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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회


제3장 터를 잡는 근거지


3


장재촌근거지의 유격대중대장 김학철은 독립군에서 운영한 신흥무관학교를 나오고 참의부의 한 부대에서 소대장을 했다.

그러다가 김일성장군님의 령도의 손길을 잡게 되여 새로운 혁명투쟁의 길에 나선 사람이다.

그는 몸매가 그쯘하고 남자싸게 생긴 철색얼굴에 턱뼈가 유난히 두드러져보였다. 말이 적고 목소리도 낮았으나 대원들은 그를 무척 따랐다.

김학철은 혁명정부에서 근거지에 들어온 애들을 유격대식당에서 먹이고 거기서 자게까지 하자고 했을 때 두말없이 응했다.

이애들이 이제 나이들어 자기 중대를 보태게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어제저녁 캐서는 안될 알감자가 열포대나마 나타나자 까닭을 알수 없어 최춘도혁명정부회장을 찾아갔다.

회장은 침이 마르도록 김기송동지를 칭찬했다.

《그애를 어리다고만 봤단 큰일나겠어. 잡도리가 만만찮아.》

혁명정부에서는 들어온 애들이 갈갠다는 말을 듣고 단단히 다잡아쥐려했다. 그러나 련이어 들씌워지는 일에 깔려 미처 손을 쓰지 못했다.

그런데 하촌에서 분단장을 했다는 김기송동지가 들어오자마자 못된 애들을 정신들게 하고 밭임자들의 마음도 풀어주었다.

열포대의 감자, 거기에는 부모잃은 애들의 끼니에 조금이라도 보태라는 밭임자들의 정성이 슴배여있었다.

김학철은 기송동지를 만나고싶었다. 기송동지한테 큰 기대가 가기도 했다.

식당에서 지내는 애들은 회장의 엄한 신칙을 들었지만 천성대로 웃고떠들었다.

김학철은 그것을 너그럽게 리해했다. 장난이자 곧 애들인것이다.

중대장은 고아대는 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마주치는 애들을 유심히 살폈다.

어느 녀석이 눈이 똑바로 박히고 쌈깨나 할가 하고 고른것이였다.

중대장은 이제껏 기송동지를 알아보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김학철은 애들이 아침식사를 끝냈을 때 식당에 들어섰다.

서로 왁작 떠들던 애들은 벌떡 일어나며 몸에 긴장을 실었다. 그들은 중대장을 알고있었던것이다.

김학철은 떠드는건 나무라지 않고 애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제 눈짐작으로 기송동지를 맞히고싶었던것이다.

그는 한 소년앞에 멈춰섰다. 회장한테서 들은 나이에 비해 키가 조금 작긴 하지만 몸이 단단하고 강단이 느껴지는 소년, 동그란 얼굴, 검은 눈섭에 영채넘치는 눈, 봉긋한 입술, 탄력이 느껴지는 볼…

보통 여돌차게 맺혀보이지 않았다.

김학철은 한참이나 찬찬히 여겨보다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네가 김기준동무 동생이 아니냐?》

《예?!》

기송동지의 입에서 놀라운 소리가 튀여나왔다.

나를 어떻게 알아볼가? 형님과 모습이 비슷하나? 형님과 어떤 사이일가?… 생각이 급행렬차를 탔다.

묵중한 성격인 김학철은 빙그레 웃으며 기송동지의 어깨를 다정히 다독여주었다.

눈에 익히려고 한참 더 기송동지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돌아섰다.

그는 흐뭇했다.

(이애를 잘 키워야겠어.)

중대장이 식당에서 나가자 애들은 법석 끓었다.

《야, 눈에 만리경이 달린게 아니야? 어떻게 대장을 알아볼가?》

그때는 쌍안경, 망원경을 만리경이라고 일렀다.

기송동지는 가슴이 후두두 뛰였다. 낯이 화끈 더워왔다.

기준동무의 동생이라고 불러준것이 더없이 기뻤다. 혁명정부 회장도 첫 물음을 그렇게 던지지 않았던가. 형님이 어디에선가 큰일을 하는게야. 그러게 마을이 몽땅 없어졌을 때도 그날밤으로 나타나지 않았나? 형은 여기 조직과 밀접한 련계를 맺고있는게 분명해.

