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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회


제1장 상처입은 사나이


5


《김창호돌격장이 어떻게 됐다구?》

너무도 놀라운 소식에 분격을 터뜨리는 김정환에게 리진룡이 침통한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얼마전 배천군 궁국리에서 김창호가 이끈 평산의병대가 왜놈수비대와 조우하였다. 이날 장시간에 걸치는 전투에서 김창호와 의병들은 왜놈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하지만 이날 전투에서 적지 않은 의병들이 희생되고 김창호는 심한 부상을 입게 되였다.

김창호는 남은 의병들을 이끌고 도평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기동하던중 또다시 왜놈들과 맞다들게 되였다. 이 전투에서 김창호는 심한 부상을 당한 상태였지만 불사신처럼 의병들을 이끌었다. 결과 많은 왜놈들을 살상하였지만 김창호는 이 전투에서 희생되고말았던것이다. …

김정환은 억이 막혀 무엇이라 말을 할수가 없었다.

그처럼 용맹하였던 돌격장 김창호가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그는 선뜻 믿을수가 없었다. 평산군 적암면 향정리의 빈농출신인 김창호는 평산의병대에서 가장 용맹한 싸움군이였다. 그 언제나 의병들의 앞장에서 왜놈들을 족치던 김창호의 모습이 눈에 삼삼 떠올라 김정환의 눈에서는 저도 모르게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방안에 들어앉은 의병들과 마을사람들모두가 돌격장 김창호의 죽음을 두고 침통해하였다.

한동안이나 무거운 정적만이 흘렀다.

잠시후 그 정적을 조용히 깨뜨리며 리진룡의 목소리가 울렸다.

《김창호돌격장의 복수전은 하였네. 평산의병대가 모두 모여 배천일대에서 왜놈들을 되게 답새겼네. 그리고 수작골에 들어가 평산의병대를 다시 정비하였네.》

리진룡의 말에 김정환은 벌겋게 달아오른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 평산의병대가 의연히 건재하고있다는거요?》

그러는 김정환을 바라보며 지금껏 김정환을 어떻게 위로하면 좋을지 몰라 머리를 수그리고 말 한마디 없던 한정만이가 입을 열었다.

《그렇네. 이번에 우리는 리진룡어른을 대장으로 선출했네.》

그의 말을 들은 김정환은 리진룡을 바라보았다.

김정환과 아래웃마을에 산 리진룡은 그와 같은 해에 태여난 동갑이로서 도성제에 있는 산두재(서당)에 다니며 천자문을 함께 배운 사이였다.

아근의 땅을 거머쥔 맹부자네 집에서 몇마지기의 뙈기땅을 얻어부치는 아버지가 맏아들은 조선군대에 보내고 가뜩이나 늦게 본 맏이가 열다섯살 나던 해에 다시본 둘째아들 김정환이만은 식자를 익혀주려고 산두재에 보내였던것이다.

리진룡은 개화파의 영향하에 있던 아버지의 엄한 훈계를 받아서인지 가난뱅이집아이들이 휩쓸려놀자고 접어만 들어도 팩하는 부자집자식들과는 달랐다.

김정환이 서당에 다니던 시절에는 이미 시골량반이 하늘소를 타고 지나가더라도 길가던 베잠뱅이들이 땅바닥에 코를 박던 세월이 아니였다.

량반이라는 말자체가 맥빠지고 우스워진 세월이였다.

혁신관리들의 갑오개혁으로 하여 량반과 상놈간의 하늘땅같던 반상의 구별이 맥을 잃었다.

대신에 부자와 가난뱅이간의 격차가 다시 하늘땅같은 차이를 낳았다.

대대로 량반의 지체를 지녔던 사람일지라도 땅과 재산이 없으면 부자집 종노릇을 해야 할 형편이였다.

하지만 리진룡은 작다고 할수 없는 땅마지기와 과수원을 가지고있는 부자집 도련님으로서 맹부자의 아들 영달이와 같은 불량배와는 곁자리에 앉아도 말 한마디 받아주는적이 없었지만 바로 그 맹부자네 땅을 얻어부치고 살아가는 가난한 농사군의 자식인 김정환이와는 동갑이라고 제편에서 너나들이로 지내자며 머리받개질도 거리낌없이 해대군 하였다. 나이가 들어서도 김정환을 대하는 리진룡의 태도는 여전했다. 그때부터 김정환에게는 리진룡이가 류다른 사람으로 보였었다.

덕이 있고 뜻이 있으면 따를만 한 사람인것이다.

김정환의 눈에 비낀 리진룡은 필경 덕이 있고 뜻이 있는 인물이였다.

바로 그러한 김정환이였기에 리진룡이 의병장으로 선출되였다는 소리에 가슴속에 응어리처럼 맺혀있는 김창호의 죽음에 대한 울분을 짓누르며 리진룡의 손을 꼭 잡았다.

《참, 잘되였소이다. 이젠 마음이 놓입니다.》

리진룡이 김정환의 손을 마주잡았다.

《많이 도와주게나.》

방안이 터져나갈듯 빽빽이 둘러앉아 김창호의 죽음을 두고 함께 슬퍼하던 마을사람들이 평산의병대가 다시 정비되였다는 희한한 소리에 가슴들이 달아올라 말참녜를 하였다.

《저 의병장어른, 우리에게도 의병대일을 좀 자상히 알려주시우다.》

마을사람들의 청을 받고 리진룡은 곁에서 덤덤히 앉아있는 한정만에게 눈길을 보냈다.

리진룡의 눈길을 받은 한정만은 잠시 머뭇거렸다.

