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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말, 1970년대 초 우리 나라에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영화혁명에 뒤이어 가극과 연극, 음악, 무용 등 문학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일대 혁명이 일어나고있었다.

이에 따라 예술인들앞에는 그 어느때보다도 시대의 사명감을 더 깊이 자각하고 예술적기량을 끊임없이 높여 새롭고 특색있는 명작들을 창작하여야 할 임무가 절박하게 나서고있었다.

오향문의 번민은 남달리 컸다. 한것은 그가 연극계에서 이렇다하게 자기의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고있었기때문이였다.

연극배우라고 하면 수백수천명의 관중을 직접 대상하여야 하는것만큼 성량이 풍부하고 음역이 넓은 소리를 가져야 한다는것이 예술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런데 연극배우로서 오향문의 소리는 천성적으로 연약하였다. 연극계에서는 그가 배우로서 성공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나 없었다.

오향문도 자기의 이런 약점을 잘 알고있었고 얼마 못 가서 자기가 무대를 떠나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감에 사로잡히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소년시절부터 품어온 꿈을 버려야 하는가?

바로 그러한 때인 1971년 11월 어느날 오향문은 뜻밖에도 귀가 번쩍 트이는 소식을 전해듣게 되였다. 자기가 번역영화화술배우로 소환되였다는것이였다.

오향문은 처음에 자기의 귀를 의심하였다. 언제 한번 자신이 번역영화배우로 될수 있다고 생각해본적이 없었기때문이다. 하지만 무작정 가슴이 부풀어오르는것이였다. 무대와는 다른 분야이기에 혹 성공할수도 있지 않을가 하는 기대가 별안간 자기에게 예술가로서의 새로운 인생행로가 열린듯 한 벅찬 감정으로 솟구쳐올랐던것이다.

그러나 오향문은 그때 아직 그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자기의 화술에서 남다른 재능의 싹을 발견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자기를 번역영화화술배우로 불러주셨다는것을 알지 못했다.

이날 저녁 집에 돌아온 오향문은 안해와 자식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었다.

가정에서는 경사가 났다. 맏딸이 아버지의 손목을 꼭 부여잡고 《아버지, 꼭 성공을 바래요.》 하고 온 집안식구의 진정을 담아 이야기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기대와 믿음을 받아안은 오향문은 다음날부터 새 초소에서 영화번역사업에 달라붙었다.

하지만 외국영화번역사업은 오향문이나 번역영화창조집단에 있어서 너무나도 생소한 분야였다. 실천적인 경험은 물론이고 리론상으로도 준비되여있지 못하다보니 그저 대상이 외국영화라는데로부터 그 나라 말의 억양과 감정표현에 맞추어 해설하여야 한다는 일반적인 견해를 가지고있을뿐이였다.

그러던 1972년 1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번역영화에 대한 일가견을 가지고있지 못하고있는 배우들의 고충을 헤아리시고 번역영화를 만드는 목적이 다른 나라 영화를 우리 나라 사람들이 참고로 볼수 있게 하자는데 있는것만큼 번역영화를 만들 때 우리 말의 고유한 특성을 잘 살려야 하며 그러자면 배우들이 훌륭한 화술로 인물의 대사를 성격과 정황에 맞게 자연스럽고 실감이 나게 형상할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번역영화도 우리 인민들을 위한것이기때문에 마땅히 우리 인민들의 감정과 정서에 맞게 창조해야 한다는 이 심오한 진리를 깨닫는 순간 오향문은 자책감이 가슴을 파고들어 절로 머리가 숙어졌다.

그도 역시 예술창조사업에서 주체적립장이 투철하지 못한 탓에 번역영화해설에서 인물들의 대사를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감정과 생활성격을 살리는데 기본을 두고 형상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있었고 다른 나라 말의 표현방식을 체득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었다.

