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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을 헤아리시고

 

(아, 어머니!)

오향문은 어머니없이 자란탓에 항상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어머니의 사랑을 단 한번만이라도 받는것이 평생소원이였다.

이런 오향문이 가장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받게 되였으니 그 사랑을 주신분은 바로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1981년 6월 10일이였다.

이날 오향문은 뜻밖에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부르신다는 꿈같은 소식을 접하게 되였다.

오향문은 승용차에 올랐으나 높뛰는 심장을 진정할수 없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나라의 크고 많은 중대사로 중요직책에 있는 일군들을 만나주시자고 하여도 시간이 모자라실텐데 자기같은 평범한 배우를 불러주시였으니 정말 너무도 뜻밖이였다.

아직 남조선에 그냥 있었더라면 사람값에는커녕 길가의 조약돌신세가 되였을 자기를, 배우생활을 오래했다고는 하지만 우리 예술계의 큰 재목감도 못되는 자기를 불러주시니 어찌 높뛰는 심장을 진정시킬수 있었겠는가.

그는 눈앞에 서려지는 뿌연 물안개로 하여 차창밖으로 흘러가는것을 아무것도 가려볼수 없었다.

승용차는 미끄러지듯 달리더니 어느덧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계시는 곳에 도착하였다.

오향문은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안내하는 일군을 따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계시는 방으로 조용히 들어섰다.

그런데 방에 들어서는 첫 순간부터 오향문은 뜻밖의 충격을 받지 않을수 없었다. 자기의 맏딸 오미란이 한발 먼저 와서 경애하는 장군님께 인사를 올리고있었던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가. 나와 딸을 이렇게 불러주시다니…)

자기 한사람이 부르심을 받은것만도 그런데 한집안에서 두사람씩이나 이런 영광을 받아안게 되였으니 너무도 꿈같은 일이여서 오향문은 그만 경애하는 장군님께 인사를 올릴 생각도 잊고 어리둥절해 서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들부녀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면서 그동안 영화를 만드느라고 수고했다고, 건강은 어떤가고 정답게 물어주시였다. 마음속으로 흠모하여 마지 않던 어버이장군님을 몸가까이에서 뵙는것만도 분에 넘친 일인데 이처럼 혈육의 정을 부어주시니 그들은 너무도 감격에 겨워 대답도 변변히 올리지 못하고 그냥 눈물만 흘리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흥분된 그들의 심정을 헤아리시고 진정하라고 거듭 이르시다가 그래도 진정 못하자 조용히 방을 나서시였다.

그들부녀는 그냥 자리에 앉아있을수 없었다. 그처럼 바쁜 시간을 내시여 아버지와 딸을 함께 불러주시였지만 걷잡지 못하는 흥분으로 하여 장군님께서 방을 나서시게 하였으니 세상에 그런 죄스러움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들은 자신을 다잡으며 급히 방을 나섰다.

그런데 이 어인 일인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그들이 진정하길 기다리시느라고 복도를 조용히 거닐고계시는것이 아닌가.

장군님께서는 민망함과 송구스러움으로 몸둘바를 몰라하는 그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시며 좀더 앉아있지 왜 벌써 나왔는가고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오향문에게 딸을 잘 두었다고, 영화에 처음 출연하는데 연기를 아주 잘한다고, 딸을 훌륭한 배우가 되도록 아버지가 잘 키워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그의 딸에게도 아버지처럼 꼭 인민배우가 되라고 고무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들부녀를 미덥게 바라보시며 동무들은 당을 따라 영원히 변치 말고 한길을 가야 한다고, 아버지도 딸도 대를 이어 수령님을 잘 모셔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장군님앞에서 주책없이 행동하여서는 안되겠다고 강심을 먹었으나 분에 넘친 그 말씀을 받아안게 되자 그들부녀는 자신을 더이상 걷잡지 못하고 또다시 목메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그들이 흥분하여 너무 울기만 하자 더 하려던 말씀을 그만두시고 집에 돌아가 쉬면서 마음을 푹 가라앉히라고 이르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오향문에게 돌려주시는 사랑은 끝없이 이어졌다.

오향문이 생일 일흔돐을 맞게 되는 해인 1991년 2월 17일이였다.

