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 회)

 

1

(2)

 

충모는 잠자리에 누웠다가 너무나 고통스러운 마음때문에 벌떡 일어나 앉아서 달그림자가 사선으로 비낀 창문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어느 사이 웃방문을 열고 들어온 어머니가 옆에 와앉으며 조용히 말했다.

《얘야, 내가 괜한 소릴 하지 않았느냐?》

《아닙니다, 어머니.》

《그래, 나도 이런 일은 네가 꼭 알고있어야겠기에 말해줬다. 사람들이 군당책임비서를 믿지 못하니 어디 됐느냐.》

어머니는 목메인 소리로 말하고 얼른 일어났다. 충모의 량볼을 적시며 드디여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였다.

《어머니, 제가 일을 잘못했습니다, 제가요. 장군님께서 저를 장강군당 책임비서로 임명해주신지도 벌써 8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인민들이 이 군당책임비서를 믿지 못하니 제가 헛일을 하였습니다! 이 못난놈을 용서해주십시오. 어머니!》

충모는 어머니의 발치에 꿇어앉아 방바닥을 허비며 어린애마냥 어깨를 들먹이였다. 지금껏 어머니를 서운하게 해드린적이 한번도 없던 그였는데 다 큰 이제 와서 늙은이를 괴롭히는 일이 가슴저리고 죄스러웠다.

《알았으면 됐다. 그만하거라. 우리 집 밥그릇에도 풀죽이 들어있지 않았느냐. 이제라도 일을 잘하여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면 된다.》

어머니는 그의 터실터실 터갈라진 손을 어루만지고 방을 나서면서 사이문을 꼭 닫아주었다. 충모는 온밤 괴로운 마음을 안고 몸부림치며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 이튿날부터 그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밤낮없이 발전소건설장에 나가서 살다싶이 하며 이따금 현장에 나타나는 늙은 어머니의 모습을 쓰린 마음을 안고 먼빛으로 뵙군 하였다.

 

2

 

시간은 잠시의 지체도 없이 사정없이 달린다. 조금만 탕개를 늦추어도 공사기일을 보장하지 못한다. 시간, 시간… 최대한으로 시간을 앞당겨야 한다. 계획된 날자에 설계를 내놓으려고 지휘부안은 매일같이 죽가마 끓듯 한다. 지난밤 태혁이 지휘부로 찾아가보니 리경훈이도 자정이 훨씬 넘었는데 웃통을 벗어붙이고 앉아서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설계를 검토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강계에 도착한 날부터 지휘부성원들과 함께 뜬눈으로 밤을 패는 로학자였다. 태혁이가 그의 건강을 우려하여 몇번이나 쉬염쉬염 일하라고 권고했지만 막무가내였다. 며칠동안의 바쁜 고비를 넘기고는 무슨 수를 쓰던지 평양으로 되돌려보내는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을것 같았다.

발전소건설지휘부에 가서 정신을 차릴 사이없이 들볶이다가 도당청사로 돌아온 태혁은 층계를 오르다가 조용히 인사를 하고 옆으로 스쳐지나는 선전부 부원 혜경을 얼핏 돌아다보았다.

혜경이가 아래층으로 사라져버린 후에도 그는 (가만, 내가 왜 저동무 생각을 못했을가. 혜경에게 강재를 해결할 과업을 주어 김철에 보내면 어떨가?…) 하는 생각으로 걸음을 떼지 못하였다.

그가 자기 방에 들어서자 북창의 강재를 끌어오려고 떠났던 장관우가 뿌루퉁한 얼굴로 찾아들어왔다.

《어떻게 됐습니까?》

장관우는 맥없이 의자에 앉아서 담배만 풀썩풀썩 태웠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것이 헨둥했다.

《그 기사장이란 사람이 잡아트는 바람에 성사를 못했수다. 별사정을 다 해도 어디 듣는척이나 해야지요. 장군님께서 자기를 거기 기사장으로 임명하신건 북창화력을 살리기 위해서인데 동무네 일만 일이라구 하지 말라며 벌컥 성까지 내질 않겠습니까. 정말 구두쇠더구만.》

태혁은 며칠전 장관우가 북창의 강재를 실어오기만 하면 깨끗이 먹어치우겠다던 말을 상기하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강재 1t이 바른 때인데 그곳 기사장인들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서 먼저 강재를 돌려주고싶어도 딱 잡아뗐을것이다.

