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영생하는 작가의 삶

 

영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소원이다. 그래서 고대에짚트의 왕들은 피라미드를 일떠세우고 그안에 미이라로 들어앉아 영원히 노예들을 통치하려고 했고 거룩한 명사나 장군들은 기념비들에 자기의 찬란한 공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민의 기억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때라야 참다운 영생을 누린다고 말할수 있다. 왜냐하면 피라미드나 기념비들은 덧없는 세월의 풍파속에 닳아지기도 하고 지어는 이러저러한 원인으로 류실되기도 하지만 인간의 정신은 닳지도 류실되지도 않기때문이다. 더우기 인민의 대표자인 령도자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인간의 삶이야말로 진정한 영생인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조국과 우리 인민들의 추억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작가 조령출은 분명 력사의 행운아임이 틀림없다.

고령의 몸으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을 형상한 희곡 《념원》을 구상하던 그가 인생의 마지막문을 닫은것은 1993년이였다.

작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받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못내 애석해하시면서 해당 일군들에게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문학창작사 작가 조령출동무가 오늘 사망하였습니다.

그가 앓지 않았으면 좀더 살아있을수 있었겠는데 참 안되였습니다. 아까운 동무를 잃었습니다.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만나본것이 영화예술인들이 출연하는 경희극 〈한마음 한모습으로〉를 볼 때였습니다.

조령출동무의 사망에 대한 부고를 〈로동신문〉을 비롯한 중앙급신문들에 다 내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조령출의 령전에 자신의 명의로 된 화환을 보내도록 하고 작가가 조국과 인민앞에 세운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유해를 애국렬사릉에 안치하도록 크나큰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아마 세상을 떠난 고인이 변함없이 베풀어지는 그 어버이사랑을 알았더라면 감사의 눈물을 흘렸을것이다.

세월은 인간들의 가슴속에 쌓인 슬픔의 덩어리를 풀어주는 명약이다.

날과 달이 흐르자 친지들의 발길은 뜸해지고 자식들의 가슴에 들어찼던 슬픔도 차츰 걷히기 시작했다.

그러던 1995년 5월 24일이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작가 조령출에 대하여 회고하시면서 5대혁명가극을 만들때 조령출을 비롯한 여러 작가들이 기본축이 되여 가극대본을 잘 썼다고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은 모두 눈시울을 뜨겁게 적시였다. 사실 그때로 말하면 온 나라가 뜻밖에 어버이수령님을 잃고 계속되는 자연재해로 어려움을 겪고있던 시기였다. 이 시기 미제를 비롯한 제국주의자들은 전례없는 압력소동을 벌리면서 조선에서 사회주의붉은기가 내려지는것은 시간문제라고 떠들고있었다. 우리 인민앞에는 자주적인 근위병이 되느냐, 아니면 노예가 되느냐 하는 엄혹한 시련이 막아서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조국의 운명을 한몸에 안고 선군혁명령도의 길을 이어가고계시는 장군님께서 두해전에 사망한 작가를 잊지 않고 감회깊이 추억해주시였던것이다.

떠나간 전사를 잊지 못해하며 영생의 삶을 빛내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은 마를줄 모르는 샘처럼 끝이 없었다. 2009년 피바다가극단에서는 몇십년만에 가극 《홍루몽》을 다시 창조공연하게 되였다.

때는 이미 작가가 세상을 떠난지 16년이나 되는 해였다. 사람들은 가요 《조국보위의 노래》나 《압록강 2천리》를 들을 때에야 비로소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조령출에 대하여 문득 생각하군 했었다.

하지만 동지애의 화신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만은 늘 작가를 잊지 않으시였다.