이날 오향문을 비롯하여 문학예술부문에서 공로있는 일군들을 불러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래간만이라고, 반가운 동무들, 보고싶은 동무들이 왔다고 하시며 자신께서 문학예술사업을 지도하시던 때를 감회깊이 회고하시다가 이 자리에 모인 동무들은 당을 받들어 충실히 일해온 영원히 잊을수 없는 나의 동지들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당을 받들어 충실히 일해온 영원히 잊을수 없는 나의 동지 이 고귀한 칭호를 받아안는 순간 오향문의 심장은 쿵쿵 높뛰였다.

장내를 일별하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향문을 가까이 부르시고 건강상태와 나이를 물어보시다가 올해가 생일 70돐이 된다는것을 아시고 오향문동무의 70돐생일은 자신께서 직접 책임지고 본때있게 차려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바로 이렇게 되여 오향문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은정어린 생일상을 받아안게 되였던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오향문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이뿐이 아니다.

뜻깊은 2월의 명절을 앞두고 온 나라가 명절분위기에 휩싸여있던 1992년 2월 중순 어느날이였다.

이날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예술인들과 함께 계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감격에 목메여 눈물만 흘리면서 인사말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오향문의 손을 꼭 잡아주시며 동무들이 보고싶어 찾았다고, 오늘은 식사나 같이 하면서 동무들과 함께 지내자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그들모두를 식탁으로 이끄시였다.

이리하여 오향문은 경애하는 장군님을 모시고 단란한 가정적분위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차린것은 별로 없지만 마음껏 들라고 하시면서 손수 음식도 권하시였다.

오향문은 어려움도 잊고 그이앞에서 음식을 맛나게 들었다.

이윽고 식사가 끝나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향문의 건강상태에 대하여 알아보시다가 자신께서 오늘 자동차를 주겠다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오향문은 펄쩍 놀랐다. 사업부담이 큰 간부도 아니고 한갖 배우에 불과한 자기에게 승용차라니…

그가 너무도 놀라와 할 말을 찾지 못하고있는데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건강하여 오래오래 앉아있어야 한다고, 자동차를 타고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받으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오향문은 불시에 목이 꽉 메여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조국을 위한 성전에 몸바쳐 위훈을 세운것도 아니고 이름난 발명을 한 과학자도 아닌데… 지난날 생존을 위하여 예술계에 발을 들여놓았던 제가 일을 했으면 얼마나 했겠습니까. 장군님!)

해방전 호구지책으로 서울과 철원사이를 메주밟듯 하며 행상을 하던 10대의 어린 소년, 고달픈 행상길에 맥이 진하여 눈무지에 빠진채 의식을 잃어 생을 마칠번 한 소년, 그 불우한 어제날의 소년인 자기가 지금은 이렇듯 영광의 단상에 오른것이다. 그는 쏟아져나오는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

오향문을 따뜻이 바라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여기에 온 동무들은 자기 부문에서 오래동안 일을 잘하였다고, 앞으로도 자기 사업을 잘하리라 믿는다고 하시고는 잠시 사이를 두셨다가 자신께서는 오래동안 예술활동을 하다가 나이가 많아 집에 들어간 사람들과 공로있는 사람들을 한번 만나보자고 생각하고있는데 빠진 사람이 없는지 모르겠다고 수첩을 드시고 한사람한사람 이름을 나직이 뇌이시였다.

이날 행복의 무아경속에 잠긴 오향문은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알지 못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헤여지기에 앞서 석별의 정을 금치 못해 하는 그들에게 일들을 잘하여야 하겠습니다, 내가 동무들을 끝까지 돌보아주겠습니다라는 은정넘친 말씀도 해주시였다.

고목에도 꽃을 피우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그 뜨거운 사랑은 그후 세월이 갈수록 더욱 열렬하고 다심하였다.

1994년 1월말 어느날 오향문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에 의하여 마련된 집중검진을 받게 되였다.

생각할수록 고마움만 가슴에 가득차올랐다.

병원에 입원하던 날, 그는 때이르게 활짝 핀 상두대우의 철쭉꽃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철쭉꽃은 그에게 류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꽃이였다. 오향문에게 있어서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를 련상시키는 사연깊은 꽃이였다.

