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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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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정일동지께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켠 벽의 지도앞으로 다가가시였다.

《저 자강도를 보십시오.》

무력부장이 온통 진갈색바탕우에 등고선들이 조잡하게 밀집된 산악지대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저기서 한해에 량곡이 얼마나 나올것 같습니까?》

《예?》

뜻밖의 질문에 무력부장의 눈이 뎅그래졌다.

《왜 그렇게 놀랍니까?》

《놀라지 않게 됐습니까. 전 놈들이 너무 못되게 노니 한바탕 답새길 일이라도 생겼는가 했습니다.》

《때릴 때가 되면 때려야지.》

김정일동지께서는 배포유하게 말씀하시고 상체를 젖히시였다.

《무력부장동무, 다른게 아니라 지금 자강도로동계급이 힘겨운 투쟁을 하는데 식량난에 봉착했습니다. 아무래도 무력부장동무를 달궈야지 식량이 나올데가 없습니다.》

무력부장이 곧은박이 성미그대로 펄쩍 뛰며 어깨를 솟구었다.

《자, 너무 흥분하지 말고 진정해서 잘 생각해보십시오.》

《장군님, 그거야 유사시에만 쓸수 있도록 군령으로 보관해두신 전략물자가 아닙니까.》

《알고있습니다.》

그이께서 사정조로 부드럽게 말씀하시는데도 무력부장은 두발을 딱 벋딛고 좀처럼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놈들이 불의에 덤벼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후에 꼭 메꿉시다.》

무력부장이 그이의 간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난감한 기색을 지었다.

김정일동지께서도 조국이 위기에 직면한 이 준엄한 시기 어떤 어려운 요구를 하셨는가를 깨닫고 묵묵히 서계시다가 철의 담력을 지닌 령장의 강직한 모습으로 방안이 드렁드렁 울리게 말씀하시였다.

《무력부장동무, 지금도 우린 전쟁을 하고있습니다. 제국주의의 떼무리들이 우리를 먹어보려구 날뛰고있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가 얼마나 큰 전쟁을 치르고있습니까. 우린 어떤 일이 있어도 놈들의 경제봉쇄를 짓부셔버리고 자강도를 일떠세워야 합니다. 자강도로동계급이 쓰러지지 않고 내가 준 과업을 수행하면 그게 이기는겁니다.》

무력부장의 거뭇거뭇한 눈섭이 꿈틀거리였다. 한참이나 잠자코 있던 그가 비로소 얼굴에 드리웠던 그늘을 지워버리면서 말없이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항일전쟁때엔 유격대원들이 쌀을 쌓아두고 왜놈들과 싸웠습니까. 그때에도 적들의것을 빼앗아먹었지요. 총도 그렇구 군복용 천도 그렇구. 봄철에 행군을 하면서 도처에 심어놓은 감자와 조, 호박으로도 식량을 보충하지 않았는가 말입니다.》

《하, 그랬지요.》

무력부장이 몸을 젖히면서 입을 항 벌렸다.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적들이 서뿔리 우리한테 덤벼들진 못합니다. 설사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식량은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리구 무력부장동무야 개인적인 친분관계를 봐도 태혁동무의 아버지 강희준이와 모르는사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30년대부터 왕청에서 강희준이와 함께 싸웠구요. 태혁동무를 도와줍시다. 재삼 말하는데 자강도를 도와주는것이 우리를 꺼꾸러뜨리려고 어리석게 날뛰는 적들의 귀뺨을 답새기는 일입니다.》

《장군님, 알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자강도의 돌파전에 참가하는것으로 되지 않습니까!》

그이께서는 그만 크게 웃으시였다.

몇해전 통다이야문제로 마찰이 생겨 오진우무력부장이 태혁을 단단히 벼른다는 말을 듣고 그들을 스위스로 함께 휴양을 보냈던 일이 떠오르신것이였다.

그때 스위스에 갔다 온 오진우가 얼굴이 활짝 개여 돌아와서 《장군님, 태혁이 그 친구 알고보니 사람이 괜찮습니다. 제가 졌습니다.》라고 했었다. 지금도 그때의 오진우처럼 이 무력부장의 왕고집을 꺾기가 보통 힘들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그이께서는 드디여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시였다. 무력부장이 평시의 꼿꼿한 자세로 따라 일어서면서 힘차게 말씀올렸다.

