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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회


제3장 터를 잡는 근거지


1


부암동의 다섯개 마을중에서 제일 막바지에 장재촌이 자리잡고있었다.

여러갈래의 깊은 골짜기로 이루어진 장재촌은 요즘 많은 사람들로 붐비였다.

혁명을 하러 들어온 사람들과 그의 식구들, 왜놈의 《토벌》을 용히 뚫고 들어온 사람들…

호젓한 정적만 감돌던 마을이 요즘은 사람사태를 만났다.

조국땅가까이로 활동거점을 옮기신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동만각지에 유격근거지를 세우도록 이끄시였다. 그리하여 여기 연길현에만 해도 왕우구, 8구, 의란구, 석인구, 삼도만유격근거지들이 서고있었다. 8구유격구를 장재촌유격근거지라고도 부른다.

연길하를 옆에 끼고 뻗은 달구지길로 곽찬수선생과 김정숙동지를 비롯한 아동단원들이 장재촌으로 걸어가고있었다.

30리길을 걸어왔건만 애들은 말이 적고 걸음에 활기가 빠졌다.

아슬한 하늘이 일시에 소리치며 무너져내린듯한 어제의 충격에 하루밤 자고났어도 생기찬 동심을 찾을줄 몰랐고 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김기송동지는 걸으면서 줄곧 형님생각을 했다. 형님은 어디에서 싸울가?

어제밤 함께 자면서도 그걸 묻지 못했다. 어린 나이에도 그런걸 물어선 안된다는것을 알았기때문이였다.

야, 젖내 퐁퐁 풍기는 고운 내 조카 인남이는 이제 누구의 손에서 자라게 될가? 누나만큼 살틀히 키워줄가?…

한여름의 해는 하늘꼭대기에서 기를 쓰고 빛과 열을 뿜었다.

애들은 땀에 후줄근히 떴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산굽이를 여러번 돌아 장재촌어구에 이르자 어른들의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골안 여기저기에 집들을 짓느라 분주스럽다. 집터를 잡고 다짐을 하는 사람들, 뼈대가 선 집지붕에 시퍼런 갈대를 덮는 사람들, 기둥을 한창 세우는 집, 톱질소리, 못질소리…

곽찬수선생은 이마의 땀을 씻으며 모두에게 빙그레 웃어보였다.

《봐라, 장재촌이 우쩍 일어선다. 여기서 왜놈들의 멱살을 틀어잡게 되거든.》

김기송동지는 흐뭇한 마음에 싸여 여기저기에 시선을 보냈다. 맥없이 잦아내리던 몸에서 뿌듯이 힘이 솟구쳤다.

(야, 멋있구나. 난 여기서 꼭 아버지, 엄마, 형수의 원쑤를 갚을테야!)

기송동지는 형님과 헤여지며 다진 맹세를 다시금 가슴속 맨 밑굽에 다져넣었다.

사람들이 널린 마을에 들어서자 곽찬수선생은 김정숙동지와 함께 구공청을 찾아 떠났다. 구공청이 어제 이리로 들어온것이다.

조금 있으려니 곽선생이 벗어진 이마에 얼굴이 둥글고 마음 후한 인상을 주는 최춘도혁명정부회장과 함께 아이들가까이로 다가왔다.

곽선생이 일렀다.

《인사들 해라. 혁명정부 회장선생님이야.》

아이들은 담임선생앞에서처럼 머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인정 무른 최춘도는 대바람 눈자위에 물기를 바르며 말했다.

《불쌍한것들, 어미잃은 새들이구나. 일없다. 너희들은 여기서 왜놈들의 눈알을 쪼아던지는 왕독수리로 자라거라.》

최춘도는 여기에 열댓명의 소년이 이미 와있다고 했다. 그는 기송동지를 여겨보며 말을 이었다.

《가만, 네가 기준동무 동생이 아니냐?… 대바람 알리누나. 차돌처럼 탱탱 맺힌걸 보니.》

그는 구공청에서도 방금 의논이 있었는데 기송동지에게 여기 온 애들의 대장노릇을 하라고 했다. 이미 와있던 애들이 여기저기 헤쳐돌고있는데 그애들을 몽땅 모아 함께 생활하게 하라는것이였다.

