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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의 첫 영웅칭호

 

조선영화사에서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예술영화들인 《붉은 선동원》, 《한 지대장의 이야기》 등을 훌륭히 연출한것으로 하여 박학은 관록있는 연출가로 인정받게 되였고 자신도 영화연출에서는 막히는것이 없다는 자부심을 가지고있었다.

그러나 박학은 문학예술의 영재이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지도를 직접 받게 되면서부터 연출수업을 새롭게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이고 세심한 지도밑에 한편한편의 영화를 창조완성하는 나날은 박학이 알지 못하던 새롭고 독창적인 형상방법을 체득하는 보람차고 신비스러운 배움의 나날이였다.

1971년 6월초 영광스럽게도 불후의 고전적명작 《꽃파는 처녀》를 각색한 예술영화 《꽃파는 처녀》의 연출을 맡았던 박학은 연출대본을 완성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 올리였다.

그때 박학은 자기나름으로 연출대본이 전례없이 잘된것으로 자부하고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 연출대본의 완성을 위하여 대륙을 넘나들며 일제식민지통치시기의 자료연구도 하였고 세계영화발전추세도 깊이 연구하였으며 또 작품의 무대인 1920년대 생활을 자신이 직접 체험하였다는것으로 하여 어느 영화보다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기때문이였다.

그런 기초우에서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의도대로 이 영화를 사상예술적으로 완벽한 영화로, 세계에 내놓고 소리칠만 한 걸작으로 만들기 위하여 대본창작에 전심전력하였던것이다.

그는 원작에는 없지만 일본령사관놈들의 선, 목사의 선, 정치공작원의 선 등을 대담하게 설정하고 그들 호상간에 벌어지는 이야기선을 흥미진진하게 엮어나갔다.

그러나 박학은 잘못 생각하고있었다.

연출대본을 올린지 얼마후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박학을 부르시여 대본의 결함을 명확히 밝혀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우선 원작에 없는 일본령사관놈들의 선과 목사의 선, 정치공작원의 선을 다 뽑아버리고 꽃분이의 운명선을 깊이 파고들면서 인정심리세계가 짙은 영화로 되게 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박학은 원작에 충실하지 못하다보니 작품의 특성인 인정심리적인 양상을 깊이있게 그려내지 못하였던것이다.

그는 연출대본이 전례없이 잘되였다고 자부하고있은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가에 대하여 자책을 금할수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고서야 그는 원작의 기본양상이 인정심리극이라는것을 깨달았다.

일단 작품의 종자와 양상을 파악한 그에게는 힘이 솟구쳤다. 박학은 솟구쳐오르는 창조적열정으로 하여 며칠밤을 뜬눈으로 새워도 피곤한줄 몰랐으며 한두끼의 때식을 건늬여도 배고픈것을 느끼지 못하였다.

드디여 박학은 심혈을 기울여 수정완성한 연출대본을 다시 경애하는 장군님께 올리였다.

1971년 9월 어느날 박학은 뜻밖에도 수정한 연출대본대로 촬영할데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친필서한을 받아안게 되였다.

박학은 친필서한을 받아안고 뜨거운 격정을 삼켰다. 아직도 미숙한 자신에게 거듭 베풀어주시는 장군님의 은덕이 하도 고마와서였다.

이제는 촬영만이 남았다. 연기형상지도를 잘하고 촬영만 끝내면 되는것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촬영에서 류의하여야 할 점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고도 일단 완성된 작업필림들을 여러차례 보아주시며 배우들의 연기형상과 화면의 문화성문제, 의상과 소도구를 바로 설정하는 문제 등 영화의 전반형상을 잘하도록 세심한 지도를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렇듯 정력적인 지도밑에 박학은 두달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에 첫 작업필림을 완성하여 그해 11월 경애하는 장군님께 올리였다.

그이께서는 무척 기뻐하시며 박학을 친히 부르시여 작업필림을 함께 보아주시였다.

작업필림을 보시며 아무 말씀도 없으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박학에게 영화를 만들기에 수고한다고 하시면서 영화를 완성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영화가 아직도 원작의 사상을 충실하게 담지 못하고있다고 하시면서 가장 중요한 결함은 꽃분이의 선이 살지 못한것이며 따라서 주인공에게 애착이 가지 않는것이라고 하시였다.

