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 회)

 

4

(2)

 

은희는 아침식사를 마치자 부중대장을 불렀다.

《대렬을 집합시키라요.》

은희앞에서 돌아선 부중대장이 《중대 모엿!》하고 짤막히 소리쳤다.

돌격대숙소앞에 처녀중대원들이 4렬횡대로 정렬했다.

《이제부터 대렬점검을 하겠어요.》

은희는 대원들의 외모와 복장 정돈상태를 깐깐히 살펴보다가 한 처녀앞에서 멈춰섰다.

《미옥이, 세수를 했어?》

미옥은 샐쭉해서 은희를 쳐다봤다. 눈길이 곱지 않았다.

《왜 대답이 없어?》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미옥의 입술만 오물오물 했다.

《세수를 했는가고 묻는게 잘못됐어?》

은희는 또다시 얄팍한 입술을 오물거리는 미옥을 지켜보면서 생각했다. 가공직장의 날씬하게 생긴 쎄빠공, 미옥은 명절때면 맨 선참으로 직장예술선전대에 뽑히는 무용수이다. 그가 언제 건설장의 험한 일을 해봤는가. 오늘 아침 기상나팔소리가 울렸을 때에도 미옥은 제일 늦게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남들한테 짝지지 않으려고 아득바득 건설장으로 따라다니는데 중대장이 이렇게도 내 마음을 몰라줄수 있는가? 미옥은 그 일이 아니꼬와 새침해진게 분명했다. 은희는 그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지만 날카롭게 답새겨대였다.

《처녀가 세수도 하지 않고 부끄럽지 않아? 작업복과 신발은 그게 뭐야. 온통 흙투성이가 된대로이구. 이건 동무 한사람문제가 아니야. 동문 우리 처녀중대의 존엄을 깎아내려. 어디 망신스러워 보겠어? 당장 세수를 하고 작업복과 신발에 묻은 진흙도 닦고 와요. 그렇지 않으면 동문 우리 대오에 들어설 자격이 없어!》

얼굴이 창백하게 변한 미옥은 쓰러질것 같았다.

오늘은 은희의 요구도 여간 엄격하지 않았다. 고집스럽게 버티고 서있는 미옥이와 그를 매섭게 쏘아보는 은희… 처녀들은 숨을 죽이고 서있었다. 자존심이 상하여 입술을 감쳐문 미옥의 눈에서 눈물이 뚤렁뚤렁 떨어져내렸다. 그가 얼굴을 싸쥐고 돌아서 돌격대숙소쪽으로 달려가자 은희는 앙칼지게 말했다.

《또 세수를 하지 않은 동무들이 있으면 자발적으로 나가요.》

두명의 처녀들이 미옥을 따라갔다.

《한심하군요. 모두 헤쳐가 옷차림을 깨끗이 정돈하고 다시 모여요. 이대로는 건설장으로 나가지 못해요.》

처녀들이 후줄근히 얻어맞고 흩어져 간후였다.

부중대장이 은희앞으로 다가서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했다.

《은희, 정신있어. 너 어쩌자구 그러니. 지금이 세수를 하구 안하구를 따질 때야? 공사장에서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것만 해두 대단한 일인데 중대앞에서 꼭 망신을 줘야겠어? 개별적으로도 얼마든지 비판할수 있잖아. 그 앤 지난 밤에도 앓음소리를 쳤어. 오죽 힘들면 그랬겠어. 부모도 없이 불쌍하게 자란 앤데… 은흰 너무해. 도대체 너에게 인정이 있는가 말이야.》

은희는 부중대장이 직방 들이대는 말에 가슴이 아팠다. 내가 정말 몰인정한 녀자란 말인가? 이럴 때 자기를 도와나서야 할 부중대장이 도리여 뺨을 치니 안타까웠다.

《그만해! 지금은 어루만질 때가 아니야. 모두들 장군님의 명령을 받들고 결사전을 하고있지 않아. 세수도 하지 않는 처녀들이 무슨 일을 할것 같애. 그걸 허용하면 래일은 열명, 스무명의 미옥이가 나오고 처녀중대는 패잔병부대처럼 되고 말어. 넌 부중대장이라면서 가슴아프지도 않아? 왜 말이 없어? 똑바로 알아둬. 우리 처녀중대의 면모는 정신상태의 반영이야. 우리 강계처녀들은 고난을 극복하면서 훨씬 더 억세여지고 얼굴도 마음도 무한히 아름다와져야 해! 그것을 떠난 그 어떤 인정과 동지애도 우리에게는 있을수가 없어.》

부중대장은 고개를 떨구고 말없이 서있었다.

