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4

(3)

 

태혁은 한참이나 그들을 어처구니없이 바라보다가 몇발자국옆의 돌멩이우에 가서 앉았다.

(일은 그렇게 됐군. 엉큼한 녀석같으니.)

무슨 말라빠진 놈의 갑돌인가? 태혁은 웃음이 터져나오는걸 겨우 참았다. 허진규의 집안에 딸을 주지 않겠다는 장관우이니 명철은 그와 상대하기 편리하게 자기를 완전히 변성명한것임에 틀림없었다. 여하튼 전후사연은 어떻든간에 장관우도 명철을 눈알이 똑바로 배긴 청년으로 안중에 두고있는것만은 확실했다. 그럼 만사가 잘된셈이 아닌가! 이제 장관우가 바로 이 청년이 은희를 사랑하는 허명철이라는것을 알면 화들짝 놀랄것이다. 태혁은 저혼자 그런 흐뭇한 생각에 잠겨 담배를 태우는데 웬 청년이 어슬렁거리며 옆에 와서 쭈그리고앉았다.

《담배 좀 없수?》

《왜, 담배생각이 나오?》

《속이 얼어들어 견디겠나요.》

태혁은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주며 씽긋 웃었다.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태혁이가 내미는 담배불에 불을 붙인 청년은 둬모금 맛스레 담배연기를 들이켰다.

《고급담배구만.》

《아들녀석이 한갑 찔러준거요.》

《그래요. 별로 수준이 높다 했더니…》

그때였다. 그들의 등뒤에서 누군가 청년의 엉덩짝을 걷어찼다.

뜻밖에도 명철이였다.

《이건 버르장머리없이!》

《왜 이래?》

청년이 골을 내며 삑 돌아앉았다.

《반편같이 놀지 말구 날 따라와!》

《챠, 이런!》

청년이 게두덜거리며 비실비실 일어났다. 태혁은 성나서 바람처럼 휙 돌아서가는 명철을 다급히 멈춰세웠다.

《명철이! 이리 오라구.》

명철이가 자기옆으로 스쳐지나는 청년을 마뜩지 않게 흘겨보고 씨근거리며 태혁의 옆에 와서 량해를 구했다.

《책임비서동지,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하단 말이요. 그 동무야 어두운 밤에 내가 누구인지 모르구 그랬겠지. 설사 알았다면 어떻다는거요. 왜 그렇게 대원들을 윽박질러? 그럼 못써!》

《저 친군 아무때 봐도 저 꼴이란 말입니다. 당초에 촌수를 모른다니까요.》

《됐어. 앉소!》

태혁은 옆에 명철을 앉히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동문 언제부터 갑돌이가 됐어?》

《예?》

《그래 은희를 사랑한건 동무가 아니고 도깨비같은 갑돌이였나? 대원들한테 땅땅 큰소리를 치려면 장관우부위원장앞에서도 내가 바로 허명철이라고 버젓이 말해야지. 갑돌이가 뭐야!》

순간 와닥닥 놀라면서 일어난 명철이가 《좀 조용조용…》 하며 당황해서 어쩔바를 몰라했다.

웬일인가 했더니 그들한테로 다가오던 장관우부위원장이 걸음을 멈추고 어둠속에 우뚝 서있었다.

태혁은 그만 돌멩이우에서 움쭉 일어나 장관우를 마주 보며 큰소리로 껄껄 웃었다.

《여보, 부위원장동무. 이 녀석이 오늘 보니 속대가 물렁물렁해. 졸장부로구만!》

 

5

(1)

 

사무실을 나선 장관우는 눈보라가 뽀얗게 휘몰아치는 광장을 가로질러 충성동의 자기네 아빠트현관으로 들어섰다. 건설한지 20년도 넘는 구식건물의 층계는 좁고 어두웠다.

