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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회


서 장


무신년(1908년) 1월 28일.

한성(서울)의 날씨는 매우 음산스러웠다. 아침부터 진눈까비를 추덕추덕 뿌리여 큰길은 물론이고 가리마같이 수많은 갈래를 이룬 골목들을 꼼꼼스레 적셔놓더니 짙은 황혼이 깃들기 시작하는 이 저녁부터는 무슨 심술을 부리는지 뼈속까지 저며드는 찬바람을 몰아왔다.

겨울해가 서쪽으로 사라지자마자 때를 기다린듯 장안의 곳곳에서 전등불이 켜졌다.

최대문명이라 일컫는 이 전등불은 순종(조선봉건왕조 27대왕)황제가 있는 창덕궁은 물론이고 바다건너에서 밀려든 왜나라족속들이 있는 곳들과 《을사5조약》이나 《정미7조약》날조에 가담한것으로 하여 민족의 버림을 받은 역적들의 집들에도 비쳤다. 수수천년의 암흑을 밀어낸 희한한 문명이 알쭌히 가장 더러운 곰팡이서식장만을 골라가며 비쳐주는듯싶었다.

그래서인지 한성의 창의문부근의 골목들에서는 발뒤축만 들어도 눈에 비쳐드는 현대문명의 맛을 조금도 느끼려고 하지 않고 그저 덤덤히 외면해버릴뿐이다. 나라의 운명이 바람앞의 등불처럼 꺼져가는 때 전등불이 밝은들 어찌 마음이 흐뭇해질수 있으랴. …

이따금 그쪽으로 쏠리는 눈길들이 있다고 해도 서양의 유명한 발명가가 온 세계인류에게 선사한 희한한 그 문명을 대하는품이 아주 못마땅해하고 지어는 불만스러운 기색들이 뚜렷했다.

이러한 골목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얼굴도 태반이 근심으로 무거운 얼굴들이다.

사람들이 모였다가는 흩어지고 흩어졌다가는 다시 모여 동전 1푼을 얻기 위해 2푼어치의 힘을 소비해야 하는 이 음침한 골목에서는 아침을 못 먹고 점심도 굶은 사람들이 저녁때식의 희망마저도 잃어버리고 깊은 한숨만 내쉬고있었다.

바로 이 한성에서 이즈음에 이르러 《을사5조약》날조에 뒤이어 망국조약인 《정미7조약》이 백일하에 날조되고 헤그밀사사건을 구실로 하여 황제 고종(조선봉건왕조 26대왕, 순종의 아버지)이 섬오랑캐의 강박을 받아 강제퇴위를 당하였으며 나라의 군대가 하루아침에 강제로 해산당하는 등 2천만의 가슴을 모질게 쥐여비트는 고금동서에 류례없는 수치스러운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하기에 이 장안사람들은 밤을 자고 일어나면 또 어느만 한 불덩어리가 꼭뒤에 떨어질지 몰라 하루도 발편잠에 들지 못했다.

그렇다고 하여 꼭 그런 불길한 징조들만이 일어나는것도 아니다.

아닌밤중에 총성이 터지고 골목골목에서 복닥소동이 일어나 문밖으로 얼굴을 내밀어보면 특등친일주구 한놈이 어느 장한 의기남아의 저격을 받았다든가, 또 어떤 왜놈의 앞잡이 하나가 칼에 찔리웠다든가 하는 속시원한 소리를 듣는 때도 드문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엊그제는 《을사5조약》에 항거하여 자결한 시종무관장 민영환의 유서가 나돌더니 다음날엔 일제통감부가 자리잡은 건물에 수백년전 사람인 최무선이 화약을 만들었을 때 누군가가 지었다는 옛 시가 부작처럼 나붙었다.


그대 붉은 마음으로 화포를 만들어

첫 싸움에 흉한 원쑤를 모조리 무찔렀도다

하늘에 서린 도적의 기세는

연기와 더불어 흩어져버리고

세상에 떨친 공명이여

해빛과 함께 널리 퍼지리


하여 여기 창의문부근의 골목으로 모여들던 인심야박한 장돌뱅이들 대신에 지금은 한성토배기들이 목을 빼들고 행여 망국의 치욕이 가셔질 일이 날듯싶어서 어둠짙은 골목을 주시하고있었다.

