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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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우는 숫제 입을 꾹 다물고 앉았다가 넌지시 물었다.
《듣자니 만포시행정위원회 부위원장이 신망이 없긴 하더군. 책임비서동무도 정무원에서 일할 때 그 사람때문에 피해를 봤다면서요?》
태혁은 갑자기 눈길이 날카로와졌다. 장관우가 이미 지나가버린지 오랜 일을 들춰내며 지금에 와서 그때의 불쾌한 일을 다시 상기시키는 리유를 알수 없었다.
《그건 왜 묻소?》
《한마디 해본 소리지요.》
장관우는 두리뭉실히 얼버무리고 덧붙였다.
《난 방금전에 책임비서동무가 대용식품문제를 의논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도 눈물이 나는걸 겨우 참았군요. 우리가 지금까지 오죽이나 많은 풀을 뜯어먹었는가요. 단오전에 돋는 햇풀은 독이 없다고 닥치는대로 먹었지요. 가둑나무잎과 칡뿌리를 먹고는 뒤가 메여 죽을 고생을 하구요. 오늘 만포에 가니 소금까지 떨어졌더군요. 터놓고말해서 대용식품으로는 식량에 큰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왜 어마어마하게 정치적으로만 분석하며 벌둥섬문제를 반대하는지 리해할수 없군요.》
장관우는 자기의 안타까운 마음을 그 정도로밖에 나타낼수 없는 일이 괴로운지 그만 움쭉 일어났다.
《내 그래서…》
창문을 마주하여 불한숨을 내쉬던 장관우가 성칼스럽게 돌아섰다.
《만포시행정위원회 부위원장동무와의 지난 일을 물어봤던겁니다. 책임비서동무의 반대속에 그에 대한 불만이 섞여있지 않는가구 유치한 억측을 했지요.》
장관우의 솔직한 말에 태혁은 얼마간 긴장했던 마음이 풀리는것을 느끼며 허구프게 웃었다.
《장관우부위원장이 칡먹구 뒤막힌 소리까지 탕탕 하구. 볼만 하오. 여보, 그렇게 투철한 일군이 벌둥섬에 공동시장을 벌려놓으면 사람들의 머리속에 쉬가 쓸수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하오? 장관우가 그만한 리치도 모를 아둔한 사람이요!》
장관우가 된매를 맞고 뗑해서 그를 바라보았다.
《말이 난김에 한가지만 더 묻기요. 난 장관우부위원장이 옹졸하지 않다는걸 누구보다 잘 알구있소. 그런데 만포시행정위원회 부위원장 허진규동무의 아들과 은희가 좋아하는건 왜 죽자꾸나 반대하오? 그 명철이란 청년이 대바르고 똑똑하다구 온 공장에 소문이 자자한데 말이요.》
태혁은 벌둥섬문제를 제껴놓고 젊은이들의 사랑이나 성사시킬 목적으로 숨돌릴 사이없이 다시금 공격을 들이댔다.
《허!》
장관우는 휘파람소리가 나게 냅다 웃었다.
《그 녀석이 우리 애한테 눈독을 들이는건 어떻게 아시우?》
《우리 집에 은희의 딱친구가 있잖소. 내가 부위원장의 까부라진 속을 모르는줄 아오? 총각은 욕심이 나지만 허진규동무와는 사돈을 맺기 싫다, 그게 아니요?》
《누가 그럽디까?》
《누구겠소. 은희의 애인으로 등장한 명철이지. 그 녀석이 나한테 와서 장관우부위원장이 큰소리를 치며 다녀도 졸장부라고 하더군.》
《망할 녀석같으니!》
장관우는 당장 명철의 뒤덜미를 잡아 혼내울것처럼 을렀다멨다.