비밀에 관한 이야기들을 함부로 발설하면 안된다는 의병준칙이 있는지라 의병장의 의도에 어긋나지 않도록 어떻게 이야기를 해주겠는지 잘 가늠이 가지 않았던것이다.

그러는 그에게 리진룡은 다시금 눈길을 보내며 머리를 끄덕여주었다. 거기에는 이 돌망골도 의병들의 중요거점으로 되여야 하는것만큼 일정한 범위내에서는 이야기해주어도 무방하다는 암시가 담겨져있었다.

그의 뜻을 간파한 한정만은 마을사람들을 둘러보며 침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평산의병대의 돌격장이였던 김창호의 복수전으로 전투를 하고난 의병대는 수작골에서 회합을 가지였다.

여기서는 의병장이였던 박정빈이 도피한 이후 지금껏 비여있던 의병장으로 리진룡을 선출하였다.

이와 함께 의병대오도 다시 정비하였다.

평산의병대를 다음과 같이 구성하였다.

의병대의 지휘체계는 총무와 참모가 있으며 대오는 유군과 중군, 돌격대로 나누었다.

총무밑에 소모장을 두며 유군과 중군에는 각각 중대를 둔다. 돌격대에 소대를 둘것이며 중대밑에는 2개 소대, 소대밑에는 2개 분대, 분대는 2개 조로 구성한다.

이로써 평산의병대는 진위대군사조직과 류사한 조직체계가 갖추어지게 되였다.

또한 의병지휘성원들을 선정하였다.

일제의 조선군대강제해산때 한성의 군인으로서 한성폭동에 합류하여 서소문보루를 돌파하기 위한 전투에 참가하여 여섯놈의 일본놈을 살상한적이 있는 한정만(평산 세곡면 광평사람)과 농민출신 최순지, 한성에서 시위대병정으로 있다가 조선군대해산후 의병에 참가한 평산군 세곡면 광평사람 신군선, 평산 돌막골사람인 한량출신(평민으로서 아직 무관에 급제하지 못하였던 사람)인 신모정 그리고 김정환을 지휘성원으로 선출하였다.

이로 하여 평산의병대는 지난날의 틀을 깨버리고 다시 새로운 지휘체계를 가지고 무어지게 되였다. …

한정만은 여기에서 잠시 이야기를 끊었다.

사실 그들은 이번에 새롭게 정비한 대오를 네개로 나누고 활동범위를 규정하였지만 그에 대해서는 의병대비밀에 속한것이므로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되였던것이다.

한정만이 발설하지 못한 내용을 보면 리진룡의 지휘처가 있는 한개 대오는 참모로 선출된 최순지가 이끌되 세곡면과 고지면, 적암면에서 활동하며 한정만을 중군장으로 하는 한개 대오는 신암면과 린산면, 상월면과 문무면을 활동지역으로 한다. 또한 신모정을 돌격장으로 한 한개의 대오가 장연지방을 장악하며 김정환을 유격장으로 하는 대오는 서흥지방의 전 지역을 활동거점으로 한다는 등의 내용이였다.

한정만이 말을 끊자 리진룡은 솔매네 집에 모인 마을사람들에게 평산의병대의 유격장인 김정환이 서흥일대에서 활동을 하게 된다는 내용을 공개해주었다.

아무래도 김정환의 유군이 여기에서 얼마 멀지 않은 바리산일대에 거점을 정해야 하는것만큼 그것은 비밀이 아니였기때문이다.

마을사람들은 모두가 환성을 질렀다.

김정환이 자기네 마을을 포함한 서흥일대를 활동지역으로 한 평산의병대의 한 대오를 거느린다는 말에 마을사람들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마을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하필이면 여기서 얼마간 떨어진 바리산에 자리잡을것이 뭐냐고 했다. 돌망골에 거점을 잡으면 마을사람들의 집들도 그대로 의병들의 거처로 리용할수 있고 또 마을사람들이 의병들의 잡일들까지 돕기도 헐할테니 좀 좋겠느냐는것이다.

마을사람들이 그렇게 나서자 리진룡이 김정환의 의향을 묻는듯 한 눈길을 보냈다.

김정환은 그러는 마을사람들에게 의병대가 바리산에 들어가야 하는 조건들을 이야기해주었다. 우선 바리산이 왜놈들이 자주 싸돌아다니는 길목과도 가까와 의병활동에 편리하다. 다음 돌망골은 눈에 잘 뜨이지 않은 곳에 있고 또 입구쪽에 좁은 골짜기를 외통길로 두고있어 의병들의 거점으로 되기에 더없이 좋을듯 하나 한가지 큰 결함이 있다. 그것은 돌망골이 가파로운 벼랑으로 둘러막혀있고 그 벼랑너머는 사람이 붙을수 없는 험한 낭떠러지로 되여있어 일단 왜놈들에게 발각되여 앞이 막히기만 하면 무서운 함정으로 된다.

김정환의 사리정연한 론거를 들은 사람들은 머리를 끄덕이며 매우 아쉬운 표정들을 지었다.

진중한 기색으로 김정환의 이야기를 듣고난 리진룡은 김정환의 유군이 이미 지정한대로 바리산에 거점을 정하는것으로 락착을 본 다음 의병대오를 정비할 때 발표한 군률에 대한 발포로 끝을 맺었다.

《우리는 이번에 평산의병대를 새롭게 정리하였다. 평산의병대에는 반상의 구별은 없으되 상하의 례의만 있을뿐이요, 삼강오륜은 각자가 지키되 군률은 엄하게 따지며 백성은 절대로 해하지 않으되 왜놈들은 무자비하게 족쳐버릴것이로다.》

마을사람들이 너도나도 두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나도 의병대에 들겠수다.》

《나도 왜놈들과 싸우겠소.》

그중 성수가 나서 떠들어대던 장서방이 옆에 앉은 솔매의 부친인 달범을 툭 건드렸다.