《장군님, 래일 아침 당장 자강도에다 전선수송차들을 출동시키겠습니다!》

그날 밤 자강도당청사의 모든 방들에서는 간데라불빛이 희미하게 새여나왔다. 장군님께 원목수출을 제기한 태혁의 일이 걱정스러워 모두들 근심에 싸여 퇴근을 못하고 밤을 밝히고있었다. 그들은 밤 3시경 뜻밖의 소식을 듣고 출입문을 걷어차며 복도로 뛰여나왔다. 온 청사가 떠나갈듯이 아래웃층에서 쾅쾅 문을 여닫는 소리, 복도와 층계를 굴러대며 무질서하게 달리는 발자국소리… 누군가는 《장군님께서 자강도에 식량을 보내주셨소!》라고 웨쳤다. 울음섞인 목소리였다. 여기저기에서 다급히 달려온 사람들은 태혁의 사무실앞으로 밀려가 담벽을 쌓고 법석 떠들었다. 날래게 먼저 뛰여온 사람들로 앞이 막혀 방으로는 들어갈 형편이 못되였다. 그렇게 흥분한 사람들이 연방 달려와 덮씌우는 바람에 태혁은 숨이 막혀 말도 못했다. 장군님께서 자강도인민들의 식량을 해결할 과업을 주셨지만 내가 한 일이 무엇인가? 무엄하게 원목수출을 허락해달라고 제기했는데 친히 식량을 보내주시다니!… 자강도의 악조건에서 강행군의 돌파구를 열어제끼기 위한 투쟁은 첫 걸음부터 힘에 겨웠지만 매번 앞을 가로 막아서는 난관을 도맡아안고 풀어주시는 장군님이시였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걷잡지 못하던 태혁은 누구인가 달려들어 우악스럽게 껴안으며 《책임비서동무의 목이 날아나는가 했는데 이런 사랑을 받아안다니요!》하고 과따치는 말에 허허 웃었다. 그는 웃고있었지만 얼굴에서는 여전히 걸죽한 눈물이 즐벅하게 흘러내리였다.

《하기야 나도 속이 한줌만 했지. 막말로 말해서 오라는 져도 할일은 해야겠다고 생각했댔으니까. 까딱하면 자강도사람들을 다 굶겨죽일것 같더란 말이요.》

태혁은 눈물에 흠뻑 젖은 얼굴을 쳐들고 그의 량어깨를 꽉 잡았다.

《여보, 우리가 큰 전투를 벌려놨지만 똑바로 하는 일이 뭐요? 하나에서 열까지 장군님께서 우리 일을 보살피시며 걸린 문제들을 다 풀어주셨지. 단신으로 고난의 행군을 이끌어가시는 장군님의 무거운 짐을 덜어드리지 못할망정 부담만 드리니 죄송스럽단 말이요. 난 원목을 수출하지 않고선 살아갈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장군님께선 이 어리석은 인간을 처벌할 대신에… 정말 눈물이 나서 못 견디겠소!》

순간 뜨르릉- 요란히 울리는 전화종소리에 끌려 태혁은 책상앞으로 다가섰다. 갑자기 깊은 밤중에 어디서 걸려오는 전화인가 하여 모두들 긴장히 지켜보는 가운데 수화기를 집어든 태혁의 가슴은 세차게 울렁거렸다. 뜻밖에도 귀에 익은 장군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거의나 거리감이 없이 똑똑히 울려왔다.

《태혁동무요?》

《그렇습니다. 장군님!》

태혁은 두손으로 수화기를 꽉 움켜잡았다.

《왜 아직 쉬지 않소?》

《…》

태혁은 목안이 메여올라 대답을 못했다. 바로 자기가 그렇게 묻고싶었던것을 뒤늦게야 깨닫고 겨우 입을 열었다.

《장군님, 고맙습니다. 전 이 새벽에 장군님께서 저의 외람된 편지를 보아주시고 이렇게 귀한 식량을 보내주실줄은…》

《태혁동무, 동무들이 이해 겨울에 배를 곯으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소.》

그 짤막하신 말씀속에 담겨있는 뜨거운 사랑에 태혁은 다시금 격정이 북받쳐올라 고개를 떨어뜨리였다.