오늘 밤도 어스레한 등잔불밑에서 바느질에 여념이 없던 안해가 손전지를 켜들고 퇴근해온 그를 반갑게 맞았다. 요즘 며칠째 쌀뜨물처럼 낯빛이 흐리여 다니는 장관우이지만 안해의 얼굴에는 구김살 한오리 찾아볼수 없다. 딸 은희의 신랑감문제로 말썽이 있을 때에도 안해는 집안의 화목한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그 딸이 발전소건설장의 처녀중대 중대장책임을 맡아한다. 장관우는 처녀중대라는것도 어쩐지 아이들 놀음같아서 탐탁치 않은데다가 사랑에 빠져 어리광을 부리던 딸이 대장노릇을 한다는 안해의 말을 듣고 어처구니없어 웃어버렸다. 이후로 안해가 처녀중대원들에게 벙어리장갑과 어깨받치개를 만들어간다며 매일 밤 등잔불밑에서 밤을 새우는 모양을 보다 못하여 《당신두 괜한 고생을 하누먼. 그 회초리같은 야들야들한 체네애들이 뭘한다구 집안을 온통 가내반처럼 만들어놓구 부산을 피우오?》라고 방정맞은 소리까지 했다. 그러나 장관우는 얼마전 북천3호발전소건설장에서 이악스레 일하는 처녀중대 대원들을 보며 속으로 은근히 놀랐다. 처녀들이라고 너무 우습게 여겼던 자신이 도리여 창피스러웠다. 은희의 애인도 알고보니 자기와 풋낯이나 있는 진짜배기청년이였다. 오늘은 이래저래 마음의 충격이 컸다. 하지만 장관우는 안해한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자기가 딸을 잘못 보았다는 소리를 하기도 거북한 일이였거니와 당면한 식량문제로 머리가 무거워 그쯤한 가정사말사는 입밖에 내기조차 싫었다. 그는 밥상을 차려들고온 안해가 《아까 성하부부장한테서 전화가 왔댔어요.》라고 귀띔해주는데도 덤덤히 앉아있었다.

《무슨 말이 없었소?》

《없었어요. 기분이 좋잖은것 같더군요.》

리성하는 엊그제 성간군의 별하발전소와 남리발전소건설장으로 떠났다. 이틀만에 돌아온 그가 무거운 마음으로 전화를 걸어온걸 봐선 그곳 건설형편도 시원찮은게 틀림없었다.

장관우는 때마침 전화종이 울려 리성하인줄 알고 얼른 수화기를 들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부위원장동무 댁입니까?》

《그렇소. 동문 누구요?》

《만포시행정위원회 허진규입니다. 밤중에 전화를 해서 미안합니다.》

장관우는 말없이 서있었다. 허진규가 내 집으로 전화를 하다니?… 한순간 그런 불쾌한 생각이 떠올랐다.

《무슨 일이요?》

《다름이 아니라 식량문제가 어떻게 토론됩니까?》

허진규는 벌둥섬의 공동시장문제를 념두에 두고 궁금해서 물었다.

《아직은 좀 막연하오.》

《답답하군요.》

장관우가 벌둥섬의 공동시장문제를 지지했던 사람이여서 허진규는 서슴없이 그렇게 말했다.

《동무말도 옳은것 같소.》

《그렇다면 왜 강경히 주장하지 못합니까. 현실적으로 식량문제를 해결할 길이 막혀있는데 말입니다. 도당에선 벌둥섬의 공동시장문제가 우리 경제를 개혁, 개방에로 유도하는 위험한 행위라고 한다면서요? 우리 나라의 강력한 자립경제가 벌둥섬의 공동시장때문에 허물어질것 같은가요? 자본주의 외화바람이 흘러들가봐 우려하는 마음은 얼마간 리해됩니다만 구데기가 무서워 장 못 담그겠습니까. 당장 식량이 떨어진 사람들을 먹여살릴 궁냥은 하지 않고 뭐가 무서워서 벌벌 떠는지 모르겠군요.》

허진규는 한바탕 자기의 불만을 터치고 어이없이 웃었다.

《내가 괜히 주제넘은 소릴 했군요.》

《정무원 대외봉사총국과는 합의를 봤소?》

《물론이지요. 한데 그 사람들도 도에서 깔아버리니 괘씸해서 좋을대로 하라는 판입니다.》

《좋소. 래일 아침회의엔 동무도 참가해서 강경히 주장하오.》

《받아물겠습니까?》

《그래서 협의회가 아니요.》

장관우는 수화기를 놓고 담배를 집어들었다. 지금 상태에서는 식량문제를 뚫고나갈 방도가 없다. 벌둥섬의 공동시장문제를 반대하는것이 현명한 처사이겠는가?… 한동안 태혁을 그려보며 번거로운 생각을 곱씹던 장관우는 솜옷을 입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아무래도 리성하와 만나 의논해봐야 할것 같았다.