혁명정부의 임무이니 기송동지는 그 말을 따라야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구공청에서 돌아오지 않으셨다.

김기송동지는 다리맥이 매시시 풀려 잠시 쉬고싶었지만 동무들을 데리고 이미 와있던 애들을 찾아떠났다. 동무들도 몸에서 기운이 빠졌다.

그러나 하촌에서 기송동지를 따르던 타성으로 힘든 몸을 옮겼다.

어제 일로 해서 애들은 김정숙동지와 기송동지를 더욱 따르게 됐다. 오누이가 두팔을 벌리고 기를 쓰고 막지 않았더라면 자기들은 어쩔번 했는가.

낯선 골안에서 애들을 찾기란 숲에서 바늘찾기였다. 아무리 둘러보아야 겹겹이 둘러싼 산발이 앞을 막기만 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찾아야 한다. 여기는 부모의 슬하에서 시름을 모르고 살던 하촌이 아니라 싸움터, 유격근거지이다.

혁명정부 회장의 지시는 곧 명령이다.

기송동지와 동무들은 마을을 지나 맞은켠 산발에 붙으려 했다.

띠염띠염 들어앉은 전에 있던 집들에는 사람들이 터질듯 몰켰다. 늙은이, 아주머니, 아이들…

토방에는 그릇가지며 보따리들이 무너지게 쌓여있다. 집에는 들여놓을수 없어 밖에 그냥 놓아둔 모양이다.

집과 집사이에 또 사람들이 그득 널렸다. 집을 잡지 못한 사람들이 한지에서 밤을 새는 모양이다. 그들은 식구끼리 모여앉아 남비에 무엇을 끓이기도 한다. 애기들이 칭얼거리는 소리가 겨끔내기로 들린다.

김기송동지는 그 정경을 살피느라니 막막한 생각이 안개처럼 가슴에 덮였다.

(우리는 어디서 살가? 먹기는 어디서 먹고?…)

이미 와있다는 열댓명의 아이들이 덧짐으로 더욱 무겁게 어깨를 눌렀다.

기송동지와 동무들은 가까이 마주보이는 산으로 밟아올라갔다. 향방을 가릴수 없는 어림짐작의 걸음이다.

산으로 오르던 기송동지는 어깨에 멘 나팔을 보았다. 불에 그슬리고 납작바가지가 된 나팔이 더욱 참혹하게 안겨왔다.

이 나팔이 성하다면 단박 산속 여기저기에 박힌 애들을 모여들게 할것이다. 난데없는 나팔소리에 아이들은 호기심에 잔뜩 끌려 달려올것이 아닌가.

기송동지는 페품이 된 나팔을 버릴가 하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그러나 이어 머리를 저었다.

개량사숙에서 첫 나팔을 불던 때가 돌이켜지고 나팔이 생기를 돋구던 하촌에서의 아동단생활이 되살아와서였다.

기송동지는 숨을 톺으며 숲이 울창한 산마루를 밟아올라갔다.

한 애가 손나팔을 하고 소래기를 련거퍼 내질렀다.

《얘들아!― 얘들아!―》

그러나 빈 메아리만 날아왔다.

이때 한 애가 놀라운 소리를 쳤다.

《야, 저기! 저기!》

모두 그애가 뻗친 손끝에 눈을 모았다.

건너편 산에서 파란 연기가 퍼지고있었다. 저기에 애들이 있는게 아닐가?

아이들은 피로도 잊고 산을 내려 마을을 지나 그 산에 붙었다.

연기가 이젠 낮추 잦아들었다. 그러나 그곳을 넉근히 찾아갈수 있었다.

빽빽이 얽힌 잡관목을 휘여제끼며 가까이 다가가니 아이들의 목소리가 두세두세 들린다. 모여앉은것 같다.

기송동지가 맨 앞장에 섰다. 연기오르는 곳은 넓게 열린 공지였다.

아이들은 콩청대를 하고있었다. 타다남은 나무가지에서 내굴이 실실 피고 시퍼런 콩대에 주렁주렁 달린 콩꼬투리들은 센 불에 시달렸으나 입을 벌리진 않았다.