《명철이가 똑바로 말했지. 장관우부위원장이 어디 허진규동무를 곱게 보는 사람이요? 제 속이 그러니까 남두 의심한단 말이요. 여보, 난 벌써 그렇지 않다는 보증으로 명철이와 함께 사진까지 찍었소. 내 오늘 말이 났으니 말인데 부위원장도 마음을 고쳐먹구 공손히 딸을 주는게 좋을것 같소. 난 허진규동무가 지금은 벌둥섬문제를 들고다니지만 이제 자기 잘못을 알게 될거라고 생각하오.》
《결국 식량문제는 의연히 막연하군요.… 터놓고 말해서 난 강재문제도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김철에 사람을 보냈지만 보름이면 알쪼가 있다던 강재가 한달이 지났는데 옵니까?》
장관우가 한방망이 얻어맞은 앙갚음이라도 하듯 열변을 토했으나 태혁은 그의 말을 들은둥만둥 무슨 전화인가를 열중히 받다가 수화기를 귀에 댄채 움쭉 일어났다.
《그러니 벌써 니탄떡을 만들었단 말이요? 아니, 내가 가지.》
태혁은 부위원장과 옥신각신하던 말씨름질을 다 집어던지고 서둘러 방을 나서다가 그때까지 한본새로 뚝 버티고 서있는 장관우를 향해 다급히 말했다.
《여보, 뭘하오. 대용식품이 나왔다는데…》
얼마후 그들은 도기술발전위원회에 당도하였다.
얌전해빠진 성실이가 입가에 손등을 대면서 나직이 대답했다.
《책임비서동지, 맞습니다. 시중호의 니탄으로 만들었습니다.》
《진짜 니탄떡이란 말이지. 수고했소, 수고했소.》
태혁은 두말하지 않고 접시우의 검스레한 떡을 한개 집어 맛이 어떤지 제꺽 먹어보았다. 모두들 열심히 입을 놀리는 그의 얼굴을 긴장해서 지켜봤다.
《음, 꽤 먹을만 하구만! 》
《책임비서동지, 정말입니까?》
《암, 성실동무가 큰 일을 했소.》
성실이가 책임비서의 과찬에 어리둥절해진 모습을 보고 다들 유쾌히 웃었다.
장관우는 그제야 구미가 동하는지 니탄떡을 닁큼 집어들었다.
다음순간이였다. 그의 큼직한 입은 니탄떡을 넙적 베여문채 굳어지고 두 눈알만 데굴데굴 헛돌았다.
《부위원장동무, 왜 인상이 그렇소?》
《예?》
장관우는 갑자기 뭐가 잘못되였다는것을 깨닫고 쓴약 삼키듯 입안의 니탄떡을 목구멍으로 꿀떡 넘기더니 마지못해 한마디 했다.
《괜찮구만. 감탕냄새가 좀 나긴 해두 쫀득쫀득한게.》
《부위원장동무가 괜찮다니 됐소.》
태혁은 여전히 흡족한 표정으로 자기 집식구가 둬끼 먹게 니탄떡을 종이에 꾸려달라고 부탁했다.
《우선 내가 먹어보고 별 탈이 없으면 그때에 인민들에게 공급합시다.》
그리고는 성실이와 류설미가 정성껏 싸주는 봉지를 받아들며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섰다. 그가 나오다 보니 장관우도 슬그머니 성실의 옆구리를 툭 치며 자기한테도 한봉지 달라고 눈을 끔벅여보이고있었다. 태혁은 일부러 못본척 하고 복도로 나왔지만 가슴속이 훗훗해지는것을 느꼈다. 가끔 엇드레질을 하며 밉성을 부려도 역시 마음이 곧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절로 얼굴에 미소가 피여오르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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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의 준엄한 겨울은 왔다.
