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 회)
종 장
력사적인 자강도현지지도에 련이어 성진제강소 로동계급의 심장속에 성강의 봉화를 거세차게 지펴올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평양으로 돌아오시자
리성하부부장의 생활에 대해 료해하시였다.
리성하는 이미 자기 직책에 없었다.
장군님의 신임에 보답할 대신 엄중한 과오를 범한 그는 자신의 배은망덕한 행실을 뉘우치며 심한 번민과 절망에 빠져 몸부림치다가
당조직앞에서 자기의 수치스러운 지난 생활을 랭철히 반성하고 태천발전소건설장에 내려가서 평돌격대원으로 일하고있었다. 전력공업부 당위원회에서는
리성하가 고백한 결함을 심중히 따져보고 들끓는 현실속에서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결심한 본인의 요구대로 그를 건설장에
보내였다. 그렇게 되여
오십고개를 훨씬 넘어선 인생말년에 리성하의 로동생활이 시작되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무척 가슴이 아프시였다.
리성하가 허름한 배낭을 걸치고 돌격대원들이 사랑하는 숙소, 키낮은 바라크집에 《입소》하자 이튿날로 온 건설장에 그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전력공업부의 모모한 일군이 철직되여 돌격대에 망라되였는데 그가 건설판의 생활에 치여나겠는가 하는것이 입심이 드센 청년들의 심심치
않는 화제거리로 되군 했다. 한데 이삼일도 못되여 모두들 입을 딱 벌렸다. 리성하는 한호실의 호기심이 많은 좁쌀친구들속에서 짜장
《신입병사》구실을 착실히 하며 매일같이 호실청소를 도맡아놓고했다. 덜퉁하기 짝이 없는 젊은 친구들이 로동화바닥에 건설장의 흙덩이를 묻혀들여
신발장을 털어내면 시뻘건 진흙이 한삼태기씩 쏟아져나왔다. 태천발전소 지배인이 이전의 상급이였던 전력공업부 부부장이 젊은이들판에 끼워
구접스러운 발바지노릇하며 괄세를 받는다면서 당장 외래자합숙으로 옮겨앉으라고 권고했지만 리성하는 그의 고마운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이야 건설장의 일개 돌격대원에 불과한데 외래자합숙에 들랴. 그는 자신을 위해서도 푼수에 맞지 않는 대접을 원하지 않았다. 리성하는
건설장에 나가 진종일 등가죽이 벗겨지게 질통으로 골재를 나르군 했다. 수십대의 중량급 화물자동차들과 불도젤을 비롯한 륜전기재들이 새까맣게
덮여 붐비여대는 건설장은 불개미둥지를 헤쳐놓은것처럼 혼잡을 이루었다. 건설자들은 골재적재장에서 먹성이 좋은 대형몰탈혼합기까지 따찌까로 뻗닿게
골재를 나르며 드달려다니였다. 굼뱅이처럼 동작이 굼뜬 리성하는 오금에 불이 일게 뛰여다니는 젊은이들의 따찌까행렬속에 끼여들지 못했다. 누군가
건설장의 세멘트창고옆에 집어던진 양철질통에 골재를 골빠지게 듬뿍 담아진 리성하는 따찌까들이 불이 펄 나게 오가는 길옆으로 쉼없이 구부정히
다니며 제딴엔 량심껏 일하느라 했지만 어느 한시도 마음이 편한 때가 없었다.
그가 태천발전소건설에 참가한 일년 남짓한 기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무려 두차례나 자강도안의 공장, 기업소들과 새로 건설한 발전소들,
농장들을 현지지도하신 격동적인 소식이 신문, 방송을 통하여 광범히 보도되였다. 온 나라가 자강도로동계급이 발휘한 불굴의 혁명정신,
강계정신으로 불도가니마냥 끓어번지였다. 강계정신은 싸우는 조선의 넋으로 온 나라를 불길처럼 휩쓸었다. 《강계정신으로 구보롯!》 어디서나 그
뜨거운 웨침이 열풍처럼 휘몰아쳤다. 조국이 가장 준엄한 시련을 겪던 최악의 시기 봉쇄돌파의 혈로를 헤쳐온 영웅의 땅-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모진 굶주림을 참고 견디며 피눈물의 사선을 넘어선 인민을 잊지 못하시며 그이께서는 때없이 자주 자강행렬차에 오르시였다. 고난의 시기 남몰래
흘리신 장군님의 눈물, 가슴속아픔을 리해하지 못한 사람은 자강땅인민들에게 아낌없이 쏟아붓는 이 화산의 분출과도 같은 격렬한 사랑과 신임을
알수도 없다. 리성하가 바로 그런 인간, 거창한 격류가 굽이치는 시대의 변두리로 밀려나 쓸모없이 떠돌며 악취를 풍기는 부유물에 지나지
않았다는것을 깨닫고 창피를 느끼는 사람이였다.
