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회)

 

7

(2)

 

태혁은 수화기를 덜컥 소리가 나게 놓고 한손으로 이마를 꾹 눌러짚었다. 그의 이마에 담박 식은땀이 내돋았다. 사색이 된 그의 얼굴을 보고 량정국장은 말을 붙일 엄두도 못냈다. 목석처럼 우두커니 멍청히 앉아있던 태혁이가 자리에서 움쭉 일어났을 때에야 량정국장은 어두운 낯빛으로 근심스럽게 물었다.

《사고현장으로 가시렵니까?》

《사람이 상하지 않았소? 편직지배인이 어떤 동무요!》

태혁은 청사의 문밖으로 나서자 급히 승용차를 타고 사고현장으로 내달리였다. 녀성의 몸으로 이삼일이 멀다하게 출장을 다니며 이악하게 식량을 끌어들이던 동무인데 어찌하여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편직공장지배인 리순정은 강계바닥의 녀걸로 소문난 녀성이였다. 남성들 찜쪄먹게 장대한 체격에 보기 좋은 키꼴, 억실억실한 눈매, 자기의 시원시원한 생김새처럼 순정은 어떤 어려운 과업을 맡겨도 다 해제꼈다.

늘쌍 동분서주하며 뛰여다니느라 한달치고도 집에 들어오는 날이 이삼일도 되나마나 했다. 게다가 낮에 차를 타고다니는 시간이 아까와 늘 밤길을 다니다보니 그가 언제 잠을 자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태혁에게서 그 사실을 보고받으신 장군님께서는 강계에 피복공장지배인이며 포도술공장지배인, 일잘하는 녀성지배인들이 많은데 다들 《강계효녀》들이라는 높은 치하의 말씀을 안겨주시였다. 그 《강계효녀》들중의 한명인 편직공장지배인이 강계시민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다가 령길에서 굴었다니 가슴이 미여지는듯 했다. 불행중 다행으로 생명의 위험은 면했다지만 그가 다시 일할수 있겠는가? 천에 한명도 고르기 힘든 녀성을 잃을가봐 마음을 조이던 태혁은 사고현장에 도착하자 급히 승용차에서 뛰여나갔다. 약 이삼십m가량 아찔히 내려다보이는 골짜기에 구겨박힌 화물자동차와 시허연 눈무지우에 대수간 쌓아놓은 물자들, 령길에 모여서서 그 참혹한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로 아직도 사고현장은 혼잡탕을 이루고있다. 태혁은 너무도 억이 막혀 잠시 발길을 옮기지 못하다가 마주 달려오며 굽벅 인사를 하는 젊은이에게 소리쳐 물었다.

《편직지배인을 병원에 호송했소?》

《운전사만 병원에 가고 지배인동문 지금도 저렇게 멍하니 앉아있습니다.》

태혁은 그제야 한쪽 바퀴를 허공에 쳐든채 벌렁 뒤집힌 화물자동차옆에 퍼더앉은 편직지배인을 알아보고 산아래로 달려내려갔다. 그를 부축한 젊은이가 헐떡거리며 사고난 경위를 설명했지만 그 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오로지 머리속엔 편직지배인이 무사했으면 하는 한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순정은 태혁을 알아보고도 그저 오도카니 앉아있기만 했다. 그가 전혀 몸을 움직일 형편이 못되여 그런다는것을 직감한 태혁이 왜 병원에 가지 않는가고 물어서야 순정은 헝클어진 머리를 떨구며 서럽게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책임비서동지, 죄송…》

《무슨 소릴 하오. 그래 어딜 다쳤소? 어딜…》

태혁이 시뻘겋게 진흙투성이가 된 어깨를 만지려하자 순정은 눈물을 머금고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일없습니다.》

《일없다는 사람이 왜 어깨도 다치지 못하게 하오? 이거 온통 뼈가 박산이 난게 아니요, 엉?》

《책임비서동지, 정말 원통합니다. 전 열밤을 못 자도 견딜수 있지만 운전사가 졸수 있다는 생각을…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순정은 시퍼렇게 멍든 얼굴을 숙이고 그냥 흐느꼈지만 제 손으로 눈물을 닦지도 못했다.

《순정동무, 내가 동무에게 과중한 과업을 맡겼소. 날 용서하오.》

편직지배인이 밤잠을 못 자며 뛰여다녀도 쉬울 생각을 못한 태혁은 손수건을 꺼내여 그의 눈물을 닦아주다말고 흠칫 놀랐다. 온몸이 파김치처럼 되고도 끄떡없이 앉아있던 편직지배인이 조용히 눈을 내리감으며 옆으로 실그러졌다. 갑자기 의식을 잃어버린 그의 몸을 부여안고 태혁은 목멘 소리로 부르짖었다.

