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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회


제1장 상처입은 사나이


2


김정환은 청신한 기운에 눈을 떴다.

눅진눅진한 마른 풀냄새가 기분좋게 흘러들었다.

풀막천정에서 새여들어오는 해빛이 눈을 시그럽게 하였다.

풀막입구에 반쯤 들쳐진 거적짬사이로 밖을 내다보니 저쯤 떨어진곳에서 까만 머리채를 곱게 꼬아 허리까지 내리드리운 웬 처녀 하나가 등을 돌려대고 앉아 초약을 달이고있었다.

약탕관에서 지글지글 끓어넘치는 초약냄새가 별스러운 상쾌한감을 안겨주었다.

여기가 대체 어디인가? 난 왜 이 풀막에 누워있으며 함께 있어야 할 기봉대와 두남이는 어째 보이지 않고 저 낯모를 처녀는 또 누구인가? 그리고 한정만이는?…

자기의 어깨에 난 상처를 감싸고있는것이 기봉대가 홀어머니에게 주려고 약방에서 심부름군노릇을 하며 한푼한푼 모은 돈으로 일전에 평산장에 나가 장만하여 몸에 품고 다니던 저고리라는것을 알아본 김정환은 점차 정신이 또렷해지며 한성공격에서 실패하고 왜놈들의 추격에 걸려들었던 일이며 금천의 어느 한 숯구이막에서 상처를 치료받던중 왜놈들의 수색에 걸려들었던 일들이 방불히 되살아났다.

한성의 창의문일대에서 심한 부상을 당하고 쓰러진 자기를 두남이와 봉대가 둘쳐업고 가까이에 있는 대한협회 평의원 고익재의 집으로 뛰여들던 일이 먼저 떠올랐다.

한성의 높은 량반집에서 창두(봉건사회에서 하인으로 부리는 남자종)로 있던 두남이가 리진룡과 인연이 있고 또 의병대일을 물심량면으로 도와나서고있는 량심적인 문인인 고익재의 집을 기억해냈던것이다.

두남이가 평산의병대로 찾아오게 된 동기도 바로 고익재의 주선이 있었기때문이라는것은 김정환이 후에 안 사실이다.

그날 밤 고익재는 한밤중에 부상자를 업고 뛰여든 두남이를 선뜻 안방으로 이끌었다.

부상자리에서 피가 계속 흘러내리는것을 본 고익재가 서둘러 사랑방에 대고 소리쳤다.

《려은아, 이리 오너라.》

자박자박 발자국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며 웬 처녀가 나타났다.

그때 방안에 피투성이가 되여 누워있는 자기를 보고 그 처녀가 범 본 토끼처럼 화닥닥 놀라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고익재가 그러는 딸에게 버럭 소리쳤다.

《뭘 그렇게 서만 있느냐? 얼른 약함을 찾아오지 못할고…》

고익재의 버럭 소리에 아련해보이는 딸이 얼른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상처를 대충 처치하고났을 때 대문밖에서 망을 서던 봉대의 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왜놈들이 집뒤짐을 하고있어요. 빨리 여길 빠져나가야 해요. 어서요.》

봉대의 말소리가 끝나기 바쁘게 두남이가 그를 다시 둘쳐업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자기를 봉대와 두남이가 번갈아가며 등에 업고 한성을 빠져나왔지만 왜놈들의 추격에 걸려들고말았다. 왜놈들의 추격에서 벗어나보려고 하루낮, 이틀밤을 울창한 수림속을 헤치며 넘은 산은 얼마이고 골은 또 몇개였으랴.

그렇게 되여 이른 곳이 금천의 어느 한 이름모를 산기슭이였다.

그들은 거기에서 더는 움직일수 없게 되였다.

한것은 김정환의 상처가 점점 더 심해진데다가 며칠을 굶은 기봉대와 두남이가 쓰러질 지경이 되여버렸던것이다. 더이상 갈 곳도 없었고 갈수도 없었다.

의병장 박정빈이가 도피해버린 이후 가뜩이나 유명무실하던 평산의병대가 한성공격의 실패로 산지사방 흩어지고말았으니 이제 어디를 찾아간단 말인가.

