《그렇지 않으면… 저애가 자기 물건이 아닌걸 제 짐속에 넣고있겠나.》

《하긴 생긴걸 봐도 도적놈상은 이자 나간 그놈이지.》

《암 그렇구말구요. 이 총각이 어디 남의 물건을 훔칠 사람같이 뵈요?》

《헌데 모를 일이거던. 아무리 도적이 천성이래두 저렇게 뻔뻔스러울수 있어요?…》

《그럼 도적이 뭐 삼강오륜을 따져가며 그짓을 할텐가?…》

억이 막혀 눈물까지 줄줄 흘리고있는 총각이 하도 측은해보여서인지 옆에 앉은 사람이 부드러운 눈길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이보라구 총각, 그게 금으로 만든 가락지인가?》

총각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저 구리로… 만든 가락지오이다.》

《그럼 그닥 아까울것도 없구만 뭐. 됐네, 상심말라구. 사내가 쪼물짝하기란…》

하지만 총각은 머리를 저었다.

《그건 제게 목숨보다 더 귀중한것이오이다. 그걸 빼앗겼으니…》

총각의 두눈에선 눈물이 멎을념을 안했다.

이때 밖으로 나갔던 주막집주인이 달려들어왔다.

《이자 빼앗긴게 이것이 아닌가?》

총각은 주인의 손끝에 묻어있는 가락지를 알아보고 덥석 덮치듯 받아들었다.

《예, 바로 이것이오이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저 바깥쪽 울밑에 떨어져있더구만.》

사람들이 그 가락지를 보면서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 도둑놈이 이게 금가락지인가 했다가 아니니까 내버리고 갔구만. …벼락맞을 놈.》

《그러기나말이요. 아마 그놈이 오늘 재수가 없겠수다.》

한동안이나 가락지를 돌려보며 도적놈 뒤소리를 해대던 사람들이 이번엔 총각을 나무랐다.

《이보라구 총각, 도둑놈두 아깝지 않게 집어버리는 이 잘난 구리가락지가 뭐 그리 귀해서 주먹찜질까지 당하며 지키려 했나. 그따위것 콱 줴주어도 아수할것이 없었겠네그려.》

그러나 총각은 마치 그것이 귀한 금가락지라도 되는듯이 꼬깃꼬깃 싸서 품에 넣었다.

그러한 행동을 어이없어 바라보는 길손들에게 함께 동행한 로인이 머리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했다.

《그 가락지에 깊은 사연이 담겨져있으니 너무 나무랍게들 생각지 말게.》

별로 서두를 필요가 없는 길손들이여서인지 해가 퍼질 때까지 무료한감을 덜양으로 로인앞에 모여앉았다.

《그 사연이 대체 뭔지 좀 들어나보자구요.》

《무슨 기막힌 사연이 있게 목숨을 내걸구 지키자고 했겠지요. 어서 말 좀 해보시우다.》

로인은 길손들을 둘러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래전에 있은 일인데… 저 강원도 원주 아리골이라는 곳에 살던 어떤 젊은이 하나가 가솔을 먹여살리기 위해 엿가락을 팔려고 길을 나섰다네. 그런데 한뉘 땅뚜지는 일밖에 한 일이 없는 그가 장사를 알턱이 있나. 돌팔이장사를 하자면 싸구려소리를 잘 내야겠는데 글쎄 막상 〈엿사소!〉, 〈엿사소!〉 하고 소리를 내자니 붙은 입이 떨어져야 소리를 내고 엿도 팔게 아닌가. 아무리 벼르고벼르었지만 끝내 입이 벌어지질 않아 소리를 못 내고있었다네. 그럭저럭 고향에서도 퍼그나 떨어진 평산일대에 이르렀지. 그런데 바로 거기에서 우연히 한 미역장수와 맞다들었다네. …》

로인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여 한동안이나 이어져갔다.

미역장수는 부끄럼이란 전혀 모르고 싸구려소리를 타령처럼 잘도 내였다.

