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회)

 

3

(2)

 

태혁은 그런 비장한 결심을 품고 얼마후 북천3호발전소건설장에 당도하여 차에서 내렸다. 건설장의 돌격대원들이 새까맣게 모여선 가운데 아직도 리성하부부장과 덕삼로인의 언쟁이 계속되고있었다.

《이건 발전기를 갖다줘도 땅땅 튀기는 판이니 공사기일을 보장하지 못하면 령감이 책임질테요!》

리성하가 얼굴이 시뻘개서 눈을 부라렸다.

《부부장동무, 우린 아무리 어려워도 이런 량심이 없는 너절한 일은 하지 않소. 우리한텐 저런 발전기가 필요없으니 당장 도로 가져가시오.》

덕삼로인의 기상도 험악했다.

《이 령감 정말 셈판이 없구만. 대안사람들이 령감보다 못해서 발전기를 만들지 못하는줄 아오? 전력이 없어 공장을, 공장을 돌리지 못한단 말이요.》

《그래서 남의 발전기를 떼와도 무방하다는거겠소. 우리 자강도로동계급을 모욕하지 마시오. 우린 장군님의 의도와 어긋나는 그 어떤것도 받아물지 않소!》

덕삼의 추상같은 말속에는 예전의 《강계싸움대장》다운 넋이 살아서 뜨겁게 숨쉬고있었다.

로인을 미덥게 지켜보던 태혁이가 마침내 리성하앞으로 다가섰다.

《부부장동무, 내 방금 장군님의 전화를 받고 오는 길인데 덕삼로인의 말대로 저 발전기는 도로 가져다주는게 좋겠습니다. 장군님께서 대안중기계의 전력문제를 풀어주셨습니다.》

《아, 그런가요, 그래 어디 전력을 돌려주셨답니까?》

리성하의 너무도 태연스러운 말에 태혁은 분격을 겨우 참았다.

《부부장동무, 무슨 말을 그렇게 하오?》

《뭐 내가 말을 잘못했습니까?》

리성하가 뗑한 표정으로 태혁을 쳐다봤다.

《내나 부부장동무가 도대체 장군님의 로고에 대해 얼마나 알고있는 사람들이요? 장군님께서는 바로 부부장동무처럼 걸린 문제에 어깨를 들이밀지 않고 발전소들에서 생산된 전력을 돌려맞출 궁리나 하기때문에 전력이 나오지 못한다구 엄하게 지적하시였소. 그리고는 여기 강계청년발전소의 발전기들을 만가동하여 대안에 전력을 보내주기 위한 조치를 취해주시였소. 우리가 얼마든지 할수 있는 일이였는데 왜 못했는가? 현재의 상태에서는 1kw의 전력도 더 나올데가 없다고 생각하는 패배주의적인 사고방식때문이였지. 부부장동무가 자기 직권을 휘두르면서 남의 발전기를 떼온것도 그래서였구. 우리가 제 구실을 못해 장군님의 귀중한 시간을 빼앗는게 부부장동문 가슴아프지도 않소!》

태혁은 더 긴 말을 하지 않았다. 자강도에 내려오자 리성하는 강계청년발전소와 도안의 여러개 발전소들을 찾아다녔지만 우리 로동계급이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일하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수박 겉핥는 식으로 돌아다니기만 하면서 그들의 정신을 보지 못했다는것을 태혁은 구태여 까밝혀 말하고싶지 않았다. 언제인가 리성하가 반드시 그런 자신을 스스로 뉘우치게 될것이기때문이였다. 얼혼이 나간듯이 고개를 떨구고서있는 리성하를 마뜩지 않게 흘겨보던 최덕삼이 휙 돌아서 씨엉씨엉 걸어가더니 벙어리장갑을 낀 손을 버쩍 쳐들며 고함을 질렀다.