오향문은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분발하기 시작하였다. 워낙 정열적인 인간이였던 그는 대사 하나하나에 우리 말의 고유한 특성을 살리기 위해 자기의 온넋을 쏟아부었다. 그리하여 그가 대사형상을 한 영화들은 심의원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고 오향문자신도 이제는 형상이 그만하면 손색이 없다고 자부하게 되였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너무나도 짧은것이였다.

어느날 그가 형상한 번역영화를 보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번역록음을 잘하지 못했다고 하시면서 우리 말 대사와 화면에 나오는 인물의 입놀림이 맞지 않는것은 번역록음에서 배우들이 선행하여야 할 기본공정인 영화의 내용과 화면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록음하였기때문이라고, 화면에 나오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입놀림과 우리 말의 소리마디가 서로 다르기때문에 꼭 맞출수는 없지만 말의 시작과 끝은 맞추어야 한다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말씀을 받아안고서야 오향문은 번역영화에서는 어쩔수 없는것으로 치부해왔던 이 문제가 결코 스쳐보낼수 없는 배우의 자세와 립장에 관한 문제라는것을 절감하게 되였다.

그날 오향문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결함을 지적해주신 영화, 자기가 형상한 영화를 다시 보면서 예술앞에 무한히 성실한 사람만이 인민들의 사랑을 받는 예술인으로 될수 있다는 진리를 심장깊이 새겨안았다.

이렇듯 경애하는 장군님의 비범하고도 구체적인 지도를 받으며 그는 번역영화배우로서의 자질과 능력을 하나하나 갖추어나갔다.

우선 그는 번역해야 할 영화의 내용과 화면을 완전히 파악하기 위하여 모든 정력을 다 기울이였다. 내용과 화면을 완전히 파악한다는것은 영화에 흐르고있는 사상과 정서를 해당 인물들의 처지와 립장에서 충분히 감수하여 자기의것으로 만든다는것을 의미하며 모든 대사가 기초하고있는 심리와 환경속에 실지로 자기를 세울줄 알게 된다는것이라고 그는 판단하였다.

오향문은 번역되는 매 대사를 해당한 영화화면들과 자연스럽게 결합시키기 위해 하나의 영화도 수십번이나 보면서 배우의 감정과 행동, 억양, 표정 등을 완벽히 자기의것으로 만들어나갔다.

길을 걸으면서도, 자리에 누워서도 심지어 밥을 먹으면서도 그는 영화의 화면들을 그려보면서 그에 해당한 대사를 형상해보군 하였다. 그러다나니 동무들의 웃음을 자아낼 때도 있었고 어찌 보면 몽유병환자처럼 행동하여 안해를 걱정시키고 울린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그는 번역영화에 대한 자신심을 가지게 되였다.

이렇게 노력하는 과정에 오향문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지적해주신 우리 말 대사를 외국영화에 나오는 인물의 입놀림의 시작과 끝을 일치시키는것은 물론 인물의 심리와 개성적성격이 번역되는 대사에서 완전히 드러나도록 만들었다.

그는 이러한 성과가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가르치심에 의해 이룩되였음을 절감하였고 그것을 통해 문학과 예술의 영재이신 장군님의 통찰력에 깊은 감동을 금치 못하였다.

예술창조과정을 통하여 체험하고 깊이 느끼게 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비범한 예술적천품과 자질, 인민에 대한 끝없는 사랑은 오향문을 끝없이 매혹시켰고 그이를 직접 뵙고싶은 갈망으로 불타게 하였다.

그의 이 간절한 소원은 꿈만 같이 이루어졌다.

1972년 10월 어느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조선예술영화촬영소사업을 지도해주시기 위해 현지에 나오시였던것이다.

이날 오향문을 비롯한 번역영화화술배우들은 크나큰 흥분속에서 장군님을 모실 시각을 간절히 기다렸다.

마침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그들에게로 오시였다.

순간 온 청사가 떠날갈듯 만세의 환호성이 터져올랐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동무들이 정말 수고한다고 하시면서 열광적으로 환호를 올리는 배우들의 손을 일일이 다정하게 잡아주시였다.

