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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회


제1장 상처입은 사나이


3


초막에 《령감귀신》을 들여앉힌것은 돌망골사람들에게 있어서 큰 우환거리였다.

어쨌든 숨쉬는 생명이니 구완을 하는것이 인륜인지라 동정깃을 꼬깃꼬깃 쥐여비틀며 눈물을 찔끔 짜는 솔매의 등을 억지로 떠밀어 초약을 달이게 하였지만 그 겁많은 처녀가 초막의 귀신상을 한 사내의 신음소리에 화들짝 놀라 하얗게 질려 달려왔을 때는 마치 자기가 당한 일처럼 가슴들을 모두어잡았다.

더우기 솔매가 그때 들은 앓음소리를 함정에 빠진 승냥이의 울음소리 비슷한 무시무시한 악청이였고 자기를 바라보는 눈길은 음험하다 못해 소름까지 끼치더라는 터무니없이 보탠 말방아에 낯색들이 하얗게 질리기까지 하였다.

그날부터 마을에서는 문밖출입도 제대로 못했다. 사람들은 밤이 되면 요강을 들여다놓고 집식구들이 돌려가며 소피를 보게 하였고 참대창과 실한 몽둥이를 가져다 머리맡에 놓고서 불편한 잠에 들군 하였다.

끼식때가 되면 마을의 사내종자인 공서방네 첫째 덕쇠에게 보리밥이 담긴 밥그릇과 산나물을 담은 종지 하나를 들려보내군 했는데 금방 총각꼴이 잡히기 시작한 그 《대장부》가 모재비걸음으로 초막가까이로 갈 때면 마을사람들모두가 숨소리를 죽이고 지켜보았고 초막입구에 무사히 밥그릇을 팽개치고 겅둥겅둥 뛰여올 때는 저저마다 안도의 숨을 크게 내불군 하였다.

여하튼 인적이 드물어 한적하던 마을에 난데없는 불청객이 뛰여들어 불안스럽기 그지없었다.

초막앞의 음식그릇은 이튿날엔 귀때기가 허물리웠고 그 다음날에는 절반이 축나더니 한주일째 되는 날부터는 말끔히 없어졌다.

그때부터 마을에서는 초막의 불청객이 이따금 문밖출입을 하는것도 보았고 스무날이 지난 이즘에 와서는 밖에 나와 허리를 늘씬늘씬 휘돌리며 몸놀림을 하는것도 보게 되였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그의 험상한 얼굴모습과 가을날의 곰서방같이 우람진 체통에 얼이 빠져 《문초》할 엄두를 못 내고 여전히 끼식때가 되면 초막앞에 밥그릇을 놓아주군 하였다.

마을사람들이 또다시 좌상인 홍령감네 집에 모여들었다.

《자, 이젠 저놈을 어쩌면 좋겠느냐?》

《어쩔게 있나요. 모두가 달라붙어 오라를 지어서 군청으로 끌고가야지요.》

《모르는 소리. 군청에서 우리 사정을 들어줄게 뭔가? 그리구 예로부터 도적은 잡지 말고 쫓으랬어.》

《그럼 쫓든 얼리든 빨리 보내야지요.》

《암, 보내야 하구말구. 가뜩이나 낟알바른 이 골안에서 저 덩지큰 도둑놈을 섬기다가 모두 굶어죽겠네.》

이렇게 이구동성으로 합의가 이루어질무렵에 문밖에서 투닥거리며 누군가 마당가를 가로질러 뛰여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돌쩌귀가 떨어지도록 문짝이 벌컥 열리더니 덕쇠가 문지방에 걸채일듯 헤덤비며 들어섰다. 그리고는 숨넘어가는 소리를 질렀다.

《저… 저기 동구밖에… 사람들이 나타났어요.》

《뭐? 저 풀막의 그 귀신말이냐?》

《아니예요. 말쑥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예요.》

방안에서 안도의 숨이 터져나왔다.

풀막귀신이 아닌 다음에야 사람꺼릴 까닭이 없을듯싶었다.