덥수룩이 자란 수염과 터갈라진 입술… 하지만 그 모든 육체의 고달픔보다도 참기 어려운 고통은 그의 내심속에 있었다. 병원에서 숨진
어머니, 한생 자기때문에 맘고생하며 외롭게 지내다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가긍한 정상이 눈앞에 밟혀와 그는 한밤중에도 헛소리를 질렀다.
자강땅에 태를 묻은 인간이면 나서자란 고향의 소중함을 알고 사랑하라는 어머니의 진정을 잊지 말아야 했는데… 리성하는 몸부림을 쳤다.
눈보라 사나운 겨울밤 못난 아들을 찾아오다가 로상에서 쓰러진 어머니, 어머니의 식어가는 몸우에 사정없이 눈가루를 들씌운 사나운 눈보라… 그
죄많은 리성하가 자기의 운명이 정해준 고뇌의 길을 허덕허덕 걸어가던 1998년 10월중순이였다.
희천시안의 공장, 기업소를 또다시 현지지도하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건설장의 쓰다남은 막돌처럼 버림당한 리성하였지만 잊지 않고 친히 그를
불러주시였다.
천만뜻밖의 꿈같은 련락을 받고 리성하가 희천공작기계공장에 도착하자 정문에서 초조히 기다리던 장관우가 앞서달리며 《빨리! 빨리!》하고
연방 다급히 웨쳤다. 두사람은 주먹을 움켜쥐고 있는 기운을 다 내여 달렸다. 높뛰는 심장의 세찬 격동때문에 둘 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자동베트흐름선 현장안으로 급히 들어섰을 때였다.
그들은 거의 동시에 우뚝 굳어졌다. 공장의 일군들과 수행성원들을 둘러보며 가볍게 뒤짐을 짚고서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열정에 넘친 쩌렁쩌렁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고난의 행군때와 같은 엄혹한 시련은 우리 당 력사에서 처음이자 마감일것이요. 희천공작기계공장 로동계급이 난관을 박차고 일떠서서 고난의
시기 기계에 쓸었던 쇠녹을 벗겨버리고 매달 공작기계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면 좋습니다. 나는 자강도에 희천의 로동계급과 같은 충실한 로동계급이
있기에 그 어떤 모진 시련이 앞을 가로막아도 힘든줄 모르고 일했습니다. 지금은 때없이 자주 동무들이 생각나서 찾아오고싶고 오면 돌아가고싶지
않은 곳이 자강땅입니다. 백두산의 고향집뜨락에 들어선것처럼… 그래서 나는 아무리 바빠도 자강행렬차를 타고 여기로 찾아오군 합니다. 자강도는
고난의 행군시기 나에게 정든 고장입니다.》
아, 장군님의 정든 고장! 순간 리성하는 제 고향을 고향이라고 떳떳이 말할수 없는 수치와 격심한 고통, 그로 하여 어머니가 당한 참혹한
생죽음… 쇠몽둥이처럼 뒤통수를 후려치는 정신적타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의식을 잃었다.
그는 졸도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후 자동베트흐름선 현장에서 돌아서나오시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리성하를 측은히 지켜보시였다.
《성하동무가 왔구만. 왜 그러구 서있소?》
《장군님.》
리성하가 얼굴을 들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올렸다.
《이 미련한 인간을 처벌해주십시오.》
그의 심장속에서 터져나온 울음섞인 말이였다.
《장군님께서 그렇게도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자강땅에 대한 사랑과 애착이 저에게는 조금도 없었습니다. 자강도는 제가 나서자란 고향입니다.
고난의 행군시기 모두들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 공장을 돌리고 발전소들을 건설했지만 전 장군님의 신임을 받고 내려와서도 패배주의에 빠져 그들처럼
고향땅에 피를 바치지 못했습니다. 일생 고향을 등지고 살아온 이 병신자식때문에 맘고생하던 어머니는 저를 원망하면서 불행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이 자강땅에 어머니를 묻고 떠난 죄많은 놈이였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엄한 시선으로 그를 마주 보시였다.