한것은 나라의 원쑤들과 역신들의 몸뚱아리는 전등불빛에 뚜렷이 드러났지만 민족의 의분을 안고 그 더러운 추물들을 저격하고 숨통을 끊어던지기 위해 사생결단의 길에 나선 의기남아들의 모습은 바로 어둠짙은 골목들에서 불쑥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까닭이기때문이였다.

날씨가 음산한 이밤.

바로 그 어둑컴컴한 골목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골목들마다에서 몇사람씩 패를 지어 모여드는 사람들의 기상이 하나같이 날카로웠다.

사람들은 어느새 한무리를 이루었다.

수군거리는 말소리를 들어보면 그들의 억양도 각색이였다. 그들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조용하나 저력있게 울렸다.

《자, 준비들을 합세.》

철기가 부딪치는 소리들이 울렸다. 새까만 하늘에서 이따금 드러나는 쪼각달이 린색하게 비쳐주는 달빛에 시퍼런 칼날들이 번뜩번뜩 드러나기도 했다.

금시 무시무시한 일이 터질듯 했다.

무슨 낌새를 챘는지 왜놈수비대병영들에서 총칼들이 번뜩거리며 칠칠야밤의 스산함을 더한층 고조시켰다.

어둠속에서 황해도억양의 말소리가 들렸다.

《신호는?》

《북악산이덤.》

대꾸는 경상도억양이다.

《이제 곧?》

《그래.》

그들의 눈길이 북악산쪽으로 향했다. 모두가 긴장한 표정들이였다.

그중에서도 목에 흰 광목천을 두른 총각이 제일 안절부절했다.

《제길할, 빨리 해치워야지 더 어물거리다가는 왜놈의 새끼들에게 들키우겠는걸.》

《덴둥이 보채듯 한다구 될 일인가? 여 평산총각, 근데 그 목에 감은건 뭔가? 아니, 이게 가시내들이 입는 속곳이 아닝기요?》

《손 치우오. 그러다 찢어놓겠소.》

평산총각이 목덜미에 닿는 경상도억양의 손을 뿌리치며 눈을 흘겼다.

《그 눈은 시루구멍인가? 이게 어디 속곳이요? 어머니에게 줄려고 장만한 치마저고리인데…》

《어이구, 평산땅에 나라생겨 첨 보는 대단한 효자가 났다더니 바루 님자였구먼. 왜놈과 싸우겠다면서 엄마생각은 제길…》

경상도억양이 시까슬러댔지만 평산총각은 아무렇지 않은듯 귀등으로 넘기며 코웃음을 쳤다.

《그렇잖구. 효자중에 충신이 있거던.》

《쳇, 효자노릇 잘도 하겠다. 그런거나 목에 걸구 다닌다구 효자치부해준대? 사내가 나랄 위해 큰일하는게 일등효자이지.》

《헹, 그래서 이렇게 퉁포차고 한성에 왜놈과 쌈하러 온게 아니요. 아니, 그런데 내게 웬 까박이 그리두 많소? 내가 서리맞은 뾰족감처럼 물렁물렁해보이우?》

평산총각이 벌컥 성을 내며 따지고들자 경상도억양이 손을 내저으며 아부재기를 쳤다.

《됐네, 됐어. 뾰족감같기야 뭘… 털가시 달린 밤송아리지.》

《뭐 밤?》

금시 발끈했던 평산총각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불룩한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그의 손에 진짜밤이 한옹큼 쥐여져나왔다. 껍질이 툭툭 갈라터져 노르끼레한 속살이 먹음직스럽게 드러난 군밤이였다.

모두의 신기한 눈길이 평산총각에게로 향했다.

한사람이 방금 평산총각과 입씨름을 하던 그 경상도억양의 머리통을 쥐여박았다.

《하필 밤을 찾을건 뭔가? 차라리 호밀떡소릴 했으면 김이 물물 나는 호밀떡이 저 엽낭에서 나왔을지두 모를걸…》

퉁을 맞은 경상도억양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헤벌쭉 웃었다.