아직 한참 있어야 익을 콩그루를 와락와락 뽑아다 콩청대를 하다나니 아이들은 콩깍지를 하나하나 벗겨먹고있었다. 익었다기보다 삶아졌다고 해야 할 김을 풍기는 통통한 콩알들은 끈적한 진을 흘렸다. 그래서 애들의 손은 진물에 매닥질이 됐고 입들에는 하나같이 검댕이치장을 했다.

인적을 느낀 아이들이 돌아보았다. 유격구에 들어왔다는 애들은 여기 다 모인것 같았다.

한 애가 기송동지에게 푸접좋게 말을 걸었다.

《너두 여기 들어왔니? 여기 와. 먹을건 많아.》

다른 애들도 곁들었다.

《빨리 와. 말눈깔사탕보다 더 맛있어.》

《안먹으면 제 손해야.》

《인심 쓸 때 냉큼 와.》

하촌에서 온 아이들은 애들을 빙 둘러쌌다.

앉은 애들은 눈이 커졌다.

《어디서 이렇게 많이 왔니? 어느 동네가 탕 맞았니?》

김기송동지는 산밑의 경사진 골짜기밭을 내려다보았다. 밭가녁의 콩밭은 절반나마 결단났다. 애들이 모여앉은 자리에 나무재며 던진 콩깍지가 두둑한걸 보면 벌써 여러번 콩청대맛을 본것 같았다.

콩밭의 저켠은 감자밭인데 청청한 감자포기들이 널려진 돌멩이처럼 박혀있다. 그러니 감자밭도 이애들이 몽땅 요정낸게 분명하다.

북방의 여기 사람들은 올감자에 이어 늦감자를 많은 밭에 품놓아 심는다.

진거름을 듬뿍 주면 진람색의 투실투실한 감자가 어찌나 크게 자라는지 어떤것은 작은 호박만 했다.

이 늦감자로 한해 겨울을 나고 보리대목까지 량식을 잇는것이다.

그런데 애기주먹같이 애리애리한 감자를 거침없이 뽑아 감자구이를 하다니.

김기송동지는 아이들이 먹는 콩깍지를 마구 짓밟으며 소리치고싶었다.

《너희들은 농사군의 아들이 아니야? 이게 뭐야?》

그러나 이어 생각을 돌렸다.

이애들은 언제부터 여기 들어와있는지 모른다. 그새 먹여주는데는 없었을테니 물알 든 콩이며 애기감자를 손닿는대로 덮쳤을것이다. 순한 사람도 닷새 굶고나면 도적질할 생각을 한다지 않는가.

김기송동지는 슬며시 돌아섰다. 속은 여전히 알근하다. 밭임자들은 얼마나 노발대발했을것인가.

하촌에서 온 애들이 기송동지에게 눈길을 보냈다.

《기송아, 우리도 먹지 않을래?》

이런 물음을 던지는것이다.

푸접좋은 한 애가 이미 앉았던 애들사이를 꿰지르며 호기있게 말했다.

《얘, 우리들도 먹자.》

다른 애들도 쭈밋거리다가 자리에 끼여앉았다. 불에 탄 고소한 콩냄새가 코를 찌르자 빈속은 어서 먹자고 보챈것이다.

이미 와있는 아이들속에 유표하게 드러나는 한 애가 앉아있었다.

흰 얼굴이 약간 주걱졌는데 뾰족하게 빠진 턱우의 입은 붕어입같이 작았다.

몸은 실팍하고 당목 노타이샤쯔에 검은 목세루바지를 입었다.

다른 애들은 모두 토목 아니면 베옷차림이다. 그 옷들은 때국이 진득진득하고 볼품없이 구겨졌다. 목욕을 언제 했는지 모를 지경이다.

그러나 노타이샤쯔를 입은 애는 옷이 덞긴 했으나 세면만은 이따금 하는 모양이다.

그애는 둘러앉은 또래들보다 한두살 우일것 같았다. 《노타이샤쯔》는 붕어입에서 노상 웃음을 흘렸다. 거동에서 거리냄새가 풍기고 학교정문에도 오래 드나든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다른 애들은 그에게 류달리 관심을 보였다.

《많이 먹어, 자―》

그러면서 껍질을 벗긴 콩알을 그에게 저마끔 내밀기도 했다. 눈에는 친밀감과 함께 좀 존대하는 빛도 어렸다.

