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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의 보증

 

박병수의 삶의 자욱자욱에는 한생을 두고 갚아도 못다 갚을 경애하는 장군님의 고귀한 사랑도 뜨겁게 깃들어있다.

그 가운데서도 박병수가 백두산창작단에 소환되던 때의 일은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잊혀지지 않으며 만사람의 가슴을 격동시키고있다.

1969년 어느날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촬영가로 일하던 박병수는 전에없이 명랑한 기분으로 집에 들어서며 큰소리로 안해를 불러찾았다.

안해가 서둘러 가방을 받아들었을 때 그는 형언할수 없는 격정에 휩싸여 누구에게라 없이 제 심중을 터쳐놓는것이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나를 보증해주셨소. … 백두산창작단 촬영가로 불러주셨단 말이요.》

박병수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선자리에서 서성거리였다.

《무슨 일인지 좀 차근차근 이야기하구려. 혼자 흥분해하지 말구…》

안해는 무등 기뻤으나 어인 영문을 몰라 붉게 상기된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배려로 내가 백두산창작단 촬영가로 되였단 말이요. 믿어지지 않소?!》

박병수는 흥분을 눅잦히고 그날 있었던 사연을 안해에게 이야기하는것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발기에 의하여 항일혁명투쟁시기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필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영화로 옮기는 창조사업이 시작되자 일군들은 그 창작단성원들을 정치실무적으로 준비된 우수한 창작가, 예술인들로 선발하였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를 예술영화화면에 재현하고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영화로 옮김으로써 우리 문학예술의 혁명전통을 고수하고 계승해나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기때문이였다.

바로 이 책임적이고도 영예로운 사업을 수행할 성원으로 박병수도 상정되였는데 일군들은 심중히 토의한 끝에 그를 보류하기로 하였다. 리유는 그의 지난날 과거경력을 고려해서였다.

이무렵 창작가, 예술인들의 사업을 깊은 관심을 가지고 료해하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박병수와 관련하여 제기된 이 사실을 아시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런 견해는 협애한것이라고 일깨워주시고 박병수동무는 재능있고 성실한 촬영가라고 하시면서 예술영화 《피바다》를 촬영한것을 보고 우리 나라에서 그를 따를만 한 촬영가가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그이께서는 영화촬영가로서 그렇게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당과 혁명에 이바지하면 되는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잠시 동안을 두시였다가 그이께서는 자신께서 직접 그를 보증하겠다고 하시면서 마디마디 뜨거운 은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는 반인민적인 남조선사회제도에서 유산계급인 자기 가정의 계급적장벽을 박차고 해방직후에 공화국의 품으로 찾아온 사람이라고 강조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는 조국해방전쟁때에는 종군촬영가로 락동강까지 진격해나가 인민군용사들과 함께 용감히 싸웠고 전후에도 우리 나라 영화예술을 발전시키는 사업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이라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순간 박병수에 대해 잘 알고있는 일군들은 크나큰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떳떳치 못한 출신과 생활경력으로 하여 그의 마음속에 그늘이 질세라 다심하게 손잡아 이끌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고결한 풍모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던것이다.

돌이켜보면 지난날 박병수가 예술영화 《최학신의 일가》, 《마을사람들속에서》를 비롯한 여러편의 예술영화와 불후의 고전적명작 《피바다》를 그대로 옮긴 예술영화 《피바다》촬영을 맡아 성과적으로 해낼수 있은것은 전적으로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과 구체적인 지도의 결과였다.

《최학신의 일가》촬영을 마친 그는 어버이수령님께서 교시하시고 종자를 주신 새 음악영화촬영을 맡게 되였다. 그는 영화를 손색없이 만들 결심을 품고 지혜와 정열을 깡그리 바쳐 촬영대본을 만들어놓았다.

그러던 그는 그만 일부 사람들의 편견으로 따돌림을 받고 그 영화창작에서 제외되게 되였다. 그러지 않아도 말이 적은 박병수는 그 장대한 체구를 길게 늘어뜨리고 종일 가도 입 한번 열지 않았다.