《그래, 동무에게 어떤 책벌을 줬으면 좋겠소. 내가 동무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값눅은 속죄의 눈물을 또다시 믿어야 하는가!》
격노한 그이께서는 기가 죽어버린 리성하앞을 지나 현장밖으로 나서자 승용차에 오르시였다. 수행성원들도 태혁이도 공장일군들도 너무나
엄엄한 광경을 목격하고 어두운 낯빛으로 그이를 뒤따라 말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눈앞이 캄캄하여 얼혼이 나간 사람처럼 서있는 리성하의 옆에
와서 누군가 발길을 멈추었다가 출입문을 향해 달려갔다. 이날 오후 희천시문화회관에서 김정일동지의 참석하에
자강도로동계급의 투쟁을 고무하기 위한
인민군공훈합창단의 공연이 있어 다급히 뛰여가는 태혁이였다.
맨 마감으로 현장을 나선 리성하는 가슴에 턱을 눌러박고 아무런 목적도 없이 터벅터벅 걸었다. 하늘이 통채로 무너져내리는것만 같았다.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의식하지 못하며 무턱대고 천근같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갔다.
때마침 공장정문안으로 쏜살같이 달려들어온 승용차의 급정거소리와 함께 누군가 《성하동무! 어디로 가오?》하고 소리를 쳤다. 리성하는
얼결에 흐릿한 눈길로 얼핏 돌아다보았다.
《빨리 와서 차에 타오. 장군님께서 동무를 기다리시오!》
태혁이가 숨가쁘게 달려와서 그의 팔을 잡아끌어 승용차에 태우고 문화회관으로 차를 냅다 몰았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얼마후 인민군공훈합창단공연관람장에 나가시자 친히 자신의 옆에 리성하를 앉히고 《나와 함께 공연을 봅시다. 내가 오늘
동무를 부른건 다름이 아니요. 래일부터 태천발전소건설장에 내려가서 고문으로 일하시오. 우리 나라 전력공업발전에서 중소형발전소건설과 함께
대용량발전소건설을 힘있게 내밀 때가 되였습니다.》라고 하시였다.
공연이 끝난 후 태혁이와 장관우의 축하를 받으면서도 리성하는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는 너무도 뜻밖의 크나큰 신임을 받아안고 자기
일생에서 이날처럼 많은 눈물을 흘려본적이 없었다.
김정일동지의 희천시현지지도는 리성하의 운명에 재생의 활로를 활짝 열어주신것으로 하여 그들 세사람의 기억속에 한층 더 아름답게
아로새겨졌다.
하지만 그들중의 그 누구도 방금 희천을 떠나 평양에 도착하셨던 김정일동지께서 그 밤에 다시 자강땅의 머나먼 변강도시 만포로
떠나오시리라고 상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때까지도 태혁은 희천을 떠나지 않고 공작기계공장에 눌러있다가 뜻밖에도 그이께서 찾으시는 전화를 반갑게 받았다.
《태혁동무요?》
《예, 장군님. 평양에 무사히 도착하셨습니까?》
《왔소. 그런데 내 이제 자강도로 다시 들어가야 할것 같소.》
《예?》
《지금 동무네가 압록강다이야공장을 돌리지 못하고있는데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소. 이렇게 합시다. 오늘밤 희천에 그냥 있으시오. 내 이제
곧 떠나겠으니 희천에서 만나 만포로 함께 갑시다.》
《장군님, 이 밤에 또다시 만포로 들어오신단 말입니까? 안됩니다! 오늘 밤, 오늘 밤만이라도 좀 쉬시고 래일 떠나주십시오.》
태혁은 애절한 심정으로 간청했다.
《태혁동무, 내가 자강도로동계급을 믿고 전국을 일떠세울 결심을 할 때 동무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최고사령관동지, 지금 우리 자강도가
제일 곤난하지만 이쯤한 고생이야 무슨 큰 고생이겠습니까. 저희들에게 일감을 주십시오.〉하면서 나의 명령을 관철했지. 그 마음이 고마워 나는
이것이 바로 강계정신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온 나라 인민들이 강계정신을 받들고 강성대국건설에 떨쳐나섰는데 동무네 다이야공장이 서있어서야
되겠소? 다이야공장만 돌릴수 있다면 난 열밤을 새우면서라도 기꺼이 찾아가겠소.》
그 무엇으로써도 그이의 걸음을 막아나설길 없어 태혁은 《장군님…》하며 안타깝게 말끝을 흐리였다.
