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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믿음과 사랑을 주시여

 

박학의 예술적재능은 또 한분의 위대한 스승이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령도밑에서 더욱 활짝 꽃피여나게 되였다.

우리의 영화예술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로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서던 1960년대 중엽의 어느날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연출가로 일하고있는 박학이 과오를 범하였다는 한 일군의 보고를 받으시고 그것이 마음에 걸려 밤깊도록 좀처럼 집무실을 뜨지 못하고계시였다.

박학과 관련하여 제기된 내용은 자못 심중한 문제였다.

그 내용인즉 박학이 견실치 못한 어느 한 자와 결탁되여있다는 간과할수 없는 문제였다.

한마디로 박학은 우유부단한 사람, 믿을수 없는 사람이라는것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 있어서는 실로 뜻밖의 일이였다.

그리하여 그이께서는 한생을 영화창작에 바치고있는 박학의 지나온 과거를 돌이켜보지 않을수 없으시였다.

일찌기 영화예술발전에 깊은 관심을 돌려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새 조선의 첫 은막우에 나타났던 예술영화 《내 고향》의 경방단 단장 최인달을 기억하고계시였다. 그때 박학은 비록 부정인물인 인달역을 맡아하였지만 가증스러운 원쑤의 역형상을 인상깊게 수행하였다.

그가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지고 사랑을 받게 된것은 1953년에 예술영화 《정찰병》의 주인공인 사단정찰과장 리학철의 역을 한 다음부터였다.

그가 수행한 인민군정찰병의 슬기롭고 영웅적인 투쟁모습은 우리 인민들속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였다.

때문에 당시 인민군대에 입대하는 청년들속에서 많은 청년들이 정찰병을 지망하였다. 그만큼 박학의 연기는 우리 청소년들의 심금을 울려주었던것이다.

그후 그는 예술영화 《또다시 전선으로》, 《비행기사냥군조》, 《준령을 넘어서》, 《진실한 사람들》, 《두만강》 등에서 주인공역을 훌륭히 수행하여 인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1960년대초부터 박학은 영화연출가로 활동하면서 예술영화 《분계선마을에서》, 《붉은 선동원》, 《장자강반에 핀 꽃》 등을 성과적으로 연출하여 우리 나라 영화예술발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때문에 그가 연출한 영화에 조선영화사상 처음으로 1962년 2월 2일 인민상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1963년 2월에는 박학에게 인민배우칭호가 수여되였다. 이것은 당과 인민에 대한 박학의 성실성을 보증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박학의 생애에서 귀중하게 여기시는 다른 측면이 또 있었다.

그는 출신이 밥술이나 먹는 집에서 태여난 사람이였지만 이역땅 일본에서 첫 배우생활을 할 때부터 가난하고 천대받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련민, 사회악에 대한 항거의 내용을 담은 작품들에 적극적으로 출연하였고 조국이 해방된 다음 서울에서 진보적인 연극인들이 창작한 연극 《독립군》에서 위대한 수령님을 형상한 김대장역을 맡아하였다. 미제와 그 앞잡이들이 살판치는 남녘의 무대에서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님을 형상한것은 그야말로 목숨을 내대고 단행한 일대 장거였다. 박학은 이런 애국적열의를 안고 1948년에 위대한 수령님의 품을 찾아 공화국북반부로 들어왔다.

박학이 걸어온 길로 미루어보아 그가 나쁜 놈들과 의식적으로 불순한 교제를 가졌다는것은 도저히 믿을수 없는 일이였다. 더우기 박학이 자서전에 소기업가의 가정에서 부유하게 자라났다는것까지 솔직하게 밝혀놓은 이상 그것을 문제시하는것은 편협하기 그지없는 일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박학이 나쁜 놈들을 따라다니고 놈들의 지시에 맹종맹동했다는 자료도 쉽게 긍정할수 없으시였다. 그이께서 알고계시는 박학의 인간됨을 놓고볼 때 그는 생활에서 말이 없고 고지식하며 문학예술이외에는 그 어떤 일에도 나설줄 모르는 온순한 사람이였다.

그이께서는 박학의 과오와 관련하여 제기된 모든 자료들이 다 의문시되시였다.