《내 생각에도 북창의 강재는 안될것 같소. 그 사람들도 발전소보수작업을 할 자재인데 호락호락 내놓겠소.》

《야단났군요. 도안의 강재는 몽땅 긁어모아야 200~300t도 되나마나 합니다. 이러다간 강재때문에 공사를 망치겠습니다.》

태혁은 잠자코 앉아있었다. 그래, 도안의 강재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 그렇다고 우거지상을 하고 걱정만 하며 앉아있겠는가. 김철에 물려있는 강재를 받아오자. 그런데 누굴 김철에 보낼것인가. 과연 혜경이가 해낼가? 장관우는 김철에 정무원 위원회, 부간부들, 무력부 장령들이 콱 덮였다고 한다. 김철지배인이 과연 혜경이와 같은 아련한 녀성을 거들떠보기나 하겠는가. 하지만 혜경이에게는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장점이 있다. 그는 사람들의 심장을 울릴줄 아는 녀성이다. 그것으로 희천기관차대의 견인기도 예정한 기일보다 훨씬 앞당겨 살려냈다. 혜경이만 한 적임자가 없다. 그를 또다시 김철에 보내여 고생시킨단 말인가? 신혼생활을 하는 혜경에게는 갓난아이까지 달려있지 않는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혜경이만 한 적임자가 없을것 같아서 장관우의 의향을 물었더니 당장 드센 공격이 날아왔다.

《아니, 그건 이 장관우를 어떻게 보고 하는 말입니까. 이 부위원장이 허재비같애두 혜경이만큼이야 하겠지요. 그 치마두른 녀성보다 못해서 내가 그 먼길을 찾아갔다가 강재를 받아오지 못한줄 압니까?》

태혁은 그만 허허 웃고말았다. 자기의 말에 장관우가 이렇게도 노염을 탈줄은 몰랐던것이다.

《그래두 혹시 알겠소. 날구뛴다는 부위원장이 해결하지 못한 강재를 혜경동무가 받아오게 될런지… 김철에 가서 지배인의 심장을 틀어잡기만 하면 가능하다고 보오.》

《글쎄… 정 그렇다면 보내보시우다. 밑져야 본전인걸.》

장관우는 입이 쓰거운지 덤덤히 앉아서 한숨을 쉬였다.

그때 책상우의 전화기가 뜨르릉 울렸다.

태혁은 장관우와 나누던 이야기를 끊고 수화기를 들었다.

랑림군행정위원회 위원장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책임비서동지, 오늘부터 랑림군 목재공장의 안희련동무가 우리 행정위원회 부원으로 일하게 되였습니다.》

랑림군행정위원회 위원장이 목재공장의 로동자인 안희련을 자기네 행정위원회로 끌어올리지 못해 바글바글 끓어댄 일은 그도 장관우도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태혁은 의자에 삐뚤서 앉아있는 장관우가 들으란듯이 일부러 큰 소리로 물었다.

《여보, 그 눈물이 헤픈 녀성이 행정위원회에 들어가서 맥을 춰낼가?》

《아니,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희련동무에 대해서는 책임비서동지가 잘 알지 않는가요. 전 6년째나 행정위원회 위원장사업을 하면서 군내 아이들에게 콩우유 한고뿌 먹이지 못했지만 그 동문 지금도 밤잠을 잊고 뛰여다니며 모든 탁아유치원들에 콩우유를 공급합니다.》

《그러니 동문 엄두도 내지 못한걸 희련동무가 했단 말이지? 하긴 지금 자강도에서 콩우유를 먹는건 랑림군아이들밖에 없소.》

태혁은 그렇게 말하고 장관우를 흘끔 곁눈질해봤다.

장관우는 자기 립장을 딱하게 만드는 별난 놈의 전화가 다 온다는듯 한 태도로 다리를 꼬고앉아서 담배만 뻐금뻐금 태웠다.

《요즘 우리 랑림군에 보배덩이가 생겼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제 강계시에 일잘하는 녀성지배인들이 많아서 늘쌍 부러워했는데 랑림군에 안희련동무가 혜성처럼 나타났습니다.》

《그래, 안희련이가 용치. 쉽지 않은 녀성이야.》

태혁이가 그와 알게 된것은 지난해 자강도인민들이 한창 식량난에 허덕이고있을 때였다.

