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 회)

 

5

(2)

 

은희는 어쩐지 쓸쓸한 생각이 들어 언제밑에 가서 한참이나 나른히 등을 기대고 섰다가 등잔불빛이 반짝거리는 돌격대숙소를 향해 힘없이 걸어갔다.

래일 작업에서도 처녀중대 대원들은 본때를 보여야 한다. 발전소건설치고 언제의 마감막이를 위해 물길을 돌리는 가물막이공사만큼 어려운 공사가 없지 않는가. 은희는 가슴속에 처녀중대에 대한 사랑과 애착이 얼마나 깊이 자리잡고있는가를 가슴뿌듯이 느꼈다. 나날이 사람들속에서 인기가 높아가는 처녀중대와 함께 그들의 모습도 차츰 아름답게 달라져가고있었다. 은희는 어떻게 처녀들의 사기를 부쩍 돋궈주었으면 좋을지 몰라서 안타까왔다. 오락회를 열고 한번 법석 떠들어볼가? 하지만 그는 노래를 부르고싶은 마음이 없었다. 왜 이럴가? 혼자 그렇게 골몰하던 은희는 저녁에 명철이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때문일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직이 한숨을 쉬였다. 그의 머리속에는 며칠전 림준기사와 만났던 일이 다시금 되살아올랐다.

림준기사가 무엇때문에 명철동무의 아버지를 그렇게도 칭찬했을가? 명철은 그 말을 듣고 성이 나서 그럴수 없다고 큰소리를 치지 않았던가. 그래 림준기사가 나한테 거짓말이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 그는 절대로 아무 말이나 허투로 하는 사람이 아니였다. 림준기사는 분명 명철의 아버지를 념두에 두고 그렇게 말했었다. 그 아버지란 누구인가? 명철동무에게 또 다른 아버지가 있단 말인가! 생각만 해도 가슴이 후두두 떨리였다. 은희는 때마침 차거운 바람을 안고 돌격대숙소안으로 급히 뛰여들어온 처녀가 울상이 되여 새된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와뜰 놀랐다.

《중대장언니! 현장에서 사고가 났어요!》

《뭘?》

《언제휘틀조립을 하던 기능공아바이들이 물에 빠졌어요. 명철중대장동무랑 모두 사람을 건지려고 물에 뛰여들어 벅작 떠들어요.》

방안의 처녀들이 《어마나!》하고 확 풍겨 일어나며 은희를 지켜보았다.

은희는 갑자기 가슴이 활랑거려 말이 나가지 않았다. 지금까지 건설장의 기술적인 시공작업은 최덕삼, 강길봉아바이가 도맡아놓고 담당해왔다. 청년들이야 뚝심만 세지 셈판이 있는가. 이날도 날이 어두워질때까지 두 로인은 래일의 가물막이공사후에 진행하게 될 언제타입을 보장하려고 강추위속에서 늦도록 휘틀조립작업을 했는데 별안간 강길봉아바이가 비칠거리며 언제우에서 떨어졌다는것이다. 돌격대처녀의 말을 들어보면 분명 허탈증때문이였던것 같았다. 길봉로인을 붙잡다가 언제우에서 함께 떨어진 덕삼아바이도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는걸 봐선 사태가 여간 위급하지 않았다. 은희는 사태의 전말을 더 꼬치꼬치 캐여물을 경황이 없이 밖으로 와락 뛰쳐나갔다. 다른 처녀들도 몽땅 와르르 떨쳐나섰다. 종주먹을 쥐고 현장으로 뛰여가는 은희앞으로 웬 작달막한 녀인이 총알처럼 마주 달려왔다. 그의 앞을 막아선 은희가 어떻게 됐는가고 물었으나 녀인은 도무지 알아듣지 못할 울음섞인 소리를 내지르며 산기슭의 인가쪽으로 정신없이 달려갔다. 또 한번 가슴속이 섬찍해진 은희가 현장에 당도하자 여러 사람들이 와짝 끓어대며 《비켜라. 빨리 빨리!》하고 고함을 질렀다.

뒤이어 그의 옆으로 화물자동차가 배기가스를 내뿜으면서 바람처럼 휙 스쳐지났다. 상한 사람들을 싣고 병원으로 급히 내닫는 차였다. 순식간에 전조등불빛은 사라져버리고 어둠속에 몰켜선 사람들이 흥분하여 설치며 돌아갔다.