자정이 되여올무렵까지 사색에 잠겨계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제기된 자료가 과장된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하시고 한가지 단호한 결심을 내리시였다. 그이께서는 즉시 전화로 해당 일군을 찾으시고 박학에 대한 자료를 요구하시였다.

얼마후 일군이 들고 온 자료는 퍼그나 두툼하였다. 그것을 몇장 번지시던 그이께서는 문건을 되돌려주시며 이 동무에 대한 자료는 이미 다 알고있다고, 그 문건을 불태워버리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자료를 보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태워버리기 위하여 요구하신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이어 엄하신 어조로 나는 그런 자료를 보고싶지도 않다, 그의 어제날을 완전히 백지화해야 한다, 그 동무는 남녘땅에서 혁명에 대한 열정과 애국열에 넘쳐 우리를 찾아왔고 재능도 있는 동무이다, 그가 우리를 찾아올 때 품었던 그 뜻을 꼭 실현하도록 적극 도와주어 영원히 혁명의 한길을 걸어나가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직 믿음만이 충신을 낳는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사람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면서 뒤를 캐고 결함자료를 잔뜩 긁어묶는것은 매우 유해로운 행동일뿐아니라 인간의 운명을 끝까지 책임져야 할 우리 일군들의 사명과 임무에 배치되는 아주 위험한 처사라고 강조하시였다.

하여 그날 밤 박학에 대한 자료묶음은 한줄기의 연기로 사라져버리고말았다.

박학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믿음과 사랑은 이처럼 불보다 더 뜨거운것이였다.

그로부터 얼마후인 1967년 2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의 발기와 지도밑에 영화예술부문에서는 백두산창작단이 새로 무어지게 되였다.

백두산창작단이 꾸려지기 시작하자 영화부문뿐만아니라 문학예술분야의 모든 창작가, 예술인들이 그 성스러운 집단에 망라되고싶어하였다.

박학도 례외가 아니였다. 당시 박학은 자신이 일제식민지통치시기부터 예술활동을 벌린 사람이라는데로부터 그리고 자신이 일년치고 거의 절반은 병상에서 날을 보내는 병약자라는데로부터 이 성스럽고 영예로운 창작기관에 남먼저 선발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하고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새로 조직되는 백두산창작단에 대한 선망과 혹시나 하는 미련이 떠날줄 몰랐다.

이렇게 몇달이 흘러간 어느날 박학은 한 일군으로부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몸소 자기의 이름을 찍으시여 백두산창작단 연출가로 소환하도록 하시였다는 믿음과 은정에 넘친 말씀을 받아안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을 받아안은 그날 박학은 좀처럼 마음을 진정할수가 없었다. 이것이 정녕 꿈이 아닌가 싶었다. 이미 베풀어주신 믿음만도 대해같고 보답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몸부림이라도 치고싶은 심정인데 병약하고 불민한 자기를 불러 이처럼 커다란 영예를 안겨주시니 현실이라 믿기에는 받아안은 믿음과 은정이 너무도 크고 뜨거웠다. 그의 가슴은 한없는 감격과 고마움으로 차넘치였다.

이렇게 되여 박학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믿음과 은정으로 작가들인 백인준, 리종순 그리고 촬영가인 박병수와 함께 백두산창작단이 조직되던 초창기부터 연출가로 사업하는 중임을 받아안게 되였고 그 과정에 한없는 영예와 긍지, 보람을 한껏 누리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박학에게 돌려주신 사랑에는 아래와 같은 뜨거운 이야기도 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극진한 보살피심속에서 박학이 우리 식의 주체적인 영화창작에 전심하기 시작한 때는 벌써 그의 나이가 50고개를 넘어서고있었다.

나이도 나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젊어서부터 난치의 병이 있어 1년치고 반년은 병상에서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그가 40대에 이르렀을 때 그의 병을 진찰한 한 이름있는 의사는 절친한 동료에게 《재사단명이라더니 박학이라는 사람이 아깝소. 50을 못 채우겠구만.》라고 하며 유감을 표시하였다. 이 말이 그만 환자의 귀에까지 흘러들어가 그는 여간 실망하지 않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박학의 이런 병세를 아시고 하해같은 은총을 끝없이 베풀어주시였다.

