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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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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동지께서는 점심식사가 끝나자 태혁이와 함께 렬차밖으로 나서시였다. 역구내에는 벌써 승용차가 대기하고있었다. 서둘러 승용차에 오르신 그이께서는 오후일정에 물려있는 《ㄸ》공장을 향해 떠나시였다.

이번의 현지지도기간 맨먼저 찾아가시는 공장이였다. 이날따라 공장구내길의 가로수들에 새하얗게 서리꽃이 피여 한껏 운치를 돋구고 그사이로 현대감이 나게 일떠선 건물들의 흰 벽체들이 발광체처럼 빛을 뿜었다. 몇해전에 찾아왔을 때와 달리 완전히 때벗이한 공장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마중나온 일군들에게 어서 생산현장으로 들어가보자며 발길을 재촉하시였다.

우람찬 기계바다가 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현장도 예전같지 않게 밝고 신선했다. 알른알른 윤기가 돌게 도색한 기계들사이로 활달히 걸어 단조직장에 들어서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시뻘겋게 가열된 쇠덩이를 이리저리 굴리며 용을 쓰는 압연기의 장쾌한 모습을 보시고 너무도 흡족하여 오래도록 발길을 옮기지 못하시였다.

우리 당이 하라는대로 과감히 떨쳐나 전력도 생산하고 멈춰섰던 공장도 다시 돌리는 자강땅의 영웅적인 로동계급이 장하여 그이께서는 시종 미소를 금치 못하시였다. 벽돌 한장 성한게 없던 전후의 어려운 시기 천리마운동의 대선풍을 일으킨 강선제강소의 분괴압연공들을 다시 보시는듯 한 기쁜 마음이였다. 하기야 이 자강땅에서도 강성대국건설의 거세찬 불길이 타오르며 전국을 뢰성처럼 뒤흔들고있지 않는가. 뜨거운 열풍이 확확 풍기는 압연기의 둔중한 동체앞에 거연히 서계시는 그이의 야전복자락은 어룽거리는 불빛에 비쳐 불그스름히 물들었다. 공장일군들이 몇번이나 위험하다고 귀띔해드렸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여전히 압연기앞에 바투 다가선채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다.

《멋있소! 1950년대의 강선제강소로동계급을 보는것 같소. 그들은 전후에 강재가 부족하여 나라가 허리를 펴지 못할 때 보수주의와 소극성을 짓부시며 6만t능력의 분괴압연기에서 12만t의 강재를 뽑아내고 천리마운동의 앞장에 섰습니다. 동무들은 그때 강선로동계급이 추켜든 투쟁의 불길을 다시금 세차게 지펴올려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의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하고 우리 인민을 강성대국건설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킬수 있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고난의 행군의 준엄한 시기에도 이렇게 꽝꽝 돌아가는 보배공장을 보니 힘이 난다고 하시면서 뜨거운 눈길로 태혁을 바라보시였다.

《태혁동무, 이 공장이 어느 발전소의 전력을 보장받습니까?》

《강계시안의 모든 공장들은 강계청년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씁니다. 그런데 일부 중앙급 공장들이 강계청년발전소에 매달리기때문에 아직 좀 전력의 제한을 받습니다. 지난해 이 공장에서 중소형발전소를 건설했지만 강계시 과학자, 기술자아빠트의 조명과 전기난방화에 리용되다보니 공장에서는 신세를 지지 못합니다.》

그이께서는 과학자, 기술자들이 전기난방화된 집에서 살면 아주 잘한 일이라고 치하하시였다.

