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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하는 인민의 배우로

 

어버이수령님의 품속에서 극진한 배려를 받아오던 황철은 뜻밖에도 불치의 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였다.

황철은 침상에 누웠으나 새로운 연극창조사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그는 병으로 신음하면서도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돈화의 수림속에서》를 더듬고 또 더듬어나갔다. 그것은 어서빨리 이 회상실기를 각색한 혁명전통주제의 연극을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병상에서 연극의 연출대본을 한장한장 정력을 퍼부으며 써나갔다.

1961년 6월 어느날이였다.

황철이 앓기 시작한 초기부터 못내 걱정하시며 할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취해주시고 보살펴오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의 병세가 몹시 위급해지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가 입원하고있는 병원 원장을 전화로 찾으시였다.

《지금 황철동무 상태가 어떻습니까?》

《여전히 좋지 못합니다.》

《황철동무를 꼭 살려야 하오. 그를 어떻게 하나 살려야 하오. 그 동무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아낄것이 없으니 약도 제일 좋은것으로 쓰고 정성을 다해서 그를 꼭 살려내야 하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몇번이나 이렇게 거듭 당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러시고도 마음놓이지 않으시여 몇시간도 못되여 또다시 두번째로 전화를 거시고 문병을 하시였다.

황철동무는 고생도 많이 하고 공로도 있는 동무인데 꼭 살리자고, 우리가 사랑하는 동무인데 반드시 구원해야 한다고 절절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황철은 안해를 통해 이 사실을 전해듣고 어버이수령님의 한없이 은혜로운 사랑에 목메여 소리없이 울었다.

그는 이제까지 보고있던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책을 다시 가슴우에 펼쳐놓고 《돈화의 수림속에서》를 더듬어나갔다.

어버이수령님의 고마운 은정이 가슴에 사무쳐올수록 어서빨리 이 회상기를 각색한 연극을 완성하자는것이였다.

얼마전 국립연극극장에서는 그가 연출한 연극 《우리는 행복해요》와 《붉은 선동원》을 무대에 올려 어버이수령님께 기쁨을 드린 일이 있었다. 황철은 그때 천리마작업반운동을 형상한 이 작품들에 이어 이번에는 혁명전통을 취급한 연극을 창조하여 위대한 수령님께 충정의 선물로 올릴것을 결의하였다. 그래서 병상에 있으면서도 연출대본작성에 정력을 퍼붓고있는 그였다.

그러나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워낙 불치의 병인 심장협심증은 급격히 악화되여 그날 점심무렵에는 글줄마저 눈에 잡히지 않고 정신이 자꾸만 흐려갔다.

황철은 이제 자기에게 더는 회복될길 없는 마지막 림종의 시각이 왔다는것을 알았다. 그는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그이의 품속에서 많은 일을 해드리려고 하였는데 이렇게 50나이에 가는것이 안타까웠다. 수령님의 사랑과 은혜만을 받고 심려만을 끼쳐드리다가 하던 일도 마저 끝내지 못한채 떠나게 되는것이 못내 죄송스러웠다.

그는 안해를 시켜 극장연출가를 데려오게 하였다. 그리고는 연출가에게 자기가 생각해온 연극 《돈화의 수림속에서》의 연출대본내용을 들려주었다. 자기가 없은 후에도 이 연극을 꼭 완성하여 어버이수령님께 보여드리라는것이였다.

《여보, 당신 무슨 말을 해요?!》

안해가 남편의 손을 흔들며 목멘 소리를 했다.

황철은 자기의 몸을 일으켜달라고 하더니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화를 우러러보았다.

《어버이수령님, 저는 하는 일도 없이 수령님의 사랑만을 받다가 이렇게 갑니다. 이 불민한 황철이를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이제 죽어도 수령님께서 세워주신 그 행복한 무대에 가있을것입니다. 수령님, 그럼 부디부디 만년장수하십시오.》

그는 《돈화의 수림속에서》를 가슴에 안은채 이렇게 마지막숨을 거두었다.