그러던 이무렵 영화창작을 지도하시려 촬영소에 나오시였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의 이 괴로운 마음을 깊이 헤아려보게 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크나큰 믿음으로 그에게 중요한 영화촬영을 맡겨주시였으며 하나하나의 세부와 장면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여 영화를 훌륭히 완성하여주시였다.

그리고 그후에는 그의 자그마한 재능을 높이 평가해주시며 불후의 고전적명작까지 맡겨주시는 신임을 다시금 베푸시였다. 그에게 어떻게 불후의 고전적명작까지 맡길수 있겠는가고 주저하는 일군들에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동무들이 그의 토대를 보고 기웃거릴수 있는데 토대만 보고는 일을 못합니다, 그가 당을 믿고 성실하게 일하도록 하자면 우리가 그를 믿어주어야 합니다, 믿음은 사람을 키웁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며 그가 촬영사업을 맡아하도록 해주시였던것이다.

박병수는 그이께서 안겨주시는 크나큰 믿음에 충정으로 보답할 일념을 안고 자기의 지혜와 정열을 다 바쳐나갔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의 이 열정을 두고 못내 만족해하시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를 뜨겁게 고무해주시였고 그의 창조사업을 걸음마다 이끌어주시였다.

1969년 8월 29일 예술영화 《피바다》를 촬영할 때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미 예술영화 《피바다》촬영형상문제며 화면구도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평양시교외의 한 촬영현장까지 찾아주시였다.

불타는 마을, 타래쳐오르는 연기, 고함소리, 비명소리로 가득찬 촬영장은 짙은 연막내와 연신 내려앉는 재티때문에 눈조차 뜰수 없었고 귀가 멍멍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이 모든것을 개의치 않으시고 현장에서 오랜 시간동안이나 서계시면서 촬영을 지도해주시고 박병수에게로 가까이 다가가시여서는 무더위속에서 정말 수고가 많겠다고 하시며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이 영화에서 일제의 간도토벌을 폭로하는 장면을 잘 찍는것은 특별히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그 형상방도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피바다장면에서는 무엇보다도 일제침략자들이 우리 인민들을 어떻게 야수적으로 학살하였는가 하는것을 력사적사실에 기초하여 진실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일제침략자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가지게 됩니다.

일제침략자들의 학살만행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우리 인민을 무저항주의적인 인민으로 그리지 말고 일제침략자들과 맞서 싸우는 인민으로 그려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을남의 아버지가 화형당하는 장면을 잘 형상하는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처럼 피바다촬영장면에서의 형상의 력점에 대해서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창작가들이 타오르는 불길속에서 작업을 하자니 몹시 뜨겁겠다고, 특히 촬영가동무는 나이도 많은데 힘들겠다고 걱정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와 크나큰 사랑을 받아안은 박병수는 불같은 열정과 충정을 안고 하나하나의 장면을 옥돌다듬듯 촬영해나갔고 완전무결성이 보장되도록 하였다.

1969년 9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예술영화 《피바다》작업필림을 보아주시며 또다시 그에게 고귀한 가르치심과 분에 넘치는 치하의 말씀을 주시였다.

《예술영화 〈피바다〉는 촬영도 잘 하였습니다. 촬영수법이 좋습니다. …

어머니일가가 령을 넘는 장면을 비롯하여 매력있게 촬영한 화면들이 많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예술영화 《피바다》를 맡은 촬영가가 촬영을 잘한다고, 영화의 화면들을 보면 그가 극중인물의 세계에 깊이 파고들어가서 촬영을 하는것이 알린다고 과분한 평가를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처럼 그가 촬영한 화면들을 보실 때마다 매 화면들에 스며있는 그의 피타는 노력과 성실한 마음을 일일이 헤아려보시였으며 그럴수록 그를 더욱 아끼고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촬영현장에 몸소 나오셨을 때의 일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박병수는 여느때없이 성수가 났다. 평상시에는 말이 없고 뚝한 그였는데 이날에는 노상 웃음을 거두지 못하며 신바람나게 촬영기를 다루는것이였다.