홈빡 물참봉이 된 명철이가 고개를 숙이고 추위에 우들우들 떨며 서있었다.

이마에 철썩 달라붙은 젖은 머리칼과 바지가랭이가 잠간사이 꾸득꾸득 얼어붙어 말도 변변히 못하는 명철의 옆으로 다가선 은희는 다급히 물었다.

《명철동무, 어떻게 됐어요?》

《길봉… 아바인 건져 병원에… 보냈소.》

명철이가 아래턱을 덜덜 떨며 무뚝뚝히 대답했다.

《덕삼아바인요?》

명철은 칼날처럼 번뜩이는 눈길을 강물우에 던졌다. 그의 두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펀들거리였다. 겨울밤의 검푸른 물결이 사납게 굼실대는 격류속에서 아직도 구제작업이 계속되고 강변에 모여선 아낙네들이 그냥 아우성을 질렀다.

《눈물이 나서 말 못하겠소. 난 강에 들어가 먼저 덕삼아바이를 찾아냈는데… 심하게 다친것 같았소. 날 겨우 알아보더니 빨리 길봉아바이부터 구원하라질 않겠소. 난 너무 엄한 요구였기에 어쩔수 없어 덕삼아바이 손을 놓구 한참이나 헤매다가 의식을 잃은 길봉로인을 건져냈소.》

《덕삼아바인?》

《저렇게 숱한 사람들이 들어가 찾지만.… 이젠 늦었소.》

《아니예요. 그럴수 없어요!》

은희는 강가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명철이가 뒤쫓아가서 금시 강물속에 뛰여들려는 그의 팔을 우악스레 움켜잡았다.

《은희, 죽지 못해 그래! 동문 저 얼음장 같은 물속에 들어가 1분도 못 견뎌!》

《놔요. 놓으라요!》

은희는 다시금 자기의 팔목을 후려잡는 명철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비켜요. 동문 장군님께서 희천공작기계공장 기능공이 희생됐다는 보고를 받고 자강땅에 찾아오셨던 일을 벌써 잊었어요? 우린 목숨을 바쳐서라도 덕삼아바이를 살려내야 한단 말예요.》

《은희!》

말문이 막혀버린 명철이가 은희를 와락 껴안았다. 은희는 그것이 자기들의 마지막포옹으로 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있었다. 명철의 살얼음이 얼어붙은 가슴에 얼굴을 꼭 눌러대고 가쁜 숨을 몰아쉬던 은희는 두손으로 그를 힘껏 떠밀쳐버리며 홱 돌아섰다. 갑자기 찬물속에 뛰여들면 심장이 멎어버릴수 있었으나 처녀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조금도 몰랐다. 어떤 일이 있어도 로기능공을 살려야 한다는 그 한 생각밖에 없었다. 사납게 굼실대는 강물우에 정신없이 연약한 몸을 내던지는 은희의 뒤로 명철이가 황급히 따라섰지만 그들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어둠이 뒤덮인 강물속에서 사람들이 와글와글 끓어대는데다 처녀돌격대원들까지 덮씌우는 바람에 대소동이 벌어졌다. 대부분 처녀들이 멋모르고 얼음물속에 덤벙덤벙 뛰여들었다가 숨넘어가는것처럼 아부재기를 쳤다. 사품치는 물속에서 맥을 추지 못하고 첨버덕거리는 처녀들을 보고 강녘에 몰켜섰던 아낙네들이 무리죽음이 나겠다며 한층 더 떠따 고았다.