《미역사소, 살살 끓는 물에 살짝 끓이면 목젖으로 혀까지 따라넘어가는 동해의 참미역이요.》

사람들이 기웃거리자 그는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자, 참미역사소-》

엿장수는 그가 부럽기 그지없었다. 어쩌면 목청이 저리두 높담, 창피도 없구…

그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엿장수는 자기도 기운이 솟는것을 느꼈다.

그러나 막상 소리를 내자니 엿에 달라붙기라도 한듯 도무지 입이벌려지지 않았다.

미역장수의 타령소리는 계속 울리고있었다.

엿장수는 강심을 먹었다. 그러고도 한동안 바재이기만 하던 엿장수는 두눈을 꾹 감고 미역장수의 싸구려소리에 얼른 뒤를 달아 꽥소리를 냈다.

《미역사소.》

《엿두.》

《참미역사소.》

《엿두…》

미역장수가 자기의 싸구려소리마다 꼬랑지처럼 매달리는 꺽 막힌 목소리에 이마살을 찌프리며 뒤를 돌아다보았다.

이건 웬 녀석이야? 코맹맹이소릴 내지르는게…

피골이 상접한 웬 사내 하나가 미안쩍은 눈길로 그를 바라보고있었다.

아유, 이 꼬락서니를 좀 보지. 꼭 마가을 벌판에 선 허재비같구나.

제길, 이런 녀석과 뭘 말했댔자 내 입이나 아프지.

미역장수는 머리를 돌리고나서 다시 소리를 쳤다.

《참미역사소.》

《엿두.》

나지막한 목소리가 또다시 묻어울렸다.

끝내 미역장수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이거 왜 졸졸 따라다니며 시끄럽게 놀아. 엿두엿두 하면서… 그래 엿두가 뭐야?》

그 사내가 쭈밋거리다가 길쭉한 엿가락꿰미를 보여주었다.

《저… 내 엿두 함께 좀 팝세다.》

미역장수가 엿가락꿰미를 피끗 바라보고는 눈길을 돌려 때물이 잔뜩 오른 그의 주제를 한동안이나 내리 훑고 올리 훑다가 입을 쩝 다셨다.

그리고는 가긍스런 사나이의 정상이 보기가 안되였던지 퍽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가솔이 몇인가?》

《운신 못하는 늙은이 둘에다가 동생이 여섯이구 또 내 색시가 있소이다. 내 색시는 지금 막달인데 먹을게 없어서…》

그의 두눈에 눈물이 글썽하니 내배였다.

그 모양을 멍청히 바라보며 눈시울이 같이 붉어지던 미역장수가 또다시 입을 쩝쩝 다시며 면박을 놓았다.

《명색이 사내란게 눈물이 헤프기는 통 아낙네 찜쪄먹겠군. 눈물을 싹 거두게. 당장 쫓아버리기 전에.》

그 다음은 엿장수의 손에 들려있는 엿가락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 그 엿을 얼마에 팔텐가?》

《예, 한개에 일푼 오리문 족해요.》

미역장수가 또 혀를 둘렀다.

《쳇, 이런 반편 봤나. 굶어싸군. 이리 내게.》

미역장수는 그 엿가락들을 모두 길이쪽으로 세등분하고 그 한몫가량씩을 뚝뚝 분질러놓았다.

그걸 보고 눈이 퀭해진 엿장수에게 미역장수가 툭한 소리로 말했다.

《장사란 미립이 있어야 하는거야. 그렇다구 사람들을 속여도 안되지만…》

그리고는 원래보다 퍼그나 짧아진 그 엿가락을 내두르며 소리쳤다.

《자, 엿두 있소이다. 둘 먹다 한사람 죽어두 모르게 달달한 엿이니 어서 사시오. 아이들이 먹으면 일생 량친의 정을 잊지 않게 하고 량주가 함께 먹으면 찰딱 붙어 반생을 금슬좋게 살게 해주는 찰수수엿이요. 엿사소- 엿사소-》

미역장수의 구성진 싸구려소리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미역장수는 원래것보다 작아진 엿가락을 일푼 오리에 어김없이 팔고 잘라두었던 나머지를 덧주기식으로 주었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인심후한 엿장수라고 입이 닳도록 칭찬까지 해대며 꼬리를 물고 엿들을 사갔다.

