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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버지에 그 아들

 

박병수의 가정에는 세개의 명예증서가 귀중히 보관되여 있다. 그 증서들중 하나가 박병수의 아들 박세웅이 받아안은 인민예술가칭호증서이다.

박세웅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훌륭한 영화촬영가가 되여 인민예술가로 자라기까지에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남달리 베풀어주신 뜨거운 사랑의 이야기가 있다.

박세웅은 아버지의 천성적인 소질을 물려받아서인지 어려서부터 미술에 취미를 가지고있었다.

이 자그마한 재능의 싹까지도 소중히 여겨주고 빛내여주신분이 있었으니 그분은 바로 우리의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어느날 일군들을 통해 박세웅의 재능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해당 일군을 찾으시여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시고 박병수는 재능있고 영화창작에서 공로가 있는 사람인데 그의 아들을 지망대로 대학공부를 잘 시켜 아버지의 대를 훌륭히 잇도록 하게 하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의 말씀을 전달받고 박병수의 온 가족은 뜨거운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온밤 잠들지 못하였다.

이렇게 되여 박세웅은 대학입학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받고 그처럼 바라던 대학교정에 들어서게 되였던것이다.

이날 박병수는 다 큰 아들을 어린애처럼 목마에 태우고 울고웃으며 온 방안이 좁다하게 빙글빙글 돌면서 경애하는 장군님의 배려에 꼭 보답해야 한다고 몇번이고 당부하였다.

절세위인의 축복속에 성장의 첫걸음을 뗀 박병수의 아들은 평양미술대학과 평양연극영화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영화촬영가가 되였다.

날이 갈수록 깊어만지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과 믿음에 보답하고저 그의 아들은 지혜와 정열을 다 바쳐 첫 작품으로 예술영화 《전초선》을 훌륭하게 찍어낸데 이어 예술영화 《도라지꽃》을 촬영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예술영화 《도라지꽃》을 보시고 박병수를 회고하시면서 그는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인 《피바다》, 《꽃파는 처녀》를 각색한 예술영화 《피바다》, 《꽃파는 처녀》를 비롯하여 좋은 영화를 많이 촬영하였다, 미술가였기때문에 그가 촬영한 화면들은 하나의 유화작품같았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박병수는 얼굴이 길쑥하고 늘 말이 없었는데 그에 대한 인상이 깊이 남아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박병수의 아들도 촬영을 잘한다고 높이 치하해주시며 먼저 간 전사를 그렇듯 못 잊어 뜨겁게 추억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 그가 예술영화 《음악가 정률성》(전후편)을 만들어내놓았을 때에도 영화를 보시고 영화를 잘 만들었다고, 만점짜리라고 하시며 《예술영화 〈음악가 정률성〉은 촬영도 잘하였습니다. 촬영가가 인물초상을 잘 찍었습니다.

영화의 모든 화면이 그림같으며 나무랄데가 없습니다. 촬영가 박병수동무의 아들이 영화를 찍었다는데 아버지 못지 않게 영화촬영을 잘합니다.

그가 미술공부를 한 후 평양연극영화대학 촬영과를 나왔다고 하는데 촬영가는 역시 미술을 잘 알아야 합니다.》라고 치하의 말씀을 주시였다.

박세웅은 아직 여러모로 미숙한 자기를 아버지의 곁에 세워주시며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 뭐라고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 할지 몰랐다.

그러던 1992년 2월초 어느날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 제1, 2부를 함께 보자고 창작가, 예술인들을 부르시였다. 그 자리에는 박병수의 아들도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창작가, 예술인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시며 그의 앞에 오셨을 때 한 일군이 촬영가 박병수의 아들이라고 말씀올리였다.

순간 경애하는 장군님의 얼굴에 반가운 빛이 확 어리였다.

《박병수의 아들이란 말이요? 신통하구만. 아버지와 꼭같아. …》

떠나간 전사를 다시 만나신듯 그렇게도 반가와하시며 뜨겁게 손을 잡아주실 때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을 뵈오면 올리려고 골라두었던 인사의 말씀 한마디 올리지 못하고 그만 흐느끼고말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깨를 들먹이는 그의 등을 다정히 두드려주시며 한동안 서계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창작가, 예술인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사진촬영후 창작가, 예술인들의 열광적인 바래움을 받으시며 걸어나가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촬영대의 뒤줄에 서있는 그에게 손을 내미시였다. 그는 어망결에 두손을 내밀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의 두손을 뜨겁게 잡으시고 아버지처럼 촬영을 잘해서 꼭 훌륭한 촬영가가 되라고 거듭 이르시였다.

그는 너무도 가슴뜨거워 《고맙습니다. …》 그저 이렇게 외우고는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이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를 내세워주시고 온갖 사랑과 배려를 다 베풀어주시였다.

그 나날에 그는 우리 나라 영화예술발전에 한몫하는 촬영가로, 인민예술가로 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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