《그러기나 말이다.》

키드득거리는 속에서도 오구구 모여들어 군밤을 한옹큼씩 받아내여 까먹기 시작했다.

《군밤이 어디서 났어?》

《아까 날 저물기 전에 저 세검정입구에서 샀지. 한성사람들 인심이 박하다는 소릴 들었는데 그 애숭이 군밤장사는 마음이 후하더구만. 동전 하나에 이렇게 주머니 두개가 불룩해졌거던.》

《나도 애숭이를 봤어. 그게 어디 한성사람이던가? 평양말씨를 쓰던데…》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 역증을 내였다.

《조용들 하구려, 이거야 어디 귀 가려워 듣겠나. 왜놈치러 왔다면서 군밤추렴에 말방아질은 넨장. 그런데 오른다는 불빛신호는 어째 감감무소식이요?》

《낸들 알턱이 있나? 젠장…》

그들의 안타까운 시선이 다시 북악산봉우리로 향했다.

경복궁 북쪽에 있는 북악산에 오르면 북쪽으로 남장대와 북한산이 바라보이고 문산에서 봉일천리와 구팔리를 거쳐 인왕산쪽으로 한성에 들어오는 큰길이 빤히 내려다보인다.

여기서 자그마한 모닥불을 지피면 아근 30리안팎에서는 못 볼리가 없었다. 13도의병이 다 모여 한성을 둘러싸게 되면 인왕산에서 먼저 불빛신호가 오르게 되여있다. 그 불빛신호를 받아 북악산에서도 불길이 오르면 세검정을 거쳐 여기 창의문부근으로 새여든 의병들이 먼저 소동을 일으키게 되여있었다.

그러나 기다리던 불빛은 오르지 않고 어둠속에서 군호를 묻고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웬 애젊은 녀석이 헐금씨금 나타났다.

《평산의병대를 데리고 온분이 뉘시오이까?》

《내다. 무슨 일이냐?》

어둠속에서도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이는 거쿨진 사나이가 한걸음 나서며 물었다.

《허위군사장님의 령을 가지고 왔소이다.》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던 군령이였다. 군령이면 의례히 싸움시작에 대한것이겠거니 하고 생각한 성급한 의병들이 그에게 련속 물음을 던졌다.

《그래 다른 의병대도 다 왔니?》

《창의대장이 못 왔어요.》

《뭐?》

《왜? 어서 말해라.》

《부친께서 세상을 하직하셨다는 전갈이 왔사와요. 그래서 창의대장님은 거상을 서러 가시면서 이 공문을 각 의병대장들께 전하라 하셨소이다. 이건 한성에 모인 각 의병대들에 보내는 공문이온데 허위군사장님께서 평산의병대에서 올라온 의병들에게도 전달하라고 하셨소이다.》

애어린 전령이 종이말이 하나를 거쿨진 사내에게 내밀었다.

사나이는 종이말이를 우악스레 펼쳤다.

창의대장 리린영이 부친상사를 당하여 자식의 효도를 지키기 위해 고향인 경기도 려주로 간다는것과 함께 거사는 군사장 허위가 지휘한다는 내용이 담겨져있었다.

곁에서 그 군령장을 들여다보던 의병들의 윽윽 소리가 들렸다.

《에익, 또 그 빌어먹을 넉두리로구나.》

《쌍, 그 공자왈 첫번째에 나라일이 부친상사보다 더 중하다는 구절이 왜 없느냐?》

《효자중에 충신이 난다구 방금 누가 말했어, 엉? 그래 이래도 효자중에 충신타령이냐. …》

의병들의 분노가 끝없이 솟구쳤다.

의병을 무을 당시만 하여도 나라를 위하여 뼈가 바스러지더라도 왜놈들과 싸우겠노라며 눈물이 찔끔하여 채수염을 부르르 떨던 유생들이 실지 싸움에 나서면 모래불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버리기가 일쑤였다.

이 한성공격에 13도의병들이 떨쳐나선것만 놓고봐도 리린영을 주동으로 한 유생들이 통감부를 격파하고 《을사5조약》과 《정미7조약》을 취소시켜 국권을 회복하자는 격문을 내돌린때문이 아니더냐. 그 뜻이 자못 장하여 목숨을 내대고 수많은 의병들이 떨쳐나섰건만 그들은 이렇게 종종 나라와 백성들을 아연케 하는 일들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모두의 눈길이 종이말이를 줌안에 바스러지게 움켜쥐고 서있는 거쿨진 사나이에게로 쏠렸다.

