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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회


제2장 다져먹은 마음


3


한편 김기송동지는 자신이 분단장이라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동무들을 찾아봐야 할것이다. 그들이 산에 올라 식구들을 만났을가?

기송동지는 행길에 나섰다. 마을의 정경은 휘딱 뒤집혔다. 전에는 가난이 흘렀지만 사람들의 숨결이 있었고 웃음소리도 들리던 마을이다.

그런데 지금은 온통 새까매지고말았다. 사람들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스산한 정적만 깔렸다.

기송동지는 불탄 집 토방에 앉아있는 한 동무를 띄여봤다. 그애는 넋이 나간듯 멍청히 하늘만 쳐다보고있었다. 얼굴과 옷을 걸치지 않은 웃몸은 까맣게 그슬렸다. 두눈에서 줄기져내린 눈물자욱이 얼굴에 뚜렷한 도랑을 팠다.

울바자가 형체도 없이 불탔으니 기송동지는 곧추 그애앞에 이를수 있었다. 마당의 한그루 살구나무는 덮쳐드는 불길에 가지들을 다 잃었고 외통배기로 선 줄기도 깊숙이 익으면서 깜둥이가 되였다.

그애는 기송동지가 앞에 다가섰으나 까딱하지 않았다. 눈물이 눈지방에 차오르더니 주르르 흘러내렸다.

기송동지도 함께 가슴이 뻐근해지면서 눈물이 솟아올랐다.

《집에서 너밖에 살지 못했니?》

그애는 눈길을 돌리지 않은채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산에 갔다가 식구를 만난 애들이 있니?》

그애는 시름겹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니 산끝까지 간 애들이 모두 허탕친것이 아닌가.

기송동지는 다른 동무네 집도 찾았다.

마을을 돌아보니 살아남은 사람은 갈기대에 올랐던 아동단원들뿐이였다.

겁을 먹고 아동단에 나오지 않은 동무들은 모두 잘못되였다.

기송동지는 자책감에 휩싸였다. 좀더 각근히 타일러 아동단에 나오게 했다면 살았을걸. 분단장이란게 뭘했어?

기송동지의 고개가 숙어지면서 눈가에 물기가 어렸다.

김기송동지는 곽찬수선생네 집에도 들려보았다.

깨끗이 꾸렸던 그 집도 역시 바람벽이 마당쪽으로 넘어지면서 폴싹 주저앉았다.

기송동지는 살뜰하기 이를데없던 아주머니를 찾았다. 곽선생은 구공청에 가있었을것이다.

기송동지는 마당앞의 남새밭에 쓰러진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머리에 총알을 맞은듯 쏟아져나온 피가 머리칼과 얼굴을 끔찍하게 덮었다.

기송동지는 설음의 멀기가 머리를 쳐들고 목을 꽉 채움을 느꼈다.

함지골에 가셨던 김정숙동지께서는 불탄 마을에 돌아오자 바삐 움직이시였다. 갈기대에 올라갔던 아동단원들이 아침밥을 번졌다. 그러니 뭔가 끓여먹여야 할것이다.

그이께서는 부엌으로 들어가려 하셨다. 이젠 불길이 잦은지 오래여서 열기는 바깥으로 다 빠졌다.

그런데 천정과 지붕이 무너져내리며 부엌에 얼기설기 가름대를 가로질렀다.

부엌바람벽에 의지하여 두장의 널판자를 놓고 그릇들을 올려놓았던 당반이 불타면서 그릇들을 다 바닥에 떨어뜨렸다. 굴러떨어지며 마사지고 불에 타 금이 가다나니 온전한 그릇은 별반 없었다. 다만 몇개의 놋그릇만이 불에 구워졌지만 성성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가마를 뽑아 내가려고 뚜껑을 여시였다. 그안에 새까맣게 탄 보리밥이 밑굽에 잔뜩 엉겨붙었다. 이건 오늘아침 식구들이 먹으려던 밥이다. 어머니와 형님은 이 밥도 잡숫지 못한채 저세상으로 간것이 아닌가. 다시금 울음이 북받쳐올랐다.

