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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 회)

 

5

(2)

 

장관우의 불호령이 떨어진 후였다. 공장안은 불난것처럼 복닥소동이 일었다.

완성직장은 긴급지령을 받고 달려온 대형화물차들과 낮교대를 마친 로동자들로 뒤덮였다. 한꺼번에 이삼십대 잘되는 수동기대들을 운반한다는게 보통역사가 아니였다. 벌써 처리해버렸어야 할 페기물을 끼고있다가 들볶는다며 완성직장장에게 욕지거리를 퍼붓는 사람, 이제야 자동선을 하는것 같다고 쾌재를 올리는 사람, 별사람들이 다 있었다. 그래도 완성직장장은 옆에 장관우가 떡 버티고서서 지켜보니 귀먹은 시늉을 하며 분주히 돌아쳤다. 땀을 뻘뻘 흘리며 명철의 앞으로 휙 지나가던 직장장은 《동문 이 공장사람이 아니요?》 하고 역증을 내였다. 멍청히 서있지 말고 일손을 도와나서라는 말이였다. 그렇지 않아도 속이 근질거려 겨우 참고서있던 명철은 《일이 멋들어지게 돼가는걸!》 하고는 일판에 뛰여들어 제관공의 솜씨를 톡톡히 보였다. 장관우의 앞이라 갑절이나 기운이 펄펄 났다. 둬t 잘되는 기대를 쇠관우에 태우고 냅다 미는 그의 어깨에서는 구들장같은 근육이 불끈불끈 살아올랐다. 명철은 한참 팥죽땀을 철철 흘리며 일하다가 누군가 내미는 고뿌의 랭수를 꿀꺽꿀꺽 마시였다. 돌아다보니 현이였다. 현이가 어떻게?… 현이는 자기네 녀성들도 총동원됐다면서 그의 귀에다 대고 《명철동무, 은희 아버지가 대만족이야!》 하고는 까르르 웃었다. 명철은 이날밤 바삐 돌아치느라 그처럼 살뜰한 현이의 얼굴을 다시 보지 못했다. 밤 9시가 거의 되여 작업을 끝내고 모두들 제가끔 흩어져갈 때였다. 작업복을 벗어 얼굴의 땀을 훔치며  (이젠 성진형님의 집에나 가야지.)  하던 명철은 그만 우뚝 굳어졌다. 그의 앞에 담벽처럼 막아선 장관우가 아까같지 않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동무, 가공직장 수리공이라고 했지?》

《예.》

《이름은 뭐요?》

《김갑돌!》

명철은 갑자기 생각안나서 되는대로 주어대고 작업복을 단정히 입었다.

《사람은 똑똑한데 이름이 개판이로구만. 김갑돌이 뭐야?》

《고쳐야 할가 봅니다. 참, 전 부위원장동지의 딸 은희동무와도 잘 압니다.》

《그렇군. 동무 오늘 아주 큰 일을 했소. 제대군인이요?》

《그렇습니다.》

명철은 사기가 나서 대답하고나서  (아무리 무서워도 은희의 아버지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씽긋 웃었다.

《그런데 부위원장동지, 한가지 더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뭔데 어서 말하오.》

장관우는 어떤 어려운 문제를 제기해도 다 풀어줄듯 한 너그러운 태도로 그를 바라보았다.

《다름이아니라 지금 자동선설계를 담당한 최성진기사가 식량난때문에 몹시 고생합니다. 부위원장동지도 아시겠지만 기사동지의 안해는 리미액연구사업을 포기하구 평양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래도 성진기사는 자동선때문에 자리를 뜨지 못하다가 어제 식량을 구하려 위원으로 갔습니다. 기사동지의 생활상 애로를 좀 풀어줬으면 합니다.》

장관우는 알겠다는 시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 성진동무의 집이 어딘지 아오?》

《압니다.》

《저기 내 차에 타오.》

《예- 에?》

명철은 갑자기 머리가 뗑해졌다. 지금쯤 성진기사의 집에 은희가 가있겠는데 어쩐다? 그렇다고 꽁무니를 뺄수도 없는 일이여서 망설이던 명철은  (에라, 모르겠다. 내가 왜 물러서? 맞받아 나가구 볼판이야.)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럼 갑시다. 기사동지집에 은희동무도 가있습니다.》

《뭐, 우리 은희가?》

장관우는 어떻게 된 감투끈인지 몰라서 명철을 힐끗 쳐다봤다. 명철은 시치미를 뻑 따고 능청스럽게 둘러쳤다.