야, 인남이는 어쩌고있을가? 한번 안고 둥개질을 해봤으면… 무서운 호랑이시늉을 하여 조카를 울리고 엄마한테 핀잔 듣던 일도 그립다.

조금 있으려니 낫가락을 든 대여섯명의 애들이 식당에 나타났다. 감자사건으로 인연이 맺어진 집에 가서 낫들을 빌려오는 참이다. 집들에서는 애들을 반겨맞으며 집에 있는 낫을 다 내주었다. 앞끝이 부러지고 갈지 않아 날이 시꺼멓게 녹쓴 낫도 세가락 들어있었다. 애들이 모두 쓰려니 그거라도 가져가보라고 했던것이다.

김기송동지는 오늘부터 마을에 벌려놓은 집짓기를 도우려고 작정했다.

기송동지는 유격구에 들어와 고마운 마음에 늘 가슴이 뻐근히 차올랐다.

방금 터를 잡는 유격구이다.

한데도 우리 아이들을 사랑해 끼니맞춰 밥을 먹여주고 잠자리까지 마련해준것이 아닌가. 유격대원들은 자기들이 덮던 모포를 아이들이 덮으라고 나눠주기도 했다.

유격구에는 지금 일감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고양이 손도 빌려써야 할 형편이다. 그러나 아이들보고 일하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김기송동지는 아이들이 할일없이 뛰여놀기만 할수 없다고 여겼다.

맨 앞장! 맨 앞장!… 형님과 헤여지며 가슴속깊이 새긴 맹세가 생생한 김기송동지는 우리 아이들도 집짓는 일을 힘껏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송동지는 어제 오후 집짓는 곳을 돌며 우리가 도울 일이 뭘가 하는걸 찾아보았다. 집짓는 어른들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우리 힘에 맞는건 칡줄기를 걷어다 집짓는 모든 곳에 나눠주는것이다.

벼가 없는 이곳에선 새끼가 있을수 없으니 칡줄기로 바람벽의 외를 엮는다. 그리고 지붕우에 얹은 나래도 칡줄기로 비끄러매야 한다.

심심산골인 이곳엔 칡이 많다.

한뿌리에서 칡줄기가 여러갈래로 얼마나 길게 뻗는지 모른다. 옆에 선 나무를 감고 오르기도 하고 덤불나무에 엉키기도 하고 풀밭을 타고 길게 뻗어나가기도 한다.

한여름에 칡줄기가 어찌나 줄기차게 뻗는지 이런 말도 있다.

《칡덩굴 뻗을적 같아서는 강계, 위연, 초산을 다 덮겠다.》

김기송동지는 동무들을 2렬횡대로 서게 했다. 유격대병실가까이에 있다보니 우리도 군대같은 규률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든것이다.

낫은 두사람앞으로 하나씩 돌수 있었다.

기송동지는 두명씩 조를 짜서 서게 했다.

박귀남은 헤덤벼치며 강진혁의 옆에 딱 붙어섰다.

기송동지는 그걸 못본체 하며 박귀남에게 낫을 하나 주었다. 다른 조에도 나누어주었다.

아이들의 앞에 선 김기송동지는 유격구의 일손을 주인답게 돕자고 힘있게 말했다. 애들은 귀담아들었다.

기송동지는 말을 이었다.

《12개 조인데 맡은 집의 칡줄기를 다 보장해주어야겠어. 이제 가면서 맡을 집을 대주겠어. 모두 할수 있어?》

《예!》

《할수 있습니다!》

아이들도 군대식으로 대답하느라 소리에 힘을 주었다.

낫을 들고 마을가까이의 산에 붙은 애들은 무어진 조끼리 서로 딴데로 밟아올라갔다. 집짓는데를 돌아보니 칡줄기가 여간 많이 들것같지 않았다. 그러니 온 산의 칡줄기를 다 거둬야 할것 같았다.

애들의 뒤를 따라올라가는 기송동지는 입을 지그시 다물고 생각을 이어갔다.

(이제 칡줄기들을 대여준 다음 서까래감과 산자감도 베여다줘야겠어. 그것도 우리가 넉근히 해줄수 있어.)