《우리가 이번에 중소형발전소를 건설한건 큰 공장들을 돌리자는데 목적이 있지 않소. 거기서 나오는 전력으로 지방산업공장들을 돌리고 살림집들의 조명과 전기난방화만 보장해도 대단합니다. 자강도안의 중요공장들에 필요한 전력은 내가 별도로 보장해주겠습니다.》

태혁은 놀란 눈길로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난 지난해 동무들에게 중소형발전소건설과업을 맡기면서 평양화력발전소 설비담당부지배인동무를 북창화력발전소에 파견했습니다. 그 동무가 거기 가서 책임적으로 일을 잘하였습니다. 이제 북창, 개천, 덕천탄광의 석탄만 들어가면 북창화력이 용을 쓰며 살아나게 됩니다. 그때면 강계청년발전소의 전력은 동무네가 도맡아서 쓰시오. 강계청년이 보장해주던 단위는 북창화력이 담당하도록 대책을 취하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지난해 북창화력발전소를 원상대로 복구하기 위한 사업에 국가적인 력량을 집중하시였다. 태혁은 오늘에야 그것이 자강도의 전력문제를 완전무결하게 풀기 위한 현명한 조치이기도 했다는것을 깨닫고 흥분된 목소리로 말씀올리였다.

《고맙습니다. 장군님, 우리 자강도를 적들의 그 어떤 경제봉쇄에도 끄떡없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태혁동무가 한다면 하는거지.》

조금후 《ㄸ》공장현지지도를 마치고 현장밖으로 나서신 김정일동지께서는 헤여지기 서운해하는 공장의 로동계급과 기념사진을 찍느라 얼마간 시간을 더 지체하시였다. 이날 련이어 《ㅈ》공장을 현지지도하시고 그이께서 승용차에 오르시였을때에는 어느덧 뜻깊은 하루도 다 저물어 날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북방도시의 밤은 아름다왔다.

등잔불빛들이 가물거리던 강계시는 온통 불야경이였다. 아빠트창문의 불빛들은 불구슬처럼 반짝거리고 거리의 가로등들도 은은한 빛을 뿌리며 도시의 야경을 한층 눈부시게 돋구어주었다. 복받은 도시! 고난을 이겨낸 강계시는 활기에 차서 뜨겁게 숨쉬고있었다. 가파로운 산발들로 둘러싸인 도시의 상공에 무수한 불빛들이 불그스름히 어리여 밤하늘의 별들을 가려보기 어려웠다. 눈앞에 펼쳐진 밤풍경이 너무도 현란하여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날밤 인풍루의 정각앞에서 대낮처럼 밝은 강계시를 이윽토록 부감하시고 다시금 시내를 한바퀴 일주하시였다.

《장군님, 강계시에 전기불이 처음 켜진 날 밤엔 볼만 했습니다.》

태혁은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며 싱글벙글 웃었다.

초저녁부터 시내는 온통 명절분위기에 잠겨 흥성거렸다. 방송차들이 시내를 돌며 발전소들의 조업소식을 알리자 거리와 마을은 물론 외룡동의 농민시장에 모였던 녀인들속에서도 환성이 터져올랐다. 강계시에 전기가 온다며 과따치는바람에 장사흥정이 깨여지고 시장안은 벌둥지 헤쳐놓은것처럼 수라장이 돼버렸다. 녀인들은 장군님께서 전기를 보내주시는데 한턱 낸다면서 여럿이 작당해 떡함지, 술단지를 떠이고 치마바람을 일구며 돌격대원들의 숙소로 달려갔다. 장마당의 녀인들이 흥분해서 돈주머니를 털며 덤볐다치는 모습이 떠올라 김정일동지께서는 웃음을 참지 못하시였다.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이 세계마라손패권을 쟁취했을 때 팔도강산사람들이 기뻐서 날뛰고 서울장안의 양조장주인들이 문을 열어놓고 행인들에게 공짜로 술을 퍼먹였다는 그 광경이 련상되시였다. 우리 일군들이 어버이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중소형발전소건설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 내밀었더라면 지금처럼 전기때문에 고생을 하지 않았을것이였다.

전력공업부문의 일군들이 오분열도식으로 일한 잘못이 참말로 컸다. 나라의 전력이 풍부하니 대용량발전소들에만 매달리면서 누구도 중소형발전소건설에 관심하지 않았다.… 건설해도 날림식으로 망탕 건설했기때문에 몇해 써먹지도 못하고 집어던지지 않았던가. 그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시였다. 하지만 오늘처럼 기쁜 날에 지나간 일을 상기하고싶지 않아 환한 얼굴로 불밝은 강계시의 거리를 천천히 달리시였다. 이전에 자강도에 찾아오셨을 때에는 강계시가 너무도 너저분하여 시궁창같다고 비판을 하셨는데 오늘 보니 정말 황홀했다. 새로 현대적인 건물들도 많이 일떠서고 도로들도 시원히 뽑아서 무척 기분이 상쾌하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문득 한곳에 시선을 멈추시였다. 흰눈덮인 대웅산중턱에서 한점의 불빛이 반짝이였다.

