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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회


제2장 다져먹은 마음


2


이른아침.

아동단원들은 갈기대운동장에 모여 체조를 하고있었다.

《하나, 둘, 셋, 넷…》

기송동지가 앞에서 힘차게 구령을 주었다.

아이들의 웃동은 모두 맨몸바람이다. 8도구장거리의 가게방에 가면 런닝그며 스프링을 팔았으나 그걸 넘볼수 없었다. 운동화도 먼 나라의 물건이였다.

한여름이라 웃동을 벗은것이 오히려 씨원하고 거뜬하기도 했다.

기송동지의 옆에는 김정숙동지께서 조카 인남이를 업고 서계시였다.

갈기대에 오른 애들은 여라문명 되였다. 워낙 그 두곱은 되였으나 왜놈들이 마을을 돌며 칼탕을 친다는 소문에 지레 겁먹고 나오지 않은것이다.

이것이 안타까와 김기송동지는 집집을 돌며 애들을 다몰아댔다.

《그쯤한 일에 겁을 먹으면서도 혁명을 하려 했어? 아침체조에 나오지 않을래?》

애들은 맵짜고 여돌찬 김기송동지에게 눌려 할수없이 무거운 몸을 일으키기도 했다.

어떤 부모들은 제 자식을 등뒤로 밀고 목에 피대를 세웠다.

《넌 우리 애를 죽이려는게냐? 왜 나가기 싫다는 애를 끌어내지 못해 몸살이냐?》

기송동지는 이런 부모들에게 할 말을 찾을수 없었다.

아직 아침해가 동산너머에 있었다. 갈기대등판에는 엷은 안개가 흘렀다.

이때 8도구에서 부암동으로 향한 행길로는 군용자동차 한대가 달려오고있었다. 적재함에는 스무명쯤 되는 왜놈군대들이 철갑모의 턱끈을 조이고 총창까지 꽂은 보총을 세우고 앉아있었다.

놈들의 눈은 맹수의 눈마냥 몸서리치리만큼 무섭게 번뜩였다. 매일같이 숱한 사람들의 피를 보다나니 야수이상으로 변하고만것이다.

자동차는 하촌을 눈앞에 보며 멎어섰다. 운전칸에서 장교놈이 뛰여내리고 적재함에서 졸병들이 쏟아져내렸다. 졸병들의 량손에는 대여섯자루의 기름방망이가 들려있었다. 석유가 푹 배여 땅에 기름방울이 점점이 떨어졌다.

놈들은 언덕받이에 기여올랐다. 거기서는 하촌이 한눈에 바라보였다. 마을은 행길을 사이에 두고 모록이 들어앉아있었다.

장교놈은 마을을 손짓하며 명령을 떨구었다. 마을을 4등분하여 한조씩 맡으라는거다. 놈은 여러차례의 마을《토벌》을 하면서 《경험》을 쌓았다고 할수 있었다.

처음에는 무작정 마을로 덮쳐들었다. 그러면 매 집을 일시에 요정낼수 없는것만큼 옆집사람들은 집뒤 산속으로 들구뛰였다. 숲속에 몸을 가린 사람들을 다 쏘아댈수는 없었다. 그러다나니 《성과》가 적었다.

지금에 와서 경험이 풍부해진 장교놈은 우선 졸병들로 하여금 은밀히 마을을 포위하게 한다.

담당된 구획에서 또 분담이 지어지도록 한다. 집에 불을 지르는 놈, 집에 뛰여들어 살륙전을 벌리는 놈, 두어놈은 마을뒤를 지키게 한다. 총성에 까무라치게 놀라 도망치려는 사람들은 가차없이 총으로 쏘아대게 한다.

이렇게 해서 마을사람들을 모두 전멸시키는 큰 《전과》를 거두군 하는것이다.

얼마후 하촌은 불시에 들썩 들렸다. 여러군데에서 울리는 앙칼진 총성이 아침대기를 발기발기 찢었다. 땅이 진동했다. 바싹 마른 지붕들에서 불길이 널름거렸다.

도망치려던 사람들은 목을 지키는 놈들에게 들켜 그자리에 쓰러졌다. 또 어떤 사람은 김치움에 숨으려다가 문짝을 따지 못한채 비명과 함께 피를 뿜기도 했다.