《노타이샤쯔》옆에는 처녀애로 되려다 사내애로 태여난듯한 살갗이 얄팍하고 곱살하게 생긴 애가 바투 앉아있었다. 애들중에서 제일 나이 어리고 작아보였다.

그애는 유순한 빛이 도는 눈을 내리깔고 손에 담긴 콩알을 옆의 《노타이샤쯔》에게만 섬기려 했다.

《됐어, 너두 먹어.》

《노타이샤쯔》는 붕어입을 더 크게 벌리며 웃어보였다.

콩깍지를 까던 하촌의 한 애가 《노타이샤쯔》에게 관심이 끌려 옆에 앉은 애에게 소곤소곤 물었다.

《저앤 누구야?》

그애는 제꺽 대꾸했다. 어조에 자랑기가 섞였다.

《너희들은 모르지? 우리 대장이야. 우리가 모두 내세웠지. 이름은 강진혁이야. 중학교에 가려다 여기 왔어.》

건너편에 앉은 눈이 깜또라지같은 애가 냉큼 말꼬리를 물었다.

《집이 조양촌이야. 정거장앞의 〈철원국밥집〉이라면 모르는 사람 없어. 그런데 흑사병(페스트)에 식구들을 다 잃었거든. 용히 혼자 살아남아 여기 온거야.》

다른 애들도 말을 보태고싶어 입을 쫑긋거렸다. 애들이 강진혁을 좋아하고 따르는 모양이다.

콩청대판에 끼여든 하촌애들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대장? 무슨 말이야? 혁명정부 회장은 기송이 보고 대장노릇을 하라 했는데. 구공청에서도 그래라 했다면서.)

강진혁은 붕어입에서 피는 웃음을 온 얼굴에 번지며 어깨를 약간 살구었다. 그러면서 새로 끼운 애들에게 도거리로 물었다.

《너희들은 어디서 왔니?》

한 애가 입에 콩알을 던져넣으며 대꾸했다.

《하촌이야.》

《하촌? 아, 어제 큰 봉변을 당했다며? 그래도 용케 빠졌구나. 이제부터 함께 살자. 여기도 좋아.》

하촌애들은 눈이 커다래졌다.

(이건 무슨 판이야? 대장이 둘인데도 있나?)

기송동지를 좋게 여기는 하촌애들은 무슨 갈래판인지 알수 없었다.

김기송동지는 콩청대판에서 멀지 않은 큰 떨기나무너머에 앉아있었다.

솔솔 부는 바람은 지꿎게 고소한 콩냄새를 몰아왔다. 전에없이 허기를 느꼈다. 그러나 물알투성이 콩청대판에 끼여들 생각은 바이 없었다. 하촌애들은 콩청대에 혹하다보니 기송동지가 끼이지 않은걸 미처 깨닫지 못했다.

기송동지는 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굶게 되면 아무 곡식에나 손을 대게 되겠지?

밑에서 웬 사람이 숲을 헤치며 올라왔다. 머리만 언뜻언뜻 보였다.

가까이 다가온 사람은 뜻밖에도 어제 마을의 참변을 알고 달려내려왔던 한동네 청년이다. 기준형님과도 가까운 사이이다.

《어, 네가 여기 있었구나.》

《형님!》

김기송동지는 반가움에 넘쳐 청년의 손을 잡고 마구 흔들었다.

청년은 허리에 찼던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씻으며 물었다.

《하촌애들이 모두 여기 있니?》

《예.》

《빨리 혁명정부 회장한테 가거라. 너희들을 찾는다.》

《아니, 아까 만났는데요.》

《글쎄, 빨리 오래.》

청년은 서둘러 숲을 헤치며 산아래로 내려갔다.

기송동지와 동무들은 이어 그의 뒤를 따랐다.

혁명정부사무실은 뚝막이였다. 마을에 집짓기를 크게 벌려놓았지만 사무실을 짓는것은 뒤로 미룬 모양이다.

최춘도회장은 뚝막앞에 서서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는 역시 소탈했다. 벗어진 머리를 슬슬 쓸며 기탄없이 말했다.

