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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회


제3장 터를 잡는 근거지


2


감자캐기가 끝났을 때 김기송동지는 동무들을 한참 쉬우고나서 말했다.

《얘들아, 우리모두 밭임자네 집에 가자.》

이미 와있던 애들은 눈이 뎅그래졌다. 그 집에서 저들을 윽벼르고있으리라는것을 알기때문이다.

밭에 남았던 감자를 캐느라니 자기들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엄청난가를 깨달았던것이다. 감자는 이제부터 부쩍부쩍 크면서 여문다.

하촌에서 분단장까지 했다는 기송동지가 가자니 따르는수밖에 없었다. 또 보는 눈, 하는 잡도리도 남다르다.

애들은 캐놓은 감자는 그냥 두고 마을로 향하였다. 이미 있던 애들은 지은 죄가 있는터라 그냥 뒤로 처졌다.

밭임자네 집은 쉽게 찾을수 있었다.

애들이 주런이 마당에 들어섰을 때 기송동지가 주인을 찾았다.

방문이 열렸다. 내다보는 로인은 머리칼도, 수북한 눈섭도 흰데 무척 팩하게 생겼다.

로인은 애들을 훑더니 대뜸 고성을 질렀다.

《여긴 왜 왔냐? 우리 집엔 먹을게 없다, 없어!》 하더니 방문을 깨지게 도로 닫았다.

밭들을 훑다못해 구걸하러 온줄 아는 모양이다. 애들은 스무명이나 되니 마당을 그득 채웠다.

기송동지는 입을 다셨다. 일이 우습게 번졌다.

그러나 내친걸음이니 진정을 아뢰야 할것이다. 기송동지는 공손하고 나직한 소리로 할아버지를 여러번 찾았다.

다시 문이 열리며 이런 말이 쏟아졌다.

《안갈테냐? 감자밭을 다시 뚜져라. 남은게 있을게다.》

기송동지는 로인이 문을 다시 닫을가봐 덤벼치며 말꼬리를 물었다.

《할아버지, 그런게 아니라 우리는 감자를 모두 파놓았습니다.》

《그건 왜?》

수북한 흰 눈섭이 꿈틀 치켜졌다.

기송동지는 말을 서둘렀다.

《우리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철없다나니 그런짓을 했습니다. 유격대식당에서 우리한테 먹여주거든요. 그런데 그런짓을 했으니…》

기송동지는 잘못의 장본인인듯 머리를 수굿이 숙였다.

로인은 눈을 가느스름히 쪼프리고 기송동지의 아래우를 훑었다. 이 소년은 누구냐 하고 가늠해보는듯이.

기송동지는 머리를 들고 말을 이었다.

《할아버지, 포대를 좀 줄수 없겠습니까? 파놓은 감자를 갖다드리려 합니다.》

로인은 더욱 찬찬히 기송동지를 살폈다.

기송동지의 목소리는 울먹해졌다.

《다시는 안그러겠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로인은 응대없이 문을 닫아버렸다.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아이들은 포대를 주려는지 어쩌는지 몰라 조바심났다.

얼마후 토방에 나와 서는 로인의 표정은 놀랍게도 푸근히 풀렸다. 팩한 인상도 자취를 감췄다.

웃수염도 허옇게 바랜 로인은 이발이 듬성듬성 빠진 입을 빙긋이 열며 어조에 정을 얹었다.

《사실 난 네 녀석들이 괘씸했다. 혁명정부에 가 송사할 생각도 했다. 그렇지만 이어 고쳐 생각했지. 에라, 모르겠다. 〈게사니청〉(리춘팔)한테 바친셈 치자. 난 이제 가을을 하고나서 리춘팔놈한테 떼울 량만큼 혁명정부에 바칠 작정이다. 그러니 포대는 줄테니 유격대식당에 갖다주어라.》

듣는 애들의 감정은 두갈래로 갈라졌다. 기송동지와 함께 온 하촌애들은 (야, 할아버지가 대단하구나.) 하고 감탄했지만 이미 있던 애들은 (애게나, 그럼 우린 녹아.) 하며 어깨를 흠칫 떠는것이였다.

유격대식당에 감자포대를 갖다주느라면 자기들이 한짓이 말짱 들장나기때문이다.

감자를 여러장의 포대에 담으며 이미 있던 애들은 기송동지한테 빌다싶이 달라붙었다.

《제발 유격대식당에 가져가지 마. 그럼 우린 쫓겨나.》

몇아이는 눈물까지 글썽해졌다.