오향문은 가슴속에 차오르는 격정을 애써 누르며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르고 또 우러렀다.

만사람의 심장을 틀어잡는 해빛같은 밝은 미소와 우렁우렁하신 음성, 젊으나젊으신 그이의 모습에 그는 순간에 매혹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영화부문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 하시고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그이께서는 번역영화에서는 배우들의 화술이 기본이라고 하시면서 최근에 나온 번역영화를 보면 녀자배우들보다 남자배우들이 대사형상을 잘하지 못한다고, 남자배우들의 화술수준을 높여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영화를 연구하고 인물들의 성격을 분석한 기초우에서 영화해설을 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너그럽게 하시는 말씀이였으나 오향문은 자책감에 휩싸이지 않을수 없었다.

사실 배우가 역인물의 사상감정을 자기의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성격을 진실하게 창조할수 없다는것은 너무나 자명한 리치이다.

그러나 그는 한해에도 많은 영화를 창조해야 할 방대한 형상과제를 안고있는 형편에서 매 역인물의 성격까지 파고들 시간이 없을뿐아니라 번역영화인 경우에는 그런 문제가 례외로 된다고 생각했었다.

정말로 듣던바대로 당대에 없는 위인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가슴을 칠수록 그는 참으로 위대한 령도자의 품에 안기였다는 무한한 긍지감과 자부심에 휩싸이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구체적인 지도를 받으며 오향문은 높은 예술적기량과 자질을 갖추어나갔다.

이 나날에 오향문은 쏘련텔레비죤예술영화 《17일동안에 있은 일》, 쏘련예술영화 《직무상의 련애》를 비롯하여 수많은 영화들을 번역록음하였다.

어느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쏘련텔레비죤예술영화 《17일동안에 있은 일》을 보시고 오향문동무가 배역록음을 아주 잘하였다고 하시면서 오향문동무가 대사록음을 한 영화라고 하면 안심하고 보게 된다고 분에 넘치는 평가의 말씀을 하시였다.

오향문은 이렇듯 예술이라는 고상하고 아름다운 세계에서 살고있었으나 그의 마음속에는 늘 그늘이 져있었다. 적들의 모략에 의하여 날조된 보도련맹가입자라는 오명을 해명할 길이 없었던것이다. 행여나 기다리며 세월을 보냈건만 자기를 보증해줄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더우기 자식들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는 떳떳하지 못한 과거경력으로 하여 커가는 마음속불안과 고통에 시달리지 않을수 없었다.

1983년 1월 어느날 오향문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소식에 접하게 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친히 딸 오미란(4. 25예술영화촬영소 배우)과 함께 그를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던것이다.

천만뜻밖의 소식에 접한 그는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 어려워 그저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안은채 한자리에 말뚝처럼 서있었다. 그러다가 일군의 재촉을 받고서야 그는 눈물을 삼키며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어느덧 승용차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렀다.

흥분과 긴장감으로 하여 오향문의 심장은 걷잡을수 없이 높뛰였다. 그는 가장 뜻깊은 자리에서 무슨 실수라도 할가보아 뒤설레이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그이께서 계시는 방으로 들어섰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여 기다렸다고 하시며 그들부녀의 손을 다정히 잡아 나란히 앉혀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윽한 눈길로 오향문에게 건강은 일없는가고 물으시고는 좌중을 둘러보시며 어느 한 예술영화의 제목을 드시고 이 동무가 그 영화에서 연기를 아주 잘하였는데 한 대목을 들어보는것이 어떤가고 하시였다.

장내는 삽시에 새로운 활기에 차넘치였다.

오향문은 잠시나마 그이를 즐겁게 해드릴수 있게 된것이 못내 기뻐 자리에서 성큼 일어났다.

그는 용기를 내여 그 영화의 한 대목을 일인이역으로 그대로 펼쳐놓았다.