《저게 무슨 불빛이요?》

그이께서는 반쯤 차창을 내리고 대웅산을 가리켜보이시였다. 분명 손전지의 불빛이였다. 순간 그이께서는 가슴속이 뭉클해지시였다. 산아래로 재빨리 움직여내려오던 손전지의 불빛이 그이의 승용차행렬을 향해 두세번 둥그렇게 원을 그려보이였다. 그 작은 불빛의 열광적인 환호와 함께 《장군님!-》하고 웨치는 울음섞인 목소리들이 산촌의 고요한 적막을 흔들며 뜨겁게 메아리쳐왔다. 뒤이어 그이께서는 밤하늘의 별찌가 떨어지듯 산기슭으로 위태롭게 미끄러져내리는 불빛을 지켜보시다가 승용차를 길옆에 멈춰 세우시였다.

《태혁동무, 저 동무들이 내가 왔다고 저렇게 반가와하는데 어떻게 그냥 가겠소. 아무리 시간이 바빠도 만나봅시다.》

《알겠습니다.》

어느새 차에서 내린 태혁이 대웅산밑으로 급히 뛰여갔다. 생눈을 걷어차며 사라져버린 그가 손전지의 임자와 만나 큰소리로 주고받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후 태혁의 앞에서 눈사람처럼 온통 눈투성이가 되여버린 사나이가 지팽이를 성급히 내짚으며 웬 청년과 함께 기운차게 달려와 《장군님!》하고 말뚝처럼 우뚝 굳어졌다. 그의 두눈에서 대뜸 뜨거운 눈물이 번들거리였다.

《장군님, 도중소형발전소지휘부 과장 림준입니다.》

《아, 그렇소. 한데 어디 몸이 불편하여 지팽이를 짚었소?》

그이의 다심하신 물음에 대답을 못 올리는 림준의 얼굴이 한순간 고통스럽게 이지러졌다.

마침 태혁이가 옆에서 그를 대신하여 말씀올렸다.

《림준동문 이전에 자강도중소형발전소건설대 부대장을 한 동무입니다. 그때 발전소건설장에서 돌사태에 묻혀 허리를 상했습니다. 우리 일군들의 무책임성으로 건설대가 해산된 날 림준동문 당시 도발전소건설련합기업소 지배인이였던 리성하부부장앞에 지팽이를 짚고 나타나서 누가 어버이수령님의 교시를 배반해나섰는가며 책상을 쳤습니다. 자강도중소형발전소건설의 중단으로 자기는 불구자가 된것밖에 없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장군님의 구상에 의해 중소형발전소건설이 다시 시작되자 자기의 인생이 새롭게 부활된다고 기뻐하면서 희생적으로 일한 동무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숙연한 표정에 잠겨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오늘같이 기쁜날 좋은 동무와 만나서 정말 반갑소. 그런데 이밤중에 저 험한 산에는 왜 올라갔댔소?》

《장군님, 저 대웅산에는 우리 건설대 대장의 묘가 있습니다.》

그이께서는 어떤 사연이 있기에 림준이가 야밤중에 저 험한 산마루에 있는 친구의 묘로 찾아갔는지 궁금한 생각이 드시여 그를 긴장히 지켜 보시였다.

《전 옛 전우와 이 행복한 밤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싶었습니다.》

림준은 1960년대에 어버이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자강도중소형발전소 첫 건설대가 무어진 사실을 긍지높이 말씀드렸다.