《장군님…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그건 무슨 말이요?》

《장군님께선 원목수출을 엄금하셨지만…》

김정일동지께서는 심한 자책에 잠겨있는 그의 마음을 쓰다듬어주시듯 잠시 말씀이 없으시였다.

《그러지 않아도 동무가 그렇게 생각할것 같아서 전화를 했습니다.》

《예?!》

태혁은 그만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동무가 인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일군이 되기 위해 애쓰고있으니 반가운 일이요. 내 이전에도 동무와 만나서 말했지만 우리가 이 어려운 시기에 자강도로동계급처럼 혁명성이 강한 인민을 가지고있는것은 참말로 다행한 일입니다. 수령님의 덕분입니다. 한평생 수령님께서 귀중히 키워오신 인민보다 우리에게는 더 큰 재산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 인민에게 자기를 송두리채 바칠줄 아는 참다운 일군이 되여주시오.》

《장군님… 꼭… 명심하겠습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조용히 수화기를 놓으시였다. 순간 태혁은 젖은 얼굴을 훔치면서 어린애마냥 어깨를 들먹이였다. 가실길 없던 자기의 안타까움과 고민이 장군님께 그토록 큰 기쁨이 되였단 말인가! 그의 입안으로는 소금물같은 쩝쩔한것이 그침없이 흘러들었다. 때마침 눈물이 그렁하여 지켜보던 사람들이 다가들어 그를 와락 부둥켜안았다. 그의 아래도리를 두팔로 꽉 그러잡고 《책임비서동지!》하고 꺽꺽 흐느끼는 사람들도 있었다. 태혁은 한참이나 행복의 절정에 올라선 사람의 심경에 잠겨 그들의 어깨며 잔등을 쓸어만지고 나서 웅글진 목소리로 뜨직뜨직 말했다.

《동무들, 우리 자강도인민들은 가장 엄혹했던 고난의 행군시기에 장군님의 은정으로 시련의 고비들을 넘어섰음을 두고두고 옛말처럼 이야기하게 될것이요. 자, 이젠 모두들 눈물을 거두시오. 장군님의 이 사랑에 보답하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산 목숨이라고 할수 있겠소? 천백배의 용기로 불사신처럼 일떠서서 장군님의 명령을 관철합시다.》

《옳습니다. 전투는 불과 석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 석달이요. 우리 자강땅사람들의 본때를 보이기요.》

태혁은 창문앞으로 힘차게 다가섰다. 멀리 평양의 하늘가에 시원을 둔듯 한 새벽빛이 푸르스름히 서리며 어느덧 강계땅의 명산, 흰 눈을 떠이고 솟아있는 독산우의 어둠을 한거풀 서서히 벗겨버리고있었다.

온 강계시가 깊은 잠에서 깨여나지 못한 그 잊을수 없는 새벽이였다.

남산기슭의 외딴 집에서 고즈넉한 밤정적을 흔들며 피아노소리가 격동적으로 울렸다. 집으로 돌아온 태혁은 흥분된 마음을 금할길 없어 피아노의 건반을 힘차게 두드려대였다. 몇해전 정무원에 있을 때 장군님께서 그가 음악을 몹시 사랑한다는것을 알고 보내주신 선물피아노였다. 태혁은 직업이 직업인지라 그 이후 늘쌍 다사분주한 일들에 들볶이다보니 언제 한가하게 피아노앞에 마주 앉을사이가 없었다. 피아노는 현이가 치고 짬짬이 감상하는 정도에 그쳤는데 오늘은 딸이 대신할수 없는 자기 가슴속의 세찬 격정을 직접 피아노의 장중한 선률에 열정적으로 쏟아부었다. 장군님을 우러르는 티없이 깨끗한 마음, 그 숭엄한 흠모의 세계에 심취되여 피아노를 치던 태혁은 갑자기 높뛰는 심장속에서 뜨겁게 분출하는 가사가 떠올라 번개불을 휘여잡듯 종이장우에 급히 적다말고 펜을 멈추었다. 아, 이런 때엔 이 가슴에 넘쳐나는 기쁨을 시인처럼 격조높이 마음껏 읊을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는 두손을 건반우에 얹고 안타까움에 휩싸여 고개를 뒤로 젖히였다. 벌써 몇달째 사무실과 발전소건설장들에서 침식을 하고있는 그의 색바랜 솜외투와 바지가랭이는 볼성사납게 군데군데 세멘트몰탈이 튕긴대로였다. 반쯤 열려진 사이문밖에 서있는 안해가 여러모로 너무나도 몰라보게 달라진 남편을 놀랍게 지켜보았다.