그이께서는 마당에 돌가마를 거시고 그안에 넣을 낟알을 걱정하며 마을을 돌아보시였다. 쌀은 모두 정주 아래목이나 골방에 두는데 불에 다 탔거나 내내가 푹 배여 먹을수 없을것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감자생각이 떠오르시였다. 집집에서 요즘 햇감자를 파서 김치움에 건사해두고있었다.

김치움에는 된장, 간장독도 있었고 풋나물을 캐다가 서늘한 곳에 세워둔것도 있었다.

그이께서는 감자를 삶고 국까지 끓인 다음 동생보고 동무들을 데려오라고 이르시였다.

모여오는 애들은 하나같이 어깨가 축 처졌고 깊은 시름을 얼굴에 들쓰고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큰 양재기에 감자를 담고 집집에서 거둬온 사발들에 국을 떠서 애들앞에 놓아주시였다.

애들은 누구 하나 수저를 들려 하지 않았다. 그들중 한 애가 시들해서 말했다.

《먹고싶지 않아요.》

그러나 애들은 김정숙동지와 기송동지에게 고마움이 어린 시선을 보냈다. 김정숙동지와 김기송동지가 아니였다면 자기들은 살아나지 못했을거라는 생각이 든것이다.

불탄 마을로 어른들이 달려왔다. 채영에 있는 구공청과 장재촌유격대에서 여라문명의 청년들이 달려온것이다.

유격대원들중에는 이 마을 청년들도 셋이 있었다. 그들은 급급히 자기 집을 살폈다.

집에서 나오는 청년들의 얼굴은 거멓게 시르죽었고 눈에서는 세찬 빛발이 번뜩였다.

곽찬수선생도 달려왔다. 그도 집에 들려보고 오는 길일것이다.

맑은 얼굴에 그늘이 덮였고 눈자위에 물기가 번들거렸다.

김기송동지는 명치끝이 찢겨옴을 느꼈다.

청년들은 마을에 닿자마자 시신을 안장하는 일에 달라붙었다.

그들은 《토벌》맞은 마을에 몇번 갔다온 경험이 있는듯 삽과 곡괭이를 들기도 하고 꽁무니에 도끼를 차기도 했다. 불탄 마을에는 이런 쟁기가 없기때문이다.

아동단원들도 청년들을 도와 집집을 오갔다.

한 집을 지나치던 기송동지는 놀라움에 우뚝 멈춰섰다.

죽심이네 집이다. 죽심의 아버지 렴국찬은 이전에 먼저 산으로 들어가더니 이어 온 식구를 데려올려갔다. 그래 그 집은 비여있었는데 마당에 죽심의 어머니가 총탄을 맞고 숨져있는것이 아닌가.

옆에 있는 애가 마침 죽심이네 옆집 애여서 기송동지는 숨가삐 물었다.

《죽심이 어머니는 언제 여기 내려오셨니?》

자기 집 식구를 다 잃은 그애는 울먹해서 대꾸했다.

《그저께 왔어. 씨를 묻은 땅의 김을 매려고.》

그러니 죽심이도 엄마를 잃은것이 아닌가. 그애가 이 일을 알면 얼마나 몸부림치며 울가?

드디여 갈기대에 작은 산만한 합장묘가 생겼다.

식구들이 땅에 묻힐 때부터 발을 동동 구르며 울음을 터뜨렸던 애들은 지금도 얼굴을 수굿하고 어깨에 잔물결을 일으켰다.

합장묘가 생겼으나 제물 하나 놓이지 못했다.

민성기구공청비서는 몰켜선 애들에게 다가와 나직이 물었다.

《너희들은 이제 어디로 가려 하니?》

애들은 대답을 못했다.

찾아갈 친척도 없는 그들이다. 친척들이 더러 있긴 했지만 벌써 왜놈들의 《토벌》에 잘못되였던것이다.