《순정이, 정신을 차리오. 정신을!…》

태혁의 가슴속에서 웅글게 터져나온 그 말에 놀란 사람들이 령길에서 달려내려오고 한편으로는 편직지배인을 병원으로 호송하느라 볶았다쳤다.

조금후 태혁은 순정을 구급차에 실어보내고 뒤따라 자기 사무실로 돌아왔다.

책상우에는 량정국장이 제출한 사직서가 그대로 놓여있었다.

태혁은 사직서를 구겨 휴지통에 집어넣고 창문을 향해 돌아섰다.

장군님께서 자강도인민들의 식량문제를 풀라고 하신지 벌써 사흘이 지났다. 그런데 난 이런 사고만 내면서 뭘했는가? 하긴 내가 장군님의 아픈 마음을 덜어드리지 못하는 일이 한두가지인가!

테굵은 안경밑에서 뜨거운 눈물이 끓어번지였다. 지금의 형편에서 장군님께 원목수출까지 제기할수 없다면?… 어떻게 사람들을 먹여살릴수 있겠는가?… 아니 내 한몸을 내댈수밖에 다른 길은 없다! 태혁은 방안의 여기저기로 다시금 초조히 오락가락했다. 량정국장은 그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날이 어두워서야 잔뜩 찡그린 얼굴로 돌아왔다.

《어떻게 됐소?》

《책임비서동지의 의향을 전달했습니다만…》

량정국장은 기가 죽어 어깨숨을 몰아쉬였다.

《부위원장동문… 억병으로 취했습니다.》

태혁의 눈길이 사납게 번뜩이였다.

《리성하부부장은 옆에서 한숨만 쉬구요. 제가 보기엔 그들과 만날 필요가 없습니다. 장관우부위원장이 원목수출에 자기 목을 내대고 나설것 같습니까? 그는 오늘의 난관앞에서 변질해버린 사람입니다.》

《됐소. 그만하고 돌아가보오.》

태혁은 량정국장이 방에서 나간후 한참이나 격한 심정을 누르지 못하며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러니 내가 허황한 기대를 가졌는가? 장관우부위원장과 만날 필요가 없다는 량정국장의 말이 옳은지 몰랐다. 장관우부위원장은 전과는 너무도 달라진 일군임이 틀림없었다. 도행정위원회 부위원장이란 사람이 자강땅에 공동시장을 끌어들이자고 주장하면서도 그 위험성을 모른단 말인가? 순간 태혁의 눈앞에는 이전에 장관우와 식량문제때문에 격렬히 론쟁하다가 목을 부둥켜안고 운 일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장관우의 마음속에서는 인간다운 감정이 살아숨쉬였다. 태혁은 그의 심장이 높뛰는 세찬 고동, 뜨거운 피가 소용돌이치는 소리를 기쁘게 들었다. 지금 장관우의 그 가슴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마치도 죽은 사람처럼… 그러나 이제 와서 장관우보다도 더 큰 골치거리로 되고있는 사람은 그와 인간적으로 밀착되여 있는 리성하부부장이였다.

태혁은 지난해 장군님께서 자강도로동계급에게 전력문제해결의 돌파구를 열어제낄데 대한 과업을 맡기셨을 때 리성하가 성공을 바란다며 눈물까지 머금던 모습이 생생히 떠올랐다. 그처럼 흥분을 금치 못하던 리성하부부장이 자강도에 파견되여오자 태혁은 배짱이 맞는 실력가와 함께 일하게 되였다고 얼마나 기뻐했던지 모른다. 하지만 태혁은 유감스럽게도 발전소건설의 첫 걸음부터 리성하와의 의견상이에 부닥치고 크게 실망했다. 리성하는 자기가 직접 자강도의 어려운 실정에서 발전소건설을 책임지게 되자 안팎이 다르게 난관에 겁을 먹고 패배주의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리성하의 영향이 미쳐 여태껏 태혁이가 오른팔처럼 믿어온 장관우부위원장까지 난관앞에서 신심을 잃고 동요하며 갈팡질팡하는것은 더구나 가슴아팠다. 결국 리성하부부장이 내려온것으로 하여 태혁의 일은 헐해진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힘들어져간다.

그는 마침내 책상앞에 마주앉아 자기의 안타까운 심정을 종이우에 한자한자 힘주어 눌러쓰기 시작했다.

