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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영화화폭에 통일의 열망을 새기며

 

박 병 수 (촬영가)

 

                        • 1914년 3월 27일 전라북도 임실군에서 출생.

                        • 해방전까지 미술부문에 종사.

                        • 1948년부터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미술가, 촬영가로 활동.

                        • 조국해방전쟁시기 종군촬영가로 활동.

                        • 1969년부터 백두산창작단 촬영가로 활동.

                        • 1973년 3월 1일 사망.

                        • 공훈예술가.

                                                           

 

 

우리 나라의 영화화폭들을 더듬느라면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인 《피바다》《한 자위단원의 운명》, 《꽃파는 처녀》를 영화로 옮긴것을 비롯한 수많은 영화들을 촬영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재능있고 성실한 촬영가, 공로있는 촬영가였다고 불러주시며 잊지 못하시여 자주 추억하신 공훈예술가 박병수도 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지난날 부유한 가정의 출신인 그를 순직하는 그날까지 굳게 믿으시고 한량없는 사랑과 은정을 베푸시여 인민이 아는 예술인, 영화인으로까지 내세워주시였다.

어떻게 되여 그가 재능있는 예술인으로 성장하여 불멸의 영화화폭과 더불어 영생하는 인생을 빛내이고있는것인가.

 

 

미술가로부터 촬영가로

 

박병수는 가정환경으로 보면 남조선에 그냥 있어도 남부럽지 않게 잘살수 있는 생활조건이 마련되여있었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되여 이처럼 유리한 가정환경을 뒤에 두고 공화국북반부로 넘어오게 되였는가.

바로 여기에 그가 품고 산 남다른 인생관이 비껴있다고 해야 할것이다.

그는 1914년 전라북도 임실군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여났다. 때문에 어려서부터 먹을 걱정, 입을 걱정을 모르고 자랐다. 남들은 학비때문에 피눈물을 흘려야 했지만 박병수는 자그만한 고생도 모르고 학교에 다녔다.

철부지 어린시절부터 그림그리기에 취미가 강했던 그는 중학교졸업무렵에 이르러 미술에 대한 지향이 더 강해졌는데 그가 제일 매력을 느낀것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남긴 인물화들과 옛말과 같은 그의 경력이였다.

그는 레오나르도의 그림가운데서 세상에 소문난 《최후의 만찬》보다도 평범한 이딸리아녀성의 초상인 《몬나리자(죠꼰다)》에 더 관심을 두었다.

미소를 머금은듯도 하고 서글픔에 잠긴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바라보며 명상에 잠긴것 같기도 한 그 모습은 너무도 생동하고 진실하게 생각되여 박병수의 심혼을 사로잡았다.

그는 력사에 이름을 남긴 우리 나라와 세계의 이름난 미술가들의 전기를 읽고 그들이 창작한 명화를 감상하면서 미술이야말로 자기의 리상을 화폭으로 실현할수 있는 가장 고상하고 실천적인 분야라는것을 확신하였다.

하기에 박병수의 중학시절 책가방에는 늘 속사, 사생화를 비롯한 소묘작품들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미술에 대한 아들의 열렬한 지향을 인생이 무엇이고 생활이란 어떤것인지, 세상리치를 전혀 모르는 철부지의 몰취미로 몰아붙이면서 《세상을 움직이고 운명을 결정하는 기본학문》을 성취하라고 꾸짖었다.

《이녀석아, 먹고 입는게 풍족해야 인간의 가치도 존엄도 있는거야. 리치를 따질라치면 사람들의 운명을 조종하는건 정치이고 정치는 경제에 뿌리를 두거던. 그래서 정치는 상부구조라고 하고 경제는 그 상부구조의 토대라 하는거야. 토대란 문자그대로 땅과 집이야. 우리 가문이 조상대대로 땀흘리고 푼전모아 많은 땅을 가지게 되였기에 남들이 부러워하게 떵떵거리며 살게 된거야. 미술이라는걸 싹 걷어치우고 경제든 정치든 기본학문을 배워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네녀석을 아예 내쫓고말겠다. 너같은 아들놈은 필요없으니까.》

아버지의 추상같은 꾸지람에는 제나름의 론리가 있어 반박할수 없었다.