안희련은 장군님께서 희천시 밤거리의 방랑아들과 만나신지 한달이 썩 지나 그 소식을 듣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 장군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쓰리시였을가? 눈물로 꼬박 밤을 새운 희련은 이튿날 두 아들을 데리고 다 캐여먹은 감자밭을 파뚜지느라 손바닥이 피투성이가 되였다. 시들어빠진 감자줄기까지 빡빡 거둬간 밭에 무슨 감자가 남아있겠는가. 그래도 혹시 한두알 나올지 알겠는가. 입술을 사려물고 호미자루가 부러지게 파고 또 파보았다. 굴착기나 불도젤이면 수백평의 비탈밭을 그렇게도 발칵 뒤집어엎을수 있었겠는가.

온종일 생땅이 드러나게 파헤치면서 겨우 찾아낸 새알같은 감자 반자루… 희련이 그 감자를 한알도 축내지 않고 삶아서 유치원아이들한테 가져다주자 모두들 그의 험악해진 손을 잡고 눈물을 머금었다.

제 집안식구들을 먹여살릴 일도 힘겨운 형편에 남편까지 중병을 만나 속을 태우던 희련은 그 일을 발단으로 하여 자기도 자강땅 사람답게 다소나마 보람있게 살수 있다는것을 깨닫고 가슴속이 밝아졌다. 희련은 혼자 골똘히 생각하던 끝에 자기 집안의 변변치 않은 가산을 팔아서라도 어떻게든지 아이들에게만은 콩우유를 먹여야겠다고 속다짐을 하게 되였다. 비록 병석에 누웠으나 남편도 이를데없이 마음이 착한 사람인지라 재산이라는건 없다가도 생기는 물건이 아닌가면서 안해의 말에 전적으로 찬성했다. 장군님께서 나라의 왕이라며 금싸래기처럼 아끼시는 아이들인데 무엇을 아끼랴. 희련이가 여기저기 줄을 놓아가며 콩우유생산기계를 만들기 위해 안타까이 드달려다니는 사이 남편은 집에서 혼자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그러니 희련이가 출장을 떠나며 망설일 때 《여보, 큰 마음을 먹고 나섰는데 뭘 주저하오.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페인이 된 이 남편때문에 초지를 꺾겠소? 내 걱정은 말고 어서 가오. 내 노상 자리에 누워 당신을 돕지 못하니 한스럽소.》라고 한것은 림종을 예감한 사람의 마지막말이였던가. 희련은 집으로 돌아오자 방바닥에 엎어져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제집같지 않게 텅 비여버린 휑뎅그레한 방안, 낯익은 도배지만 붙어있는 벽밑의 칠성판우에 숨기없이 누운 남편과 고인의 머리맡에 댕그랗게 놓인 돌처럼 다릉다릉 마른 돌배 두알… 안희련은 모진 아픔과 슬픔을 이겨내기가 무척 힘겨웠으나 남편을 아득령의 험한 령길옆에 묻고는 다시금 출장길에 나섰다.

남편의 몫까지 합쳐 인생을 도약하며 줄달음치려는 희련의 그 사연많은 노력에 의해 마침내 생산된 콩우유 10t이 랑림군아이들에게 일제히 공급되였다. 그후 군안의 교원들, 아이들 누구나가 희련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그 감동적인 사실을 전해들은 희련의 녀동무들과 친척들은 힘을 모아 위문품을 보내왔는데 자그만치 한자동차나 된다고 했다. 희련은 그 위문품으로 또다시 콩우유를 마련하려고 뛰여다닌다.

이것이 태혁이 알고있는 희련의 생활이였다.

《잘되였소. 희련동무에게 과업을 주어 랑림군인민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할수 없겠소?》

《알겠습니다.》

태혁은 랑림군행정위원회 위원장과의 전화에 열중하다보니 장관우가 방에서 나간줄도 몰랐다. 담배재털이에서 그가 채 끄지 못한 담배만 저혼자 타며 모락모락 연기를 피워올렸다.

(부위원장이 급해맞았던게로군. 저래 놓고 꽁무니를 뺀걸 보니…)

태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재털이의 담배불을 마저 꺼버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금 전화기앞으로 돌아와 선전부의 박혜경을 찾았다.

마침 혜경이가 제꺽 전화를 받았다.