《여, 기중기! 정신 바짝 차리고 1호 수문을 조립하자구!》

중량이 30t이나 되는 수문을 들어올릴수 있는 기중기가 없어 넉대의 자동차기중기를 동원하여 개미역사를 벌리는 이런 까다로운 수문조립작업은 오랜 기능공인 최덕삼이밖에 감당해낼수 있는 사람이 없다. 언제우에 모여선 사람들은 모두 손에 땀을 쥐고 덕삼의 지휘하에 배심있게 중량물을 다루는 작업을 긴장히 지켜보았다. 태혁이도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고 사람들의 등뒤에 가서 붙어섰다. 그는 초조한 생각에 잠겨있느라 자기앞에 선 장관우도 미처 알아보지 못했다. 눈섭까지 개털모자를 꾹 눌러쓴 덕삼로인이 입에 호각을 물고 벙어리장갑을 낀 손으로 기중기운전공들을 조종하는 모습만 넋없이 바라보았다. 드디여 로인의 숙련된 솜씨를 말해주듯이 수문이 허공에 둥 뜨자 환성이 터져올랐다. 그때였다. 누군가 갑자기 《흙바람이 불어온다!》하고 요란히 웨쳐대였다. 태혁은 흠칠 놀랐다. 아닌게 아니라 하늘땅을 컴컴히 메우면서 시커먼 바람이 무시무시하게 밀려왔다. 저 사납게 휘몰아치는 흙바람에 기중기들이 견디여낼것인가? 기중기에는 30t중량의 수문이 쇠바줄에 위태롭게 매달려있다. 세찬 바람에 밀려 수문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기만 하면 눈깜짝할사이에 수문도 기중기들도 강물속에 처박히고 말 판이였다. 언제 수문을 땅에 내려놓을 경황이 없었다. 어느새 건설장은 온통 흙먼지로 뒤덮였다. 질겁한 사람들이 언제우에서 헤덤벼치며 산지사방으로 내뛰기 시작했다. 순간 기중기차들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였다. 주위에서 저마끔 소동을 일구자 기중기운전공들도 어쩔바를 몰라하며 당황망조해 하는것이 헨둥히 알렸다. 안된다, 이래선! 때마침 그 다급한 속에서 덕삼로인이 수문밑에 떡 버티고선채 《모두들 멈춰서라! 언제우에서 한걸음도 물러서면 안된다. 동무들은 장군님께서 이 자강땅의 흙바람을 헤치며 초상령을 넘으신 일을 잊었는가!》라고 목청이 터지게 고함을 질렀다. 로인의 그 말에 감동된 사람들이 언제우에 멈춰서서 태풍에 날리지 않게 서로 꽉 부둥켜안았다. 태혁은 한손으로 안경을 거머잡고 덕삼로인의 곁으로 다가가려고 했으나 얼굴에 휘뿌리는 흙먼지때문에 도무지 눈을 뜰수 없었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흔들리는 수문과 자동차기중기의 팔들이 부러질듯이 삐걱거리는 모양을 겨우 가려보았을뿐이였다. 머리칼이 곤두섰다. 뒤이어 기중기가 넘어진다는 누군가의 웨침에 태혁은 피끗 고개를 돌렸다. 뜻밖에도 리성하부부장이였다. 수문이 이리저리 들춰대는통에 기중기의 발통에 고였던 받침목이 빠져나와 차가 옆으로 기울어지고있었다. 그 위기일발의 순간 리성하를 와락 밀쳐버린 장관우가 침목을 안고 기중기차밑으로 날쌔게 뛰여들었다. 눈앞이 아찔해진 태혁은 《모두들 여기로 오라!》고 고함을 질렀다. 언제우에 몰켜섰던 사람들이 미친듯이 휘몰아치는 흙바람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달려왔다. 태혁은 그들과 합심하여 필사적으로 기중기차를 바로 세우고 장관우를 잡아일으키며 부르짖었다.

《여보, 어디 상하지 않았소?》

태혁의 어깨에 머리를 떨군 장관우는 대답이 없었다.

《젠장, 여 승용차!》

태혁은 우선 사람을 살리고 봐야겠다는 생각에 있는 힘을 다내여 다시금 큰 소리를 쳤다. 고막이 터져나갈듯이 아우성을 질러대는 바람소리에 제압되여 그의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온통 시꺼먼 흙먼지속에 묻혀버린 발전소언제는 마치 사나운 파도우에 떠있는 조난선을 련상시켰다. 덕삼로인이 근 30분동안이나 그 풍랑 만난 《배》의 선장과도 같이 흙바람과 싸우고난 후였다.