《예, 은희동문 아버지가 늘쌍 자동선때문에 걱정하는데 자긴 기사동지를 도와드린게 없다면서 퇴근시간이 되자 그리로 찾아갔습니다.》

명철은 말해놓고보니 그럴듯 해서 환성이라도 지르고싶었다. 장관우의 얼굴에서도 더이상 의혹의 빛을 찾아볼수 없었다. 딸의 마음이 기특해서인지 입을 꾹 다물고있다가 승용차가 서있는 곳으로 돌아섰다. 그들이 탄 승용차가 북천강을 끼고 한참 달리다가 도안전국뒤의 단층마을에 당도했을 때였다. 명철은 승용차가 멈춰서자 한발 먼저 최성진의 집으로 뛰여들었다. 부엌일을 하던 은희가 깜짝 놀라면서 가슴을 움켜잡았다.

《아이참, 왜 이렇게 간떨어지게 놀아요?》

《은희, 놀라지 마오. 동무아버지가 왔소.》

《네?》

명철은 덴겁하여 머리수건을 벗어쥐는 은희를 붙잡고 다급히 말했다.

《놀라지 말라는데! 머리수건두 쓰구. 자, 이렇게…》

《난 몰라. 아버지와 만나겠다더니 여기론 왜 데려왔어요?》

《챠 이런! 부위원장동진 가정방문을 왔단 말이요. 은희가 여기에 있다는것두 다 말했으니 마음을 푹 놓소.》

명철은 그쯤 은희를 진정시켜놓고 얼른 밖으로 달려나갔다.

《부위원장동지, 이 집입니다. 은희동무가 와있습니다.》

명철이 집안의 은희가 들으라고 일부러 큰소리로 말하자 은희는 제법 부엌일을 하던 차림으로 달려나와 아버지를 맞았다. 장관우는 딸의 안내를 받아 부엌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뭘하느냐?》

《아이들에게 장국을 끓여주댔어요. 글쎄 애들이 이틀동안이나 저걸루…》

은희는 눈물이 글썽해서 부뚜막에 세워놓은 불룩한 자루를 바라보았다.

《저게 뭐냐.》

《말즙풀이예요. 기사동지가 위원으로 떠나며 반되박되게 구해온 강냉이가루에 말즙풀을 섞어 끓여먹었대요. 모두들 자동선은 만들겠다면서 너무 무정해요.》

은희는 그 무슨 항변처럼 말하고 벽을 향해 돌아섰다. 방안에는 기사네 애들이 은희가 사온 빵을 손에 쥐고 햇병아리들처럼 맞붙어 앉아서 장관우를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나도 가슴아프다. 너희 지배인한테 기사의 가정을 잘 돌봐주도록 단단히 얘기하겠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명심해둬라. 이 고난의 시기 남들이 풀죽을 먹을 때 기사도 말즙풀을 먹으며 자동선을 만들면 그게 더 떳떳한거야.》

은희는 축축히 젖은 얼굴을 돌려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무슨 할 말이 있어 그러는가 했더니 장관우의 어깨우에 떨어진 흰머리카락을 집어 자기의 까만 머리우에 조용히 얹었다. 마치 아버지와 말없이 괴로움을 나누는듯 한 은희의 그 갸륵한 모습을 보고 명철이도 그만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6

(1)

 

성실은 벌써 한달가까이 과학원에 출근한다.

무엇때문에?… 그 자신도 모른다. 이젠 누구도 그의 연구사업을 믿는 사람이 없다. 새로운 과제를 맡길것이다. 어차피 그렇게 될것이지만 과학자인 그의 량심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지루히 시간을 끌고있는가.… 성실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흘러보내는 나날이 천추같았다. 하루빨리 이 허무한 생활이 끝장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누구도 그에게 관심하는 사람이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였다. 어제 실장은 연구소에 성실의 문제를 다시 제기했는데 기다리라는 말밖에 들은게 없다고 했다. 성실은 농업위원회와 연구소 부소장의 부당한 처사를 생각하면 울고라도 싶었다. 그 랭담한 인간들때문에 자기의 연구사업을 진심으로 돕던 사람들까지 애매하게 피해를 당하지 않았던들 연구사업을 포기했을가? 괴로운 마음은 그뿐만이 아니였다. 성실은 리미액연구사업을 하는 기간 가정부인으로서 안해다운 구실도 변변히 못했다. 1년 12달 가정을 떠나 노상 실험실과 실험포전들에 나가살다싶이 한 성실의 눈앞에는 평양으로 떠나오기 앞서 남편이 《당신은 리미액연구사업을 관두면 두번다시 과학연구사업을 못해! 과학자로서의 당신의 인생은 끝장나고마오.》 하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던 모습도 다시금 눈물겹게 떠올랐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남편의 그 충고가 백번 옳았다고 생각되였다.