그이의 지적은 정확하였다. 대본에는 그 모든것이 제시되여있었지만 실지 화면형상에서 꽃분이의 행동선에 형상요소들을 집중시키지 못하고 그에 따르는 감정조직을 예리하게 파고들지 못하였던것이다.

물론 그로서는 영화를 철저히 인정심리극으로 만든다고 하였지만 연출대본에 제시된 형상과제를 세부적으로 하나하나 파고들면서 섬세한 작업을 해나가지 못하였던것이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1930년대에 가극을 보고는 그때 사람들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혁명의 길에 나섰는데 그것을 각색한 영화를 보고 우리 인민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면목이 서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사람들을 울릴수 있게 심리세계, 인정세계를 더 깊이 파고 감정조직을 잘하여야 한다고 간곡하게 말씀하시였다.

박학은 죄송스러움을 금할수 없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세계적수준의 영화로 옮기시려는 그이의 높으신 뜻을 잘 받들지 못하고 걱정만 끼쳐드린다고 생각하니 감히 머리를 들수 없었다.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은 박학의 머리에는 창조의 환상이 나래쳤다. 다시 찍자, 다시 찍어 꼭 성공시키자!

박학은 마음속으로 그이께 더는 심려를 끼쳐드리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러나 그가 경애하는 장군님의 높은 뜻을 다 받들기에는 아직도 거리가 있었다. 장군님께 더는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으리라 그렇게도 결심하였건만 그가 여러차례에 걸쳐 올린 작업필림은 그이의 세심한 지도를 거듭거듭 받고서야 한장면한장면 완성될수 있었다.

후날 영화의 가장 기름지고 빛나는 장면들인 어머니의 죽음장면과 꽃분이자매의 리별장면, 감옥장면과 려인숙장면, 지주처가 미쳐날뛰는 환각장면에 대한 그이의 지도는 참으로 박학의 경탄을 자아내는것이였다.

감정조직을 잘할데 대한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고 박학이 노린 장면은 꽃분이 어머니의 죽음장면이였다.

그는 꽃분이 어머니가 마름놈의 등살에 못이겨 기절하며 쓰러졌을 때 그 죽음을 놓고 감정조직을 치밀하게 하느라고 촬영과 편집, 음악과 효과를 쓰는데 있는 재간을 다 부렸다.

그는 이 장면에서 꽃분이와 순희가 약을 사가지고 올 때 비가 억수로 내리게 하고 두 자매가 나무밑에서 비를 그으며 오돌오돌 떨게 하였다.

어머니의 죽음장면과 잇달린 이 장면을 이렇게 처리함으로써 불쌍하고 가련한 어린것들의 처지를 한껏 강조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이 장면의 작업필림을 보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인공이 약을 사들고 동생과 같이 돌아오는 장면에서 감정축적이 더 있어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약을 산 꽃분이와 순희가 희망과 기쁨에 넘쳐 꽃을 꺾어들고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아기자기한 장면을 더 주어야 한다고, 그러다가 뜻하지 않게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하게 하여야 더 절절하게 안겨올수 있다는 명철한 대안을 내놓으시였다.

그제야 박학은 어머니의 죽음장면에서 무엇을 놓쳤는가를 심각하게 깨닫게 되였다.

그것은 밝은것과 어두운것과의 대조를 강하게 주는것과 같은 수법상의 문제가 아니였다.

그이의 가르치심은 이 장면을 원작의 사상예술성에 맞게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처지를 더욱 깊이있게 부각하면서도 꽃분이자매의 아름다운 내면세계를 펼쳐보이는 장면으로, 어머니의 죽음장면에서 관중을 더 울릴수 있는 극적장면으로 될수 있게 하였다.

그리하여 이 장면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에 따라 이렇게 고쳐지게 되였다.

 

의원한테서 약첩을 받아들고 꽃분이와 순희가 흰구름이 두둥실 떠도는 언덕길로 기쁨에 넘쳐 걸어온다.

노래가 흐른다.

 

천송인가 만송인가 진달래꽃 송이송이

어머님께 바친 정성 꽃과 같이 피여났네

 

노래가 흐르는 속에서 기쁨에 넘쳐 강가로 걸어오는 꽃분이와 순희, 반짝거리며 흐르는 강물… 언덕에 피여난 진달래를 꺾어 동생의 손에 쥐여주는 꽃분이, 기뻐서 깡충깡충 뛰여가는 순희…

맑고 깨끗하고 희망과 기쁨에 넘친 이 화폭과는 대조적으로 짙은 어둠속에서 어머니가 숨지는 장면이 펼쳐진다.