《아니, 사돈은 의병에 안 들겠소?》

장서방의 말에 달범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넨장, 자꾸 사돈, 사돈하지 말게. 난 의병에 안 들겠다는게 아니라 총이 있어야 쌈을 하겠기에 생각하는중이야.》

달범의 퉁을 맞은 장서방이 그 심정을 알만 하다는듯 머리를 끄덕이다가 봉대에게 눈길을 돌렸다.

《이보게 총각, 내가 의병이 되면 총 한자루 주겠나?》

웬 일인지 쓴입을 쩝쩝 다시던 봉대가 대뜸 눈을 흘겼다.

《총이 탐나면 왜놈에게서 뺏들어보구려. 남들은 목숨을 내대구 총을 구해들이는데 아래목에 엉치를 붙이고 앉아서 입만 벌리면 하늘에서 공짜로 뚝 떨어진대요? 그렇게 못하겠으면 야장간을 차리고 만들어보던가. …》

봉대의 퉁명스런 행동에 여느 사람이라면 손털고 물러나 앉았으련만 장서방은 그런것에는 개의치 않는다는듯 지싯지싯 그냥 달라붙었다.

《이보게 총각, 난 이 도끼면 얼마든지 싸움을 치를수 있겠는데 우리 사돈님은 나처럼 도끼쓰는 재간도 없으니 아예 맨손일세. 그러니 이 령감, 아니아니 우리 사돈님한테 선심을 좀 쓰게나, 응?》

《흥, 의병대가 뭐 집안끼리 싸고도는덴줄 알아요? 사돈, 사돈하면서…》

봉대가 더 말시키지 말라는듯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문밖으로 힝하니 사라져버렸다.

장서방이 의아해서 그가 사라지는쪽을 바라보다가 뒤시비를 걸었다.

《아니, 저녀석은 금방까지만도 솔매 아범이 대통을 물기 바쁘게 부시까지 때려 섬겨바치며 노죽을 부리길래 꽤나 곰살스런 녀석이로구나 하고 속으로 은근히 칭찬까지 했댔는데 왜 갑자기 저녁굶은 시에미상을 해가지고 저래?》

달범도 미간을 찌프린채 도리머리질을 했다. 자기의 외동딸인 솔매가 칼 하나를 사이에 두고 힘내기한 쓸개빠진 녀석이 바로 저기 봉대라는 총각놈인지라 눈에 곱게 뵐리 만무했던것이다. 더구나 왜놈들과 싸우겠다고 의병에 들어왔으면 싸움에 전심해야지 녀인들의 치마저고리를 목덜미에 걸고 창피한줄 모르고 돌아치는 녀석이라는 생각으로 달범에게는 기봉대가 사람질할 놈같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달범은 기봉대가 사라진 문쪽을 한번 힐끔 쳐다보고는 쓰거운 표정으로 돌아앉고말았다.

잠시 어성버성해진 분위기를 돌리며 리진룡이 말했다.

《총은 현재 의병들속에서도 많이 모자라는 상황이라 아무래도 왜놈들을 기습하여 빼앗든가 아니면 모연운동을 하여 장만하여야 하겠소이다.》

곁에서 잠시 생각을 굴리던 두남이가 한무릎 나앉았다.

《차라리 이번 걸음에 여기서 멀지 않은 왜놈들의 평산지구 수비대산하 서흥제비여울병참을 답새기는게 어떻습니까? 거기에는 신식총과 탄약을 비롯한 군수물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던데…》

그의 제의에 리진룡은 묻는듯 한 시선을 김정환에게 던졌다.

서흥제비여울수비대에 대해서는 그곳에 주둔한 왜놈들과 여러번이나 싸움을 한적이 있는 김정환이가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김정환은 한동안이나 덤덤히 생각에 잠겨있다가 입을 열었다.

《내 생각에는 그곳 수비대를 지금은 그냥 두는게 좋을듯 합니다. 그곳에 군수물자들이 더러 있는것은 적실하지만 토끼도 제 굴앞의 풀은 뜯지 않는다지 않습니까. 내가 알기에는 그곳 병참을 책임진 시나지로라는 중위놈이 겁이 몹시 많은자여서 모든 일을 조심스럽게 하고있습니다. 그놈을 없애버리고 이제 다른 놈이 오면 시끄러운 일이 생길수 있으니 당분간은 그냥 두는게 상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머리를 끄덕이였다.

리진룡이도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옳소. 지금 왜놈들이 나라의 방방곡곡에서 온갖 악행을 다하고있는지라 우리의 활동지역이 제한되여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코앞의 적을 잘 알고 리용할줄 알아야 하는거요. 지금 왜놈들은 우리 나라를 통채로 먹어보려고 신식무장을 갖춘 군대를 물밀듯이 들이밀었고 리완용이나 송병준이와 같은 역신들을 내세워 온 나라를 제놈들의 노예로 만들려고 꾀하고있는것이요.》

리진룡은 왜놈들이 우리 나라에서 저지르고있는 온갖 만행과 동서고금에 류례를 찾아볼수 없는 극악무도하고 파렴치한 악랄성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리진룡의 사리정연하고 알기 쉬운 이야기에 사람들은 머리를 끄덕이며 하나같이 치를 떨었다.