연기 첫시작부터 웃음을 참지 못해 하시던 그이께서는 배우의 연기가 절정에 오르자 그만 손을 내저으시며 크게 웃으시였다.

일군들과 예술인들이 모두 배를 그러안고 웃으며 돌아갔다.

오향문자신도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치였다.

항상 바쁘신 시간을 보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잠시나마 이처럼 기쁜 시간을 보내시게 되니 참가자들은 모두 자기들의 소원이 풀리게 되여 기뻐서 어쩔줄 몰라했으며 어느새 어려움도 잊고 경애하는 장군님의 주위에 촘촘히 둘러섰다. 장내는 아버지앞에서 막 웃고 떠드는 아이들모습 그대로의 단란한 가정적분위기에 휩싸였다.

이윽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모임참가자들과 함께 아직 웃음을 거두지 못하고있던 오향문과 그의 딸을 정겹게 바라보시다가 동무가 그렇게 웃는것을 보니 내 마음이 놓인다고 말씀하시였다.

오향문은 그때에야 비로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자신의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혀주시기 위하여 일부러 그런 연기를 시키시였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순간 오향문의 웃음어린 눈가에는 뜨거운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오향문동무는 무슨 역을 맡기여도 잘한다고 하시면서 화술에서는 그를 따를 배우가 없다고, 피곤하고 마음이 무겁다가도 그가 번역해설을 한 영화를 보면 피곤이 풀리고 기분이 상쾌해진다고 말씀하시였다.

오향문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자기가 출연한 영화들이 장군님께 그처럼 큰 기쁨을 드렸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그였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흔히 배우의 연기형상에 대하여 말은 많이 하지만 화술에 대하여서는 별로 화제에 올리지 않는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화술배우들의 수고를 그토록 깊이 헤아리시고 높이 평가해주시는것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향문의 옆에 앉아있는 딸을 바라보시며 저 동무도 재간있는 배우라고 치하하시면서 딸의 예술적기량을 책임지고 높여주어 인민배우로 키워야 하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향문을 다정히 손잡아 자리에 앉히고나서 동무가 지난날의 경력때문에 고민하고있다는것이 사실인가고 조용히 물으시였다.

그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정중한 자세로 그이께 사실이라고 대답을 올리였다.

이렇게 되자 봄날처럼 화기에 넘치던 방안의 분위기가 점차 바뀌여졌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머리를 푹 떨어뜨리고 그린듯이 서있던 오향문은 마침내 《경애하는 장군님, 사실 저는 이런 영광의 자리에 참가할 자격이…》 하고는 다음말을 얼버무리고말았다.

그러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놈들은 본인도 모르게 그런 명단에 동무의 이름을 적어넣은것이다, 해방직후 남반부에서 원쑤놈들이 많은 사람들을 자기들이 조직한 어용단체들과 예술단체들에 묶어세운듯이 떠들어댔지만 사실 그 내막을 빠개보면 본인도 모르게 날조한것이였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 각성되지 못한 사람들을 강압적으로 끌어들인것이라고 말씀하시는것이였다.

모두가 더운 숨을 내쉬며 그이의 다음말씀을 기다렸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나는 당을 따라온 동무들을 믿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품을 찾아온 의용군전사들은 다 애국자들이고 혁명동지들입니다.》

그이께서는 장내가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말씀하시며 높이 드셨던 손을 힘있게 내리시였다.

오향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믿음어린 안색을 짓고계시는 장군님을 우러르며 그이의 존함을 목메여 부르고는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였다. 그는 자기가 얼마나 위대하고 따사로운 품에 안겨 행복한 삶을 누리고있는가를 심장으로 절감하고있었다.

오향문은 자기들의 정치적생명을 다 맡아 안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을 우러르며 영원히 그이만을 따를 심장의 맹세를 다지였다.

크나큰 정치적생명을 받아안은 오향문은 그 믿음과 사랑에 보답할 불같은 마음을 안고 예술창조의 길에서 자기의 재능과 열정을 다 바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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