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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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의 눈에 다른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집무실안에 환하게 어린 광채! 아,
대안중기계 기사장이 말을 끝내기 바쁘게 평양전력설계사업소 기사장이 성큼 일어나서 제 성미처럼 느릿한 말투로 뜨직뜨직 보탰다.
《스위스에선 증조할아버지때부터 리용하던 락후한 발전소들을 소중히 전시해놓고있어 왜 그런가 했더니 증조할아버지보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보다 아버지가 어떻게 발전소를 발전시켰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대를 물려가며 그렇게 발전소들의 설비를 갱신하여 쓰기때문에 스위스의 중소형발전소들이 잘 운영되는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발전기의 동체에서 발생하는 열도 과일껍질을 말리는데 리용하고있었으며 수도 베른과 쮸리히, 제네바시가의 매집 창문마다에 류별나게 화분들이 놓여있어 특별히 꽃을 사랑하는가부다 했는데 그것도 화분을 내놓은것만큼 돈을 지불받기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한참이나 그들의 이야기를 흥미있게 청취하시던
《자강도로동계급은 앞으로 6개월동안에 29개 대상의 발전소를 건설하게 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것입니다.》
《어떻습니까? 동무들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맨 선참으로 전력공업부 부장이 조용히 일어나 자기의 소감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오늘의 어려운 형편에서 한개 도의 력량으로 6개월동안에 29개 대상의 발전소를 건설한다니 이거 보통 뻐근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정무원산하의 기관들과 공장, 기업소들에서 별로 도움을 바라는것은 없습니다. 제 생각엔
《그러니 실지 공사과정에는 뭘 좀 더 내라고 할수 있다는겁니까?》
《충분히 그럴수 있다고 봅니다.》
방안의 분위기가 흥성거리는 가운데 대안중기계공장 기사장이 재차 일어났다.
《자강도동무들이 저희 공장에서 총 12대의 발전기와 타빈을 보장해줄것을 요구했습니다. 자강도동무들이 너무 목표를 높이 세웠기때문에 우린 도와주고도 고맙다는 말을 들을것 같지 못합니다.》
《고맙다는 말을 들을것 같지 않다-》
《소장동무가 무력부의 드살때문에 손해를 본다고 늘 불만이 많았는데 먼저 이야기하시오.》
젊어 한때 어느 체육단의 배구주장이였던 체육인기질이 아직도 다분히 남아있어 성격이 더펄더펄한 소장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리였다.
《자강도 장강군의 문암발전소는 강계청년발전소 동무들이 언제까지 쌓아놓고 2 000kw발전기를 만들지 못해 15년동안이나 끌어오다가 집어던졌습니다. 전 그 발전기만은 대안중기계에서 보장해달라고 제기할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용량이 작은 발전기는 의뢰하면서 문암의 2 000짜리는 자체로 제작할것을 결의해나섰습니다.
이것은 자강도로동계급이 자기 힘을 굳건히 믿고 발전소건설에 달라붙었다는것을 말해줍니다. 앞서 발언한 동지들이 자강도에서 자기들이 세운 높은 전투목표를 실현할수 있겠는가고 우려했는데 전 견해를 달리합니다. 그들이 반드시 자기들의 목표를 점령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소장동무가 똑바로 봤습니다.》
《자강도로동계급은 우리 당이 제기한 자력갱생의 위력을 보여주기 위해 나한테 그 제기를 하지 않았을것입니다. 얼마나 장합니까. 그들이 문암의 2 000kw발전기를 만들겠다는건 앞으로 자강땅에 대용량발전소도 자체로 얼마든지 건설할수 있다는것을 말해줍니다.》
순간 그는 자기의 귀를 의심하며 고개를 버쩍 쳐들었다.
