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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된 조국의 모습을 화폭에 담고싶다

 

언젠가 정창모는 기회가 있어 남조선에 있는 가족친척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통일된 조국의 모습을 화폭에 담고싶다.》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통일된 조국이 있었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행복이 커지고 명성이 높아질수록 혈육들이 그립고 기쁨을 나누고싶은 마음 간절했다.

의지가지할데 없는 홀몸으로 빈 배낭 하나만 메고 공화국의 품에 안긴 그는 늘 통일의 날을 간절히 바라면서 자기가 누리는 행복한 생활을 그들에게 보여주고싶어 하였다.

통일을 그처럼 갈망하는 그였기에 외세에 의해 분렬된 조국의 아픔을 두고 그리도 가슴아파했으며 자기의 심정을 화폭에 그대로 담았다.

정창모의 통일주제작품들은 보면 볼수록 누구나 분렬의 아픔을 통절히 느끼게 한다.

개성에서 자동차길로 20분가량 남쪽으로 가면 판문점에 다달은다.

화가는 여기 림진강과 한강이 합쳐진 강이라 림한강이라 부르는 강기슭에서 그 옛날 아담한 농가였으리라고 생각되는 집터와 낡은 우물자리를 보았는데 그것을 보는 순간 심장은 솟구치는 격정으로 터질듯 아파났다.

(아, 어느 놈이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았는가.

나라의 분렬을 강요한 외세가 아니였다면 이 나라 백성의 꽃다운 보금자리가 펼쳐지는 곳일진대 이 림한강기슭의 오붓한 집은 간데 없고 황페한 집터와 우물자리만 남았구나.)

화가는 가슴아픈 정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분노의 뜨거운 웨침을 화폭에 담아 만천하에 고발하는 고소장으로, 미제를 단죄하는 판결문으로 삼으리라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그 자리에서 3부작으로 된 조국통일주제의 풍경화를 구상하였고 평양에 들어와 창작완성하였다.

먼저 《장벽을 넘어오는 철새》를 그렸고 두번째로 《분계선의 옛 집터》를, 세번째로 《림진강의 눈석이》를 그렸다.

《분계선의 옛 집터》에는 한가정의 보금자리였던 집터에 분계선이 지나가 수십년세월 황페화된채로 내버려진 비참한 정경이 생동하게 형상되여있다.

무너진 집터에는 기둥이나 서까래가 이미 썩어 없어졌고 토방의 대돌자리만이 알릴듯말듯 잡초속에서 얼굴을 내밀고있다. 허물어진 우물의 돌틈에 새로 돋아난 복숭아나무에서 봄이 온듯 꽃들이 피였다.

정창모는 자기 작품을 통하여 이러한 비극을 낳은 원쑤들에게 철추를 내리고 우리 겨레모두에게 조국통일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 한결같이 떨쳐나설것을 뜨겁게 호소하였다.

《장벽을 넘어오는 철새》 역시 이 땅의 허리를 동강내여 겨레의 비극을 가져오게 한 미제를 비롯한 분렬주의자들을 준렬히 단죄하면서 반세기가 넘도록 분렬의 쓰라림을 겪고있는 이 현실을 더이상 지속시킬수 없으며 반드시 조국통일은 성취되고야만다는것을 짙은 화폭의 형상을 통해 가슴뜨겁게 보여주고있다.

철새들은 인공적으로 구축해놓은 분렬의 장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데 어찌하여 같은 피줄을 가진 겨레, 부모형제들은 한발자국도 넘어서지 못한단 말인가.

《림진강의 눈석이》에서는 분렬주의자들이 아무리 날뛴다 해도 굳게 얼어붙은 분렬의 장벽은 봄날의 눈석이처럼 조만간에 녹아 없어져버릴것이라는것을 형상적으로 확인시키고있다.

림진강은 그 물줄기가 분계선을 따라 내려와 서해로 뻗은 조국분렬의 상징적인 강이기도 하다. 하도 많은 가지가지의 멍든 사연을 안고 유유히 흐르는 림진강!

이 강을 낀 산야에도 해빛 따사로이 비쳐 눈석이가 시작되였다.