《아니, 어떻게 된 일이예요?》

태혁은 그때에야 피아노에 못 다 쏟아부은 자기의 심정을 터뜨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여보, 장군님께서 우리 자강도인민들의 식량을 풀어주셨소!》

《녜?!》

안해의 눈에 대뜸 눈물이 글썽해졌다.

피아노앞에서 성큼 일어난 태혁은 안해의 어깨를 힘있게 흔들었다.

《지금 온 도가 부글부글 끓고있소. 공장, 기업소, 발전소건설장들마다에선 궐기모임들이 벌어지고… 이젠 강재요. 강재만 해결하면 우린 발전소도 건설하고 공장도 다 돌릴수 있단 말이요.》

 

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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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은 한그람의 강재도 해결받지 못해 안타깝기 이를데 없었다. 그동안 남몰래 혼자 애꿎은 눈물인들 얼마나 흘렸는지 몰랐다. 이럴줄 알았으면 왜 떠났던가? 애당초 자기는 자신이 없다고 나누울걸 그랬다는 후회가 하루에도 몇번이나 고개를 쳐들었다. 김철에는 강재를 받으러온 사람들로 꽉 덮이다싶이 하였다. 매일과 같이 승벽내기를 벌리였다. 정무원의 모모한 간부들과 무력부장령들, 직위를 놓고봐도 자기같은건 상대도 되지 않을만큼 까마득히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설치며 돌아가는 판이여서 혜경은 아직 지배인과 조용히 마주 앉지도 못하였다. 어쩌다가 겨우 기회가 생겨 지배인실로 비집고 들어가면 지배인은 혜경이가 찾아온 용무를 말하기도전에 대뜸 버럭 성을 내며 강재가 어디 있는가, 동무와 말씨름을 할사이가 없다며 훌쩍 나가버리였다. 지배인이 무섭게 군다는건 이루 말할수가 없었다. 그와 한두번 대상하여 본 사람들은 다들 호랑이같은 사람이라고들 하는데 진짜 지배인은 여불없는 범이였다. 어디 말이나 변변히 붙일수 있게 하는가. 그래도 혜경은 어떻게 하든지 지배인을 구슬려 다문 몇t의 강재라도 받아가지고 돌아가야겠기에 오늘도 아침부터 지배인실앞에 가서 그가 나타나기만 눈이 새까매서 기다렸다.

태혁은 그를 떠나보내며 사람들의 심장을 울리라, 그러면 얼마든지 강재가 나온다며 선전대의 림신애까지 붙여주었지만 이젠 그 푸접이 좋은 말괄량이조차도 지배인앞에서 맥을 추지 못하고 그저 꿔온 보리자루처럼 혜경이한테 끌려다니다싶이 한다. 혜경이앞에서 무슨 생각엔가 골똘히 잠겨있던 림신애가 그를 바라보며 시들히 말했다.