총성, 비명, 불길… 갈기대운동장에 있던 아동단원들은 이 모든걸 듣고 보았다.

처음 아이들의 눈동자는 대바람 허둥거렸다. 태여나 처음으로 보는 참변인것이다.

아이들은 누가 출발신호라도 울린듯 마을로 달려내려가려 했다.

김기송동지가 날쌔게 앞을 막아서며 두팔을 쭉 벌렸다.

《서라! 가면 죽어!》

김정숙동지께서 거의 동시에 기송동지의 옆에 와 두팔을 벌리시였다. 안광에는 안타까운 빛이 확 덮였다. 목소리가 떨리시였다.

《가면 안돼요, 죽어요!》

등에 업힌 조카가 산발이 무너져내리는듯한 총성에 놀라 몸을 벌떡벌떡 일으키며 목터지게 울었다. 자칫하면 포대기에서 빠져나올것 같았다. 그러나 그이께서는 애기를 돌볼 경황이 없으시였다.

아이들은 눈에 피발이 서서 주춤거렸다.

한 애가 낌새를 보다가 아래로 들구뛰였다. 기송동지가 날쌔게 그애의 팔목을 움켜잡았다.

그애는 매몰차게 팔을 나꿔채며 부르짖었다.

《왜 잡는거야? 너는 집걱정을 안하니?》

기송동지의 목소리가 맞받아 울리였다.

《나도 집걱정에 속이 새까맣게 타. 그러나 우리가 내려간다고 식구들을 살릴수 없지 않니? 오히려 왜놈들에게 들켜 죽는단 말이야.》

김기송동지는 자신이 분단장인것만큼 어떻게든 여기 있는 동무들의 생명을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애와 싱갱이질을 하는 사이에 또 한 애가 내려뛰였다. 기송동지는 온힘을 다해 따라가 끝내 그애를 붙잡았다. 또 한 애가 도망쳤다.

그러나 기송동지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한 애도 아래로 들구뛰지 못했다.

마을에서는 시뻘건 불찌를 날리며 검은 연기가 하늘높이 치솟아올랐다. 지붕에 달린 불이 이젠 집을 몽땅 태우고있는것이다.

놈들이 철수하였는지 귀청을 찢던 총성이 즘즛해졌다.

좀더 동안을 두었다가 기송동지는 동무들을 풀어주었다.

마을 뒤켠의 수수밭은 세찬 불길에 휩싸여 줄기차게 뻗던 이파리들이 후줄근히 익었거나 꼬실꼬실 말라들었다.

아동단원들은 자기 집에 뛰여가고싶었지만 통털어 한동아리의 불천지가 된 마을에 발을 내짚을수 없었다.

공기는 불처럼 달구어져 웃동이 맨몸바람인 애들의 몸을 익히려고 매몰차게 감돌았다.

애들은 그속에서도 자기 집을 찾았다. 어느 집이라없이 하늘을 태울듯 불길을 솟구고있었다.

한 애가 피끗 떠오르는 생각을 터쳤다.

《얘들아, 식구들이 산에 올리뛰지 않았을가? 총소리를 듣고 뛸수 있단 말이야.》

이것은 큰 발견이였다.

애들은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수수밭을 빠져 산에 붙었다.

애들은 저마끔 목이 터지게 소리를 높였다.

《아버지!》

《엄마!》

그리고 자기 형이며 동생들의 이름을 련거퍼 불러댔다.

이것을 본 기송동지가 김정숙동지에게 물었다.

《누나, 나두 가볼가?》

무섭게 불타는 마을을 눈물속에 바라보시던 김정숙동지께서는 선뜻 대답을 주지 않으셨다. 소년선봉대에서 왜놈들의 《토벌》수법이 날로 악착해진다는 말을 들으신것이다.

그러나 어찌 알랴. 마을사람들중 몇이라도 날쌔게 피했을수 있지않는가. 그속에 어머니도 끼여있었으면…

기송동지도 동무들을 뒤따랐다.

《엄마―》

목이 터질듯한 웨침은 산발에 엷은 메아리를 일으켰다.

기송동지는 산으로 올리뛰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눈을 슴벅이며 머리를 기웃거렸다.