온 나라를 휩쓴 식량위기로 요즘은 수도시민들도 하루하루 근근히 끼니를 에워간다. 엄동설한에 난방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 겪는 생활상의
불편도 이만저만하지 않다. 평양화력발전소와 새로 건설한 동평양화력발전소의 정상가동이 중단되는 바람에 초래된 후과였다. 5도미만의 랭방에서
잠을 설치고 기관들에 출근한 사람들이 외투와 장갑도 벗지 못하고 시허연 입김을 내불며 사무를 보기가 례상사이지만 추위는 조금도 수그러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한을 앞두고 련이틀 퍼부은 폭설은 가로수옆에 쌓인채 싸늘한 랭기를 풍겼다. 새벽부터 세차게 불기 시작한 광풍이 그
눈무지를 물어뜯으며 허공중에 뽀얀 눈가루를 말아올렸다. 우우- 귀청이 아프게 울부짖어대는 눈보라… 온종일 기승을 부리는 사나운 눈보라를
헤치며 오늘도 군인건설자들의 들끓는 건설장을 현지지도하시고 밤이 이슥해서야 당중앙위원회 집무실로 돌아오신
《태혁동무요?》
태혁이가 의자를 밀치며 급히 일어서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왜 목소리가 그렇소?》
태혁이 얼른 대답을 못했다.
《그곳 추위는 어떻소?》
《어제부터 령하 39도로 떨어졌습니다.》
《그럴거요. 대한추위니까. 공사에 지장이 많을테지?》
《예, 세멘몰탈이 얼어붙어서 애를 먹습니다. 워낙은 정월달에 발전소들의 기초작업을 끝낼 예정이였는데 공사기일이 다소 지연되고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건설장에서나 난관을 극복하며 동기전투를 밀고나갑니다.》
《힘겨울거요. 동무네 식량사정이 어떻소. 난 오늘 그 일이 걱정되여 전화를 했습니다.》
태혁이 머뭇거리면서 제꺽 대답을 못했다.
태혁은 아직 한번도 들어본적 없는 대용식품들을 무슨 발명품처럼 렬거하고나서 덧붙였다.
《도당직원들도 점심 한끼를 식당에서 〈니탄떡〉으로 에우는데 먹기도 괜찮고 근기가 있습니다.》
《그러니 일없다는거요?》
《지금 동무네 희천에서 공작기계가 얼마나 나옵니까?》
《요즘은 최대갈수기여서 희천공작기계공장도 전력을 거의나 보장받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일없다.ㅡ 매해 농토산물도 두석달 긁어먹으면 바닥이 나지 않소. 공작기계도 농토산물도 없으면 변강무역을 통해 들어오는 식량도 없다는 말인데 인민들을 먹여살릴수 있소?》
태혁은
《솔직하지 못하구만.》
《제가 도를 책임지고 어떻게 매번
《그만하오. 지금은 나한테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 충신이요. 그래 인민들이 굶주림에 쓰러지는데 동무 혼자서 막을수 있다고 생각하오? 왜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소!》
태혁이 조용히 눈물을 삼키는 소리가 수화기의 진동판에 실려왔다.
《조금도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말하시오.》
태혁은 갑자르면서 겨우 대답올렸다.
《한마디로 자강도의 식량난은… 최악에 이르렀습니다. 차마 눈뜨고 볼수없는 참상들이 처처에서 벌어지고있습니다. 이삼일씩 때식을 굶다싶이 하고 누워있는 사람들… 참혹합니다.…》
태혁의 목소리가 기여들어가 들리지 않았다.
《계속하오.》
《아니요. 죄다 말하시오.》
《장두칠이처럼 유능한 기능공들과 기술자들이 식량타격에 목숨을 잃고있습니다. 그들이 없이야 공장을 돌려냅니까. 굶주림은 사정없이 사람들을 쓰러뜨립니다. 주검은 어디에서나 눈에 띕니다. 기대앞에서 졸도하는 로동자들… 한 로기능공은 허약한 몸으로 발전소건설장의 강물속에서 일하다가 그대로 쓰러져 그만… 그 가슴아픈 일이 있은 후로 기능공, 기술자들을 정양소에 넣고 예비식량을 들이밀어 대우해주지만 극히 제한된 사람들을 위한 구제대책에 불과합니다. 이게 답니다.…》
태혁의 말은 몇번이나 눈물에 막혀 끊어졌다.