구공청비서의 목소리는 축축히 젖었다.

《나는 너희들이 장재촌유격구로 들어가면 좋겠구나. 거기엔 아동단도 생길거야 . 벌써 많은 아이들이 들어갔다. 유격구는 김일성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사랑의 품이야.》

애들은 아무런 응대도 없었다. 그러나 장재촌유격구로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나같이 했다. 빨리 유격대원이 되여 식구들의 원쑤를 갚아야 할것이다.

곽찬수선생은 아이들의 끼니로 감자를 삶은것을 보고 김정숙동지에게 말했다.

《저기 골짜기에 묻어놓은 쌀이 있다. 유격구에 들여보내려고 마련했던 쌀이지. 유격대에서랑 왔으니 점심차비를 해야겠다.》

이리하여 김정숙동지께서는 곽선생의 뒤를 따라 깊이 묻은 쌀을 가져다가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먹을 점심을 지으셨다.

청년들은 점심숟갈을 놓자 사방으로 흩어졌다.

소가 있는 마을농민들은 아침 일찌기 이슬돋은 풀을 먹이려고 갈기대등판에 소를 내다매였었다. 이 소들이 다 살아있는것이다. 소는 세마리였다.

한패는 곽선생의 뒤를 따라 편자틀이 있는 마을어구에 갔다. 소를 나무틀속에 세우고 발쪽을 하나씩 비끄러매고 편자를 박아주던 곳이다.

거기에는 경사진 공지가 있는데 마당이 좁은 농민들은 달구지를 거기에 갖다두군 했다.

여기까지는 불길이 미치지 않아 두대의 달구지는 성성한 그대로였다.

유격대원들은 그 달구지를 끌고와 소를 메웠다. 그리고는 집집의 남은 물건들을 몽땅 싣는것이였다.

유격구에는 집과 혈붙이를 잃고 들어온 어른들과 아이들이 많았다. 이들에게는 옷가지 하나도 귀한것이다.

청년들은 김치움에 들어가 된장과 간장이 든 배불뚝이 독을 맞들어 달구지에 실었다. 성한 그릇들도 모조리 찾아내여 달구지에 실었다.

김기송동지와 아동단원들은 이 일을 적극 도왔다.

기송동지가 성한 옷을 한아름 안고 달구지 있는데로 가는데 한 애가 다급히 소리쳤다.

《기송아! 기송아!》

옷가지를 달구지에 싣고 몸을 돌린 기송동지의 눈에 광채가 비꼈다. 그애의 손에 그토록 찾던 신호나팔이 들려있는것이 아닌가.

기송동지는 바람을 탄듯 그애앞으로 달려갔다. 그러다 우뚝 멈춰서더니 얼굴에 아수한 빛이 덮였다. 나팔은 어디에 끼웠댔는지 아구리가 거의 맞붙게 오그라들었던것이다.

기송동지의 목소리는 가볍게 떨렸다.

《이걸 어디서 찾았니?》

《태호네 집이야. 골방에 들어갔댔는데 넘어진 바람벽밑에 깔려있더구나. 태호 아버지가 숨겼던게야.》

아동단에선 나팔을 잃은 일을 다 알기에 그애는 제 짐작을 이렇게 보탰다.

기송동지는 조수처럼 덮쳐드는 아쉬움을 이기지 못하며 나팔을 받아쥐고 이리저리 살폈다. 납작하게 오그라든 나팔아구리를 무슨 재간으로도 살려낼것 같지 못했다.

태호 아버지가 까닭모르게 돌아갔지만 원망스럽게 여겨졌다.

이 나팔소리가 그렇게도 싫었을가?

림원학은 나팔소리가 마을에 화를 불러올것 같아 자기 집에 깊숙이 숨겼던것이다.

아동단생활에 활력을 보태주던 나팔, 이 나팔이 잃어져 얼마나 애를 태웠던가. 태호는 고모네 집에서 어떻게 살고있는지? 거긴 《토벌》을 맞지 않았을가?