평산의병대의 돌격장인 김창호와 지휘성원인 리진룡 그리고 김정환과 몇달동안 생사고락을 같이한 한정만이가 못견디게 그리웠다.

그들의 행방을 알았으면 좋으련만 돌격장인 김창호는 김정환이 일부 의병들을 이끌고 한성공격에 참가하기 위해 한성으로 떠나기 훨씬 이전에 평산의병대의 식량을 마련하기 위하여 자기의 수하대원들과 함께 배천일대에로 진출하였고 리진룡이 역시 수하의 의병들을 이끌고 해주일대로 나갔던것이다.

한성으로 함께 떠났던 한정만은 김정환이 세검정을 거쳐 창의문으로 돌입하려고 할 때 허위의 부대가 진을 친 동대문쪽에서 협공하기로 하고 헤여진 후로는 생사여부를 알길이 없었다.

모두가 뿔뿔이 흩어진 지금의 상황에서는 솔숲에 떨어진 바늘찾기로 되여버린 그들을 찾아다니기보다 앉아 기다리는것이 훨씬 더 타당했다.

하여 그들은 어느 한 숯구이막에 주저앉고말았다.

기봉대와 두남이가 밤중에 주변마을들을 돌면서 먹을것을 구해들이고 약초를 캐여 김정환의 부상자리를 치료해주었다.

그렇게 달포가량이 지난 어느날.

갑자기 왜놈들이 숯구이막에 달려들었다.

너무도 급작스럽게 들이닥친 왜놈들과 그야말로 위기일발의 순간들이 련이어 지나쳤다. 기봉대와 두남이의 무진 노력에 의하여 상처가 거의 아물어가고있던 때여서 김정환은 왜놈들과 무서운 힘으로 싸움을 치를수 있었다.

그들은 많은 왜놈들과 참으로 힘겨운 싸움을 벌렸다.

대검을 휘둘러 왜놈들을 무자비하게 족치던 김정환은 어느결에 또다시 총탄에 맞게 되였다.

총탄이 배허벅을 뚫고 지나갔지만 그는 이를 사려물고 대검을 휘둘러 왜놈들을 쳤다.

하지만 그는 점점 기력이 진해지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금방 맞은 상처자리에서 피가 콸콸 솟구쳤고 한성에서 얻은 상처가 다시 터져 피를 내뿜기 시작했던것이다.

김정환은 끝내 기력을 잃고 쓰러지고말았다.

기봉대와 두남이가 금시 정신이 흐려드는 그를 둘쳐업었다.

그들은 산으로 올리뛰였다. 왜놈들이 악을 쓰며 뒤를 따랐다.

왜놈들을 뒤에 달고 그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달렸다.

왜놈들은 거마리처럼 따랐다.

봉대와 두남이는 서흥땅에 들어서면서 정신을 못 차리는 김정환을 어느 바위밑에 숨겨놓았다.

그리고는 피가 질벅하게 흘러내리는 그의 어깨에 기봉대가 품에 지니고 다니던 자기 어머니에게 주려던 저고리를 감싸주고나서 두남이와 함께 왜놈들을 따돌리기 위하여 반대쪽으로 달려갔던것이다.

그 다음은 어떻게 이곳까지 기여왔으며 이곳이 도대체 어디인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김정환은 눈을 꾹 감았다.

그처럼 큰 희망을 걸었던 한성에 대한 공격이 실패로 끝났다는 분노와 평산의병대의 막막한 앞길을 생각하면 가슴이 무딘 칼로 허비는듯싶었다.

목이 말랐다. 기갈든 입안이 저려들었다.

김정환은 초약냄새가 흘러드는 곳을 향해 말했다.

《이보시오, 물 좀 주오.》

밖에서는 기척도 없었다. 말이 입안으로 맴돌았을뿐 목소리가 나가질 않았던것이다. 다시 입을 놀려봤지만 여전히 허사였다.

김정환은 몸을 일으켜세우려고 움쭉하였다.

순간 온몸이 찢어지는듯 한 아픔으로 전률하였다.

