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5 회)

 

제 20 장

 

1

 

류치장의 마루방에서 지내는 북방의 겨울추위는 정말 참기 힘든것이였지만 봄이 와도 봄기운이 별로 느껴지지 않고 찬 계절풍이 련일 불며 3~4월의 음습한 나날이 끌다가 왔는지도 모르게 봄은 가버리고 어느덧 여름이 왔다. 먼산, 가까운 들의 신록 한번 못 보고 높다란 미루나무초리우에서 우는 매미소리 한번 못 듣고 여름은 짙어갔다. 추울 때는 더운편이 나을줄 알았더니 막상 찌는듯이 더우니 차라리 겨울의 추위가 그리울 정도이다. 립추의 여지없이 빼곡이 앉은 류치장안은 마치 한증탕같아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좔좔 흐른다. 먹는것 없이 몸에서 진만 빼니 신체의 쇠약은 걷잡을길이 없다.

조선어학회사건관계자들은 련일 형사들의 문초와 고문을 받을뿐아니라 사계절의 변화에서 오는 각이한 고통을 받을대로 받으며 거의 한해동안 지옥같은 홍원경찰서 류치장에 묶여있었다.

그동안 넉달동안이나 홍원경찰서에서는 사건이 구성되지 않아 심문조서를 작성하지 못하다가 상급의 추궁을 받고서야 지난 3월 중순경에 조서작성을 완료하고 송국(경찰이 체포한 《죄인》을 검찰에 넘기는것)을 결정했다.

피의자들은 검찰에 넘어가기를 일일천추로 고대했다. 송국되면 우선 형무소로 이감되여 경찰서에서와 같은 고문은 받지 않게 되고 검사의 문초와 예심이 있을 때 경찰서에서 순전히 고문에 의하여 사건을 조작하고 무고한 죄를 뒤집어씌운데 대하여 까밝힐수 있으리라고 일루의 희망을 가져보았기때문이다.

그러나 송국의 날은 오지 않고 질질 끌기만 했다. 이사짐을 싸놓고 떠날 날을 기다리며 눌러앉아있는 심정이니 하루가 천추같았다. 그런데 무슨 고장이 생겼는지 아무 소식도 없이 다섯달이 그냥 지나갔다. 그러다가 9월 상순이 되여서야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송국이 되면 의례히 피의자가 검찰에 불리워가게 되여있는데 이번에는 그러한 질서조차 무시하고 검사가 경찰서로 피의자들을 찾아온것이다. 사건조작에 고심하는 경찰과 그에 매수된 검사간에 비밀히 계책이 있은게 분명했다.

검사는 아오야나기 고로라는자인데 조선에서 력사와 문화를 외곡하는 글을 적지 않게 쓴 매문가 아오야나기 남메이의 아들이였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피의자들의 실망은 컸고 검사에게 터럭만 한 기대도 걸수 없게 되였다. 경찰조서를 일체 거부하자던 의지도 흔들리지 않을수 없었다. 과연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경찰이 조선어학회사건관계자들을 문초하고 고문하던 바로 그 《무덕전》(유도도장)에 검사 아오야나기가 틀고앉아서 피의자들을 한사람씩 불러 문초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고도 괴이한것은 그 검사문초장소에 사건조작에 참가했던 열명의 형사들을 립회시킨것이다. 상좌에 검사가 서기를 데리고 앉고 그 오른쪽에 모로 함남도경찰부 형사들이 한줄로 주런이 앉고 그 맞은쪽에 홍원경찰서 형사들이 앉았다. 그 형사들사이에서 피의자가 검사를 마주하여 문초를 받으니 형사가 고문으로 자백받은 조서를 어떻게 부인하겠는가. 만일 부인한다면 나중에 그것을 승인할 때까지 형사에게서 보다 혹독한 고문을 받게 될것이다.

검사의 문초는 경찰조서를 재확인한것일따름이였다. 그래서 사건을 조작하고 조서를 작성한 형사들을 검사문초에 립회시키는 전례가 없는 흉계를 꾸몄던것이다. 경찰이 사건을 조작한 장본인이라면 검사 아오야나기는 그 공모자였던것이다.

목에 칼을 겨누고 묻는 말에 그렇다고만 대답하라는것이였다.

