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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의 언덕에 높이 세워주시여

 

한생을 창작으로 불태우던 송영은 뜻밖에도 엄중한 과오를 범하게 되였다.

이 사실을 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몹시 가슴아파하시며 그가 하루빨리 자기의 잘못을 고치도록 도와줄데 대하여 은정깊은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하해같은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창작을 다그치던 송영은 병으로 74살에 마무리짓지 못한 유고를 남긴채 아쉽게도 세상을 떠났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얼어붙었던 대지에서도 새싹이 움트는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하지만 죽었던 인간을 소생시키는 사랑의 전설은 오직 이 땅에서만 있을수 있는 이야기로 전해지고있다.

어느날 송영과 같이 일했고 그의 아들 송명수와 군사복무를 같이하였던 한 신인작가가 송영의 집에 들린적이 있었다.

작가는 송영에 대한 깊은 회억을 더듬다가 아들에게 아버지산소를 어디에다 썼는가, 비석을 어떻게 세웠는가고 물었다.

송명수는 아무 응대가 없었다.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는데 아무 비석도 세우지 않았다고 하는것이였다.

그 말에 다소 놀란 작가는 한 제자의 의무로, 옛 전우의 자격으로 《아직까지 아무 비석도 만들어 세워드리지 않다니? 도대체 그것도 말이라고 하오?》 하고 안타까이 말했다.

그러자 명수는 갈린듯 한 음성으로 말하는것이였다.

《우리 아버지가 사망하기 전에 유언하기를 내가 죽은 다음 비석을 요란하게 세우느라고 그러지 말라, 사람들이 보고 웃는다, 내 할 일을 다 못하고 가지만 그래도 변변치 않은 내 작품들이 후에라도 살아남는다면 그것이 내 비석을 대신할게다라고 했던거요. 그런데 아들인 내가 도리를 지킨다고 비석이나 화강석으로 크게 세워드린다고 해서 아버지가 더 커지는것도 아니며 또 아버지자신이 그렇게 하는것을 바라지도 않소. 그래서…》

《명수동무!》

작가는 더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작가는 로작가들이 사망하게 되면 봉분앞에 비석을 다 세워주는데 송영의 묘소에는 아무 비석도 세워져있지 않고 표말 하나만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그러면서 인생의 마무리를 잘하지 못하고 간 로작가의 일이 마음에 걸렸으며 그를 속으로 못내 원망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겨우 생각했다는노릇이 희곡창작사에 있던 몇몇 극작가들과 함께 다음해 청명날에 송영의 묘에 비석이라도 맞춤하게 하나 세워주자고 의논하였다.

그런데 그 계획은 실천에 옮겨질수가 없게 되였다.

바로 그해 초겨울 어느날 저녁, 그 작가의 집에 송명수와 그의 누이 송정수가 불쑥 나타났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이렇게 둘이 함께 우리 집에 다… 어서 들어오시오.》

작가는 반기며 그들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방에 들어서는 그들의 얼굴은 흥분으로 상기되여있었다.

자리에 앉을념도 하지 않고 송명수는 《옛 전우에게 한가지 기쁜 소식을 전하고싶어서 누님과 같이 왔소. 이번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어버이수령님의 크나큰 정치적신임과 배려를 받아안고…》 하고는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송영선생이?!》

《얼마전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애국렬사릉에 새로 안치할 렬사들의 명단을 하나하나 보아주시다가 문득 일군들에게 왜 여기에 송영이 없는가고 하시면서 공로있는 오랜 작가인데 꼭 애국렬사릉에 령구를 옮겨다가 잘 안치하도록 하라고 뜨겁게 말씀하셨다는게 아니겠소.》

《송영선생을? 애국렬사릉에?!》

작가의 입에서는 놀라운 탄성이 울려나왔다.

송정수가 목메인 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도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았어요. 자식들도 비석 하나 세워드릴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있었는데… 글쎄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이름마저 점점 희미해져가는 우리 아버지를 잊지 않으시고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해주셨으니…

묘지에 누워계실 우리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아신다면 얼마나 기뻐하시랴 하고 생각하니 그저 눈물만 자꾸…》

송정수는 또다시 젖어드는 눈가에 손수건을 가져갔다.