 

그리운 장군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우리 도의 식량실태를 료해하시고 해결할데 대한 과업을 주셨지만 저는 아직도 이렇다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자강도인민들의 식량사정은 매우 어려운 형편에 처하여있습니다. 공장들이 제대로 돌지 못하다보니 변강무역도 거의나 중단되였습니다. 이제는 우리 자강도에 흔한 원목을 수출하여 식량을 해결할수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장군님께서 이미전에 원목수출을 역적행위로 엄금하셨는데 감히 이렇게 편지를 올리자니 손이 떨립니다. 그렇지만 장군님, 장군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릴수 없어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면 인민들이 어떻게 우리 일군들을 믿고 일하겠습니까. 저는 그 일이 가슴아파 오늘 장군님께 솔직히 말씀올리기로 마음을 먹게 되였습니다.

장군님.

이제 햇곡식이 날 때까지 넉달동안만 원목으로 식량난을 타개할수 있도록 배려하여주십시오. 올해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해서라도 농사를 잘 지어 두번 다시 장군님께 이런 걱정을 끼쳐드리지 않겠습니다. 오늘의 난국을 단신으로 헤쳐나가시는 장군님을 도와드리지 못하고 이렇게 늘쌍 짐이 되니 눈물이 납니다.

장군님, 부디 건강에 류의하시길 바랍니다. 장군님만 건강하시면 만사가 다 잘될수 있습니다.

 

                                                                    장군님의 전사 강태혁 올립니다.

 

태혁은 펜을 놓자 즉시에 편지를 당중앙위원회로 발송했다.

 

8

(1)

 

온종일 세차게 휘몰아친 눈보라는 한시도 멎지 않고 기승을 부렸다. 수도의 거리는 뽀얗게 흩날리는 눈가루속에 묻히였다. 례년에 없던 사나운 날씨여서 날이 어두워지자 거리에는 거의나 인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량옆에 흰 눈무지들이 쌓인 도로를 따라 김정일동지께서 타신 승용차는 언 대기를 가르며 천천히 달리고있었다.

뜻밖의 병환으로 사망한 항일투사의 가족을 위로하고 돌아오시는 길이였다. 이 고난의 시기 로투사들이 자신의 곁을 떠나는 일이 무척 괴로우시였다.

추위가 심하여 이따금 밤거리에 나타난 사람들은 솜옷을 입고 털모자를 눌러쓴 뚱뚱한 차림으로 재빨리 걸었다. 최대 갈수기인 요즘은 아빠트창문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도 밝지 못했다. 그나마 대동강건너의 문수거리는 아주 캄캄했다. 지난해 자강땅의 령길에서 목격하셨던 암흑을 련상시켰다.

얼마후 인민문화궁전쪽의 도로에 들어서신 김정일동지께서는 자강도의 식량난때문에 고생하는 태혁의 수척한 얼굴이 떠올라 흐릿한 시선으로 차창밖을 바라보시였다.

엄혹한 자강도의 식량난은 그이의 마음속에 앙버티고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내가 태혁에게 해결할수 없는 과업을 주었는가?)

압록강의 벌둥섬에 공동시장을 운영하는 문제도 원목수출문제도 가망성이 없다. 문성태는 누구도 감히 원목수출문제를 제기하지 못할것이라고 했다.

이미 오래전에 그이께서는 원목수출을 법적으로 엄하게 금지시키시였다. 벌둥섬의 공동시장도 반대하고 원목수출도 제기하지 못하는 태혁은 얼마나 괴롭겠는가.

밤… 밤은 끝없는 고뇌의 심연같았다.

지난 전후복구건설시기 페허우에 새로 공장과 살림집들을 일떠세우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나선 때에도 우리 인민의 생활은 오늘처럼 어렵지 않았다.

요즘은 각별히도 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올라 빈 방에 조용히 앉아계실 때가 많았다. 수령님만 생존해계셔도 떼구름마냥 몰려드는 안타까운 문제들을 의논하며 이 모든 마음의 중하를 이겨낼것 같으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수령님을 잃은 어려운 정황에서 제국주의자들과 싸우며 단신으로 겹겹이 앞을 막아서는 난국을 타개해나가지 않으면 안되시였다. 사회주의시장의 붕괴와 적들의 악랄한 봉쇄책동으로 인민경제에 미치는 영향만 해도 막대했다. 수많은 공장, 기업소들의 숨결이 죽어가고 우리 인민의 피땀이 스며있는 기대들에는 쇠녹이 쓸고있다. 벌써 몇달째 도시엔 교통이 마비되고 렬차들도 제대로 뛰지 못한다. 차마 눈뜨고 볼수 없는 이 참상들을 하루빨리 수습하려고 이틀 사흘 련속 지새우신 밤인들 그 얼마였던지 알수 없으시였다. 과연 자신의 일생에 오늘처럼 마음고생이 많은 때가 언제 있었던가 싶으시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날밤 집무실로 돌아오시자 피로한 몸을 의자에 기대이시였다. 어쩐지 앞이 잘 보이지 않으시였다. 방안의 눈에 익은 물건들이 안개속에 싸인것처럼 뿌잇하게 안겨왔다. 매일같이 겹쌓이는 과로와 수면부족으로 인한 시력장애라고 생각되신 그이께서는 두눈을 지그시 감으시였다. 잠시후 다시금 눈을 뜨신 그이께서는 온통 캄캄하여 아무것도 분간해볼수 없으시였다. 자신도 모르게 쪽잠에 들었다가 깨신것이였다. 천정을 바라보니 형광등불빛이 스러지고 창문에 희미한 미광이 비껴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의자에서 몸을 당겨 탁상등을 켜고 천천히 일어나시였다.

