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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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얼마후 강계시민들은 자강땅을 떠나신줄 알았던 장군님께서 기계공장을 향해 급히 찾아가시는 승용차행렬을 보고 놀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갑자기 그이의 현지지도일행이 탄 승용차들이 도로에 나타나는 바람에 퉁탕거리며 앞서 달리던 뜨락또르가 황급히 길을 비키고 놀란 새들이
후루루 떼지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여느날처럼 일찌기 북문교를 넘나들던 행인들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다리우에 멈춰선채 푸근한 하늘에서
푸끗푸끗 날아내리는 눈발속으로 멀어져가는 승용차들을 바라보며 술렁거렸다. 간밤에 숱한 화물자동차들이 장군님의 선물텔레비죤을 싣고 명문고개를
넘어왔다더니 오늘은 기계공장에 대통운이 트려나부다 하고… 아닌게 아니라 이날 아침 기계공장에서는 우뢰소리와 같은 거대한 함성이 터져올랐다.
하늘땅을 뒤흔드는 만세의 환호성이였다. 천만뜻밖에도 장군님께서 공장에 찾아오신 소식을 듣고 감격한 로동자들이 현장에서 일하던
작업복차림으로 앞을 다투어 달려나와 공장구내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승용차에서 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삽시간에 밀려와서 뒤설레는 로동자들속에
휩싸여 발길을 옮기지 못하시던중 주병호지배인이 헐떡거리며 나타나자 《지배인동무, 난 동무들이 생산계획을 못한 책벌을 벗겨주려고 왔소. 어서
현장에나 들어가봅시다.》라고 호방하게 말씀하시였다. 너무 감지덕지해서 변변히 인사도 못하던 주병호지배인이 어느새 현장을 향해 활달하게
걸어가시는 그이께 《장군님, 좀 천천히 가십시다. 로동자동무들이 몽땅 뛰여나오는 바람에 공장이 섰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이께서는 어쩔수
없이 한동안 주병호지배인과 마주서서 대충 공장의 실태를 료해하시고난 후에야 현장안으로 들어서시였다. 순간 뜻하지 않았던 일로 김정일동지께서는
또다시 발걸음을 멈추시였다.
옆으로 다가온 태혁이가 울먹이는 소리로 로동자들이 모두 울면서 일한다고 귀띔해드리였다.
장군님께서 찾아오신 기쁨에 목메인 로동자들은 너나없이 기대앞에서 열심히 일손을 놀리며 뜨거운 눈물로 얼굴을 적시고있었다. 여기저기에서
새로 제작한 자동선기대들만이 고르로운 동음을 울리면서 눈부시게 번쩍거리였다.
몇해전 공장에 들리셨을 때의 낡은 수동기대들은 온데간데 없고 현대적인 자동선기대들이 현란하게 펼쳐진 현장안은 궁전처럼 환하였다.
《가만, 이게 어디서 만든 기계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쇠붙이를 깎는 기계같지 않게 알른거리는 자동선기대앞으로 다가서며 주병호에게 물으시였다.
《장군님, 저희들이 이전의 수동식기대를 들어내고 새로 제작한 자동선입니다.》
《동무들이 생산계획을 못했다더니… 이런 멋쟁이 자동선을 만들었단 말이요?》
그이께서는 자못 크게 놀라며 지배인을 쳐다보시였다.
《지난해 우리 자강도에 자력갱생의 본보기를 창조할데 대한 장군님의 명령이 있은후 사생결단으로 달라붙어 성공했습니다. 그 과정에 고생한
이야기를 다하자면…》
주병호지배인이 목이 메여 말을 못하자 옆에 섰던 태혁이가 덧붙여 말씀올렸다.
《로동자들이 식량난으로 겨우 출근하는 때에 자동선개조까지 실패했을적엔 공장사정이 엉망진창이였습니다. 만날 생산계획을 못해 비판을 받는
공장에서 주제넘게 되지도 않을 자동선을 만든다고 시비질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배인동문 책벌문제가 제기되고 자동선을 설계한
최성진기사동문 고민에 빠져 얼굴도 쳐들지 못하고 풀이 죽어 다녔습니다. 이 동무들이 그 견디기 어려운 난관을 이겨내며 자동선도 만들고
북천3호발전소도 건설했습니다.》
《동무들이 고생끝에 락을 봤소. 이제 이 자동선으로 생산을 하면 얼마나 능률을 높일수 있습니까?》
《다섯배는 문제없습니다.》
주병호지배인이 눈두덩이 불깃해서 자신만만하게 대답올렸다.
