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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산제비》가 깃들인 곳

 

박세영(시인)

                    

                      • 1902년 7월 7일 경기도 고양군에서 출생.

                      • 1924년 9월부터 염군사의 동인으로 참가, 카프에 가맹.

                      • 1946년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서기장.

                      • 1989년 2월 28일 사망.

                                                                      

 

박세영은 《애국가》와 더불어 우리 인민들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행복한 시인이다. 키도 크지 않고 그리 잘난 사람도 아니지만 조국과 민족의 넋을 시줄에 담으며 비다듬고 자래운 그의 정신세계는 대단히 높고 아름다운것이였다.

1902년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두모리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여난 박세영은 어린시절부터 문학에 뜻을 두고 열정을 쏟았다. 그리하여 1922년에 문학수재를 많이 키워내는 학교로 이름이 났던 서울 배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그후 《새 누리》, 《자유신종보》 등의 동인지를 발간하였으며 염군사를 거쳐 카프의 성원으로 된 그는 우리 나라의 진보적시문학발전에 뚜렷한 자욱을 남기였다.

지금도 우리 북반부만이 아니라 남반부에서 발간되는 문학사교재들과 해방전문학작품집들에는 반드시 박세영의 이름과 함께 그의 시 《산제비》가 오르군 한다.

혹시 박세영이란 이름은 몰라도 시 《산제비》라고 하면 동심에 새겨진 인상깊은 시구절과 함께 모르는 사람이 없는것이다. 그래서 뭇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산제비시인》이라고도 부른것이 아닐가.

 

땅이 거북등같이 갈라졌다

날아라 너희는 날아라

그리하여 가난한 농민을 위하여

구름을 모아는 못 올가!

날아라 빙빙 가로세로 솟치고 내닫고

구름을 꼬리에 달고오라

 

산제비야 날아라

화살같이 날아라

구름을 헤치고 안개를 헤쳐라

 

가난한 인민을 위해, 짓밟힌 조국을 위해 재생의 생명수를 속시원히 뿌려줄 변혁의 구름을 꼬리에 달고오는 산제비를 그리여 목메인 웨침을 터뜨렸던 시인은 자신이 곧 《산제비》가 되여 《구름을 헤치고 안개를 헤쳐》 시련많은 창작과 투쟁의 한길을 걸어왔다.

박세영이 걸어온 인생행로는 참문학의 길을 찾아 모대긴 사색의 련속이였고 불같은 심장을 현실속에서 태우며 우리 인민이 바라는 시와 가사를 창작하여 시대를 대표하는 수많은 가요를 불러낸 보람찬 창조의 나날이였다.

아무리 머리가 총명하고 재간이 있다 해도, 제아무리 출중한 재능과 뛰여난 실력이 있다고 해도 해방전에는 나라없는 식민지인의 불우한 처지에서 벗어날수 없던것이 지난날 우리 나라 문인들의 한결같은 불행이였다.

박세영의 경우도 례외로 될수 없었다. 하기에 그에게 있어서 민족의 태양이 삼천리를 비친 해방의 날은 인생의 새 출발을 약속해준 아침이였고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안긴 그날은 이 세상에 두번다시 태여난 운명전환의 출생일이였다.

박세영은 과연 어떤 길을 걸어 그 운명전환의 새날을 맞이할수 있었고 뜻깊은 날과 날들에 어떤 노래를 엮어 자기가 태를 묻어온 남녘의 고향땅에 보내였던가.

 

 

해방은 되였으나

 

조국해방은 온 조선땅에 환희와 격정의 파도를 몰아왔다. 누구라 할것없이 해방열에 떠서 웃고 떠들며 춤을 추었다.

악착한 왜놈들이 망하고 지지리 억눌리고 짓밟혔던 인생들이 네활개를 저으며 거리를 활보하였으니 정녕 암흑이 들어찼던 이 땅에 눈부신 광명이 찾아온것 같았다. 서울장안에는 이제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만고의 빨찌산영웅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입성하신다는 소문이 퍼져 남녀로소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이를 손꼽아 기다리였다.

서울역은 며칠째 장군님을 기다리는 환영군중으로 꽉 들어차있었다. 그들속에는 김일성장군환영준비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된 박세영도 있었는데 그는 잠시도 가만있지를 못했다. 왜놈의 학정에 침을 뱉고 돌아서서 한동안 창작의 붓을 꺾었던 그의 가슴은 북받치는 시적흥분으로 하여 용광로처럼 끓어올랐다.

이처럼 해방의 은인이신 어버이수령님을 열렬히 흠모하였기에 그는 해방된 남조선땅에서 자신의 열정과 재능을 깡그리 바칠 각오를 가지고 서울시인민위원회에서 사업하면서 자신의 심정을 노래한 시 《위원회에 가는 길》, 《휘날려라 붉은기》, 《산천에 묻노라》 등 여러편의 서정시들을 창작발표하였다.

자유출판사 편집원이기도 하였던 박세영은 《별나라》(해방전 아동문학잡지) 속간호를 발기하고 출판하는데 전심함으로써 남녘인민들의 애국심을 분발시키는데 적극 이바지하였다.

그의 포부와 희망은 망망대해처럼, 푸르른 창공처럼 크고 넓었다.

하지만 미제침략자들의 남조선강점으로 하여 자유와 민주로 불타던 그의 넋은 여지없이 짓밟히고말았다.

서울시인민위원회는 강제해산당하였고 민주인사들은 감옥으로 끌려갔으며 일제때의 민족반역의 무리들이 애국을 가둔 철창우에서 또다시 제세상이 왔다고 춤을 추며 돌아쳤다.