멀리, 가까이에서 아빠트들의 불빛들이 희미하게 비쳐왔다. 예전처럼 밝지 못한 불빛이였다. 그나마 저 창문들의 불빛들이 꺼지면 늘쌍 가슴이 아리군 했는데 오늘은 다소 마음속의 아픔이 덜리는것 같은 생각이 드시였다.

마침 집무실로 찾아들어오던 서기실장이 주춤거리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서기실장에게 방안의 불을 켜라고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형광등이 켜지자 서기실장이 책상우에 봉투 하나를 놓았다.

《자강도당에서 문건을 보내왔습니다.》

《그렇소?》

김정일동지께서는 반색을 하시면서 얼른 봉투를 개봉하시였다.

태혁이가 자필로 정성껏 써보낸 편지였다.

그이께서는 편지를 앞에 놓고 주의깊게 번져보시였다. 갑자기 글줄들이 흐려져 읽을수 없으시였다.

태혁이가 원목수출을 허락해달라고 제기해온것이였다. 한평생 당에 충실해온 그가 역적이 될 각오를 하고 이 편지를 썼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이윽토록 편지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다가 의자에 몸을 기대시였다.

태혁이가 친위병으로 복무한 전화의 나날에 있었던 일이 문득 떠오르시였다.

어느 하루 위병근무수행중에 있던 태혁이가 최고사령부 뒤산에서 나무를 찍는 도끼질소리를 듣고 뛰여올라가 어떤 놈인가, 당장 쏴갈기겠다며 권총을 뽑아드는 어마어마한 광경이 벌어졌다. 마침 수령님께서 제때에 목격하고 《태혁이!》 하고 멈춰세우셨을 때 한손에 권총을 쥔채 헐떡거리는 태혁의 두눈망울에선 뜨거운 물기가 번들거렸다. 미국놈들의 무차별적인 폭격에 조국의 산천이 불타 벌거숭이가 되는 일만도 분통이 터지는데 제 손으로 수림을 란벌하는 행위를 도저히 용서할수 없었다고 울분에 차서 대답한 태혁이… 그랬던 그가 오늘 나한테 원목수출을 제기해오지 않았는가. 태혁은 스스로 자기 가슴에 총구를 들이대는 심정이였을것이다. 오죽하면 태혁이가 그처럼 사랑한 나무를 채벌하여 팔자고 했겠는가?…

태혁이의 피타는 몸부림, 애타는 요구가 가슴을 두드리며 절절하게 울려왔다.

얼마간 시간이 경과한후에야 김정일동지께서는 조용히 수화기를 들고 문성태비서를 자신의 집무실로 부르시였다. 문성태가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왔다.

《방금 태혁동무가 나한테 원목수출문제를 제기해왔습니다.》

《예?!》

문성태는 깜짝 놀라며 그이를 쳐다보았다.

《정말 뜻밖입니다. 믿어지지 않습니다.》

《동문 그가 원목수출문제만은 제기하지 못할것이라고 했지.》

《누가 감히 장군님께 이런 무엄한 제기를 할수 있겠습니까.》

문성태가 아연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태혁은 자기를 위해서 원목수출을 제기한것이 아니다. 이 어려운 고난의 시기에 인민을 위해, 인민의 충복이 되려고 희생적으로 나선 태혁이라는 생각에 가슴속이 쩌릿해나는것을 느끼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근엄한 표정으로 말씀하시였다.