《나야 이런 큰일을 해봤나. 오봉광산에서 남포나 터치던 놈이. 사람들이 홍수같이 밀려드니 머리만 뻥뻥하다. 너희들은 밥을 못먹었지? 빨리 식당에 가봐라. 유격대식당에 아까 말해야 하는걸 깜빡 잊었지. 이제부터 계속 거기서 밥먹어라.》

최춘도는 바쁜듯 이어 돌아섰다. 몸이 좋으나 키가 작은 그의 걸음은 눈사람이 굴러가는것 같았다.

아이들의 얼굴은 환하게 개였다. 유격대식당에서 우리들을 먹여준단 말이지! 그애들도 기송동지처럼 먹고 지낼 일을 걱정했다. 방금 콩청대판에 끼여들었지만 막판이라 위의 한구석에나 기별을 보냈다.

아이들은 벌쭉벌쭉 솟구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됐구나. 이젠 먹을 걱정은 없구나.

김기송동지는 가슴에 뜨거운것이 뿌듯이 차올랐다. 아, 고마운 유격구.

일곱채밖에 없던 깊디깊은 골안에 첫 말뚝을 박는 때다. 그런데도 우리가 왔다고 유격대식당이 문을 젖히는것이 아닌가.

너무 기쁜 나머지 기송동지는 옆아이의 엉치를 잡아 훌쩍 들어올렸다. 그애는 뒤로 곤두박힐것 같아 아부재기를 쳤다.

동무들의 얼굴에서 밝은 웃음이 쏟아졌다.

유격대병실은 멀지 않은 골안에 자리잡고있었다.

집 한채를 지었을뿐 그옆에 더 큰 병실을 짓느라 유격대원들이 줄땀을 흘리고있었다.

식당도 웃설미만 얹었을뿐 봉당에 앉아 밥을 먹게 되여있었다.

나이지숙한 식모아주머니가 반겨맞아주었다.

《이제야 오는구나. 빨리 빙 둘러앉아라. 밥도 찬도 변변찮다.》

밥은 대두박까지 섞인 잡곡밥이였다. 산나물국은 구수하였다.

그릇들은 모양새가 얼럭덜럭했다. 《토벌》맞은 마을에서 얻어온 그릇이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점심을 달게 먹었다. 집에서는 바랄수 없었던 호사스러운 음식이였다.

식당안에 그늘을 지으며 대여섯명의 애들이 들어섰다.

콩청대판에서 보았던, 이미 여기 와있던 애들이였다. 강진혁이며 곱살하게 생긴 작은 애는 보이지 않았다. 절반나마의 애들은 콩청대에 배가 불룩해 내려오지 않은 모양이다.

밥그릇을 받은 그애들은 후하게 인심썼다.

《자, 더 먹어.》

그러면서 하촌에서 온 애들의 그릇에 밥을 푹푹 떠옮겨주었다.

하촌애들은 입이 헤벌쭉해졌다.

《좋아, 배는 얼마든지 있어.》

농촌애들은 배집이 크다. 그러게 벌거벗은 졸망구니들을 보면 배가 북통같다.

김기송동지는 대바람 미간이 찌프러졌다. 밥맛이 젖혀졌다.

방금전에 보았던 콩청대판이 떠오르며 입이 지그시 감물어졌다.

(저애들은 뭐야? 여기서 내내 밥먹으면서도 그런짓을 한단 말이야?!)

어렵게 첫 자욱을 떼는 혁명정부에서 우리들 보고 여기서 밥먹으라 했으니 이애들도 여직껏 이 식당에 드나들었을것이다.

그런데도 아무 밭이나 사정없이 요정내?

김기송동지는 분기가 팽팽한 축구공처럼 가슴에 차올랐다.

행길에 나선 애들은 서로 어울려 스스럼없이 웃고 떠들었다. 여기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단박 간격을 터친것이다.

이미 여기 있던 아이들은 콩청대를 하던 산으로 향했다.

하촌애들이 기송동지에게 물었다.

《기송아, 우린 어떻게 하란?》

《어떻게 하긴? 거길 가야지.》

대답은 퉁명스러웠다. 애들은 기송동지의 낯빛이 별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미 있던 애들과 허물없이 어울렸다.