이날부터 그들은 함께 마을돌이를 하였다.

미역장수는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는 먼저 엿을 판 다음 미역을 내보였고 어른만 있는 집에서는 미역을 판 다음 거스름대신 엿을 주는 식으로 엿장수의 리득을 챙겨주었다.

이로 하여 벌이는 괜찮게 되였지만 둘이가 다 지독하게 린색하여졌다.

품속에 꼬깃꼬깃 꽁져넣은 지전은 말할것도 없고 한푼짜리 귀떨어진 동전조차 없어지는게 아까와 극상해서 수수물살미 한개로 둘이서 한끼를 에우기가 십상이였다. 어떤 날엔 박우물가에 나란히 앉아 맹물로 때식을 굼때기도 하였다. 밤이 되면 잠은 언제나 돈 한잎 안 드는 남의 집 처마밑에 자리를 잡았다. …

여기까지 말한 로인이 주머니에서 주먹만 한 대가리가 달린 아주 듬직하게 생긴 대통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잎담배를 꺼내 대통에 부스러뜨리느라 잠시 말을 끊었다.

아까부터 입이 간질거려 안달아하던 막벌이군중 하나가 이때라는듯 제꺽 말을 붙였다.

《그 젊은것들이 꽤나 린색하군요. 돈 한푼을 그렇게까지 아끼다니… 참.》

로인이 그에게 눈을 찔 빨았다.

《이런 버르재기를 봤나.》

막벌이군이 눈이 떼꾼해서 되걸이를 하였다.

《아니, 왜요?》

《그들이 임자의 아비벌이란 말이야. 근데 뭐 젊은것들이라구?》

《쳇…》

그는 더이상 말을 붙일수가 없었다. 곁에서 사람들이 로인에게 이야기를 재촉했던것이다. 로인의 이야기가 하도 구수한지라 집주인들까지 귀를 강구고 이야기가 이어지기를 기다리고있었다.

로인은 부시를 때려 대통에 불을 붙인 다음 한모금을 걸탐스레 빨고나서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사실 그 미역장수는 혁신파에 자금을 대주기 위해 이악스레 돈을 모았던거라네. 그래서 한푼이라도 더 마련하기 위해 그처럼 고생을 했었지. 하지만 엿장수는 오직 가솔을 위하여 아글타글한거구. 사실 맘고생으로 말하면야 그 참미역장수가 더했지.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느라구 집과 가산을 깡그리 팔아 집식구들이 한지에 나앉았지만 그런 내색을 조금도 하지 않았다는걸 엿장수는 후날에야 알게 되였다네.》

로인의 얼굴에 추연한 빛이 어리였다.

어느날 그들은 평산일대를 돌다가 난처한 일과 맞다들렸다.

인가가 있는 마을을 찾아 어느 산골길을 가다가 산탁에 있는 산당집을 보고 잠시 쉬기도 할겸 혹시 사람이 살고있으면 미역이나 엿을 팔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집문을 두드렸다.

《주인님 계시우?》

《엿사시오. 미역도 있어요.》

대답이 없었다. 안을 기웃거리던 엿장수가 어둑시근한 방안으로 천천히 한다리를 들이밀었다. 온몸이 방문안으로 사라질듯싶던 엿장수의 몸이 뒤걸음으로 혼비백산하여 다시 튀여났다.

《왜 그래?》

미역장수가 놀란 눈길로 물었다.

엿장수는 턱을 덜덜 떨며 가까스로 말했다.

《주… 죽었어.》

《누가?》

《사람이… 둘이네.》

미역장수가 후닥닥 뛰여들어갔다. 잠시후 그가 다시 뛰여나왔다.

《아직 살았네. 빨리 오게.》

엿장수가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옮기며 그의 손에 끌려들어가 자세히 보니 시체같은 사람 둘이 가늘게 숨을 내쉬고있는것이 알렸다. 늙은 령감과 로친이였다.

《분명 굶은것 같네.》

둘은 부리나케 부엌으로 나가 아궁에 불을 지폈다.

언제 불을 때보았는지 온기가 전혀 없었다.