해방의 물결과 함께 찾아왔던 환희와 열정은 소나기맞은 숯불처럼 사그라지고 독을 품은 검은구름이 사람들의 머리우에 배회하였다.

시인은 참을수 없었다. 진리와 사랑에 바치는 심장의 불길이 무한대한것도 시인이고 진리와 사랑의 원쑤를 단죄하여 서슴없이 단두대에 오르는것도 시인이다. 박세영은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면상을 자기의 필봉으로 후려치는 격전에 들어섰다.

이 시기 그는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허위와 위선에 찬 반인민적인 정체를 폭로규탄하면서 원쑤들의 그 어떤 감언리설에도 속지 않고 투쟁의 길에 나설 확고한 사상적지향을 노래한 시 《그치라 요녀의 소리》를 창작발표하였다.

 

배고파 누운 인민에게

밥대신 맥빠진 노래나 들으라는가

 

굳건한 인민의 나라를 세우려는데

아니 북조선엔 이미 인민정권 섰는데

이곳은 배나 더 고파보라고 웨치는

악마의 주문같이도

어린애도 헛소리라 라지오를 끄거던

무슨 잠꼬대같은 소리를 또 하느뇨

 

우리들의 갈길 뻐언 하거던

하필 구렁텅이로 가라는 심사는

건국의 뜻이 아니요

나라를 해치려는 반역의 뜻이거니

이제 너희들 소리엔 귀머거리가 되리라

 

샨데리야불은 밝고

안락의자의 단꿈에 행복이 노근할제

추위를 모르는 보료에서

늙었어도 애욕을 지근대는

오, 너희들은 흥이 나리라만은

너희들 거짓애국자들은

 

그리하여 늬들 역도들이 지어내는

모든 악법이 웨쳐나올 때

인민은 요녀의 소리로밖에 모르거든

그치라, 장송곡같은 모든 소리를

누가 알겠다느냐

누가 듣겠다느냐

 

항거하는 인민의 소리만이

피끓는 가슴에서 가슴으로

거짓전파를 덮어누르나니

묵묵히 새 력사를 하는

내 그 힘찬 소리 아노라

내 그 힘찬 소리 듣노라

                    (시 《그치라 요녀의 소리》)

 

시에서는 원쑤들의 온갖 회유기만을 잠꼬대와 같은 주문으로, 요녀의 소리로 단정하고 놈들의 반인민적매국행위를 폭로단죄하면서 《항거하는 인민의 소리만이/ 피끓는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파하는 새 력사의 힘찬 소리임을 힘있게 강조하고있다.

이와 함께 시에서는 제놈들이 아무리 달콤한 말로 인민들을 회유기만해도 이에 속히우지 않고 항거의 길로 내닫고야말 인민들의 높은 정신세계가 격조높이 일반화되고있다.

시 《그치라 요녀의 소리》와 함께 시인은 해방직후 어중이떠중이들이 밀려드는 남조선의 현실을 폭로한 시 《아, 여기들 모였구나》(1946년)를 창작하였다.

시는 해방후 일제를 대신하여 서울에 기여든 미군이 창경원에서 《밤사꾸라》를 벌려놓고 서울시민들을 꾀여부른 교활한 책동을 소재로 하여 씌여졌다.

작품은 창경원앞에 모여든자들이야말로 민주주의기발을 들고 나아가던 인민들의 힘찬 행렬에 훼방을 놀다가 겁먹고 비실비실 달아나는 비겁한자들이라는것을 발가놓았으며 친일매국역도들에 대한 멸시와 조소의 감정을 더욱 심화시키고있다.

또한 시는 원쑤들의 정수리를 조기는듯 한 분노의 열정으로 하여 친일친미매국역도들에 대한 모멸과 조소로써 그의 멸망의 불가피성을 선고하고있다.

이외에도 시인은 《민족반역자》(1945년), 《너희들도 조선사람이냐》(1946년), 《나도 새 사람 되리》(1946년) 등을 발표하였다.

 

땅받은 고마움에 더 내려던 현물세도

아예 받지 않던 인민위원회

그러나 추수때면 아귀같이 달려들던

지주, 마름 그리고 농회놈들이 생각난다

 

학교문간도 못 가던 순돌이형제는

학교엘 가고

나는 밤이면 국문을 배우러 학교엘 갑네

 

살길을 밝혀주는 우리 글 모르고

살수가 있나

세상은 인민의 새 나라 나도 새 사람 되리

                                   (시 《나도 새 사람 되리》중에서)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반동적정체를 폭로규탄한 이 시기 박세영의 시들은 시인자신이 목격하고 체험한 사실들에 기초하여 창작된것으로 하여 시적정서가 보다 예리하고 강하게 울려나오고있으며 정론성이 강한것으로 특징적이다. 증오도 하고 규탄도 하고 사랑도 하는 시들을 쓰고 또 썼으나 미제가 주인행세를 하는 남조선에서 재능의 피방울이 뛰는 시인 박세영의 앞길은 갈수록 암담하였다.

《산제비》가 깃을 펴고 날을 창공은 과연 어디인가.

몸부림치던 박세영은 자유의 노래, 행복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북녘의 하늘을 우러렀다. 그곳이 《산제비》가 깃을 내릴 대지이고 하늘이였다.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 공화국북반부를 동경할수록 마음은 한없이 설레였다.

마침내 인생전환의 날은 왔다.

1946년 6월 《산제비》 박세영은 38 선을 넘어 오매에도 그립던 공화국의 품, 위대한 태양의 품에 안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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