태혁은 뿌옇게 먼지 낀 눈섭을 슴벅거리는 로인과 마주섰다.

《덕삼아바이, 장군님께서는 대안중기계의 전력을 풀어주셨지만 이제 발전기생산에 착수해서는 늦어질수 있다고 걱정하셨습니다.》

로인이 태혁의 말뜻을 알아맞히고 제꺽 응답했다.

《장군님께서 걱정하셨으면 그 발전기들도 우리가 만들어야지요. 림준, 이 사람이 뛰면 해낼겁니다.》

로인은 입안으로 날아든 모래알을 땅바닥에 퉤퉤 내뱉고 옆에 서있는 림준에게 말을 붙이였다.

《여보게 림준이, 그때 건설대가 해산되자 우린 너무도 원통해 눈물을 흘리면서 하늘만 쳐다봤지. 그 고통을 신물이 나게 체험한 우리가 또다시 장군님의 명령을 어기고 가슴을 치겠나? 죽어도 그렇게는 못해. 무조건 해결하게! 이 일은 자네만이 할수 있네.》

림준은 찢어진 구름장들이 떠도는 을씨년스러운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꽉 다문 입술, 번뜩이는 눈길만이 그의 가슴속에서 어떤 비장한 결심이 끓어번지는가를 눈굽이 뜨겁게 말해주고있었다. 태혁은 한동안 말없이 서있다가 림준이와 함께 건설장을 떠났다. 이날 도지휘부에 도착한 림준은 덕삼로인의 부탁대로 발전기를 해결하기 위해 잠시의 지체도 없이 《갱생》차를 잡아타고 출장길에 나섰다. 태혁은 그를 떠나보내고 뒤따라 장관우부위원장이 입원한 도병원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장관우는 병원에 없었다. 그가 구급처치를 받고 자기 사무실로 돌아갔다는 원장의 말에 태혁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부위원장동무의 왕고집을 당해낼 사람이 있습니까? 적어도 한주일가량은 입원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해줬지요. 그랬더니 글쎄 개 닭 보듯 하고 돌아서 훌쩍 가버리더군요.》

태혁은 원장실에서 나오자 곧바로 도행정위원회를 향해 세차게 차를 몰아갔다. 얼마후 장관우의 사무실앞에 당도한 그는 문고리를 잡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방안에서 장관우가 전화로 누구에게인가 호통을 치는 소리가 쩡쩡 울려나왔다. 발전소공사기일을 무조건 보장해야 한다고 을렀다메는 중이였다.

(욕설쟁이 장관우!)

태혁은 갑자기 장관우에 대한 옛정이 되살아오르는것을 느끼며 한손으로 출입문옆의 벽을 짚었다. 근래에 와서 자주 의견상이로 마찰이 있긴 했지만 어려울 때면 자기 한몸을 서슴없이 내대는 장관우가 아닌가! 여태껏 태혁이가 오른팔처럼 믿어왔던 장관우의 본바탕은 갈데가 없었다. 아무렴 자강도에 와서 손님격으로 일하는 리성하부부장 같겠는가. 뭐니뭐니해도 제 손때가 묻은 사람이 훨씬 낫다는것을 눈물이 나게 깨닫고나서야 태혁이는 방안으로 들어섰다.

오른쪽 어깨와 팔에 붕대를 둘러감은 장관우의 몸에는 두툼한 외투가 걸쳐져있었다.

《마치도 전선사령관 같군!》

태혁은 통쾌하게 웃고 붕대가 감겨 곱절이나 실팍해진 장관우의 팔을 만져보았다.

《이거 대단히 상했구만. 그런데 왜 여기에 앉아있소?》

《어디 한가하게 병원에 엎디여있을 형편이 되는가요. 난 뭐 귀구멍이 막혀있는줄 아시우?》

장관우가 투덜대듯 말했다.