서까래는 룡마루와 도리사이에 물매를 따라 길게 얹어놓는 나무다. 집한채를 짓자면 지붕크기만큼 많은 서까래가 들지만 가는 이깔나무를 베여오면 된다.

산자는 서까래우에 펴는 나무판자를 말하는데 여기선 널을 구할수 없으니 가는 나무를 펴고 칡으로 엮을수밖에 없다.

그 산자감도 우리가 대여줄수 있다.

김기송동지는 일욕심이 산처럼 부풀어올랐다.

김학철중대장이 찾아와 네가 기준동무의 동생이 아니냐고 물은 때부터 몸에 힘이 뻗쳤다. 어깨를 두드려주던 중대장이 말은 안했지만 《너도 형처럼 일해야 해.》 하는 당부처럼 안겨왔다.

형님을 보고싶어 몸살이 난 기송동지는 속으로 마음다졌다.

(형, 걱정말라요. 형보다 못한 동생이 있어선 뭘하겠어요.)

기송동지는 형처럼 일하리라 마음을 사려먹었다. 그러다나니 어제밤까지 집짓는데 칡줄기나 대주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동무들에게 분담주느라 도는 사이 새로운 일욕심이 보태진것이다.

울창한 수림속이라 조를 무은 동무들이 어데로 뻗어갔는지 알수 없었다.

기송동지는 마음을 놓을수 없었다.

(동무들이 열성스레 일할가?)

기송동지는 하촌동무들은 배속까지 휑 꿰뚫고있지만 여기서 새로 만난 동무들은 잘 알수 없었다.

잔등에 땀이 질벅히 흐르도록 칡을 거둬 다듬어나가던 기송동지는 동무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의없이 손질한 칡줄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집짓는 어른들한테서 호된 욕벌이나 할수 있다.

《얘, 그것도 칡줄기냐? 그따윈 못써. 돕지 못할바엔 얼씬거리지 말아.》

이렇게 되면 얼굴을 내밀지 않은것만도 못하다. 한줄기를 다듬어도 정성을 고여야 한다.

김기송동지가 나무숲을 헤치며 올리받이를 춰올라가느라니 여러 애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이만큼 땄으면 됐어.》

《야, 오이보다 더 시원하구나.》

가까이 다가가보니 근거지에 먼저 들어온 댓명의 아이가 나무밑에 주저앉아 병풍추렴을 하고있었다. 저마끔 뜯어다 한군데 무둑히 쌓아놓고 먹는 판이다.

병풍은 굵고 긴데 껍질을 벗겨 먹는다. 이파리가 넓어 장마당에서는 거기에 딸기며 다래, 머루 같은것을 담아 팔기도 한다. 가벼운 풀내와 함께 사각사각 씹히는데 물기가 많아 속을 시원히 해준다.

대바람 기분이 잡친 기송동지는 그애들이 일한 자리를 살폈다.

여러군데 칡덩굴을 거둬놓긴 했으나 다듬지는 못했다. 순간 큰소리가 터졌다.

《너희들은 뭐야? 놀러 여기 올라왔어?》

애들은 병풍을 먹다말고 어깨를 흠칫 떨었다. 또 걸렸구나 하는 표정이 눈에 헨둥히 비꼈다.

김기송동지는 서까래며 산자도 공사장에 보태주려 했지만 칡줄기도 제대로 대여주지 못할것 같았다.

기송동지는 자신의 욕심대로 일하지 않는 애들이 괘씸해 그자리를 떴다.

한 산마루에 이르자 그 감정은 더욱 폭발했다.

그곳에서는 한조가 된 강진혁이와 박귀남이 일하고있었다.

박귀남이는 웃동을 벗어붙이고 땀을 줄줄이 흘리며 거칠게 뻗은 칡덩굴을 낫으로 베여던지고있었다. 옆에는 매끈하게 다듬은 칡줄기타래가 쌓여있었다.

그러나 강진혁은 다래덩굴 그늘안에 깊숙이 들어앉아 무슨 노래인가 흥얼거리고있었다.

김기송동지는 어제저녁 이미 들어온 아이들중에서 한 애를 식당밖으로 데리고나가 이 두 애에 대해 알아보았다.

