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회)
12
(2)
림준의 심각한 말에 태혁은 전적으로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림준동무가 옳게 말했소. 발전기들을 다시 해체하기요. 백번 뜯었다 맞추는 한이 있어도
그날 태혁은 자기 사무실로 돌아와 전화기옆에 노상 붙어있다싶이 했다.
강계시와 성간군발전소들과 장강군에 새로 건설한 4개의 발전소들에서 성과적으로 시운전을 끝낸 반가운 소식들이 련이어 날아왔다. 태혁의 책상우에 놓여있는 전화기는 잠시도 조용할 사이 없이 연방 찌릉찌릉 울렸다. 그 모든 발전소들에 찾아가보자면 승용차로 아무리 바쁘게 돌아쳐도 옹근 이틀은 걸려야 한다. 태혁은 장강2호발전기때문에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장관우와 도발전소지휘부 책임자를 현장으로 떠나보내면서 조업식이 끝나는 즉시 도안의 지방산업공장들과 주민지역들에 일제히 전기를 보장해주라고 지시하였다. 오늘밤 사람들은 그 밝은 전등불빛아래서 온밤 잠들지 못하고 명절날처럼 법석 떠들어댈것이다. 태혁은 흥분된 심정으로 방안을 오락가락 했다. 단 하나 문제로 되고있는것은 장강2호발전소!… 이제 남은 7일!… 과연 이 짧은 기일안에 발전기의 결함을 퇴치해낼수 있을것인가? 자기의 마음이 이러한데 장강군당책임비서 김충모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이틀이 지난날 아침 책상우의 전화기가 뜨르릉 요란히 울리는 소리를 듣고 얼른 수화기를 집어든 태혁의 가슴은 세차게 높뛰였다.
《도오당… 책임비서도옹지!》
그 무슨 바람이 새는것 같은 쐑- 소리가 수화기의 진동판을 꽝꽝 두드려대면서 울려왔다. 분명 장강군당책임비서 김충모였다. 그의 막혔던 목이 열렸는가? 그렇지 않으면 누가 이렇게 끙끙 갑자르면서 말할 사람이 없었다.
《군당책임비서동무요? 무슨 일때문인지 어서 말하오!》
《돼앴습니다. 서엉공입니다.!》
태혁은 수화기를 놓기 바쁘게 밖으로 뛰여나가 승용차를 타고 장강을 향해 떠났다. 너무도 흥분한 그는 연신 차창밖을 내다보며 운전사에게 좀 더 속력을 내라고 독촉했다. 태혁이가 무섭게 때려모는 바람에 불과 15분도 못되여 장강군에 도착한 운전사는 장강2호발전소의 언제우로 그냥 차를 냅다 몰아 발전기실로 내려가는 층계의 입구에 멈춰세웠다.
승용차의 문을 쾅 세차게 후려닫고 발전기실로 뛰여내려간 태혁은 고르로운 동음을 울리며 돌아가는 300kw발전기앞으로 다가섰다. 완전한 성공이였다! 태혁은 그제야 등뒤에 서있는 사람들을 돌아다보았다. 근 한달동안 말썽이 많은 발전기와 씨름질하며 밤을 새운 그들의 얼굴은 검댕이칠을 한것처럼 새까매서 누가 누구인지 분간해볼수가 없었다.
《수고했소! 무슨 요술을 써서 이렇게 만들었소.》
《아무리 역사질해야 그식이 장식이여서 기계공장의 저 〈강계싸움대장〉령감을 데려다가 한번 봐달라고 했지요.》
림준이가 장강군당책임비서옆에 서있는 최덕삼로인을 곁눈질하며 벙실벙실 웃었다.
《덕삼아바인 한시간동안이나 아무 말없이 발전기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뻐금뻐금 담배질만 하다가 글쎄… 박달나무로 메달을 만들어 맞추었는데 기딱막히게 됐습니다. 처음엔 박달나무메달을 만들겠다니 이 령감이 무슨 도끼목수같은 소리를 하는가, 발전기를 달구지쯤으로 우습게 본다며 코웃음을 쳤는데 그게 만점짜리 명처방이였습니다. 쇠붙이와는 달리 목메달은 윤활유를 흡수하면서 발전기축을 돌려주기때문에 밖으로 새여나오는 기름이 전혀 없습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목메달! 얼마나 희귀한 착상인가? 이전에 자강도 중소형발전소의 첫 건설대원이였고 조국해방전쟁때 달구지바퀴로 선반을
돌리며 포탄을 깎아
《덕삼아바이, 이 목메달의 수명이 얼마나 됩니까?》
태혁의 물음에 덕삼로인이 빙긋이 웃었다.
《책임비서동지, 쇠붙이보다 오래가면 갔지 못하지 않을거우다.》
《그렇단 말이지요? 이건 정말 세계발명품전시회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걸작이요.