(내가 너무 경솔했어.)

성실은 그런 나약한 자신에 대한 후회로 잠 못 이루다가 잠간 눈을 붙인사이 꿈까지 꾸고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4살난 영남이가 자기를 보고도 별로 반가와하는 기색이 없다가 《엄마, 〈땅크〉 사완?》 하고 물었다.

언제부터 영남이가 졸라대는 완구를 사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늘쌍 깜빡 잊군 한 성실은 당황히 아들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영남아, 다음번엔 꼭 사줄게》

《거짓말! 엄만 리미액밖에 몰라.》

성실은 꿈에서 한 아들애의 말이 너무도 가슴에 맺혀 울적한 마음에 잠겨있다가 오늘 아침에야 연구소 부소장이 불러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부소장은 이미 리미액연구사업을 제껴놓은 일군의 태도로 틀지게 앉아서 말했다.

《동무도 알다싶이 지금 어느 농장에서나 복합미생물비료에 대한 호평이 대단하오. 이제 균을 확정배양하고 생산체계를 세우자면 10년이 걸려도 될지말지 한 리미액을 구태여 연구할 필요가 있겠소?》

성실은 여태껏 자기의 연구사업을 반대한 사람들의 판에 박힌 설교가 역스러워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복합미생물은 이미 1980년대에 어느 한 나라 과학자들이 연구개발한 성장촉진제였다. 그후 복합미생물에 의한 농업생산은 세계적추세로 되고 그 나라는 그 성능이 좋은 미생물비료의 유일보유국으로 되였다. 그들은 10년도 못되여 또다시 복합미생물보다 농작물들의 성장에 훨씬 효과적인 미생물을 발견하여 련이어 학계의 주목을 끌었다. 성실은 그 사람들이 독점하고 거액의 폭리를 노리는 바로 그 새로운 미생물을 자체로 만들기 위해 3년동안 피나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나라 학자들은 조선에서 리미액을 연구한다는 말을 듣고 당신네야 복합미생물도 사서 쓰지 않는가, 어방도 없는 꿈을 꾸지 말고 리미액종균을 팔아주겠으니 당신네 나라에서는 흔한 물만 쓰라고 하였다.

하지만 성실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배심으로 자기의 연구사업을 내밀어왔다. 그런데 왜 이렇게도 제 사람들까지 한사코 앞을 막아나서는지 알수 없었다.

《부소장동지, 물론 우린 복합미생물비료만으로도 얼마든지 농사를 지을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전 오늘과 같이 어려운 시기에 한푼의 외화도 투자하지 않고 우리의 기술과 원자재로 보다 유익한 미생물을 만들어쓰자는겁니다. 저도 이 연구사업이 힘에 겹습니다만 가능성이 있는가 없는가 하는건 좀더 두고봐야지 않습니까?》

《성실동무, 너무 고집하지 마오. 우리도 동무의 문제를 심중히 토론했소.》

부소장의 말투는 부드러웠으나 얼굴에서는 랭기가 풍겼다.

《아닙니다. 부소장동지의 말씀이 진실이라면 무엇때문에 저의 연구사업을 돕고 지지하던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줍니까. 동지들이 당한 그런 가슴아픈 일만 없었어도 전 연구사업을 포기하려고 맘먹지 않았을것입니다. 전 리미액의 전망이 암담하여 물러선건 결코 아닙니다.》

《건방진 소리 마오.》

부소장이 성실의 반발에 열이 올라 책상을 탕 쳤다.

《동무, 괜히 누굴 걸고들지 말고 동무처신이나 똑바로 하오. 동무가 강동군농장의 논판에 리미액을 쳤지만 무슨 소득이 있소? 3년동안 연구했다는 리미액이 아무런 효과도 없잖소!》

《그건 리미액을 뿌린 이튿날 소낙비가 와서…》

《그따위 떨떨한 소린 하지도 마오. 농업위원회 과학기술국에선 왜 되지도 않을 리미액을 치게 하는가구 왁작 떠드오. 정말 동무때문에 골치가 아파 죽을 지경이요. 자강도 농촌경리위원회 한 처장은 뭐라는지 아오? 리미액때문에 다른 비료 못 친다고 동무를 빨리 데려가라고 야단이요. 그래서 동무를 불러올린거요.》

《아닙니다!》

성실은 너무도 악이 받쳐 고함을 질렀다.