거미줄이 엉켜있는 새까만 가마를 대충 가셔내고 거기에 물을 부었다.

잠시후 물이 벌렁벌렁 끓었다. 거기에다 엿을 열가락이나 집어넣었다.

따끈한 엿물을 늙은이들에게 먹이였다. 한참 먹였더니 둘의 손에 온기가 도는것이 알렸다. 미역장수는 다시 부엌에 내려가 가마에 참미역을 끓이기 시작했다. 하루밤동안 역사질을 했더니 령감로친이 원기를 회복했고 첫닭이 홰를 치기 전에는 사연을 들을수가 있었다.

령감내외는 원래 그곳에서 수십리 떨어진 세하면에서 살았는데 지난해 초봄 아들이 평산땅의 불악귀로 소문난 맹부자네 아들과 싸움을 하게 된것이 동기가 되여 아들을 한밤중에 빼돌리게 되였고 그들은 이곳으로 쫓겨오게 되였다고 한다.

령감내외는 이곳에 온 후 화전을 뚜져 봄내, 여름내 가꾼 낟알을 얼마간 거둘수가 있었다.

그런데 맹부자놈이 어떻게 그 행적을 알았는지 아들놈과 불량배들을 끌고 와 채 하지 못한 분풀이를 한다면서 거두어들인 낟알을 한톨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거두어갔다.

령감내외는 자기들이 등을 떠밀어 어디론가 떠나보낸 아들을 만날 때까지 죽지 말고 살자는 강심을 먹고 가으내 산열매와 도토리를 거두어들여 근근히 목숨을 부지하며 겨울을 넘기였다.

그랬건만 아무리 애를 썼어도 보리고개만은 넘기기 어려웠다.

산열매도 다 떨어지고 햇풀을 뜯어다 삶아먹기 시작했는데 사람이 무슨 염소라고 풀만 먹고 살수가 있단 말인가.

령감내외는 마침내 기력을 잃고말았다.

더는 풀을 뜯으러 다닐 맥도 없고 하여 이제는 둘이서 함께 모진 세상과 리별을 하자고 방안에 누워 죽을 날을 기다려왔던것이다.

눈물을 덤벙덤벙 쏟으며 로인내외의 이야기를 듣고난 미역장수가 엿장수의 팔소매를 잡아쥐고 부엌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두눈을 부릅뜨고 따졌다.

《자네도 부모가 있겠지?》

《그야 이… 있지.》

《그럼 5원을 내게.》

《뭘 5원씩이나…》

엿장수는 입이 딱 벌어졌다. 하지만 눈물이 줄줄 흐르는 미역장수의 얼굴을 보고는 어쩔수가 없어 후들거리는 손으로 품속에 꼬깃꼬깃 말아넣었던 종이돈중에서 피같은 5원을 내놓고야말았다.

그가 힘들게 꺼내주는 돈 5원을 덥석 걷어쥐며 미역장수가 말했다.

《오늘 도적을 만난셈 치자구. 키짝같은 장칼을 든 도적말이야. 돈5원만 내놓고 목숨은 건졌으니 다행이라구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

마음이 편하다구? 남은 속이 알알해 죽여주는데… 돈 5원을 쥐려면 얼마나 많은 마을을 돌아야 한다는걸 몰라서 그런 소리야. …

엿장수가 아수해하며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그 키짝같은 칼을 든 도적을 자네라구 생각하겠네. …》

《당치않은 소릴세. 난 굶어죽어도 그딴짓은 안해.》

미역장수는 자기 주머니에서 10원을 꺼내서 합쳐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이 돈으로 량곡과 종자를 마련하시우다. 봄에 씨를 뿌리고 곡식이 날 때까지 꼭 견디여야 하우다.》

갑자기 큰돈을 받은 령감로친은 마치도 부처님을 우러르듯 그들을 바라보았다.

엿장수는 령감로친의 그 눈길을 대하면서야 자기도 세상에 태여나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후련해지는것을 느꼈다. 비록 적지 않은 돈이 없어진것은 사실이였지만 일생에 처음으로 자기에 대한 존재를 인식해보는것이다.

