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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 회)

 

6

(2)

 

장관우부위원장이 무슨 일로 또다시 찾아왔는지는 불보듯 뻔했다.

《휴가를 받았소?》

림준은 말없이 손에 도끼를 느슨히 들고 서있었다.

《졸장부같으니! 무슨 말라빠진 놈의 휴가요.》

장관우는 웃동을 벗어 마당의 빨래줄에 걸쳐놓고 손을 내밀었다.

《도끼를 이리 주오.》

《왜 그럽니까?》

《어서!》

장관우는 강다짐으로 도끼를 당겨쥐고 손바닥에 둬번 침방울을 탁탁 뱉았다.

《아니, 어쩌자구?…》

《비켜서오. 도끼에 얻어맞겠소.》

장관우는 무뚝뚝히 말하고 도끼를 힘껏 쳐들어올렸다. 나무의 결을 봐가며 면바로 도끼질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였다. 그가 한번씩 뚝심을 쓸 때면 모태우의 나무가 절반씩 쩍쩍 갈라져나갔다. 림준은 어이가 없어 장관우를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장관우의 떡 벌어진 어깨우에서는 연방 도끼날이 번쩍이였다. 저러다간 반시간 안팎에 마당에 무져있는 나무를 몽땅 패버리고말겠는걸! 장관우는 쉴념도 하지 않고 도끼를 휘둘러대였다. 어느새 벌건 얼굴에서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있었지만 장관우는 끈덕지게 일손을 멈추지 않았다. 불이 펄나게 도끼질을 하며 푸푸 입바람소리를 내는 장관우의 둔중한 모습은 마치도 단조장의 공기함마를 련상시켰다. 보다 못하여 림준은 한본새로 세괃게 장작을 패대는 장관우의 근육이 울뚝불뚝 살아난 팔을 꽉 움켜쥐였다.

《부위원장동지, 그만하십시오.》

《큰소리는 왜 치오? 제집 일을 해주는데…》

장관우는 마침내 도끼를 모태우에 놓고 옆의 나무더미에 걸터앉았다. 바지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느릿느릿 목덜미를 닦던 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여보, 랭수나 좀 주오.》

림준은 부엌으로 들어가 찬물을 한사발 떠가지고 나왔다. 그의 안해는 너무 엄엄하여 장관우앞에 나타날 엄두조차 내지 못하였다.

두손에 사발을 받쳐들고 꿀꺽꿀꺽 소리가 나게 물을 들이키는 장관우의 얼굴에서는 땀이 비오듯 쏟아져내리였다. 장관우는 빈사발을 옆에다 놓고 이마의 땀방울을 훔치면서 뜨직뜨직 입을 열었다.

《림준동무, 난 두번다시 동무네 집으로 안올라구 했댔소. 그런데 도당책임비서동무가 한번 더 가보라구 하더군. 자강도의 중소형발전소건설을 위해 일하다가 불구가 됐던 동무인데 여태껏 누구도 돌봐준 사람이 없었다면서 말이요. 그 말을 듣구 나두 가책이 되는바가 많았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잘못한건 잘못한거구. 동무가 자강도의 발전소건설에 피땀을 바친거야 자랑스럽게 여겨야지 누가 알아주건 말건 상관할게 있소? 우리가 그 무슨 명예와 보수를 바라고 일하는가. 장군님께서 우리 자강도에 중소형발전소건설과업을 맡겨주셨는데 사실이야 제일먼저 발벗고나서야 할 사람도 동무가 아니요? 그런데 거꾸로 되였거든.

지금처럼 지휘부로 나오라고 해도 얼굴을 내밀지 않구 땅땅 맞서면 옛 건설대 부대장은 뭐가 되오?》

림준은 머리를 떨구고 잠자코있었다. 과연 지난날 그 누가 림준이라는 인간에 대해 관심해준 사람이 있었던가? 림준은 혼자 부걱부걱 괴여오르는 울분을 누르면서 고달프게 인생의 길을 톺아왔었다. 그런데 도당책임비서가 자기의 아픈 마음을 리해해주었다니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며 눈물이 솟구쳐올랐다.