콩청대를 하던 둘레에 밥먹으러 가지 않았던 애들이 여기저기 누워 잠을 자고있었다.

강진혁과 곱살하게 생긴 꼬마가 나란히 누워있었다. 친형제같이 가까운 모양이다.

공지에 풀이 무성하게 깔리고 빙 둘러선 키높은 나무들이 짙은 그늘을 던져주어 잠자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식당에 갔던 애들도 잠자리를 찾았다.

《에, 실컷 자야지. 저녁까지 뭘하겠어.》

그러니 늘쌍 이렇게 생활한 모양이다.

하촌애들도 여기 애들이 잠자는걸 보니 저들도 자고싶은 생각이 났는지 맞춤한 자리를 찾아 돌았다.

김기송동지는 《기상!》 하고 소리치고싶었다. 그러나 구공청과 혁명정부에서 임명받은 대장이지만 절반나마 처음 대하는 애들이다.

마음을 지그시 갈앉히려고 애썼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굴뚝같이 솟았다.

김기송동지는 기침소리를 련거퍼 냈다. 그런데 그 소리에 눈을 돌리는 애는 하나도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기송동지는 마음을 도사리며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얘들아, 모두 모여.》

기송동지는 봉긋한 입술을 감쳐물었다.

하촌애들은 인차 머리를 돌렸다. 그러나 식당에 갔다온 이미 있던 애들은 드러누우며 들은체도 안했다. 잠에 든 애들은 까딱 움직일줄 몰랐다.

《얘들아, 들었어? 일어나란 말이야.》

기송동지의 목소리에 가는 열기가 실렸다.

식당에 갔다온 여기애들은 드러누운채 의아스러운 눈을 기송동지에게 보냈다.

《저앤 뭐야?》

언짢아하는 빛이 얼굴에 완연히 비꼈다.

하촌애 하나가 모두를 둘러보며 소리를 높였다.

《일어나지 않겠니? 대장의 지신데.》

그애는 아까 여기 애들이 강진혁을 보고 대장이노라 하던 일이 떠올라 말에 그루를 박았다.

드러누웠던 한 애가 입에 비웃음을 한껏 담았다.

《헤, 우리 대장은 진혁형님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러면서 자고있는 강진혁을 손으로 가리켰다.

김기송동지는 강진혁에게 눈을 박았다. 아까 눈여겨보지 않았던 애다. 나이가 두어살은 우일것 같다. 하지만 강진혁은 몸이 좋고 키가 빠져 그렇지 기송동지보다 한살 우였다.

기송동지는 진혁이 거리에서 자랐고 공부도 했으리란걸 대뜸 알아보았다.

그러나 괘씸한 생각이 불끈 치밀었다.

(진혁이, 저애가 못된짓의 앞장에 섰겠구나.)

거리에서 돌다보니 낟알 한알한알에 농사군의 피땀이 얼마나 슴배이는지 모르는 아이, 이애를 단단히 정신들게 해야 한다.

김기송동지는 강진혁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얼른 말이 나가지 않았다.

아이때는 한두살차이가 엄청난것이여서 서슴없이 강진혁에게 말을 걸수 없었던것이다.

하지만 담찬 기송동지는 동안을 두었다가 입을 열었다.

《진혁동무, 진혁동무.》

유격구에 들어온 애니 동무라 불러야 할것이다.

강진혁은 눈시울을 실오리같이 약간 들었다. 동무란 부름이 선데다 그렇게 부른 소년이 당돌한 생각까지 들었다.

실눈속에 여겨보니 다부지게 생겼으나 자기보다 퍽 작았다.

(이애가?…)

강진혁은 촌아이들을 좀 낮추보고 살았다.

그애가 살던 조양촌은 농촌이였으나 길회선철도가 뻗으면서 공사판의 동아리에 들었다. 정거장이 들어앉자 8도구 못지 않은 거리로 되였으며 그래서 장마당에서 지짐장사를 하던 어머니가 국밥집을 폈다.

중국사람들은 단고기국을 먹지 않는다.

거리에는 말같은 개가 득실거리지만 그 값은 무척 눅었다.

하여 진혁이네 철원국밥집은 번창해져 처녀 둘을 심부름군으로까지 두었고 그 과정에 진혁은 조금 거드름스러워졌던것이다.