《형님, 그래 이젠 어찌자오?》

《정환이, 빨리 결심을 내리게.》

곁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그는 날카로운 두 눈빛을 번뜩이며 칼을 쭉 뽑았다.

《여기까지 온 이상 그냥 물러설수 없다. 먼저 가까이에 있는 쪽발이것들의 건물을 들이쳐 왜놈들의 눈길을 끌어 동대문밖에 진을 친 의병들의 공격을 도모하라.》

의병들이 부시를 때려 허리에 감거나 어깨에 멘 심지들에 불을 달았다. 불심지들에서 빨간 불꽃이 천천히 타들어갔다. 그 빨간 불꽃을 임의의 시각에 화약실에 뚫어진 불구멍의 불심지에 붙이면 순간에 철알이 나가도록 만단의 준비를 갖춘 의병들이 어둠속으로 밀려갔다.

의병들이 그중 가까이에 있는 왜식건물들이 들어앉은 곳으로 꺾어들었다.

어둠짙은 골목을 바라고 담모퉁이를 따라 꺾어들던 의병들은 한순간 모두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옆으로 가지쳐나간 어둠깔린 골목길에서 불시에 사람들이 나타났던것이다.

맨앞에 경찰관모자를 쓴 사나이가 섰고 그뒤에 양복쟁이 하나와 또 다른 사나이 그리고 새파랗게 젊은 총각까지 해서 모두 네명이였다.

어둠속이지만 그들이 어지간히 놀라는것이 확연하게 알렸다.

의병들이 먼저 그들을 향해 화승총들을 겨누었다. 그들의 손에 어느새 쥐여진 불꽃들이 여차하면 화약실의 불심지에 닿을 판이였다.

경찰관의 뒤쪽에서도 의병들을 향해 권총들이 겨누어졌다.

당장 총구들마다에서 불꽃이 튕길듯 한 아슬아슬한 순간이 흘렀다.

《가만!》

경찰관이 한손을 덧옷주머니에 찌른채 다른 손을 쳐들어보였다.

그의 덧옷주머니에 든 손에 작은 신식권총이 쥐여져있으며 그 총구가 의병들의 맨 앞장에서 시퍼런 날이 번뜩이는 긴 대검을 틀어쥐고 노려보는 거쿨진 사내의 가슴팍을 면바로 겨누고있다는것이 대번에 알렸다.

경찰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의병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당신들은 누구요?》

《너희들부터 말해라. 대체 어떤 놈들이냐?》

의병들중의 누군가가 던진 물음에 경찰관의 뒤쪽에서 격한 대답질이 튀여나왔다.

《말 곱게 하오. 대보지두 않고 넌떡 반말질이요? 감히… 밤중에 만난 길손이 혹시 왕자님일지 어찌 알구 탕탕 망발인가 말이요?》

거쿨진 사나이의 날카로운 눈길이 그쪽으로 날아갔다.

경찰관의 뒤쪽에서 양복쟁이가 만만치 않은 눈길로 맞받아 쏘아보고있었다. 그를 마주 노려보는 거쿨진 사나이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의병들속에서 흰 광목천을 목에 두른 평산총각이 화승총을 겨누며 후닥닥 달려들듯 나섰다.

《무슨 말라죽은 왕자님타령이야? 왕자님이건 부처님이건 우리앞을 막는건 모두 역적이다.》

금시 불꽃이 튕겨나올듯 한 그의 총구를 경찰관의 뒤쪽에서 마주 튀여나온 새파란 젊은이가 날래게 잡아 공중으로 제끼며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역적이란 말은 함부로 쓰는게 아니요. 그러니 총구를 함부로 내들지 마우.》

그가 잡았던 총구를 툭 밀어버리자 평산총각의 몸이 기우뚱하며 비칠거렸다.

《이놈이?…》

가까스레 몸을 다잡은 평산총각이 다시 화승총을 들이대다가 두눈을 흡떴다.