《녀석, 간 떨어질번 했다.》

방안의 사람들이 덕쇠에게 곱지 않은 눈을 흘기며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어느새 들어왔는지 마을가운데 서있는 늙은 오동나무밑에서 무명바지저고리에 웃몸에는 서양옷을 걸친 두사람이 마을에 있는 사람은 모두 나오라고 고래고래 목청을 돋구고있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머리수를 눈놀림으로 세여보고 마을사람들이 다 모인듯 하자 둘중의 키가 작고 몸이 박달몽치처럼 단단하게 생긴자가 한발자욱 나서서 좌중에 굽석 절을 하고 한바탕 연설을 해댈 모양인지 제법 캑캑 헛기침을 하였다.

《에또, 이런 심심오지 척박한 골짜기에서 고생스럽게 살아가느라 얼마나 고생막심하옵나이까? 본인은 평산일진회원 계부길이올시다. 그리고 이 사람은 역시 평산일진회원인 옥칠이라는 사람이올시다.》

《박달몽치》의 뒤에 있던 물독같은 사내가 한발을 성큼 내짚으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례절을 아는듯 하나 첫마디가 이 나라의 례의범절같지 않은지라 마을사람들은 골살을 찌프렸다.

하지만 그자는 그런것에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에- 우리는 통감부에 계시는 이또통감님의 령에 따라 나온 일진회 회원들인바 이목구비가 바루 잽힌 사람을 찾아 이런 궁벽한 산골에서 썩이지 말고 저 밝고도 넓은 도회지에 나가 문명을 누리게 하려고 왔소이다.》

마을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다시한번 말해주구려. 이자 무슨 통이랬소?》

《통이 아니라 이또라는 통감님이라누만.》

《통감님은 대감님과 어떻게 다르오?》

《이똔 대체 뉘기요? 거 우리 이름같지 않구려.》

《통감부라는덴 뭘 하는데요?》

방금 들은 말이 모두 귀에 설었던지라 입가진 사람들은 다 한마디씩 할 잡도리였다.

누군가가 혀를 낄낄 차며 알은체를 했다.

《넨장, 귀구멍엔 몽땅 참대순을 박았나. 듣고도 몰라요? 이 어둑시근한 골짜기에서 사는 사람들중에 밴밴하게 생긴 사람들만 골라가지구 한성같은 큰 마을엘 데리고 가서 무명을 누비게 하는데라질 않소.》

《알기는 잘 안다. 이제 금방 문명이랬지 무명을 누빈댔어? 제 주제에 누구 귀구멍타발이야.》

퉁을 놓은 사람이나 면박을 받은 사람이나 제풀에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웃었다.

계부길이라고 자기를 정중히 소개한 《박달몽치》가 대세의 흐름도 모르고 사는 이 우매한 산골사람들을 가련하게 바라보다가 말했다.

《에- 이또통감님은 일본정부의 큰 량반으로서 우리 조정의 대소사에 빠짐없이 참녜를 할 직분을 가진분이올시다. 그 통감님의 분부에 따라 인물예쁜 처녀들을 이런 심심산골에서 살게 하지 말고 번화가에 나가 문명한 일을 시켜 팔자를 고치게 해주려고 불원천리 찾아왔으니 이 마을에서도 처녀들을 선발하여야겠소이다. 에- 그래서 여기에 곱살한 계집애가 하나 있다는걸 이미 알고있으니 옷단장 곱게 시켜 우리가 데리고 가야겠소이다.》

그제야 이자들이 하는 수작질이 어떤것인가를 알아들은 사람들은 분격을 터뜨렸다. 마을의 처녀애란 달범령감의 외동딸 솔매뿐이다. 그러니 솔매를 데려갈 음흉한 속심으로 기여온 놈팽이들인것이다.

저놈들이 이 깊은 골안에서 한번도 나가지 않은 솔매를 어떻게 알아냈을가? 혹시 요전날 목통속의 솔매를 훔쳐본 놈들이 저것들이 아니야?…

장서방이 불끈하여 한걸음 나섰다.

《말같지 않은 소릴 걷어넣으시우. 왜놈들이 우리 마을 솔매를 어떻게 알구 오라가라 한다는거요?》

장서방의 말에 《박달몽치》가 뱁새눈이 되여 노려보았다.

