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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회


제1장 상처입은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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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흥땅의 서북쪽에서도 맨 막바지인 돌망골은 척박하기가 낟알심어 북데기를 거두어들이는 곳이다. 골짜기가 너무도 깊은 여기는 리성계가 금방 권력을 잡은 직후에 고려의 높은 벼슬살이를 하던 어느 한 충신이 두 왕조를 섬기지 않는다는 지조를 지니고 은신하였던 자못 뜻이 깊은 사연을 안고있는 곳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하지만 수백년세월이 지나면서 그때 그 충신의 자손들이 하나둘 행적을 감추어 근간에 들어와서는 아예 인적이 없는 곳으로 되다보니 그 이야기의 진실여부는 똑똑히 알길이 없었다. 그게 혹시 누군가가 꾸며낸 전설인지는 알수 없으나 그때 량반일것으로 보아지는 범상치 않은 큰 무덤이 바로 산탁에 붙은 골짜기끝에서 쉰보쯤 올라가면 볼수 있는지라 그렇겠거니 하였다.

바로 이러한 심심산골에 전봉준의 갑오농민전쟁을 전후로 하여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세상을 등진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와 지금은 십여개의 가호를 가진 하나의 오붓한 마을을 이루었다.

여기 사람들은 서로가 자기들의 과거를 말한적도 별로 없고 이웃의 과거지사나 경력을 구태여 캐물을 생각도 아니하여 그럭저럭 한해두해 세월을 지나보내며 살았다. 그래서 집들을 가리키는 부름들도 이전에 재령쪽에서 살다가 들어온 집은 재령집이 되고 또 봉산에서 살다가 이 골안으로 살림을 옮긴 집은 봉산집이라 불렀으며 어디서 살았더라는 말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름자도 따지기 싫어 그저 공서방이나 장서방이라고 부르는 식으로 통했다.

이렇게 소죽은 귀신의 무덤속같던 마을에 얼마전부터 해괴망측한 일이 생겨나 마을사람들의 입을 그야말로 불이 달릴 지경으로 다사해지게 만들었다.

동네의 말썽많은 과부 설씨의 배가 불룩해지기 시작한것이 마을녀인들의 눈에 걸려들었던것이다. 마을사람들은 망녕된 그 일이 틀림없이 이 골안의 유일한 홀아비인 공서방의 작간이라고 수군거렸다.

그들이 밤마다 님그리움에 애매한 목침만 못살게 구는 외기러기들이라 몰래 래왕하는것이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설씨에게는 이남삼녀 다섯 자식이고 공서방 또한 삼남이녀 다섯 자식인데 거기다가 배속에 있는 아이까지 합치면 두손의 손가락을 다 꼽아도 모자란다고 입들을 비죽거렸다.

언제 그랬을가? 서로 래왕하는걸 본적이 없는데…

뻔하지 뭐. 산에서 만나면야 부처님인들 알턱이 있을라구… 숲속에서 몰래 만나 공서방이 먼저 바지괴춤을 풀었겠지. 혹시 알게 뭐람. 설씨가 먼저 그랬는지…

마을사람들 태반이 도리질을 해댔다.

예로부터 밭뙈기 하나 더 사느니보다 입 하나를 덜랬다고 그 많은 식솔을 합쳐 이 척박한 곳에서 올망졸망한 입들에 풀칠이라도 당할가 하는 걱정이였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 모이면 비오는 날 이영을 손질해달라고 설씨가 남의 집 문앞에 서는 일과 제가 입던 헌 적삼을 잘라 막내아들놈의 바지를 만들어달라고 공서방이 할 일 많은 이웃집 며느리를 불러내는 일이 더는 없게 될것이라고 좋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다.

그래도 옛 도덕관념을 입버릇처럼 외우는 케케묵은 축들은 공자님이 알았다간 큰일난다고 격분했고 좀 개명한 축들은 과부홀아비의 사정을 두둔해나섰다.

일단 얘기거리가 생기면 한계절도 작았다. 모이면 첫소리가 그 소리고 끝나는 소리도 그 소리였다.