《림준이가 슬그머니 귀띔해주더군요. 대안의 발전기들이 늦어질수 있다구. 어떻게 할셈입니까?》

《아무래두 우리가 만들어야 할것 같소.》

《이거야 속이 타서… 리성하부부장이 얼굴을 들고다니게 됐습니까? 하긴 내가 남의 말을 할 형편이 못되지요.》

장관우는 직통배기성미그대로 격식없이 사죄를 했다.

《나때문에 맘고생이 많았을텐데 죄송합니다.》

《그만하오. 지금은 내앞에 멀쩡히 앉아서 자기 반성을 하지만 오늘 밤엔 굉장히 쑤셔댈거요. 난 아까 장관우부위원장이 황천객이 되지 않나 해서 가슴이 철렁했댔소. 그런데 어떻게 되여 리성하부부장을 밀쳐버리고 부위원장동무가 기중기차밑으로 뛰여들었소? 혹시 리성하부부장이 자기 생명을 바칠만 한 사람이 못된다고 생각된게 아니요?》

잠시 난처한 표정을 짓고 앉았던 장관우가 쓸쓸히 웃었다.

《글쎄요. 그 한사람의 잘못으로 공사가 어떤 난관에 봉착했습니까. 그는 자기가 범한 과오를 씻기 위해서도 제 목숨을 아낄수 없는 사람이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요한다면?… 난 그 짧은 순간 부부장동무의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어쩐지 늙은이가 불쌍한 생각이 들더군요.》

장관우의 의미심장한 말에 태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달전 북천3호발전소건설장에서 리성하부부장의 어머니인 칠순나이의 늙은이가 허약한 몸에 골재짐을 지고다닌다며 걱정하던 장관우의 말이 떠올랐다.

《부부장동무의 어머닌 아들때문에 고심이 많은 늙은이입니다. 전쟁때 맏아들이 전사한 소식을 받고도 눈물 한방울없이 공장에 나가서 밤을 패며 포탄을 깎은 어머니였지요. 그런 어머니여서인지 성하부부장이 자강도발전소건설련합기업소 지배인사업을 하다가 평양으로 소환되여 갈 때에도 아들과 갈라져 강계에 홀로 남았습니다.》

장관우는 그 사연을 대충 이야기하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늙은이는 전사한 맏아들과 달리 제 고향이 귀중한줄 모르는 성하부부장을 여간 노엽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지금까지 이 강계를 떠나지 않고 늙마에 고적하게 살고있는 어머니이지요. 리성하부부장이 그 어머니를 더는 괴롭히지 말아야 했는데… 아들의 과오를 알면 늙은이는 더이상 자기를 지탱해내지 못할겁니다.》

《가슴아픈 일이요.… 아무튼 부위원장동무가 잘 돌봐주오. 나도 만나보겠소.》

태혁은 흐려진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참, 김철에서 혜경이가 돌아왔소. 강재를 실은 방통우에 앉아서 말이요. 장군님께 보고드렸소.》

《그러니 내가 진짜 허재비였군. 허재비…》

태혁은 침울히 서있었다. 직사포를 쏘는것같은 장관우의 투박한 말이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고향의 사투리처럼 정답게 안겨왔지만 리성하부부장의 어머니생각으로 그는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

 

×

 

이튿날 아침 아무런 예고도 없이 태혁의 사무실로 찾아온 장관우가 풀기없이 말했다.

《지난 밤 성하부부장동무의 어머니가 사망하였습니다.》

《뭐요?》

태혁은 몹시 놀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나도 하루밤사이에 이렇게 갑자기 돌아갈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지난밤 우리 행정위원회 운전사가 도당합숙앞의 눈길에 쓰러져있는 늙은이를 발견하고 병원에 실어갔습니다. 아들이 범한 과오를 듣고 찾아오다가 로상에서 졸도하였답니다. 내가 련락을 받고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엔 의식이 없는 늙은이의 침대옆에 성하부부장이 고개를 떨구고 컴컴히 앉아있더군요. 늙은이는 근 한시간후에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아들을 바라보며 〈네가 어쩌면 이럴수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지 않습니까. 그는 벌써 모든것을 다 알고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눈을 감던 늙은이가 마지막힘을 모아 〈내가 잘못했다. 이전에 어떻게 해서라도 너를 강계에 붙잡아둬야 하는건데… 평양으로 보낸게 내 죄다.〉하고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태혁의 두눈에 조용히 눈물이 감돌았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그 가슴 아픈 말을 남기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는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쓰렸겠는가. 늙은이의 그 눈물겨운 말에는 제가 나서 자란 땅의 소중함을 모르는 일군이 아니라 이 자강땅을 진정으로 사랑할줄 아는 인간이 되라는 당부가 뜨겁게 어려있었다.