《림준동무, 지금이야말로 동무와 같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요. 우린 앞으로 반년동안에 29개 대상의 발전소를 건설해야 해. 동무네 건설대가 10년동안에 건설한것보다 더 많은 발전소들을 이 고난의 시기 6개월동안에 건설해야 하오. 이전보다 몇백배로 어려운 조건이요. 공장들은 멎어서고 우리에게는 강재도 먹을것도 없소.

이런 때 동무와 같이 한몫해야 할 사람들이 나서지 않고서야 어떻게 장군님의 명령을 관철할수 있소.》

림준은 가슴에 턱을 꾹 눌러박고 서있었다. 장관우의 말이 옳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내가 너무했는가? 장관우에 비하면 도대체 림준이란 어떤 존재인가. 한갖 송사리와 다름없는 자기가 도행정위원회 부위원장앞에서 조폭하고 무례하게 행동한 가책이 한순간 그를 몹시 괴롭혔다. 장작더미우에서 움쭉 일어난 장관우는 긴말을 하지 않고 빨래줄에 걸려있는 옷을 벗겨입었다.

그리고는 별다른 소리가 없이 휴가를 받았으면 며칠 푹 쉬라는 말만 하고 대문밖으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장관우의 인품에 어울리는 그 점잖은 말이 림준의 가슴에 와서 부딪치는 충격도 참말로 큰것이였다. 장관우가 떠난 후 림준은 한참이나 얼얼한 마음을 안고 한자리에 우두커니 지켜서있다가 토방에 엉뎅이를 붙이고 맥없이 주저앉았다.

림준은 이날 아무것도 하는 일없이 한숨만 내쉬며 종일 집에 붙어있다가 해가 저물자 지팽이를 짚고 도행정위원회로 찾아 떠났다.

장관우부위원장과 마주앉아 자기의 잘못된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사죄할 심산이였다. 한참 부리나케 걸어가던 림준은 로상에서 우연히 만난 덕삼아바이의 말을 듣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리성하부부장과 장관우부위원장이 이번의 전투목표에 불만을 품고 패배주의적으로 나오는바람에 발전소건설지휘부안의 공기가 팽팽해졌다는것이였다.

덕삼은 말이 난김에 한마디 하겠다고 하더니 한바탕 림준을 되게 비판했다.

건설대망신을 시켜도 분수가 있지. 지휘부엔 왜 가지 않고 찔통을 부리는가?

요즘 장관우부위원장이 가뜩이나 골머리를 앓는데 림준이까지 나누으면 아주 신심을 잃어버릴수 있다며 빨리 가서 만나라고 엄하게 재촉했다. 그런 내막을 알지 못하고 장관우와 땅땅 맞섰던 림준은 부지런히 걸음을 다우쳤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장관우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제 오겠지 하고 생각한 림준은 도행정위원회 청사밖을 나서 망미정밑의 유보도로 걸어나갔다.

오래간만에 시원한 강바람이나 쏘이면서 장관우가 돌아오기를 품놓고 기다려볼 심산이였다.

그런데 그가 장자강의 출렁이는 물소리에 심신을 맡긴채 인풍루쪽으로 걸어갈 때였다.

갑자기 몇발자욱앞에서 《아버지!》 하고 부르며 다급히 달려가는 소리가 들려와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장관우의 딸 은희였다.

처녀는 강바람에 머리카락을 날리며 아버지를 따라잡더니 발길을 딱 멈추었다. 은희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아버지!》 하고 부르는 바람에 앞서 가던 장관우부위원장이 딸을 흘깃 돌아다보았다.

《아버진 어쩌자고 이래요?》

장관우가 우두커니 선채 딸을 바라보았다.

《그건 무슨 소리냐.》

《전 아버지 일이 안타까와서 그래요. 아버지가 언제 이 강변을 거닌적이 있었어요. 아버진 괴로워서 그러지요? 저도 눈물이 나요. 아버지가 발전소를 건설하기 전부터 패배주의자란 말을 듣는 일이 분하고 창피스러워요.》

딸의 맵짠 호소에 장관우는 성이 나서 큰소리를 내질렀다.