로인네 집에 감자포대를 날라간 김기송동지는 그 사실을 할아버지한테 모두 터놓았다.

로인은 턱을 쳐들며 껄껄 웃었다.

《녀석들, 혼은 났구나. 아서라, 깨달은 사람한테 매질은 하지 않아. 그럼 내가 감자를 받겠다.》

이러는 과정에 로인은 기송동지가 오늘 들어왔다는것도 알게 되였다.

김기송동지는 이 사실을 혁명정부 회장한테는 보고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를 찾아갔다.

최춘도는 사람좋게 웃고나서 말했다.

《됐다, 아는 일도 모르는척 하는 때가 있어야 해. 그녀석들이 정신만 차렸으면 되는거지.》

김기송동지가 혁명정부사무실에서 나오려고 할 때 최춘도는 말했다.

《너희들 아동단병실을 지어줘야 할텐데. 보는바대로 온 골안이 집짓기로 들썩 끓는다. 한굽이 넘겨놓고 짓도록 하자. 그새 유격대식당에서 자고 지내도록 해라. 식사때만 자리를 내주면 되니까. 유격대중대장도 승인했다.》

김기송동지는 고마움에 속이 뜨겁게 달았다. 눈에 눈물이 가랑가랑 맺혀돌았다.

(아, 유격근거지가 우리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여기지 않는가.)

김기송동지가 문을 열고 나오려 하자 최춘도는 단단히 다짐을 두었다.

《왁작 고아댔단 안돼. 그러면 내쫓겠어. 옆이 유격대병실이 아니냐.》

《예, 알았어요.》

기송동지의 대답에 엷은 물기가 번졌다.

김기송동지는 걸음을 옮기며 머리를 기웃거렸다. 8도구에 가면 경찰분서나 병영정문앞에 사람이 얼씬도 할수 없다. 보초병의 사나운 눈초리는 얼씬하면 쏘겠다고 위협하는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선 아이들이 유격대식당에서 먹게 하고 자라고까지 하지 않는가.

곽찬수선생한테서 들은 말도 생각났다.

올해 4월 안도에서 조직된 군대는 반일인민유격대라고 한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처음 지으신 말― 인민, 이건 왜놈들이 지껄이는 국민이란 말과는 판판 다른 뜻이 아닌가.

아이들은 길거리에 몰켜서있었다. 잠자리를 정하지 못했던것이다.

김기송동지의 말을 전해들은 애들은 단박 뜀박질을 하며 기쁨의 환성을 터쳐올렸다.

기송동지는 눈을 크게 뜨며 방금 최춘도회장이 당부하던 말을 옮겼다.

애들은 이어 자라목을 하며 걸음도 조심히 저겨디뎠다.

식당앞에 이르니 병실쪽에서 웬 개가 으르릉― 독을 뿜더니 사납게 짖어댔다.

살펴보니 귀가 빳빳이 일어서고 주둥이가 뭉툭한데다 다리가 쭉 뻗은 세퍼드였다.

원래 혁명조직과 련계가 깊었던 포수막로인의 개였는데 왜놈들이 그 막에 불을 지르고 로인을 총창으로 찔러죽이자 주인없는 그 개를 여기로 가져왔던것이다.

애들은 식당안에 들어가서도 누가 말할라치면 모두들 드바삐 조용하라고 입에 손빗장을 세워보였다.

여기 이미 있었던 애들은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그애들은 오늘 하촌애들을 만났던, 콩청대하던 자리에서 몰켜 자군했다. 그중 안풍하고 깔린 풀이 두터웠기때문이였다.

그런데 오늘부터 웃설미가 얹히고 가까이에 보초가 선 곳에서 자게 된것이 아닌가.

그들은 산중에서 자면서 사나운 짐승이 덮쳐들가봐 마음을 놓지 못했다.

강진혁과 박귀남은 저녁 먹으러 오지 않았고 밤이 깊어가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김기송동지는 그애들을 기다리느라 눈도 마음놓고 붙일수 없었다.

몇번 밖에 나가 여기저기 살펴보았으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편 강진혁과 박귀남은 이미 자던 자리, 콩청대자리가 있는 그곳에 누워있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둘이 누워있다보니 맹수가 덮쳐들것 같은 공포는 갑절로 커졌다.

배고픔은 별반 느끼지 않았다. 낮에 물투성이 콩을 실컷 먹다보니 아직도 배가 든든했다.