강진혁의 옆에 바투 누워자던 꼬마 박귀남이 놀란듯 일어나앉았다. 그의 눈에 대바람 겁기가 어렸다.

그애는 조양촌에서 멀지 않은 계수동에서 살았는데 부모는 다 지주집머슴이였다. 열살때부터 민지주네 머슴살이를 했던 부모는 마흔살 되여서야 가정을 이루고 첫 아들을 보았다. 자식이 너무 귀해 귀남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박귀남은 약간 떨리는 손으로 강진혁의 가슴을 공손히 흔들었다.

《형님, 형님, 깨나라요.》

작은 일에도 겁이 덮치는 그애는 대장이 깨운다는 말은 잇지 못했다.

열흘전에 이리로 들어온 후 애들을 휘여잡고 돌아치다가 잠만 자군 한 강진혁은 누워있긴 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하촌애들이 다가오자 눈을 감고 잠시늉을 냈던것이다.

박귀남이 흔들어 깨웠으나 끄떡 움직이지 않던 강진혁은 《뭘 그래?》하면서 역증을 내고나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무척 곤한듯 하품을 뿜으며 앞에 선 김기송동지를 치떠보았다.

너는 뭐야? 하는 위압이 섞인 건방진 자세다.

방금 여기 애들에게 김기송동지가 대장이라고 알렸던 하촌애가 덤벼치며 진혁에게 말을 섬겼다.

《구공청하구 혁명정부에서 이애 보고 대장으로 일하라 했어. 우리가 옆에서 다 들었어. 이애는 하촌아동단 분단장이야.》

이 말에 강진혁의 눈섭끝이 치켜졌다.

셈평좋게 누워있던 다른 애들도 부실부실 일어났다. 이미 와있던 애들은 앉은 진혁의 뒤에 담장을 둘렀다. 하촌애들이 기송동지의 뒤에 몰켜섰다.

김기송동지는 강진혁을 겨눠보다가 눈길을 뒤에 선 애들에게로 옮겼다. 첫마디부터 흥분에 떨렸다.

《너희들도 집 잃고 식구 잃은 애들이겠지? 여긴 왜 들어왔어? 남의 집 물알 든 곡식을 들장내려고 들어왔어?》

이미 여기 와있던 애들은 대바람 긴장을 느끼며 눈둘바를 몰라했다. 이애가 보통이 아니구나 하는 공포까지 들었다.

기송동지의 《총알》은 앉아있는 진혁에게로 날아갔다. 목소리는 더욱 맵짜졌다.

《진혁동무, 동문 뭐야? 여긴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동무들을 바로 이끌어야지. 여긴 노라리판이 아니야. 혁명하는데야.》

김기송동지의 입에서 거친숨이 나왔다.

강진혁은 앉은자리에서 벼락을 맞는것 같았다. 몸이 가드라들었다.

하지만 한마디만은 억울했다. 내가 애들을 나쁜 길로 끌었다구?

그렇지만 기송동지의 기세가 어찌나 거세찬지 항변의 말을 입에 올릴수 없었다.

기송동지는 동무들을 둘러보며 말에 힘을 주었다.

《이제부터 일해야겠어. 들춰낸 감자밭의 감자알들을 몽땅 거둬야겠어. 줄기만 잡고 뽑았을테니 옆으로 깊이 묻힌 감자알들은 그냥 남아있을거란 말이야. 그걸 몽땅 파서 밭주인들한테 갖다줘야겠어.》

이미 있던 애들은 머리를 수굿하며 쭈밋거렸다. 그새 놀기만 했던터라 갑자기 일하자니 뻐근했던것이다.

그러나 하촌애들은 《하자요.》, 《하자요!》 하며 활기를 띠였다. 그들은 어제의 참경에 눈물이 솟구쳤고 원쑤를 갚자고 이리로 향했던 걸음이 되짚여졌던것이다. 그러면서 아까 물투성이 콩청대판에 섞여들었던 일도 뉘우쳐졌다. 마을에 있을 때는 탱탱 여문 콩으로 청대를 해도 온 동네가 법석 끓군 하였다.

김기송동지는 목소리를 낮췄으나 진혁이 오도가도 못하게 조였다.