《리경훈선생! 몇차례나 조미회담에 나가 대적투쟁을 하며 수고했는데 선생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경훈은
경훈은 1994년 9월 베를린주재 미령사관에서 개최된 조미실무자회담이 떠올라 잠시 말을 중단했다. 벽에 무미건조한 사진들이 파리똥처럼 얼럭덜럭 붙어있는 네거리 모서리의 4층 돌집, 그 거무틱틱한 회담장소앞에 지켜선 미해병병사들을 목격한 순간 전쟁때 놈들의 함포사격에 맞아 숨진 어머니의 모습이 생각나며 온몸이 와들와들 떨리던 일이 상기된것이였다.
경훈은 귀축같은 놈들을 복수하고싶은 자기의 개인적인 감정같은건 얼마든지 참을수 있었다. 그러나 사흘동안의 회담기간 미국무성관리가 마치 우리가 경수로에 명줄을 걸고있는것처럼 지껄여댄 말은 아직도 가슴속에 응혈져있다. 한때 아시아침략을 위한 그 무슨 연구를 목적으로 남조선녀자까지 데리고살며 조선말을 배우느라 머리털이 희여졌다는 국무성관리와의 말씨름에도 신경이 곤두섰지만 회담장밖을 나서면 그것대로 살풍경이였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 희생된 이전 쏘련병사들의 묘를 지키며 권태로운 표정으로 서있는 로씨야병사들, 서방의 관광객들에게 헐값으로 팔리는 붉은 군대 견장, 모자, 영웅메달들, 거리의 류랑화가들, 배우들, 담배장사군 청년들… 베를린시가의 잡다한 풍경이 썩고 병든 자본주의사회의 말기증상처럼 처처에서 눈에 띄며 구역질이 동했다.
경훈이가 여러 차례의 회담과정에 보고 통감한 그 모든것을 어떻게 한꺼번에 다 말할수 있겠는가. 그러나 한가지만은
《그렇지만
경훈은 손수건으로 이마를 문대며 자리에 앉았다. 벌써 3~4년이나 적들과의 회담에 참가하며 허송세월한 그는
《리경훈선생이 다년간 적들과 싸우면서 우리 당이 내놓은 자력갱생로선의 정당성을 통절히 깨달은것 같습니다. 나는 오늘 대단히 만족합니다.
동무들, 지금 함경남도에서는 송전만에 1 000정보의 소금밭을 만들기 위한 거창한 공사가 벌어지고있습니다.
자강도의 중소형발전소건설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도 그들에게 이렇게 전투목표를 높이 세우라고 요구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것은 그들스스로가 오늘의 고난의 행군의 돌파구를 열어제끼려고 내세운 량심의 목표입니다. 자강도로동계급은 자기들의 전투목표가 낮으면 강성대국건설을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이 저조해질것이므로 희생을 각오하고나섰습니다. 자강도에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29개의 발전소를 건설해야 살아갈수 있습니다.
나는 동무들이 앞으로 전국의 중소형발전소건설도 이 수준에서 힘있게 내밀 결심을 품고 자강도인민들을 도와나서리라고 믿습니다.》
경훈은 오래도록 그칠줄 모르는 박수소리에서 온 자강땅을 뒤흔들며 울려퍼지는 돌격전의 함성을 듣는듯 하여 눈굽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동무들, 앉소. 앉으시오.》
《우리는 자강도인민들의 간고한 투쟁을 결코 헛되이하지 않을것입니다.
인민군총참모장동무, 안변청년발전소 2단계공사를 하루빨리 내밀어야겠습니다. 이 공사에 필요한 기술적방조는 종전대로 평양전력설계사업소 소장동무가 책임지고 보장하시오.》
조선인민군 총참모장과 평양전력설계사업소 소장이 아까처럼 동시에 일어나 기운차게 대답올렸다.
《알았습니다!》
《그리고 평양화력발전소 설비부지배인동문 북창화력발전소 기사장직무를 넘겨받고 즉시에 사업에 착수하여야겠습니다. 북창화력이 은을 내자면 결정적으로 설비를 갱신하여야 합니다.》
6
(1)
장관우부위원장이 왔다간 후 림준의 마음은 삼거웃처럼 헝클어졌다.