몸을 피한 사람들은 산에 숨더라도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숨었을거야. 적들의 움직임을 살피려고 말이야. 그러니 맨먼저 왜놈들이 물러간걸 알았을게고 그길로 내려올것이 아닌가.

그런데 내려오는 사람이 한명도 보이지 않는다.

기송동지는 먼저 집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되돌아섰다.

마을을 휩쓸던 불길이 한결 잦아들었다. 모두 나무로 지은 집이여서 폴싹 주저앉았다. 넘어진 기둥들이 마저 타느라고 불길을 피워올렸다. 사방엔 재티들이 쫙 깔렸다.

김기송동지는 누나와 함께 집으로 달렸다.

불길은 수그러졌지만 집가까이 가니 무서운 열기가 몸을 태울듯 끼쳐왔다.

집으로는 뛰여들수 없었다.

기송동지는 마당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바자굽에 어머니가 쓰러져있는것이 아닌가. 여러발의 총알을 맞으신듯 옷이 온통 피투성이고 그 피가 땅에 줄기를 지었다.

기송동지는 얼혼이 나간 소리로 뒤따라오는 누나에게 웨쳤다.

《누나, 어머니가 여기 계셔!》

김정숙동지께서는 걸음을 재우치시였다. 가슴에는 인남이가 안겨있었다. 울음에 지칠대로 지치고 자기 전에 젖을 먹고는 지금껏 빈속인 인남이는 목을 축 늘어뜨리고 눈을 감고있었다. 그러나 쓰러져있는 어머니를 보시는 순간 언제 조카를 돌볼 경황이 없으셨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무너지듯 어머니앞에 주저앉으셨다. 그리고는 어머니에게 안겨들며 울음뚝을 터치시였다.

《엄마! 엄마!》

어깨가 세차게 물결쳤다.

기송동지는 옆에 서서 락수처럼 흘러내리는 눈물을 련거퍼 손으로 씻었다.

어머니의 눈이 알릴듯말듯 움씰거렸다. 가느스름히 눈이 띄여지셨다. 자식들을 알아보신듯 마지막힘을 모아 하시는 말씀이 점점 가늘어졌다.

《정숙아… 인남이를… 맡아다오.… 원쑤를 갚아다우.…》

그리고는 조용히 눈을 감으시였다.

이 말을 남기기 전에는 돌아가실수 없어 온몸의 긴장을 다잡고계셨는지 모른다.

오누이는 어머니를 마구 흔들며 몸부림쳤다.

자식에게 부모는 하늘이다. 아버지를 여의였지만 어머니가 계셨기에 오누이는 한량없는 사랑속에 몸을 푹 맡길수 있었다.

기송동지는 어머니가 이 세상에서 제일이라 여기며 살았다. 어디에 가나 인심을 독차지하던 어머니, 《회령집》이라 사람들이 정을 담아 부르게 해주시던 어머니, 개량사숙을 다니던 때 《우리 집에도 학생이 생겼구나.》 하고 자랑에 넘쳐 곱씹어 말씀하시던 어머니, 월사금과 학용품을 대주시려고 밭일을 하는 짬짬에 산에 올라가 산열매를 따서 장에 내가시고 밤늦어 연필 두어자루 사들고 오면서도 더없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시던 어머니!

한시간전만 해도 부엌에서 동자질을 하시는 어머니를 보고 갈기대에 올랐는데 하늘땅이 휘딱 뒤집혀 총탄을 맞고 숨진 어머니를 안게 된것이 아닌가.

문득 형수생각이 들었다.

마당을 암만 둘러살펴야 형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집안에…)

그러나 집안으로 선뜻 들어설수 없었다.

세찬 불길에 휩싸여 한옆으로 기울어진 집에서는 지금도 무서운 열기가 확확 내뿜고있었다.

그러나 빨리 형수를 찾아야 했다.

헤덤비는 속에 부엌문 안켠에 숱한 총알을 맞고 쓰러져있는 형수를 발견했다.

옆의 물독도 총알에 맞아 박살이 나다보니 형수의 몸은 온통 피와 물로 푹 젖어있었다.

김기송동지와 김정숙동지께서는 인남의 어머니를 정히 들어 어머니의 옆에 눕혔다.

다시 세찬 울음뚝이 터졌다.