어느날 《홍루몽》창조과정을 지도하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또다시 작가를 뜨겁게 회고하시면서 조령출선생은 확실히 대문호라고, 1960년대에 창작한 가극들의 대본은 거의다 그가 썼다고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새 세기에 재창조된 가극 《홍루몽》을 다시 보니 조령출선생이 생각난다고 하시며 그는 우리 사람들은 물론 중국사람들도 놀랄만치 각색을 잘하였다, 조령출선생이 대본과 가사를 참 잘 썼다, 그는 보기 드문 재사이며 훌륭한 작가이고 우리 민족의 자랑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보기 드문 재사, 훌륭한 작가, 민족의 자랑!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말씀은 살아있을 때에는 물론 세상을 떠나서도 그이의 품에 영원히 살아있는 작가에 대한 최대의 평가였다. 그렇다. 바로 그 위대한 사랑이 있었기에 조령출은 생전에 영광과 행복의 절정에서 인생말년까지 국보적가치가 있는 작품을 창작할수 있은것이 아닌가.

우리는 여기서 잠시 영생의 언덕에 서있는 조령출의 인간상을 더듬어보려고 한다.

조령출은 문학세계가 매우 폭넓고 다양한 작가였다.

아마 조령출처럼 창작의 령역이 넓은 작가는 드물것이다.

조령출은 조선의 근대, 현대시가문학에서 혁명적이고 민족적인 가사들을 많이 창작함으로써 자기의 지위를 뚜렷이 차지하고있는 재능있는 작가였다.

민족수난기가요가운데서 그가 창작한 가사가 근 절반에 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당시의 출판물자료를 보면 조령출은 박영호와 쌍벽을 이루는 공인된 가사작가였던것이다. 그가 창작한 다른 형태의 문학작품인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자기가 즐겨하고 정통한 가사문학과 밀접히 련관되여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하고있다.

《리순신장군》을 비롯한 여러편의 창극대본들과 《춘향전》 등 고전가극대본, 집체창조에 참가한 많은 혁명가극과 음악무용서사시 극대본들도 철저히 가사문학을 전제로 한 양식인것이다. 지어는 《심청전》처럼 자기의 창작생활에서 특이한 영화문학창작도 역시 일반영화들과 달리 노래를 기본형상수단으로 리용하였다.

조령출은 인간적으로 볼 때 고지식하고 결곡한 형의 인간이였다.

언제인가 조선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최현덕편)에서 박정희가 부른 노래 《락화류수》를 놓고 그는 속이 매우 언짢아하였다. 아무리 자기가 1930년대에 지은 가사라고 해도 민족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 《유신》독재자가 《락화류수》를 불렀다는것이 마음에 걸렸던것이다.

더우기 그때 일부 편협한 사람들은 민족수난기가요들을 부르지 못하게 하면서 마치도 노래에 문제가 있는듯이 여기고있었다.

며칠째 끙끙거리던 그는 영화문학창작사에 다니는 딸을 앉혀놓고 이렇게 말했다.

…해방전에 우리 나라에 《락화류수》라는 가사가 두개 있었다. 아마 그가 부른 노래는 다른 사람의 가사일것이다. 그러니 네가 잘 알아보고 가사를 바꾸도록 해라.

그러나 이미 예술영화가 세상에 알려진 뒤여서 그의 딸은 아버지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

그 일때문에 작가는 속을 태웠다.

그러나 작가의 심정을 알아준분이 계셨으니 그분은 바로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시기에 류행가로 부른 노래들은 민족의 귀중한 문학유산이므로 앞으로 계몽기가요로 부르게 하고 그가 쓴 가사들이 TV와 방송으로 널리 불리워지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던것이다. 그제서야 조령출의 가슴에 앙금처럼 남아있던 《락화류수》에 대한 서운함은 말끔히 풀렸다.

조령출은 무척 겸손한 사람이였다. 그는 해방전과 마찬가지로 해방후 발전하는 시대상에 맞는 수많은 명가사들을 창작한 작가였다.

《조국보위의 노래》(1950년), 《압록강 2천리》(1952년), 《건설의 노래》(1953년), 《만경대의 노래》(1962년), 《천년만년 수령님만 모시고 따르리》(1979년), 《어머니 우리 당이 바란다면》(1992년) …

그가 지은 노래들은 모두 어버이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의 높은 치하를 받은 시대의 명가사들이였다.