《태혁동무가 얼마나 많은 고심을 하고 나에게 편지를 썼겠습니까. 내가 이 편지를 보고 좋게 생각한것은 인민을 위해 희생적으로 나선 그의 열렬한 마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태혁동무와 같은 투철한 일군, 뜨거운 심장을 지닌 일군이 없는게 탈입니다. 이건 태혁동무만이 할수 있는 일이요. 그의 요구를 들어줄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다른 사람들은 처벌을 받을가봐 나서지 않지만 태혁동문 나를 믿고 이렇게 원목수출을 제기했거든.》

김정일동지께서는 잠시 의자에 지친 몸을 기대이시였다. 집무실안에 정숙이 깃들고 문성태의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짙게 어려있었다.

《이래서 사람은 어려울 때 지내봐야 진면모를 알수 있다고 하는것 같소. 지금 우리 일군들속에 김책형의 일군!… 자기 수령과 인민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일군이 있습니까. 난 오늘의 고난의 행군시기 자기 한몸을 내대지 않고 말로만 충성을 부르짖는 위선적이고 비량심적인 일군들때문에 맘고생이 많은데 태혁동무가 이런 편지를 보냈구만. 이젠 돌아가보시오.》

몇초동안 말뚝처럼 서있던 문성태가 우울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가 방에서 나간후에도 김정일동지께서는 여전히 쏘파에 앉아계시였다.

태혁이가 원목수출을 제기한건 식량난을 해결할 방도가 없다는것을 말해준다. 그렇다고 식량여분이 있는가?…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을 허비고 밀려드는 괴로운 심정에서 헤여나지 못하시다가 수화기를 들고 림업부 부장에게 물어보시였다.

《부장동무, 금년도 식수계획이 얼마나 됩니까?》

림업부 부장이 침착한 어조로 자세히 설명해올리였다.

《대단하구만. 그 나무모들이 몇년 자라야 채벌할수 있소?》

《적어도 30년은 걸려야 합니다.》

《30년이라-》

그이께서는 수화기를 드신채 또다시 풀길없는 사색속에 잠겨드시였다.

태혁이가 원목수출을 제기했지만 30년동안 나무가 자라야 채벌할수 있다면 그의 대에는 빚을 갚지 못한다는것으로 된다. 결국 다음대에 넘겨주게 된다는 말이 아닌가.

《알겠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수화기를 놓고 쏘파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키시였다. 시간가는줄 모르고 천천히 집무실안을 거니시던 그이께서는 (아무리 식량사정이 어려워도 태혁을 역적으로 만들순 없지. 내가 걸머져야지…) 라고 혼자 조용히 뇌이시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시였다.

다른 방도가 없으시였다. 인민무력부장에게 호소해볼 결심을 굳히신 그이께서는 빠른 걸음으로 집무실을 나서시였다.

이날 밤은 무력부장의 사무실에도 늦도록 불이 켜있었다. 승용차에서 내리신 그이께서는 무력부장이 미처 련락을 받을사이없이 청사의 접수실을 통과하여 그의 방으로 급히 찾아가시였다. 아닌게 아니라 무력부장은 아무것도 모르고 셈평좋게 두다리를 벌린채 쏘파에 제빠듬히 앉아 신문을 보다가 와닥닥 일어났다.

《앉으십시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볍게 손짓하시고 무력부장의 옆자리에 앉으시였다.

때마침 전화종소리가 뜨르릉 울렸다. 책상앞으로 다가선 무력부장이 손에 들었던 수화기를 도로 쾅 놓았다.

보통 성난 표정이 아니여서 무슨 전화인가고 묻자 무력부장의 량볼이 대뜸 푸들푸들 떨리였다.

《장군님께선 벌써 여기 와 계시는데 직일관이 이제야 나한테 알립니다. 빌어먹을 녀석들!》

김정일동지께서는 무력부장이 이쯤 화를 내면 뒤일이 무사치 못하다는것을 잘 알기에 직일관에게 후환이 없도록 큰소리로 웃으시였다.

《무력부장동무, 괜히 직일관을 닦아세우는구만. 내가 단숨에 훌 날아서 올라왔는데 말입니다.》

무력부장은 그 말씀을 듣고서야 그만 허구프게 웃으며 어지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장군님, 무슨 일로 갑자기 오셨습니까?》

《긴급히 토론할 문제가 있습니다.》

무력부장은 긴급한 문제라니 바싹 긴장해서 우러러보았다. 그이께서 밤중에 갑자기 찾아오신걸 봐선 군사와 관련된 중요한 문제가 제기되였다고 생각하는게 분명했다. 미제호전광들의 미친듯 한 전쟁소동으로 요즘도 불의에 정황이 발생하는게 군사적대치상태에 있는 조선정세의 움직임이다보니 충분히 그렇게 짐작할수 있었다.

《저기 지도앞으로 갑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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