협의회는 래일 아침에 다시 열리게 된다, 태혁이도 식량문제때문에 고심이 많은 사람인데 자기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설복하면 마음을 돌려세울런지 알겠는가. 장관우가 조급한 마음을 안고 도당합숙으로 찾아가자 리성하도 시허옇게 성에가 낀 창밖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있었다.

《왔구만. 집에 전화를 하니 없더군.》

《들었소.》

《앉소.》

리성하의 목소리는 침울했다.

《오늘이 어머니의 생일이요. 부위원장동무와 함께 가서 기쁘게 해드리고싶어 찾았댔소.》

《아, 그렇소? 역시 아들은 아들이요. 오래간만에 늙은이가 아들이 오니 생일을 쇠누만. 어머니와 조용히 나눌 이야기도 있었겠는데 차라리 내가 나타나지 않기를 잘했소.》

장관우는 친구의 자식된 마음에 가슴이 뭉클했다.

《그런데 왜 기분이 그렇소?》

《어쩐지 쓸쓸하오. 집에 가보니 며칠전에 내린 눈이 마당에 그냥 덮여있더군. 어머니 혼자 다닌 발자국자리만 찍혀있구. 토방구석에도 눈보라에 날려간 눈가루가 시허옇게 쌓여있었소. 어머니가 집을 그렇게 허술히 거둔적이 없었는데… 이젠 늙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급히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어머닌 꼼짝 않고 누워계셨소. 가슴이 철렁하여 문켠에 기신없이 서있었소.》

리성하는 더 긴 말을 하지 않았다.

(영양실조?…)라는 불길한 예감이 장관우의 머리속에 얼핏 떠올랐다. 요즘 앉으나 서나 복잡한 일에 들볶이다보니 늙은이한테 전혀 관심하지 못한 그였다.

《날 책망하오. 내가 잘 도와드리지 못했소.》

《아니요. 이건 죄다 내 잘못이요.》

《그래 어떻게 했소?》

《진정하오. 시병원에 부탁하여 대책을 취했소. 평양에다 전화도 하구. 래일 처가 와서 당분간 돌봐주게 했소.》

《기가 막힌 일이군.》

회색털쟈케트의 주머니에 량손을 찌른 리성하는 창문을 등지고 무거운 한숨을 쉬였다. 다소 수척해진 그의 얼굴은 어둑컴컴했다.

《우리 어머니 한사람이 문제가 아니요. 엄혹한 추위와 식량난으로 공사는 굼뜨게 진척되고 사람들은 지쳐 쓰러지구있소. 정말 눈뜨고 보지 못하겠소.

이젠 찾아온 용무나 말해보오.》

《래일 식량문제때문에 협의회가 있소.》

《알구있소.》

《보나마나 뻔하오. 방도가 없소. 벌둥섬의 공동시장문제를 성사시키는것밖에… 방금 만포시행정위원회 부위원장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정무원 대외봉사총국과도 합의를 봤다오. 어떻게 생각하오?》

리성하는 아무런 견해표명도 없이 무표정히 서있었다. 그의 찌뿌둥한 얼굴은 《여보, 여기서야 도대체 리성하라는 존재가 뭐요?》라고 투정질이라도 하는것 같았다. 태혁의 권한에 눌리여 주장을 세우지 못하는 리성하의 무언의 반발이 한순간 장관우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리성하는 마지못해 이렇게 말했을뿐이였다.

《중요한건 도당책임비서의 립장이요.》

《래일 협의회에서 어떤 좋은 제안도 나오지 못한다면… 그래도 반대할수 있다고 생각하오?》

《반대할거요. 초당적이라고 할만큼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니까.》

리성하는 꺼리낌없이 그렇게 말하고 천천히 방안을 거닐었다. 이전에 태혁의 사무실에서 전투목표를 토론하고 힘없이 복도로 걸어나오며 《무서운 사람이요!…》라고 중얼거리던 리성하를 다시금 련상시키는 그늘이 그의 얼굴에 짙게 드리워있었다.

《다른 방도가 없소. 난 이 암담한 실태가 장군님께 사실대로 보고되여야 한다고 생각하오. 조금도 숨김없이…》

리성하는 쟈케트의 주머니에 두손을 찌르고 장승처럼 선채 멍하니 천정을 바라보았다. 밖에서는 눈보라가 멎지 않고 귀 듣그럽게 창문을 드릉드릉 흔들었다.