여러날동안 한군데서 딩굴며 잤으니 매 아이의 《자서전》을 휑하니 꿰들은 애였다.

기송동지는 그애한테 진혁이와 귀남이가 어떻게 되여 량부모를 잃게 되였는가를 알게 되였다. 그리고 형제간으로 맺어진 사연도 알았다.

박귀남이 별스레 겁이 많다고 여겼더니 그 까닭도 듣게 되였다.

귀남이가 태여난지 며칠후에 민지주가 막내아들을 보았다. 귀남이는 동리녀인들이 처녀애이상으로 곱게 생겼다고 번갈아가며 안아주었다. 그런데 민지주네 막내아들은 귀밀눈에 개발코인데다 민하게 생겼다.

민지주는 속이 왈칵 뒤집혔다. 머슴놈이 제 아들의 인물을 훔쳤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귀남이가 미워 미칠 지경이였다.

갓난애기에게서 울음은 말이기도 하다.

배가 고프면 젖을 달라고 울고 기저귀가 질면 갈아달라고 운다. 세상밖에 나온 기쁨에 캐득캐득 웃기도 잘한다.

그때마다 민지주는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독을 뿜었다.

《귀청 터져 견디겠니? 무슨 놈이 그렇게 소란스럽니? 청승스럽다.》

귀남이 어머니는 그때마다 낯이 새까맣게 죽으며 애기를 안고 대문밖으로 뛰쳐나갔다. 남의 집뒤에 숨어 몰래 울기도 했다.

민지주 막내가 대여섯살 되자 귀남이를 죽일듯 미워하며 사정없이 걷어차고 짓밟아댔다.

숨막히는 머슴살이에 인물《덕》까지 입다보니 별찮은 일에도 어깨를 흠칫 떨며 눈에 겁기를 그득 채웠던것이다.

김기송동지는 박귀남이 불쌍해 품에 힘껏 안아주고싶었다. 그의 겁기를 빨리 가셔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박귀남에게 동정이 갈수록 강진혁이 더더욱 미웠다.

뭐 형제간?… 넌 집을 다 잃었는데도 도련님행세를 해? 귀남이가네 종이야? 귀남이는 땀을 철철 흘리는데 너는 흥타령만 부르고있어?

김기송동지는 강진혁을 처음 만날 때부터 참새무리의 뻐꾸기처럼만 보였다.

방금 일은 하지 않고 병풍추렴만 하던 애들을 본 뒤끝이라 속에 품고있던 말을 곧추 터놓았다.

《진혁동무, 여기 있기가 힘들지 않아? 내려가는게 어때?》

강진혁은 눈에 흰자위만 남았다.

우려했던 말을 기송동지한테서 직접 들은것이다.


아동단병실이 거의 완공단계에 들어서고있었다.

최춘도회장은 벌려놓았던 집짓기가 절반가까이 마무리되자 그 로력을 아동단병실건설에 돌리였다.

사실 최춘도회장은 벌려놓았던 집짓기를 끝내고나서 아동단병실을 짓기로 마음먹었었다. 그런데 얼마전에 김정숙동지께서 최춘도회장에게 찾아와 지금 근거지에서 일손이 모자라 뛰고있는데 우리 아동단원들이 어떻게 가만 앉아서 있겠는가고 하시며 아동단자체의 힘으로 아동단병실을 짓겠다고 제기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반신반의하는 회장에게 이것은 아동단원들에게 제힘을 믿고 제손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정신을 키워주는데도 좋을것이라고 하시며 끝끝내 최춘도회장과 합의를 보고 다음날부터 아동단병실꾸리기에 아동단원들이 떨쳐나서도록 하시였다.

통나무를 찍는 일은 장정들도 힘들어하는 일이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아동단원들과 함께 며칠사이에 아동단병실에 필요한 통나무를 다 찍어내리시였다. 그러자 유격구의 수많은 인민들이 저저마다 아동단병실 짓는 일에 떨쳐나섰다.

아동단병실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남향 산기슭에 귀틀집으로 큼직이 일떠서고있었다.

귀틀집은 흙바람벽집보다 훨씬 덥다.