《다섯배란 말이지. 대단하오. 고난의 행군시기 우리 대오에서 패배주의자, 혁명의 배신자들이 나타났지만 강계기계공장 로동계급은 변심없이
당을 받들고 자동선을 만들어 생산계획을 못하던 공장을 계획을 넘쳐하는 공장으로 추켜올렸습니다.
이건 우리의 영웅적인 자강도로동계급만이 해낼수 있는 귀중한 성과입니다.
수입병에 걸린 사람들이 여기 와서 보면 우리 당의 자력갱생만이 살길이라는것을 똑똑히 알고 정신을 차리게 될것입니다. 이 자동선을 설계한
기사동문 왜 보이지 않습니까?》
그이의 우렁우렁하신 말씀을 듣고 얼굴이며 작업복에 새까맣게 기름매닥질을 한 중키의 다부지게 생긴 최성진기사가 다급히 달려와서 인사를
드렸다.
그의 기름묻은 손을 힘있게 잡아쥐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수고했소. 정말 수고했소!》라고 거듭 말씀하시였다. 기사에게 아낌없이 안겨진 그
값높은 치하에 태혁이도 눈굽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장군님, 이 최성진기사동문 리미액연구사 림성실동무의 남편입니다.》
《아, 그렇소?》
그이께서는 무척 반가와하는 기색을 띠고 기름냄새가 물씬 풍기는 기사의 덞어진 작업복을 이윽히 바라보시였다. 림성실이가 리미액연구사업을
성공하고 쓰러졌다던 태혁의 말이 문득 떠오르시였다. 부부일색이라더니 어쩌면 이렇게도 신통히 꼭 같을가 싶으시였다.
《작년에 이 동무들의 가정도 곡절을 겪었습니다. 성실동무가 과학원에 불리워올라간후 성진기사동문 아이들을 데리고 홀아비생활을 하면서
수만매의 자동선설계도면을 그렸습니다. 몇달동안 공장에 나와 정신없이 밤을 패느라 어린 자식까지 잃었지만 자기의 개인적인 슬픔을 이겨내며
자동선을 끝내 완성하였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추연한 표정에 잠기셨다가 《내가 강계로 오길 정말 잘했소! 지배인동무, 이 자동선에 만부하를 걸고 우리가
잃은것들을 천백배로 봉창합시다.》라고 힘있는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젠 마음을 푹 놓고 돌아가게 되였다며 흐뭇한 표정으로 궁궐같은 현장안을 둘러보시였다. 인자하신 그이의 얼굴에 한가득 밝은
미소가 피여올랐다.
때마침 저쪽 자동선기대들사이를 누비며 웬 처녀가 꽃묶음을 안고 바람처럼 달려왔다.
태혁의 딸 현이였다. 이전에 그이께서 태혁의 집으로 찾아가셨을 때 세살난 현이는 코스모스를 드리면서 곧장 들국화라고 우겨댄 일이
있었다. 그날의 옹고집쟁이와는 너무나도 몰라보게 성장한 처녀, 그래서 무척 낯설어보이는 현이가 가슴을 들먹이며 가볍게 멈춰섰다. 현이가
안고있는 소담한 들국화 꽃묶음만이 오래전의 인상적인 일을 생동하게 련상시켰다. 현이는 자기의 예쁜 얼굴처럼 고운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그이께
들국화 꽃묶음을 드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북방땅의 눈보라속에서 활짝 피여난 들국화의 하늘하늘한 꽃잎을 바라보시면서 환히 웃으시였다.
《오늘은 현이가 나에게 진짜 들국화를 주누만. 이젠 다 컸어.》
김정일동지께서는 로동계급속에서 억세게 자라는 처녀라고 못내 기뻐하시며 현이의 동실한 어깨를 다독여주시였다. 그때 현이가 함뿍 눈물이
고인 두눈에 생기를 띠고 자기 공장로동계급과 기념촬영을 해달라며 어리광이라도 부리듯이 졸랐다. 저 애가 감히 저런 무엄한 말을?… 다음순간
태혁은 딸의 어깨를 다정히 짚으신 그이께서 《그래, 찍자구. 강계기계공장 로동계급을 위해선 조금도 아까울게 없어. 동무들의 소망을 다
풀어주겠소!》하고 기쁨에 넘쳐 말씀하시는바람에 그만 눈굽이 쩡해졌다. 얼마후 밖으로 나서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사진촬영대우에 올라선 기계공장의
일군들과 로력혁신자들을 둘러보시고 주병호지배인을 향해 우렁우렁하신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지배인동무, 다 왔소?》
주병호지배인이 얼른 대답을 못하고 촬영대우의 사람들도 긴장해서 내려다보았다.
