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8 회)

 

제 20 장

 

4

 

종갑은 함흥형무소의 긴 벽돌담을 돌아 밋밋한 야산으로 올라갔다. 변변한 나무 하나 없는 까까머리야산이였다. 야산의 한쪽경사면에는 맨땅우에 시체를 놓고 흙을 살짝 덮어놓은 무덤들이 빼곡이 덮여있었다. 그래도 유해를 찾아가라고 무덤마다 이름을 쓴 말뚝을 하나씩 박아놓았다.

이 수백개의 개무덤만 한 무덤들과 이름을 써넣은 말뚝들은 왜놈의 법과 감옥제도가 빚어낸 대학살만행을 그대로 적라라하게 보여주는것이다. 수감자를 굶기고 얼어죽이는게 왜놈의 감옥이다. 종갑은 이렇게 생각하며 치를 떨었다. 그가 아버지에게 들여보낼 옷보따리를 지고 감옥에 도착한 그날 새벽에 아버지가 세상 떠났던것이다.

그날따라 날씨는 몹시 춥고 을씨년스러웠다. 한낮이 되여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강추위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가슴에서 불이 이는듯 한 종갑은 맨머리바람인데도 이 추위를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는 무덤곁의 표말의 이름을 하나하나 읽어가다가 리윤재라는 이름을 써넣은 표말을 세운 조그만 무덤앞에 섰다. 그것은 무덤이라기보다도 크지 않은 흙무지에 불과했지만 그것을 보는 순간 아버지가 세상 떠났다는 믿어지지 않던 사실이 현실로써 눈앞에 안겨왔다. 그는 절을 하는지, 쓰러지는지 땅바닥에 넘어져서 오늘 묻어서 아직도 덜 얼어 부실부실한 무덤의 흙을 손가락으로 끝없이 허비며 울었다.

이 절망적인 슬픔속에서도 이제 아버지의 시신을 집에까지 어떻게 모셔갈것인가 하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함흥에는 친척은 물론 아는 사람 하나 없다.

모든것을 종갑이 혼자서 해야 한다.

그런데 당장 돈도 없고 무엇을 할 방도도 없다.

그야말로 고립무원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때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함흥에 사는 박원식이라는 변호사가 아버지의 변호를 맡았다는것을 얼마전에 집에 기별해준것이 생각난것이다. 왜놈이 최후발악으로 조선어학회사건을 조작하고 탄압하고있는 이때 그 중요인물의 변호를 자진하여 맡는다는것은 섶을 지고 불속에 뛰여드는것과 다름없는것이다.

왜냐하면 재판에서 왜놈경찰의 죄악을 폭로하지 않고서는 조선어학회사건을 변호할수 없기때문이다.

그러니 그가 대담하고 량심적인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를 찾아가보면 무슨 조언이건 도움을 받을수 있지 않을가 하고 종갑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어디 사는지는 모른다. 단지 박원식법률사무소라는것이 기억에 남아있을뿐이다.

거의 반나절을 거리에서 헤맨 끝에 함흥에서 서울의 종로와 같은 황금정에서 찾은 박원식법률사무소의 간판을 보고서야 종갑은 안도의 숨을 쉬였다.

박원식은 몸집이 좋고 이목구비가 굵직굵직하여 시원한 인상을 주는 40대의 장년이였다.

리윤재가 세상 떠났다는 말을 듣고 그는 금시초문인듯 깜짝 놀라는것이였다.

《내가 한주일전에 만났을 때 병석에 누워계시긴 했지만 그리 급작스레 작고하시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었네. 사리분별이 명백했으니까. 나더러 변호를 단호히 거절했었네. 그 리유의 하나는 아무리 변호해야 왜놈들이 결심한 형벌을 조금도 변경시킬수 없다는것이고 또 하나는 그 변호를 한탓으로 변호사인 내가 화를 입을수 있다는것이였네. 나는 그를 맡은 변호사로서 형무소 전옥을 만나 그를 병감으로 옮기거나 병보석을 할것을 요구했네. 그런데 전옥의 말이 그는 대역죄를 지은 중죄인으로서 우에서 지시가 있기 전에는 형무소에서는 그를 맡고있는것밖에 아무 권리도 없다는것이였네. 변명 같지만 사실이 이러했네.》

《그 전옥이 우의 지시라고 하면서 장례식은 일체 못한다고 오금을 박았습니다.》

《선생의 작고가 사람들에게 주는 영향이 두렵기때문이지. 이 함흥에만 해도 선생에게서 배운 제자가 수두룩하네. 기별만 하면 모두가 모여 어떤 장례라도 치를수 있지. 그래서 경찰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여기에 개입하는거야.》