유격구에서 여느 집들은 흙바람벽집으로 짓고있었다. 산에 나무가 많긴 하지만 숱한 나무를 베여내리고나면 적들의 눈에 유격구가 쉽게 드러날수 있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아동단병실만은 귀틀집으로 지었다. 아이들을 아끼는 유격구의 뜨거운 마음이 그런 결단을 내리게 했던것이다.

최춘도와 김학철은 기송동지와 그의 동무들이 집짓는 곳에 칡줄기며 서까래감, 산자감을 보내준걸 더없이 흐뭇이 여겼다.

《허, 기송이 그애의 머리엔 왕벌이 들어앉았다니. 시키지도 않은걸 동무들을 들춰 제끼는걸 보라구.》

최춘도의 말이였다.

그러나 김기송동지는 그 일을 두고 여간 알찌근해하지 않았다.

칡줄기를 절반나마 쓰지 못하고 버렸다. 서까래감과 산자감은 생각했던 량의 절반밖에 가져다주지 못했다.

김기송동지는 속이 달아 이리뛰고 저리뛰며 소리를 쳤다.

최춘도의 말을 김학철이 받았다.

《래력이 그런것 같습니다. 정숙이도 보십시오.》

《아, 정숙이!》

김정숙동지께서 장재촌에 들어오신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모두 그이를 좋게 여겼다.

인상도 남을 끌었지만 얼마전에 공청에 가맹한 김정숙동지께서는 구공청에서 일러주는 일군이였다.

마을의 혁명조직들은 지하에 깊숙이 몸을 숨겼다. 살륙으로 기를 짓누르려는 왜놈들에게 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하조직은 줄기차게 활동했다.

구공청에서는 자주 김정숙동지에게 련락임무, 삐라살포임무를 주었다. 어떤 살벌한 정황속에서도 한번의 실수도 없이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셨기때문이다.

아동단병실건설이 시작되자 김기송동지는 동무들과 함께 강가의 갈을 베여들여 산판에 쭉 널어놓고 말렸다. 바위에 덮인 이끼도 모조리 떠왔다.

귀틀집을 지으려면 올려쌓는 나무통사이에 이끼를 깔고 흙매질을 해야 한다. 지붕에 갈로 나래를 엮어 덮어야 할터이니 그 갈을 충분히 말리워야 하는것이다.


최춘도는 어깨에 걸머졌던 사업의 짐을 여기저기 돌며 덜다나니 저녁녘에야 뚝막인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는 여태 혁명정부사무실을 지을 생각은 뒤로 미루고 지냈다.

나무통을 쪼개여 만든 긴 의자에 남자처럼 체대가 굵고 서글서글한 인상을 주는 30대의 녀인과 눈이 닦은 머루알같고 귀여운 입에 방긋 웃음지은 열살쯤 되였을 처녀애가 바투 붙어앉아있었다.

오래 기다린것 같았다.

최춘도는 틀없이 물었다.

《어데서 왔소?》

처음 보는 사람들이였다.

녀인은 빙그레 웃으며 트레머리속에서 성냥가치같이 가늘게 감은 쪽지를 꺼내 회장에게 내밀었다.

동불사지하조직에서 보내온 쪽지다. 연필로 깨알같이 이렇게 썼다.

《우리 마을 부녀회원인데 기어코 근거지에 들어가겠다고 함. 녀인은 박복덕, 딸은 현란희.》

최춘도는 물었다.

《왜 근거지에 들어오겠다고 하오?》

녀인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목메인 소리로 말했다. 사연은 이러했다.

현란희의 아버지는 동불사에 조직된 반제청년동맹의 한 성원이였다.

반제청년동맹은 왜놈들이 길돈선철도공사를 끝내고 조선회령까지의 철도공사에 달라붙자 그 공사를 훼방놓느라 은밀히 활동했다.

놈들이 종일토록 철도측량을 하고 말뚝을 박아놓으면 깊은 밤에 감쪽같이 뽑아던지군 했다. 그러면 측량을 다시 해야만 했다.

놈들은 피눈이 되여 잡으려 했지만 측량말뚝은 계속 뽑혀 던져지군 했다.

왜놈들은 드디여 돈화로부터 회령까지의 철도공사를 끝내고 첫 시운전을 하려 했다.