기송동지는 못쓰게 된 나팔을 보며 기분없어 훌 던질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곽찬수선생의 성의가 배인 소중한 나팔이다.

기송동지는 어른처럼 한숨을 그으며 불에 구워지고 오그라진 나팔을 손끝으로 문다졌다.


김기송동지와 아이들은 연길하에 들어가 몸을 씻었다. 시꺼먼 물이 강물에 넓게 퍼져흘렀다.

애들은 발밑의 모래를 파고 그밑의 감탕을 두손에 움켜쥐였다. 감탕을 비누대신으로 쓰려는것이다.

전같으면 강물에 뛰여들자마자 세찬 장난에 휘말렸을 애들이다.

서로서로 물보라를 들씌우기도 하고 물밑으로 헤여가 동무의 다리를 잡아채 허궁 들리워 물을 먹게 했을것이다. 그게 좋다고 웃음발을 하늘높이 뿜어올렸을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시들해서 몸을 씻고있다.

모래불에는 애들이 갈아입을 옷이 쌓여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어모은 옷가지에서 애들이 입을 옷을 골라 내놓으셨던것이다.

유격대원들과 구공청에서 온 청년들은 좀전에 달구지를 몰고 떠나갔다.

곽찬수선생은 아까 아동단원들을 모여놓고 알렸다.

《너희들은 래일 아침 떠나자. 오늘 큰 충격에 지쳤을테니 여기서 하루밤 쉬자. 쉴 곳은 내가 봐뒀다.》

이리하여 달구지가 떠나자 강에 나오게 된 애들이다.

옷을 깨끗이 차려입은 애들은 행길에 나섰다.

그들이 하루밤 쉬게 된 집은 마을끝에 외따로 앉아있었다. 놈들은 기름방망이가 모자랐던지 그 집 식구들만 죽이고 집에는 불을 달지 못했다.

애들이 몰켜 걸어가는데 골목길로 홍달수와 그의 아들 홍춘삼이가 기가 죽어 나왔다. 그놈들의 집도 오늘 들장났다.

아동단원들은 이른아침 이런 일이 있은줄 알리 없었다.

총성이 터지자 리춘팔의 집에서 자던 홍달수는 내의바람으로 대굴대굴 굴듯 하며 독을 품고 행길에 서있는 장교놈앞에 달려가 풀썩 꿇어앉아 절을 했다.

장교놈은 앙칼지게 물었다.

《넌 누구야?》

《예, 전…》

홍달수는 이리저리 주어들으며 익힌 일본말로 자기는 지주 리춘팔의 마름임을 밝혔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마을의 맨 뒤켠에 괜찮게 지은 자기 집을 가리키며 눈물이 글썽해서 사정했다.

《제 집만은 다치게 하지 말아주십시오. 제가 비둘기로 마을의 동태를 계속 알린 사람입니다.》

홍달수가 이런 긴 말을 일본말로 옮길수 없어 조선말로 해서 그런지 장교놈은 검을 뽑아들더니 홍달수를 단칼에 벨듯 하며 호통을 쳐댔다.

《몰라! 몰라! 리춘팔 좋아!》

홍달수가 군도에 제몸이 절반으로 잘리울듯싶어 뒤돌아서는데 장교놈이 권총으로 공포를 한방 쏘아댔다.

홍달수는 제가 주어맞은줄 알고 풀썩 주저앉았다가 황황히 리춘팔네 집쪽으로 장달음을 놓았다.

리춘팔네 집은 외따로 산기슭에 올라앉아있었지만 총알이 날아와 박히군 했다.

아들과 함께 부엌아궁앞에 납작 엎드린 홍달수는 바닥을 때리며 통곡을 터뜨렸다.

《아, 우리 식구 절반은 멸살이구나!》

집에서 처와 딸이 살고있었던것이다.…

김기송동지는 홍달수를 보자 눈에서 불이 일었다. 분노에 찬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얘들아, 홍달수 저놈이 오늘 오랑캐놈들을 불러온거야. 저놈이 내내 8도구로 비둘기를 날리고있지 않니.》

이건 마을에서 다 아는 일이였다.