이러나저러나 도의 적잖은 위치에 있는 일군이 이 오두막같은 집에 찾아왔는데 손님대접은커녕 행패질이라도 하듯 큰소리를 치며 랭대하여 보낸 일로 기분이 찌뿌둥했다. 장관우도 발전소건설지휘부로 나오라는 말에 순순히 응하지 않자 과격한 성미에 얼굴을 붉히면서 으름장을 놓긴 했지만…
림준은 그날 여러가지로 심사가 비꼬여 장관우의 요구에 방치같은것이 욱 치미는것을 참지 못하고 으르딱딱 맞섰던 일이 생각할수록 불쾌했다. 장관우가 돌아간 후 그는 풀떡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집안에 누워있다가 다음날 아침 찌긋찌긋한 몸을 일으켜 겨우 출근했다. 그런데 공장구내길에서 만난 주병호지배인이 시펄뚱해서 큰일이라도 난것처럼 떴다 고는 소리에 또다시 부아가 치밀었다.
《여보, 동무. 장관우부위원장과 한바탕 뚜꿨다면서?》
《그건 벌써 누가 말해줍디까?》
《누군 누구겠소. 부위원장이 노발대발해서 전화로 뭐랬는지 아오? 동무가 발전소건설지휘부로 나오지 않는데 단단히 문제를 세우겠다는거요. 죄는 천도깨비가 짓고 벼락은 고목이 맞는다더니… 이거야 어디 부위원장 등쌀에 견디겠소?》
주병호지배인은 공장의 자동선개조가 실패하여 장관우의 눈밖에 난판에 난데없이 림준의 문제로 욕사발을 먹고 후끈 달아서 그를 지릅떠봤다.
《괜히 엇서야 소용이 없소. 지휘부로 나오라면 군소리말구 고분고분 나가오. 도대체 이 강계바닥에 장관우부위원장을 당해낼 사람이 누구요? 나도 꼼짝 못해!》
주병호지배인은 그렇게 퉁명스럽게 내뱉고 훌쩍 돌아서갔다.
(제길. 정말 시끄럽게 노누만.)
시에미역정에 개옆구리 찬다고 장관우가 주병호지배인까지 들볶아대는 일이 분하여 림준은 오도가도 못하고 길바닥에 선채 불한숨을 몰아쉬였다.
아무렴 내가 장관우의 그따위 호통질이 무서워 벌벌 떨면서 끌려갈 무지렁인줄 아는가? 난 돌사태에 묻혀 아무 쓸모없는 병신짝이 된 때에도 이발을 사려물고 다시 일어나 중소형발전소건설대로 찾아갔던 사람이야. 그렇게도 목숨을 바쳐 사랑했던 자강도건설대를 해산시킨게 누구인데 이제 와서 돼먹지 않게 날보구 호통을 쳐? 어림도 없는 수작말어! 이 가슴속에 근 20년동안이나 돌덩어리처럼 어혈이 진 마음을 당신들이 언제 한번 거들떠보기나 했던가!
림준은 가슴속에서 불이 펄펄 일었지만 주병호지배인과 따따부따 할 일이 아니여서 그 길로 기술과 과장방에 들려 예상치 않았던 휴가신청을 내고 나와버리였다.
아침에 잔뜩 찡그린 얼굴로 출근한 그가 오만상이 되여 집에 들어서자 터밭의 줄당콩넝쿨을 거두던 안해가 뿌옇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근심스레 물었다.
《여보, 왜 돌아왔어요?》
《휴가를 받았소.》
안해가 뜨아한 낯빛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무슨 휴가말예요?》
《됐소. 그쯤 알아두구려.》
《에그. 난 당신이 도행정위원회 부위원장동지를 내쫓듯 했으니 걱정이 돼서 그래요.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당신이 그런 일로 한두번만 손해를 봤어요?》
《챠, 이런! 당신이 뭘 안다구 그래!》
림준은 그만 꽥 고함을 지르고 심사가 좋지 않아서 토방에 지팽이를 내던지듯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두마디안팎에 대뜸 왈칵 성을 내자 안해는 아무 대꾸없이 나직이 한숨을 지으며 다시금 일손을 놀리였다. 얼럭덜럭 덧붙인 자리가 볼꼴없이 드러난 장판바닥에 팔베개를 하고 벌렁 드러누운 림준은 한동안 초점이 흐려진 멍청한 눈길로 천정을 쳐다보았다. 저 사람한테야 무슨 잘못이 있다고 내가 험한 소리를 했는가? 쉰나이가 되도록 이 반편같은 남편과 만나 지지리 고생을 하는 안해라는 알짝지근한 생각이 들며 어쩐지 눈구석이 척척히 젖어들었다.