《쌍 죽일놈의 새끼들.》

《그런데 리완용이나 송병준이와 같은 놈들은 일국의 정승이 되였으면 잘 먹고 잘 입고 풍청거리겠는데 어째서 그리두 성수가 나서 왜놈들과 짝자꿍이를 한답디까?》

《그건 바로 그놈들이 민족이야 어찌되든말든 오직 개인의 부귀영달만을 추구하고있는 가장 비렬하고 추악스런자들이기때문입니다.》

리진룡은 계속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예로부터 역적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옛날의 역적들이 욕망한것은 바로 나라와 백성을 얻자는것이였다. 허지만 지금의 《을사5적》과 《정미7적》과 같은 역적들은 나라를 빼앗아 원쑤에게 넘겨주어서 나라를 멸망하게 하고 백성들모두의 숨통을 끊어버리게 하는 고금에 없는 역적중의 역적이다. 그런 천하의 역적들이 이 나라 정기를 마시며 뻐젓이 살아있다는것은 민족의 수치이며 백성들의 수치가 아닐수 없다. 그러니 이 나라 백성이라면 누구나 떨쳐일어나 하다못해 몽둥이라도 들고 왜놈들과 역적놈들을 쳐없애야 한다.

사람들모두가 주먹을 불끈 쳐들고 그에 호응해나섰다.

《죽일놈의 새끼들, 단 대여섯놈이 나라를 팔아 제 배를 불리운단 말이요? 그놈들을 그저…》

《그깐 놈들은 그저 민족이 달라붙어 몽둥이로 두들겨 너덜너덜 넝마쪼박지로 만들어도 씨원치 않을 놈들이요. 그런 대역죄를 짓고도 목구멍으로 밥알을 넘기는것이 이상스럽수다.》

리진룡이 그들의 가슴에 불을 달았다.

《지금 왜놈들은 일진회를 조작하여 리용구와 같은 너절한 인간 추물들을 두목으로 내세워 나라의 곳곳에 일진회 지회들을 만들어놓게 하고 저들의 앞잡이로 리용하고있소. 바로 그 일진회무리들도 첫손가락에 꼽아야 할 나라의 역적들이며 민족이 절대로 용서할수 없는, 용서해서는 안되는 추악한 짐승의 무리들이요.》

박서방이 주먹으로 방바닥을 쾅 때리며 한무릎 나앉았다.

《옳수다. 바로 평산에도 맹영달이라는 놈을 우두머리로 하는 일진회가 조직되였다우다.》

《그놈은 대체 어떤 놈이유?》

《나도 모르지요. 그저 장거리에 나갔다가 그곳 사람들이 눈먼 욕하는 소릴 들었을뿐이우다. 헌데 그놈이 왜놈의 사타구니에 붙어 왜놈종자들만큼이나 영악스럽게 사람들을 해치지 못해 감질을 앓는다질 않소.》

《그런 놈을 의병대가 있으면서 왜 여직 가만뒀수? 조선사람망신을 시키지 못하게 아예 숨통을 끊어놓을노릇이지 쯧쯧…》

사람들이 겨끔내기로 분을 터쳤다.

한켠에서 오가는 말을 묵묵히 듣고있던 김정환의 두눈도 금시 시퍼런 불줄기가 뿜어져나올듯 번뜩거렸다.

처음 맹영달이라는 이름이 귀전에 울려오는 순간부터 그의 온몸으로는 이루 말할수 없는 격분이 무섭게 끓어오르고있었다.

맹영달, 자기의 가문과 피맺힌 원한으로 얽히여진 그 이름이 지금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있는것이다.

김정환이 산두재에 다닐 때의 일이였다.

어느날 그는 산두재 뒤쪽 으슥진 곳에서 리진룡과 옥신각신하는 맹영달이를 보게 되였다.

가만히 듣노라니 그 맹영달이의 수작질이 김정환을 격분케 하였다.

나이가 산두재 문하생들중에서 제일 우인것으로 하여 거드름을 피우던 맹영달이가 언제나 단정한 몸가짐을 하고 다니는 리진룡의 멱살을 틀어쥐고 줴치는 소리가 들려왔던것이다.

《다시한번 내 집 땅을 부쳐먹고 살아가는 가난뱅이 정환이와 휩쓸리면 이발을 뽑아버리겠다. 알겠어?》

리진룡은 너무도 어이가 없어 자기의 목덜미를 틀어잡은 맹영달의 손을 뿌리쳐버리려고 모지름을 쓰며 맞받아 소리쳤다.

《네가 무슨 상관이야. 난 정환이와 친구야. 너 같은 부랑배와는 상종을 안한다.》

《뭐야?》

맹영달의 주먹이 쳐들리였다.

그 주먹이 부릅뜬 눈으로 쏘아보는 리진룡의 얼굴에 닿으려는 순간 김정환이 살같이 달려들어 이마로 맹영달이의 상통을 받아버렸다.

이발 넉대가 단번에 쏟아져나왔다.

김정환이와 리진룡은 상판을 싸쥐고 땅바닥에 엎어진 맹영달이를 실컷 두들겨패주었다.

바로 그 일이 김정환의 집안에 화근을 몰아왔다.

맹부자놈이 아들의 분풀이를 한다며 아버지가 피눈물나게 일군 땅을 빼앗고나서 김정환을 자기 집 머슴으로 끌어가려고 하였던것이다.

자기가 맹영달이네 집 머슴으로 되여야 한다는 생각보다도 자기때문에 집안에 화가 미쳤다는 자책으로 정환은 아버지앞에서 머리를 들지 못했다.

그런 김정환을 아버지는 무섭게 질책했다.