기송동지의 목소리는 흥분에 떠있었다.

《얘들아, 저놈들을 족치지 않겠니? 밀정질을 하다가 제 집도 망했단 말이야.》

《옳아!》

《그래!》

《저놈이 요전날 형사놈과도 쑥덕거렸어.》

눈에 피발이 선 애들은 서둘러치며 돌멩이를 주어들고 홍달수쪽으로 왁 밀려갔다.

겁이 든 홍달수는 마름행세를 하면서 굳어진 버릇대로 밭은 발을 구르며 호통을 쳐댔다.

《무슨짓들이야? 어른도 몰라보고.》

순간 모가 선 돌멩이가 홍달수의 미간에 맵짜게 박혀들었다.

《아이쿠!》

홍달수는 피가 터지는 얼굴을 싸쥐며 바쁜소리를 쳤다.

또 다른 돌멩이가 춘삼의 목덜미를 후려갈겼다. 춘삼은 비명을 질렀다.

《아버지!》

둘은 옆골목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거기로도 리춘팔네 집으로 갈수 있었기때문이다.

애들은 악을 품고 따라가며 돌멩이를 연방 던졌다. 돌멩이는 두놈의 몸뚱이를 어디라없이 갈겨댔다.

두놈은 너무 주어맞아 벌렁벌렁 기며 리춘팔네 대문을 열고 새여들어갔다.

밤이 깊었다.

아이들은 마을끝의 불타지 않은 집에서 자고있었다.

업고 십리를 뛰여도 모르게 곯아떨어졌다.

오늘 종일 그 나이로서는 받아안기 아름찬 정신적충격속에 지쳐버린 애들이다.

김정숙동지께서는 기송동지와 함께 인남이를 가운데 눕히고 구석자리에 누우시였다.

그이께서는 오늘 잠시도 쉬지 못하셨다. 때맞춰 끼니를 보장해야 하셨고 애들이 벗어놓은 옷을 몽땅 부엌재를 밭아 얻은 재물에 푹 삶아 강에 나가 빨아야 하셨다. 방치질을 해서 몇번이나 강에 헤웠는지 몰랐다. 애들에게 여벌옷이 있어야 하는것이다.

인남이는 함지골 젖엄마가 짜준 젖을 마저 먹고 평온한 숨소리를 내며 자고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누구인가 조심스레 김정숙동지와 기송동지의 다리를 흔들었다. 오누이는 잠에 취한채 일어나앉았다.

캄캄한 속에서 이런 낮은 소리가 들렸다.

《나야, 곽찬수야. 다른 애들이 깨지 않게 슬며시 나오렴.》

오누이는 소리 안나게 조심하며 밖으로 나섰다.

점점이 널린 별들이 잠기를 간신히 이기며 하늘을 지키는듯 밖은 집안보다 조금 밝았다. 낮에는 찌물쿠게 덥지만 밤에는 선기가 흘렀다.

멀지 않은 곳에서 키 큰 사람이 이쪽을 바라보고있었다. 오누이는 눈으로가 아니라 온 륙감으로 알아보았다.

《오빠!》

《형!》

오누이는 그새 행처조차 알수 없었던 김기준동지의 품에 안겨들며 눈물의 뚝을 터쳤다. 기송동지는 반가움보다 가슴에 서리서리 차있던 설음이 북받쳐 울음소리를 점점 높이며 몸까지 떨었다.

김기준동지께서는 그리도 보고싶던 두 동생을 으스러지게 안으시였다. 눈물이 눈가에 그득 차올랐다.

그이께서는 곽찬수선생과 함께 불탄 마을과 합장한 무덤을 보고 돌아오신 참이였다.

가슴에는 울분과 비애, 비수같은 증오가 터질듯 차있었다. 요행 두 동생과 아들은 살았다.

