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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찬 미술창작활동의 나날에

 

정창모가 훌륭한 미술가로 된 바탕에는 언제나 그의 높은 열정과 사색, 엄격한 창작적요구가 어려있다.

더 진실하게.

더 훌륭하게.

더 독특하게.

더 아름답게.

이것은 미술가로서 그의 창작적요구였다.

옛사람들이 말하길 범은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인류력사가 흐르고흘렀어도 세계적인 명화들과 더불어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레삔과 같은 재사들을 기억하고있듯이 우리의 주인공 정창모도 자기의 훌륭한 명화폭들과 함께 명망높은 조선화화가로 미술사에 뚜렷한 한페지를 차지하고있다.

정창모는 수령형상작품을 조선화로 훌륭히 형상해낸 이름난 미술가들중의 한사람이다.

그는 직업적인 미술가로서의 첫걸음을 위대한 수령님의 형상을 창조하는것으로 내디딘 대담한 조선화화가이다.

미술대학졸업을 앞둔 그는 생각이 너무나 많았다.

위대한 수령님의 은혜로운 사랑과 따뜻한 보살피심속에서, 교원들의 세심한 지도와 방조속에서 꿈같이 흘러간 학창시절!

어느덧 졸업작품을 창작할 때가 된것이다. 사회와 인민앞에 미술가로서의 첫선을 보이는 졸업작품을 창작해내야 하는 그의 생각은 깊어만 갔다.

그럴수록 그의 뇌리에는 일제의 압제하에서, 미제의 폭정하에서 갖은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헤매이던 자신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 먹여주고 입혀주고 따뜻이 이끌어주시여 어엿한 미술가로 키워주신 수령님의 하해같은 은정이 가슴사무치게 안겨왔다.

(어버이수령님이 아니시였다면 오늘의 나를 생각이나 할수 있겠는가. 그러니 어버이수령님을 형상하자.

나라를 찾아주시고 우리 인민에게 자주적삶을, 창조적인 삶을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이 자애롭고 인자하신 그 영상! 만민의 태양으로 솟아오르신 어버이수령님의 영상을 형상하자!)

그는 자신의 사상예술적기량이 너무도 미약하다는것을 알면서도 주저하지 않았다.

고심어린 사색과 탐구의 나날이 흘러갔다.

그는 현지습작으로 서해가의 어느 한 어항을 찾아갔다.

여기서 그는 이른새벽 이곳에 오시였던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름할수 없는 감동을 받게 되였다.

갈매기도 아직 잠에서 깨여나지 않은 이른새벽 기슭을 치는 파도소리만이 들리는데 짙은 안개속 진창길을 걸으시며 이곳 해변가에 찾아오신 수령님.

전쟁의 피해가 채 가셔지지 않은 선창에 오신 수령님께서는 출항을 앞두고 일손을 다그치는 나이지숙한 한 어로공에게 다가가시여 조용히 말씀을 건네신다.

미제와의 피어린 싸움에서 승리한 용감한 우리 인민, 허리띠를 졸라매며 전후복구건설에 떨쳐나선 우리 인민에게 더 많은 물고기를 먹이려면 어떻게 하는것이 좋겠는가고.

한없이 고결하고 인자하신 수령님앞에서 크나큰 감격에 목이 메여 자기의 속생각을 띠염띠염 말씀올리는 어로공.

이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 화폭인가.

수령님은 인민을 믿고 인민은 수령님을 친어버이로 받들어모신 화폭, 이것이야말로 만민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고결한 풍모를 담을수 있는 숭엄한 화폭으로서 정녕 력사와 더불어 조국청사에 길이 전해야 할 대서사시적화폭으로 될것이다.

정창모는 이 화폭을 형상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창작사업에 모든 심혈을 기울이였다.

대학의 교원, 학생들모두가 그의 창작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였으며 지도와 방조를 아끼지 않았다.