사람을 살리라며 고래고래 웨쳐대는 소리, 가슴을 쥐여짜는 울음섞인 소리… 온 발전소건설장이 삽시에 수라장이 되고 한켠에서는 물속에 빠진 처녀들을 연방 끌어내며 욕을 퍼부어대는 소리가 귀청을 찢어댔지만 은희는 아무것도 가려듣지 못했다. 살가죽을 발가내는듯 한 차거운 강물속의 여기저기로 헤매면서 애타게 덕삼아바이를 불렀으나 온몸이 얼어들어 목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오한에 가슴이 컥 막히고 사지가 꽛꽛이 과다들기 시작했다. 나중엔 손발을 제대로 놀릴수 없었다.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왜 이럴가? 명철이가 그를 막아서며 《죽지 못해 그래!》 하고 감때사납게 웨쳐대던 모습이 얼핏 떠올랐다. 아니야. 난 죽지 않는다. 죽지 않아!… 맘속으로 그렇게 부르짖으면서도 은희는 어쩐지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눈앞이 캄캄해지며 울음이 터져나왔다. 자기의 뻣뻣해진 몸이 나무토막처럼 물우에 떴다 잠겼다 하며 어디론가 자꾸만 떠내려가는것을 안타깝게 느꼈다. 순간 은희는 그 무엇엔가 부딪치는 어렴풋한 감촉을 느끼고 손을 뻗쳐 필사적으로 휘여잡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사람이였다. 은희가 이발을 사려물고 다시금 정신을 가다듬은것은 그때였다. 덕삼아바이다. 덕삼아바이!… 마침내 로기능공을 찾아낸 은희는 《덕삼아바이!》하고 목멘 소리로 불렀다. 로기능공은 대답이 없었다. 그가 살아있는지 숨이 졌는지 알수 없었다.

은희는 울면서 자기의 작은 몸으로 로기능공을 강기슭으로 조금씩 떠밀기 시작했다. 아바이, 죽으면 안돼요… 그를 살리기전엔 죽어선 안된다. 처녀의 두눈에서 마구 쏟아져내리는 눈물이 강물에 씻겨갔다. 그러나 이미 힘이 빠져버릴대로 빠져버린 은희였다. 이젠 자기의 몸조차 가누기도 힘들었다. 기운이 진한 은희는 물밑으로 가라앉으며 몇번이나 차거운 물을 꿀꺽꿀꺽 삼켰다. 숨이 막혔다. 그는 가위눌린 사람처럼 악! 소리를 지르며 물우로 솟구쳐올라 로기능공을 다시금 떠밀었다. 이런 때 명철동무가 왔으면… 명철동문 어데 있을가? 은희는 자기가 너무도 시간을 끄는 일이 속상했다. 그후에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성미사나운 산골물에 밀리며 사선으로 겨우 강변에 가닿은 은희는 차츰 의식이 가물가물 흐려지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는 로기능공의 육중한 몸을 기슭으로 올리밀다가 다시금 까무라치면서 물속으로 미끄러져들어갔다. 그리고는 또다시 최후의 힘을 다 짜내여 로인을 가까스로 떠밀면서 덕삼아바이, 이러면 안돼요. 이러면… 올라가세요. 아바인 꼭 살아야 해요.… 하며 울었다. 은희는 그때에야 비로소 일생에 단 한번도 상상해본적 없는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더 이상 자신을 구원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무서웠다. 은희는 마지막으로 몸을 뒤채이며 어머니를 불렀으나 부질없는 일이라는것을 깨달았다. 죽음의 심연은 너무나도 일찌기 꽃다운 나이를 빼앗아갔다.

 

6

(1)

 

누가 누군지 분간해볼수 없는 어둠속에서 아낙네들이 검푸른 강물을 향해 팔을 내흔들며 사람을 살려달라고 저마끔 웨쳐대였다. 강변의 사위여가는 불무지옆에 주저앉아 《이 일을 어쩜 좋아요? 이 일을…》하며 가슴을 치는 녀인의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온통 혼잡판이 된 속에서 녀인들이 기계공장 계획과 부원이란 젊은이를 둘러싸고 저마끔 떠들어대였다.

《부원동무, 우리 공장의 강길봉기능공이 래일의 마감언제막이공사를 보장하려고 휘틀조립작업을 하다가 언제우에서 추락됐어요. 덕삼아바이는 그를 구원하려다가 떨어지구… 그런데 처녀돌격대원들이 두 로인을 구원하려고 물에 뛰여드는바람에 이 소동이 일어났수다. 오늘같이 추운 날에 체네들이 저 세찬 강물속에 들어가서 견뎌내는가요?》

녀인들은 그냥 겁에 질려 아우성을 내질렀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수? 길봉아바인 명철이가 건져 병원에 실어갔지만 아직도 저렇게 숱한 사람들이 강에 들어가 덕삼아바일 찾수다. 덕삼아바이를 구원하려고 물에 뛰여든 은희동무도 어떻게 됐는지 생사를 몰라서 모두들 저렇게 고아댄다우.》

금방 물속에 뛰여들었다가 끌리워나온 돌격대처녀들이 자기네 중대장을 살려달라고 울면서 발을 굴렀다.