《장군님.》
태혁이가 눈을 슴벅거리면서 말씀올렸다.
《처녀중대 중대장이 오지 못했습니다.》
《그래, 다 못왔지.》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렇게 조용히 뇌이시고 기념촬영이 끝나자 뜨거운 환송속에 공장을 떠나시였다.
이날 오후 도예술소조공연까지 보아주시느라 늦게야 《렬차숙소》로 돌아오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사흘동안의 현지지도를 전부 마치고 도안의
일군들과 마주 앉은 자리에서 여전히 밝은 얼굴로 오늘의 공연무대에 오른 남성독창 《내 한생의 어버이
내 한생의 스승》의 가사를 태혁동무가
썼는데 가사내용이 아주 좋다고 하시였다. 태혁이 자기의 한생을 따뜻이 보살펴주고 지켜주고 빛내여주시는 장군님의 대해같은 은정에 목메여 난생
처음 써본 가사를 도예술단 작곡가가 빼았다싶이 하여 곡을 붙이는 바람에 오늘 공연에서 불리여진 노래였다.
부모들도 걸음마를 못 떼여준 이 몸을
자애로운 품에 안아 큰걸음 떼여주셨네
아, 위대하신 김정일장군님
내 한생의 어버이 내 한생의 스승
…
좋은 날만 효자되랴 준엄한 날 충신되리
세월의 한끝까지 모시고 따르렵니다
아, 위대하신 김정일장군님
내 한생의 어버이 내 한생의 스승
《장군님, 제 서툰 재간에 쓰면 얼마나 잘 썼겠습니까.》
《리수복은 시인이였소? 자기 몸으로 적화구를 막은 그의 불타는 심장이 명시를 낳았습니다. 난 어제 제강소의 벽에 써붙인 리수복의 시를
보면서 기운이 솟는것을 느꼈는데 고난의 행군을 이겨낸 자강땅에서 이런 좋은 가사가 나왔으니 참말로 기쁘오.》
김정일동지께서는 작별을 앞둔 태혁의 울적한 마음을 위안하듯이 그렇게 다정히 말씀하시고 장관우부위원장이며 다른 일군들을 정답게
일별해보시였다.
《이번에 전력공업부 부부장동무를 만나보지 못했구만. 그 동문 평양에 있으니 오지 못했을겁니다. 부부장동무가 자강도에 와서 어떻게 일하고
갔습니까?》
태혁은 그 순간에야 너무나도 오래동안 리성하부부장에 대해 잊어버렸던 자신을 깨닫고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나는것을 느꼈다. 리성하가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부석부석한 얼굴로 고민에 싸여있던 일, 자강도를 떠나기전에 찾아와 몇마디 사죄의 말을 하고 풀기없이 돌아서나가던
모습만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었다. 그날 태혁은 이랬든 저랬든 자강도에 와서 고생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를 따라 친절히 밖으로 나갔다.
그들 사이에는 예전처럼 따뜻한 말이 오가지 않았다. 자존심이 높은 리성하는 그 어떤 자질구레한 동정도 바라지 않았다. 그의 도고한 체모에
어울리게 태혁은 점잖게 배웅해주었다. 리성하는 그렇게 가버렸다. 리성하가 평양으로 올라가자 그동안의 불만스럽고 괴롭던 일도 그의 존재도
기억속에서 사라졌다. 리성하는 너무도 쉽게 잊혀지는 일군이였다.
《왜 가만히들 있습니까? 행정위원회 부위원장동무, 동무가 말해보시오. 동문 누구보다도 부부장동무를 잘 알지 않소.》
인간적으로 리성하부부장과 각별히 친밀한 사이였던 장관우가 힘겹게 일어났다.
《장군님, 전 사실 리성하부부장동무에 대해 말씀드릴 면목이 없습니다. 저도 한때 부부장동무와 같은 결함을 범한 사람이였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갑자기 안색을 흐리며 침묵을 지키시였다.