그것은 이 작품이 미술대학에서 처음으로 조선화로 형상되는 위대한 수령님의 영상을 모신 작품이기때문이였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수령형상작품은 유화로만 형상할수 있는것으로 인정되여왔으며 산수나 화조를 위주로 한 종래의 조선화화법으로는 엄두도 못내는것으로 알고있었다.

력사적으로 내려오면서 조선화로 형상된 인물화들은 주로 선묘법을 위주로 하여 형상하였으므로 다양한 인간들의 성격과 섬세한 내면세계를 형상하는데서 부족점이 많았다.

벅찬 우리 시대, 자주시대를 향도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형상하자면 종전의 고루한 형상방법을 대담하게 극복하고 새로운 조선화화법을 창조해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는 학창시절에 사색과 탐구의 고비를 넘으면서 연구한 조선화의 전통적인 화법인 몰골법을 기본으로 하고 산 인간의 성격과 내면세계, 현대적미감을 다 표현할수 있는 새로운 조선화화법을 창작실천에 구현할 결심으로 대담하게 창작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우리 시대 인간들의 미감에도 맞고 작품의 주제사상에도 부합되는 새로운 인물화법을 창조해냈으며 그 화법으로 수령님의 영상을 훌륭하게 형상해냈던것이다.

처녀작인 졸업작품 조선화 《배머리에 오신 수령님》은 이렇게 창작완성되였다.

그림은 부드럽고 유연한 색채로 조화통일되여있고 자그마한 부분과 세부까지도 빈틈없이 사실 그대로의 모습으로 재치있게 그려짐으로써 친근감을 줄뿐아니라 커다란 미적정서를 불러일으키였다.

그의 창작적성과는 우리 나라 미술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정창모는 이 작품의 창작을 계기로 미술계의 이목을 끌기 시작하였다.

졸업작품의 창작으로 미술창작의 첫 출발을 장식한 정창모는 1966년에 조선화 《북만의 봄》을 세상에 내놓아 또다시 미술계를 뒤흔들어놓았다.

그에게는 오래전부터 소중히 간직해온 하나의 작품소재가 있었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령도하신 영광스러운 항일무장투쟁을 반영한 작품으로서 원쑤격멸의 성전에 용약 떨쳐나선 항일유격대 녀대원을 형상하는것이였다.

대학생시절에 혁명전적지에 대한 답사를 통하여 싹트고 무르익혀온 이 소재는 본격적인 창작생활에 들어선 그를 몹시도 흥분시켰다.

항일혈전의 준엄한 폭풍우속에서 한몸바쳐 나선 유격대녀대원, 남성들도 감히 나서기 주저했던 그 간고한 투쟁의 소용돌이속에서 자기가 타고 온 군마에게 물을 먹이는 녀대원.

험산준령을 질풍같이 달려온 군마를 정겨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녀대원은 무엇을 생각하는것인가.

녀투사는 가렬처절했던 지나온 나날과 앞으로 있게 될 조국해방의 희망찬 앞날을 그려볼것이다.

일가식솔을 한날한시에 왜놈들에게 빼앗기고 젖먹이 어린것을 남의 집 문턱에 남겨둔채 떨어지지 않는 발을 가까스로 옮겨디디며 투쟁의 길에 나선 녀대원.

그러나 그에게는 희망이 있다.

위대한 장군님만 믿고 따르면 조국해방의 려명은 반드시 밝아오리라는 드팀없는 신념이 확고히 자리잡고있는것이다.

그러기에 녀대원의 표정은 사색적이면서도 어두움을 모른다.

바야흐로 엄혹했던 겨울은 가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알리는 자연환경은 녀전사의 소박하면서도 강의한 성격과 풍만한 정서속에 잘 어울리고있다.

그는 창작에 온 심혼을 다 바쳤다.

동평양경마장에 나가 말의 각이한 자세와 동작을 습작하고 상원군의 어느 산골짜기에 들어가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눈석이물도 그렸으며 겨울을 난 버들개지의 싹트는 모양과 설레이는 갈대들도 놓치지 않고 취재하였다.