《은희, 내가 잘못했어.》

《됐어, 저것 봐. 미옥이가 세수를 하고 오누나. 얼마나 예뻐? 이젠 모이자꾸나.》

부중대장이 처녀들을 다시 정렬시키자 은희는 대렬앞으로 나섰다.

《동무들, 우리 처녀중대는 무어진 초기와는 달리 탕개가 풀리고 차츰 면모가 흐려져가요. 이전에 꼴꼴하던 처녀들이 세수도 안하고 건설장으로 나가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처녀중대가 쟁개비처럼 끓다가 만다고 비난하지 않겠나 말이예요. 아마 적들이 우리를 보면 강계처녀들이 야만인들처럼 돼간다고 웃어댈거예요. 난 그놈들의 더러운 상통이 떠올라서 밤에도 잠이 안와요. 우리 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고난을 뚫고나가자요.》

바로 그날 저녁 장군님께서 자강도인민들에게 보내주신 식량이 건설장에 도착하여 처녀중대원들은 환성을 질렀다.

처녀들은 그이의 사랑, 은정이 너무도 고마와서 울었다.

《중대장언니, 우리때문에 속탔지?》하고 은희의 가슴에 얼굴을 묻어버리는 처녀도 있었다.

《됐어. 우리 이제부터 진짜 처녀중대의 본때를 보이자꾸나.》

은희는 너무도 기뻐 새처럼 훨훨 날듯 싶었다.

그들의 일터에서는 웃음소리, 노래소리가 울리고 모두들 용기백배하여 일했다. 부쩍 사기가 난 은희는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 처녀중대의 막내로 사랑받는 영심이를 불러앉히고 흥분해서 물었다.

《영심아, 사촌오빠가 작가라지?》

《녜.》

《그럼 됐어. 래일 당장 평양의 오빠한테 가서 소설책을 두배낭 꾹 눌러지고와야겠어.》

《어마나. 소설책을 두배낭씩이나?》

영심은 오목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지금 우린 전기사정때문에 텔레비죤도 못 보지 않니? 오빠한테 우리 처녀들의 이름으로 부탁한다고 말하렴. 처녀들이 일만 하니 쇠꼬챙이처럼 감정이 메말라간다면서… 오빤 작가니까 우리의 안타까운 심정을 리해해줄거야. 앞으로 톡톡히 신세갚음은 하자꾸나.》

《그런데 욕하지 않을가요. 이 바쁜 때에 일을 하지 않구 소설책을 구하러다니며 빈둥거린다구.》

《널 보구 그런 걱정하래?》

은희는 일이 될 때라 마침 오후에 평양으로 가는 차편이 생겨 영심이를 따라 보낸후 즉시에 집으로 달려가 어머니와 마주 앉아서 응석이라도 부리듯 말했다.

《어머니, 나 딱한 사정이 있어 왔어요.》

《뭔데?》

《우리 집에 례장감이 있지요?》

《그건 갑자기 왜 묻니?》

《우리 처녀중대원들이 화장품이 없어 그래요. 큰맘 먹구 팔자요.》

어머니는 눈이 뎅그래서 펄쩍 뛰였다.

《너 정신이 쑥 빠졌구나. 그게 어떻게 갖춘 례장감인지 알기나 하구 그래? 아버지가 평양에 출장갔다가 사온거야. 괜히 아버지가 알면 큰일 날 소린 하지도 말아라.》

은희는 어머니가 딱 잘라도 찰거마리처럼 달라붙어서 졸랐다.

《어머니, 좀 도와줘요.》

《안된다. 너도 이젠 스물여섯이야. 당장 시집갈 처녀가 례장감을 팔자니… 너 보통 환장을 하지 않았구나.》

은희는 어머니를 어떻게 설복시킬지 몰라 하다가 볼이 부어 삑 돌아앉았다.