《다 지껄였어? 네놈이 주먹맛을 좀 봐야 아가리질을 못할텐가? 이봐 옥칠이, 이녀석의 아가리를 분질러놔야 내가 맘이 편하겠다.》

지금껏 뒤에 서있던 옥칠이라고 불리운 우직스럽게 생긴자가 장서방에게 다가들었다.

그자는 다짜고짜 장서방의 옷깃을 거머쥐였다. 한번 끙하고 힘쓰는 소리가 들렸는데 체통이 작지도 않은데다 기운도 제일이여서 마을에서는 《도끼장수》라고 불리우던 장서방이 허양 둬고패 휘둘리우고도 서너발이나 인사불성으로 날아가 땅바닥에 나딩굴었다.

장서방이 일어서면서 허리춤에 늘 차고 다니는 도끼를 뽑아들었지만 다시 날아드는 옥칠이란 놈의 발길질에 채워 더욱 만신창이 되였다.

《우리 일진회와 맞서는자는 뼉다귀를 분질러놓는다.》

《이게 무슨짓이냐? 백주에 사람을 치다니…》

홍로인이 버럭 소리를 치자 《박달몽치》가 상판을 실룩거리며 위협적으로 다가들었다.

《이 두상태기, 감히 뉘들에게 반말이야. 나이를 헛먹었으니 버릇을 가르쳐줘야 할가부다.》

마을사람들의 낯빛이 새파랗게 질리였다. 이제 저놈의 완력에 늙고 쇠약한 좌상로인이 단매에 결딴이 나고야말리라는 위구심은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벌써부터 눈깔에 살기를 가득 띠우고 다가드는 《박달몽치》의 기상이 꼭 무슨 일을 낼 잡도리였다.

그자는 홍령감의 멱살을 틀어잡고 두눈을 부릅뜨며 갓난애기머리통만 한 주먹을 쳐들었다.

마을사람들은 너무도 무시무시한 광경에 기가 질려 비명소리도 내지르지 못하였다.

홍령감을 향하여 그자의 주먹이 날아가려는 순간 갑자기 그자의 팔이 뒤로 비틀리였다.

아귀센 그 힘에 《박달몽치》는 숨넘어가는 소래기를 질렀다.

《아구구… 내 팔 꺾인다.》

금시 누구의 뼈다귀를 분질러놓는다던 놈이 도리여 제 팔이 꺾인다고 아부재기를 치는 바람에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지였다.

그자의 팔을 비틀어 똬리처럼 만들어놓은 사람이 바로 자기들이 풀막에 팽개쳐둔, 그로 해서 지금껏 불안속에 떨게 하던 그 《령감귀신》임을 알아본 마을사람들은 금시까지도 그를 두고 온갖 욕이란 욕을 다 퍼붓던 일은 까마득히 잊은채 기대를 가지고 바라보았다.

가까스로 아귀센 손탁에서 벗어난 《박달몽치》가 금시 부어오를듯 붉어진 팔목을 붙들고 악의가 가득찬 눈길을 던졌다.

금방 장서방을 솜씨있게 둘러메치고 시뚝해서 코가 하늘로 향하도록 하고 서있던 완력쟁이도 얼굴에 병자의 기색이 력력하나 눈빛이 칼날같은 억대우를 보며 불안한 상을 짓고 씨벌였다.

《네놈은 웬 놈이냐?》

사나이는 그러는 작자들에게서 칼날같은 눈길을 떼지 않고 나직하나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여기서 사라져라. 그렇지 않으면 네놈들의 주리를 돌려앉히고말테다.》

그 작자들이 서로 마주보다가 이발을 부드득 갈았다.

《네놈상을 보니 화적이 분명하구나.》

《박달몽치》의 손이 괴춤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닭다리같은 물건짝이 꺼내지는것과 동시에 사나이의 발길이 번개처럼 날아갔다.

《닭다리》가 하늘공중으로 날려가고 《박달몽치》가 뒤로 허궁잡이를 하며 나딩굴었다.

사나이는 련이어 돌덩이같은 주먹을 휘둘러 뒤에 있는 놈을 쳐갈겼다.