골짜기도 깊고 사람구경도 헐치 않은 구석진 세상에서 몇 안되는 입들의 말방아질에 과부홀아비의 이름자가 산당집문풍지처럼 너덜너덜 해질무렵 바로 이 적막산골에서 정말로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졌다.

추위도 지나고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제법 따스한 기운이 감도는 한낮무렵 물을 끓여 목통에 붓고 함지목욕을 하던 솔매가 뙤창으로 사람의 그림자가 얼른거리는 바람에 기절초풍하였다.

처녀꼴이 잡힐 때부터 꼼꼼히 감추어온 알몸을 인적이 없는 곳이라 마음놓고 드러내놓았던 솔매는 너무도 놀라 눈물만 똑똑 떨구는데 눈에 허깨비가 끼여 잘못 본것이라고 혀를 차던 이웃들이 뙤창밑의 음달쪽 녹지 않은 눈우에 난 사람의 발자국을 보고는 귀신이 곡할노릇이라고 머리들을 기웃거렸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날 밤에 솔매네 집과 처마를 맞대고있는 분이네 집에서 중송아지가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졌다. 가솔 여섯식구의 명줄을 걸고 애지중지 키우던 송아지가 없어지자 분이네 집에서는 상사가 난듯 하였다. 분이 할멈이 시집올 때 가지고 왔다는 몇대를 물려오던 가보인 비녀를 팔고 한푼한푼 모아두었던 돈까지 깡그리 털어 사온 애송아지였으니 집사람들의 그 억한 심정인들 오죽했겠는가.

다음날 아침 산등성이 하나를 사이에 둔 골짜기에서 불피운 자리와 송아지털이며 뼈다귀들이 널려있는것을 찾아내였다. 그와 함께 수백년전에 이 골안에서 세상과 담을 쌓고 살다가 죽었다는 큰 량반님의 무덤이 파헤쳐진것을 보게 되였다. 자기의 지조를 지켜 살다가 죽은 고려의 이름모를 충신의 무덤이라고 한가위날이 오면 온 마을이 떨쳐나 돌봐주기까지 하던 큰 무덤이 파헤쳐진것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가 경악에 가까운 비명소리를 냈다.

워낙 하늘이 세모배기로 보일만큼 가파로운 산이 첩첩히 둘러막혀있는데다가 덩지 또한 타구통처럼 작은 마을이였다. 그래서인지 서쪽끝에 있는 돌배나무집 홍령감네 로친네가 며느리 꾸짖는 소리를 낼 때면 동쪽끝에서 사는 귀어두운 분이 할멈도 듣는다고 한다. 이런 기괴한 산골짝마을에서 이만한 일들이면 정말 이 땅이 생겨 처음 있게 되는 끔찍한 일들이 아닐수 없었다.

온 동네를 합쳐야 겨우 열한집밖에 안되고 제일 가까운 인가가 있는 률리면 류정리에 이르자고 해도 하나밖에 없는 통로인 동구밖 오솔길로 대낮에도 범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으쓱한 산속길을 따라 40리를 걸어야 하는 이 골안에서 벌어진 일은 서로를 의심케 했다.

마을에서 처음 생긴 중송아지는 누가 잡아먹었으며 또 옛 량반님네의 무덤은 누가 무슨 심보로 파헤쳤는가? 그리고 함지목욕하는 솔매를 훔쳐본 흉물스러운 놈은 과연 어떤 놈인고…

마을에서는 누구라 할것없이 이 일로 골을 앓았다.

그 일때문에 근간에 들어와 기러기부부처럼 다정하고 아기자기하던 박씨네 내외가 벼락치듯 쌈까지 했다.

《혹시 솔매를 훔쳐본게 령감이 아니요?》

마누라의 이 한마디에 박서방이 너무도 어이가 없어 처음엔 말을 다 못했다.

한때 서흥군청에 매인 버들이라는 기생과 이러저러한 인연이 생긴걸 알고 마누라의 강짜를 당한적 있는 박서방이고보면 그러한 의심을 받을만 했다.

하지만 박서방은 억울했다.