병원에서 황철의 운명에 대하여 어버이수령님께 보고드리려던 그 시각 수령님께서 먼저 세번째로 전화를 걸어오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황철이 방금전에 숨을 거두었다는 비보를 들으시자 너무도 놀라우시여 《황철동무가 죽다니?! … 아니, 죽지 않았소. 그렇게 죽을수 없소. 그를 살리시오. 빨리 살리시오.》 하시고는 한동안 아무 말씀도 못하시였다.

한시도 무대를 떠날수 없어 하던 사람이 무대에서 사라지다니, 당을 따라 그렇게도 억세게 달려오던 그 열정의 심장이 고동을 멈추다니, 그렇게도 바라던 통일의 날도 보지 못하고 가다니?!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황철이 생명의 마지막시각에도 《돈화의 수림속에서》의 연출을 생각하며 회상기를 가슴에 품은채 운명하였다는 원장의 보고를 들으시자 더욱 침통해하시는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그래 죽을 때까지도 연출을 생각했단 말이지. … 죽지 말아야 할 동무가 죽었소. 참 훌륭한 동무였소. 정말 아까운 동무를 잃었소. … 재능있는 연출가를 잃었소. 그는 마지막까지 당에 충실한 동무였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가슴에 저려오는 아픔을 막을길 없어하시였다.

황철의 안해는 어버이수령님께서 그토록 비통해하시며 하신 말씀을 원장에게서 전해듣는 순간 다시금 고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의 손을 그러잡았다. 조용한 방안에 북받치는 감격의 오열로 도간도간 끊어지는 안해의 크지 않은 목소리가 울렸다.

《여보, 눈을 뜨세요. 어서 눈을 뜨세요. … 어버이수령님께서 당신은 죽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어요. 당신이 그렇게 죽을수 없다고, 당신을 빨리 살리라고 하셨어요. 여보, 이 말씀을 들어요? 예? 한번만이라도 눈을 뜨세요. 어버이수령님께서 죽지 말아야 할 당신이 죽었다고 그렇게 가슴아파하시는데 그렇게도 애통해하시는데 여보, 당신은 왜 눈을 못 뜨세요? …》

안해의 이 울부짖음은 방안에 있던 유가족들로 하여금 참고참았던 눈물을 일시에 쏟게 하였다. 그들만이 아니라 자리를 같이하였던 의사, 간호원들과 극장배우들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도 어버이수령님의 고매한 의리와 크나큰 은정앞에서 눈물을 금치 못해하였다.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관계부문 일군들에게 황철동무가 사망한것과 관련하여 신문에 부고도 내고 장례를 사회장으로 성대히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그의 자녀들을 만경대혁명학원에 보내주고 유가족들을 잘 돌봐주도록 뜨거운 배려를 돌려주시였다.

며칠후 황철의 장례식은 사회장으로 국립연극극장에서 성대히 진행되였다.

그때로부터 어느덧 26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간 1987년 4월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오래전에 곁을 떠난 황철에 대하여 회고하시면서 일군들에게 그의 자식들이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가고 하나하나 물으시고는 그들이 당의 배려속에서 아버지의 대를 이어 문학예술부문에서도 일하고 정치일군으로도 일하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는 황철동무의 자식들이 그렇게 일하고있으면 좋다고 하시며 못내 기뻐하시였다.

참으로 황철에 대한 어버이수령님의 은혜로운 사랑과 배려는 세월이 흘러가도 끝이 없었다.

어느해 6월 중순이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나라의 연극예술발전에 기여한 황철의 예술적재능을 높이 평가하시면서 그는 한팔이 없었으나 연기를 아주 잘하였다고, 화술도 독특하였다고, 재능있고 훌륭한 배우였다고 추억하시였다.

그리고 어느해에는 당과 혁명을 위하여 충실히 일하다가 일생을 마친 혁명전사들의 빛나는 이름속에 황철도 세워주시며 그의 유해를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하시고 조국통일상도 수여해주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황철은 애국렬사라는 영생의 이름으로 조국과 더불어 길이 남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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