방금전에 인심이 후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군밤장사군을 알아보았던것이다.

《너도 이것들과 한패당이냐?》

《그렇소.》

평산총각이 금방 먹은 달달한 군밤이 떫은 감맛으로 되올라온듯이 침을 퉤 뱉으며 중얼거렸다.

《과연 우스운 놈팽이들이로구나. 하나는 왕자님이구 하나는 경찰쟁이에 또 하나는 군밤장사군이라…》

《그냥 야료를 부릴테요?》

군밤장사군총각이 두눈을 뚝 부릅뜨는데 그를 제지시킨 경찰관이 거쿨진 사나이에게 돌아섰다.

그리고는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난 강수길이라고 하오. 그리구 이 사람들은 나의 동료들이구… 우리는 당신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요. 초면에 쌍말이 그쪽에서 먼저 나왔으니 서로 자중합시다. 당신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쿨진 사나이는 여전히 적의감이 번뜩이는 눈길을 떼지 않으며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의병대요. 왜놈들과 결산할것이 있어 여기에 왔소. 당신들의 몸에도 배달민족의 피가 흐른다면 쪽발이놈들에 대한 분기가 조금이나마 있을터이니 우리 일을 방해하지 말고 조용히 사라지시오.》

또다시 숨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경찰관이 앞에 선 거쿨진 사나이를 마주 노려보다가 자기들의 손에 땀발이 돋도록 쥐고있는 서너자루의 총만으로 의병들을 당해내기는커녕 어느쪽이든 불꽃만 튕기는 순간에는 당장에 온몸이 채구멍이 된다는걸 느껴서인지 뒤쪽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그 손짓에 따라 어둠속의 그림자들이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조심스럽게 총구들을 내리웠다.

그들의 행동을 찌를듯 한 눈길로 바라보던 거쿨진 사나이도 대검을 칼집에 쑥 꽂아버렸다. 그리고는 의병들쪽으로 돌아섰다.

《가자.》

그의 말에 의병들의 눈이 퀭해졌다.

《이것들을 그냥 두잔 말이요?》

《왜놈들의 피를 보기 전에 동족과 싸우는건 대장부들이 할 일이 아니요.》

거쿨진 사나이는 제 먼저 의병들을 헤가르며 씨엉씨엉 걸어갔다.

의병들이 그를 따라 발길을 돌리며 경찰관쪽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논판의 돌피같은 자식들, 오늘 운수가 좋은줄이나 알아라.》

《쪽발이놈들 다음엔 네놈들 차례이니 명이 길다고 생각지 말아라.》

경찰관의 뒤쪽에서 씨근덕거리던 양복쟁이가 또다시 발끈해서 나섰다.

《뭐가 어쨌어? 우릴 뭘루 아는거야. 머리수가 많다구 아무 말이나 마구 지껄여도 돼?》

의병들이 다시 총구들을 들이대였다가 손바닥만 한 피스톨 하나를 들고 팔딱거리는 양복쟁이를 가소로운 눈길로 쏘아보더니 상대도 안된다는듯 입들을 쩝쩝 다시며 총구를 거두었다. 그리고는 우르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의 뒤를 바라보는 경찰관의 두눈에 착잡한 빛이 어리였다.

《저 사람들이 대체 어찌자는거요. 이거야 정말…》

양복쟁이가 그들을 바라보며 내뱉는 말에 경찰관은 머리를 저었다.

《그냥 돌아가야겠소. 오늘은 징조가 이상하오.》

아닌게 아니라 저쪽에서 일본군순찰병들이 마주 오고있었다.

경찰관일행이 오던 길을 되돌아 어둠속으로 사라질 때 벌써 그쪽에서는 류혈적인 란투가 시작되였다.

의병들이 벼락같이 달려들어 다가오는 여섯놈의 순찰병들을 까눕히였다. 그리고는 가까이에 있는 덩지큰 왜식건물의 문짝을 들부시고 안으로 쓸어들어갔다. 이미 낌새를 챘는지 안은 텅 비여있었다. 밖으로 나왔을 때 전등불 저쪽에서 왜놈들이 떼를 지어 몰려왔다.

왜놈들과의 사이가 너무도 가까왔다.