《그래 그가 뭘 잘못했소?》
장관우가 얼른 대답을 못했다. 그는 장군님앞에 사실대로 보고드려야 할 자신을 깨닫고서야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부부장동문 장군님의 크나큰 신임을 받아안았지만 패배주의에 빠져 자강도의 중소형발전소건설에 적잖은 지장을 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처럼
아껴왔던 혁명동지, 친우가 아니라 고난의 행군시기 사상적으로 변질한 일군이였습니다. 부부장동무의 충실성이 빈말에 지나지 않는다는것을 그의
어머니도 깨닫고… 장군님, 눈물이 나서 더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형편에서는 리성하동무가 전력공업부 부부장의 중책을 감당해낼수
있겠는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니 자격이 없단 말이지? 태혁동문 어떻게 생각하오?》
태혁은 손수건으로 젖은 얼굴을 문대는 장관우의 옆에 잠자코 앉아있었다.
나에게 장관우부위원장의 저 말을 부정할수 있는 근거가 있는가? 그렇다고 리성하를 무원칙하게 두던해나설수도 없는 그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뿌직뿌직 내돋았다. 어느새 의자에서 일어나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두운 낯빛으로 렬차집무실안을 천천히 거니시였다. 현지지도의 전기간
고난의 행군을 이겨낸 자강도인민들이 대견하여 《렬차숙소》에서의 쪽잠도 달게 주무시던 그이께서 작별을 몇분 앞두고 그처럼 괴로운 심정에
잠기시자 태혁은 안타까움에 가슴이 미여지는듯 했다.
《장군님, 제가 부부장동무를 잘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태혁은 고개를 푹 숙이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그래, 잘못은 동무에게도 있소.》
그이께서는 성에가 주르륵 녹아내리는 차창앞에 다가섰다가 다시금 태혁을 향해 돌아서시였다.
《동무가 고난의 행군시기 굶주림에 쓰러지는 사람들을 묶어세워 강성대국건설의 돌파구를 열어제낄수 있었던 비결은 인민을 위하여, 인간을
위해 자기 목숨을 서슴없이 바칠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때문이요. 그런데 부부장동무를 도와줄수 없었단 말이요? 부모없는 방랑아들을 잘 키우려고
자기의 성도 달아주고 인민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눈물겨운 각오도 했고 장강군당책임비서의 문제가 제기되였을 때 말 못하는 그를 따라 천리길을
달려 내앞에 나타나기도 했던 태혁이가 전력공업부 부부장을 뜨겁게 안아주고 그의 결함을 바로 잡아주지 못했다는것이 말이 되는가. 부부장동무가
이 영웅적인 투쟁이 벌어진 자강땅에 와서 자기 과오를 씻지 못하면 어디 가서 씻을수 있소? 그를 아주 버리겠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이 세상의 타발중에서 제일 나쁜 타발이 사람타발이라고 하시며 격한 심정을 금치 못하시였다. 인간의 운명문제앞에선 불같이
뜨거우신 그이의 마음에는 단 한치의 드팀도 없으시였다.
《우리는 절대로 사람을 버리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건 최악의 경우, 마감에 할 일이요. 사람을 버리긴 쉽지만 혁명동지 한명을
얻는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모르는 사람들이면 난 구태여 동무들한테 이런 가슴아픈 말을 하지 않겠소. 태혁동무, 내말을 추궁이라고 생각지
마오. 아직도 우리 혁명의 앞길은 멀고 험난하오. 인간을 무한히 아끼시오. 그리고 뜨겁게 사랑해주시오… 자, 이젠 헤여집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속 아픈 마음을 누르시면서 애써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시였다. 태혁은 그 순간에야 그이의 책망속에서 용암처럼
끓어번지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믿음, 신임이 얼마나 큰것인가를 깨닫고 두눈에 쓰디쓴 회오의 눈물을 듬뿍 머금었다. 뒤이어 그이께서 다정히
잡아주시는 손에 제 한몸의 중량을 실으며 세차게 어깨를 들먹이였다.
《됐소, 그만하오. 리성하부부장동무의 문제는 전력공업부 당위원회에 좀 더 알아봅시다.》
태혁은 어떻게 하나 떠나시는 장군님앞에 더 이상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른 집무실에서 나와 일군들과 함께 홈에 내려섰다.