먼발치에서 촬영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저 동무가 더 늙지 말아야 하겠는데, 어데서 저런 재간둥이를 데려오겠는가고 하시며 그가 일에 너무 무리하지 않도록 잘 돌봐주라고 거듭 당부하시는것이였다.

그러신 다음 그들의 작업모습을 다시 지켜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연출가에게 좀 쉬였다 찍으라고 이르시였다.

곧 촬영이 중지되고 모두들 적당히 자리를 잡고 휴식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박병수에게로 다가가시여 그와 나란히 자리를 잡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손수건을 그에게 내주시며 어서 땀을 씻으라고, 그러다가 감기에라도 걸리면 어찌겠는가고 걱정해주시였다.

그는 너무도 송구하여 얼른 제 손수건을 꺼내여 땀을 씻기 시작했는데 이마의 땀을 씻는것이 아니라 자꾸만 눈언저리를 닦는것이였다.

그제야 그가 울고있다는것을 헤아리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왜 이러느냐고 하시였다.

그는 머리를 숙인채 《아닙니다. 글쎄 이젠 늙어서 그런지 이렇게 주책머리없이…》 하고는 끝내 눈물을 쏟으며 흐느끼는것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러지 말라고 가볍게 이르시고 그의 손을 끄당겨 자신의 무릎우에 올려놓으시며 아바이는 우리 영화계의 보배라고 말씀하시였다.

《아바이, 아바이는 우리 영화계의 보배입니다. 아바이의 촬영기술이 하도 훌륭해서 우리가 아바이를 그처럼 아끼는것입니다. 아바이야말로 실력가이고 로쇠를 모르는 정력적인 실천가입니다.

하지만 이젠 년세도 높으니 일하기 힘들것입니다. 절대로 무리하지 말고 몸을 아껴야 합니다. 이제 우리 영화가 세상에 대고 큰소리를 쳐야겠는데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니 꼭 몸을 돌봐야 합니다.》

박병수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손을 마주잡은채 격정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올렸다.

《고맙습니다. 믿음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

진정 경애하는 장군님의 따사로운 사랑의 품은 그에게 있어서 순간도 떨어져 살수 없는 행복의 보금자리였으며 삶의 보람을 안겨준 은혜로운 어머니품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같은 두터운 믿음과 사랑이 있었기에 그의 정치적생명도 재능도 빛을 뿌릴수 있었으며 예술가로서의 긍지와 보람도 한껏 누릴수 있었던것이다.

영화촬영가로서 그가 세운 공로는 다만 많은 영화를 촬영한데만 있는것이 아니였다.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천재적인 영화창조세계에 맞는 촬영기법을 완성하기 위하여 독창적인 탐구의 길을 개척하였다.

화면에 흐르는 사상정서적내용을 관객의 심리에 보다 깊이 침투시키기 위한 그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박병수는 화면구도의 결심, 그에 적응한 촬영지점과 거리선택, 촬영기의 이동방향과 속도결정, 내심세계의 개방과 부각을 기본으로 하는 화면내용의 상상, 전경, 원경, 근경, 국부촬영에서 각이하게 작용하는 촬영기교의 효과, 확대, 축소, 상징화를 기본으로 하는 화면기교의 설정 등 촬영가가 지녀야 할 자질의 여러 측면들을 실천적으로 개척하였을뿐아니라 리론적으로도 완벽한 기초를 마련하였다.

심지어 그는 촬영기로 화면의 색조와 명암관계를 조절하는것이 사상예술성보장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촬영실천으로 증명하기도 하였다.

박병수는 말그대로 자기의 혁명무기인 촬영기를 가지고 김일성조선, 김정일조국의 위대하고 다양하며 전투적이고 정서적인 인간생활을 생동하게 살아움직이는 화폭으로 그려 력사에 남긴 영화계의 재사였다.

이처럼 보람찬 창조의 세계를 펼치면서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오래오래 살면서 충정의 삶을 꽃피우겠다던 그가 그만 불치의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였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였다.