왜놈들쪽에서 먼저 몰방으로 총성이 터졌다.

의병들이 맞받아 사격을 들이댔지만 왜놈들의 5련발짜리 신식보총사격에 비하면 퉁포와 화승대의 대응사격이 매우 성글기 그지없었다. 벌써 여러명의 의병들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피어린 싸움이 계속되였다.

거쿨진 사나이가 왜놈들속으로 뛰여들어 대검을 휘둘러댔다.

그의 대검에 왜놈 서넛의 모가지가 땅바닥에 떨어져 나딩굴었다. 의병들의 화승대에서 뿜어진 시뻘건 철알에 십여명의 왜놈병졸들이 황천길을 갔다.

하지만 화승대가 고작인 의병들 몇십명이 뢰관식의 서양총으로 무장한 수십명의 일본군놈들을 대적하기에는 너무나도 중과부적이였다.

의병들이 련이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다른 의병들도 거쿨진 사나이의 뒤를 따라 화승대를 돌려잡아쥐고 육박전에 돌입했다.

총소리, 아우성이 한데 뒤엉켜 혼잡을 이루었다.

왜놈들의 수가 계속 증가되고 의병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왜놈들속으로 뛰여들어 대검을 휘두르던 거쿨진 사나이가 비칠거렸다. 어둠속에서 날아든 왜놈들의 총탄이 어깨를 뚫고 나갔던것이다. 그는 피가 뿜어져나오는 어깨를 움켜잡으며 앞으로 푹 꺼꾸러졌다.

《김정환이가 상했다.》

《빨리 뒤로 빠지라.》

의병들 몇이 뛰여들어 피를 토하며 쓰러진 그를 둘쳐업었다.

그리고는 왜놈들과 필사적으로 맞불질을 하며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형세는 의병들에게 참으로 절망적이였다.

장안의 왜놈들이 전부 이쪽으로 향했는지 사방에서 총성들이 자지러지게 울리며 가까와지고있었다.

리린영을 대장으로 하는 13도창의대 지휘층이 꾸민 책략에 의하면 지금쯤 동대문과 한성의 여러곳에 진을 친 각 도의병부대들이 이 기회를 리용하여 일시에 공격하기로 되여있었다.

그러나 동대문쪽은 물론이고 한성의 그 어느 방향에서도 아무러한 징조도 보이지 않았다.

바로 이 시각 동대문밖 30리지점에 진을 치고있던 군사장 허위는 오리무중에 빠져있었다.

초기계획대로였다면 지금 시각에 13도창의대의 전부가 집결하여 한성을 둘러싸고 놈들이 눈치채기 전에 공격을 해야 했다.

그런데 창의대장부터가 한성에서 수백리나 떨어진 고향집에서 상복을 입고 부친의 제상에 엎드려 곡을 하고있는 형편이고 한성의 여러곳을 둘러싸게 되여있던 다른 의병부대들도 아직 도착하지 못한 상태였다.

도처의 의병들이 한성으로 향하고있었지만 허위의 선발대는 그들을 기다릴수가 없었다. 의병들의 한성부에 대한 진격을 내탐한 왜놈들이 병력을 끌어들이고 대포들을 설치하면서 방어태세를 갖추고있었던것이다.

더우기 한성장안으로 새여들어간 각 의병대들에서 선발된 의병들이 전투를 벌리는 상황은 더이상 앉아 구경할수 없게 하였다.

하여 허위는 한성부시가지를 향하여 공격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공격은 시작부터 좌절되였다.

벌써 방어준비를 갖춘 왜놈들이 의병들의 수가 적은것을 낌새채고 공격에로 나왔던것이다.

이날 군사장 허위의 지휘하에 동대문밖 30리지점에 진을 쳤던 300명의 의병들은 속사포까지 미친듯이 쏘아대며 수많은 병력으로 공격해오는 일본군과의 장시간의 격전끝에 퇴각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리하여 무신년(1908년) 정월 스무여드레날의 날씨마저 음산스러운 한성에서는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받칠듯 하던 기운이 석양빛에 드리웠던 산그림자처럼 슬쩍 비꼈다가는 가뭇없이 사라져버리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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