음-

신음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란 처녀가 발딱 일어나 이쪽을 겁기가 가득한 눈으로 올롱하니 쳐다보았다. 반쯤 열려진 입구로 김정환의 눈길과 마주치자 덴겁을 하며 화닥닥 달아났다.

김정환이 처녀를 불렀으나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그 누구든 곁에 있어주기를 바랐으나 처녀의 모습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맥을 잃고 들었던 머리를 바닥에 떨구었다.

초막짬사이로 먼 하늘가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한정만이와 최순지, 신군선이와 기봉대며 두남이를 비롯한 의병들이 그리워났다.

헤여진지 얼마 안됐겠지만 꼭 한해동안 헤여진듯 했다.

반년가까이 생사를 같이한 그들의 얼굴이 하나둘 떠오르면서 지난해 9월 평산군 궁하면(현재 연안군 도남리) 도성제에 있는 산두재(서당방)에서 제천반일의병장이였던 류린석의 충고에 의하여 의병대를 조직하던 일이 선히 안겨왔다.

그때 류린석은 《망국의 위기에 직면하여 2천만동포가 일제히 의병투쟁을 벌리는것이 옳은 일》이라고 하였다.

만사람의 가슴을 쾅쾅 울리게 하는 격문도 발포되였다.

《저 흉악한 섬오랑캐놈들이 임금의 자리를 전하는데 무슨 관계가 있으며 또 우리 임금이 엄연히 존재하고있는데 어떻게 통감이라는 명칭을 말할수 있겠는가… 노예가 되여 사는것은 사는것이 오히려 수치이다.》

왜놈들이 고금력사에 없는 교활하고 흉맹한 위협으로 고종황제대신 대가 약한 그 아들(순종)을 황제자리에 들여앉히고 《정미7조약》을 날조한 다음 통감의 지휘하에 차관정치를 실시하고있는 사실을 규탄하였다.

그의 격문을 받고 집결장소로 선정된 평산에서 수십리나 떨어진 깊은 산중인 도평으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었다.

도평에서 의병을 조직한다는 소식은 린근마을들은 물론이고 평산땅에서도 제일 깊은 골짜기인 쑥골에도 날아들었다.

쑥골에 들어가 화전을 일구며 살아가던 김정환도 심장의 피가 끓어올라 의병대에 뛰여들었다.

그때 평산의병대에 참가한 수가 천명을 넘었다.

의병준칙을 만들었고 십여년전에 의병투쟁을 벌린적 있는 박정빈을 의병대장으로, 무과에 합격한 일이 있는 우병렬을 부대장으로 하여 정연한 의병대가 군기를 갖추게 되였다.

의병대에 든 김정환은 희열에 차서 힘든줄 모르고 뛰여다니였다.

왜놈의 5련발짜리 신식보총의 시꺼먼 총구가 가슴팍에 면바로 겨누어져도 무자비하게 들이받아 꺼꾸러뜨리고야말았다.

평산일대에서 벌어진 여러 싸움에서 억눌린 분풀이를 해댔다. 연안과 해주에 도사리고있는 왜놈수비대를 격멸하는 전투들에서도 그는 무섭게 싸웠다.

그런데 왜놈들이 틀고앉은 본거지인 한성에 대한 공격이 있기 얼마전에 의병장이였던 박정빈이 왜놈들과의 싸움에서 의병대의 손실이 커지자 초기의 뜻을 헌 짚신짝 버리듯 집어버리고 고향으로 도피해버린 계기는 그에게 많은 의문을 던져주었다.

왜놈들에 의하여 《을사5조약》이 날조되였고 고종황제가 강제퇴위되였을 때 눈물을 뿌리며 피의 결산을 맹세하던 박정빈이가 왜놈들과의 싸움에서 함께 총을 들고 싸움에 나섰던 유생들과 의병대원들의 죽음을 대하자마자 겁을 먹고 싸움마당에서 그렇듯 쉽게 도망해버렸다는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수 있단 말인가. 왜놈들과의 싸움길에 나설 때에야 나라를 위하여 목숨도 바칠 각오를 가졌다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싸움을 몇번 하면서 동료들의 죽음을 보게 되자 겁을 먹고 수많은 의병들과 백성들의 기대를 그렇듯 쉽사리 저버릴수 있단 말인가. …

이번 한성공격에서 리린영의 처사는 김정환의 그러한 의문을 더욱 짙게 하였다.