《어머니, 전 그 동무하구두 다 토론했어요.》

《그 동무란건 누구가?》

《누구겠어요. 어머니의 사위감이지요. 명철동문 저의 손을 덥석 잡고 〈은희, 정말 좋은 생각을 했어. 동무의 어머니도 전적으로 찬성할거요. 우리 고난의 행군이 끝나면 온 건설장사람들의 축복속에 돌격대제복을 입고 결혼식을 하자구.〉라고 했어요. 그런데 제가 빈손으로 돌아가면 뭐라겠어요.》

은희가 제법 그럴듯 하게 꾸며낸 말에 어머니의 마음이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근 반시간동안이나 그렇게 어머니를 꾸준히 구슬려대면서 마련한 돈으로 은희는 화장품을 한보따리 사들고 날개가 돋힌듯이 돌격대숙소를 향해 달려왔다.

저녁에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처녀들은 은희가 골고루 나눠주는 화장품들을 받아들고 기뻐서 와짝 떠들었다.

《우리 처녀중대가 멋쟁이가 되겠네.》

《미옥인 특별히 고급화장품을 받았구나. 넌 진짜 무용수같아질거야!》

처녀들이 호들갑을 떨면서 웃어댔다.

《래일 아침엔 보란듯이 화장하고 강계시로 씩씩하게 행진도 하자요. 어때요?》

처녀들이 은희의 말에 전적으로 찬성했다.

이튿날 새벽, 기상나팔이 울리기도전에 완전히 면모를 일신한 처녀중대원들이 돌격대숙소앞에 정렬하였다.

은희는 대렬앞에 나서서 열정을 담아 말했다.

《동무들, 정말 멋있어요. 강계미인들의 대렬같단 말예요. 이제 발전소건설이 완공되고 공장들이 돌아갈 때면 장군님께선 우리들의 일터로 찾아오실거예요. 그 기쁨을 가슴속에 소중히 품고 억세게 살아갑시다. 언제나 우리의 머리우에 맑은 하늘이 비끼고 눈부신 태양이 빛을 뿌리게! 그날을 생각하면 기운이 솟지 않아요?》

은희의 가슴은 한껏 부풀어올랐다. 처녀중대원들의 얼굴이 생기를 띠며 활짝 밝아졌다.

저 함뿍 웃음을 머금은 꽃같은 얼굴들! 얼마나 아름다운가. 은희는 기뻤다.

그 웃음과 아름다움이 자기들의 전투무기와 다름없다는것을 높뛰는 심장으로 깨닫고 은희는 대렬한끝으로 힘차게 뛰여갔다.

《모두들 내 구령을 들어요. 중대차렷. 우로 봣!》

은희는 얼굴을 번쩍 쳐든 처녀들을 사랑스럽게 일별해보았다.

《앞가슴을 더 자랑스럽게 내밀어요. 춘실동문 그게 뭐예요. 배를 당기고 어깨를 힘있게 솟궈요. 동무의 헐거분하게 맨 혁띠엔 권총집을 거느적이 채워주면 제격이겠어요.》

처녀들속에서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들렸다.

은희는 쉬엿 구령을 내리고 또다시 일장 훈시를 했다.

《동무들, 강계시는 우리가 나서자란 정든 곳이예요. 예전에야 강계시가 얼마나 흥성거렸어요. 춤도 노래도 많고 미인도 흔한 고장이였지요. 맨주먹으로 범을 때려잡았다는 강계포수들과 강계렬녀들로 유명짜하게 소문도 났구요. 산천도 사람들도 아름다왔어요. 관서팔경의 제일 루정으로 솟아있는 인풍루와 망미정은 락천적인 강계사람들의 즐거운 놀이터로 되여 명절날이면 샐녘까지 춤가락이 그치지 않았어요. 그런데 강계는 웃음도 노래도 없는 도시로 변했어요. 우리 처녀중대원들의 노래소리, 힘찬 발걸음으로 이 고향 도시우에 드리운 정적을 깨뜨려버리자요. 항일무장투쟁시기 소왕청유격구 녀대원들은 쪽거울도 없는 어려운 형편이였지만 아침이면 내가에 나가 시내물을 거울삼아 머리도 곱게 빗고 옷단장도 맵시나게 갖추군 하지 않았어요. 유격구의 준엄처절한 환경에서도 자기 몸을 아름답게 가꿀줄 아는 마음, 녀성의 고유한 미와 존엄을 소중히 여긴 녀대원들이였기에 죽음도 두려움 없이 원쑤들과 무자비하게 싸웠고 단두대에 올라서도 혁명가의 절개를 지켰던거예요. 우리도 그렇게 꿋꿋이 살아가잔 말예요.》

은희는 높뛰는 가슴을 진정하며 가볍게 숨을 몰아쉬였다.