《됐소. 우리 희천에서 다시 만납시다.》
《장군님, 제 그럼 먼저 만포로 들어가겠습니다. 지금 다이야공장은 장군님을 모실수 있는 준비가 전혀 되여있지 않습니다.》
《알겠소. 몇해동안 멈춰 서있던 공장이니 무슨 일인들 없겠소. 한데 이 밤중에 혼자 명문고개를 넘을수 있겠소?》
《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당장 만포로 떠나겠다며 부득부득 우기는 태혁의 심정이 리해되여 그이께서는 그렇게 하도록 승인하시고 서기실장을 부르시였다. 집무실안으로
서기실장이 들어오자 그이께서는 이제 곧 자강도로 떠날수 있도록 렬차를 준비시키라고 이르시였다. 금방 현지지도를 마치고 돌아오신 그이께서
한밤중에 다시 자강도로 찾아가시겠다니 서기실장도 아연하여 무슨 말을 못했다.
《어찌겠소. 우리 혁명의 준엄한 요구인데… 어서 서둘러주시오.》
《알겠습니다.》
두눈에 조용히 물기를 머금고 돌아서나가는 서기실장을 말없이 바라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책상우의 문건들을 손가방안에 차곡차곡 넣으시였다.
하기야 나도 힘들지 않은건 아니지. 아닌게아니라 오늘 밤은 어쩐지 다리가 뻣뻣하고 밀린 피곤이 몰려들면서 눈덕이 무겁게 드리우는것을
느끼시였다. 하지만 누구도 대신해줄수 없는 걸음이 아닌가. 그이께서 별다른 내색이 없이 집무실을 나서시는데 서기실장이 따라나와 오늘 밤은
렬차에서 잠간만이라도 쉬시라며 간곡히 당부하였다. 그이께서는 서기실장의 권고가 너무도 곡진하여 그렇게 하겠노라며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보이시였지만 어쩔수 없이 이날 밤도 달리는 렬차집무실에서 밤을 새우시고 만포에 도착하니 떠오르는 아침해살에 차창이 붉게 물들고있었다.
태혁이가 역에 나와서 초조히 기다리다가 그이께서 나서시는 승강대를 향해 뛰여왔다.
《태혁동문 언제 왔소?》
《새벽 3시에 도착했습니다.》
《희천에서 만포까지 적어도 다섯시간은 걸릴텐데 날아서 왔구만.》
《장군님, 전 다이야공장만은 살릴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시 찾아오시니 저도 무슨 정신으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흥분한 태혁이와 함께 곧 다이야공장에 찾아가 공장을 다시 살릴수 있는 방안을 내놓고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됐소! 놈들의 검질긴 포위환의 마지막사슬을 끊어버리시오.》
《장군님, 자강도로동계급의 무쇠주먹맛을 보이겠습니다!》
태혁이가 기세충천하여 배심있게 대답올렸다.
그날 자강땅에서 멈춰서있던 다이야공장에 불길을 지펴주시고 환희에 넘쳐 《동무들이 다이야를 꽝꽝 생산할 때 꼭 다시 찾아오겠소!》라고
뜨겁게 말씀하신 김정일동지!
그때로부터 8개월이 지난 이듬해 6월 5일!
미제와 남조선호전분자들의 무분별한 불장난으로 이 땅에는 전쟁을 배태한 《서해사건》이 제국주의자들의 포위속에서 불의에 터졌다. 황해도
쌍교리쪽 우리측 해역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선들에 대한 도발로 일어난 류혈적인 충돌에는 무려 20여척의 괴뢰함선집단이 어마어마하게
출동하여
언제 어느 순간에 전쟁이 터질지 알수 없는 위기일발의 분초가 초조히 흘러가는 때였다.
바로 이러한 때 김정일동지께서는 자강땅로동계급과의 약속을 지켜 또다시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시였다.
변강도시의 한적한 만포역두에서는 눈앞에 박두한 전쟁에 대한 예감으로 얼굴이 컴컴히 굳어진 일군들이 야전복차림을 한 김정일동지께서 렬차에서
내리시자 일시에 눈물이 글썽하여 와락 달려왔다.