《진혁동무, 감자를 갖다줄 때 밭주인들한테 잘못을 빌수 있겠어? 동무가 〈대장〉, 주모자가 아니야.》

어깨가 내려앉았던 강진혁은 놀라움에 머리를 들었다. 눈자위에 불쾌감이 번졌다.

진혁은 온 식구를 잃자 여기저기 방황하다가 이리로 들어온 애다. 장재촌에 유격구가 서며 새세상이라는 말에 어디 들어가보자 하는 생각에 찾아들어온 애였다.

강진혁의 옆에 여전히 붙어앉아있는 박귀남도 무서움에 사로잡혔다. 저런 대장밑에서 어떻게 견딜가?

진혁이와 함께 유격구에 들어온것이 후회되기까지 했다.


김기송동지는 감자를 캐려면 호미가 있어야 하고 담을 포대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데 가서 구해올가?

이 동네에는 이미 살던 집들에나 있을것이다.

그런데 동네에 새로 나타난 애들을 두고 그 집들에서는 줄욕을 퍼붓고있을것이다. 몇번 밭을 다치는걸 보고 허둥지둥 달려가 목터지게 고함도 질렀을것이다.

그런 집에 찾아갔다가는 뺨맞기가 십상이다.

(어떻걸가?)

생각끝에 기송동지는 앞에 선 애들에게 말했다.

《이 산에서 길고 뾰족한 돌들을 주어야겠어. 밭에선 돌덩이를 찾을수 없어. 농사군들은 밭을 제 자식처럼 다루거든.》

앞에 적당히 둘러선 애들은 눈을 꺼벅거렸다.

(돌은 모아서 뭘 하자는거야?)

하촌애들도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진혁도 마지못해 일어섰고 그의 그림자라고 할수 있는 박귀남도 애들속에 끼여섰다.

《감자를 캐려면 호미가 있어야잖아? 그런데 얻을데가 없거든. 그러니 길고 뾰족한 돌로 남은 감자들을 캐자는거야.》

시뿌둥해 서있던 강진혁의 붕어입이 비웃음에 이지러졌다.

(헹, 여기는 석기시대로구나.)

김기송동지는 말에 그루를 박았다.

《돌로 판다고 하지만 한알도 남기지 말아야겠어. 힘들더라도 깊이 파헤쳐봐야 해. 자, 그런 맞춤한 돌들을 찾자.》

아이들은 생기까지 띠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기송동지의 진정이 농사군의 자식인 그들의 마음을 울렸던것이다. 이곳에 이미 와있던 애들은 저들이 한 일이 창피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강진혁은 돌을 찾는척 하며 멀어지다가 뒤에 달린 박귀남에게 불퉁스레 말했다.

《우린 먼데 가서 놀자. 시시하게 돌로 감자를 캔단 말이야?!》

박귀남은 눈에 겁기가 어렸으나 그의 뒤를 따랐다. 친형으로 여기며 사는 그의 말에 엇설수 없었던것이다.

김기송동지는 뚜져놓은 감자밭에 가서야 강진혁과 박귀남이 꼬리를 사렸다는걸 알았다.

괘씸한 생각이 불끈 치밀었다. 당장 동무들을 풀어 끌어오고싶었다.

그러나 마음을 누긋이 눌렀다. 첫날인데 동무들을 지내 세괃게 다루면 안될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가슴에 모를 세웠다.

(어디 보자.)

밭에 진거름을 어찌나 많이 주었는지 검실한 땅이 부근부근했다. 일이 베차리라 여겼던 애들은 어깨바람이 나서 감자를 캐나갔다.

감자무지가 여기저기에 무둑히 솟아올랐다.

기송동지는 흐뭇한 생각보다 알찌근한 마음이 몇갑절로 컸다.

(야, 다치지 않았다면 열곱의 소출은 냈을걸.)

강진혁이 몸을 사렸으니 내가 밭임자를 찾아가 사죄해야 한다. 마을에 내려가 물으면 대뜸 밭주인의 집을 찾게 될것이다.

진혁이네가 다른 밭들에도 손을 댔을테니 며칠을 품놓아 다 오늘처럼 처리해야 한다.

김기송동지는 아동단원이기에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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