《우리 처녀들이 일을 하면 얼마나 하겠어요. 하지만 절대로 지친 기색을 보이지 말고 혁명하는 시대의 녀성답게 락천적으로 생활해야 해요. 처녀중대의 위신을 존중하며 노래도 더 씩씩하고 기운차게 부르자요. 우리 처녀중대의 일터에서 웃음소리가 멎으면 끝장이예요. 오늘의 고난을 웃음으로 맞받아나가며 온 건설장이 떠들썩하게 마음껏 웃어보자요. 분도 연지도 바르며 사랑도 속삭여요. 수줍어 할것 없어요. 누가 뭐라고 하건 내가 책임지고 시간을 보장해주겠어요. 이 고난의 행군시기에 자강도 처녀들이 얼음물속에 뛰여들어 일하며 한결 더 아름다와지고 억세여졌다면 우리 장군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 우리 발전소건설을 완공하고 장군님을 모시는 날 처녀중대, 미인중대의 기상을 떳떳이 보여드리자요. 장군님앞에서 노래와 만세의 함성도 목청껏 웨치고 〈우로 봣!〉구령소리 높이 땅을 구르며 열병행진도 하자요.… 그럼 이젠 떠납시다. 중대 우로 돌앗. 앞으로 갓!》

처녀중대는 활기에 넘쳐 강계시를 향해 떠났다.

이른 새벽의 고요를 깨뜨리며 울려퍼지는 힘찬 노래소리… 대오의 앞장에선 붉은기가 휘날렸다. 하나같이 미끈하게 차림한 처녀들이 활개를 내저으며 보무당당히 행진해가는 모든 곳에서 아빠트의 창문들이 활짝 열리고 어른 아이 할것 없이 베란다에 나와 뜨겁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처녀들도 손을 마주 흔들면서 밝게 웃었다. 처녀중대가 온 강계시민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고 건설장에 이르자 다른 돌격대원들도 눈이 화등잔이 되여 황홀히 바라보았다.

평소에 말수가 적은 최덕삼아바이까지도 마라초를 꼬나물고 흐뭇이 미소를 짓다가 은희한테로 찾아와서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은희, 처녀중대가 괜찮아, 너희들이 씩씩하게 행진하며 노래도 부르니 건설장이 환히 밝아지는것 같구나. 처녀들이 정말 장해. 오늘은 우리도 기운이 막 솟누나.》

은희는 로기능공의 진정어린 말에 명랑하게 웃었다.

저녁이면 처녀중대원들의 숙소는 매일 명절날처럼 흥성거렸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처녀중대숙소에 나타나 은희를 불러낸 명철이가 시펄뚱해서 말했다.

《은희, 좀 조심하는게 좋겠어.》

은희는 어째서 명철이가 눈살이 꼿꼿해서 을러메는지 알수 없었다.

《뭘 조심하라는거예요?》

《처녀중대에서 향수냄새가 나.》

《녜?》

은희는 이마살을 찌프렸다.

《향수냄새가 나면 어떻다는거예요?》

《지금이 어느 때요. 모두들 생사를 무릅쓰고 일하는데 눈꼴사납게 향수내를 풍기고 다녀야겠소? 바람쟁이처럼 얼굴에 잔뜩 쥐여바르구. 도대체 처녀들을 어디로 끌고가자는거요. 자본주의날라리바람이 딴겐줄 아오? 위험해!》

명철은 성칼스럽게 내뱉고 휙 돌아서갔다.

은희는 불의의 공격에 어리둥절해 서있다가 얼른 뒤쫓아가서 명철의 한팔을 힘껏 나꾸챘다.

《방금 한 말을 다시 해봐요.》

《잘못했으면 고치는게 좋아. 따벌처럼 달라붙어 쏘아댈 생각말구.》

《동문 정말… 한심하군요!》

은희는 매섭게 쏘아붙였다.