태혁은 흥분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옆의 시커멓게 기름묻은 받침목우에 걸터앉았다. 얼핏 보기에 그 무슨 상념속에 깊이 잠겨버리는 사람
같았으나 그의 머리속에는 그 순간
김충모가 오늘은 이 발전소주변에 새로 지은 살림집들에 이사를 한 경사로운 날인데
장강2호발전소건설도 완공했겠다, 태혁은 김충모의 말에 선선히 응하며 《나혼자 볼게 있소? 다른 동무들도 함께 가서 집구경을
합시다.》하고 발전기실을 나섰다. 새집들이를 한 55호동살림집마을은 명절기분에 휩싸여 설레이고있었다. 태혁이가 잠시 발길을 멈추고 여기에
어떤 사람들이 들었는가고 묻자 김충모는 주택이 너무도 현란하여 군의 간부들이 나누어가질것이라는 뛰뛰한 소문이 돌았는데 본래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을 위주로 하여 알짜 《평백성》들이 들었다고 자랑삼아 말하였다. 이제
《이건 뭐요?》
《제에가 오늘은 우리 장강군의 명절이라고 하아지… 않습니까. 너무 딱딱하게 거어… 절하지 마십시오. 하안잔씩 마시구 장강군의 시원한 농마국수나 드읍시다요.》
태혁은 그만 말문이 막혀 허허 웃고말았다.
《됐소. 됐소. 헌데 동문 어떻게 그 정도의 얼치기 말이라도 할수 있게 됐소?》
김충모는 장강2호발전기 조립작업이 성공한 순간 너무도 기뻐서 도당에 알리려고 수화기를 들었는데 갑자기 말이 나가더라며 유쾌히 웃었다. 그가 쐑쐑거리며 설명하는동안 잠자코 있던 태혁은 안주를 차려들고 올라온 안주인에게 미안하게 됐다고 량해를 구하자 녀인이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도당책임비서동지, 오늘 같은 날이 아니면 언제 우리 집으로 오시겠습니까. 그리고 이건 군당책임비서동지 집에서 차려온 음식이랍니다.》
《저어… 도옹무가?》
충모가 녀인에게 눈을 찔 흘겨보이며 헛기침을 했다.
태혁은 군당책임비서가 차린 음식이라니 마음을 놓으며 모두들 상옆에 가까이 다가앉으라고 했다. 그런데 상우에 놓은 술잔이라는게 보통 대짜가 아니였다.
《가만, 이거 무슨 술잔이 이렇소? 사발들이를 할 작정이요?》
충모는 우리가 장겨울 이놈의 소주를 마시며 얼음물속에서 발전소언제를 쌓은 사람들이 아닌가고 했다.
《여보, 얼음물속에 뛰여들 땐 뛰여들 때구 이거야 너무하지 않소?》
그 말에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졌을 때 충모가 돌아가며 한잔씩 술을 부었다. 오늘 좌석에서 자기는 어디까지나 손님대접이 기본이라며 제앞의 술잔에는 절반밖에 붓지 않았다. 태혁은 선주후면이라는데 국수를 들기전에 어서 잔을 쭉 내라는 충모의 권에 못 이겨 한잔 마셨다. 그런데 그 한잔 술때문에 이날 톡톡히 봉변을 당하였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옆집아주머니가 자기 집엔 왜 들리지 않고 그냥 돌아가는가, 도당책임비서가 이렇게 낯가림을 할줄 몰랐다며 징징 우는 소리를 하는 바람에 거기 가서도 어쩔수 없이 또 한잔 마셨다.
새 마을 녀인들이 어찌도 성화를 먹이며 달라붙는지 그러루하게 네댓집에 끌려다니며 술대접을 받고 급해맞아 뺑소니를 치던 태혁은 어느새 거나하게 취해서 따라오는 충모를 돌아다보며 《여보, 군당책임비서라는 사람이 대낮에 비틀거리니 어디 됐소? 어서 집에 가서 좀 눕소.》라고 타일렀다. 충모는 그만 허허 웃으며 오늘같이 기쁜 날에 자기집이 아니라 장강군사람들의 피땀이 스며있는 저 발전소언제우에 가서 눕겠다고 했다. 조금후 태혁이가 승용차를 타고 강계로 떠나며 돌아다보니 아닌게아니라 장강2호발전소 언제우에는 김충모가 네활개를 펴고 번듯이 누워있었다.
제 7 장
1
한밤중.
평양ㅡ강계행 특별렬차가 어둠을 뚫고 전속력으로 달리고있다.
준엄하고도 시련에 찬 조선혁명의 앞길에 새로운 전환기를 열어놓게 될
아직은 이 땅의 붕괴를 노리는 제국주의반동세력의 준동이 좌절되지 않고 전쟁의 피해상마냥 고립압살과 경제봉쇄의 흔적들이 처처에 널려있는 간고한 시기이다.
대소한을 앞둔 새해 정초에는 성, 중앙기관 일군들도 자강도로 출장을 다니지 않는다. 밤이면 장자강의 얼음장이 터지는 소리만이 텅 빈 강계려관방의 창문들을 두드려댈뿐이다. 하지만 이 사나운 겨울, 지금의 최대갈수기에 가야 자강도로동계급이 피땀을 흘리면서 건설한 중소형발전소들이 어떻게 은을 내는지 정확히 알수 있다.