《혜경이, 정말 불쌍해서 못 보겠구나. 한다하는 도당 부원의 웃주제가 그게 뭐야? 신발이랑 앞코숭이가 다 터진걸 신구.》

혜경은 장난기가 어려있는 림신애의 말에 서글프게 웃으면서 자기들의 편리화를 내려다보았다. 림신애가 신고있는 편리화도 자기의것과 별반 구별이 없이 헐어빠진데다가 흙먼지투성이가 되여 볼 모양이 없었다. 선전대 《배우》의 체모에 어울리게 늘쌍 윤기가 반질반질 도는 굽높은 구두를 신고 강계바닥을 때각때각 울리며 다니던 멋쟁이처녀, 키가 늘씬하고 두눈이 서글서글한 림신애의 행색도 여간 초라해보이지 않았다. 하긴 그들이 이 김철에 와서 얼마나 분주히 드달려 다니였던가. 한밤중에도 성의껏 마련한 후방물자들을 들고 용해장과 출하직장의 로동자들을 뻔질나게 찾아다니느라 그들의 얼굴에서는 송골땀이 마를사이가 없었다. 그러한 나날이 흘러오는사이에 이젠 제철소로동자들과 퍼그나 친숙해져 길에서 만나면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정도가 되고 그들도 《강계처녀》들의 안타까운 문제를 풀어주지 못해 은근히 마음을 쓰는데 지배인만은 여전히 쓴외보듯 하니 속상한 일이였다. 태혁이가 김철에 도착하면 자주 전화도 하고 편지도 써보내라고 당부했지만 혜경은 매번 우는 소리만 할수 없어 그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있다. 하루빨리 강재가 도착하기를 목마르게 기다리고있을 책임비서동지의 마음인들 오죽 안타까울가? 혜경은 그 생각을 하면 밤에도 잠이 오지 않아서 꼬박 뜬눈으로 새우군 한다. 이젠 식량이 다 떨어져 당장 먹고 살아갈 일도 급하였다. 그래서 한주일전에 김중범아바이를 강계로 보냈는데 왜 아직 돌아오지 않는지 알수 없다. 혜경은 이래저래 두루 걱정스러운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남은 강재때문에 속이 타서 죽겠다는데 넌 별소릴 다하누나. 생뚱같이 신발따위가 뭐냐?》

《혜경인 정말 마음도 곱지.》

《애두, 제발 실없는 소린 그만해!》

혜경은 발끈해서 신애를 흘겨보았다. 좀해서 남한테 성낼줄 모르던 혜경이였는데 요즘은 자신도 놀랄 정도로 곧잘 신경질을 부리군 했다. 림신애는 그러건 말건 고운 눈에 생글생글 웃음을 담고 그를 말끄러미 바라보다가 어리광이라도 부리듯이 혜경의 한팔을 살짝 끄당기였다.

《난 뭐 네 마음을 모르는줄 알어? 어서 가자. 오늘은 아무리 여기서 지배인을 기다려도 소용이 없어. 여느때 같으면 벌써 사람들이 잔뜩 모여와서 지배인을 만나려고 법석 떠들겠는데 이렇게 조용하지 않어? 중범아바이가 오지 않았는지 빨리 합숙에 나가보자꾸나.》

혜경은 그 말을 듣고보니 그럴상 싶어서 림신애와 함께 숙소로 정한 로동자합숙으로 나가다가 깜짝 놀라 멈춰섰다. 여러명의 로동자들이 《여, 빨리 기중기차를 불러와!》하며 그들의 옆으로 부리나케 뛰여갔다. 웬일인가 했더니 바다물을 끌어들이는 제철소의 랭각관이 터졌다는것이였다. 혜경은 자신도 왜 그랬던지 모르게 《신애, 뭘해!》 하고 다급히 웨치며 그들을 뒤쫓아갔다. 김철에 와있는동안 어느새 제철소사람이 다되여버린 그였다. 하지만 사고현장에 도착한 혜경은 너무도 어마어마한 광경을 목격하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열아름도 넘는 랭각관이 험상궂게 쩍 갈라진 사이로 솟구쳐나오는 물이 번지여 홍수가 난것 같았다. 이런 때면 쇠관의 터진 부위에 철테를 덧씌우고 단단히 조인다음 용접으로 때붙인다는데 미처 준비작업이 안돼 주위는 온통 물바다가 돼버리였다. 시급히 사태를 수습하지 않으면 몇개 직장을 세우게 되는 위급한 정황이였으나 령하 30도로 떨어진 혹한속이다 보니 누구도 감히 선뜻 다가설 엄두를 못냈다. 울상이 된 혜경이가 《이 일을 어쩜 좋아. 동무들, 저 물을 몸으로 막아서라도 강철을 뽑아내자요.》하며 애원에 찬 눈길로 로동자들을 둘러보았다.

혜경의 안타까운 호소에 감동된 로동자들이 굉장한 압력으로 내뿜는 물속으로 뛰여들었다. 림신애도 얼굴을 후려치는 물벼락에 비칠거리며 뒤따르다가 《신애, 뭘해. 빨리 가서 저 방송차를 잡아!》하는 혜경의 웨침에 얼핏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옆으로 지나가는 방송차가 눈에 띄였다. 림신애는 방송차를 따라가면서 《차를 세우라요. 세워요!》하고 소리쳤다. 방송차가 멈춰섰다.