생활에서 가끔 보는 일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직위가 올라가거나 혹은 일정한 공적으로 하여 사람들의 이목이 자기에게 집중되면 어깨가 으쓱해서 제 자랑을 늘어놓군 한다.

그러나 그는 천성적이라고 할만치 겸손한 성미였고 언제 한번 자기 자랑을 할줄 몰랐다.

작가는 사람들의 초청을 받고 자주 결혼식장이나 들놀이에 참가하군 했다. 그때마다 그는 자신을 나타낸적 없었으며 오락회에서 지명되면 천천히 일어나 지정곡인 《아리랑》을 부르군 하였다.

사람들이 《선생님, 선생님이 직접 지은 노래를 불러주십시오.》 라고 청을 하면 그는 어줍은 미소로 거절하였다.

집에 들어와서도 자식들이 자기가 지은 노래를 부르면 칭찬을 해주지 않았다.

친지들과 가족들은 그에게 자신의 일생에 대한 책을 써보라고 권고하기도 하였다. 했으나 조령출은 눈을 감기 전까지 《우리 민족의 민요연구》 라는 제목의 도서집필에만 전념하였다. 뿐만아니라 력사의 이끼속에 묻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민요들을 발굴하고 그 예술성을 확증하는 사업에도 열정을 기울이였다.

조령출은 자식들에게 요구성이 높은 아버지였다.

그는 1993년에 어버이수령님께서 주신 교시를 언제나 잊지 않고있었다. 그때 수령님께서는 그가 읊어드린 헌시를 높이 평가해주시면서 조령출동무는 물론 그렇겠지만 자녀들을 잘 교양하여 우리 당을 대를 이어 영원히 받들어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는 늘 자식들에게 수령님의 그 말씀을 이야기해주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 충정을 다하도록 교양하였다.

그는 녀성에 대한 견해에서도 매우 고상하였다.

그것은 어머니에 대한 그의 효성이 류다른데서부터 잘 알수 있다.

어릴적부터 제 집을 떠나 이붓아버지의 손에서 눈치밥을 먹으며 공부한 그는 효도하지 못한 죄스러움을 안은채 어머니의 초상을 그려 자기의 책상우에 놓고 살았으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자기의 가사에 담군 하였다.

그러한 그였기에 어쩌다 자기 아들이 며느리에게 험한 일을 시키는것을 보아도 좋지 않게 생각하며 녀성들에게는 일을 시켜도 깨끗한 일만 시켜야 한다고 추궁하였다.

조령출은 나이를 묻는 녀성들에게 항상 열살을 내려 짚어주는 례절있는 남자였다.

하기에 그의 안해 김관보는 오랜 세월이 지났으나 민족가극 《춘향전》의 주제곡이 나오면 남편을 회상하면서 자식들에게 너의 아버지는 정말 사랑을 아는 남자였다, 련애편지도 잘 썼는데 언젠가는 결렬될번 한 친구의 사랑을 편지 한장으로 이어준적도 있다고 말하였다.

조령출의 한생을 더듬어보면서 우리가 생각하게 되는것은 그가 생전에 재능있는 작가로서 많은 공로를 세웠으며 사후에는 영생의 언덕에 올라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있는것이 결코 타고난 팔자가 아니라는것이다.

《집없는 천사》에도 있듯이 그는 비오고 흐린 하늘밑에서 어머니의 옛사랑이나 그리던 불우한 인간이였다. 그러한 그가 세상을 떠난지 수십년이 지난 오늘에도 영생의 언덕에 서있는것은 전적으로 경애하는 장군님의 따뜻한 은정때문인것이다. 고인도 그것을 잘 알고있었기에 림종의 순간까지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기 위해 그토록 애쓴것이 아니겠는가.

령도자와 인민의 기억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작가 조령출!

그는 참된 보금자리-공화국의 품속에서 빛나게 살아왔으며 생의 마무리를 아쉬움없이 한 성공한 인생의 주인공이며 세인이 부러워하는 행복자이다.

작가 조령출의 인생은 위대한 령도자의 품에 안길 때 그리고 위인들의 가르치심을 받으며 일할 때 영생의 삶을 누릴수 있다는 심오한 진리를 깨우쳐주고있다.