그러나 숱한 애들속에서 자기들 둘만이 외토리로 됐다는 쓸쓸한 생각이 머리를 그냥 눌렀다.

그애들은 지금 어디서 잘가? 우리 둘을 생각이나 할가?

강진혁은 여기서 숱한 애들과 어울려 잘 때는 흐뭇한 마음으로 다리를 편안히 펴고 잘수 있었다. 애들이 모두 자기를 남달리 보아주었기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행동을 의젓이 가지려 했다.

그런데 자기보다 어리고 키도 작은 하촌분단장이 나타나자 자기 처지는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졌다. 자기를 따르던 애들이 그 분단장한테 붙었다.

나와 귀남은 가지에서 떨어져 디굴디굴 굴어 돌짬에 박힌 쌍둥이 밤이다. 외로움을 이길수 없었다.

(에, 여기서 떠나고말가?)

이것은 강진혁이 여기 유격구에 들어온 후 몇십번이고 곱씹는 생각이였다.

조양촌역에서 마주보이던 우리 집, 기차에서 내린 사람과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 장보러 온 사람들이 꼬리를 짓고 찾아들던 철원국밥집…

강진혁은 자라면서 먹을 걱정, 입을 걱정을 모르고 살아왔다.

그런데 그런 끔찍한 날벼락이 자기 집을 박산낼줄이야.

국민당패와 왜놈들이 방역에 눈조차 돌리지 않다보니 온갖 전염병이 련이어 거리와 마을을 휩쓸었다.

장질부사, 천연두, 흑사병…

천연두는 열이 무섭게 나면서 얼굴에 난 시뻘건 물집이 튕겨진다. 그 딱지가 떨어지면서 살이 움푹 패인다. 그래서 그때 《곰보쟁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흑사병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페스트균을 가진 쥐에 붙어살던 벼룩이 사람의 피를 빨면 흑사병에 걸리게 된다. 페스트균에 옮은 사람의 가래와 침에서도 그 병이 전염된다.

강진혁의 식구들이 모두 흑사병에 걸려 쓰러졌다.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집이니 누군가 그걸 옮긴 모양이다.

강진혁만이 성했다.

몸이 말그대로 불덩이로 되면서 입에서 검은 피를 토하고 바오래기처럼 몸을 꼬던 식구들은 밤에 모두 숨을 거두었다. 그속에는 심부름군 처녀 둘도 끼여있었다.

참혹한 정황에 다닥친 진혁은 몸부림치며 울다가 새끼줄을 몇겹으로 친 집에서 뛰쳐나왔다.

가까이 지낸 집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걸음이 말뚝처럼 박혔다.

아무리 가까운 집이라도 페스트균을 가졌을 진혁을 보기만 하면 까무라치게 놀라며 당장 나가라고 목터지게 고함지를것이다. 그리고 진혁이 새끼줄을 끊고 뛰쳐나왔다고 그길로 경찰분서에 알릴것이다.

그러면 경찰분서 순사가 정신없이 달려와 진혁의 몸에 소독수를 목욕시키듯 뿌리고 거리 멀리에 있는 격리병동에 쓸어넣고 단 하나뿐인 문짝에 대못을 꽝꽝 박을것이다.

제발 페스트균을 퍼뜨리지 말고 그속에서 죽으라는것이다.

이런 생각이 때늦게 번개친 진혁은 집으로가 아니라 거리를 빠져 가까운 산으로 기여올라갔다. 캄캄한 밤이라 나무에 지끈 이마받이를 하기도 하고 미끄러져 아래로 디굴디굴 굴기도 했다.

이튿날, 조양촌에서 멀지 않은 계수동에서도 비슷한 일이 터졌다.

박귀남의 부모를 머슴으로 둔 민지주는 소문난 깍쟁이였다.

좀상하게 생긴 그놈은 8도구에서 한다하는 관리들이 내려와도 반겨맞는척 했지만 남들처럼 푸짐히 먹이지 않았다.

그래서 관리나부랭이들은 침을 탁 뱉으며 욕을 푸지게 퍼부었다.

《좀상스런 령감태기, 께끈하다. 어디 두고보자.》

이러한 집에 점심참에 《토벌》갔던 왜놈군대들이 스무명나마 들이닥쳤다.

한 마을을 피바다로 만든 왜놈장교는 민지주에게 눈을 부라리며 을러멨다.

《령감, 우린 어뜩새벽에 먹곤 지금껏 빈속이야. 단단히 솜씨를 보이라구.》

지주집이라 해서 몰려든것이다.