붕ㅡ
특별렬차의 기적소리가 자강땅의 언 대기를 가르며 은은히 울려퍼졌다.
차창밖으로 고산지방의 간이역들이 언뜩언뜩 흘러가고 레루의 이음짬을 지나는 무쇠바퀴의 음향이 도간도간 가락맞게 집무실안의 정적을
흔들었다. 수행성원들이 깊이 잠든 그 순간에도 심원한 사색에 잠겨 자강땅을 그려보시던
밖에서는 의외에도 흰눈이 펑펑 내리고있었다. 갓난아이 주먹만큼한 눈송이들은 밤바람이 불어칠 때마다 차창에 매달리듯 섬돌아치다가 엇비스듬히 흩날려 땅에 소리없이 떨어지군 했다. 톱날모양의 까마득히 치솟은 산악들과 계곡, 여기저기 산자드락에 오붓이 자리잡은 림산마을의 뾰족지붕들도 눈안개속에 묻히여 휘뿌옇게 안겨왔다.
아, 포근한 흰눈세계!… 어찌보면 그것이 북방땅의 천리길을 밤도와 찾아가시는 이 밤의 길조처럼 생각되시여
《태혁이!》
이미 눈은 멎은지 이슥했다.
태혁의 털모자와 외투우에는 흰눈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다정한 눈길로 그 외투의 새하얀 눈을 이윽히 지켜보시던
《역에 나온지 오래구만.》
그의 두눈에 뜨거운 눈물이 듬뿍 고이였다.
《앉소. 이 자강도가 어떤 땅이요? 동무들은 조국이 류례없이 간고한 시련을 겪고있을 때 적들의 악랄한 경제봉쇄와 맞서 싸우며 우리 인민의 강대한 힘을 세상에 시위하지 않았소. 나는 고난의 행군시기 나의 인생에서 가장 가슴아픈 일들을 수없이 당하며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자강도로동계급의 영웅적인 투쟁이 있었기에 언제나 마음이 든든했소.》
태혁의 옆자리에 나란히 앉으신
《자강도로동계급이 큰일을 했소. 정말 수고했소!》
《저희들은
《왜 한 일이 없겠소. 동무들이 고생을 했지.》
《니탄떡을 먹고 심장이 든든해졌다?》
《집안이 흥하면 병도 떨어지는 법이요!》
태혁이도
《동무가 제기한대로 다 보겠습니다. 자강도로동계급이 어떤 굶주림과 희생을 치르며 일떠세운 창조물들이요. 있는그대로 봅시다. 그게 진짜요.》
태혁은 자기의 소망이 이루어진 크나큰 기쁨에 휩싸여
《그런데 난 이틀밖에 시간이 없소.》
태혁은 산골길이 험한데다가 길이 온통 대소한의 강추위에 꽝꽝 얼어붙어 보통 미끄럽지 않다고 말씀드렸다.
《길이 험하면 뭐라오. 이틀이면 좀 긴장할수 있지만 난 신들메를 단단히 조이고왔소. 우리 인민의 강행군이 아직도 계속되고있지 않소. 내 걱정을 말고 곧 떠납시다.》
《예?!》
태혁은 또 한번 애끓는 눈매로
2
(1)
승용차의 꽁무니에서 눈안개가 뽀얗게 타래쳐올랐다.
방금전 《ㄸ》공장 로동계급이 새로 북천강좌안에 건설한 띄우개식발전소를 돌아보신
도로도 겨우 우마차들이 어길정도로 비좁다. 하지만 이 고장사람들이 하도 알뜰히 닥달질하여 시내의 아스팔트길 찜쪄먹게 반드러웠다. 그런데
이날 뜻하지 않은 일로 분초를 쪼개가며 현지지도의 길을 다그쳐가시던
미끄러지듯 달리던 승용차는 속력을 늦추지 않을수 없었다.
태혁이가 안절부절 못하며 당황히 말씀올렸다.
태혁은 이제라도
고산지방의 생활에 단련된 녀인들은 추위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명랑하게 웃어대기만 했다.
바늘방석에 앉은 사람처럼 안절부절 못하는 태혁의 잔등을 적시며 진땀이 끈적끈적 솟아올랐다. 거름짐을 진 사람들사이로 조심조심 차를 몰아가는 운전사도 그와 다를바없는 조바심에 잠겨 난처한 기색을 띠고 안타깝게 말했다.
《뭐가 야단이란 말이요. 난 요즘 길에 나서면 가끔 장사를 다니는 녀인들이 눈에 뜨이군 하여 마음이 무거웠는데 보시오. 이 자강땅사람들은 엄동설한에 거름짐을 지고 저렇게 뛰여다닙니다. 얼마나 좋은 인민이요. 자강도인민들이 지난해의 어려운 투쟁을 통하여 확실히 억세여졌다는것이 알립니다. 어떻소. 동무들은 이 북방땅에 벌써 봄이 찾아오는것 같지 않소?》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