다시 몸을 수습한 두 놈팽이가 량옆으로 갈라지더니 이번엔 동시에 와락 달려들었다. 사나이가 왼쪽을 향하여 발을 휘돌리는것과 함께 오른쪽에서 덤벼드는 놈의 턱주가리를 이마로 받아넘겼다. 두놈이 거의 동시에 허공에 들렸다가 돌덩이처럼 땅바닥에 떨어졌다.

어찌나 호되게 맞았는지 신음소리조차도 내지 못하였다.

땅에 엎어져 입에 피거품을 괴여올리다가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놈들은 억대우같은 사내의 완력에 기가 질려 두눈을 떼룩거리더니 무작정 동구밖쪽으로 들고뛰기 시작했다.

죽을둥살둥 모르고 달아나는 그자들의 뒤를 지그시 바라보던 사나이는 한동안이 지나서야 땅바닥에 떨어진 륙혈포를 집어들고 마을사람들쪽으로 돌아섰다.

마을사람들은 사나이를 얼없이 바라보고있었다.

그때에야 사람들이 지금껏 산귀신으로 생각했던 사나이의 얼굴을 세세히 보게 되였는데 체구처럼 생김생김이 큼직큼직한 그의 모습은 지금껏 애써 머리속에 떠올려보던 도적놈상이 아니라 푸수한 농군의 모습이였다.

저런 사람을 도적으로 생각하다니, 쯧쯧… 가난한 백성들에게 은인이 되여주기를 즐겨하는 《화적》일지는 몰라도 절대로 도적은 아니야.

사나이는 상처자리가 띠끔거려서인지 얼굴을 찡그리며 누구에게라 없이 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가 어디우?》

마을사람들이 퀭해서 그를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서흥 률리면 류정리에 속하는 돌망골이라는 곳이예요.》

《혹시 거긴 화적이 아니요?》

사나이는 상처의 아픔때문인지 아니면 《화적》이냐고 묻는 소리가 불쾌해서인지 다시금 얼굴을 찡그리며 모두를 향해 대답했다.

《김정환이라고 합니다. 평산의병대에 있수다.》

《평산의병대?》

《김정환?》

마을사람들의 눈길이 서로 마주쳤다.

《그럼 그전에 덕쇠 아범이 장거리에 나갔다가 듣고 온 저 평산 수구리의 배시락골에서 신식총을 가진 왜놈군대 셋을 단칼에 뎅겅해버렸다는 그 김정환이란 말이요? 그리구 서흥 돌고개에서 싸돌아다니던 제비여울수비대 왜놈 일곱을 혼자서 순식간에 료정냈다는…》

사람들을 그냥 놔두었다가는 이 주변에서 그간 벌어진 싸움들을 차례차례 다 꼽아댈 판이였다.

김정환은 그러는 그들의 말을 밀막을 심산으로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돌고개에서는 나 혼자 왜놈들을 족친것이 아니지요. 우리 사람들 여러명이 함께 해치웠습니다.》

마을사람들의 얼굴에 화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런걸 우린 강도가 아니면 도둑인가 했수다.》

《아이구나, 세상에… 우리가 왜놈잡는 장사를 몰라봤구만.》

분이 할멈이 혀를 낄낄 차며 푸념조로 말했다.

《저렇게 멀쩡하게 생긴 사람을 놓고 귀신같다고 했으니… 눈깔들이 모두 썩었지. 누가 그랬어? 뭐 령감귀신이 어찌고어째? 이보게 도끼장수, 임자가 그 말을 첨 했지?》

장서방이 바빠나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할마니, 내가 그랬나요? 나야 령감귀신이야기를 해준것뿐인데 괜히들 겁이 덜컥해가지고 저렇게 좋은 사람을 박대했지요.》

장서방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가 웃어버리고말았다.

《자, 모르고 지은 죄는 염라대왕도 따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우리가 사람을 잘못 보고 박대를 했은즉 죄는 아니더라도 미안스러운 일은 분명하니 이제라도 봉창을 하자구요.》

사람들이 김정환을 얼싸안고 저저마다 자기 집으로 끌었다.

홍로인은 그러는 사람들을 제지시키고 마을에서 제일 깨끗하고 아래목이 뜨뜻한 솔매네 집에 들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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