반제청년동맹에서는 철다리에 폭약을 묻고 렬차를 몽땅 강물에 처넣을 작전을 폈다. 그런데 폭파조에 속한 한자가 지레 겁을 먹었는지 룡정령사관으로 달려가 그 사실을 토설했다.…

란희 아버지는 징역 20년을 지고 지금 서대문형무소에 갇혀있는것이다.

박복덕은 울먹해서 말을 이었다.

《원쑤를 갚자니 산에 들어올 생각이 나서…》

현란희는 머리를 푹 수그렸다. 눈에는 눈물이 그득 맺혔다.

란희와 엄마는 한번도 본적 없는 서대문형무소를 눈에서 지운적이 없었다. 철없는 란희가 엉뚱한 말을 하군 해서 어머니의 가슴에 그냥 칼질을 했다.

《엄마, 감옥소에서는 쇠몽둥이로 사람의 머리를 막 때린대.》

《밥은 애기주먹만한걸 준대.》

《엄마, 아버지가 아직 살아계실가?》

박복덕은 여러차례 혁명조직에 제기해서 오늘에야 이곳에 이른것이다.

이마가 벗어진 최춘도는 눈을 가느스름히 하고 어둑해진 뙤창밖을 내다보았다. 소원대로 여기서 싸우게 해야 한다.

피뜩 생각나는것이 있어 물음을 던졌다.

《아주머니, 음식솜씨가 있소?》

너무나 뜻밖의 물음이여서 박복덕은 얼떠름해지며 대꾸했다.

《촌녀자가 뭘… 처녀때 객주집에서 3년 드난살이를 한적은 있지만.》

최춘도의 눈에서 광채가 일고 낯이 환히 밝아졌다.

그는 아동단병실이 거의 지어진터라 거기에서 일할 식모감을 고르고있었다. 그런데 일이 되느라 객주집에서 음식솜씨를 익힌 귀인이 훌쩍 나타난것이 아닌가.

그는 만족한 웃음을 한껏 지었다.

《아주머니, 됐수다. 아동단병실에 가서 식모로 일하시우. 녀인에게 총을 맡길수야 없지 않소?》

만나자바람으로 알맞춤한 일자리를 얻게 되자 박복덕은 더없이 기뻤다.

옆에 딱 붙어앉았던 란희도 방긋방긋 웃음을 지었다. 여기 와서도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잠도 함께 잘수 있었기때문이다.

그는 엄마를 따라오며 근거지에 가면 엄마와 자기는 헤여져야 하리라 생각했었다. 자기는 아동단학교에 들어가야 하고 엄마는 딴일을 하게 될테니까.

그는 아동단학교에 들어가면 집단생활을 한다는것도 귀결에 들었다.

워낙 성격이 밝은 란희는 온 얼굴에 웃음을 채웠다.

회장은 말에 그루를 박았다.

《어련할테지만 거기 가면 애들을 친자식처럼 여겨주오. 애들은 스물댓명 돼. 그런데 모두 부모잃은 애들이란 말이요. 불쌍한 애들이지. 그저 그애들이 다 란희라 생각하고 돌봐주오.》

박복덕은 대답이 없었다.

그의 얼굴에 서서히 그늘이 덮였다. 한동안 바재이던 그는 기여드는 소리로 대답했다.

《저는 그 일을 못하겠습니다.》

《왜?》

최춘도는 끔쩍 놀랐다. 식모로 가랄 때부터 무척 좋아하던 녀자가 갑자기 홱 돌아서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란희도 의문이 실린 눈을 엄마한테 곧추 들었다.

《엄마, 왜 그러나? 난 막 좋은데.》

그의 눈에 이런 말이 비꼈다.

박복덕은 입술을 감빨더니 왕청같은 소리를 했다.

《저한테야 딸이 있지 않습니까?》

최춘도도 란희도 일시에 놀랐다.

(이건 무슨 말인가?)

최춘도는 이런 생각을 했지만 란희는 대들듯 야무진 소리를 질렀다.

《엄마, 딸이 있으면 안된대? 누가 그래?》

《누가 그런게 아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거지.》

란희의 머루알같은 눈이 포도알만큼 커졌다.

최춘도는 입맛을 다셨다.

(이 녀자가 보통 까다롭지 않겠군.)