일년 열두달 가정을 떠나 외진 산골에서 뜨내기생활을 하며 발전소를 건설한 첫 건설대원들! 그들은 누구도 그 고달픔을 입밖에 낸 사람이 없었다. 건설대 대장은 젊은 안해가 갓난 아들을 업고 도망치는바람에 외토리신세가 되였지만 자기의 개인적인 불행을 이겨내며 변심없이 묵묵히 일했다. 그후 건설대가 해산되자 건설대원들은 일점혈육도 없이 화병으로 세상을 떠난 그를 저 대웅산의 철탑밑에 묻어주었다.

《전 오늘밤 그 불행하게 일생을 마친 건설대장의 묘에 술을 붓고 장군님께서 찾아오신 불밝은 강계시를 바라보면서 〈건설대장! 장군님의 은덕으로 우리 자강땅에 중소형발전소들이 다시 일떠서고 온 강계시에 저렇게 불야경이 펼쳐졌는데 왜 가만히 누워있소? 눈을 뜨오. 눈을 뜨란 말이요!〉하고 애타게 부르짖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왜 건설대장은 이날을 보지 못하고 그렇게도 일찌기 갔는지 그 애석한 생각에 가슴속이 갈기갈기 찢어지는듯 했습니다.》

림준의 절절한 말에 그이께서도 눈시울이 젖어들어 말없이 서계시였다. 자기 일신의 어떤 안락도 바람이 없이 오로지 수령님의 교시관철을 위해 헌신한 건설대 대장이 자강도의 중소형발전소건설이 중단된 괴로움을 안고 몸부림치다가 저 바람세찬 산등성이에 누워있다니 마음속이 쓸쓸해나시였다.

《참말로 아까운 동무를 잃었소… 그래 그 건설대장의 아들은 어데 있는지 찾아봤습니까?》

김정일동지께서 안색을 흐리며 그렇게 물어보시자 갑자기 흑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림준의 뒤에 짓수굿이 머리를 떨군채 서있던 청년이 나직이 어깨를 들먹이고있었다.

《장군님, 이 허명철동무가 우리 건설대 대장의 아들입니다.》

그이께서는 청년을 의아히 바라보시였다.

《안변청년발전소건설장에서 군사복무를 했다는 돌격대 중대장동무가 아니요?》

태혁이도 깜짝 놀라며 허명철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장군님, 등잔밑이 어둡다고 전 이 명철동무와 한공장에서 일하며 여태껏 우리 건설대 대장의 아들인줄을 몰랐습니다. 얼마전 근 30년만에 우리 공장정문에서 건설대 대장의 안해였던 녀성과 우연히 만났는데 천만뜻밖에도 명철동무가 자기 어머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순간 전 네가 우리 건설대 대장의 아들이구나 하는 생각에 눈앞이 콱 흐려졌으나 차마 그 말을 할수 없었습니다. 그에게 훌륭한 아버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해주지 못하는 저의 마음은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오늘 이 명철동무가 장군님을 만나뵈웠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건설대 대장에 대한 의리를 저버릴수 없어 〈명철이, 너의 친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였는지 아는가, 어버이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이 자강땅의 중소형발전소건설을 위해 투쟁한 첫 건설자였다! 넌 그 훌륭한 아버지처럼 일생을 참답게 살아야 한다〉고 말해줬습니다. 명철이는 지금껏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고 살아온 일이 분하여 땅바닥에 쓰러져 서럽게 울었습니다. 우린 그 길로 저 대웅산으로 올라갔댔습니다. 장군님, 오늘은 중소형발전소건설에 한생을 바친 우리 건설대 대장의 일생소원이 성취된 날이자 그가 잃었던 아들을 되찾은 기쁜 날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지난 시기 우리 나라 중소형발전소건설력사가 겪어온 진통과 함께 기구한 운명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 대웅산에 묻힌 건설대 대장이며 림준, 명철의 눈물겨운 생활에 가슴이 쓰려나시였다. 하지만 이 밤 강계시의 어둠을 몰아내는 찬연한 불빛들로 하여 자신의 그 마음속 아픔까지도 말끔히 가셔지는 기쁨을 느끼시다가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물어보시였다.