특히 녀주인공의 원형을 찾아내는 일에 그는 모든 정력을 다 바쳤다.

암중모색하던 끝에 드디여 그 원형을 찾았을 때의 기쁨은 하늘에 닿을듯 하였다.

본격적인 작품창작에 들어가면서 정창모는 전통적인 조선화기법의 하나인 몰골법을 전면적으로 적용하였다.

물기흐르는 유연한 필치로 생동하면서도 간결하게 형상한 조형적처리는 녀대원의 형상뿐아니라 강의한 기질을 가진 말의 형상 그리고 시내가의 눈석이형상과 이른봄에 움터오는 버들개지와 갈대들이 진실하게 안겨오게 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조선화를 창작발표함으로써 그는 일약 신인화가의 대렬에서 벗어나 조선미술계의 당당한 중견으로 인정받게 되였으며 이 작품은 세상에 발표되자마자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조선화 《북만의 봄》은 이전 쏘련과 뽈스까에서 진행된 미술전람회에서 높은 호평을 받았다.

늦어서 미술의 길에 들어선 그가 그 어떤 특출한 재능이 있어 조선화의 명화가로 자라났겠는가.

그것은 혈혈단신으로 공화국북반부에 들어온 그를 따뜻이 품어 공부시켜 내세워주고 재능을 꽃피워준 어버이의 지극한 사랑이 있었기때문이였다.

그 사랑에 대한 보답의 마음이 누구보다도 강렬하였기에 그는 첫 졸업작품으로 수령님의 영상을 모신 조선화를 창작해냈고 항일혁명투사들을 형상한 작품도 성공시킬수 있었다.

정창모가 미술가로서 창작활동을 벌리던 초시기 우리 나라 미술분야에서는 조선화에 비해 유화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고 유화가들의 실력과 년한이 조선화가들에 비하여 우위를 차지하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1972년 9월 6일 당시 우리 나라 미술계에서 나타난 편향들을 분석총화하시고 앞으로 우리의 미술분야에서는 조선화를 발전시키는데 힘을 넣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 방향과 방도들을 명확히 밝혀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유화도 물론 그려야 하지만 그보다도 조선화를 더 장려하고 많이 그려야 한다, 미술가들이 우리의 원료와 자재를 가지고 조선화를 그리며 앞으로 미술작품을 세상에 들고나갈 때에도 조선화를 들고나가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정창모는 이때부터 위대한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를 받으며 조선화화가로서의 자기의 재능을 더욱 활짝 꽃펴나갈수 있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나라의 종합적인 미술창작기지를 꾸리실 원대한 구상을 안으시고 만수대창작사를 내오시고 유능한 창작가들을 망라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이를 계기로 미술부문에서는 혁명적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으며 수령형상창조사업이 줄기차게 벌어지게 되였다.

이 격동적인 시기에 정창모는 만수대창작사에 소환되여 새로운 창작적열정을 안고 창조사업에 달라붙었다.

그의 보람찬 예술창조사업의 나날들은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와 관심을 받으며 성장한 잊을수 없는 날들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가 그린 《설맞이에 오신 수령님》을 보시고 그림이 참 좋다고 하시며 외국의 수반들에게도 보여주시였다.

언제인가는 이런 일도 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정창모와 여러 미술가들이 집체로 창작한 《꽃밭》을 보시고 그림을 참 잘 그렸다고 하시며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이렇듯 위인의 사랑속에서 정창모는 조선화의 권위있는 대가로 자라나게 되였다.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지도밑에 조선화 《남반부인민들과 담화하시는 어버이수령 김일성동지》, 《농민들의 영농사업을 지도하시는 존경하는 김정숙동지》를 비롯한 백두산위인들의 불멸의 영상작품들과 함께 《금강산계곡》, 《백두산》, 《동해의 아침》, 《용광로가 보이는 바다가》 등 주옥같은 풍경화들을 련이어 창작하였다.

