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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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태혁은 수화기를 덜컥 소리가 나게 놓고 한손으로 이마를 꾹 눌러짚었다. 그의 이마에 담박 식은땀이 내돋았다. 사색이 된 그의 얼굴을 보고 량정국장은 말을 붙일 엄두도 못냈다. 목석처럼 우두커니 멍청히 앉아있던 태혁이가 자리에서 움쭉 일어났을 때에야 량정국장은 어두운 낯빛으로 근심스럽게 물었다.
《사고현장으로 가시렵니까?》
《사람이 상하지 않았소? 편직지배인이 어떤 동무요!》
태혁은 청사의 문밖으로 나서자 급히 승용차를 타고 사고현장으로 내달리였다. 녀성의 몸으로 이삼일이 멀다하게 출장을 다니며 이악하게 식량을 끌어들이던 동무인데 어찌하여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편직공장지배인 리순정은 강계바닥의 녀걸로 소문난 녀성이였다. 남성들 찜쪄먹게 장대한 체격에 보기 좋은 키꼴, 억실억실한 눈매, 자기의 시원시원한 생김새처럼 순정은 어떤 어려운 과업을 맡겨도 다 해제꼈다.
늘쌍 동분서주하며 뛰여다니느라 한달치고도 집에 들어오는 날이 이삼일도 되나마나 했다. 게다가 낮에 차를 타고다니는 시간이 아까와 늘 밤길을 다니다보니 그가 언제 잠을 자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태혁에게서 그 사실을 보고받으신
《편직지배인을 병원에 호송했소?》
《운전사만 병원에 가고 지배인동문 지금도 저렇게 멍하니 앉아있습니다.》
태혁은 그제야 한쪽 바퀴를 허공에 쳐든채 벌렁 뒤집힌 화물자동차옆에 퍼더앉은 편직지배인을 알아보고 산아래로 달려내려갔다. 그를 부축한 젊은이가 헐떡거리며 사고난 경위를 설명했지만 그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오로지 머리속엔 편직지배인이 무사했으면 하는 한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순정은 태혁을 알아보고도 그저 오도카니 앉아있기만 했다. 그가 전혀 몸을 움직일 형편이 못되여 그런다는것을 직감한 태혁이 왜 병원에 가지 않는가고 물어서야 순정은 헝클어진 머리를 떨구며 서럽게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책임비서동지, 죄송…》
《무슨 소릴 하오. 그래 어딜 다쳤소? 어딜…》
태혁이 시뻘겋게 진흙투성이가 된 어깨를 만지려하자 순정은 눈물을 머금고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일없습니다.》
《일없다는 사람이 왜 어깨도 다치지 못하게 하오? 이거 온통 뼈가 박산이 난게 아니요, 엉?》
《책임비서동지, 정말 원통합니다. 전 열밤을 못 자도 견딜수 있지만 운전사가 졸수 있다는 생각을…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순정은 시퍼렇게 멍든 얼굴을 숙이고 그냥 흐느꼈지만 제 손으로 눈물을 닦지도 못했다.
《순정동무, 내가 동무에게 과중한 과업을 맡겼소. 날 용서하오.》
편직지배인이 밤잠을 못 자며 뛰여다녀도 쉬울 생각을 못한 태혁은 손수건을 꺼내여 그의 눈물을 닦아주다말고 흠칫 놀랐다. 온몸이 파김치처럼 되고도 끄떡없이 앉아있던 편직지배인이 조용히 눈을 내리감으며 옆으로 실그러졌다. 갑자기 의식을 잃어버린 그의 몸을 부여안고 태혁은 목멘 소리로 부르짖었다.
《순정이, 정신을 차리오. 정신을!…》
태혁의 가슴속에서 웅글게 터져나온 그 말에 놀란 사람들이 령길에서 달려내려오고 한편으로는 편직지배인을 병원으로 호송하느라 볶았다쳤다.