《사내녀석이 그쯤한 배심도 없이 어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수있단 말이냐? 눈물을 거두어라. 백성도 사람이거늘 백성들을 천대한 그런 놈을 두들겨팬건 장한 일이다. 앞으로도 자기를 짓밟는 놈은 절대로 용서치 말거라. 그런 일을 당하고도 참는다면 그건 사내가 아니다.》

아버지는 모진 마음을 먹었다. 김정환에게 가보로 내려오던 대검을 들려가지고 그길로 정처없는 길을 떠나보냈다. 김정환이 어릴 때 조선군대에 나갔던 형님이 임오군인폭동에 참가했다가 잘못된 이후 그는 부모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희망이며 의지였다. 그래서 소작살이를 하면서도 서당에까지 보내였던 아들이 남의 집 머슴을 살게 내버려둘수는 없었던것이다. 김정환은 아버지가 안겨준 대검을 등에 지고 부모의 슬하를 떠났다.

바로 그 일로 하여 부모들은 더 큰 화를 당하게 되였다.

집을 빼앗기고 어느 외진 산골짜기에 있는 산당집에서 굶어죽기만을 기다려야 했던 아버지와 어머니… 아마도 귀인들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때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였을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 은인들의 덕으로 한해후에 아들 김정환이를 만나게 되였고 삼년을 더 살다가 그때 심한 기아에 시달렸던 후과로 한달을 사이로 세상을 떠났다. …

김정환의 가슴속에 타오르는 맹영달이에 대한 증오가 어떤것인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 리진룡이 그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의 눈길도 김정환에게 쏠려있었다. 자기의 거치른 숨결소리가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는것을 비로소 느낀 정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잠간 바람을 쏘이고 들어오겠소이다.》

사람들의 사이를 지나 문을 열고 토방으로 나가는 김정환의 뒤모습을 바라보던 리진룡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조용히 이야기했다.

《그럼 맹영달이가 어떤 놈인지 내가 말해주겠소.》

리진룡이 사람들을 둘러보며 이야기했다.

맹영달로 말하면 평산일대에서 제일 많은 전답을 가지고 농민들의 피땀을 짜내는 부자놈의 자식으로서 돈과 재물에 환장을 하여 전봉준의 동학란때부터 일본놈들과 인연을 맺은자이다.

일본상품에 게걸든 영달은 왜나라 물건이라면 제 녀편네라도 섬겨바치고 구해들이지 못해 몸살을 앓고 일본음식이라면 시큼털털한 초밥도 보쌈김치를 곁들인 조찰떡처럼 감미롭게 먹을줄 아는 친일매국역적으로 변태되였다.

바로 이런 놈이 평산일대에 일진회의 한개 지회를 조직하고 일본놈들의 앞잡이가 되여 의병들의 행방을 내탐하고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서 일본놈들에게 섬겨바치는것과 같은 역적질을 서슴없이 감행하고있었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주먹을 휘저으며 윽윽했다.

《우선 그놈의 새끼부터 붙잡아다 몽둥이로 때려죽여야 하우다.》

《당장 달려가서 그놈의 씨종자까지 깨끗이 말리우고 옵시다.》

리진룡은 돌망골사람들의 열의가 대단한데 만족하여 한동안 감개무량한 눈빛으로 방안을 둘러보다가 말했다.

《맹영달이와 같은 민족의 반역자들은 반드시 가장 비참한 죽음을 면할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나라의 가장 큰 원쑤는 일본놈들과 나라의 대신자리에 틀고앉은 큰 역적들입니다. 맹영달이와 같은 놈들은 그런 놈들에 비해볼 때 잔심부름군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우선 왜놈들과 싸워야 하며 한성에 틀고앉은 역적우두머리놈들을 없애버려야 합니다. 그러한 싸움에는 조선사람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두팔걷고 떨쳐나서야 합니다.》

돌망골사람들은 하나같이 주먹을 부르쥐고 의병대에 뛰여들겠노라고 불같은 맹약을 다짐해나섰다. 방안에서는 그야말로 금시 화약내라도 물씬물씬 풍길듯싶었다.

리진룡은 그들이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잠시후 사람들의 기대어린 눈빛이 그에게로 향하자 리진룡은 한층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에 모인분들이 모두 의병대에 들겠다니 싸울수 있는분들은 모두 받도록 하겠소이다. 그렇지만 나이가 많으신분들은 너무 섭섭타 마시고 의병일을 성심껏 도와주면 의병이 된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오이다.》

나이가 많은 축들이 섭섭한 기색을 짓는듯싶더니 의병장의 마지막말에 힘들을 얻은듯 다시 활기를 띠였다.

《그럼 의병일에서 우리를 따돌리지는 않겠지요?》

《나이가 많은게 원쑤가 되여 왜놈과의 싸움질에는 나서지 못한다구 해두 의병일에 이모저모 도움은 될거우다.》

그들을 차례로 둘러보고난 리진룡은 이들의 의사를 외면하면 안되겠다는 자각이 생긴듯 호랑이발통이 매여달린 지휘기를 꺼내들며 마디마디 힘주어 말했다.

《그럼 바로 이 자리에서 의병장으로서 첫 령을 내리겠소이다. 우리는 곧 평산으로부터 서흥일대에 사람들을 파해서 왜놈들의 움직임을 탐지하여 큰 싸움을 벌려야겠습니다. 그러니 마을에서 서흥과 평산으로 향하는 지름길들을 잘 아는 사람을 한사람 선정하여주십시오.》

홍로인이 누구를 지명하기도 전에 장서방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로써 길잡이가 선정되자 리진룡은 바리산에 눌러앉혀놓고 온 의병대원들중 날파람있는 사람들을 스무명정도 불러들여 한정만이가 이끌고 서흥과 봉산지경에까지 나가 왜놈들의 움직임을 내탐하고 돌아오도록 령을 내렸다.