《빌어먹을것들! 괜히 소란을 피우면서 애먹인다니까.》

한바탕 상스럽게 욕설을 퍼붓고난 계획과 부원이 첨벙 강물속에 뛰여들었다. 태혁은 그때에야 장관우와 함께 사고현장에 나타났다.

누군가 저쪽 강아래에서 사람을 업고 급히 걸어왔다.

《누구요?》

태혁은 다급히 물었다.

《덕삼아바이입니다. 은희동무가 구원했습니다. 위급합니다.》

《은흰 어디 있소?》

《책임비서동지, 은흰…》

청년이 덕삼아바이를 업은채 어깨를 들먹였다.

태혁은 심장이 떡 멎는것 같았다. 은희가 죽었는가? 은희!… 태혁은 돌멩이처럼 언 주먹으로 가슴노리를 탕 쳤다. 억이 막혀 말을 못했다. 그는 덕삼아바이를 빨리 병원으로 보내라고 손시늉하면서 장관우를 흘깃 돌아다보았다.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있는 장관우의 입에서 빨간 담배불찌가 강바람에 마구 휘날리였다. 그 담배불이 자기의 가슴을 지지는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다음순간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움직여오는 명철을 가려본 태혁은 청년을 향해 마주 달려갔다.

명철은 여전히 강기슭의 자갈판으로 은희를 안고 비칠거리며 걸어왔다. 그가 발을 옮겨짚을 때마다 은희의 한팔이 축 드리워 흔들거렸다. 이미 숨진 처녀였다.

《은희!》

명철은 그제야 태혁을 알아보고 울먹울먹 말했다.

《책임비서동지, 은흰 숨졌습니다. 좋은 동무였는데 죽었어요. 장군님께서 아끼시는 기능공을 구원하구…》

명철은 울고있었다. 태혁이도 눈앞이 콱 흐려지는것을 참으며 자기의 솜옷을 벗어 땅에 폈다.

이 연약한 처녀를 강물속에 들어가게 하다니?… 내가 한발 늦었다. 태혁은 은희를 안아 솜옷우에 눕히고 처녀의 언몸을 꽁꽁 감싸주었다.

등뒤에는 사색이 된 장관우며 금방 강변에서 떠들던 사람들, 처녀중대 대원들이 은희와의 영결을 슬퍼하며 침울히 서있었다. 태혁은 터져나오는 오열을 참으며 무릎을 꿇고앉아 처녀의 눈을 감겨주었다. 공장의 유능한 기능공과 기꺼이 생명을 바꾼 처녀… 너무도 아까운 처녀를 잃은 태혁의 가슴은 미여지는듯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은희의 아버지인 장관우도 그 누구도 눈물을 보이는 사람이 없다. 눈물을 흘리기에는 눈앞의 현실이 너무도 엄숙했다. 아직은 이보다 더 가슴아픈 일들을 참고 이겨내며 험난한 투쟁의 가시덤불길을 헤쳐가야 할 그들이였다.

태혁은 너무도 아까운 처녀를 잃고 가슴이 미여지는듯 하여 사고현장에서 그 사실을 직접 장군님께 보고드렸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한참이나 태혁의 말을 묵묵히 듣고나서 《처녀중대 중대장이 희생됐단 말이지…》라고 나직이 뇌이시였다.

《공장의 유능한 기능공인 최덕삼로인을 구원하고 자기의 꽃다운 청춘을 바쳤습니다.》

《처녀중대장의 나이가 몇살이요?》

《스물여섯입니다.》

《이름은?》

《장은희입니다. 도행정위원회 장관우부위원장의 딸입니다. 발전소건설의 초기에 직접 처녀중대조직을 발기했고 오늘까지 대원들을 쇠소리나게 키워온 처녀입니다. 아무리 힘겨워도 고난을 이겨내는 자강도처녀들답게 행진하며 노래도 씩씩하게 부르고 옷단장도 맵시나게 하도록 엄격하게 요구한 처녀중대장의 모습은 사람들의 심장을 울리고 힘과 용기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태혁의 량볼은 저도 모르게 축축히 젖어들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흐려진 음성으로 《장관우부위원장동문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나직이 물으시였다. 태혁은 목이 메여 겨우 대답올렸다.

《장군님, 여기에 있습니다.》

그이께서는 아무런 말씀도 못하시였다.