《누가 그따위 허튼 나발을 불어!》

《아니예요. 아버진 자신을 속이고있어요. 아버진 일도 해보지 않고 발전소건설과제가 아름차다구 신심을 잃었지요? 그렇게 되면 아버지의 문제는 어떻게 될것 같아요?》

《네가 뭘 안다구 그래? 썩 물러가지 못하겠니!》

장관우는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어깨를 들먹이는 딸을 남겨두고 힝 돌아섰다. 딸은 멈춰서고 장관우는 유보도를 따라 그냥 걸어갔다.

순간 림준은 동무와 같이 한몫할 사람들이 나서지 않으면 장관우부위원장도 신심을 잃어버릴수 있다던 덕삼의 말이 얼핏 떠올랐다. 저 내밀성있는 일군이 발전소건설과제가 아름차다고 신심을 잃다니?…

림준은 혼자 흐느껴우는 은희의 옆을 지나 장관우를 향하여 세차게 지팽이를 뚜걱뚜걱 내짚었다. 장관우가 조용한 유보도에 울려퍼지는 그 소리를 듣고 피끗 돌아서며 다시금 버럭 고함을 질렀다.

《왜 자꾸만 쫓아와?》

다음 순간 장관우가 눈을 크게 흡뜨면서 우뚝 굳어졌다.

딸은 저 멀리에 떨어지고 뜻밖에도 림준이가 지팽이에 몸을 의지하며 꿋꿋이 서있었다.

《부위원장동지, 딸을 너무 나무람하지 마십시오. 저도 아직은 부위원장동지를 패배주의자라군 생각하고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금방 덕삼아바이가 저와 만나 부위원장동지가 그런 말을 들을수 있다고 하더군요. 제가 부위원장동지앞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였다면서… 저같은 잔가지때문에 거목이 넘어진다는것이였습니다. 죄송합니다. 부위원장동진 한발자욱도 물러서면 안됩니다.

전 래일부터 지휘부에 출근하겠습니다. 이 병신짝같은 인간에게도 마음놓고 일을 맡겨주십시오!》

림준은 불이라도 토하듯 말하고 휙 돌아서 지팽이를 내짚으며 성급히 걸어갔다. 장자강의 출렁이는 물소리에 뒤섞여 여전히 세차게 울리는 뚜거덕소리… 장관우가 어둠속으로 멀어져가는 그의 억센 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고있었으나 림준은 그런줄도 몰랐다. 저도모르게 두눈에 뜨거운 눈물만이 핑 고여올랐다.

 

7

(1)

 

《여보시오, 여보시오!》

장관우는 만포세멘트공장에 상무로 나가있는 일군과 전화련결을 하였다.

감도가 좋지 않은데다가 어떻게 된 판인지 도중에 말이 자주 끊어져 본의아니게 목청을 높였다.

《제길, 무슨 놈의 전화가 이래.》 하고 수화기에 대고 후후 입바람을 부는데 상대방의 목소리가 다시금 가늘게 들려왔다.

《여보, 왜 이렇게 모기소리만 하오. 밥을 굶지 않았소?》

《아니, 전 젖먹은 힘까지 다내여 고함을 지르고있습니다.

부위원장동무, 오늘부터 운곡탄광의 석탄이 만포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거 야단났습니다. 황소같은 세멘트공장 지배인이 고혈압으로 덜컥 넘어졌습니다. 더위먹은 사람처럼 눈이 뻘개서 헐떡거리길래 령감, 이러다가 숨넘어가면 어쩔라구 이러는가 했더니 자긴 이날 이때까지 만날 죽는다 산다 소동을 피우면서 견뎌왔다나요… 아짜아짜합니다.》

《됐소. 지배인이 넘어졌으면 빨리 구급대책을 세우고 동무가 지배인실을 타고앉소. 만포세멘트에 무조건 만부하를 걸어야지 발전소건설을 내밀지 못하오!》

요즘 장관우의 입에서는 걸핏하면 무조건이란 말이 때없이 튀여나오군 한다. 모든것이 부족한 형편에서 발전소건설을 진행하니만큼 그밖의 다른 말이란 있을수 없다. 무조건, 무조건 집행하여야 한다. 의견이 있어도 과업을 수행한 다음에 제기하라는것이 그의 일관한 요구였다. 시간이 허용하지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분초가 새롭고 각자가 자기 책임을 다 해야 할 엄숙한 시각이였다. 장관우가 아래일군들을 사정없이 다몰아대는걸 보고 지휘부 상무책임자가 좋다는 소리인지 나쁘다는 소리인지 알수 없이 알쑹달쑹하게 말했다.