조금후 태혁은 순정을 구급차에 실어보내고 뒤따라 자기 사무실로 돌아왔다.
책상우에는 량정국장이 제출한 사직서가 그대로 놓여있었다.
태혁은 사직서를 구겨 휴지통에 집어넣고 창문을 향해 돌아섰다.
테굵은 안경밑에서 뜨거운 눈물이 끓어번지였다. 지금의 형편에서
《어떻게 됐소?》
《책임비서동지의 의향을 전달했습니다만…》
량정국장은 기가 죽어 어깨숨을 몰아쉬였다.
《부위원장동문… 억병으로 취했습니다.》
태혁의 눈길이 사납게 번뜩이였다.
《리성하부부장은 옆에서 한숨만 쉬구요. 제가 보기엔 그들과 만날 필요가 없습니다. 장관우부위원장이 원목수출에 자기 목을 내대고 나설것 같습니까? 그는 오늘의 난관앞에서 변질해버린 사람입니다.》
《됐소. 그만하고 돌아가보오.》
태혁은 량정국장이 방에서 나간후 한참이나 격한 심정을 누르지 못하며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러니 내가 허황한 기대를 가졌는가? 장관우부위원장과 만날 필요가 없다는 량정국장의 말이 옳은지 몰랐다. 장관우부위원장은 전과는 너무도
달라진 일군임이 틀림없었다. 도행정위원회 부위원장이란 사람이 자강땅에 공동시장을 끌어들이자고 주장하면서도 그 위험성을 모른단 말인가? 순간
태혁의 눈앞에는 이전에 장관우와 식량문제때문에 격렬히 론쟁하다가 목을 부둥켜안고 운 일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장관우의 마음속에서는
태혁은 지난해
그는 마침내 책상앞에 마주앉아 자기의 안타까운 심정을 종이우에 한자한자 힘주어 눌러쓰기 시작했다.
그리운
이제 햇곡식이 날 때까지 넉달동안만 원목으로 식량난을 타개할수 있도록 배려하여주십시오. 올해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해서라도 농사를
잘 지어 두번 다시
태혁은 펜을 놓자 즉시에 편지를 당중앙위원회로 발송했다.
8
(1)
온종일 세차게 휘몰아친 눈보라는 한시도 멎지 않고 기승을 부렸다. 수도의 거리는 뽀얗게 흩날리는 눈가루속에 묻히였다. 례년에 없던
사나운 날씨여서 날이 어두워지자 거리에는 거의나 인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량옆에 흰 눈무지들이 쌓인 도로를 따라
뜻밖의 병환으로 사망한
추위가 심하여 이따금 밤거리에 나타난 사람들은 솜옷을 입고 털모자를 눌러쓴 뚱뚱한 차림으로 재빨리 걸었다. 최대 갈수기인 요즘은 아빠트창문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도 밝지 못했다. 그나마 대동강건너의 문수거리는 아주 캄캄했다. 지난해 자강땅의 령길에서 목격하셨던 암흑을 련상시켰다.
얼마후 인민문화궁전쪽의 도로에 들어서신
엄혹한 자강도의 식량난은
(결국 내가 태혁에게 해결할수 없는 과업을 주었는가?)
압록강의 벌둥섬에 공동시장을 운영하는 문제도 원목수출문제도 가망성이 없다. 문성태는 누구도 감히 원목수출문제를 제기하지 못할것이라고 했다.
이미 오래전에
밤… 밤은 끝없는 고뇌의 심연같았다.
지난 전후복구건설시기 페허우에 새로 공장과 살림집들을 일떠세우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나선 때에도 우리 인민의 생활은 오늘처럼 어렵지 않았다.
요즘은 각별히도
멀리, 가까이에서 아빠트들의 불빛들이 희미하게 비쳐왔다. 예전처럼 밝지 못한 불빛이였다. 그나마 저 창문들의 불빛들이 꺼지면 늘쌍 가슴이 아리군 했는데 오늘은 다소 마음속의 아픔이 덜리는것 같은 생각이 드시였다.