붕대를 둘러감은 몸에 외투를 걸친 장관우도 늙은이와의 영결을 슬퍼하며 성에가 시허옇게 낀 창문앞에 못박힌듯 서있었다.

《부위원장동무, 우리 부부장동무가 섭섭치 않게 늙은이의 장례를 잘 치뤄줍시다.》

장관우는 아무런 응대도 없이 서있다가 그를 돌아다보며 《성하부부장은 사람이 아닙니다!》하고 방에서 힝 나가버리였다.

 

4

(1)

 

장은희가 스물다섯살에 잡히도록 지금까지 그의 뒤에는 아버지가 도행정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그닥 싫지 않은 배경이 깔려있었다.

은희는 공장에 입직하여 로동생활을 하면서도 늘쌍 사람들의 특별한 관심속에 떠받들려 호강스럽게 지냈다. 그가 일하는 가공직장 직장장은 꽤 까다로운 성미였으나 은희만은 될수록 곰살스럽게 대해주며 하루빨리 좋은 총각을 만나 시집이나 가라는식으로 어린 아이 다루듯이 어루만져주군 했다. 그랬던 은희가 발전소건설장의 처녀중대 중대장이 됐다는 말을 듣고 모두들 화경눈이 되여버리였다.

괜히 실없이 우쭐대기 좋아하는 젊은 청년들속에는 처녀들이 발전소건설장에 나가서 맥을 추겠는가, 공장이 생겨 처음인 웃음거리를 《창조》하게 되였다며 수군덕거리는 친구들이 적잖았다.

은희는 그 심술사나운 시기군들이 발전소건설초기에 처녀들의 서툰 함마질을 말밥에 올리고 비웃어대자 골나서 발전소건설장의 허명철이 앞에 나타나 장밤 손바닥이 물집투성이가 되게 이악스레 함마강습을 받았다. 그리고는 다음날 자진 여봐란듯이 함마를 휘둘러대며 한꺼번에 이삼백개씩 불이 번쩍나게 내리조기군 했다. 은희자신도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였다. 그의 얼굴로 소낙비처럼 땀이 쏟아져내리고 목안에서는 겨불내가 일었으나 젖먹은 기운까지 말짱 다 짜내며 참고견디였다. 이젠 다른 처녀들도 어지간히 함마질에 이골이 나서 중대안에 《함마명수》로 소문난 처녀들만 해도 자그만치 6명이나 된다.

그 무렵에 허명철이가 발전소건설장에서 중대장사업을 걸머지는 바람에 은희의 일은 한결 더 헐해졌다. 명철은 다른 청년들처럼 쬐쬐하게 처녀들과 승부를 겨를 싹수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저러나 건설장에는 엄연히 남녀로 갈라진 두개의 중대가 존재하고 은희는 명철이와 쌍벽을 이루는 당당한 중대장으로서 맹활약을 했다.

순수 처녀들로 무어진 그 무슨 별동대같은 처녀중대… 은희는 자신보다도 훨씬 더 처녀중대를 사랑하였고 자기 중대 처녀들의 작업성과가 건설장의 속보판에 대서특필로 소개될 때면 제 생일날만치나 기뻐서 어쩔줄을 몰라 했다.

몸매도 날씬하고 양간하게 생겨 여불없는 녀성이였는데 성격만은 왜 그렇게도 쾌활하고 도담하게 번져가는지 자신도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은희는 며칠전 리성하부부장이 다른 발전소의 발전기를 떼여온날 자강도로동계급을 모욕하지 말라고 큰소리치는 덕삼아바이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 량심적이고 대바른 로기능공이 얼마나 돋보이는지 몰랐다. 그날밤 은희와 조용히 만난 명철은 처녀중대 중대장의 심장속에서 울려나온 그 가식없는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말했다.