《동문 제대군인이라는데 장가는 갔소?》

《아직 안갔습니다.》

《애인도 없소?》

림준이가 대답을 못하는 청년을 곁눈질해보았다.

《북천3호발전소의 처녀중대 중대장과 약속이 돼있었는데… 건설장에서 희생됐습니다.》

림준의 눈에 뿌연 물기가 핑 감돌았다.

《장군님께서 아끼시는 기능공을 잃어선 안된다며…》

《…》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안색을 흐리시며 말씀이 없으시였다.

옆에 섰던 태혁이가 청년을 측은히 여겨 《명철이, 오늘 밤은 우리 집에 가서 나와 함께 자자구.》라고 말하자 갑자기 명철은 차렷자세로 기운차게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그렇지만 전 돌격대숙소에 가서 아버지처럼 목침을 베고 코를 드렁드렁 골며 자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도 청년을 대견히 바라보시였다.

얼마후 그이의 승용차가 강계시의 불밝은 거리를 누비면서 《렬차숙소》에 이르렀을 때는 밤 9시였다. 강계에 도착한 이른 아침부터 옹근 하루동안 한순간의 휴식도 없이 현지지도를 하고 또다시 찾아오신데가 《렬차숙소》이다보니 태혁은 너무도 송구스러워 홈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는 어느새 렬차에 오르신 그이의 부르심소리를 듣고서야 혼자 생각에서 깨여나 급히 뛰여갔다.

《뭘하오? 어서 차에 오르오!》

 

4

(1)

 

그이의 손길에 이끌려 렬차에 오른 태혁은 문켠에 어리둥절히 서있었다.

뜻밖에도 안해가 《렬차숙소》에 와있다가 《장군님!》하며 그이의 앞으로 달려왔다. 근 십년만에 장군님을 만나뵙는 안해 신숙경은 너무 반가와 축축히 젖어버린 눈굽을 연송 손수건으로 꽁꽁 눌러대며 갑자기 차례진 행복을 어떻게 감당할지 몰라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밝은 미소를 띄우시고 숙경에게 정답게 물으시였다.

《이전에 나한테 코스모스를 꺾어주면서 곧장 들국화라고 우기던 땅고집쟁이 현이는 왜 보이지 않습니까?》

한가정의 부모된 다심한 심정으로 그이께서는 현이가 빠진 일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보시였다. 한없이 소탈하고 인정겨운 그이의 물음에 어느새 어려움을 잊어버린 신숙경은 상냥히 웃으면서 대답올렸다.

《장군님, 현인 기계공장에 다니는데 밤일을 나갔습니다. 무슨 애가 그렇게도 철딱서니 없는지 장군님께서 자기네 공장에도 어련히 오시겠는데 같은 값이면 씽씽 돌아가는 기대앞에서 떳떳이 만나뵙겠답니다.》

숙경의 응석기가 풍기는 말에 그이께서는 즐겁게 웃으시였다.

《현이의 마음이 기특하오. 아이때의 옹고집쟁이성미도 여전하구. 참, 현인 어려서 예술체조에 취미가 있다고 했는데 왜 로동생활을 합니까?》

《저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그만치 아이를 셋씩이나 길렀지만 알다가도 모를게 그애의 마음입니다. 예술체조교원도 늘쌍 현이가 몸매도 곱고 전망성이 있다고 칭찬하길래 우리 집안에도 예술인이 한명 생기나부다했는데 글쎄… 여기 자강도에 와서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로동현장에로 진출한다질 않겠습니까.》