 

다음날 예정한 시간에 협의회가 열렸다. 련이틀에 걸쳐 소집된 이날 회의에는 당중앙위원회 문성태비서가 참가하여 장관우와 태혁, 리성하와 함께 주석단에 앉아있었다. 당중앙위원회 일군이 회의장에 나타난 사실은 장군님께서 자강도인민들의 식량문제때문에 얼마나 걱정하시는가를 엄숙히 시사해주고있었다. 문성태는 외형적으로 보통사람들과 별반 구별이 없었다. 수수한 옷차림에 유순한 얼굴표정은 어떤 마음속 고민도 허물없이 나누고싶을만큼 친근감을 준다. 오늘도 그는 장군님의 몸가까이에서 일하는 일군의 겸손한 태도로 허심탄회하게 말을 꺼냈다.

《나는 이 회의에 앞서 우선 동무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습니다. 지난 밤에도 장군님께서는 자강도인민들이 힘겨운 투쟁을 한다고 몇번이나 말씀하시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동무들을 도울수 있겠는가? 장군님께서는 오래동안 깊은 생각에 잠기셨다가 자강도 고아원 아이들에게 보내주려고 부탁한 솜옷과 학용품, 당과류들이 좀 있는데 (문성태는 목이 메여 말을 못했다.)… 그걸 가져다주면서 식량문제가 어떻게 토론되는지 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회의참가자들은 장군님의 각별하신 사랑과 은정에 눈물이 글썽해 앉아있었다. 순간 태혁이가 먼저 일어나 박수를 치자 회의참가자들이 뒤따라 일제히 일어나서 박수를 쳤다. 박수소리는 장내를 요란히 울렸다.

문성태는 잠시후 회의장이 조용해지자 중단했던 말을 다시금 계속했다.

《동무들, 장군님께서 동무들때문에 걱정하시는 이런 심정을 알고 어떻게든지 고난을 이겨냅시다. 지금 동무들이 악전고투하고있지만 예견하지 못했던 일이 아닙니다. 자강도와 같은 최악의 형편에서 난관을 헤쳐나가야 전국을 일떠세울수 있기에 대담하게 취한 조치였지요. 그런데 식량난이 우리앞을 가로막아나서고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걸 타개할수 있겠소?》

문성태가 안타깝게 말을 마치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장내는 물뿌린듯 조용했다. 누구도 발언하는 사람이 없이 지루한 침묵만이 흘렀다. 장관우의 이마에 식은 땀이 내돋았다. 근 15분동안이나 회의장을 납덩이처럼 짓누르는 정적… 장관우는 가슴속의 번열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버쩍 쳐들었다. 무슨 출로가 있는가? 없다. 여전히 무거운 침묵만이 드리워있을뿐이였다. 예상한대로이다!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때 회의장복판에서 《강계싸움대장》인 기계공장의 최덕순이 손수건으로 눈굽을 훔치며 일어났다. 장관우는 그를 긴장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지난 조국해방전쟁때 손아래 동생인 최덕삼로인과 함께 달구지바퀴로 선반을 돌려 전선에 포탄을 깎아보낸 녀성… 그때의 애젊은 처녀선반공이 머리칼이 허옇게 바랜 오늘까지도 공장을 뜨지 않고 후방부지배인의 중임을 맡아본다. 꽃다운 청춘시절부터 미국놈들과 싸우며 쇠장대처럼 억세여진 최덕순은 아직도 젊은이들 못지 않게 기운이 왕성하고 성격도 보통 괄괄하지 않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자강도에 오실 때마다 《강계싸움대장》이라고 하시여 최덕순은 지금도 사람들속에서 그렇게 불리우는 녀걸이였다. 그는 왈칵 터져나오는 오열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말했다.

《동무들, 장군님께서 자강도의 고아원 아이들에게 솜옷과 학용품들을 마련해보내신 심정을 과연 우리가 다 압니까? 그애들때문에 장군님께서 어떤 아픔을 당하셨습니까. 그걸 안다면 모두들 어떻게 이처럼 가만 앉아있을수 있나말입니다. 죽어도 장군님을 받들고 싸우다가 이 자강땅에 묻히겠다는 말이라도 왜 속시원히 못하는지 정말 안타깝습니다. 자강도로동계급은 벌써 석달동안이나 식량난에 시달리면서도 끄떡없이 장군님의 명령을 관철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일군들은 어째서 이렇게도 의기소침한가요. 기운을 냅시다. 지난 전쟁시기엔 우리가 잘 먹고 미국놈들과 싸웠습니까. 그때도 어려웠지만 우린 소금만 있으면 죽지 않는다는 배짱으로 싸워이겼지요. 그래서 난 언제인가 한번 미국놈들과 꼭 결판을 볼 때가 오겠는데 하구 이 자강땅에 소금을 한 200t 묻어뒀습니다. 그 소금이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있습니다.》

회의참가자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래서 그를 쳐다보았다.