《요즘은 우리 지휘부동무들도 점점 부위원장동지처럼 돼갑니다.》

장관우는 그 말을 들은척도 안하고 일어나 마른 목을 랭수로 추기고 와서 지휘부책임자와 마주앉았다.

며칠전 전투목표를 작성하며 소극성을 좀 범했지만 장관우는 벌써 그때 일을 잊은지 오래다.

그는 예전과 별반 다름없었다. 이제야 태혁이 주장한대로 되였는데 이러쿵저러쿵 할 필요가 있는가. 장관우는 일단 결정된 이상 자기는 싫건 좋건 군말없이 집행한다는 태도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과 같이 눈코뜰새없이 바쁜 때에 언제 손발을 맞춰가며 일하겠는가. 성격이 거친 약점이 있긴 하지만 아무모로 보나 장관우는 큰 일군임이 틀림없었다.

《부부장동무가 문암으로 떠났는지 모르겠소?》

장관우는 어제 아침 리성하가 찾아와서 장강군의 문암발전소 건설현장에 나가겠다고 하던 일이 생각나서 그렇게 물었다. 이번의 발전소건설들에서 기술적으로 제일 어려운 문제들이 제기될수 있는 곳이 문암발전소이고 보면 리성하가 전력공업부 부부장의 격에 어울리는 걸음을 한셈이였다.

《부위원장동지와 만난 후 인차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거 야단났습니다. 글쎄 공장형편이 그중 곤난한 기계공장 주병호지배인은 팔을 걷고 발전소건설에 떨쳐나섰는데 그보다 훨씬 조건이 나은 공장들에서 도리여 우는 소릴 합니다요.》

《그것 보시오. 중요한건 사상관점이요. 어렵다는게 절대적인 난관으로 되는건 아니란 말이요. 참, 오늘아침에 지휘부의 림준동무가 출근을 못했다면서? 며칠동안 너무 무리하게 일한가보오.》

림준은 지휘부에 나온 이튿날부터 분과사업을 맡아보면서 억대우처럼 일을 해제꼈다. 젊어서 건설대 부대장으로 활약하며 심하게 허리를 상한 후유증때문에 지금도 두세시간이상 의자에 앉아있지 못하는 사람인데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알수 없었다. 장관우는 그가 불편한 몸으로 보통 둬달 품이 드는 설계(무덕발전소)를 혼자서 사흘동안에 밤을 새워 말끔히 끝냈다는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련 사흘밤 설계탁앞에 마주앉아 꼬박 밤을 밝힌 림준은 눈에 시뻘겋게 피발이 서고 얼굴이 시루떡처럼 퉁퉁 부어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영양부족과 심한 과로의 후과였다.

모두들 림준이 며칠 견디여내겠는가 하며 진정으로 그의 건강을 걱정했다.

그들이 우려한대로 림준은 출근하지 못했다. 림준이만아니라 지휘부성원들 전원이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무섭게 일한다.

산더미처럼 쌓인 일감과 긴박한 공사날자… 늦어도 한달반동안에 설계를 끝내야 모든 발전소건설을 동시에 내밀수 있다는 자각과 책임감이 그들을 불사신의 인간으로 돌변시킨것이였다. 지휘부에 나가보면 사정없이 밀려드는 피로를 이겨내려고 찬물에 발을 잠그고 앉아서 설계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기 일에 몰두하여 그처럼 정신없이 일하다가 어지럼증때문에 벽을 짚고다니는 사람, 졸도하는 사람들까지 나타나 이틀전부터는 지휘부의 한켠에 구급대책을 위한 의무실까지 생기게 되였다.