박학은 병약한 몸으로 예술영화 《한 지대장의 이야기》의 창작을 끝내고 내처 앓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박학의 건강상태에 대하여 보고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단호한 결심을 내리시였다. 그를 창조사업에서 뚝 떼여 치료에 전념하도록 할데 대한 조치를 취해주시였던것이다. 그러시고는 박학의 병에 특효가 있는 약을 친히 물색하시고 공기가 좋고 치료조건이 좋은 병원을 고르시였다.

얼마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친히 박학을 자신의 곁으로 부르시여 최신의약품이 든 약함을 안겨주시며 신심을 잃지 말고 꼭 완쾌되여 돌아오라고 고무해주시였다.

약함을 열어본 박학은 그만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한두대만 맞아보아도 원이 없겠다던 값비싼 주사약이 수십대나 들어있었던것이다.

그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친히 정해주신 병원에서 6개월이상 집중치료를 받았다.

자기의 건강에 대하여 거의나 자포자기상태에 빠졌던 박학은 다시 온몸에 새 힘이 솟구쳐오르는것을 느끼였다.

그는 병세가 호전되자 장군님의 따뜻한 사랑에 의하여 회복된 자신의 건강을 하루빨리 영화창작에 바치기로 결심하고 병원에서 달려나왔다.

나오자바람으로 그는 예술영화 한편을 연출하였다.

어느날 그가 완성한 영화를 보아주러 나오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박학의 손도 만져보고 얼굴색도 살펴보시면서 안색이 좋지 않다고, 몸이 어데 불편한데가 있지 않는가고 다심히 물으시였다.

박학이 영화를 찍느라고 좀 무리해서 그럴뿐이라고 그이를 안심시켜드리자 그이께서는 미심쩍으신듯 머리를 가로 저으시고나서 그와 함께 영화를 보시였다.

영화는 성공작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내가 전번에 작업필림을 보고 의견을 준대로 영화를 잘 고쳤다고 하시면서 작품이 훌륭하게 완성된데 대하여 더없는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그러시면서도 박학의 얼굴색을 자주 살펴보시는것이였다.

이 영화가 위대한 수령님께 기쁨을 드린 날 그이께서는 박학과 창작가 몇사람을 또다시 몸가까이에 불러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늘 영화창작을 위해 수고하는 동무들과 식사나 함께 하자고 이렇게 불렀다고 하시면서 그들의 성과를 축하해주시였다. 박학은 영광넘친 이 자리에서 새로운 영화를 더 많이 창작하리라 속다짐하였다.

그러나 며칠후 그에게는 병원으로 갈데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엄한 분부가 내리였다.

그이께서 정해주신 치료기간은 석달이였다.

어쩔수없이 병원으로 간 박학은 다시 치료에 전념하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박학이 누워있는 입원실로 의사와 간호원이 무엇인가 담긴 큰 사발을 들고 오더니 아직 온기가 식지 않았으니 단숨에 다 마시라고 하는것이였다.

《이게 뭔가요?》

《노루피입니다. 환자의 몸에는 노루피가 좋을것이라고 하시면서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몸소 지방에 나가시여 노루를 산채로 사냥해가지고 보내주셨습니다.》

박학은 의사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때문에 노루사냥을?!)

박학은 자기때문에 높고낮은 산발을 오르내리셨을 경애하는 장군님을 그리며 격정의 눈물을 흘리였다.

박학은 그이께서 정해주신 기일대로 석달만에 몸을 추세워가지고 촬영소에 돌아왔다.

그는 곧 새 작품에 착수하여 배가의 열의를 내였다. 그가 새 영화의 연출대본과 배역안을 짜가지고 경애하는 장군님을 찾아뵈웠을 때였다.

그이께서는 박학이 가지고 온 대본을 다 보시고나서 연출대본대로 촬영해도 되겠다고 하시며 못내 기뻐하시였다.

박학이 그이의 집무실을 나서려고 할 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잠간 기다리시오 하시며 정히 포장한 자그마한 함을 들고 나오시였다.