이 사실을 아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친히 치료대책을 세워주시고 여러차례에 걸쳐 환자의 병상태를 료해하시면서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박병수가 6개월동안 환자생활을 하였기때문에 사회보장으로 넘어가는 문제가 제기되였을 때에도 일군들에게 그러지 말고 직제를 그냥 두고 치료를 계속하도록 하는것이 좋겠다고 또다시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이처럼 박병수와 그의 가족은 헤아릴수 없는 은정을 받아안고 감격의 눈물속에 날을 맞고 보내였다. 하지만 수술후 차도가 보이던 그의 병은 다시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자기에게 드디여 림종의 시각이 닥쳐왔다는것을 예감한 박병수는 자식들을 머리맡에 앉혀놓고 종이와 만년필을 가져다달라고 하였다.

생의 마지막시각에 하고싶은 간절한 이야기를 적으려는것이였다.

하지만 이미 전신이 굳어지기 시작했던 그는 딸이 몇번이고 쥐여주는 만년필을 끝내 손에 쥘수 없었다. 간신히 겨우 숨을 모두어들인 그는 물기어린 눈길로 처자들을 바라보더니 《친애하는 지도자동지…》 하고 부르고는 조용히 눈을 감고말았다.

받아안은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겠다고 그렇게도 모대기던 박병수, 조국이 통일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가자고, 그러면 온 동리가 자기들 가문에 없는 혁명가라고 떠받들것이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군 하던 그는 끝내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가고말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비보를 받으시고 사랑하는 전사를 잃은 비통함을 금치 못하시며 박병수는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영화화한 예술영화 《피바다》와 《한 자위단원의 운명》, 《꽃파는 처녀》를 비롯한 수많은 영화들을 촬영한 공로있는 촬영가였습니다, 정말 아까운 동무를 잃었습니다, 우리는 그의 공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그의 한생을 빛나게 총화지어주는 귀중한 말씀을 하시였다.

사실 그의 공로란 경애하는 장군님에 의하여 이루어진것이였다. 정치적시련을 겪을 때에는 철석같은 신임을 안겨주시고 지혜가 모자랄 때에는 슬기와 용맹을 북돋아주시며 적극 내세워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 은공을 떠나서 어찌 그의 공로를 생각할수 있겠는가.

하지만 모든 성과와 영예를 고스란히 전사들에게 돌려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공로있는 촬영가라고 높이 평가해주시며 그를 혁명적예술인대오에 영원히 서있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전사는 받아안은 사랑에 보답하지 못하고 갔어도 그를 키워주고 보호해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죽어도 영생하는 삶을 주시였고 끝없는 사랑을 안겨주시였다.

어느해 여름, 어느 한 예술작품을 지도하실 때에도 대형영사를 삽입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다가 박병수가 있으면 이럴 때 판을 치겠는데, 그가 살아서 늘그막에 이런 일이나 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가슴뜨겁게 회고하시였으며 또 어느해에는 새로 창작한 영화를 보시면서 박병수가 촬영가들가운데서 제일 재간있는 촬영가였다고 거듭 값높이 불러주시였다.

2006년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영화예술부문에서 오래동안 일해온 창작가들과 배우들을 언제나 잊지 않고있다고 하시면서 박병수는 재능있는 영화촬영가였다고, 그는 미술에 조예가 깊었는데 촬영대본도 그림을 그려 만들군 하였다고 뜨겁게 회고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박병수에게 돌려주시는 사랑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1984년에 어느 한 나라에서 세계영화명인편람출판과 관련하여 우리 나라의 이름있는 영화예술인들에 대한 자료를 요구하였을 때에도 박병수를 잊지 않고 명단의 앞자리에 넣도록 해주시는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오래전에 떠나간 한 촬영가에게 두고두고 값높은 평가를 해주시는 장군님의 한없는 사랑은 온 가족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주었다.

하기에 박병수의 가족들이 경애하는 장군님께 올린 감사의 편지에는 이렇게 씌여져있다.

《아버진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추억속에 살아있습니다. 장군님의 품속에서 영생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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