민지주는 갑삭거리며 응대했다.

《여부가 있습니까? 어서 들어와 쉬십시오. 방은 좁지만 제꺽 차리겠습니다.》

민지주는 속으로 비웃음쳤다. 보매 8도구에 있는 왜놈군대는 아니였다. 수비대장이 낯설었던것이다. 모름지기 요즘 장춘이요, 라남이요 하는데서 숱한 군대가 왔다더니 그 패들인게 틀림없었다.

이것들은 여길 지나면 다야. 이런것들한테 푸짐히 먹여?

스무명의 배를 채우려면 묵은 돼지 한마리는 잡아야 할게다. 그게 값이 얼마라구. 에라, 모르겠다. 장교 하나와 오장 둘이니 그들한테 닭이나 한마리씩 섬기자. 졸병녀석들은 배추국이나 먹이구…

깍쟁이인 민지주는 집머슴으로 귀남이 부모밖에 쓰지 않았다. 부엌칸엔 얼씬 안하던 로친네와 민지주까지 부엌이 좁다하게 돌아쳤다. 귀남이와 동갑인 이 집 막내녀석도 아궁이에 나무를 쓸어넣느라 분주했다.

그러나 돈 안드는 갖가지 산나물로 큰상을 채우려니 시간을 오래 끌었다.

자다가 부엌을 내려다본 장교놈의 상판이 불시에 성난 이리상이 되였다. 입에서 폭탄같은 소리가 터졌다.

《우리가 풀먹는 짐승이야? 이 두상! 빨갱이 아니야?!》

어느새 빼여든 권총으로 부엌에 있던 사람들을 모조리 쏴갈겼다. 여러차례의 《토벌》에서 사람 죽이는걸 파리잡는 정도로 여기게 된 놈이다.

부엌에서 일하던 귀남의 부모도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다행히 박귀남만이 살았다. 여덟살때부터 애기머슴살이를 시작한 박귀남은 늪머리에서 돼지한테 먹일 능쟁이와 비름을 따서 꼴망태를 채우고있었던것이다.

마을사람들은 곱게 생기고 마음 순한 귀남이를 눈물을 머금고 동정했다.

그러나 자기 집에 와서 살라고 끄는 집은 하나도 없었다.

급살한 사람의 혼은 원귀가 되여 산 식구들의 둘레에서 그냥 뱅뱅 맴돌아 그런 애를 집에 들이면 까닭없이 병이 잦고 불상사가 련달린다는것이다.

빌어먹기 위해 8도구로 향하던 박귀남은 길거리에서 강진혁을 만났다. 함께 걸으며 말을 주고받고보니 신통히 비슷한 운명이였다.

강진혁의 호주머니에는 월사금을 바치려던 돈이 있었다.

돈이 귀한줄 몰랐던 진혁은 그 돈으로 먹을걸 사서 귀남이와 꼭같이 나누었다.

과자며 말눈깔사탕… 여직껏 먹어보지 못한걸 서슴없이 나누어주는 진혁이가 귀남에게는 하늘처럼 보였다.

누구에게든 의지하고싶던 박귀남은 눈물이 그렁해서 강진혁에게 말했다.

《형님을 친형으로 생각하면 안되겠나요?》

역시 외토리인 강진혁은 그 말이 더없이 고마왔다.

《그러자, 나는 네 형이고 너는 내 동생이야.》

머슴살이 부모의 품에서 자란 귀남은 진혁을 상전처럼 여기며 따랐다.

집에서 몸을 깨끗이 다듬었던 진혁은 방랑의 길에서도 강물에 나가 세면도 하고 목욕도 했다. 그럴 때면 귀남은 온 정성을 기울여 진혁의 몸의 때를 밀어주느라 이마에 땀발이 섰다. 그는 진혁의 손발노릇을 해주고싶었다.

그러다가 갈데 없는 둘은 희한한 소식에 끌려 유격근거지로 들어오게 된것이였다.…

자고있던 강진혁은 전에 없는 허기에 눈을 떴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견7, 우5, 돈3… 이건 단고기를 한밥 푸짐히 먹고나면 그 근기가 한주일동안 가고 소고기는 닷새, 돼지고기는 사흘 간다는 말이다.

진혁이가 일곱살때부터 집에서 국밥업을 했으니 그의 몸은 단고기기름으로 절었다고 할수 있었다. 그는 투실투실 살이 찌진 않았지만 미츨하게 뻗은 몸이 탱탱하니 여물었다.