기송동지가 갑자기 서둘러치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이어 조카 인남이를 포대기채 안고 달려나왔다. 그리고는 인남이를 흔들며 물기에 젖어 속삭였다.

《인남아, 깨여나. 아버지 왔어.》

김정숙동지께서 나무람하셨다.

《자는 앨 왜 깨우니?》

그리고는 인남이를 받아 오빠에게 넘겨주며 뜨겁게 말씀하셨다.

《오빠, 인남이가 얼마나 컸나 보라요.》

김기준동지께서는 아들을 안고 들여다보시였다. 그러나 흐르는 눈물과 흐릿한 달빛으로 해서 아들의 모상은 뚜렷이 잡히지 않았다. 퍼그나 컸다는것만은 알렸다.

오늘 비밀련락선을 타서 김기준동지에게 마을의 비보를 알린 사람은 곽찬수선생이였다.

김정숙동지의 오누이가 유격근거지로 들어가는 조건에서 조카 인남이의 처리가 문제였다.

그래서 김기준동지에게 기별을 띄웠던것이다. 그러다나니 아동단원들을 하루밤 여기서 쉬게 했었다.

한피줄을 나눈 세형제는 인남이를 껴안고 이미 차지했던 구석자리에 나란히 누웠다.

기송동지는 형님에게로 바싹 다가붙었다. 이제는 곁에 형님과 누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허전함이 가슴을 찢었다.

형제는 인츰 잠들지 못했다. 상봉의 격정이 그토록 컸던것이다.


날이 푸름푸름 밝아왔다.

갑자기 방문이 깨지듯 열리며 곽선생의 황급한 목소리가 방안을 그득 채웠다.

《왜놈기마병들이야! 빨리 뒤산으로 올리뛰자!》

아직도 피곤에 눌려있던 애들은 튕기듯 벌떡벌떡 일어났다. 순간에 잠기가 달아났다. 어제일이 반사적으로 머리를 친 애들은 마구 덤벼쳤다.

부엌은 아직 컴컴했다. 애들은 자기 신발을 찾아 신을수 없었다. 아무 신발이나 신기도 하고 외짝신발, 맨발로 바깥에 뛰쳐나갔다.

곽찬수선생은 숲이 우거진 뒤산길에 서있었다. 애들은 그 선생있는데로 정신없이 달려올라갔다.

김기준동지께서 아들을 품에 안으시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머리맡에 놓았던 쌀자루를 머리에 이시였다. 금방 일어나 동자질을 하려는 때에 적들이 덮쳐든것이다.

김기송동지는 일어나자 먼저 말코지에 걸었던 신호나팔을 벗겨쥐였다. 아무리 급해도 신호나팔은 잃을수 없었던것이다.

일행은 곽찬수선생의 뒤를 따라 원시림이나 다름없는 뒤산마루로 올리붙었다. 어찌나 숨차게 올리뛰였는지 애들의 어깨가 세차게 오르내렸다.

산마루에서 마을은 빤히 내려다보였다.

세놈의 기마병이 아동단원들이 자던 그 집에 이르러 총을 쾅쾅 쏴댔다. 애들을 놓친 일에 약이 오른 모양이다.

누구도 이 일은 알수 없었다.

홍달수가 왜놈들에게 집을 잃고 식구 절반을 잃었어도 그 울분은 뒤로 젖히고 마을애들에게서 괄시받은 일이 내려가지 않아 어제저녁 또 8도구로 비둘기를 날렸던것이다. 마을애들이 여라문명 살아남아 어느 집에서 자고있다고.

곽찬수선생이 아니였다면 애들은 비참한 죽음을 당했을것이다. 선생은 밤새껏 자지 못하며 불탄 집사이에 숨어 망을 보았던것이다.

조직에서는 어제의 참사를 놓고 이런 의견을 모았다.

마을경비를 세웠다면 집은 다 불타더라도 사람들은 미리 피했을수 있었을것이다.