림신애는 차에 올라 미처 량해를 구할사이없이 마이크를 들고 사고현장에서 벌어진 위태로운 사태를 다급히 알렸다. 여기저기에서 로동자들이 주먹을 쥐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가마니며 솜옷을 벗어들고 달려와 터진 랭각관을 막기 위한 전투를 벌렸다. 그들의 불덩어리같은 마음에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라 림신애는 전시가요 《결전의 길로》를 격조높이 불렀다. 그의 노래는 도간도간 흐느낌때문에 끊어졌다. 근 반시간동안의 들끓는 분위기속에서 드디여 랭각관수리작업이 끝나자 로동자들은 저마끔 달려와 혜경을 둘러싸고 《정말 수고했소.〈강계처녀〉들의 이악성엔 쇠돌도 녹아나겠소.》하며 손을 꾹꾹 잡아주었다. 혜경은 추위에 꽁꽁 언 녀성같지 않게 생기를 띄며 명랑하게 웃어댔다. 자기의 흠빡 젖은 몸에 솜옷을 씌워주는 림신애와 함께 혜경은 제철소합숙으로 마구 줄달음쳐 갔다.

《혜경이, 넌 정말 도담해.》

림신애가 감탄해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무 비행길 태우지 말아. 난 오늘 신애의 진짜 노래를 들었어. 넌 무대에서보다 훨씬 더 노래를 잘 부르더구나.》

《정말?》

림신애가 깔깔 웃으면서 혜경을 살틀히 그러안았다.

《혜경아, 빨리 가자. 오늘은 어쩐지 중범아바이도 왔을것 같애.》

림신애의 말처럼 중범아바이가 왔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강계소식을 통 모르고 지내는 혜경은 여러모로 중범아바이가 여간 기다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합숙으로 돌아가보니 김중범아바이는 오지 않았다. 그가 젖은 옷을 갈아입고 옆방으로 가보니 무역국부국장만 벽에 잔등을 붙인채 찌뿌둥히 앉아서 그들을 맞아주었다.

《오늘도 또 헛탕이요?》

《네, 만나지 못했어요.》

부국장은 그럴줄 알았다는듯이 한숨을 내쉬며 심드렁히 말했다.

《혜경동무, 이젠 아무래도 안되겠구만.》

《뭐가 안된단 말이예요.》

《이제라도 도당에 사실대로 보고하는게 어떻소. 그래야 김철의 강재를 단념하고 한시바삐 대책을 새울게 아니요. 괜히 승산이 보이지 않는걸 될것처럼 하면서 시간만 보내다간 큰 일을 칠것 같단 말이요. 강재때문에 발전소건설이 중단되기라도 하면 그 책임을 누가 지겠소?》

혜경은 가뜩이나 일이 뜻대로 되여주지 않아서 속상한데 부국장까지 걸핏 하면 신심이 없는 말을 하니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알수 없었다. 정말 이러다간 발전소건설에 지장을 주게 되진 않을가? 손맥이 탁 풀린 그가 머리수건도 벗지 못하고 나른히 앉아있는 모양을 한참이나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던 림신애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감돌고있었다.

《부국장동문 왜 그렇게도 자신이 없어 해요?》

《됐소. 그만하기요. 내가 또 괜한 소릴 한것 같소. 이제 동무보구 물러서라면 호락호락 물러서겠소?》

부국장은 림신애의 가시돋힌 말을 얼른 막아버리고 나서 김중범에 대한 불만을 한바탕 터뜨렸다.

《그런데 중범령감은 왜 떠난지 한주일이 되도록 아직도 나타나지 않소?》

《하루이틀사이에 오겠지요.》

《오기야 하겠지. 제기랄, 별 령감태기가 다 따라와가지구 애먹이누만.》

부국장은 후끈 단김에 김중범이가 이전에 시행정위원회 위원장직책에 있다가 과오를 범하고 출당철직당한 이야기까지 꺼내며 연방 볼이 부어서 욕설을 퍼부었다.

혜경은 자기도 강계를 떠나기 앞서 부국장처럼 김중범아바이를 왜 김철에 보내는가고 물었던 일이 떠올랐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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