《선전부 혜경입니다.》

《지금 뭘하오?》

태혁의 목소리는 거세게 울렸다.

《책임비서동지, 금방 발전소건설지휘부에 갔다왔습니다.》

《이제 곧 내 방으로 와주오.》

《알겠습니다.》

태혁은 수화기를 놓고 혜경이가 나타나기를 초조히 기다렸다. 본인과 담화해보고 김철에 갈 용의가 있으면 지체없이 떠나보낼 결심이였다.

(지금은 그 누구든지 장군님의 명령관철에 희생을 각오하고 나서야 한다.)

조금후 혜경이가 조용히 문을 두드리며 찾아들어왔다.

《여기 와서 앉소.》

태혁은 자기 책상앞의 의자를 가리켰다. 의자에 앉아야 할지 그냥 서있어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는 혜경의 눈가장은 금방 울고난것처럼 발그스름했다.

《무슨 일이 있었소?》

혜경은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였다.

《아닙니다.》

《그런데 왜 얼굴이 그렇소?》

혜경은 부서에서 후방물자를 가지고 발전소건설지휘부로 지원을 갔는데 모두들 졸음을 이기지 못해 찬물에 발을 잠그고 일하더라며 눈물이 가랑가랑해서 말했다. 태혁은 그만 코마루가 찡해졌다. 희천기관차대 견인기를 살릴 때 로동자들이 굶주림에 쓰러지면서도 기대앞을 떠나지 않는다며 흐느끼던 혜경의 모습을 다시금 보는듯싶었다.

《혜경이, 아이가 몇살이요?》

《돌이 지났습니다.》

《아직도 젖을 먹소?》

혜경은 책임비서가 별난걸 다 묻는다며 생긋 웃었다.

《먹습니다. 우리 어머닌 암죽을 먹이라고 야단이지만… 그건 왜 묻습니까?》

《그럴만 한 일이 있소. 동무를 한 보름동안 출장보내자고 그러오. 갔다올수 있을가?》

《가겠습니다. 어딥니까?》

《김철이요. 거기 가서 강재를 8 000t 받아오면 되오.》

《제가요?》

혜경의 눈섭이 까부장해졌다.

《대단히 어려운 과업이요. 김철에 가도 강재는 바르고 저마끔 강재를 받아가겠다는 사람들로 끓어댄다고 하오. 게다가 김철지배인은 호랑이같은 사람이요. 어떻게 하든 지배인과 만나서 우리한테 왜 강재가 절실히 필요한가, 강재가 없으면 자강도로동계급이 장군님의 명령을 관철하지 못한다고 호소하오. 사람은 서너명 붙여주겠소.》

혜경은 고개를 숙이고 잠자코 앉아있었다. 자기가 가서 강재를 받아올수 있겠는지. 난생 처음 해보는 일이여서 자신이 없어했다.

혜경은 근심스럽게 호 한숨을 쉬였다.

《가겠습니다.》

《잘 생각했소. 동무밖에 갈만 한 사람이 없소. 도무역국 부국장과 선전대 림신애, 건설사업소 김중범령감과 함께 가오. 그러나 어디까지나 주인은 혜경동무요.》

혜경은 잠시 골똘한 생각에 잠겼다.

《저… 김중범아바이는 왜 보냅니까?》

김중범은 몇해전까지만 해도 시행정위원회 위원장사업을 하다가 과오를 범하고 출당해임되여 건설사업소 경비원으로 근무한다. 한때 그에 대한 불명예스러운 소문이 요란히 나서 김중범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왜 김중범을 보내는가? 그 령감이 과오는 저질렀지만 괜찮은 사람이요. 자기의 부끄러운 지난 생활도 심심히 뉘우치고있구… 고충이 많은 사람인데 데리고가오. 동무의 아버지와 동년배인 늙은이의 여생을 돌봐주는 일이라구 생각하면 강재문제도 더 잘 풀릴거요. 보름, 길어서 한달이라는걸 잊지 마오. 사흘에 한번씩은 나한테 전화도 하고 편지도 하오.》

혜경의 다감한 두눈에 어느새 연한 물기가 차분히 감돌았다. 태혁은 그의 손을 꼭 잡아주고 출입문밖으로 친절히 따라나갔다.