마감까지 참을성있게 태혁의 보고를 받으신
태혁의 흐느낌소리가 가슴아프게 들려왔다.
《그래, 있는것보다 없는것이 훨씬 더 많은 오늘의 역경속에서도 변심없이 우리의 사회주의조국을 지키고있는 인민! 그것은 내가
《우린 모두 처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요. 자강도로동계급은 죽어도 기계를 베고 죽겠다며 일떠섰는데 우린 그렇게 당에 운명을 맡긴 인민을 책임지지 못하고있소. 가슴이 타오. 가슴이!… 태혁동무, 우리 어떤 일이 있어도 자강도인민들의 식량문제를 기어코 해결합시다.》
자강도로동계급은 이 엄동설한에 발전소들을 건설하고 공장들을 돌리기 위한 결사전을 벌린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벌써 석달동안이나 초인간적인
힘으로 일떠서 싸우는 불사신의
《최단기일안에…》
태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도 힘껏 돕겠소.》
4
(1)
내가 무슨 실책을… 태혁은 몇번이고 입속으로 같은 말을 곱씹었다. 뿌옇게 물기낀 안경을 벗어쥔 그의 두손은 가늘게 떨렸다.
1951년 여름
《중대 차렷!》
다음 순간 그는 군모옆에 손을 붙인채 말뚝처럼 굳어졌다.
《대원들이 없는데 무슨 차렷이야?》
(이런 망신이라구야.)
너무도 창피스러워 귀뿌리가 덴것처럼 홧홧 달아올랐다.
태혁은 그때 위병장을 하면서 남달리
《국가마에 뭘 끓이나?》
《소금국입니다.》
친위중대 고정재산인 배불뚝이 무쇠가마안에서는 시멀건 소금물이 펄펄 끓었다.
《고마이가 왔다!》
친위병들속에 동해안 신포태생의 한 대원이 있었는데 그는 《고향친구》라도 만난듯이 기뻐서 날뛰였다. 다른 대원들도 《고마이풍년》에 환성을 질렀다. 매끼 식탁에 오르는 쩝쩔한 소금국에 골살을 찌프리던 대원들의 곱배기청으로 식사시간이면 한바탕씩 요란한 웃음판이 벌어졌다.
《그만 웃으라구. 모두들 메기입이 되겠어.》
밤근무에 나가면 야맹증으로 골탕먹는 대원들이 그렇게 시까슬렀으나 그들도 며칠후엔 심봉사 눈뜬것만치나 기뻐했다. 고등어가 너무 흔하다보니
대가리같은건 거들떠보지도 않고 뚝뚝 떼팽가쳤다. 그렇게 《천대》를 받으며 무져뒀던 고등어대가리를 강냉이밭에 싣고나가서 한포기에 한개씩
묻어주었더니 제격이였다. 당장 강냉이들이 시꺼멓게 독을 쓰며 자랐다. 하루아침
《너희들이 여기다 뭘 쳤느냐?》
태혁은 고등어대가리를 묻어줬다고 하면 영낙없이 욕을 먹을것 같아서 뒤덜미를 쓸어만졌다.
《저… 인분을 줬습니다.》
《그래, 무슨 쪼간이 있었겠지.》
《내 오늘아침 포전에 나가봤는데 왜 강냉이이삭이 손가락만 해?》
태혁은 한참 진땀을 흘리다가 실토했다.
《사실은… 그 강냉이포기에 고마이대가리를 묻어줬습니다.》
《그럼 인분을 쳤다는건 거짓말이였나?》
《그땐 욕을 먹을가봐…》
《태혁이가 날 속이다니… 친위병답지 않구만.》
태혁은 그날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