김정일동지께서도 작별의 서운함을 이기지 못해 하시며 승강대에로 따라나오시였다. 푸근하게 흐렸던 하늘에서 여전히 햇솜같은 눈송이만
시름없이 푸실푸실 성글게 날아내리였다. 그이께서는 승강대의 계단에 서신채 한동안 그들을 정겹게 바라보시다가 홈에 내려 태혁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오시였다.
《장군님, 이러시다가 감기에라도 걸리시면… 어서 렬차에 오르십시오.》
그이의 어깨우에 점점이 떨어지는 흰눈송이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던 태혁이 안타깝게 간청했다. 말없이 머리를 끄덕이시던 그이께서는 태혁의
손을 잡고 옆의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자, 이젠 떠나야겠소.》라고 말씀하시였다.
《모두 잘 있기 바라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또 한번 태혁의 두손을 꼭 잡아주시였다. 그렇게 몇번이나 말씀하시면서도 발길을 떼지 못하시던 그이께서는 드디여
승강대쪽으로 몸을 돌리며 더 힘껏 태혁의 손을 그러잡으시였다.
《장군님!》
태혁은 잠시도 그이의 바쁘신 걸음을 멈춰세우면 안된다는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다시금 격정을 터뜨렸다. 그의 옆에서는 장관우가 모자도 없이
눈을 맞으며 혼자 울고있었다. 자기의 옛 동창을 끝까지 돌봐주지 못한 괴로움, 죄책감때문일것이였다. 그 일이 가슴아프신지 김정일동지께서는
승강대에 서신채 흐릿한 눈길로 그를 지켜보시였다.
마침내 렬차가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혁은 불시에 솟구쳐오른 눈물때문에 차츰 멀어져가는 그이의 모습을 전혀 가려보지 못했다. 말 못할 안타까움에 가슴을 조이던 태혁은
그때까지 울고 서있는 장관우를 돌아다보며 《부위원장동무, 뭘해. 빨리 내 차에 타오!》라고 짤막하게 웨쳤다. 그들은 역구내에 서있는 태혁의
승용차를 향해 힘껏 뛰여갔다. 긴말할 사이가 없었다. 승용차에 오른 그들은 장군님께서 타신 렬차를 따라 쏜살처럼 내달렸다. 눈앞으로 다가드는
미끄러운 눈길과 얼음판, 그우로 힝힝 날아가는 승용차… 승용차의 속도계바늘은 최대 한계점에 정지된채 부르르 떨었다. 붕- 기적소리를 길게
울리며 눈발속으로 달리는 렬차와의 거리가 점차 가까와져가고있었다.
승용차는 얼어붙은 장자강을 사이에 두고 렬차와 거의 평행으로 내달렸다.
그때 뜻밖에도 렬차가 서서히 멈춰섰다. 이후에야 알게된 일이지만 달리는 렬차의 차창가에서 죽을내기로 뒤쫓아오는 한점의 작은 승용차를
바라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수행성원들에게 태혁동무가 나와 헤여지는 아쉬움, 서운함때문에 저렇게 따라오는데 눈길에서 사고라도 내면 어쩌겠는가고
하며 렬차를 세우셨다고 한다. 그 순간엔 그런 눈물겨운 일이 있었다는것을 알수 없었던 태혁은 렬차가 멎어서기 바쁘게 승용차문을 와락
밀어제끼며 뛰여나갔다. 렬차의 차창을 내리고 상반신을 밖으로 내미신 그이께서 두손을 모아쥐고 힘있게 흔들어보이며 그에게 소리쳐 무슨
말씀인가를 하신다는것이 알렸다.
