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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문예봉은 시골에서 8. 15해방을 맞이하였다. 일제가 쫓겨가고 해방이 되였으니 민족영화예술의 발전을 위하여 발벗고나서리라는 커다란 포부와 희망을 안고 그는 다시 서울로 갔다.

그러나 서울은 민족영화예술을 꽃피울수 있는 활무대가 아니였다. 일제를 대신하여 남조선을 강점한 미제는 우리 민족예술발전의 앞길을 가로막고 또다시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들씌우고있었다.

하여 문예봉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량심적인 예술인들과 함께 미제의 식민지파쑈통치를 반대하여 공장과 가두, 거리와 마을들을 찾아다니며 민주주의적인 민족문화를 발전시킬데 대한 구두선전을 벌리였다.

그 죄아닌 죄로 체포령을 받게 된 문예봉은 가족들과 헤여져 이집저집 숨어다니며 살지 않으면 안되였다. 거리와 골목마다엔 현상금까지 건 체포령이 나붙어있어 그는 어쩔수 없는 막다른 고비에서 헤매이게 되였다.

바로 이러한 때 그는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민족영화예술발전을 위하여 영화예술인재들을 귀중히 여길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예술영화를 전문으로 창조하는 기지를 세워주시였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듣게 되였다.

헤여날길 없는 운명의 막바지에서 예술에 대한 희망마저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문예봉은 가족과 함께 단연코 38 선을 넘어 북행길에 올랐다.

공화국의 품에 안긴 문예봉은 조선국립예술영화촬영소(현재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보람찬 예술창조의 날을 보내게 되였다.

그러던 1948년 8월 22일, 그날은 문예봉에게 있어서 일생을 두고 잊지 못할 운명전환의 날이였다.

촬영소의 한 책임일군이 급히 문예봉의 집에 찾아왔다.

《예봉동무, 빨리 가기요.》

《무슨 일입니까?》

《장군님께서 동무를 찾으시오.》

문예봉은 깜짝 놀랐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렇소.》

문예봉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집을 나섰다.

촬영소로 뛰여가는 그의 머리속에는 줄곧 한가지 의문이 맴돌았다.

(장군님께서 어떻게 나를 다 아실가?)

숨이 턱에 닿아 촬영소구내에 들어서던 그는 그 자리에 굳어졌다. 글쎄 해빛같은 웃음을 지으신 수령님께서 마주 걸어오시는것이 아닌가.

문예봉은 몸둘바를 몰라 허둥거렸다. 그러다보니 자기가 그분께 인사의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는것도 알지 못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면서 문예봉동무를 만나니 반갑다고, 남조선에서 얼마나 고생했는가고, 오느라고 수고했다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다정하게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장군님!》

문예봉은 겨우 이렇게 말씀올리고나서 그만 고개를 떨구었다. 눈물이 샘처럼 솟구쳤다. 자기가 정말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앞에 서있는것인지 모든것이 꿈만 같았던것이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일제의 백만관동군을 쥐락펴락하시며 놈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시던 민족적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 절세의 애국자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아무런 격식도 없이 현지에 나오시여 한낱 보잘것없는 영화배우를 이렇듯 따뜻이 만나주시리라고 감히 상상이나 할수 있었겠는가.

아무리 눈굽을 훔쳐도 눈물이 걷잡을수 없이 흘러내렸다.

(아이참, 내가 왜 이럴가.)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헤아리신듯 친근하게 집은 잡았는가고 따뜻이 물으시였다.

이번에도 문예봉은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했다. 다만 그의 두볼을 타고 흐르는 감사의 눈물이 대답을 대신하고있었다.

《지난봄에 장군님께서 돌아보신 그 집에 들었습니다.》

문예봉을 데리고 온 일군이 그를 대신하여 대답을 올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어쩔바를 모르고 감격에 목메여 하는 문예봉에게 아이들은 몇이나 되는가, 학교에는 다 다니는가고 친어버이심정으로 하나하나 물어주시였다.

문예봉은 그토록 인자하신 어버이수령님앞에서 어느덧 어려움도 다 잊어버리고 친정집에 찾아간 딸자식마냥 가족들도 다 무사히 들어왔으며 아이들도 모두 학교에 다니고 어버이수령님께서 다녀가신 집에서 아무런 불편이 없이 행복하게 생활하고있다고 말씀드렸다.