박병수는 종시 제 뜻대로 미술대학에 가지 못하고 아버지의 요구에 굴복하여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과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그는 표면상 대학을 다녔을뿐 실지로는 어느 한 미술연구소에 들어가 직심스럽게 공부도 하고 그림도 그리였다.

박병수의 화가생활은 이때부터 시작되였다. 그럭저럭 년한으로 대학공부를 끝내고 미술에 대한 꿈만 가득 안고 조국으로 돌아온 그는 아버지가 그토록 말했지만 그림그리기를 한시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해방전 그의 화가생활은 보잘것없는 형식주의미술에 불과한것으로서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을만 한 그림 한점도 내놓지 못하였다.

조국이 해방되자 그는 미술재사들을 키워낼 커다란 꿈을 안고 자기 집 재산의 노란자위라고 할수 있는 과수원을 팔아 동광미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외국에서 좋다는 화구들을 사들이였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자기 민족미술의 앞날을 생각하는 애국적인 소행이였으나 일제를 대신하여 남녘땅에 기여든 미제침략자들의 폭압정치는 그의 이러한 소중한 꿈을 여지없이 짓밟아버리였다.

희망은 정의로왔어도 현실은 그 정의를 가혹하게 부정해버리였다.

박병수는 자기의 모든 정력과 재부를 깡그리 바쳐가며 전념하던 미술연구와 창작의 길이 천길낭떠러지에 이르렀음을 절감하고 가슴을 쳤으나 이렇다할 방책은 없었다.

그 과정에 박병수는 민족의 태양이시며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국에 개선하시여 새 조국건설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령도하고계신다는 감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였다.

특히 남조선의 저명한 인사들이 위대한 수령님을 찾아 공화국북반부로 넘어가고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기도 어버이수령님을 찾아 떠나고싶은 충동을 억제할수 없었다.

희망을 꽃피워줄 재생의 빛발이 광활한 대지를 따사롭게 비치고있으나 자기는 그 해빛을 받지 못하고 어둠속을 헤매이는것 같았다.

그때의 그 심정을 박병수는 자기의 그림 《해바라기》에 담았다. 황량한 들판, 거치른 광야에서 멀리 비쳐오는 해빛을 향해 초연히 머리를 쳐들고있는 해바라기-그것은 바로 미술가인 박병수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였다.

그는 심중속에 온 민족이 누리고싶어 하는 광명의 빛을 안고 당시 조선문화단체총련맹 전라북도 전주시지부 부위원장으로 사업하면서 참다운 인민의 세상인 공화국북반부를 동경하였고 자나깨나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을 태웠다.

바로 이러한 그에게 인생전환의 행운이 차례지게 되였다.

1948년 7월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통일방안을 열렬히 지지하는 남조선인민들의 마음을 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에 참가하는 남조선대표로 추천되여 북반부로 들어오게 되였던것이다.

심장은 흥분으로 높뛰였고 기적적으로 찾아든 인생의 희열로 하여 그는 두려움을 몰랐다.

자기가 이제 북행길을 걷고나면 남조선사회를 통치하고있는 미제와 그 괴뢰들이 어떤 탄압을 가해오겠는지 모르는바 아니였으나 그는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안해는 남편인 박병수에게 수많은 재부와 처자가 있으면 됐지 무엇이 더 바랄게 있어 위험한 북행길을 걷느냐고 하소연하였다.

인생이 자기만을 위하여 필요한 사람에게는 안해의 그 말이 백번 맞는것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민족을 위해 민족의 태양을 받들어 자기를 바쳐야함을 사명으로 간주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통하지 않았다.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정작 안해와 자식들을 남겨두고 기약 못할 길을 떠나자니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앞을 가리웠다. 하지만 이미 결연히 나선 길이였다.