장자강의 두터운 얼음장이 쩡-쩡- 터지는 소리때문에 태혁은 그이의 말씀을 똑똑히 분간해들을수 없는 일이 안타까왔다. 힘있게 꽉 맞잡은
두손의 세찬 흔들림, 그이의 열정적인 손동작에서 《잘 있소! 태혁동무, 이 자강땅에선 단 한명의 락오자도 나와선 안되오!》라고 온몸으로
웨치는것같은 감촉을 느끼고 눈굽이 확 달아올랐을뿐이였다. 육중한 몸을 땅바닥에 내던지듯 한 태혁은 손바닥으로 얼음강판을 짚고 그이를 향하여
《장군님!》하고 목청이 터지게 부르짖으며 세차게 어깨를 들먹이였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웨쳤다. 우리 혁명의 가장 준엄한 시기 제국주의자들의
고립압살과 봉쇄를 짓부시고 여기 자강땅에서 고난의 행군의 돌파구를 열어제끼신 장군님! 철의 담력과 의지로 강계정신을 창조하시고 다 죽게 된
자강도사람들을 일떠세우셨으며 주저앉을번 한 조국을 구원하신 장군님께 무슨 말로 인사를 드려야 합니까? 전 목메여 울면서 큰 절을
올릴뿐입니다…
장자강의 얼음장이 터지는 소리가 또한번 언대기를 흔들며 요란히 울렸다. 그 다음은 모든것이 온통 휘뿌옇게 흐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흩날리는 눈발도 그이께서 타신 렬차의 열려진 창문도… 그는 가락맞게 들려오는 무쇠바퀴의 규칙적인 음향을 가려듣고 장군님께서
떠나가신다는것만을 분명히 의식했을뿐이였다. 아, 장군님께서 이 자강땅을 떠나신다. 터져나오는 오열과 흐느낌에 가슴이 막혀버린 태혁은 두눈을
크게 뜨고 흩날리는 눈발속을 바라보았다. 금방 렬차가 서있던 자리는 텅 비여있었다. 아니, 온 우주공간이 휑뎅그렁하게 비여있다! 그것이
장군님께서 차지하셨던 자리였다는것, 그래서 그이께서 떠나가시자 이렇게도 거대한 빈 공간만이 남았다는 생각에 또다시 목안의 점막을 째며
흐느낌소리가 도간도간 새여나왔다. 렬차가 사라져가는쪽의 뿌연 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비물처럼 고랑 지으며
쏟아져내리였다. 도대체 나의 이 작은 가슴속의 인간애라는것이 무엇이였던가. 거기에는 엄연히 넘어설수 없는 계선, 한계가 있었다는것을 깨닫고
그 공허, 허무감에 머리속이 핑 돌았다.
저 멀리 산굽이를 에돌아가는 렬차의 기적소리가 다시금 그의 멎어버린듯 한 심장에 박차를 가해주며 은은히 울려왔다. 눈앞에 펼쳐진
우주공간처럼 끝이 없고 무한대한 장군님의 거창한 인간세계를 떠싣고 두줄기 궤도우로 기운차게 달리는 렬차의 기적소리였다. 인간이면 무한히
아름다운 인간, 일군이면 그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는 뜨거운 일군이 되라고 속삭여주는듯 한 렬차의 그 정다운 기적소리가 사라져버린후에도
태혁은 여전히 눈길우에 얼어붙은 사람처럼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주위는 고요하고 가벼운 눈발들만이 끊임없이 희끗희끗 날아내리였다.
《책임비서동무, 이젠 돌아갑시다.》
장관우가 그의 팔을 잡아일으키며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태혁은 작별의 쓸쓸한 여운속에 깊이 잠겨버린채 비칠거리며 승용차에 올랐다. 그래, 이제는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승용차는 차머리를 돌려 금방 떠나온 강계시를 향해 천천히 달리였다.
그날 밤이였다. 태혁은 장군님의 현지지도기간에 있었던 일들을 곰곰히 되새겨보며 늦도록 자기 사무실에 앉아있다가 밤 11시가 지나서야
집으로 퇴근했다. 그때까지 안해도 잠들지 못하고있었다. 퉁퉁 부어오른 자기의 발등을 내려다보며 오도카니 앉아서 혼자 조용히 울고있었다.
《발은 어떻게 되여 그렇소?》
《이틀동안 장군님을 따라다니기만 했는데 이렇게 부었어요.》
《그만한걸 가지고 울긴 왜 우오?》
《당신두…》
안해는 코멘 소리를 하고 눈물에 젖은 얼굴을 쳐들었다.
《아무 한일도 없는 제 발이 이렇게 됐는데 일년열두달 휴식도 없이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는 장군님이야 오죽하시겠어요. 전 오늘에야
고난의 행군을 헤쳐가시는 장군님의 로고가 얼마나 큰가를 비로소 알게 된것 같아요. 그 일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서…》
태혁은 말없이 우두커니 서있었다. 이틀동안 안해의 모습에서도 놀라운 변화를 찾아보는듯 한 기쁨에 코마루가 시큰해졌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