그러면서 리진룡은 이런 말을 하였다.

《며칠전에 일진회 회장 리용구놈이 평안도일대로 나갔다는 소리가 있는데 확실한지는 모르겠소. 가능하면 이번에 그놈의 행방을 탐지하여 여기로 지날 때 처단해버리면 민족을 위해 다행스러운 일로 될것이요.》

한정만이 머리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놈이 언제 여길 지나겠는지 어떻게 알수 있는 방도가 없겠소이까?》

《글쎄, 워낙 명을 끔찍이 위하는 놈이라 아마 도적고양이처럼 움직일것이니 그걸 알아내기가 조련치 않소. 그러니 이번 길에 우선 그걸 잘 살피도록 하오.》

《알겠소이다.》

토방돌에 앉아 방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김정환은 속이 상했다.

이런 일은 의례히 자기가 나서야 하는것으로 생각했던 그였다. 더우기 서흥일대는 자기가 맡게 되여있는 곳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한 부상을 입은 몸이니 의병대가 새로운 지휘체계를 갖춘 후 처음 있게 되는 행동에서 제외되고있는것이다.

김정환은 몸을 일으켜 마당가로 내려섰다. 그냥 앉아만 있자니 속에서 꿈틀거리는 조바심을 억제하기가 힘겨웠던것이다.

그는 또다시 띠끔거리는 상처자리를 만져보며 한숨을 푸 내쉬였다.

그러던 그의 눈에 집 옆모퉁이에서 되는대로 앉아있는 기봉대가 뜨이였다.

좀전에 그가 까닭없이 역증을 내며 문밖으로 나간 생각이 났다.

(저녀석은 개열을 씹었나? 무슨 인상이 저래?)

김정환이 그리로 다가갔다.

《넌 왜 꾸어온 보리짝처럼 거기에 앉아있느냐?》

봉대는 대척도 안했다. 김정환이 그에게 바투 다가가 궁둥이를 툭 걷어찼다.

《말을 해야 알지.》

그제야 봉대는 볼부은 소리를 냈다.

《허 참, 단단히 속았지요. 내 참 어처구니가 없어서…》

앞뒤도 없는 봉대의 말에 김정환은 영문을 알수가 없었다.

《속다니? 누구에게 속는단 말이냐?》

《아, 제가 뭐 체네나 된다구 머리를 치렁치렁 땋아늘이구… 내인이 너무도 암팡스러워 이상하다구 생각했더니 아닌게 아니라 벌써 성례를 치른 녀자이니 그랬지 뭐요. 내 정말 어처구니없어서…》

《누가?》

《이 집 딸 있지 않아요. 그 솔매라는… 아까 그 아주마이때문에 내 궁둥이가 깨여질번 했단 말이요.》

김정환은 더욱 의아해났다.

《솔매가 아주머니? 그애가 출가를 했다구?… 금시초문이다.》

봉대가 코방귀를 뀌였다.

《이자 못 봤어요? 그 장서방인지 뭔지 하는 피뽑은 염소처럼 생긴 령감쟁이가 솔매 부친에게 사돈이라고 부르지 않습디까.》

김정환이 봉대를 이상스럽게 바라보았다.

《솔매가 출가를 했다치더래두 네가 그리 분격할게 뭐냐?… 사람을 염소에 비기면서 말이다.》

봉대는 갑자기 뚝 굳어졌다.

《아니 그거야…》

김정환은 빙그레 웃었다.

게면쩍어진 봉대도 어이없는 웃음을 짓고 입만 쩝쩝 다셨다.

《됐다. 그건 그렇고 일진회의 영달이놈이 지금 무슨짓을 하고있는지 그거나 아는껏 얘기해봐라.》


× ×


서흥제비여울수비대 뒤마당에서는 평산지구 일진회두목인 맹영달이가 방금 돌망골에서 네발걸음으로 달음박질쳐온 심복들의 보고를 들으며 불난 강변의 덴 소 날뛰듯 하고있었다.

제앞에 꿇어앉은 두 졸개들의 피멍진 상통을 노려보느라니 당장 목도채를 휘둘러 개패듯 두들겨패면 속이 후련할것 같았다.

영달은 앞이가 뭉텅 빠져 말소리가 새여나왔지만 씹어뱉듯 따졌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나직하지만 소름이 끼치게 야멸찬 그 물음에 계부길이가 머리를 조아리며 죽어가는 소리를 냈다.

《우린… 여러날 고생끝에 이곳에서 수십리나 떨어진 바리산주변에 있는 그 마을에 밴밴하게 생긴 계집애가 있는걸 알아냈소이다. 그래서 그년을 끌어오려고 했는데 갑자기 산귀신같은 놈이 나타나는 바람에 이렇게…》

영달은 그의 멱을 틀어잡았다.

《네놈들이 그 마을에서 송아지를 잡아먹었다는걸 왜 먼저 말 못해? 이 멍텅구리야, 낯도 코도 모를 화적에게 덩지가 물독 같은것들이 매나 맞고 다니는 주제에 송아지불고기가 그래 목구멍으로 슬렁슬렁 넘어가더냐? 네놈들을 먼저 보낸것이 그런 소동이나 피우라고 한줄 알았어? 송아지 잡아먹은 값으로 이마빡이 터지고 총까지 빼앗기구두 대가릴 쳐들고 내앞에 나타나?》

영달이는 계부길의 귀쌈을 너덧대나 연줄 갈겨주고나서 이번엔 간이 콩알만 해져서 눈치를 살피는 옥칠이의 멱줄을 틀어잡았다.