이러한 그가 한달동안의 방랑생활에서 기름기가 다 빠진 모양이다.

그래야 한끼 번졌는데도 허기가 마쳐오는것이다.

그는 풀덤불이 두툼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 귀남이도 몸을 일으켰다. 그는 좀전에 잠을 깼지만 진혁이 자는것 같아 까딱 움직이지 않고있었던것이다.

진혁은 주위를 둘러살폈다. 빽빽이 들어찬 수림속에 아침빛이 완연했다.

(또 감자돌찜이나 할가?)

얼핏 눈앞에 기송동지의 모습이 스쳤다. 그는 입을 다셨다.

유격대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수밖에 없었다.

그는 시간을 가늠해보았다. 이젠 유격대원들의 뒤를 이어 애들이 밥을 먹은지도 한참 지났을것 같았다.

진혁은 귀남을 뒤에 달고 산을 내렸다.

애들한테 들킬가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식당가까이에 이른 진혁은 눈이 커지며 흠칫 뒤걸음쳤다.

밥을 먹고 어딘가로 갔을것이라고 생각했던 애들이 식당안에 빼곡이 차있는것이 아닌가.

귀남이도 애들을 띄여보고는 촉급한 말을 진혁에게 던졌다.

《형, 빨리 피하자요!》

두 애는 돌아섰다. 들구뛸 잡도리였다.

그러는데 식당밖으로 나오던 한 애가 두 애를 띄여보고 안에 대고 소리쳤다.

《대장동무! 진혁이, 귀남이 두 동무가 여기 왔어요!》

《엉?!》

놀라와하는 소리들이 두 애의 귀에 날아들었다.

날파람있는 한 애가 식당에서 달려나왔다.

《왜 이제야 나타나? 우린 눈이 까매서 기다렸어.》

그 말이 고맙게 들렸다.

두 애는 오도가도 못하게 됐다. 그들은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달려나온 애의 뒤를 따라 식당안에 들어섰다.

밥그릇을 마주한 애는 한명도 없는데 애들은 식당에 몰켜앉아있었다. 두 아이는 애들이 유격대식당에서 잔줄 알리 없었다.

아이들은 반가운 웃음을 얼굴에 그득 담으며 여러날 함께 지냈던 두애의 곁에 바투 다가들었다.

두 애는 애들속에 끼여앉은 기송동지에게 눈을 보냈다. 기송동지가 그중 두려웠던것이다.

기송동지는 두 애를 못본체 하다가 빙긋이 웃음을 머금고 일어서더니 밖에 가마를 걸고 일하는 식모어머니를 찾아갔다.

《얘들아, 어제 저녁엔 왜 오지 않았니? 배고프겠다.》

식당어머니는 어제 먹지 않은 밥까지 두 애앞에 놓아주었다.

두 애는 목안이 더워났다. 밥은 먹어야겠는데 숱한 애들의 눈초리에 싸여 먹기가 거북했다.

그들은 밥그릇을 들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애들이 법석 끓었다.

《그냥 먹어.》

《우리 있는게 뭐라니? 남이가?》

《못먹은 밥까지 다 먹어.》

애들은 역시 순진하고 뜨거웠다.

강진혁과 박귀남이 밥그릇을 치웠을 때 몇아이가 식당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의 손에는 호미며 포대가 들려있었다.

어제 감자를 캐주었던 로인네 집에 가서 빌려오는 참이다.

오늘 또 다른 집의 감자를 처리해주어야 했던것이다.

가져온 호미는 세자루였다. 그러나 호미대신 쓸만한 돌멩이는 밭가녁에 수두룩했다.

산비탈에 치우친 이 밭엔 큰 돌뿌리며 바위버럭들이 쫙 깔렸댔을것이다. 그러나 지팡살이하는 처지지만 농민들은 그 돌들을 해를 두고 골라던져 밭지경밖에 더미를 쌓아올린것이다.

땅은 역시 진거름에 푹 절었다. 애들은 고랑을 잡고 한알의 감자라도 놓칠세라 정성을 고였다.

그러나 애들속에 끼여있는 강진혁의 손은 참게다리처럼 어설프게 움직였다. 그는 일을 몰랐다. 집에 있을 때 세면을 하려면 심부름군처녀가 대야에 물을 담아 섬겨주었고 다하면 처녀가 세면물을 던져주었다.

진혁은 가벼이 미간을 찌프리며 얼굴에 그늘을 지었다.

(내 신세가 가련하구나.)