안해는 처음엔 세대주가 자기 몰래 딸의 마음을 돌려놨는지, 아니면 로동현장에 눈이 맞는 총각이 있는지 싱숭생숭하여 딸의 눈치만 봤다는것, 그러던중 기계공장에 취직하여 여라문날 출근한 딸이 이 세상에서 로동생활이 제일이라며 환성을 올리는 바람에 깜짝 놀란 이야기를 장황히 늘어놓았다. 저 사람이 언제 저런 수다쟁이가 됐는가? 그 지루한 력설에 진땀이 솟아난 태혁이 얼굴을 찌프려보이는데도 안해의 류창한 말은 도무지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장군님께서 조금도 탓하는 기색이 없이 머리를 끄덕여 긍정도 해주시고 호탕한 웃음도 터뜨리면서 함께 기뻐해주시니 고무풍선마냥 기분이 둥 떠있는것만 같았다. 마치 오래간만에 찾아온 친정아버지에게 집안의 대소사를 말짱 털어놓는 딸처럼 안해는 줄창 말보따리를 헤쳐놓으면서 생글생글 눈웃음을 지었다. 한동안 숙경이와 이야기를 나누시느라 시간가는줄 모르시던 그이께서는 태혁동무가 건강이 좋지 못한데 자강도의 어려운 조건을 이겨내며 많은 일을 했다고 과분한 치하의 말씀을 하시였다.

《장군님, 전 장군님말씀대로 한것밖에 없습니다.》

《아니, 다른 사람이였다면 감당하지 못했을텐데 동문 해냈소. 수령님께서 생전에 여러차례 가르치셨지만 간부가 모든것을 결정하오. 한날한시에 받은 과업도 그 집행에서는 차이가 많아. 혁명성이 강한 일군은 어떤 어려운 조건에서도 받은 과업을 제때에 어김없이 집행하지만 그렇지 못한 일군은 팔짱만 끼고 앉아서 빈 말공부질이나 한단 말이요.》

김정일동지께서는 자강도가 몇달어간에 놀랍게 변모된것은 일군들이 어려울 때 앞채를 메고 이신작칙을 하며 솔선 모범을 보였기때문이라면서 시종 기쁨의 미소를 지으시였다. 오늘과 같이 어려운 때에 하늘소처럼 뻗치고 우만 쳐다보면서 조건타발이나 해서는 놈들의 경제봉쇄를 뚫고나가지 못한다, 지금이야말로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혁명화된 일군, 실천가형의 일군이 요구되는데 태혁이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며 기뻐하시였다. 한 가정의 식솔들과 마주 앉아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시면서도 그이의 뇌리에서는 어느 한순간도 조선혁명에 대한 사색이 떠나지 않고있었다.

차창밖에서는 북방땅의 사나운 눈보라가 우우 괴성을 지르며 뿌연 눈가루를 날려도 렬차숙소의 밤은 뜨거운 열기를 안고 깊어가고있었다.

《오늘부터는 현이의 어머니도 이 렬차에서 잠을 자고 나와 함께 현지지도의 길도 같이 다닙시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너무도 기뻐서 어쩔바를 몰라 하는 그들을 미리 정해주신 렬차칸으로 가볍게 떠미시였다.

태혁은 눈앞의 일이 얼른 믿어지지 않아서 발길을 떼지 못했다. 그이께서 렬차집무실쪽으로 가신후에도 그는 여전히 한자리에 굳어져있었다. 옆으로 다가온 일군이 조용히 귀띔해서야 겨우 알은체를 하며 자리를 떴다. 그 일군이 친절히 안내해주는 렬차칸에 들어서니 차창을 향해 돌아선 안해가 두손으로 얼굴을 싸쥔채 나직이 흐느끼고있었다. 둘 다 앉을념을 못했다. 하루종일 오금에 가래톳이 서게 쉼없이 그이를 따라 다닌 태혁은 그냥 꿋꿋이 서있었다.

어느덧 새날이 휘붐히 밝아오는 어뜩새벽이였다. 지난 밤도 《렬차숙소》에서 늦도록 집무를 보시고 홈에 내리신 김정일동지께서는 한순간 환희로 하여 얼굴이 밝아지시였다.

바깥은 온통 흰눈세계였다.

밤새 소복이 내린 역구내의 숫눈을 밟으며 홀로 조용히 산책을 하시던 그이께서는 어느새 먼발치에 나와있는 태혁을 알아보고 발길을 멈추시였다.

《오늘은 눈도 내렸는데 렬차로 행군을 합시다.》

《예, 여기서 30분이면 성간에 도착합니다.》

《그럼 성간으로 가면서 넉근히 아침식사를 할수 있겠구만. 떠납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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