아마도 돈이 아까운 생각만으로 미역장수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더라면 이런 가슴뻐근한 희열을 느껴보지도 못했을게 아닌가.

이런 생각으로 그는 미역장수를 새삼스레 쳐다보게 되였다.

그리고는 속으로 말했다.

(이보게, 고마우이…)

령감로친은 너무도 고마와 눈물만 흘렸다.

그들이 떠날 때 령감내외는 먼 고개마루에까지 따라나와 붙잡은 손을 좀처럼 놓지 못했다.

헤여지려는 순간에 로친이 품속에서 베천에 싼 자그마한 물건을 꺼내 그들의 손에 쥐여주었다.

펼쳐보니 꼭같이 생긴 두개의 구리가락지였다.

세개의 솔잎을 박아넣은 송진덩이가 재간스럽게 두둑진 두개의 구리가락지는 극상해서 동전 두잎어치 값밖에 나가지 않을 물건이였다. 바로 그런 눅거리가락지 두개가 이 늙은이들의 유일한 재산이였다.

늙은이들이 머리를 얹을 때 마련했을 가락지일것이라는 생각으로 받지 않으려 하였지만 로인들은 막무가내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무엇으로라도 자기들의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싶어하는 로인내외의 진정이 담긴 그 두개의 구리가락지를 받아두기로 하였다.

그날 일이 있은 후 둘사이의 친교는 더욱 굳어지게 되였다.

이후에도 그들의 장사일은 잘되여갔다.

엿장수도 미립이 터서 곧잘 소리를 내군 했다. 그러느라니 로인내외를 구제한 돈도 인츰 봉창하게 되였다.

어느날이였다.

하루종일 말이 없던 엿장수가 저녁이 다되여서야 미역장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이젠 고향으로 돌아가봐야 할가보네. 고향에 가서 풀죽을 먹으며 내가 돌아오길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가솔을 구완해야겠네.》

한동안 서운한 눈길로 엿장수를 바라보던 미역장수가 시무룩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라구. 아무래도 갈길인걸.》

엿장수는 눈물이 그렁해졌다.

고작 달포가량을 함께 다녔지만 헤여지기 힘든 막역지우가 되여버렸던것이다.

그러는 엿장수를 마주보는 미역장수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하니 내보이였다.

그들은 서로 꽉 붙어안았다. 정작 헤여지자니 석별의 정이 너무나도 아쉬워 선뜻 헤여질수가 없었다.

차마 발길을 못 돌리는 엿장수에게 미역장수가 말했다.

《참! 이보게, 임자 색시가 막달이렷다.》

《그렇네.》

《그럼 우리 사돈을 맺읍세.》

《자네 자식이 있나?》

《있지. 내 색시도 지난달이 막달이였어. 아마 지금쯤 첫아기가 태여났을거네. 어떤가?》

《좋지!》

금시 입이 벙글써해지던 엿장수가 미타한듯 머리를 기웃거렸다.

《그런데 아직 무엇을 달고나올는지두 모르면서 어떻게 혼사를 정하겠나?》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자신없는 기색을 짓던 미역장수가 별걱정을 다한다는듯 말했다.

《자네 뭘 낳길 바랬나? 꼬투리? 아니면 거시기…》

미역장수의 물음에 엿장수가 게면쩍게 웃으며 말했다.

《난 아들이였으면 하네. 나처럼 약골이 아니라 자네처럼 든든한 아들을 말일세. 그래서 내 색시에게 장가를 들자마자 수백리나 떨어진 정방산 성불사라는 절에 찾아가서 아들을 점지해달라구 부처님께 빌었다네.》

미역장수가 놀랍게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 부처님을 믿나?》

엿장수가 머리를 끄덕이였다.

《할아버지때부터 우린 부처님을 모시네.》

미역장수가 머리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난 부처님은 안 믿어. 하지만 나도 마음속으로 빌어봤다네. 계집애를 낳게 해달라구 말이야. 우악스러운 나를 닮지 않은 귀엽고도 얌전하게 생긴 딸을 말일세.》

엿장수가 그의 어깨를 툭 때렸다.