그가 조선화 《흰구름피는 창성땅》을 창작하였을 때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작품을 보아주시면서 그림이 지나치게 연하며 중심에 있는 양몰이처녀가 말을 타고 채찍을 쥐고있는데 이것은 우리 식이 아니라고, 우리 인민의 감정에 맞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우리 나라 현실에 철저히 발을 붙이고 미술작품을 창작하여야 한다고 지적하시였다.

위대한 스승의 가르치심을 받으며 정창모는 우리 혁명실천에 복무하는 미술이란 어떤것인가를 똑똑히 알게 되였고 《흰구름피는 창성땅》은 명작으로 완성되여 그후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좋아하시는 금강산의 비봉폭포를 그리는 영예로운 과업을 정창모에게 맡겨주시고 초안과 본작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지도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정창모가 창작활동에서 거둔 성과를 높이 평가하시여 그에게 1976년에는 어버이수령님의 존함이 모셔진 시계를 표창하여주시였으며 그 이듬해 2월에는 공훈예술가의 명예칭호도 안겨주시였다.

그 사랑 그 믿음에 보답하고저 정창모는 창작활동을 줄기차게 벌려나갔다.

그가 창작한 수많은 미술작품들은 국보적가치를 가지는 명작으로서 우리 나라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였으며 이전 쏘련과 중국, 일본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열린 국제미술전람회에서 절찬을 받았다.

작품창작에서 구현된 그의 형상적특징은 색조가 부드럽고 여운이 있는것이다. 이러한 부드럽고 여운있는 정서적깊이는 독특한 창작방법에 의해서 실현되였다. 풍경을 그릴 때 그는 단필법을 중시한것이 아니라 몰골법에 의거하면서도 일정한 단계를 설정하고 점차적방법으로 자연을 그려냄으로써 필치가 거칠거나 생경하지 않으며 부드럽고 깊이있는 색조로 대상의 형태미와 색채미를 훌륭히 살려주었다.

실경 즉 실제의 자연경치를 보면서 실제와 같게 재현하는 실경산수의 론리에 충실하면서도 그는 궁극적으로는 거기에만 얽매이지 않는 회화적환상을 실현하였다. 형태해석과 표현에서도 고도의 숙련을 전제로 하면서 형태의 륜곽과 음영, 운동감 등을 잘 표현하였다.

그의 그림을 본 남조선의 한 미술가는 이렇게 말하였다.

《날카로운 선, 부드러운 색… 그의 작품은 기기묘묘한 경관을 신비경으로 이끌어가는 시각적인 효과를 가지고있다.

그의 몰골기법은 신묘하다고 할만큼 뛰여난데서 더욱 빛을 발휘한다.

형태해석의 그 세련미는 고도의 숙련된 필치에서 비롯된것이고보면 필법의 완성도를 론할 단계를 넘어섰음을 알수 있다. …

그는 거의 감각적으로 기운생동을 구현하고있다고 할수 있다.》

정창모의 창작에서 특기할 측면의 하나는 그가 조선화의 고유한 형상분야의 하나인 화조화와 정물화발전에 특출한 기여를 한것이며 조선화의 전통적인 기법의 하나인 몰골법을 계승발전시켜 그 력사적명맥을 이어놓은것이다.

그는 미술가로서의 첫걸음을 떼던 시기에 리석호의 실기지도를 받았다. 리석호는 목적이 뚜렷하고 탐구력이 있으며 자기의 의사를 리해할줄 아는 과묵한 정창모에게 관심을 가지고 제자로 키울 생각을 하였다. 리석호는 미술박물관에 정창모를 자주 데리고 나가 조선봉건왕조회화 특히 오원 장승업의 몰골그림의 형상방법에 대하여 분석적으로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창작실에 돌아와서는 《련꽃과 물고기》, 《게》 등 장승업의 우수한 몰골그림을 묘사해보도록 하였고 조선화 몰골창작에서 해결하여야 할 붓다루기기술, 감성적으로 정화된 색채형상방법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인내성있게 가르쳐주었다. 이렇게 리석호는 자기가 평생을 두고 숙달한 기술과 기교를 고스란히 넘겨주려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배워주었다.