한성을 공격하여 《을사5적》들과 통감부를 없애버리고 왜놈들에 의해 강제퇴위된 고종을 다시 황제자리에 복귀시킬것을 공동의 목적으로 내세운 허위와 리은찬의 천거로 13도창의대장으로 된 리린영은 가까운 곳에는 직접 소모장들을 보내여 의병들을 모집하고 먼곳에는 격문을 띄워 의병투쟁에 적극 일떠세우는 호소도 하였다. 그의 호소를 받고 많은 의병들이 한성공격을 위한 전술상 중요지대인 경기도 양주군의 왕방산으로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창의대장 리린영이 보낸 격문은 평산의병대에도 날아들었다.

이미 박정빈이가 도피해버렸고 평산의병대의 유격장이였던 유달수가 왜놈들과의 싸움에서 희생된 이후여서 지휘체계가 마비된 상태인지라 김정환은 의병대의 동료인 한정만과 상론을 하였다.

평산의병대가 지휘성원들을 거의다 잃고 갈팡질팡하고있는 상황이지만 나라를 구원할 일루의 희망인 한성공격을 외면할수는 없었던것이다.

하여 김정환과 한정만은 의병들중에서 가장 용맹한 사람들을 선발하여 한성싸움에 참가할것을 결심하였다.

그들은 리린영의 격문을 통하여 이번 한성공격에 대한 명확한 표상을 한데 토대하여 작전방안을 구체적으로 세웠다. 김정환과 한정만이 세운 작전방안에 의하면 평산의병대는 리린영이가 13도의병대의 집결장소로 지적한 왕방산으로 갈것이 아니라 먼저 한성중심부에 새여들어가 적절한 때에 소동을 일으켜 왜놈들의 이목을 집중시켜놓자는것이였다. 그들이 이런 계획을 세운데는 왕방산으로 가는 길이 멀기도 하거니와 도중에 왜놈들과 맞다들리는 날에는 제 날자에 가닿지 못할수도 있다는 조바심때문이였다. 그래서 그들은 먼저 한성에 새여들어가 왜놈들의 이목을 끌어당겨 그 기회를 리용하여 공격하는 리린영의 부대와 협력하기로 락착을 짓고 의병들과 함께 한성으로 떠났던것이다.

갖은 신고를 다하여 한성일대에 이르렀지만 싸움의 정세는 그들이 기대하였던것처럼 흐르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김정환은 이끌고 간 대오를 갈라 한 대오는 한정만이가 이끌고 동대문부근에 진을 친 허위의 부대에 합세하도록 하고 다른 한 대오는 자기가 이끌고 세검정을 거쳐 창의문쪽으로 진격하였던것이다.

하지만 13도의병들이 공격준비를 끝내면 오르게 되여있던 북악산의 불빛신호는 끝내 오르지 못하고말았다.

13도창의대장 리린영이 한성공격을 앞둔 결정적시기에 부친상사를 당하자 수많은 의병들의 기대를 저버리고말았던것이다.

생각할수록 리린영의 행위는 배신행위처럼 수많은 의병들을 참을수 없게 하였다.

얼마전에 리린영이 쓴 《외국에 사는 동포들에게 호소한다》라는 격문에서 《총에 죽은 의로운 충혼이 될지언정 놈들의 수하에서 고기밥이 되지 말자.》라는 매우 비분강개한 표명을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겠는가.

려묘살이는 오랜 세월 량반들은 물론이고 백성들에게까지 숙명처럼 간주되여온 례법들중의 하나이다.

부모가 돌아가면 몇달 또는 몇년세월 묘지옆에 풀막을 지어놓고 술과 고기를 비롯한 풍성한 식탁과 마주하는것을 부모들에게 죄되는짓으로 여겨왔고 녀자를 가까이하는것과 같은짓은 불륜으로 여겨왔다.