《장군님! 온 나라가 〈서해사건〉으로 가슴을 조이는 때 최고사령부작전대앞에 계셔야 할 장군님께서 이렇게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김정일동지께서는 극도의 초조와 불안에 휩싸여 애타게 쳐다보는 그들을 향해 단호히 말씀하시였다.
《왜 오지 못하겠소. 그 어떤 원쑤도 자강도로동계급과 만나기로 약속한 나의 걸음은 막아나서지 못하오! 지금 조국의 서해에서 격전이
벌어지고 인민군해병들이 피를 흘리지만 우리의 주공전선은 바로 여기 자강땅이요. 우리가 자강땅에서 이기면 놈들은 죽지가 꺾이고
지리멸렬해질것이요. 속대가 없는 놈들이 서해에서 집적거리는데 내버려두고 우린 제 할일이나 합시다. 난 다이야공장 로동계급이 고난의 행군
전보다 다이야를 훨씬 더 생산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늘 이렇게 찾아왔소.》
태혁은 사회주의냐 제국주의냐 하는 이 엄숙한 시기에 놈들과의 최후결판을 벼르며 자강땅을 일떠세우신 장군님의 지략과 담력이 어떤것인가를
비로소 깨닫고 얼굴을 번쩍 쳐들었다.
이해 1999년 6월 자강도현지지도는 크나큰 격정속에 이렇게 시작되였다.
그 시각도 조국의 서해바다가에서는 여전히 포화가 울부짖고있었으나 이 사변적인 날 김정일동지께서는 결연히 말씀하시였다.
《고난의 행군기간 우리 인민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가혹한 생활난과 눈물겨운 참상들을 강요당했습니다. 그것은 제국주의봉쇄와 뜻밖의
자연재해로 한 민족에게 들씌워진 전대미문의 참혹한 재난과 고문이였습니다. 이제는 고생스럽던 그 모든 일들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되였습니다.
영웅적인 자강도인민들이 발휘한 강계정신, 그 불사신의 혁명정신으로 제국주의자들의 봉쇄환은 끊어지고 우리의 붕괴를 떠벌이던 놈들의 허장성세는
파탄되였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사랑하는 조국과 인민들을 한품에 뜨겁게 그러안고 엄숙히 선언하신 후 한동안 깊은 회억에 잠기시였다.
자강땅과 더불어 흘러간 가렬처절했던 1950년대의 전쟁의 력사가 심혼의 파도에 실려와 쾅쾅 심장의 벽을 두드리였다.
《태혁동무, 우리 이 기쁜 날에 고산진으로 가봅시다. 어버이수령님의 고귀한 혁명업적이 깃들어있는 력사의 성지로 말이요.》
조금후 그이께서는 한낮의 물안개가 뽀얗게 피여오르는 압록강대안을 따라 달리는 승용차의 등받이에 지그시 몸을 기대고 차창밖에 눈길을
던지시였다. 눈뿌리 모자라게 치솟은 아아한 산발들과 그 아래의 낭떠러지들, 늠실거리는 군청색물결이 서서히 흘러갔다. 이따금 그이께서는
한동안씩 깊은 명상속에 잠기군 하시였다. 민족비운의 나날 김형직선생님께서 화평의 직고개를 넘어 압록강을 건느며 《지원》의 씨앗을 뿌리시였으며
일찌기 어리신 나이에 수령님께서 조국광복의 큰뜻을 품고 걸으신 이 자강땅의 험준한 령길을 오늘은 자신께서 우리 인민에게 강성대국을 안겨주시기
위해 걷고계신다는 숭엄한 생각이 밀려드시였다. 조국이 어려운 시기마다 만경대가문과 운명을 함께 해온 력사의 땅! 이 혁명의 성지에는 대대로
민족의 장래와 겨레의 행복을 위해 한생을 바치신 만경대일가분들의 애국의 발자취가 력력히 찍혀있다. 근 한세기동안이나 대를 물려오는 성업을
자신의 대에는 기어코 완성해야 할 김정일동지이시였으나 그이앞을 가로막아나선 난관은 얼마나 참혹했던가!