《책임비서동지, 들어가십시오.》

《무조건 성공하오. 래일 오전까지 동무네 출장준비를 마치오. 경리부에 내가 직접 과업을 주겠소.》

 

3

(1)

 

리성하는 요즘 태혁이만 보면 무척 마음이 괴로와지군 한다.

지난해 스위스에 기술자대표단으로 갔을 때 그는 태혁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장군님의 명령을 무조건 꼭 관철하라고 신신당부했었다. 그것은 리성하가 자강도에 내려오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내뿜었던 말이였다. 최악의 조건에서 벌어지게 될 발전소건설은 태혁이가 집행할 과업이지 자기가 맡아할 일이 아니였다. 요란한 언사를 가리지 않았던 리성하의 심리속에는 자기는 한갖 방관자에 불과하다는 랭랭한 감정이 내포되여있었다. 그들 두사람사이에는 서로 다른 그러한 엄연한 계선이 그어져있었고 리성하와 태혁은 물우에 뜬 두개의 기름방울처럼 따로 갈라져 살아가게 될 별개의 존재였다. 그 기름방울들이 하나로 합쳐지고 자기도 태혁이와 함께 자강도의 발전소건설을 책임지게 되였을 때에야 리성하는 차츰 초기의 감정과 흥분이 사그러져가면서 랭철히 타산하는 인간으로 돌변되는 자신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가 두달전 입안의 침이 마르게 태혁을 고무격려했던것은 빈 말치레와 허위에 지나지 않았다. 리성하는 그런 자신을 인정하기가 고통스러웠으나 될수록이면 태혁의 앞에서 자기의 떳떳치 못한 본심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전후사연은 어떻게 되였던지 그는 이전에도 자강도의 중소형발전소건설대를 해산시켰던 사람이 아닌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 사람은 이전의 건설대 부대장이였던 림준이였다. 그때 건설대가 해산되자 불구된 몸으로 찾아와 가슴을 치며 울분을 내뿜던 림준의 모습은 아직도 리성하의 눈에 선하였다. 리성하는 사나흘전 발전소건설지휘부에 들어갔다가 림준을 얼핏 보았으나 몸가짐이 거북해지는 자신을 느끼며 돌아서나왔다. 그가 한손에 꾹 눌러짚은 지팽이만 봐도 당장 자기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올것만 같아 적당히 자리를 피해버리였다.

옹근 이틀에 걸쳐 자강도안의 발전소건설장들을 돌아보고 말마우재골안에서 빠져나오는 지금도 리성하는 예전에 림준이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이 자꾸만 떠오르며 마음속이 번거로와졌다.

리성하가 자강도발전소건설련합기업소 지배인사업을 할 때였다.

어느날 그는 건설대가 한창 기세를 올리는 현장으로 찾아갔다가 어지간히 놀랐다. 쉴참에 건설대원들이 발전소언제옆의 강기슭에 둘러앉아 오락회를 벌리는데 건설대 부대장 림준이 부르는 노래가 기딱막힌 명창이였다. 날씨 또한 얼마나 상쾌했던가! 한낮의 밝은 해살에 은구슬처럼 반짝이는 시내물이며 푸른 천연원시림, 그우로 젊은이의 청맑은 목소리가 류창하게 울려퍼졌다.

 

        어야 더허야 어야 더허야

        어야 더허야 어야 더허야

        압록강 2천리에 노를 저어라

        얼음장을 헤치면서 떼는 흐른다

 

세멘몰탈이 시허옇게 튕긴 작업복에 안전모를 삐뚜름히 눌러쓰고 건드러지게 뽑아내는 림준의 노래는 순식간에 사람들의 마음을 흐물흐물 녹여냈다. 저 깨끗하고 청신한 목청, 풍만한 정서… 건설자의 가슴속에서 그렇게도 맑고 우아한 선률이 울려나올수 있다는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흥분한 리성하는 오락회가 끝나자 림준이와 만나서 당장 건설대일을 그만두고 련합기업소로 올라오라는 지시를 주었다. 그 시기 도적으로 기동선전대활동이 승벽내기로 벌어졌는데 자기네 써클이 번마다 다른 기관들에 눌리워 기분이 상해있던차에 마침 전도유망한 로동자가수를 발견한것이였다. 그런데 예상외로 림준이가 발딱 나자빠지며 건설대를 떠나지 않겠다고 한사코 버티였다. 건설판에서 아까운 재간을 썩이겠는가며 아무리 설복하여도 막무가내였다. 화려한 무대에서 관중의 박수갈채를 받는것보다는 자강도의 중소형발전소건설자로 한생을 보람있게 총화하는것이 자기의 리상이고 포부라고 뻗대였다. 리성하는 그날 너무나 후끈 달아서 세상에 이런 밥통도 있는가며 발전소건설장을 떠나고말았다. 그가 두번째로 림준이와 만난것은 그 일이 있은지 2년도 퍼그나 지나 문암발전소건설장을 찾아갔을 때였다.