그 기생이 다 죽게 된 박서방을 도와주어 그 갚음을 하면서 생긴 인연이 어찌 그러한 어처구니없는 의심의 근원으로 되랴. 생긴품으로 보나 주머니를 뒤집어야 먼지밖에 나는것이 없는 박서방이 서흥땅의 소문난 기생과 어쩌고저쩌고한다는건 있을번도 하지 않은 일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트집을 거는 마누라앞에서 버선목이라고 뒤집어보일수도 없어 그냥 참고 견디였는데 나중엔 그따위 너절한 헌 벙거지를 뒤집어쓰고도 참는다면 그게 어찌 사내대장부라 하랴.

박서방의 얼굴이 부루잎처럼 시퍼르죽죽해졌다.

《누굴 진짜 오입쟁인줄 알아? 이걸 그저…》

《령감이 전번날 솔매가 참 곱게도 핀다구 하더라니 혹시나…》

《뭐야? 다시 말해봐.》

박서방이 주먹을 움켜쥐고 달려드는 바람에 마누라는 이웃집으로 버선발로 달아나기까지 하였다.

그러고도 분을 삭이지 못하는 박서방을 마을의 좌상인 홍령감이 가까스로 얼렸다.

아무렴 박서방이 그런 흉측한짓을 할라구, 우린 임잘 믿네. 마누라두 속이 불안해서 한마디 한건데 너무 곡하게 생각지 말게나. …

이렇게 어린아이 달래듯 얼려서야 박서방의 성을 가라앉혔으나 그 괴이쩍고도 무섬증까지 불러일으키는 일들을 저지른 장본인이 누구인지는 전혀 가늠이 가지 않았다.

별의별 억측들을 다 해보았다. 그중에서도 마을의 제일 골짜기 안쪽에 사는 장서방이 무심중 내던진 말은 마을사람들의 머리칼을 쭈뼛쭈뼛 일궈세웠다.

《혹시 대가리가 세개구 매대가리에 외눈깔이 배긴 령감귀신이 나타나지 않안?》

《그건 무슨 귀신이게?》

《일전에 장거리에서 들었는데 처녀라면 사족을 못쓰는데다가 사람이건 짐승이건 피를 빡빡 빨아먹고 바삭바삭하게 말려버린대. … 그래서 입아귀엔 노상 시뻘건 피가 질벅하다는게야. 으- 무서워.》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들은 사람들이 동시에 부르르 온몸을 떨었다.

정말 그딴 귀신이 있으면 이 마을에 생긴 괴이한 일들은 분명 그 령감귀신 작간일게야. …

이렇게 해가 떠서 저물 때까지 무시무시한 귀신이야기로 닭살이 내돋던 이 마을에 진짜로 스산한 일이 바로 그믐날 한밤중에 일어났다.

그밤에 개짖는 소리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처음에는 웃쪽에서부터 개짖는 소리가 나더니 잠시후엔 온 마을 개들이 모두 소리를 합쳤다.

한어미배속에서 나서자라난 이 마을의 개들에게는 몇명 안되는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다 주인이였다.

그래서 아무리 야밤삼경이라고 해도 마을사람이면 그 누구에게도 짖지 않는게 이 마을 개들의 천성으로 되여있었다.

그런데 그날 밤엔 동네 개들이 모두 떨쳐나 어미의 젖을 빨던 기운까지 다 내여 맹렬하게 짖어댔다.

저놈의 개들이 무엇을 보았길래 저리두 영악스럽노. 불길한 징조로다.

마을사람들은 가슴들이 서늘해져 어쩔바를 몰라했다.

밖에 나가보재도 무섬증이 살아나 몸이 오싹했다.

깜깜 어둠속에서 대가리가 세개나 달리고 매대가리의 입아귀에 피가 질퍽하니 내배인 귀신이 불쑥 나타나 덮치기라도 하면… 에그, 무서워.

그래서 그대로 앉아 밤새 설친 잠들을 잤다.

동창이 밝을무렵.

마을에서 제일먼저 부엌문이 열린것은 분이네 집이였다.

아직 밤의 어둠이 가셔지지 않은 새벽녘에 갖은 풍상고초를 다 겪어 귀신을 봐도 무섬증을 모른다는 분이 할멈이 조반을 지을 첫 샘물을 길어오려고 동이를 안고 우물로 나갔다.