《그럼 됐구만. 부처님께서 우리 같은 사람들의 지성을 알아주실거네. 어서 혼인이나 락착을 짓자구.》

그들은 눈물이 찔끔나게 웃었다.

그리고는 길가의 오동나무밑에 고등어 한마리를 놓고 무릎을 마주하고 앉았다. 전날 저녁에 어느 주막집에서 받아놓았던 막걸리를 조롱박에 부어 정중하게 찧으며 자식들의 혼인을 락착지었다. 미역장수는 귀여운 딸을, 엿장수는 억센 아들을 바라며…

그리고 늙은 내외에게서 받아넣었던 꼭같이 생긴 구리가락지를 하나씩 나누어가지며 후날 일이 생겨도 그것을 증표로 삼기로 하였다.

그후 그들은 다시 만날수 없었다.

집을 잡고 가족을 안착시키면 꼭 찾아오겠다던 참미역장수가 나타나지를 않았다. 그의 가족들이 어디서 사는지 알수 없는 엿장수가 찾을수도 없는 일이였다.

엿장수는 고향에 돌아가 떠돌이장사로 그럭저럭 밥술이나 먹으며 살면서도 미역장수를 찾을 생각을 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바로 그러한 때에 갑오농민전쟁이 터졌다.

전국각지에서 거세차게 들고일어나는 농민군을 진압할수 없게 된 봉건통치배들은 저들의 계급적지배를 부지하기 위하여 청나라에 출병을 요구했다. 청나라군대의 조선출병은 일본의 조선침략을 위한 구실로 리용되였다. 일제는 조선에 있는 일본거류민들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많은 침략무력을 우리 나라에 들이밀었다.

그리하여 나라는 일제의 발굽밑에 참혹하게 짓밟히게 되였다.

일본침략자들이 부패무능한 조선봉건통치배들을 굴복시키고 우리 나라에 대한 횡포한 침략행위를 계속 감행하는 조건에서 농민군은 척왜척양의 구호밑에 왜놈들을 반대하는 무장투쟁에 다시 나서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나라와 민족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출할 일념을 안고 전국각지에서 또다시 일어번진 투쟁의 불길이 엿장수가 사는 고향마을에도 타래쳐올랐다.

미역장수가 나라위한 길에 자신을 바친다던 말이 생각난 엿장수는 어디선가 나라위한 싸움에 뛰여들었을 친구를 못견디게 그리며 자기도 그처럼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품고 고향땅가까이에서 들고일어난 농민군을 도와나섰다.

그런데 그 일이 일본놈들에게 알려져 어느날엔가 온 가족이 불속에 들고말았다.

살아남은것은 오직 그의 아들뿐이였다.

그후 고향인 아리골을 떠나 평산에 있는 큰아버지집에 얹혀살던 아들이 이제는 안해를 얻을 때가 되였다. 그리하여 아버지가 잊지 못하는 미역장수와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세해전부터 그의 가족을 찾기 시작하였다. 강원땅을 무른 메주 밟듯 헤매였고 평산땅과 서흥을 거쳐 평안도일판을 몇십번이나 오르내렸다. 이번 걸음도 황주에 사는 어떤 사람이 그러루한 인연을 맺은게 있더라는 어느 뜨내기의 말을 듣고 행하였던것인데 수백리길을 헛걸음하고 돌아가던중 그만 이 아침에 부친이 맺어준 인연을 찾게 해줄 단 하나의 증표인 그 가락지를 빼앗길번 하였던것이다. …

로인의 이야기가 끝나자 사람들은 감심한 표정으로 총각에게 눈길을 모았다.

《알고보니 깊은 사연이 담겨진 가락지로구만.》

《그러니 거 자네 지복결혼을 하였구만.》

《이보라구 총각, 그 약혼녀를 꼭 찾으라구.》

《약혼녀를 찾아하는 고행은 해볼만 한거라니.》

사람들의 그 말에 총각은 눈물이 그렁하여 말했다.

《고맙소이다. 제 꼭 아버님의 당부대로 가락지의 임자를 찾겠소이다.》

길손들은 한동안이나 감심깊은 얼굴로 마주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주섬주섬 떠날 차비들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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