《이 자식아! 그래 묘지는 왜 파헤쳤어. 그따위 산골묘지에 주먹만 한 금덩이라도 있는줄 알았는가? 있으면 슬쩍해버릴테지? 네놈들이 그렇게 모조리 먼저 손을 쓰면 일진회의 운영자금은 어디서 나며 한성대감마님들께 올려보낼 진상품은 어디 가서 들춰내라는거냐?》

옥칠이도 여불없이 대여섯대의 귀뺨을 얻어맞고야 풀려나왔다.

영달은 그놈들을 노려보다가 엉덩이를 걷어차서 쫓아버렸다.

그러고도 직성이 풀리지 않아 연방 거친 숨을 톺아올렸다.

망신이로다. 이게 바루 일진회의 조락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기세등등하던 일진회가 이즈음에 들어와 숨소리도 변변히 내지 못하고있는 실태는 영달이에게 있어서 참을수 없는 분을 치받치게 했다.

이젠 일진회가 그런 심심오지에서까지 숨소리를 죽여가며 행동해야 한단 말인가.

영달은 속이 죽가마끓듯 와글거려 참을수가 없었다.

조선녀자라면 그가 유부녀이든 젖비린내나는 계집애이든 가리지 않고 게걸스러운 왜놈들에게 섬겨바칠 《제물》을 마련하느라 맹영달은 이렇게 생골을 앓아야 했던것이다. 점점 횡포해지는 왜놈들의 비위를 맞추자면 아까운 재물을 퍼내기보다는 녀자를 섬겨바치는것이 자기가 손해볼것도 없을뿐더러 큰 재물이상의 효과를 보게 했던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결코 헐한 일이 아니였다.

처음엔 그럭저럭 속이고 얼리고 으름장을 놓고 하여 얼마간의 낯내기를 했지만 이즈음에 와서는 어방도 없었다.

우선 일진회가 의병들과 백성들로부터 막다른 수세에 몰린데도 있지만 아무리 얼뜬한 가난뱅이라고 해도 왜놈이라면 그가 누구든 이발부터 부드득 갈려고 하는 백성들을 얼려내기가 통 어려웠던것이다. 더구나 왜놈에게 순순히 굽어드는 녀자는 보고 죽자고 해도 도무지 볼수가 없는지라 온갖 거짓말로 속여넘겨서 진상하는 《제물》마다 일도 치르기 전에 죽어버리던가 기를 쓰고 달아나 그야말로 무용지물로 되고말았던것이다.

하여 맹영달은 만만한 《제물》을 얻기 위해 세상과 동떨어진 깊고깊은 산골짜기들을 찾아헤매야 했다. 그런데 심심오지에서까지 매를 얻어맞고 쫓겨오는 신세에 이르고말았으니 어찌 가슴이 터져오지 않을수가 있겠는가?

거기다가 제비여울병참 수비대장 시나지로중위놈은 매일같이 성화였다.

밉게 생긴 계집이라도 하나 끌어오라고 성화를 먹이다 못해 그것을 실행하지 못하자 당장 잡아먹기라도 할듯 노상 화를 발칵발칵 내며 새로운 골치거리들을 련이어 만들어냈던것이다.

고려자기를 당장 앞에 가져다놔라, 의병들의 행방을 내탐해내라 등…

시나지로의 성화중에서 의병들의 행방을 내탐해내라는것이 제일 골치거리였다.

이 지방 의병들에 의하여 지난달에는 마탁골개울가에서 일본군 십여명이 녹아났고 또 그 전달에는 해주수비대에 틀고앉아 호랑이노릇을 하던 수십명의 신식무장을 갖춘 일본군이 황천객이 되였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평산일대는 물론이고 해주를 비롯한 황해도지역의 모든 불집은 평산의병대가 일으키는것인지라 백리밖의 그 불똥까지 영달이에게 튕겼던것이다.

그때문에 영달이는 시나지로의 뒤를 따라 지구수비대에까지 끌려가서 별의별 하대와 천대, 모욕을 다 받고 돌아왔다.

맹영달은 정말 억이 막혔다.

평산의병장이였던 박정빈이 도망해버렸다는 소식을 얻어듣고는 한시름을 놓았었지만 의연히 평산의병대는 존재할뿐만아니라 싸움을 멈추지 않고있었던것이다.

영달의 눈앞에는 리진룡과 김정환의 얼굴들이 뒤바뀌며 나타났다.

똑같이 적의가 번뜩이는 그 눈빛들에서 섬찍한 느낌을 받은 영달은 머리를 휘저었다.

더구나 자기와 큰 원한으로 얽혀져있는 김정환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온몸이 까드라들었다.

세하면 륙리 산마골 김문서의 둘째아들 김정환…

맹영달의 눈에서 금시 불이 번쩍 튕기는것 같았다.

함께 산두재에 다니면서 가난뱅이들과는 어울리면서도 자기와는 말도 하지 않는 리진룡의 버릇을 가르치려다가 도리여 나이가 세살이나 아래인 김정환에게 이발 넉대가 뿌리채 뽑혀나갔던 일이 지금도 입안을 얼얼하게 했다.

김정환의 조상들중에 무관이 나온 일이 있어 어느 한때 량반계렬에 들어섰던 집자손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가문의 래력에 대해서는 김정환자신이나 집안사람들도 입밖에 낸적이 없고 또 벌써 몇대째나 부자집 허청간같은 오막살이에서 농사를 지으며 근근히 살아가는 형편이라 무관을 지낸 조상이 있다는 말이 할 일 없는 아낙네들이 내돌린 뜬소문인지는 딱히 알수 없으나 김정환의 완력을 보면 영 그른 소리는 아닌듯도 했다.