그는 유격근거지에서 이런 일만 하게 되지 않을가 하는 생각도 마쳐왔다.

박귀남은 몸이 작지만 뾰족한 돌멩이로 땅을 암팡스레 파나갔다. 이랑끝에 감자줄기가 뻗지 않았을가 해서 멀리까지 파제꼈다. 다른 애들보다 조금 뒤졌다.

손이 걸싼 기송동지는 맨 앞줄을 째고나가다가는 일어서서 동무들을 둘러살펴보군 했다.

귀남이한테 자주 눈이 갔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가 불쌍히 자란 애라는걸 알아보았다. 그런데 어째서 진혁의 뒤에 꼬리처럼 묻어다닐가?

애들이 밭에 들어선지 얼마 안되였을 때 여라문명의 녀인들이 가까이로 다가왔다.

맨앞에는 이미 있던 애들이 낯을 익힌, 가는 몸에 키가 크고 목소리가 째진 양푼처럼 요란스레 성칼진 아주머니가 섰다.

그가 이 밭의 주인이다.

그 녀인에게 두번이나 들켰는데 어찌나 사나운 소리를 크게 내지르는지 산에서 메아리가 되울려올것 같았다. 애들은 혼비백산해서 사방으로 들구뛰군 하였다.

그 녀인이 여라문명의 녀인들을 휘동해 끌고오고있었다.

이미 여기 있던 애들은 겁에 휩싸였다.

(야, 오늘은 남은 감자를 캐주러 왔는데.)

그애들은 띠염띠염 선 감자포기뒤에 낯을 숨기느라 했다.

서툰 손을 뜨직뜨직 놀리던 강진혁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제 또 기송이한테 혼쭐나겠구나.)

기송동지가 말했듯이 콩청대와 감자구이의 선코를 뗀건 자기, 강진혁이다.

시내에서 살면서 콩청대라는 말을 듣기만 했던 진혁은 자기를 좋게 보는 애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얘들아, 심심한데 콩청대도 하고 감자구이도 하지 않겠니?》

그때 장난질에 손이 근질거렸던 애들이 선뜻 응해나섰던것이다.

이제 드살센 아주머니가 야단법석을 놓으면 기송동지쪽으로 기운 애들이 이 일도 뱉을것이 아닌가.

그러면 만만찮은 기송동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진혁동무, 근거지에서 떠나지 않을래?》

갈가말가 하고 늘 저울질하며 사는 진혁이였지만 남한테서 그런 말을 듣는건 다시없는 모욕으로 생각됐다.

속이 졸아든 진혁은 손에 쥔 돌멩이처럼 손도 굳어졌다.

녀인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런데 모두의 얼굴에는 따뜻한 웃음이 비껴있었다.

밭주인녀인은 성깔사나운 성미를 어디로 치웠는지 인정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수고하는구나. 이젠 그만둬라. 우리가 하겠다.》

진혁은 잘못들었나 해서 눈을 뚜부럭거렸다.

일을 저질렀던 애들은 너무 뜻밖이여서 눈이 휘둥그래졌다. 하촌애들도 영문을 알수 없어 눈을 슴벅거렸다.

녀인의 얼굴에는 무척 너그러운 빛이 흘렀다.

《방아간할아버지한테서 다 들었어. 고맙다. 나는 너무 괘씸해서 이 밭은 돌보려고도 안했어. 그런데 너희들이 고운 마음을 먹으니…》

김기송동지는 녀인의 말을 뚜렷이 알아들었다. 방아간할아버지란 분명 어제 만났던 로인이다. 그가 밭을 탕 맞은 모든 집들을 돈것이 아닌가.

이미 여기 있던 애들과 하촌애들도 마음이 훈훈히 풀렸다. 얼굴에 웃음이 피여올랐다.

그러나 강진혁과 박귀남은 까닭을 알수 없어 여전히 밭에 박혀 앉아있었다.

여라문명의 녀인들이 밭에 들어왔다. 다른 녀인들은 피난와서 밭주인네 집에 얹혀살고있는 녀인들이였다. 아이들의 쉽지 않은 행동을 전해들은 녀인들은 자기들도 주인집 일을 돕겠다며 따라온것이다.

이날 진혁이네한테서 피해를 본 다른 밭에서도 녀인들이 모여와 남은 감자를 다 거두었다.

어슬녘, 유격대식당에 여라문포대의 감자가 실려왔다.

장재촌에 원래 살던 집들에서는 추수가 끝나면 유격대의 식량을 보태줄 생각을 단단히 다져먹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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