《1971년도에 전국의 염전들에 소금풍년이 들어 처리가 곤난할 때였습니다. 그때 도 도매처 처장이였던 저는 그해에 못다 먹으면 다음 해에 먹을셈치고 소금을 차판으로 욕심스럽게 실어들였는데 현지지도차로 자강도에 찾아오신 어버이수령님께서 상점마다에 쌓여있는 소금을 보시고 〈강계싸움대장〉이 일할줄 안다고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릅니다. 전 큰 일이라도 한것처럼 수령님께 이삼년은 실히 먹을수 있는 소금을 장만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지금 생활이 풍족하여 소금귀한줄 모르는데 항일무장투쟁시기엔 쌀보다 소금이 떨어진 때의 고통이 훨씬 더 컸다고 그래서 일본놈들이 밀정을 소금장사로 가장시켜 유격대에 들여보냈다고 하셨습니다. 그날 어버이수령님의 말씀을 듣고 땅속에 묻어둔 소금입니다. 이젠 터칠 때가 된것 같습니다. 아무리 죽을데 갔다놔도 죽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우리 자강도로동계급이라고 난 자랑스럽게 말하고싶습니다.》

최덕순이 그 옛날의 《강계싸움대장》답게 배심있게 말하고 앉았다.

감격한 장관우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핑 감도는걸 보고 옆의 문성태가 물었다.

《부위원장동무, 이 일을 몰랐습니까?》

《저도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참말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일이요. 난 오늘 자강도로동계급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다시금 알게 되였소. 이렇게 신념이 강한 인민을 누가 굴복시킬수 있겠소.》

장관우는 얼굴을 숙이고 잠자코 앉아있었다.

그는 최덕순의 말에서 진정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식량문제해결을 위한 실제적인 조치가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있다는 생각때문에 가슴속이 답답해나는것을 느꼈다. 소금만으로 식량을 대치할수 있는가? 결국 오늘도 시원한 결말이 없이 회의가 끝날수 있음을 직감한 순간 장관우는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방금 우린 최덕순동무의 말을 듣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장군님께서 걱정하시는건 다름아닌 식량문제입니다. 소금도 귀하지만 그것으로야 식량문제를 해결했다고 보고드릴수 없잖습니까? 다른 동무들도 기탄없이 토론에 참가합시다.》

장관우는 회의장을 둘러보며 맨 뒤줄에 앉아있는 허진규에게 눈길을 멈추었다. 그러나 허진규는 서뿔리 일어나지 않았다. 약간 상체를 뒤로 젖힌 허진규의 네모진 얼굴에서는 조금도 초조해하는 기미를 찾아볼수 없었다. 그는 가슴에 턱을 붙이고 앉아서 적당한 기회를 기다리는것처럼 보였다.

회의장안의 공기가 또다시 얼어붙기 시작했다.

《다른 방안이 없으면…》

마침내 허진규가 침착하게 일어섰다.

모두의 시선이 일시에 그에게로 집중되였다.

《전 대담하게 벌둥섬의 공동시장을 받아들여 당면한 식량난을 풀자는것을 제기합니다.》

허진규는 구태여 번다한 설명없이 자기 의향을 간명하게 말하고 앉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폭풍전야의 정적과도 같은 야릇한 침묵만이 의연히 계속되였다. 왜 이렇게 조용한가? 지난 밤 리성하가 강조한것처럼 중요한건 태혁의 립장이였다. 태혁은 앞탁우에 두팔굽을 짚고 시무룩히 앉아있기만 하였다.

《벌둥섬의 공동시장이란건 뭡니까?》

금시 초문인 문성태가 그를 의아히 쳐다보았다.

《압록강의 벌둥섬에 다른 나라 개인무역업체들과 공동시장을 운영하여 벌어들이는 외화로 식량문제를 풀자는것입니다. 만포시행정위원회동무들이 들고나왔는데 몇푼의 돈에 현혹되여 사람들을 못쓰게 만들수 있기에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문성태는 심각한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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