캄캄한 하늘에 번개가 일고 비에 젖은 한그루 철쭉이 비바람에 떤다. 우뢰소리, 비소리, 《꽃분이 어머니!》, 《아, 아이구 형님. 형님!》 하는 간난이 어머니와 마을녀인들의 통곡소리…

화면이 바뀌면 멀리서 꽃분이와 순희가 다정하게 걸어온다. 그들은 이 광경에서 이상한것을 감촉한다.

간난이 어머니가 달려오며 《꽃분아, 너의 어머니가…》 하고 설음을 터뜨린다.

《어머니!》 하고 꽃분이가 달려간다.

진달래가 땅에 떨어진다. 순희가 달려간다. 약봉지가 떨어진다. 떨어진 약봉지를 찾느라고 손더듬하는 순희, 《엄마, 엄마, 약! 약! 엄마, 언니가 약 사왔어! 엄마! …》

이 불쌍한 어린것들을 보고 슬픔을 참지 못하는 마을사람들, 마을사람들이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통곡하는 꽃분이와 순희를 떼낸다. 하지만 꽃분이와 순희는 마을사람들을 뿌리치며 어머니에게 매달려 통곡한다.

《어머니, 어머니가 가시다니 웬 말이세요? 아버지도 오빠도 없는데 어머니만 믿고 살던 우리를 두고 어떻게 가요! 우린 못살아요! 눈먼 순희를 두고 어떻게 가요. … 어머니! 어머니! 아이고, 어머니…》

그 다음은 어머니의 시체를 맞들고 나가는 마을사람들, 땅을 치며 통곡하는 꽃분이, 무덤앞에 서있는 꽃분이와 순희, 비장한 노래가 흐르는 가운데 원작의 유명한 설화가 울려나온다.

《정성이면 돌에도 꽃이 핀다고 하였건만 꽃분이의 정성이 아직도 모자랐단 말인가!

애오라지 어머니의 병이 나아지라 간절한 희망과 념원과 기대를 안고 가시밭을 헤치며 츠렁바위를 톺아 한송이한송이 꺾어온 그 꽃들을 깔아놓으면 온 마을을 덮고도 남으련만 어머니는 그 한송이 꽃도 받지 않고 갔으니…

야속하다, 야속하다, 야속한 이 사연이 무슨 까닭인지, 원한은 쌓여도 풀 길없는 이 사연이 그 무슨 까닭인지 그 누가 대답해주랴!》

그칠줄 모르는 울음소리, 넋을 잃고 무덤을 바라보고 서있는 꽃분이와 순희, 계절조들이 하늘높이 무리져 날아간다.

이 비통하고도 애절한 화면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나 북받치는 설음과 슬픔을 참지 못하며 흐느껴운다.

치밀하고 격조높은 감정조직, 생활의 가장 비극적인 국면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이처럼 섬세하고 굴곡있게 보여주는 감정조직이 있음으로 하여 원작의 심오하고도 위대한 사상은 커다란 감동속에서 부각된것이다. 이렇게 하여 예술영화 《꽃파는 처녀》는 위대한 수령님의 탄생 60돐을 맞으며 훌륭히 완성될수 있었다.

예술영화 《꽃파는 처녀》는 예술영화 《피바다》, 《한 자위단원의 운명》과 함께 우리 영화예술의 3대명작들중의 하나로, 혁명적영화예술의 기념비적대작으로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1972년 4월 27일 어버이수령님께서 예술영화 《꽃파는 처녀》를 아주 잘 만들었다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고 하시면서 이 영화는 사상예술적으로 완전무결한 대걸작이기때문에 그 어디에 내놓아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수 있다고, 볼수록 눈물이 나고 주인공의 정신세계에 끌려들어간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예언하신것처럼 예술영화 《꽃파는 처녀》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우리 인민은 물론 세계 수많은 나라 인민들속에서 폭풍같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영화는 그 심오한 사상주제적내용과 높은 예술성으로 하여 1972년 7월 이전 체스꼬슬로벤스꼬의 까를로비와리에서 진행된 제18차 국제영화축전에서 축전력사에 일찌기 없는 특별상과 특별메달을 수여받았다.