이렇듯 충실한 효도는 있으되 그 효도우에 나라와 백성을 위한 충의가 선차로 놓여있다는것을 바로 이번에 한성공격을 주도한 리린영은 생각지도 아니하였다.

통분하다. 쪽발이 왜놈들에게 나라의 멱줄이 물어뜯기워 온 나라가 랑자한 피로 얼룩진 강토를 구원코저 일어나선 기개에 앞서 부친상사에 3년거상이 과연 선차이며 효자의 도리란 말인가.

임진조국전쟁때 이 땅에 침노한 섬오랑캐무리를 쳐부시기 위하여 부친의 려묘살이를 하던 김응서가 결연히 싸움길에 나서서 평양성을 수복한 애국적장거는 그래 불효행위로 규탄받은적이 과연 있었더란 말인가.

민족의 존엄을 되찾는것이 한가정의 효도에 비할바 못되는 장한 기개가 분명할진대 리린영은 진정한 충의의 참뜻을 헤아리려 하지 않았다.

한성에 대한 진공으로 국권을 수복하자는 그의 뜻이 자못 장하고 또 그것이 민족을 구원할수 있는 일루의 희망이였기에 13도의병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지 않았던가.

이번의 한성진공을 앞에 두고 13도창의대장이라는 리린영이 백성들의 기대를 저버리며 자식도리를 더 소중히 생각하지만 않았어도 이처럼 처참한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았을것이다.

상처가 쓰리였다. 아니, 그보다 가슴이 더 아파났다.

13도의병대를 이끌어 나라를 구원할 큰 인물이라고 기대했던 리린영의 배신행위는 평산의병대의 조락과 더불어 김정환의 가슴속에 한가닥의 희망으로 비쳐들던 한줄기의 빛발을 깡그리 없애버리고 온통 어둑캄캄한 암흑으로 만들어버렸던것이다.

박정빈의 도피와 리린영의 배신행위…

한가정을 유지하자고 해도 아버지의 엄한 훈계가 있어야 하듯이 한 나라를 위해 옳은 일을 하자고 해도 반드시 이끌어줄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하다면 그런 사람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김정환은 이미 지휘층을 거의 잃고 갈팡질팡하는 평산의병대의 막연한 정상앞에서 어찌할바를 몰랐다. 이대로 나가다가는 변변한 싸움도 못해보고 풍지박산이 돼버릴것만 같았다. 다른 지방들에서 맹활동을 벌리는 의병들이 못견디게 부러웠다.

풍산지방에서 포수들로 무어진 의병대가 홍범도의 지휘하에 왜놈들을 본때있게 족치고있다고 한다. 홍범도는 과연 어떤 사람일것인가. 곡산에서도 채응언이란 사람이 싸운다고 한다. 이들은 다 평민출신들이다. 출신이 평민이라지만 그 기개는 참으로 장했다.

김정환이 자신도 큰뜻을 품고 서당에도 다녔고 검을 차고 산에 들어가 무술도 익혔건만 큰 인물을 만나지 못해 이렇게 졸부가 되고있는것이다.

김정환은 두주먹을 으스러지게 틀어쥐였다.

이렇게 주저앉을수는 없다. 왜놈들과 기어이 결판을 보기 위해 목숨이 붙어있는 한 싸워야 한다. 그러자면…

빨리 리진룡과 김창호 그리고 한정만을 비롯한 의병대의 싸움군들을 만나 평산의병대가 다시금 활력을 되찾기 위해 새로운 방책들을 찾아내야 했다.

지금 당장은 한성에서 왜놈들의 총에 맞고 쓰러졌을 때 자기를 업고 산길을 달려온 두남이와 기봉대의 생사여부를 알수 없는것이 무엇보다 안타까왔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 되였을가. 왜놈들의 추격에서 무사히 벗어났는지?…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들의 생사여부를 알아보고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욕망뿐이였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더우기 지금 당장 급한건 목이 마른것이였다.

목구멍을 지지는 심한 갈증이 그를 참을수 없게 하였다.

김정환은 입을 사려물고 밖으로 기여나갔다. 초약탕곁에 물그릇이 보였다. 불과 댓보거리를 혼신의 힘을 모아 기여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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