《여기엔 리미액연구사업을 중단시키려는 무서운 모략이 숨어있습니다!》

《모략이라구? 동무, 제발 소가 웃다 꾸레미터질 소린 하지도 마오.》

낯빛이 푸르딩딩해 일어난 부소장은 가방을 끼고 방에서 훌쩍 나가버리였다. 성실은 너무 무참하여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쩌면 이럴수 있는가? 어쩌면… 두손으로 얼굴을 싸쥔 그는 복도로 와락 뛰쳐나갔다. 부소장도 한때 과학에 종사하던 사람인데 이렇게도 과학자의 고충을 몰라줄수 있는가. 성실은 자기의 연구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때문에 고심하던중 지난 봄 강동군 농장의 논에 리미액을 시험적으로 뿌리고 자강도에 들어가서 장강, 중강, 고산진을 비롯한 여러개 군의 농작물에도 적용해보았었다. 두석달이 지나자 확실히 리미액을 도입한 포전의 벼와 강냉이들의 작황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성실은 너무 기뻐 때식도 잊고 시험포전들에 나가서 살다싶이 했다. 장강에서 중강까지 이삼백리 잘되지만 그길을 북나들듯 뻔질나게 오갔다. 꼭두새벽에 장강을 떠나 인심좋은 운전사들이 로상에서 자동차를 태워주면 다행히 차신세를 지고 그렇지 못한 날에는 도보로 중강에 당도했다. 편리화의 신발창이 떨어져 새끼오라기로 동여매고 절룩절룩 걷군 한 때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런데 유독 강동군 농장만은 감감 무소식이여서 관리위원장에게 전화로 알아보니 별반 효력이 없다는것이였다. 성실은 이틀후에야 중앙기상수문국에 부탁하여 리미액을 뿌린 날 밤 평양일대에 소낙비가 내린 사실을 알게 되였다. 리미액은 소낙비에 희석되여 버린게 틀림없었다. 그 엄연한 증거가 있는데도 부소장은 주견이 없이 남의 장단에 춤추며 리미액연구사업을 중단시키려고 몸살이 나게 소동을 피운다.

성실은 과학자의 꿈과 량심을 짓밟히며 사느니 차라리 학계를 떠나 마음편히 땅 파는 일이라도 하고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그는 당장 밤차로 떠날 작정을 하고 일찌감치 시내의 완구상점으로 찾아갔다.

어제밤 꿈속에서 영남이가 《어머닌 리미액밖에 몰라.》 하던 말이 생각나 눈물이 고여올랐다. 내가 이렇게 중도에서 집어던질 연구사업을 위해 3년동안이나 어린것들을 버리고 드달려다니였던가. 완구상점에서 문을 닫기 전에 부랴부랴 서둘러 영남이가 그리도 좋아하는 《땅크》를 사서 가방안에 넣고도 성실은 기쁜 마음보다는 서러움이 앞서 발길을 옮기지 못했다.

평양ㅡ만포행렬차는 연착이 되여 이튿날 한낮이 훨씬 지나서야 강계에 도착하였다. 장밤 렬차에서 시달리고 집에 들어선 성실은 또다시 뜻하지 않았던 일에 깜짝 놀랐다. 7살난 딸애가 방바닥에 누워있는 제 동생을 마구 흔들다가 성실이가 나타나자 왕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야ㅡ 영남이가…》

《영남이가 어떻게 됐다는거야?》

성실은 가방을 내던지고 방으로 올라가 영남이를 덥석 안았다. 어린것의 머루알같던 눈동자는 정기를 잃고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얘가 왜 이래?》

《아침부터 배아프다며 막 울었댔어》

《영남이가 뭘 먹언?》

성실은 다급히 물었다. 겁에 질린 딸애는 말 못하고 엉엉 울기만 하였다. 성실이가 재차 안타깝게 큰소리를 질러서야 딸애는 눈물을 흘리며 고간안의 자루를 들고왔다.