《부위원장동무가 딸을 잘 키웠소. 은희가 정말 용소. 부위원장동무를 잘 위로해주시오.… 처녀중대장의 장례는 어떻게 하자고 합니까?》

《건설장의 돌격대원들이 은희를 잃고 애석해하는데 그들을 전원 참가시키려 합니다.》

《아니 내 생각엔…》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생각에 잠기셨다가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기계공장종업원들과 강계시민들을 광범히 참가시키고 사람들의 추억속에 남도록 장례식을 의의있게 진행하는것이 좋겠습니다. 처녀중대장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말자는 연설도 하며 사람들을 더 억센 투쟁에로 불러일으킬수 있게 되여야 합니다.》

그러시고도 우리가 처녀중대장에게 무엇을 더해주었으면 좋겠는가고 하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흐린 음성으로 물으시였다.

《처녀중대장이 입당은 하였습니까?》

《아직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화선입당을 시켜줍시다. 요먼저 나에게 말한 강계시 500명 취주악대도 추도식에 동원시켜 〈적기가〉와 항일유격대추도곡을 불러주는것이 좋겠습니다. 전투장에서 장렬히 희생된 처녀중대장인데 붉은기폭으로 감싸주시오.》

《알겠습니다.… 장군님!》

태혁은 가까스로 대답올렸다. 희생된 한 평범한 처녀중대장에게 훨씬 더 아름답고 빛나는 삶을 안겨주시는 장군님의 한량없는 은정에 또 한번 목이 메여올랐다.

이튿날 아침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북천3호발전소건설장의 돌격대원들과 기계공장종업원들, 강계시민들이 은희의 장례식에 참가하였다. 2천여명의 사람들이 운집한 가운데 주병호지배인과 도청년동맹비서의 격동적인 연설이 있은 후 태혁이가 장군님께서 은희의 화선입당을 비준해주신 사실을 전하자 흐느낌소리들이 터져올랐다. 은희가 처녀중대장으로 일한기간 밤새워 수많은 어깨받치개도 만들고 딸의 례장감을 팔아 처녀들의 화장품도 사준 어머니가 딸을 대신하여 당증을 받아들자 군중들이 눈물을 흘리며 요란한 박수로 처녀중대장의 입당을 축하해주었다. 뒤이어 량옆에 숭엄히 늘어선 사람들사이로 붉은기폭에 휩싸인 은희의 령구가 북천강발전소옆의 바람세찬 산비탈을 향해 느릿느릿 올라갔다.

강계시 500명 취주악대가 뒤따르며 울려주는 《적기가》의 느린 곡조가 처녀중대장을 잃은 슬픔을 자아내여 손바닥으로 입을 꽉 틀어막고 눈물을 참는 사람들이 많았다.

은희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아 《어마나!…》하며 까무라칠것처럼 놀라는 녀인들도 있었다. 누군가는 정신없이 달려들어 《중대장언니, 날보구 소설책을 가져오라하고선 어디로 가요? 못 가요. 못 가. 언니야!》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평양에 갔다가 금방 돌아온 영심이였다. 은희의 령구를 메고 올라가던 행렬이 어쩔수 없이 멈춰섰다. 현이가 또다시 태혁의 품에 쓰러지며 《아버진 왜 은희를 살리지 못했어요. 왜 살리지 못했나 말이예요!》하고 종주먹으로 가슴팍을 마구 두드려대였다.

태혁은 난생처음 딸의 항변에 변명할 말이 없는 자신을 깨닫고 고통스런 얼굴로 머리우의 휘뿌연 공간을 쳐다보았다. 그의 마음처럼 막혀있는 암회색의 흐린 하늘을 헤가르며 흰 눈송이들이 성글게 푸실푸실 흩날리였다. 그는 숫눈이 깔리기 시작하는 산등성이로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면서 생각했다. 아니다. 아무리 이 아픔이 크고 가슴을 짓눌러도 나는 딸의 물음에 대답해야 한다. 슬픔이 슬픔으로 끝나지 않고 죽어서도 불사신의 넋으로 살아 이 고난에 찬 시기 수만사람들의 심장에 불길을 지펴주는 값높은 삶에 대해!… 얼마후 그는 돌격대원들이 눈덮인 산등성이의 묘혈속에 은희를 눕히자 처녀중대장과 마지막으로 헤여지기 앞서 잡관목이 우거진 둔덕진곳에 높이 올라섰다. 멀찌감치에 혼자 떨어져있는 장관우가 눈에 띄였다. 모두는 침묵을 지키고 태혁은 그 순간의 가장 적절한 말을 고르며 몇초동안 고개를 숙인채 묵묵히 서있었다.