《지휘부성원들의 건강상태가 한심합니다.》

《당장 대책을 취하기요. 오늘부터 지휘부에 식당을 내오고 보장합시다. 식량은 도량정부에 과업을 주겠소.》

《그게 좋겠습니다. 그런데 강재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작정입니까?》

지휘부책임자가 도안의 강재예비를 몽땅 거둬모아야 200t도 되나마나하고 북창에 강판이 300t정도 있지만 새로 부임되여간 북창화력발전소 기사장이 구두쇠처럼 딱 틀어쥐고있어 뽑아올 가망이 없다면서 한숨을 쉬였다.

《강재가 문제요. 도당책임비서동문 적어도 세멘트 6 000t, 강재는 7 000~8 000t가량 있어야 한다는데 말이요.》

그 말에 지휘부책임자의 눈이 떼꾼해졌다.

《강재 7 000~8 000t이 어디서 나옵니까? 더두말구 800t만 있어도 숨이 놓이겠습니다.》

《800t을 가지군 어림도 없소. 공장들엔 강재를 넣어주지 않아도 될것 같소? 뭐니뭐니해도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야 발전소건설도 힘차게 내밀수 있소.》

《한데 강재가 하늘에서 떨어집니까?》

지휘부책임자가 어방도 없는 말을 한다면서 허허 웃었다. 그러건말건 장관우는 배포유해서 담배를 붙여물었다.

《김철에 물려놓은 강재가 있긴 한데…》

《그걸 무슨 재간에 받아옵니까.》

《그래, 김철에선 우리 도같은건 거들떠보지도 않아. 당초에 엄두도 내지 않는게 좋소. 차라리 우물에 가서 숭늉을 찾는게 낫지.》

지난달에 김철에 강재를 받으러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장관우는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 말라면서 팔을 내저었다.

《김철의 강재사정이 긴장한건 사실이요. 흥남비료공장 확장공사에 막대한 량이 들어가다보니 콕스와 바꿔올 강재도 없다니까. 별수 없소. 최대한으로 도안의 예비를 동원하기요.》

《북창의 강재를 먼저 당겨쓰기 위한 작전도 벌립시다. 늦어서 한두달후엔 물어줄셈치고말입니다.》

《그거야 실어오기만 하면 깨끗이 먹어버려야지. 돌려주구 말구 할게 있소.》

장관우는 퉁명스럽게 말하고 출입문쪽을 힐끔 돌아다보았다. 마침 방안에 들어온 키가 꺽두룩한 늙은이가 희색이 만면하여 그를 바라보고있었다.

장관우는 그제야 아침에 태혁이가 전화로 소개해준 로학자이구나 하는 생각이 나서 얼른 일어섰다.

《아, 리경훈선생이지요?》

《예.》

《정말 반갑습니다. 책임비서동무한테서 선생에 대해 들었습니다.》

장관우는 로학자의 여윈 손을 뜨겁게 잡았다. 경훈이도 구부정한 몸을 젖히고서서 마주쥔 손을 힘있게 흔들었다. 장관우에게는 예상치 못했던 손님이였다.

《그런데 어떻게 여길 다 오셨습니까?》

《장군님께서 제시하신 중소형발전소건설방침이 저를 여기로 떠밀었지요.》

장관우는 로학자가 기쁜김에 한마디 한 말이라고만 생각하면서 허허 웃었다.

《원 무슨 말씀을… 선생이야 경수로건설을 위한 담판장에 나서야 할분이 아닙니까?》

《부위원장동무, 지금은 여기가 봉쇄돌파의 최전선입니다. 저도 부위원장동무의 밑에서 싸우겠으니 이 로병을 기꺼이 받아주시오.》

장관우는 정색을 하며 경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롱담을 하시는것이겠지요?》

《롱담이라니요? 제 말이 그렇게도 믿어지지 않습니까. 이 초고압학자가 늙마에 방향전환을 하여 여기 자강도로동계급의 전투장으로 찾아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장관우가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번에는 로학자가 방안이 떠나갈듯 큰소리로 웃었다.

비록 몸은 허약하지만 성격이 호방한 측면에서는 장관우보다 결코 못하지 않은 경훈이였다. 장관우는 여전히 로학자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몰라서 당황해하다가 의자를 권하며 부드럽게 말했다.

《여기 앉아서 좀 차근차근 말씀하십시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경훈은 의자의 팔걸이에 두팔을 얹고 편안히 앉았다. 오랜 학자다운 위풍이 풍기는 그의 리지적인 얼굴에 숭엄한 표정이 어리였다.