그이께서는 박학동무에게 주려고 이미 마련하여놓았는데 일이 바쁘다나니 오늘에야 주게 된다고 하시면서 동무의 병치료에 필요한 약인데 써보는것이 좋겠다고, 이 약은 빨리 병을 고치고 일을 더 잘하자는 나의 마음이라고, 어서 약을 써서 건강을 회복해야 하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날 박학은 그이의 집무실을 어떻게 걸어나왔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사랑의 약함을 가슴에 끌어안은채 눈물이 앞을 가리워 그이께 인사도 제대로 올리지 못한것 같았다.

열흘후 그가 혜산행 렬차를 타고 량강도지방으로 현지촬영을 떠나던 날이였다.

렬차가 기적을 울리며 막 떠나려는 참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몸소 역두에 나오시여 박학이 책임진 창조집단을 찾으시였다.

(아니, 역에까지 나오시여서?!)

박학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렬차에서 뛰여내렸다.

그이께서는 박학에게 촬영지가 너무 멀지 않는가고 물으시였다.

그이의 물음에 박학은 《괜찮습니다. 촬영은 거기서 해야 계절관계도 좋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지대가 촬영현장으로 좋다니 할수 없겠지만 멀리 가는것 같다고, 삼수지방에 가면 날씨도 차겠는데 건강에 주의해야 한다고, 추운 지방에 가서 촬영하겠는데 앓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하시였다.

그이의 당부는 절절하시였다.

그이의 이런 따뜻한 보살피심속에서 박학은 건강치 못한 몸이였지만 북부지대의 험한 날씨에서도 쓰러지지 않았다.

량강도에서 현지촬영을 성과적으로 마치고 돌아와 영화를 완성하였을 때 박학의 몸이 퍼그나 쇠약해진것을 느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번에는 그가 머리를 쉬우도록 기후가 따스한 나라인 알제리에 영화대표단을 데리고 가게 하시였다.

대표단이 조국을 떠나던 날이였다.

그날 비행장에는 비가 내리고있었다.

그런데 외국려행을 위하여 여러차례 만나도 주시고 사소한 불편도 있을세라 보살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박학을 바래주시려고 친히 비행장으로 나오시였다.

그이께서는 비가 더 내리기 전에 어서 비행기에 오르라고 하시며 박학의 손을 잡아주시였다.

이윽고 비행기는 하늘로 날아올라 비행장을 선회하였다. 이때 시창을 통해 비행장을 내려다보던 박학은 소스라치며 일어섰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비행장 한가운데 그이께서 우산도 없이 서계시는것이 아닌가.

그이께서는 옷이 젖는것도 아랑곳 않으시고 그냥 박학에게 손을 들어 흔들어주시였다.

박학은 부실한 자식때문에 마음을 쓰는 부모인들 이보다 더하랴싶어 목이 꽉 메였다.

문득 그의 머리속에는 몇해전 자기의 조급한 행동때문에 경애하는 장군님께 심려를 끼쳐드렸던 일이 떠올랐다.

영화촬영도중에 병원에 실려갔던 박학은 영화창작이 걱정되여 며칠만에 퇴원한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즉시 촬영소로 나오시여 박학에게 병치료를 해야 한다고, 자신께서 찾을 때까지 절대로 병원에서 나오지 말고 병치료를 해야 하겠다고 엄하게 이르시였다.

박학은 그이의 엄하신 추궁을 받고 넉달동안 꼼짝 못하고 치료를 받았다.

박학이 이젠 되였다고 안심하고 퇴원했을 때에도 그이께서는 박학의 병색이 도는 얼굴을 보시며 아직도 얼굴색이 좋지 않은것 같은데 더 치료를 받아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그토록 극진히 보살펴주시고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박학이 잠시나마 창작에서 벗어나 휴식할수 있도록 오늘은 또 해외려행을 마련해주시고 비를 맞으시며 바래워주기까지 하시니 이 심정을 어떻게 다 표현할수 있겠는가.

박학에게 기울이신 그이의 정성은 참으로 지극한것이였다.

돌우에 꽃을 피웠다고 할가.

박학은 난치의 병을 안고서도 그이의 품에서 오랜 기간 쓰러지지 않고 수많은 영화들을 창작하였다.

50고개를 못 넘기리라던 그의 생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따뜻한 은정속에서 근 20년을 더 연장하였으며 그동안에 그는 자기 생애에서 가장 성공적인 명작들을 창조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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