그런데 복덕의 다음말은 최춘도를 놀라게 했다.

《모두 부모없는 애들이라 했지요? 거기에 딸가진 식모가 나타나면 어떻겠어요? 모두 우리를 부러워할게구 잃은 부모생각을 다시 하게 될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식모가 자기 딸한테 특별히 굴가봐 눈치를 살피게 될게구요.》

최춘도는 머리를 가벼이 끄덕였다. 듣고보니 일리가 있었다.

란희도 눈물이 그렁해졌다.

그러나 엄마곁을 떠나고싶지 않은 란희였다.

박복덕은 생각에 잠겼다가 머리를 들었다.

《회장동지, 제가 거기에 가긴 하겠습니다. 애들이 불쌍해서도 가고싶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박복덕의 눈에 간절한 빛이 실렸다.

《우리가 모녀간이란걸 절대비밀에 붙여주십시오. 그래야 마음 편하게 일할수 있습니다. 우리 모녀는 거기 가서 모녀간이라는 내색을 일체 보이지 않겠습니다. 란희야, 그렇게 할수 있지?》

박복덕은 딸에게 정찬 눈길을 보냈다. 눈망울에 물기가 넘쳤다.

란희는 엄마의 가슴팍에 얼굴을 푹 박았다. 저도모르게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그러니 이젠 그렇게 살아야 하나?)

이어지는 어머니의 말은 간곡했다.

《란희야, 너는 하루도 아버지생각을 안한 때가 없지 않니. 아버지가 매맞는것 같아 몸을 흠칫 떨구. 우리가 어떤 마음을 먹고 이리로 온 길이냐? 아버지가 이 일을 알면 어떨것 같니? 부모없는 애들앞에 우린 모녀간이야 하고 나서라 할것 같니? 불쌍한 너희 동무들한테 칼질을 하면 큰 죄가 돼.》

현란희는 엄마의 말대로 하겠다고 하는지, 싫다고 하는지 말은 없이 줄기지어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씻기만 했다.

최춘도는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정말 쉽지 않은 녀인을 만났군. 애들이 복을 탔어.)

최춘도는 그날밤 박복덕이네 모녀를 자기 뚝막에서 자게 했다. 터져나가게 사람들이 모인 마을에 그들을 재울 자리가 없었던것이다.

회장은 문밖으로 나서며 사람좋은 웃음을 지었다.

《오늘밤 모녀간에 함께 자라구. 래일부터 남남으로 처신해야 할테니까. 나는 유격대병실에 가 자겠소.》

모녀는 캄캄한 방에 나란히 누웠다. 누구도 말이 없었다.

란희는 명치끝에서 뜨거운것이 치받쳐오름을 느끼며 눈앞에 아버지를 그렸다.

《아버지, 엄마가 나보고 남남처럼 지내야 한다고 해요.》

피골이 상접하고 피투성이 얼굴인 아버지는 깊은 정을 싣고 이렇게 대답하는듯싶었다.

《란희야, 꼭 그렇게 해야 한다.》

란희는 줄줄이 내리는 눈물이 눈귀를 타고 흘러내려 베개를 적심을 느꼈다. 조금후에 란희는 엄마쪽으로 몸을 돌리며 목이 꽉 메여 말했다.

《엄마, 이제부터 엄마라 안부를게. 아지미라 할래.》

박복덕은 까딱않고 누워있었다. 눈물이 눈지방에 넘치게 차올랐다.

《엄마, 마지막으로 나를 안아줘. 힘껏 안아줘.》

《란희야!》

박복덕은 홱 돌아누우며 울음을 터쳤다. 그러면서 딸을 꼭 부둥켜안았다. 란희도 힘껏 마주 안겨들었다. 불같은 두 몸이 순간에 하나로 녹아붙는듯싶었다.

모녀는 약속했다.

란희는 고향도, 아버지가 형무소에 갇혀있는것도 곧이곧대로 말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태평구에서 농사지었으며 부녀회생활을 하다가 근거지로 들어온것으로…

어린 란희가 딴말을 꾸미려다가 자꾸 헛말을 해 사람들의 의심을 살수 있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천연스레 말을 그럴듯이 꾸밀수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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