그래서 곽선생이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눈두덩을 덮는 피로를 애써 이기며 망을 섰기에 한명의 피해도 보지 않게 된것이였다.

적들은 그 집에 불을 지르고 말을 타고 달아났다.

돌을 구워 야전식으로 아침을 지어 끼니를 에운 일행은 곧추 유격근거지로 들어가려 했다.

김기준동지와 두 동생은 헤여져야 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오빠가 안은 조카를 받으려 하셨다.

《오빠, 인남이는 내가 업고갈래요.》

김기준동지께서는 머리를 가벼이 저으시였다.

《아니야, 애는 내가 데려가겠다.》

《예?》

김정숙동지께서는 깜짝 놀라시였다. 어머니의 부탁이 가슴에 깊이 새겨져있고 애기는 녀자만이 키울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그이였다.

김기준동지께서는 정어린 목소리로 달래듯 말씀하셨다.

《너는 근거지에 들어가 혁명을 해야 한다. 아버지, 어머니의 원쑤를 갚아야 할게 아니니? 처녀가 그 산속에 들어가 어떻게 애기를 키우겠니? 인남이 걱정은 말아. 내가 사는 곳에 인남이를 맡길 알맞춤한 집이 있다. 무척 무던한 집이지.》

김기송동지는 조카를 내놓는 일이 아수하지만 형님의 말씀이 옳다고 여겼다. 누나가 인남이를 산속에 데리고 들어갔다가 제대로 키우지 못하면 어떻걸가? 또 하는 일에 지장이 클거야.

김정숙동지께서는 오빠의 타이름에 말문이 막혀 어깨에 잔파도만 지으셨다.

김기준동지께서는 아들을 등에 업고 떠나려 하셨다.

《형!》

김기송동지는 형님의 품에 와락 안겨들며 울음을 터쳤다.

이제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형님, 어디서 싸우는지도 모르는 형님!

김기준동지께서는 동생을 으스러지게 마주안으시며 목소리에 물기를 얹었다.

《기송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지?》

《알아.…》

대답은 울음에 깔려 작았지만 차돌같이 맺혔다.

이어 김기준동지께서는 숲을 헤치며 산아래로 내려가셨다.

기송동지는 선자리에서 움직일줄 몰랐다. 김기송동지는 숲에 가려 언뜻언뜻 보이는 형님을 향해 마음속맹세를 다졌다.

《형, 이제 봐, 이 막냉이가 본때있게 싸우는걸. 맨 앞장, 맨 앞장에서 말이야!》

맨 앞장, 이것은 김기송동지가 개량사숙에 다닐 때부터 다져진 승벽심이였다.

개량사숙에서는 월사금이 눅었으나 그걸 대기도 무척 베찼다. 온 식구가 기송동지의 학교다니는 일에 온힘을 쏟아부어야 했다.

기송동지는 고생하는 식구들에게 기쁨을 안겨주고싶었다. 그러자면 공부에서 맨 앞장에 서야 했다.

김기송동지는 밤밝혀 공부하군 했다. 아침이 되면 겨릅등에 코밑이 새까매지군 했다.

이리하여 기송동지는 학년적으로, 개량사숙적으로 공부에서 단연 첫자리를 차지하군 했던것이다.

김기송동지는 빼앗긴 나라를 찾기 위해 한목숨 서슴지 말아야 한다는 각오를 늘 다지며 살았다. 온 집안에 차흐르는 애국의 공기가 몸에 배여 그런 생각이 굳어진것이였다.

어머니와 온 마을 사람들을 일시에 참혹하게 잃은 오늘 기송동지의 가슴속에는 불이 달렸고 원쑤를 하루빨리 쳐없앨 마음이 바위처럼 자리잡았다. 어린 나이가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몰랐다. 야, 너덧살만 더 먹었어도!

김기송동지는 장재촌에 가 아동단생활의 맨 앞장에 서리라는 결의를 가슴속깊이 다지며 동무들과 함께 유격근거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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