말이 적고 무던하기 이를데없던 인남의 어머니, 이젠 엄마잃은 인남이가 어떻게 자랄것인가. 지하공작의 길에 계시는 인남의 아버지가 이일을 안다면?…

땅에 눕힌 인남이가 기신없이 눈을 감고있더니 다리를 버둥거리며 숨을 꺽꺽 삼키면서 울어댔다. 대바람 조마구만한 얼굴이 발갛게 달았다.

기송동지는 울먹해서 누나에게 말했다.

《누나, 인남이를 죽이겠어. 젖을 먹은지 언제야? 어디 가 젖을 얻어 먹여야 하지 않아?》

김정숙동지께서는 잠잠히 생각에 잠기시였다.

어머니의 마지막말씀이 그이의 가슴을 발기발기 에이시였다. 엄마없는 손자 인남이가 얼마나 가슴에 맺혔으면 나에게 그애를 부탁하고서야 눈을 감았을것인가.

김정숙동지께서는 함지골에 갈 생각이 드시였다. 그곳은 집이 겨우 두채여서 왜놈들의 《토벌》이 미치지 않았을것이다.

함지골에는 인남이만한 애기를 키우는 잘 아는 집이 있었다.

함지골이란 함지를 파서 장에 내다파는 골안이란 뜻이다. 그곳은 여기서 5리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김정숙동지께서는 선뜻 걸음을 내짚을수 없으시였다. 참혹한 피투성이로 숨진 어머니와 형님을 그냥 두고 떠나실수 없어서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렇게 독촉하는듯싶었다.

《정숙아, 뭘하니? 빨리 인남이를 살려라.》


김정숙동지께서는 쫓기듯 함지골의 잘 아는 집을 찾아가시였다.

얼굴이 불깃불깃하고 몸이 좋은데다 씨원씨원한 성격인 녀인은 하촌의 참경을 알던터라 동정의 눈물을 짓다가 제꺽 인남이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리였다.

젖에 주렸던 인남이는 몸을 우들우들 떨며 젖을 빨아댔다. 헤덤벼치며 빨다나니 젖에 개끼였다. 그러나 더 바투 다가들며 암팡스레 젖을 빨아대는것이였다.

젖엄마는 눈물이 글썽해졌다.

《얼마나 젖에 주렸으면 이럴가?》

김정숙동지께서는 애처롭고 측은한 생각에 인남이를 와락 안아주고싶으시였다.

(엄마없는 우리 인남이, 불쌍한 우리 조카, 이애를 어떻게 키울가?)

그러는데 젖을 푸짐히 먹고 방구석에서 장난치던 이 집 애가 자기 엄마의 젖을 딴애가 빠는것을 보게 되였다. 그애는 큰일이나 난듯 앙― 울음을 터뜨리면서 덤벼치며 기여오더니 인남이의 발을 사정없이 끌어당겼다. 젖엄마는 그러는 자기 아들의 엉치를 때리며 소리쳤다.

《이 놀부같은 놈아, 얼마나 불쌍한 앤지 아느냐?》

엄마한테서 엉치를 주어맞은 애는 분해서 울음소리를 더욱 높였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미안하고 옹색해서 몸둘바를 모르시였다.

《고마워요. 이젠 가겠어요.》

젖엄마는 눈을 끔쩍하며 일러주었다.

《우리 〈돼지〉를 안고나가요. 그건 심술꾸러기라니까.》

그러나 젖엄마의 어조에는 사랑이 넘쳤다.

김정숙동지께서 이 집 애를 안아주자 아기는 그래도 자기를 알아주는 아지미가 있다고 여겼는지 품에 안겨들었다.

밖에 나서니 마당앞에 실개울이 흐르고있었다.

그이께서는 정을 담아 그애의 얼굴도 씻어주고 발도 닦아주셨다.

집에 들어서니 젖을 배불리 먹은 인남이는 이 집 애의 포대기를 깔고 깊은 꿈나라로 날고있었다.

젖엄마는 병에 젖을 또 짜넣고있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눈물이 핑 어림을 느끼며 말씀하셨다.

《그렇게 젖을 다 짜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일없어, 나는 젖이 많아. 저게 불쌍한걸 생각하면…》

젖엄마는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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