《그런데 지금 가장 큰 근심거리가 시신을 서울까지 어떻게 모셔갈것인가 하는겁니다. 역에 가서 알아보니 전시여서 유해의 운반은 할수 없다는겁니다.》

박원식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러니 화장을 해서 유골만을 날라가는게 어떨가?》

종갑은 궁여지책으로 그렇게 하는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함흥에서 화장은 할수 있습니까?》

《멀지 않은 교외에 화장터가 있으니 교섭을 하면 화장은 할수 있을거네. 그건 내가 힘써보지.》

《고맙습니다.》

그는 지갑에서 10원짜리 지전을 한장 꺼내여 종갑에게 주며 장의사에 가서 의논해보라고 했다.

그날 오후에 종갑은 장의사를 찾아가 의논해보았다. 암거래의 세상이라 관과 유골함을 마련하고 인부까지 구하자면 돈이 형편없이 모자랐다.

그래서 모든것을 자기 힘으로 하기로 결심했다. 장의사에서는 유골함만을 주문하고 필요한 쟁기와 바줄은 세내였다.

그는 이튿날 아침에 준비한 쟁기를 가지고 형무소의 공동묘지로 갔다.

그 초라한 무덤도 하루밤 추위에 땅땅 얼어붙었다.

그는 곡괭이로 무덤의 여가리를 조금씩조금씩 뜯어갔다. 인적없는 공동묘지에서 곡괭이질소리만이 먼산에 메아리치고 그 소리는 또다시 종갑의 가슴에 미쳐 살 한점한점을 뜯어내는것 같았다.

이윽고 시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신을 둘둘 만 거적때기우의 흙을 조심조심 뜯어내였다. 얼어붙은 거적때기를 간신히 제끼니 괴상야릇한 모양의 반물색옷을 입은 유해가 눈에 띄였다.

종갑은 얼굴을 씌운 거적때기를 제끼기가 무서웠다. 그 거적때기밑에서 딴 사람의 얼굴이 나타날것만 같았기때문이다.

눈을 감고 거적때기를 제낀 다음 한참만에 눈을 뜬 그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과연 그것은 딴 사람의 얼굴이였다. 딴 사람처럼 변모한 아버지의 얼굴이였다.

그 인자하던 미소도, 조용한 눈길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남은것은 진통에 시달리는듯 한 살 한점 없이 뼈만 남은 얼굴이였다.

《아버지!》

아무리 소리치고 몸부림쳐야 대답이 있을리 없다. 그 메아리가 또다시 가슴에 마쳐 살 한점한점을 뜯어내는것 같다.

종갑은 수건으로 아버지의 얼굴에 묻은 흙을 조심조심 닦았다. 옷보따리를 끄르고 솜옷을 꺼낸 다음 아버지가 몸에 걸친 수인복을 벗길수 있는껏 벗기고 할수 없는 경우에는 칼로 포를 뜨듯 했다.

이미 굳어진 언몸에서 옷을 벗기기도, 입히기도 쉬운 일이 아니였다.

솜바지를 간신히 입히고 저고리는 팔을 소매에 끼울수 없어 그냥 몸에 두르고 단추만을 채워놓았다. (형무소에 들여보내는 옷에는 고름을 달지 못한다.)

그리고 맨발벗은 발에는 망짝만 한 버선을 신기였다. 깨끗한 옷보우에 시신을 옮겨모시고 종갑은 절을 하며 속삭이였다.

《아버지, 마지막으로 솜옷이라도 입고 가십시오.》

그리고 언땅우에 엎드려서 한참 울었다.

그가 아버지의 유해를 커다란 옷보에 싸서 바줄에 걸어서 지고 일어섰을 때 또 한번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장대하던 아버지의 몸이 삭정이처럼 가벼웠기때문이다. 굶고 병들어 삭정이처럼 여위여버렸던것이다.

《이놈들아, 이래도 살인이 아니냐!》

종갑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화장터에서는 화장을 하는데 오후시간이 꼬박 걸렸다. 유해를 로속에 넣기 전에는 그래도 인간의 형체는 그대로 있었는데 로에서 나왔을 때는 재와 뼈뿐이였다.

너무도 허무했다. 이제는 아버지의 모습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종갑은 이미 희미해진 아버지의 얼굴을 마음속에 떠올리며 유골을 하나하나 줏는것이였다.

누구에게나 있을수 없는 이 기구한 운명의 날을 종갑은 그의 간고한 투쟁의 길에서 일생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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