마침 집무실로 찾아들어오던 서기실장이 주춤거리였다.
형광등이 켜지자 서기실장이 책상우에 봉투 하나를 놓았다.
《자강도당에서 문건을 보내왔습니다.》
《그렇소?》
태혁이가 자필로 정성껏 써보낸 편지였다.
태혁이가 원목수출을 허락해달라고 제기해온것이였다. 한평생 당에 충실해온 그가 역적이 될 각오를 하고 이 편지를 썼는가?…
태혁이가 친위병으로 복무한 전화의 나날에 있었던 일이 문득 떠오르시였다.
어느 하루 위병근무수행중에 있던 태혁이가
태혁이의 피타는 몸부림, 애타는 요구가 가슴을 두드리며 절절하게 울려왔다.
얼마간 시간이 경과한후에야
《방금 태혁동무가 나한테 원목수출문제를 제기해왔습니다.》
《예?!》
문성태는 깜짝 놀라며
《정말 뜻밖입니다. 믿어지지 않습니다.》
《동문 그가 원목수출문제만은 제기하지 못할것이라고 했지.》
《누가 감히
문성태가 아연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태혁은 자기를 위해서 원목수출을 제기한것이 아니다. 이 어려운 고난의 시기에 인민을 위해, 인민의 충복이 되려고 희생적으로 나선
태혁이라는 생각에 가슴속이 쩌릿해나는것을 느끼시던
《태혁동무가 얼마나 많은 고심을 하고 나에게 편지를 썼겠습니까. 내가 이 편지를 보고 좋게 생각한것은 인민을 위해 희생적으로 나선 그의 열렬한 마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태혁동무와 같은 투철한 일군, 뜨거운 심장을 지닌 일군이 없는게 탈입니다. 이건 태혁동무만이 할수 있는 일이요. 그의 요구를 들어줄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다른 사람들은 처벌을 받을가봐 나서지 않지만 태혁동문 나를 믿고 이렇게 원목수출을 제기했거든.》
《이래서 사람은 어려울 때 지내봐야 진면모를 알수 있다고 하는것 같소. 지금 우리 일군들속에 김책형의 일군!… 자기
몇초동안 말뚝처럼 서있던 문성태가 우울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가 방에서 나간후에도
태혁이가 원목수출을 제기한건 식량난을 해결할 방도가 없다는것을 말해준다. 그렇다고 식량여분이 있는가?…
《부장동무, 금년도 식수계획이 얼마나 됩니까?》
림업부 부장이 침착한 어조로 자세히 설명해올리였다.
《대단하구만. 그 나무모들이 몇년 자라야 채벌할수 있소?》
《적어도 30년은 걸려야 합니다.》
《30년이라-》
태혁이가 원목수출을 제기했지만 30년동안 나무가 자라야 채벌할수 있다면 그의 대에는 빚을 갚지 못한다는것으로 된다. 결국 다음대에 넘겨주게 된다는 말이 아닌가.
《알겠소.》
다른 방도가 없으시였다. 인민무력부장에게 호소해볼 결심을 굳히신
이날 밤은 무력부장의 사무실에도 늦도록 불이 켜있었다. 승용차에서 내리신
《앉으십시오.》
때마침 전화종소리가 뜨르릉 울렸다. 책상앞으로 다가선 무력부장이 손에 들었던 수화기를 도로 쾅 놓았다.
보통 성난 표정이 아니여서 무슨 전화인가고 묻자 무력부장의 량볼이 대뜸 푸들푸들 떨리였다.
《무력부장동무, 괜히 직일관을 닦아세우는구만. 내가 단숨에 훌 날아서 올라왔는데 말입니다.》
무력부장은 그 말씀을 듣고서야 그만 허구프게 웃으며 어지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긴급히 토론할 문제가 있습니다.》
무력부장은 긴급한 문제라니 바싹 긴장해서 우러러보았다.
《저기 지도앞으로 갑시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