현장에 도착하자 건설대원들이 언제의 물막이공사에 필요한 돌을 채취하기 위해 산탁의 바위벼랑에 발파준비를 해놓고 홱홱 호각을 불어댔다. 잠시후 쾅쾅 요란한 폭음이 울리고 뽀얗게 피여올랐던 돌먼지가 서서히 걷히였다. 여기저기에 피신했던 건설대원들이 우줄우줄 일어나 발파현장으로 달려갔지만 붕락된 돌은 얼마되지 않았다. 폭약이 떨어져 다시 발파할수도 없는 형편이였다. 그때 건설대 부대장 림준이가 정대로 돌을 채취해서라도 작업을 내밀자고 호소했다. 대다수 20대의 끌끌한 젊은 청년들로 무어진 건설대원들은 모두 림준의 말에 전적으로 호흥해나섰다. 리성하가 건설대 대장과 함께 발전소건설장을 료해하며 얼핏 바라보니 발파현장에서는 건설대원들이 새까맣게 달라붙어 함마를 휘둘러대며 채석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다음순간 갑자기 《돌이 무너진다. 피하라!》고 다급히 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길을 멈춘 리성하의 낯빛은 창백해졌다. 움씰거리는 벼랑턱에 지레대를 박고 떡 버티여선 림준의 고함소리였다. 그 위기일발의 순간 리성하의 옆에 섰던 건설대 대장이 림준을 부르며 달려갔으나 부질없는 몸부림이였다. 어느새 림준은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돌사태에 묻혀버렸다. 《부대장이 죽었다!》 누군가의 울음섞인 소리와 함께 《림준이!》 하고 재차 부르짖는 대장의 웨침이 호곡처럼 인적없는 산골짜기를 뒤흔들었다. 뒤미처 채석장으로 허둥지둥 달려간 리성하는 온통 피투성이가 되여 건설대장의 팔에 안겨있는 림준을 보았다. 림준은 간신히 숨이 붙어있었다. 리성하의 승용차로 즉시 도병원에 실려간 림준은 이틀만에 정신을 차렸지만 의사들은 그가 척추에 입은 상처를 보고 로동불가능이라는 치명적인 진단을 내리였다. 그날 리성하는 림준이가 련합기업소로 올라오라는 자기의 말에 고분고분 응했더라면 일생을 망치지 않았을것이라는 아쉬운 생각을 하면서 병원을 나섰다. 하지만 한달후 기적적으로 병원침상에서 일어난 림준은 쌍지팽이를 짚고 다시금 건설대로 찾아갔다. 더구나 놀라운 일은 그가 조금도 비관을 모를뿐아니라 이전처럼 휴식참이면 류창한 노래로 늘쌍 떠살이를 하는 건설대원들의 생활에 기쁨과 랑만을 안겨준다는것이였다. 그 보람찬 건설과정에 림준의 건강도 완쾌되여 그가 지팽이 하나를 버리고도 대지를 활보하게 되자 건설대원들은 떠들썩 연회를 차리고 젊은 부대장의 소생을 축하해주었다. 림준은 그후 건설대가 해산된 날 무서운 기상이 되여 리성하앞에 나타나서 중소형발전소건설은 어버이수령님의 가르치심인데 어느 놈이 함부로 줴버렸는가며 따지고들었다. 리성하도 젊은이의 무례한 행동을 가만두지 않았다. 나라의 전력은 풍부하고 중소형발전소는 홍수에 파괴되거나 제대로 돌아가지 못해 다른 도들에서도 건설을 중지하는데 굳이 자기에게 책임을 물을게 있는가, 당장 방에서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림준은 그를 무섭게 쏴보며 《가겠소. 그렇지만 당신들은 반드시 후회할 때가 있을거요. 더러운 변절자들 같으니!》 하고는 방에서 뚜걱뚜걱 나가버리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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