여하튼 그 김정환의 완력덕에 맹영달은 스무살도 되기 전에 이발이 넉대나 빠진 애젊은 《령감》이 되고말았다.

그때 앙갚음으로 땅을 떼고 집을 빼앗다 못해 머슴으로 끌어가려던 김정환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말았었다.

그런데 그가 의병이 되여 나타났을 때 맹영달은 아연실색하였다.

김정환의 부모들이 산당집으로 옮겨갔을 때 뒤쫓아가 죽음의 문어구에 세워두었던 그로서는 김정환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한 어느때든 복수가 따라올것이라고 생각하고있었다.

바로 그렇게 자기와 피맺힌 원한으로 얽혀있는 김정환이가 가장 위험한 적수가 되여 나타났던것이다.

김정환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어느때든 자기의 숨통이 그의 손에 끊어지게 될것이다. 아마 김정환이와 마주치는 날이 바로 자기가 이 세상과 영리별하는 가장 재수없는 날로 될것이다.

그때부터 영달은 조마조마한 나날을 보내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자기자신이 위험천만한 적수의 복수를 면하는 길은 오직 자기가 먼저 그 적수를 없애버리는것이다.

그때까지는 김정환과 마주치지 않는것이 목숨을 구원하는 방책인것이다.

그런데 맹영달의 일은 칠팔월 수수잎처럼 언제나 꼬여 돌아가기만 했다.

요즘은 정말이지 안팎으로 편안치 않았다.

며칠전에 제비여울수비대장인 시나지로중위에게서 모주 훔쳐먹은 돼지새끼취급을 받은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꺼꾸로 솟구쳐오르는 맹영달이였다.

그날 일진회를 동원하여 남사리일대를 훑어보라는 령을 받았지만 영달은 졸개들만 내몰았다. 그런데 그놈들이 겁이 잔뜩 났던지라 산뒤짐은 하지 않고 어느 경치좋은 곳에 숨어서 막걸리추념이나 하다가 돌아온것이 사달을 일으켰다.

그날에 바로 남사리에서 일본군 십여명이 의병들의 습격을 받고 황천객이 되여버렸던것이다.

그때 중위놈은 일본군도를 빼여들고 당장 숨통을 끊어내칠듯 펄펄 날뛰였다.

《나쁜 놈들, 네놈들이 지금 딴꿈을 꾸고있는것이 분명하다.》

《제 어찌 감히…》

영달은 눈알이 까뒤집힐 지경이 되여 바들바들 떨었다.

중위의 눈에 살기가 비끼더니 영달의 목덜미를 틀어잡았다.

《네놈들이 혹시 돈 백원을 탐내는건 아닌가?》

《중위님, 그건 너무한 말씀이옵니다.》

《너무하다구? 네놈이 그래 의병대의 통고장을 받지 않았단 말인가?》

시나지로중위가 말하는 통고장으로 말하면 몇달전에 영달이가 제손으로 가져다바친것이였다.

그날 영달은 금천지방에 갔던 계부길이가 그곳에서 얻었다면서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품속에서 꺼내놓는 통고장을 보게 되였다.

보성지방 담사리의병대 의병장의 통고장이였다.

담사리의병들은 그자신들이 일제침략자들을 소탕하였을뿐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왜놈들을 처단할것을 적극적으로 호소하였다.

그때 이 의병대는 일제가 각지 의병장들의 목에 현상금을 걸었다는 소식을 듣고 거기에 현혹된 일진회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통고를 하였다.

《일제의 주구노릇을 한 순검과 일진회원들이 일제침략자 한놈을 죽이면 그들이 이때까지 백성들앞에 저지른 죄과를 용서하고 두놈을 죽이면 상금 백원을 주겠다.》

바로 이런 내용의 통고장을 영달이가 자기의 직분을 다하느라고 바친노릇인데 도리여 이 일본군중위놈은 자기들을 궁지에 몰아넣는 좋은 언질거리로 리용하고있는것이다.

이날 맹영달은 코물, 눈물 쏟으며 별의별 감언리설을 다해서야 포악무도한 시나지로의 칼날아래서 간신히 벗어나게 되였다.

정말 맹영달에게 있어서 의병들이 화근이였다.

자기 수하의 일진회원들이란 머리수만 몇놈 있다뿐이고 믿을만 한놈은 하나도 없었다. 그따위것들을 가지고 의병을 대적하기란 고양이 소대가리 맡은 격으로 어림도 없다는것을 모르는바가 아니지만 이렇게 심심산골에서까지 일진회가 기를 못 펴게 됐으니 분통이 터질 일이였던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무장한 일진회원들을 끌고 달려가 자기 졸개들에게 감히 손찌검을 한 놈을 찾아내여 백성놈들이 보는 앞에서 릉지처참하고싶었지만 일진회 회장 리용구가 곧 이곳에 도착한다는 비밀전갈을 금방 받은 뒤라 그만두었다.

그까짓 산골의 작은 마을 하나가 문제가 아니였다.

맹영달에게는 출세의 길을 여는것이 선차였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회장의 눈에 잘 들어야겠다고 곱씹어 생각했다.

맹영달은 방금전 자기의 발길질에 채워 밖으로 쫓겨났던 계부길이와 옥칠이를 다시 불러들여 당장 그 어디건 쑤셔대고서라도 일진회 회장에게 바칠 값진 물건들을 털어다놓으라고 불호령을 하고나서 다른 졸개 두놈을 무장시켜가지고 리용구의 마중을 떠날 준비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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