《부위원장동무, 전 이번에 자강도로동계급이 장군님께 올린 전투목표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장군님께서도 얼마나 만족해하셨는지 모릅니다. 한마디로 말하여 자강도사람들이 부럽더군요. 이젠 제가 늙은 몸으로 여기에 찾아온 마음이 리해되리라고 봅니다. 전 장군님앞에서 이미 경수로에 대해선 환멸을 느낀지 오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어마어마하게 〈방향전환〉이라고 한건 그런 의미에서 한 말입니다. 이 몇해동안 제가 적들과의 회담장에서 고통스럽게 체험한것이 무엇인지 압니까? 우리를 고립압살하려는 적들의 악랄한 술책에 대한 분노와 한평생 초고압을 전문으로 일해온 사람의 수치였습니다. 현대과학이 인류의 복리증진을 위해 창조한 원자력발전소가 우리 인민의 숨통을 조이기 위한 수단으로 도용되고있는것이 저주로웠습니다. 이쯤하면 부위원장동무가 한전호속에 뛰여든 저의 심정을 알만하지 않습니까?》

장관우는 갑자기 자강땅에 찾아온 경훈의 심정이 눈물이 나리만큼 고마왔다. 그렇다고 장군님께서 아끼시는 유능한 학자를 자기들의 전투장에서 막 굴릴수도 없는 일이여서 딱한 표정을 지었다.

《경훈선생, 미리 량해를 구하는데 내 말을 노엽게 생각마십시오. 여기는 선생과 같이 고명한분이 있을 곳이 못됩니다. 그러니 2~3일 강계의 명승유적들과 산천구경이나 하시고는 돌아가시는게 좋겠습니다.》

《왜요? 이 늙은이가 그렇게도 쓸모없어보입니까?》

경훈이 실망하여 서운한 소리를 했다.

《아니, 아니… 그런게 아닙니다. 선생은 그 년로한 몸으로 우리가 벌리는 전투를 견디여내지 못합니다. 선생이 정 고집하면 난 이제라도 강계호텔에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그 성의를 선생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지… 자강도사람들은 풀죽을 먹으며 발전소를 건설하는데 날더러 호텔에서 호의호식하라, 참 고맙군요. 내가 뭐 외국사람이요? 하구 선생이 노발대발하면 야단이 아닙니까. 그렇다고 선생과 같이 귀한 인재를 푸대접할수야 없지 않습니까. 저의 심정을 리해해주길 바랍니다.》

《전 여기 와서 부위원장동무처럼 인민들과 한가마밥을 먹겠습니다. 그럼 되겠지요?》

장관우는 그 무엇으로써도 로학자의 마음을 돌려세울수 없음을 깨닫고 미소를 지었다.

《그럼 좋습니다. 우리 지휘부동무들이 할 일이 대단히 많습니다. 발전소구조물과 발전설비들, 그밖에도 여러가지 해결해야 할 기술적문제들이 허다합니다. 그래서 난 요즘 되게 골머리를 앓고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지휘부일을 도와주는게 어떻습니까?》

경훈은 쾌히 응낙해나서며 사기가 나서 대답했다.

《부위원장동무가 자기의 보좌관으로 임명해주는데 그걸 마다할 멍텅구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힘자라는껏 해보지요.》

《그럼 갑시다.》

경훈이와 함께 건너편 지휘부의 3층으로 올라간 장관우는 쇠침대와 책상밖에 없는 수수한 방의 출입문앞에서 멈춰섰다.

《이 방입니다. 일없겠습니까?》

《일없다니요? 너무나도 과남합니다.》

장관우는 뒤따라 경훈의 후줄근한 배낭을 메고 나타난 관리원에게 방에 침대를 하나 더 넣으라고 말한 후 부드럽게 웃었다.

《이젠 좀 피곤을 푸십시오.》

《쉬다니요? 일을 해야지요.》

《원, 선생두… 그럼 가서 지휘부성원들과 만나볼가요?》

《예, 그렇게만 해주면 되겠습니다. 아무렴 일감이야 없을라구요.》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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