《은흰 건설장에 나와서 많이 달라졌어. 정말 다시 보게 되는걸.》

은희는 그만 즐거움에 차서 깔깔 소리내여 웃었다.

《어때요. 이만하면 도행정위원회 부위원장집 딸이 얼마든지 제 앞길을 개척할것 같지 않아요?》

은희는 그렇게 말하고나서 명철을 마주 보며 《명철동무, 이건 우리의 사랑이 성취한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것이예요.》라고 뜨겁게 속삭여주었다.

그는 건설장에서의 보람찬 생활을 자기 일신의 행복과 한순간도 떼여놓고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래서 나날이 처녀중대에 대한 애착이 깊어가는것을 느끼고 거기에 자기의 온 심혼을 깡그리 쏟아붓게 되는것인지도 몰랐다.

처녀중대! 이름도 얼마나 유별나고 멋들어진가!

은희는 처녀중대의 고유한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도 무던히 마음을 썼다. 해종일 세찬 강바람을 쏘이며 언땅을 파거나 타입작업을 하고 나면 아무리 깜찍한 처녀들도 파김치처럼 녹초가 되여 제몸을 거두지 않고 세면도 겨우 할 정도로 대강 살아가게 되는것이 건설장의 생활이였다.

그럴 때면 은희는 대렬앞에 나서서 우리 중대가 패잔병부대처럼 왜 이렇게도 후줄근하고 볼모양이 없어져가는가? 강계미인들, 《처녀중대》대원들이여, 고운 입술에 연지도 바르고 비록 얼굴들이 감실감실 탔지만 화장도 하며 재간껏 맵시를 부리라, 작업복바지도 면도칼날처럼 주름을 세워입고 행진할 때면 땅이 갈라지게 꽝꽝 발을 구르라! 온 건설장사람들의 눈이 휘딱 뒤집어지게!… 라고 으시대면서 웨쳤다.

처녀들은 중대장의 그 류다른 요구에 사기가 나서 저녁이면 방으로 돌아와 물걸레로 바지가랭이를 닦는다, 요밑에 깔고 잔다 하면서 부산을 피웠다. 매일같이 아침 일찌기 세면을 하고는 제가끔 돌아앉아서 얼굴에 분첩을 두드려대며 아름답게 몸단장을 하는 바람에 처녀들의 돌격대숙소는 마치도 극장의 화장실처럼 향기를 풍겼다. 제나름의 취미와 성격을 소유한 새침데기처녀들이 그 어떤 고된 로동에도 지친 기색이 없이 언제나 그처럼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씩씩하게 활개를 내저으면서 건설장으로 나갈 때면 그들, 《미인중대》를 바라보면서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처녀중대가 괜찮아, 군침이 도는 걸, 일을 칠것 같애! 명철이네 중대가 처녀들한테 깔려 편포짝처럼 납작해지겠군! 하고 모두들 별 익살을 다 부렸다.

처녀들은 부쩍 사기가 올라 무슨 일이건 불이 번쩍나게 해제끼군 하였다.

그러나 날이 흐르기 시작하자 처녀중대원들속에서도 간신히 건설장에 나가는 처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런 처녀들은 점점 늘어갔다. 이러다가 온 중대가 쓰러지지 않겠는가. 우려는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오늘은 모두들 파김치가 되여 일했다. 종일 가야 웃음소리 한번 들어볼수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을가?…

은희는 온밤 근심에 싸여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모포를 훌 밀어던지며 일어나앉았다. 아니, 중요한건 마음이야. 아무리 일이 힘겨워도 마음만 굳세면 두려울것이 있는가. 차거운 새벽대기를 흔들면서 벌써 돌격대의 기상나팔소리가 류량히 울렸다. 곤히 잠들었던 처녀들이 잠자리에서 부시시 일어나 세면도구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발전소건설을 완공하려면 아직도 할 일이 많다.

저렇게 맥을 추지 못하고서야 마감까지 견디여내겠는가.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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