《엄마, 영남이가 불쌍해. 엄마가 감춰둔 이 쌀로 밥해줬어.》

《뭐라구? 이안에 무슨 쌀이 있다구 그래?》

성실은 지난 봄에 네댓키로 구해온 쌀을 아껴가며 아이들에게만 먹인 일이 떠올라서 얼른 자루목을 열어보았다. 그때 말끔히 먹어버린줄로 알았던 쌀이 자루밑굽에 한줌도 되나마나하게 남아있었다. 몇달동안 누기찬 고간안에서 쌀은 시커멓게 썩어 곰팽이냄새가 풍겼다. 내가 그렇게도 쌀고생을 하면서 이걸 잊어버리다니… 철없는 딸애가 그 썩은 쌀도 쌀이라고 제 동생에게 밥을 해먹인 일이 죄다 자기 잘못 같았다. 다 내탓이야! 가정을 팽개치고 온통 연구사업에만 정신이 팔려버렸던 성실은 기가 막혀 눈물을 쏟다가 방에서 와락 뛰여나갔다. 다급한 생각에 쫓겨 동진료소로 달려간 그가 왕진을 청하고 다시 돌아오니 영남은 눈을 멍히 뜬채로 그냥 누워있었다. 성실은 아이옆에 꿇어앉아 《영남아, 영남아!》 하고 부르짖다가 뒤따라 방으로 들어온 늙수그레한 동의사를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선생님, 우리 영남이가 왜 이래요? 영남이가…》

로인은 방바닥의 자루옆에 흩어진 썩은 쌀알들만 덤덤히 바라보았다.

《애한테 저걸 먹였구만.》

《내가 출장간사이에 딸애가 글쎄…》

《애아버진 없소?》

《있어두 밤낮 공장에 나가 살다보니… 그렇게 됐겠지요.》

성실의 말을 들은둥만둥하며 로인은 어느새 영남의 곁에 침착히 붙어앉아 침치료에 여념이 없었다. 의술이 용하기로 소문난 로인의 침이 효력을 봐선지 얼마후엔 영남의 눈시울이 가늘게 떨었다. 동진료소의 간호원이 점적대를 들고 급히 들어와 점적을 할 때에는 눈이 말똥해서 어머니를 알아보았다.

《엄…마, 왜… 이제야 완?》

말 못하는 성실의 눈물방울이 영남의 볼우에 떨어졌다. 성실은 그 눈물을 닦아내고 자기의 볼을 꼭 갖다대였다. 오래간만에 만난 아들의 볼은 싸늘했다.

《영남아, 왜 이렇게 차니?》

《엄만 따뜻해… 다시 가지마.》

《안간다. 가지 않으마.》

《엄마, 〈땅크〉 사완?》

《사왔다.》

성실은 가방안의 완구를 얼른 꺼내여 아들의 가슴우에 놓아주고 마구 흐느꼈다. 영남의 눈귀에서도 자그마한 이슬방울이 반짝였다. 그것은 영남이가 남기고 간 마지막생명의 불꽃이였다. 하지만 한뉘 미생물밖에 모르며 살아온 성실은 그런줄도 몰랐다. 영남은 점적바늘을 꽂은지 30분도 못되여 잠자듯이 다시금 눈을 소르르 감았다.

불길한 예감에 가슴이 오싹해진 성실은 의사의 팔을 잡고 영남이를 살려달라고 애걸했다. 동의사는 잠자코 앉아서 한숨만 내쉬였다.

《아주머니, 병을 너무 길렀소. 아이는… 잘못됐수다.》

《아니예요.… 그럴수 없어요.》

성실은 아들의 조용한 얼굴을 넋없이 바라보았다. 영남이는 자고있다. 자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쩐지 좀전보다 아들의 볼이 더 찼다. 숨진 아들의 량볼과 이마를 쓸어만지며 눈물을 흘리던 성실은 그제야 곡성을 터뜨리였다.

《아니… 아니예요. 우리 영남이가 죽다니… 그럴수 없어요!》

성실은 갑자기 영남이를 와락 그러안았다. 누가 자기의 품에서 어린것을 빼앗아갈가봐 겁난듯이 그렇게 꽉 껴안았다. 그리고는 아들을 안은채 정신을 잃고 까무라쳤다. 밤중에야 겨우 의식을 차린 성실은 《우리 영남이가… 영남이가…》 하며 방안을 두릿두릿 살폈다. 그러나 영남인 없고 머리를 푹 떨군채 우두커니 앉아있는 남편의 모습만 흐릿하게 보였다. 영남이가 어디로 갔는가요?… 성실의 넋빠진 물음에 남편은 아무 대꾸도 없었다. 말없이 담배만 피우는 남편, 지독한 술냄새… 미칠것만 같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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