문예봉의 대답을 들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러면 마음이 놓인다고 하시면서 애로되는것이 있으면 어려워말고 다 제기하라고 하시는것이였다.

문예봉은 다시금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울기 시작했다. 지금껏 누가 자기의 집걱정을 해준 사람이 있었던가. 해방전이나 해방후에도 남조선에서 집없는 설음을 얼마나 사무치게 느꼈던가.

추운 겨울날 대문앞에서 손을 호호 불며 밤을 새우던 일, 밀린 방세때문에 남편의 살점과 같은 책꾸레미를 실은 손달구지를 끌면서 비물인지 눈물인지 모를것을 연방 훔치면서 걸어가던 일… 지금껏 제 집이 없어 세방살이를 해온 그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에게 자기의 집-보금자리가 생긴것이다.

그 집을 주신분은 바로 김일성장군님이시다. 만일 장군님이 아니시였더라면 그는 지금도 미제의 식민지로 된 남조선에서 숨어지내야 했을것이다.

그런 문예봉에게 공화국에서는 그와 가족이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훌륭한 집을 마련해주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주신것이 어디 집뿐인가. 그의 삶과 행복까지도 다 찾아주지 않으셨던가.

문예봉은 그날 그토록 뵈옵고싶던 어버이수령님을 만나뵈온 영광과 끝없는 감격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그이의 크나큰 신임과 배려에 꼭 보답하리라 굳게 속다짐하였다.

그후 문예봉은 해방후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예술영화 《내 고향》의 녀주인공역을 맡는 영예를 지니게 되였다.

아무것도 없는 빈터우에서 위대한 수령님에 의하여 첫걸음을 떼는 영화예술의 력사적인 화폭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예가 어찌 아무에게나 차례질수 있겠는가.

이것은 정녕 어버이수령님께서 문예봉에게 주시는 은정깊은 사랑이며 크나큰 믿음이고 기대이기도 하였다.

《내 고향》의 녀주인공 옥단이는 해방전에 문예봉이가 《임자없는 나루배》나 《춘향전》 등에서 형상하였던 녀인들과 완전히 다른 형의 녀성이였다.

그는 외유내강하면서도 새 사회를 열렬히 동경하는 꿈을 가지고있는 아름답고 훌륭한 처녀이다. 하기에 옥단은 유격대로 간 애인에 대한 소박하면서도 열렬한 사랑을 지니고 계급적으로 각성하며 자기앞에 닥쳐오는 가혹한 난관과 시련을 뚫고나간다.

문예봉은 옥단의 유순한 기질과 강의한 성격을 진실하게 형상하기 위하여 사색하고 또 사색하였으며 피타는 노력을 기울이였다.

문예봉은 옥단의 형상을 통하여 모진 가난속에서 천대를 받다가 해방을 맞은 조선녀성의 기쁨과 환희를 진실한 연기로 보여주었다.

그는 옥단의 역형상을 창조하는 과정을 통하여 예술영화 《내 고향》은 단순히 고향마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버이수령님께서 찾아주신 내 조국, 인민이 주인된 내 조국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주게 된다는 심오한 사상을 깨닫게 되였다.

영화예술인들은 어버이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와 따뜻한 보살피심속에 반년 남짓한 기간에 창조적지혜와 열정을 다 바쳐 예술영화 《내 고향》을 완성하였다.

예술영화 《내 고향》이 완성되였다는 보고를 받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처럼 바쁘신 가운데서도 영화를 보아주시였다.

영화가 끝나자 그이께서는 자애로운 눈길로 창조성원들을 대견하게 바라보시며 해방후 처음 나온 영화인데 잘되였다고, 동무들의 손으로 만든것이니 무에서 유를 창조한셈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첫 예술영화인데 잘되였다고 거듭 치하하시면서 예술영화를 계속 만들어야 하겠다고 고무해주시였다.

무한한 행복감에 휩싸인 문예봉은 《내 고향》은 진정 수령님의 품이며 그 품을 찾아떠난 자기의 선택이 참으로 옳았다는것을 가슴뜨겁게 느끼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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