그는 이를 사려물고 남조선대표일행과 함께 38 선을 넘어 평양으로 들어오게 되였다. 그리하여 박병수는 진정한 인민의 나라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는 첫 선거의 참가자로 되였고 공화국선포에 자기의 피와 땀을 바친 영예로운 공민으로 될수 있었다.

선거후 그는 남쪽으로 나갈수 없었다.

미군정과 괴뢰경찰에서는 이미 그에 대한 수배령을 내리였던것이다.

박병수는 찢기는 가슴을 부둥켜안고 민족의 태양아래서 인생의 완전한 전환을 단행하리라 결심하고 평양에 그대로 눌러앉았다.

마음속에 격랑을 안고있은탓인지 그처럼 매혹되여 빠져버렸던 미술도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엇인가 보다 거대한것에 몸을 바치고싶었다.

그의 눈길은 점차 영화계에로 옮겨지기 시작하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령도밑에 날에날마다 비약하는 새 조국건설의 벅찬 현실을 살아움직이는 화면에 담고싶은 욕망이 솟구치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그것은 어제날의 미술가가 공화국의 품속에서 찾은 응당한 선택이였다.

그리하여 박병수는 화판우를 달리던 붓을 놓고 용약 촬영기를 어깨에 메고 민주조선건설의 한복판에 뛰여들었다.

미술가로부터 영화촬영가로!

영화촬영의 초행길에 들어선 그는 비상한 탐구와 창조적정열로 촬영기술을 익혀나갔다. 그리하여 첫 영화를 촬영한것이 예술영화 《용광로》였다.

공화국의 품속에서 재능을 꽃피우며 영화창조의 나날을 보내고있던 그는 미제가 도발한 준엄한 전쟁의 불길속에 뛰여들게 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크나큰 정치적신임으로 종군촬영가로 된 그는 락동강계선까지 달려나가 인민군용사들과 함께 싸우며 조선인민군 군인들의 영웅적투쟁모습과 미제침략자들의 천인공노할 학살만행을 보여주는 많은 자료들을 현지촬영하였다.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어려운 시기에는 불순분자들이 박병수의 출신성분을 악용하여 갖은 기만책동을 다하였으나 신념을 조금도 굽히지 않고 어버이수령님을 따라 후퇴의 길에 올랐으며 인민군용사들을 전쟁승리에로 불러일으키는 촬영에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이 시기 그가 촬영한 필림들의 대부분은 기록영화 《정의의 전쟁》(1950년), 《전세계에 고함》(1950년)에 편집되였다.

그의 영화촬영활동은 전후시기와 사회주의건설시기에 보다 왕성하게 진행되였다.

전후 예술영화 《산매》와 《빨간댕기》를 비롯한 여러편의 예술영화창작과정에 예술적재능을 키운 그는 1960년대에 《붉은 선동원》(1962년), 《백일홍》(1963년), 《대지의 아들》(1963년-1964년), 《최학신의 일가》(1966년)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영화들을 촬영하여 어버이수령님께 기쁨을 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여 1960년대초 우리 나라 영화촬영가들중에서 남먼저 공훈예술가칭호를 안겨주도록 하시였으며 국기훈장 제1급을 비롯한 높은 국가수훈의 영예를 지니게 하여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대해같은 사랑을 받아안은 박병수는 감격에 목이 메여 자기 수기에 이렇게 썼다.

《중국의 장울화는 행운아였다. 그는 우리 수령님같으신분의 영향을 받아 보람있는 삶을 살았다. 나는 늘 장울화가 부러웠다. 하긴 나도 수령님의 품을 찾아 진리를 깨닫게 된 사람이다. 그러니 나도 조선의 행운아라고 말할수 있다.》

이 글은 위대한 은인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와 충의로 끓는 심장의 연소라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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