속절없이 사그라져 없어지는 겨울철의 엄혹했던 자취, 바야흐로 새싹들이 움트기 시작할것이다.

작품은 이렇듯 풍경화형식의 서사적화폭을 통하여 조국통일의 날은 반드시 오고야말것이라는 심오한 사상을 펼쳐보이고있다.

정창모는 이외에도 《남반부인민들과 담화하시는 어버이수령 김일성동지》, 《기러기떼》, 《분계선마을》, 《광야의 철새》, 《4. 19의 용사들》 등 많은 작품들에서 조국통일에 대한 우리 인민의 념원과 희망, 신심을 예술적향기에 담아 예리하고 강렬하게 호소하는 정서깊은 작품들을 수많이 창작하였다.

태양의 은혜로움은 만물에 빛을 주고 생을 주는데 있다.

인류가 높이 받들어모신 위대한 태양의 빛발아래서 풍요한 대지에 뿌려진 씨앗은 어느덧 락락장송으로 자랐다.

그에게 원이 있었다면 그것은 조국이 통일되여 고향에 있는 형제들과 만나는것이였다.

그는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 성원으로 남조선에 갔던적이 있다.

이때 이름난 조선화대가가 온것을 알고 남조선기자들이 정창모미술전람회를 하자고 건의해나섰다.

전시장이라고 만들어놓은데를 먼저 가보니 자기의 본작품은 대여섯편이 됨직하고 모두가 가짜그림들이였다.

그래서 그는 이런 그림을 가지고는 전시회를 할수 없다고 하고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남조선에서 태여난 사람이다. 하지만 나를 세상이 다 아는 인재로 키워주신분은 바로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이시다. 인간의 존엄을 가장 귀중히 여기고 참된 삶을 빛내여주는 고마운 사회주의제도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내가 오늘과 같은 유명한 미술가로 될수 있었겠는가.》

이것은 결코 그 혼자의 심정만이 아닌 이 땅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열렬한 감정의 웨침이였다.

사랑하는 혈육들과 헤여져 살아야 하는 아픔을, 분렬의 고통을 늘 페부로 감수하며 살아온 정창모는 가슴속에 차넘치는 통일열망을 담아 누이동생들에게 《통일조국 만세!》라는 글발을 써주고나서 이런 말을 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이 계시기에 우리가 함께 모여살 통일의 날도 멀지 않았다.》

평양에 돌아온 그는 그날이 한시라도 빨리 왔으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말하던 누이동생들의 간절한 눈빛을 정말 오래동안 잊을수 없었다.

이것은 전체 조선민족의 간절한 념원이라고 생각하였기에 정창모는 민족의 통일념원이 담긴 명작들을 훌륭히 창작해낼수 있었던것이다.

혈육들과 만나고 온 후 그는 새해가 시작될 때면 이렇게 말하군 하였다.

《통일된 조국의 모습을 꼭 화폭에 담으려고 합니다.》

화가는 통일된 조국을 그리도 담아보고싶어했지만 일생토록 분렬의 아픔만을 그리지 않으면 안되였다.

화가가 바란 통일된 조국.

그것은 민족모두가 통일을 바라고 통일을 위해 투쟁할 때 반드시 오고야말것이다.

 

*           *

 

어머니조국에 바치는 뜨거운 열정을 안고 정창모는 2010년 사망하기 전까지 근 40여년간의 창작생활기간에 불멸의 수령형상작품과 국보적인 작품을 비롯하여 수천여점의 미술작품들을 남기였다.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가 사상예술성이 높은 미술작품들을 창작하였을 때마다 친히 작품들을 하나하나 보아주시면서 못내 기뻐하시였다.

그 나날에 그는 김일성상계관인, 인민예술가, 예술학박사칭호와 함께 높은 국가수훈과 대를 두고 길이 전할 사랑의 선물을 받아안았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속에서 그는 이전 쏘련을 비롯하여 중국, 일본, 타이 등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진행되는 미술전람회들에도 참가하여 주체미술의 영예를 떨치였다.

어린시절 꿈으로만 간직되여있던 그의 미술적재능은 이렇게 위인들의 해발아래 활짝 꽃피여 열매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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