무슨 신령스런 부처님의 계시를 받았던지 아니면 초년부터 범같은 시부모님들의 단련끝에 버릇이 되여서인지 그 할멈은 첫새벽 남의 손길이 닿지 않은 정갈한 첫 샘물로 조반을 짓는것이 습관으로 되여있었다.

우물가로 어정어정 다가가던 분이 할멈은 새까만 어둠속에서 물큰한것을 밟고 까무라칠듯이 놀랐다. 자기가 밟은것이 큰대자로 쓰러져있는 사람의 넙죽한 잔등이라는것을 알아본 분이 할멈은 동이를 안은채 뒤로 벌렁 드러누우며 생전처음으로 되는 요란한 괴성을 내질렀다.

밤새 동네 개들이 짖어대는 불길한 소리를 그 로친도 분명 들었겠지만 어느 하루도 어긴적 없는 그 버릇때문인지 아니면 송아지를 잃고 가슴앓이 뒤끝에 밤새 잠을 못 자다가 날이 밝기를 끝내 기다리지 못한때문인지 여하튼 남먼저 우물가에 나섰다가 고요한 새벽을 화들짝 놀래웠던것이다.

그 괴성에 마을사람들이 새벽잠을 대번에 털어버리고 우물가로 달려왔다. 하지만 끔찍한 몰골에 피범벅이가 된채로 쓰러져있는 사내에게 접어들념을 못했다. 상처입은 어깨를 둘러감은것이 그냥 흰 광목천이 아니라 녀인들의 저고리인것을 알아본 사람들은 금시 인적없는 외통길에서 겁탈강도를 만난 숫처녀의 심정이 되여버렸다.

거기에다 쓰러진 상태에서도 대검을 으스러지게 틀어쥐고있는 형체는 보는 사람들의 눈에 대가리가 세개이고 입귀에 피자박이 랑자한 령감귀신의 모습을 떠올려주며 오금이 저려나게 하였다.

어이 알랴. 못된짓을 하다가 천벌을 받아서 대가리 두개를 잘리운 진짜 령감귀신일지…

그래서 그 사내를 우물가에 그대로 내버려둔채 사람들은 이른새벽이지만 홍령감네 집으로 모여들었다.

이구동성으로 도적이 틀림없다고 장담해나섰다.

가을날의 곰서방같이 우람진 체통에 솥뚜껑같은 손으로 으스러지게 틀어쥔 대검의 길이가 다섯척(약 1. 5m)은 실히 되고도 남는데 지금 세월에 그런 칼을 차고 산속마을들을 찾아다니는건 분명 도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그리고 칼에 진득진득 배여있는 피자박을 보면 생사람을 수십명쯤은 난탕친 살인강도가 분명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더우기 상처를 싸매놓은것이 녀인들의 저고리인것을 상기한 사람들은 모두가 낯들을 찡그리였다.

마을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과 대비해보면 사개가 딱딱 들어가맞았다.

그러고보면 분이네 중송아지를 잡아먹은 놈도 그놈이고 옛날 량반님네 묘지를 파제낀것과 솔매의 알몸을 훔쳐본 뻔뻔스러운 놈도 바로 그놈이라고 락인을 찍었다.

정신을 차리기 전에 사지를 묶어 목도채로 둘러메고 60리 밖에 있는 군청으로 끌고 가자는 축들도 있었고 잘 알아보지도 않고 그랬다가 혹시 아니면 괜히 생사람을 잡는것으로 된다는 축들도 있었다.

분분한 론의끝에 도적이든 무엇이든지간에 대가리가 하나뿐인걸 봐선 령감귀신은 아니니 우선 구완을 해놓고 그 다음 문초를 하든 어찌해보자고 합의를 보았다.

하여 마을사람들이 모다붙어 피범벅이가 된 덩지큰 사나이를 온갖 역사질을 다해가며 마을과 조금 떨어져 산골쪽으로 구석진 곳에 있는 밭뙈기의 메돼지를 지키던 초막에 끌어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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