《우리 처녀들이 화장도 하고 향수냄새도 풍기지만 동무네보다 못하는게 뭐예요. 함마질을 하느라 손바닥은 물투성이가 되고 때없이 얼음물속에 뛰여들어 사생결단으로 일하지요. 밤이면 잠자리에 누워 신음소리를 지르는 처녀들이 많아요. 그래도 아침에 깨여나면 밝은 얼굴로 명랑하게 웃어대면서 건설장으로 씩씩하게 행진해간단 말이예요. 그래 우리 처녀들의 아릿다운 몸에서 땀냄새가 나고 지친 얼굴로 어지러운 작업복, 신발을 신고 노래도 웃음도 없이 패잔병들처럼 후줄근히 다니면 좋아할 사람이 누구예요? 적들밖에 있어요? 놈들은 이 고난의 시기 조선녀성들이 알거지가 다 되였다고 악의에 차서 비웃을거예요. 강계미인으로 소문난 우리 처녀들이 자존심도 존엄도 없이 그 더러운 놈들의 비난과 조소를 받아야겠어요? 대답해봐요.》

은희는 분개해서 소리쳤다. 뜻밖의 맵짠 항변에 말문이 막혀버린 명철은 얼굴이 수수떡처럼 벌개서 슬금슬금 꽁무니를 사리려다가 은희가 앞을 막아서는 바람에 또 한바탕 진땀을 뽑았다.

《왜 말을 못해요. 난 처녀들에게 사랑도 하라고 요구했어요. 못할게 뭐예요. 전쟁시기엔 병사들이 싸움만 하고 사랑을 외면한다, 어느 소설을 보니 그렇게 썼더군요. 역겨웠어요. 저는 고난의 행군의 불길속에서 우리 처녀들이 사랑도 속삭이면서 한결 더 아름다와지고 억세여지는 모습을 보고있어요. 총포성없는 전쟁이 벌어진 오늘의 준엄한 시기 우리 처녀중대원들의 장한 모습이 놈들의 가슴팍에 박히는 총탄보다 위력하다는것을 모르는 동무를 어떻게 리해해야 겠어요.》

은희는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돌아서 달려갔다. 사람이란 한생을 곧은 직자로 매츨하게만 살아갈수 없으며 때로 본의아니게 착오를 범할수 있다. 하물며 아직은 새파랗게 젊은 그들의 생활에는 별의별 곡절이 다 생길수 있잖은가.

은희는 그만 한 리해와 아량이 없는 옹졸한 처녀가 아니였다. 하지만 조국이 시련을 겪고있는 이 엄혹한 시기엔 누구든지 자기의 말한마디, 행동거지 하나에 이르기까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래서 명철이가 한순간 자기를, 처녀중대 대원들을 밉광스레 볼수 있는 일이였지만 은희는 그를 용서할수 없었던것이다. 명철이가 달려가는 그를 붙잡아세우고 떠뜸떠뜸 사죄를 했지만 은희는 매정하게 뿌리쳐버리였다.

《비켜서요!》

은희는 명철의 앞을 바람처럼 지나쳐 꼿꼿한 자세로 걸어갔다. 은희의 쌀쌀한 태도에 주눅이 든 명철은 한자리에 굳어졌다.

처녀중대숙소로 돌아온 때에야 은희는 자기의 행동을 곰곰히 돌이켜보며 나직한 한숨을 쉬였다.

내가 너무했는가? 명철동문 분명 자기 잘못을 깨닫고 사과하였는데…

은희는 어쩐지 명철을 괴롭힌 일로 마음을 진정할수 없었다.

아무렴 내가 이런다고 명철동무를 잊을 녀자인가? 참, 사랑이란 이상도 하지… 은희는 밤에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옆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놀라 깨여나군 하였다.

처녀중대는 나날이 생기를 띄여갔지만 은희는 명철이때문에 남몰래 혼자 속을 태우면서 고민했다.

그런데 며칠후 은희를 찾아온 명철은 큼직한 비닐구럭을 내밀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옜소.》

《이게 뭐예요?》

명철은 아무 대답이 없이 사라졌다. 은희는 숙소로 돌아와 구럭을 헤쳐보았다. 구럭안에는 각종 화장품들이 한가득 차있었다.

《언니, 명철중대장이 갖다줬지요?》

눈썰미 빠른 처녀들이 저마끔 떠따 고았다.

《그래. 그 동무가 가져왔어.》

은희는 솔직하게 말하고 처녀중대 대원들에게 명철이가 가져온 화장품들을 골고루 나눠주었다.