이 땅이 열백번 불타고 터갈라지는 한이 있어도 마지막한사람이 남을 때까지 우리의 신성한 조국을 수호하기 위한 싸움,
제국주의떼무리들의 악랄한 포위속에서 단행하신 고난의 행군은 걸음걸음 피눈물의 자욱을 남기며 걸어온 혈전이였다. 한두달도 아닌 옹근
4년동안
그 간고한 길을 헤쳐오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생전의 모습이 어려있는 고산진의 최고사령부마당에 들어서자 이제껏 그 누구한테도
쏟아놓지 못한 만단사연들이 눈물겹게 떠올라 문득 발길을 멈추시였다.
수령님께서 생존해계시면 정말 고생이 많았다고 다정히 말씀하실것 같고 그 한마디면 가슴속에 안고오신 아픔과 괴로움, 나날이 덧쌓이기만
했던 육체의 피로도 일시에 말끔히 가셔지실듯 했으나 방안은 너무나도 조용하였다.
눈에 익은 작전대우의 전화기며 색연필, 한켠 구석에 놓여있는 쇠침대만이 수령님께서 잠간 어디론가 자리를 뜨신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래서 아무데건 걸터앉아서 기다리고싶은 심정이 간절하시였다.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감정인지 그 마음의 크기와 절절함을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그이만큼 알수 있는 사람은 없다. 수령님께서 생존해계셨으면 오늘의 풍파많은 고난의 행군길이 그렇게도 힘겨웁고 그이의 심중에 서리서리 드리운
고심도 그렇게는 무겁지 않았을것이였다.
지금도 김정일동지께서는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이 최고사령부에서 최후승리를 확신하며 적들을 쥐락펴락하신 수령님, 재진격의
그날 저 굵은 색연필로 작전지도우에 붉은 화살표들을 쭉쭉 내그으시며 저 수화기를 들고 전선사령부와 군단, 사단들에 적들을 무자비하게
소멸할것을 명령하시던 거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 나지막한 농가의 천정아래에 깃든
고요와 적막이 무엇인가를 의식하신 때에도
여전히 빈방에 홀로 선채 발길을 옮기지 못하시였다. 그 강직한 수령이 계셨기에 지구우에서 마지막까지 사회주의붉은기를 내리우지 않았던 조선!
이 땅의 붕괴를 노리며 세계제국주의렬강들이 사면팔방으로 압력을 가한 기나긴 나날 한 인간이 몇생애를 살아도 체험할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수없이 당하셨던 일들이 목맺혀올랐다.
민족의 어버이를 잃은 슬픔과 비통함을 참고 견디며 놈들의 악착한 봉쇄와 맞서 싸우기도 어려웠던 그 시기 해마다 들이닥치는 자연의 횡포가
겹쳐 인민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부모없는 방랑아들이 거리를 헤매고 공장들이 숨죽어가고 달리던 렬차들이 멈춰설 때 그이께서는 기울어져가는
나라의 형세를 한몸으로 맡아나서시였다. 평범한 나날에는 가려볼수 없었던 혁명의 변절자들이 본색을 드러내고 패배주의자들의 우는 소리가 귀아프게
들려왔지만 그이께서는 추호의 동요도 없이 우리 인민을 믿고 놈들의 봉쇄를 뚫고나갈 단호한 결심을 내리시였다.
최악의 난관앞에서도 방어가 아니라 철두철미 공격! 그것도 가장 곤난하고 불리한 자강땅을 돌파구로 정하신것은 그이의 철의 심장에서만이
분출할수 있었던 대담한 작전이였다. 조선혁명의 중하를 한몸에 걸머지고 단신으로 고난의 행군의 험난한 길을 헤쳐오시며
4년세월 잠도 휴식도 다
잊으신 그이의 무서운 강단, 공격정신이 낳은 대용단이였다. 그리하여 어버이수령님께서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재진격의 구상을 무르익히신 이
자강땅에서 고난을 돌파하는 위대한 정신이 태여나고 조국은 오늘 두번째로 재진격의 장엄한 진군길에 올랐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풍랑사나운 20세기 령마루우에서 준엄처절했던 고난의 행군길을 감회깊이 돌이켜보시고 천험의 요새마냥 거연히 솟은 자강땅의
검푸른 산발들을 묵묵히 응시하시였다.
맞은켠 승리봉의 상공에서 때아닌 우뢰소리가 꾸르릉- 요란히 울리였다. 북방땅의 그 둔중한 음향은 재진격의 포성마냥 지심을 뒤흔들며
저멀리 우주공간속으로 은은히 메아리쳐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