림준은 자강도중소형발전소건설대가 해산된 후 서른살이 넘도록 쌍지팽이를 짚은 불구의 몸이 되여버린채 가정을 이루지 못하고 청춘시절을 울적하게 흘러보냈다.
그를 동정한 사람들은 많았지만 어지간히 얼굴이 반반하게 생긴 처녀들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림준이
림준은 차츰 사는 보람을 느꼈다. 옛 건설대 부대장의 죽었던 넋은 다시 살아나고 가슴속에서는 장차 과학자로 일생을 빛내여갈 열망이 뜨겁게 불타올랐다.
림준은 간혹 자기의 고마운 선배와 밤가는줄 모르고 마주앉아있다가 늦게야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눈보라 사납게 울부짖는 밤이면 기사의 25살난 딸, 《ㄸ》공장에 다니는 꽤 발랄하고 어여쁘게 생긴 처녀가 그를 집까지 따뜻이 바래워주었다.
과연 기사의 딸이 은연중에 자기를 마음에 두고 그처럼 도담하게 밤길을 즐겨다니면서 길동무해주었던가. 아니, 그것은 꿈에도 상상할수 없는
일이였다. 림준은 자기 가슴속에서 애틋하게 눈뜨기 시작하는 애정의 싹과 힘겹게 싸우기 시작했다. 처녀가 조금도 흠잡을데 없이 똑똑하고
귀염성스럽지 않았더라면 그는 자기의 인생에 저절로 굴러드는 복을 스스로 차던지는 멍텅구리짓을 하지 않았을것이다. 그는 예전같지 않게 처녀와
만나면 쑥스러워지는
그 기사의 사랑스런 딸이 다름아닌 지금의 안해다.
림준은 이듬해 결혼식을 하고 공장기술과의 당당한 기사로 일하였으며 지팽이 하나를 버리고도 대지를 활보할수 있을만큼 건강이 훨씬 회복되였다.
그런데 한뉘 남편의 시중을 들며 겉늙어버린 안해인데 내가 오늘 무슨 망녕이 들어 아픈 말을 탕탕 했는가? 림준이가 잠시 그런 아릿한 가슴을 안고 드러누워있는데 마당에서 텅텅 장작을 패는 도끼질소리가 둔탁하게 들려왔다. 남편이 허리를 상하여 저런 궂은 일도 도맡아하느라 손바닥에 온통 썩살이 배긴 안해였다.
내가 너무 했어… 림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안해의 손에서 도끼를 빼앗아쥐고 사죄라도 하듯이 말했다.
《여보, 좀 쉬오. 오늘은 내가 좀 패지.》
《에그, 싹 걷어치워요. 그러다 덜컥 누워버리면 어쩔라구.》
《제길, 한번 죽지 열번 죽겠소.》
림준은 도끼자루를 우악스럽게 거머잡았다.
안해도 오늘따라 남편이 팔을 걷어붙이고나서는 심정을 리해하고 상그레 웃으면서 당부했다.
《조심해요.》
《걱정마오-》
림준은 건드러지게 대답하고 기운이 나서 장작을 패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뿐이지 갑자기 힘을 쓰니 허리가 시큰시큰해났다.
그때였다. 누군가 등뒤에 와서 굵직한 목소리로 《수고하오.》라고 말했다. 그 바람에 일손을 멈추고 흘끔 돌아다본 림준은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랐다.
뜻밖에도 장관우부위원장이였다.
《아니…》
말뚝처럼 뻣뻣이 굳어진 림준의 말은 입술에 얼어붙고말았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