그리고는 며칠동안 남몰래 고실고실 속을 태우며 못 잔 봉창을 하면서 단잠을 잤다.

 

5

(1)

 

그 일이 있은후로 명철은 이상하게 어깨가 축 처져다니였다.

은희는 일을 마치고 늘쌍 건설장의 사위여가는 모닥불옆에 혼자 남아있는 명철을 바라보면서 어쩐지 마음속이 아릿해나는것을 느끼군 하였다.

왜 저럴가? 내가 너무 가슴아픈 말을 해서인가. 그렇다면 이제라도 조용히 만나 잘못을 빌어야지 않을가… 은희는 생각다 못하여 명철의 옆에 가 살그머니 앉으며 생긋이 웃었다.

《명철동무, 성났어요?》

명철은 들은체도 않고 입을 꾹 다문채 앉아있었다. 여느땐 아무리 불쾌해도 이삼일이 지나면 씻은듯이 말짱 잊어버리던 명철은 뿌루퉁해서 은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어서 좀 말해요.》

《아무것도 아니요.》

《누가 속을줄 알구… 내가 미워서 그러지요?》

은희는 새침해서 옆에 있는 나무토막을 당겨놓고 그우에 걸터앉았다.

명철의 진속을 알기전에는 아예 자리를 뜨지 않으려고 단단히 잡도리를 했다.

명철은 생떼를 부리는듯 한 은희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흘끔 거들떠보고나서 돌맹이를 집어 발치에 내동댕이쳤다.

《제길 남의 속은 알지도 못하구!》

은희는 두눈이 동그래졌다.

《그럼 왜 그래요?》

《이거야 어디 창피해서 살겠어? 장군님께서 친히 식량까지 보내주셨는데… 동문 우리 아버지가 뚱딴지같은 공동시장에 환장하여 다닌걸 모르오!》

명철은 한바탕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고 부르쥔 주먹을 턱에 꾹 눌러댔다. 전번에도 아버지때문에 얼굴을 쳐들고다니지 못하겠다며 중대장일을 하느니 마느니 하던 명철이 아닌가? 은희는 어떻게 하면 명철의 마음을 진정시킬는지 몰라 안타까와 하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옆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명철동무, 아버지때문에 너무 마음쓰지 말아요. 며칠전에 도중소형발전소건설지휘부의 림준과장동지와 만났는데 절 보고 뭐랬는지 아세요? 명철이를 사랑해주라구. 그 동무의 아버진 정말 훌륭한 사람이였다고 하더군요. 세상에 결함이 없는 사람이 있어요? 이제 명철동무의 아버지도 아들의 마음에 꼭 들 때가 있을거예요.》

《그건 거짓말이요!》

명철은 결김에 그렇게 내뱉고 오만상이 되여 은희를 마주 보았다.

《이자 누가 그랬다구?》

《림준과장이였어요.》

《림준?》

명철의 눈길이 어찌도 사나운지 은희는 가슴이 다 떨리였다.

《그래요. 림준과장이 그랬어요. 내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직접 만나서 물어봐요. 래일이라도 당장!》

은희는 자신만만해서 으름장이라도 놓듯이 말했다.

《아니요, 그럴수 없소! 그럴수…》

《그럴수 없다는건 무슨 말이예요?》

《동문 그의 말을 그대로 믿소? 림준과장이 훌륭하다고 한건 다른 사람이요.》

《아니예요. 과장동진 분명 동무의 아버지라고 했어요. 허튼 소리 말아요!》

은희는 그만 발끈해서 쏘아붙였다. 어쩌면 아들인 그가 이럴수 있는가? 남들이 좋지 않게 말해도 가슴을 내대고 아버지를 옹호해나서야 할 그가 너무나도 아버지를 허무적으로 생각하는 일이 속상했다.

《됐소. 그만 하고 가서 쉬기나 하오. 래일 힘든 작업을 하겠는데…》

은희는 바람이 일게 훌쩍 일어나는 명철을 안타까이 쳐다보았다. 밤바람에 모닥불은 온기없이 재티만 싸늘히 날리였다. 은희는 사위여버린지 오랜 모닥불을 내려다보며 한참 오도카니 앉았다가 뒤따라 일어나며 한숨을 호 내쉬였다.

명철은 벌써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을씨년스러운 강변에 엷은 어둠을 휘감고 솟아있는 발전소언제만이 거무스름히 안겨왔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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