리석호와 정창모가 함께 금강산그림창작을 위해 려행한 일이 있었다. 그때 리석호는 조그마한 수첩과 연필 하나를 가지고 명소들을 찾아다니며 습작했는데 실지 수첩에 그린것은 별로 없었다. 정창모는 가는 곳마다 커다란 화판을 펼치고 자연의 구체적변화까지 그리느라고 해저무는줄 모르고 열심히 습작하군 했는데 숙소에 돌아와보면 바람벽에 자기가 그린 작품보다도 더 훌륭하게 완성된 리석호의 그림들이 걸려있는것을 보고 놀라군 하였다. 리석호가 휴식하는 참에 그의 수첩을 몰래 훔쳐보니 거기에는 그림이 아니라 몇개의 선과 점으로 구도작업만을 해놓은것이 있었다.

이렇게 리석호는 많은것을 머리에 새겨넣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리였는데 본질적인것은 놓치지 않고 화면에 담았기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늘 높은 경지에 이르군 하였다.

리석호는 하루 그린 여러점의 소품가운데서 마음에 드는것만을 골라내고 나머지는 태워버렸는데 그때마다 정창모는 그의 등뒤에 서서 그림이 타는것을 지켜보면서 많은것을 생각하였다.

정창모의 창작생활에서 중요한 측면은 사색을 깊이하고 붓을 아끼는것이며 일단 붓을 든 다음에는 완전히 그 세계에 빠져버리는것이다.

한번은 그가 묘향산 상원동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는데 좀처럼 그릴념을 않고 대상에 대한 관찰만 하는것이였다.

그러다가 몇개의 붓자리만 남기고 돌아왔다. 여러명의 후배들이 현지에서 돌아와 그가 그림을 그리는것을 보려 했으나 좀처럼 볼수가 없었다.

곁에 사람이 와서 지켜보는것도 모르고 깊은 사색에 잠겼던 그는 갑자기 붓을 들어 일필휘지로 그림을 그려나가는것이였다.

한순간에 묘향산 상원동의 웅장하고 수려한 자태가 방불하게 나타났다.

그의 걸작품중의 하나인 《묘향산 상원동》은 이렇게 창작되여 세상에 발표되였다.

그는 자기 세대의 미술가들이 조선화의 전통을 계승하고 현대적미감에 맞게 발전시켜야 할 사명을 지녔음을 깊이 자각하고 인민예술가, 공훈예술가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미술후비들을 양성하였다.

우리의것을 지켜내고 우리 인민의 감정과 기호에 맞게 조국의 모습을 더욱 아름답게 자랑하려는 애국의 마음을 안고 분계연선도시 개성과 판문점에서부터 백두산과 압록강, 금강산과 칠보산, 묘향산과 구월산, 약산동대, 몽금포 등 혁명전적지와 혁명사적지, 명승고적과 명소를 비롯하여 농촌과 어촌 그 어디라 할것없이 조국땅 곳곳에 발자국을 새겼다.

그 나날에 그는 수많은 명화들을 창작하여 나라의 재부를 늘였다.

풍요한 대지에 뿌려진 씨앗은 태양의 빛발아래서 락락장송으로 자랐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1989년 정창모의 예술적재능과 미술작품창작에서 이룩한 성과를 높이 평가하시여 그에게 인민예술가칭호를 수여하도록 해주시였다.

인재는 나라의 재부이다.

허나 그 인재의 재능도 꽃피워주는 품이 있어야 빛을 낼수 있듯이 정창모는 공화국의 품이 있었기에 자기의 참다운 재능을 꽃피울수 있었던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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