송명수도 두눈을 슴벅이며 감동된 어조로 이렇게 말하였다.

《별로 한 일도 없는 우리 아버지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그 기억은 어느 소설에 있는것처럼 그 어떤 두뇌의 기억이 아니라 뜨거운 심장의 기억이라고 생각하오. 우리는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두터운 믿음과 각별한 배려에 대를 이어 충정으로 보답하자고 하오.》

《송동무, 나는 그런것도 모르고 얼마후에 몇몇 작가들과 함께 송영선생의 비석을 세워드리려고 했댔소. 우리가 기껏 궁리해보았다는노릇이 고작 그게 다였는데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죽은 사람도 다시 살려낼수 있는 그런 어버이의 사랑을 가지고 아버지를 애국렬사릉에 보내주시고 인민의 사랑속에 영생하도록 해주셨구려.》

1986년 9월 추석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 일군에게 전화를 거시여 전날에 준공된 애국렬사릉에 안치되여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감회깊은 회고의 말씀을 하시다가 렬사릉에 오랜 작가였던 송영이 안치되였다는 보고를 들으시고 송영을 넣었으면 좋습니다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애국의 량심을 지니고 자기의 생애를 조국과 민족을 위한 창작활동으로 빛내인 송영을 애국렬사릉에 안치하게 하여주시고 생전에 력임한 직무들도 많건만 그가 가장 귀중히 여기였던 필생의 직분을 그의 이름과 함께 후세에 길이 전해주시려 묘비에 다음과 같은 글발을 새겨넣게 하여주시였다.

 

송영선생

작가

1903년 5월 24일생

1977년 1월 3일 서거

 

세상을 떠난지도 근 10년세월이 흘러 동료작가들은 물론 그의 친자식들까지도 기억이 희미해지고있던 그때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적으나마 기여한 그를 잊지 않으시고 영생의 언덕에 내세워주시였으니 정녕 절세위인들의 그 사랑은 한번 정을 주고 믿음을 준 사람들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지고 품어주는 영원한 삶의 품인것이다.

하기에 그 사랑, 그 은정속에 작가 송영이 누구나 오를수 없는 애국렬사릉의 높은 언덕에 올랐을 때 그의 자녀들과 친지들은 오열을 터뜨리며 심장의 목소리를 합쳐 서정시 《어머니》를 목메여 합창하였다.

 

그대는 어머니!

피도 숨결도 다 나누어주고

운명도 미래도 다 맡아 안아주며

바람도 비도 죽음까지도

다 막아나서주는 우리들의 어머니

준엄한 싸움길에 하나의 전사 뒤떨어져도

천리길 만리길을 다시 달려가

붉은기에 휩싸안아 대오에 세워주는

영원한 삶의 품! 혁명의 어머니!

 

위대한 수령님께서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작가와 그의 작품을 잊지 않으시고 회고하시며 내세워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을 만들 때에 카프작가편에 송영을 형상하도록 하여주시였으며 《현대조선문학선집》(1930년대 희곡선)에는 그 시기 그가 창작한 대표적작품들을 수록하도록 은정깊은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생의 길에서 잘못은 범했어도 그의 애국적량심을 귀중히 여기시여 행복과 영광의 절정에 높이 세워주신 은혜로운 그 품!

백두산위인들께서 기억해주시며 조국과 인민의 사랑을 받는 작가로 내세워주신 재능있는 극작가, 해학과 유모아의 명수였던 송영은 오늘도 영생의 언덕에서 사람들에게 고귀한 철리를 말없이 가르쳐주고있다.

조국과 인민, 민족을 위하여 력사에 커다란 생의 자욱을 남기였을 때 그 인간은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되는것이다.

송영은 바로 영생하는 인간으로 되였다.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과 기억속에, 인민들의 기억속에 자기가 창작한 작품들과 함께 오늘도 래일도 영원한 삶을 누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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