소담하게 피여난 철쭉꽃을 바라보느라니 5살 잡히던 해 봄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봉분을 찾아갔을 때 그곳에 피여있던 철쭉꽃이 떠오르는것이였다.

입원실창가에 피여있는 철쭉꽃을 보는 오향문의 눈에서는 소리없이 눈물이 흘러내리였다.

(아, 어머니의 젖조차 변변히 먹어보지 못한 내가 그 봉창을 하자고 이런 위대한 어머니의 품에 안겼던가?)

그후 오향문은 해마다 꼭꼭 입원치료를 받았다.

1998년 1월 2일 경애하는 장군님을 또다시 만나뵙게 된 오향문은 그이께 삼가 인사를 올리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정말 보고싶었다고 몇번이나 말씀하시면서 그의 건강을 다정히 물어주시였다.

오향문은 장군님께서 깊이 관심하시며 배려해주시여 이제는 병이 다 나았다고 말씀올렸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올해 나이가 77살이면 아직 일없다고, 건강해서 한 15년은 더 일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오향문동무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때문에 자주 부릅니다. 오향문동무를 비롯한 오랜 세대들은 수십년세월 당을 받들어 변심없이 일해왔습니다.》

그러시고는 일군들에게 오향문동무가 지금까지 많은 외국영화를 번역록음했는데 대사록음에서는 그를 따를 배우가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년로보장을 받고 집에 들어가있던 자기를 다시 나와서 일할수 있도록 재생의 기쁨을 안겨주시는 그이께 오향문은 《장군님, 저는 지금 주역은 못해도 단역은 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저를 록음에 꼭 참가시켜주십시오. 이제는 제 병이 다 나았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장군님께서는 동무의 심정은 알만 하다고, 그러나 올해 상반년까지는 휴식하면서 몸조리를 더 한 다음 출연하는것이 좋겠다고 다정히 이르시였다.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가는 그 은정에 목이 메여 그는 저도 모르게 격정의 눈물을 쏟고야말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격정에 흐느껴우는 오향문을 보시며 아무쪼록 건강하여 인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자고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그후에도 장군님께서는 그의 건강이 걱정되시여 보약도 보내주시고 관계부문 일군들을 만나시여서는 그가 건강하도록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이런 각별한 사랑속에 살았기에 오향문은 늘 마음속으로 시 《어머니》를 즐겨 읊었으며 경애하는 장군님앞에서도 이 시를 읊어드리였다.

 

내 이제는

다 자란 아이들을 거느리고

어느덧 귀밑머리 희여졌건만

지금도 아이적 목소리로 때없이 찾는

어머니, 어머니가 내게 있어라

 

기쁠 때도 어머니

괴로울 때도 어머니

반기여도 꾸짖어도 달려가 안기며

천백가지 소원을 다 아뢰고

잊을번 한 잘못까지 다 말하는

이 어머니 없이 나는 못살아

 

아, 나의 생명의 시작도 끝도

그 품에만 있는 조선로동당이여

하늘가에 흩어지고 땅에 묻혔다가도

나는 다시 그대 품에 돌아올 그대의 아들!

그대 정겨운 시선, 살뜰한 손길에

몸을 맡기고

나는 영원히 아이적 목소리로 부르고

부르리라-

어머니! 어머니없이 나는 못살아!

 

그 사랑이 힘이 되고 불사약이 되여 오향문은 비록 고령의 몸이였으나 청춘의 패기와 활력에 넘쳐 일하고 또 일하였다.

일상생활에서는 그처럼 선한 사람, 이제는 70도 훨씬 지난 로인이 일단 마이크만 잡으면 어디서 그런 힘이 솟는지 젊은이들도 무색할 정도로 불같은 열정을 폭발시키군 하였다.

그가 예술창조를 하던 나날에 생겨난 하나의 일화가 있다.

어느해 명절날에 있은 일이다.

모든 가정들이 다 그러하듯이 그날 오향문의 가정도 명절분위기로 흥성거렸다. 아들, 딸 4형제를 키워 시집장가보낸 뒤라 적적하던 집안에 손자, 손녀들까지 다 모이고보니 집안은 여느때없이 활기를 띠였던것이다.