민족수난의 암담한 시기로부터 조국번영의 빛나는 시대에 이르는 기간 인민의 사랑을 받는 훌륭한 가사들을 수많이 창작한 작가 조령출은 민족의 귀중한 음악유산인 계몽기가요와 주체시대의 명곡들과 더불어 우리 인민들의 기억속에 영생의 모습으로 살아있다.

이전페지   다음페지

운명의 선택 1^bb1. 진리의 대지를 찾아 -작가 석윤기- 1) 《회고와 신념》의 세계 운명의 선택 1^bb1. 진리의 대지를 찾아 -작가 석윤기- 2) 병상을 박차고 창작의 활주로에로 운명의 선택 1^bb1. 진리의 대지를 찾아 -작가 석윤기- 3) 수령형상문학의 개척자로, 담당자로 운명의 선택 1^bb2. 《산제비》가 깃들인 곳 -시인 박세영- 1) 해방은 되였으나 운명의 선택 1^bb2. 《산제비》가 깃들인 곳 -시인 박세영- 2) 해볕에서 살리라 운명의 선택 1^bb2. 《산제비》가 깃들인 곳 -시인 박세영- 3) 태양의 빛발이 날개가 되여 운명의 선택 1^bb2. 《산제비》가 깃들인 곳 -시인 박세영- 4) 해볕 또 해볕에서 운명의 선택 1^bb2. 《산제비》가 깃들인 곳 -시인 박세영- 5) 영생의 언덕에 운명의 선택 1^bb3. 참된 력사를 찾아 아로새긴 삶의 자욱 -작가 박태원- 1) 《순수문학》의 상아탑에서 벗어나 운명의 선택 1^bb3. 참된 력사를 찾아 아로새긴 삶의 자욱 -작가 박태원- 2) 비상한 노력가 운명의 선택 1^bb3. 참된 력사를 찾아 아로새긴 삶의 자욱 -작가 박태원- 3) 고목에 핀 꽃 운명의 선택 1^bb4. 다재다능한 예술가 -화가, 영화연출가 강호- 1) 민족의 량심과 지조를 지켜 운명의 선택 1^bb4. 다재다능한 예술가 -화가, 영화연출가 강호- 2) 또다시 전선으로 운명의 선택 1^bb5. 그가 찾은 영생의 노래 -작가 조령출- 1) 《집없는 천사》의 노래 운명의 선택 1^bb5. 그가 찾은 영생의 노래 -작가 조령출- 2) 운명의 선택 운명의 선택 1^bb5. 그가 찾은 영생의 노래 -작가 조령출- 3) 공화국의 품속에서 부른 참된 삶의 노래 운명의 선택 1^bb5. 그가 찾은 영생의 노래 -작가 조령출- 4) 영생하는 작가의 삶 운명의 선택 1^bb6. 무대우에 찍혀진 운명의 자욱 -연극배우, 연출가 리단- 1) 무대에 운명을 걸고 운명의 선택 1^bb6. 무대우에 찍혀진 운명의 자욱 -연극배우, 연출가 리단- 2) 위대한 스승의 품속에서 운명의 선택 1^bb6. 무대우에 찍혀진 운명의 자욱 -연극배우, 연출가 리단- 3) 연극혁명의 불길속에 다시 태여난 인생 운명의 선택 1^bb6. 무대우에 찍혀진 운명의 자욱 -연극배우, 연출가 리단- 4) 어머니를 불러, 통일을 불러 운명의 선택 1^bb7. 인기있는 화술배우로 -영화배우 오향문- 1) 떠돌이생활에서 벗어나기까지 운명의 선택 1^bb7. 인기있는 화술배우로 -영화배우 오향문- 2) 생 명 운명의 선택 1^bb7. 인기있는 화술배우로 -영화배우 오향문- 3) 소망을 헤아리시고 운명의 선택 1^bb7. 인기있는 화술배우로 -영화배우 오향문- 4) 이어가는 참된 삶
←되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