예술영화 《꽃파는 처녀》에 대한 반영은 대단하였다.

당시는 말할것도 없거니와 수십년이 지난 오늘에도 사람들의 머리속에서는 이 영화에 대한 깊은 인상이 옹이처럼 굳어져 끝없는 회억을 불러일으키고있다.

단적인 실례로 이 영화가 창작된 때로부터 25년이 지난 1997년 7월 14일부 중국의 《종합신문》에는 《허밍안과 〈꽃파는 처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는데 여기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쓰고있다.

《세계영화사에서 조선의 〈꽃파는 처녀〉처럼 수억의 관중들로 하여금 슬픔의 눈물을 흘리게 한 영화는 없을것이며 우리 나라처럼 많은 도시에서 며칠동안 밤낮 〈꽃파는 처녀〉만 상영한 나라도 없을것이다. 이 두가지 기록만 해도 영화사에서 세계에 제일로 될수 있다.》

신문은 계속하여 영화의 번역자인 허밍안에 대하여 소개하고 그가 영화를 번역하던 때의 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계속하였다.

《…장춘영화촬영소의 통지를 받고 허밍안이 장춘에 도착한 날 그는 베이징에서 보내온 조선영화 〈꽃파는 처녀〉원판복사필림을 받았었다.

허밍안은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있다.

장춘영화촬영소의 제8방영실은 사람들로 꽉 찼다. 그때는 장춘영화촬영소사람들도 외국영화를 보기 어려웠으므로 숱한 사람들이 일찌감치 방영실에 와서 기다리고있었다.

그는 동시번역마이크앞에 앉아서 영화를 제대로 번역할수 있겠는가에 대하여 자신이 없어하였다.

영화를 돌리기 시작하자 그는 아주 순조롭게 번역하였으며 인차 영화내용에 말려들었다.

꽃분이와 눈먼 동생 순희의 비참한 운명때문에 그는 여러번 목이 메여 눈물을 흘렸다.

아무런 심리적준비도 없는 장춘영화촬영소사람들도 다 흑흑 흐느끼였으며 일부 녀성들은 엉엉 소리내여 울었다.

영화를 한 절반 돌렸을 때 허밍안은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눈물범벅이 되고말았다.

〈꽃파는 처녀〉는 한주일만에 번역제작되였다.

영화는 인차 전국에서 상영되였으며 많은 지방에서 하루 24시간동안 륜번으로 이 영화를 돌렸다.

연변에서 이 영화를 돌릴 때 사람들은 손수레를 타고 현성에 모여왔다.

허밍안이 이 영화를 번역하였다는것을 안 현성의 사람들은 그에게 닭과 남새를 가져다 주는 제일 소박한 방식으로 그에 대한 자기들의 경의의 감정을 보여주었다.

〈꽃파는 처녀〉가 소문이 난음에야 허밍안은 명작의 원작가가 조선인민의 수령이신 김일성주석이시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예술영화 《꽃파는 처녀》에 대한 세계적인 경탄과 찬사는 전적으로 불후의 고전적명작 《꽃파는 처녀》를 친히 발굴하시고 그것을 영화로 옮기도록 하시였으며 영화를 원작의 사상예술적특성을 그대로 재현한 대걸작으로 완성해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탁월한 령도의 결과였다.

실로 눈물없이는 볼수 없는 인정심리극의 세계적인 본보기로서의 이 영화의 매 장면들은 그 어느것 하나 장군님의 세심한 손길이 미치지 않은것이란 없다.

그런데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 예술영화 《꽃파는 처녀》를 박학동무가 훌륭히 연출하였다고 보고드리였으며 그에게 로력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배려하여주시였다.

영화인에게 로력영웅칭호! 이것은 우리 나라 영화계에서 처음으로 되는 경사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기쁘신 마음으로 박학의 가슴에 손수 금메달을 달아주시며 축하해주시였다.

영웅뒤에는 그를 키워준 훌륭한 어머니가 있고 성공한 인재뒤에는 뛰여난 스승이 있다는 격언이 있다.

정녕 이끌어주고 떠밀어주시며 내세워주시는 위인의 탁월한 손길이 있었기에 박학은 명작의 연출가로, 세계일류급의 연출가로, 로력영웅으로 될수 있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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