그러나 오향문은 집안의 이 세계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듯 자기 방에서 열심히 대본련습에 빠져있었다.

아들, 딸, 사위, 손자, 손녀들이 오향문에게 차례로 인사를 하였으나 그는 머리만 끄덕일뿐이였다.

늘 그런 아버지를 보는데 습관된 자식들은 아버지일에 방해하지 말자고 하면서 다른 방으로 가서 명절을 즐겁게 쇠고 돌아갔다.

그런데 일은 저녁식사시간에 생겼다.

상을 물리기 바쁘게 담배를 꺼내 물던 오향문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안해에게 이렇게 물었다.

《여보, 오늘은 명절인데 자식들은 왜 오지 않소?》

그 소리에 안해가 펄쩍 놀라며 따지고 들었다.

《아니, 이 령감이. 그래 딸, 사위, 손자들의 인사까지 다 받구두 무슨 잠꼬대같은 소리요?》

안해의 말에 오향문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그제서야 생각이 났던지 무릎을 철썩 치며 껄껄 웃었다.

이렇듯 오향문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과 은정에 보답할 마음을 안고 불타는 열정을 바쳤다.

하기에 언젠가 우리 나라를 방문하였던 이전 쏘련의 유명한 녀류영화연출가인 따찌야나 리오즈노바는 오향문에 대해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나는 쏘련의 찌호노브를 세계적인 배우로 인정하고있었다. 그러나 조선에 와서 생각을 달리하였다. 조선의 영화인들이 해설한 〈17일동안에 있은 일〉은 우리가 이룩한 영화의 형상수준을 훨씬 초월한 영화이다.

그중에서도 슈틀리쯔역을 수행한 배우는 정말 재능있는 배우이다. 나는 여러 나라의 번역배우들을 대상해왔지만 이렇듯 세계적인 배우의 수준을 릉가하여 그의 연기를 원숙하게, 풍만하게, 재치있게 돋구어낸 그런 번역배우는 보지 못하였다. 그는 당당히 세계적인 화술배우라고 말할수 있다.》

아마도 그 녀류영화연출가가 오향문이 어떻게 되여 성공적인 명배우로 자라날수 있었는지, 그 바탕에 깔린 령도자의 세심한 지도와 한없는 믿음과 사랑, 그에 보답하려는 전사의 불같은 마음을 알았더라면 더욱 놀랐을것이다.

오향문은 2000년에 들어서면서 병세가 또다시 악화되여 병석에 눕지 않으면 안되였다.

자기의 생이 마지막단계에 이르렀음을 직감한 오향문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병에 포로되지 말고 남은 생을 보람있게 마치자.)

그는 자기의 병상태에 대하여 내비치지 않았다. 고열이 나고 숨이 차서 말을 할수 없으면 그는 몰래 약을 먹고 암실에 들어가 록음을 보장하군 하였다. 그리고 밤에는 또 밤대로 꼬박 밝히면서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이것은 그가 운명하기 사흘전까지 하루도 어김없이 집행한 일과였다.

오향문이 운명하던 날 사람들은 그가 늘 소중히 품고 다니던 수첩에서 그의 마음속진정을 토로한 이런 글을 발견하였다.

(나는 세상에 태여났지만 어머니를 모르고 자랐다.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다심한 어머니심정으로 나를 품에 안아 세상이 아는 인민배우로 키워주시였다.

이 은정, 이 사랑을 한순간이라도 잊는다면 나는 배은망덕한 인간으로 될것이다.

육체는 병들지언정 장군님 받드는 마음은 조금도 병들지 말아야 한다.

한생 장군님 사랑안고 순간의 쉼도 없이 오직 앞으로만 나아가리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그처럼 아끼고 사랑하시던 오향문은 이처럼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참된 삶을 빛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향문을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하시고 그의 아들딸들을 모두 아버지의 대를 이어 예술인으로 키우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저 남녘땅에서 불우하게 시작된 오향문의 생이 오늘은 세계적인 화술배우로서의 값높은 한생으로 되였다.

그의 한생은 사람들에게 운명을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은혜로운 품이 있어야 희망도 꽃피울수 있고 그토록 환희롭고 행복한 생활을 누릴수 있다는 귀중한 진리를 새겨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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