《여러분, 우린 또 한명의 귀중한 동지를 잃었습니다. 아직은 인생의 머나먼 길을 걸어가야 할 애젊은 처녀의 심장이 고동을 멈췄소. 무엇때문에?… 무엇때문에 건설장의 처녀중대장이 아까운 청춘을 바쳤는가. 누구도 그가 이렇게 갑자기 우리곁을 떠나리라고 생각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이 길을 선택하고 너무도 짧게 일생을 마쳤습니다.》

태혁은 제 목소리 같지 않게 말하고 잠시 눈물을 삼키며 목안을 가다듬었다.

《왜냐하면 이 고난의 행군시기 자강도로동계급답게 량심적으로, 떳떳이 그리고 가장 값높이 자기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린 발전소건설만 해서는 자강도를 일쿼세우지 못합니다. 전기가 있어도 기술자, 기능공들이 없이는 공장을 다시 돌릴수 없기에 지난해 장군님께서 희천공작기계공장으로 찾아오셨는데… 은희가 장군님의 그 아픈 마음을 덜어드리기 위해 자기의 꽃다운 생명을 아낌없이 바쳤음을 우리모두 두고두고 자랑스럽게 추억합시다. 누구든지 그를 연약한 처녀로 보았던 사람이 있으면 그 생각도 잊어버리시오. 은희는 한 인간이 두 생애를 살아도 발휘할수 없는 고귀한 희생정신, 자강도사람들의 불사신의 넋을 우리의 심장속에 심어주고 최후를 마쳤소. 여러분, 적들의 악랄한 고립압살책동으로 조국이 시련을 겪는 이 엄혹한 시기에 죽음도 두려움없이 싸운 기특한 처녀, 발전소건설장의 처녀중대장이 이 자강땅의 불덩어리같은 렬녀였다는것을 잊지 말고 더 억세게 일떠섭시다!》

태혁은 긴말을 하지 않고 부르쥔 주먹을 높이 흔들며 둔덕우에서 내려섰다. 내가 왜 지금껏 이 갸륵하고도 아름다운 은희의 마음을 다 모르고있다가 이제야 알게 되는가? 생전에 은희와 자주 만나 그를 아껴주지 못하고 영결의 순간에야 그런 자신을 후회하게 되는 쓰라림이 한순간 태혁의 가슴을 허비였다. 평소엔 너무도 수수해보이다가 조국이 어려울 때면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며 자기의 존재를 뚜렷이 나타내는 사람들… 태혁은 눈앞의 두둑히 파헤쳐놓은 생흙을 한줌 움켜쥐고 꿇어앉아 묘혈속의 령구우에 조심히 뿌리였다. 때마침 취주악대의 장중한 추도곡이 울리자 여기저기에서 다시금 나직한 흐느낌소리가 터져나왔다. 한줄로 늘어서 손에 쥔 흙을 령구우에 떨어뜨리던 처녀중대원들은 《중대장언니!-》하고 나동그라지며 태질을 쳤다. 그 바람에 울음판이 벌어지자 처녀들을 한켠으로 밀어낸 허명철이가 감때사납게 삽질을 하며 무덤을 메우기 시작했다. 제 손으로 눈발이 흩날리는 산등성이에 애인을 묻는 청년의 가슴은 찢어지는듯 할것이지만 얼굴에서는 눈물 한방울 찾아볼수 없었다. 눈물은 도리여 그를 바라보는 태혁의 눈귀를 적시면서 축축히 미끄러져 내리였다.

은희의 장례가 끝나자 명철이네 중대원들은 그길로 발전소건설장을 향해 노도와 같이 달려내려갔다. 금방 눈물을 쏟던 처녀중대원들도 산에서 내려오자 여느때의 이채로운 모습대로 《유격대행진곡》을 부르며 건설장으로 씩씩하게 렬을 지어갔다. 중대장인 은희가 죽지 않고 여전히 대오의 앞장에서 걸어가는것처럼… 노래를 부르며 팔을 힘있게 내젖는 처녀들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좔좔 흘러내리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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