리극로의 그 크고 양처럼 순한 눈에 분노가 타올랐다. 그러나 그는 침착하게 생각했다. 경찰과 검사의 이 공모는 그들의 조선어학회사건조작이 얼마나 허무맹랑한것인가를 스스로 드러낸것이다. 그자들은 이 약점을 너무도 잘 알고있기때문에 피의자들에게서 바른말이 나올가봐 전전긍긍하고있다. 그래서 재판사상 류례없는 음모를 꾸민것이다. 그자들의 약점을 찌르고 음모를 발가내면 검사의 문초는 성립되지 못할것이다. 이것은 한두사람의 힘으로는 안된다. 모두가 일치하게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피의자들이 류치장에 분리감금된 조건에서 이것이 실지로 가능한가. 그는 조국광복회지하조직을 생각했고 또 동지들을 생각했다. 리윤재는 1927년에 상해에 갔던 문제때문에 가장 혹독한 고문을 받은데다가 극단한 영양실조로 건강이 여지없이 파괴되였지만 동지들에게는 의연히 락천적이고 왜놈에게는 기상이 도도하다.

한징은 워낙 몸이 약하여 추위도 더위도 남의 곱은 타는데 생존을 도저히 유지할수 없는 이 역경에서 용히 견디여가고있다. 그의 꼿꼿한 성미도 여전하다.

정렬모는 이 악조건을 견디기 위하여 일부러 느린 성미를 타고난것 같다. 이 지독한 고생속에서도 떡 버티고 앉아있는것이 예나 다름없다. 얼굴의 살은 쭉 빠졌으나 워낙 골격이 굵어서 남보다는 보기에 덜 처참하다.

동지들의 얼굴을 마음속에 그려보는 리극로에게 무엇보다도 다행하게 생각되는것은 없는것도 끄집어내려고 온갖 악랄한 수단을 다하는 형사들에게 조국광복회지하조직의 비밀을 어느 한사람도 불지 않은것이다. 조국광복회지하조직은 큰 시련을 겪었고 조직성원인 동지들은 그 시련을 꿋꿋이 이겨냈다. 이 동지들과 함께 무슨 일인들 못하랴! 드디여 리극로는 검사의 사기적인 문초를 거부하는 투쟁을 조직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오른편 벽으로 기여가서 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똑똑똑.》

잠시후에 저쪽에서 《똑똑똑.》 하고 응답이 왔다.

《검사의 문초를 거부하라!》

《묵비권으로 저항하라!》

《모두에게 전하고 일치하게 행동하라!》

리극로는 이번에는 왼편 벽으로 기여가서 똑같은 방법으로 계속 벽을 두드렸다.

옆방에서 다음방으로 통방은 이어갔다. 아닌밤중에 쑤군거리는 소리가 이방저방에서 들렸다. 이 지극히 위험한 일이 오래 걸리진 않았지만 가슴을 조이며 벽을 두드리는 사람들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쭉 흘러내렸다.

이튿날 검사의 문초는 전날과는 달리 난관에 빠졌다. 제일 처음에 불려나온 리윤재는 아오야나기의 첫 물음부터 부정했다.

《조선어학회가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로서 내란죄를 범했다고 하는데 조선어학회가 내란을 목적으로 범한 죄행이 무엇인가? 철자법의 통일, 표준어의 사정, 조선어사전편찬이 내란죄로 되는가? 일본에서도 문자개혁시도가 여러번 있었고 <광사림>과 같은 사전도 편찬했다. 그럼 이러한 일본의 어문운동이 정부전복음모로 된다는 말인가! 우리의 어문운동도 그자체로써 조선독립을 성취하는것은 아니다. 직접 목적으로 되지 않는 행위가 범법행위로 될수 없다는거야 법관인 당신이 더 잘 알게 아닌가.》

아오야나기는 새파랗게 성이 나서 주먹으로 책상을 탕탕 쳤다.

《그대가 경찰심문결과를 그렇게 전면적으로 부인한다면 경찰심문을 다시하는수밖에 없다. 그래도 좋은가?》

리윤재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아니, 그는 죽어도 량심을 속일수 없었다.

《그것은 심문이 아니라 지금 나의 발언에 대한 보복이다. 그러지 않아도 우리는 경찰의 비인간적인 고문에 의해서 이미 거의 불구로 되였다. 고문으로 당신들은 우리를 죽일수 있지만 진리와 사실은 죽이지 못한다. 언제건 조선어학회사건의 진상이 온 세상에 밝혀지고야말것이다.》

심문은 중지되고 리윤재는 문초장소에서 퇴장당했다.

이것은 실로 운명을 건 저항이였다. 자기를 지킬 아무런 수단도 없이 왜놈들과 맞선다는것이 죽음이나 다름이 없다는것을 그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리윤재는 왜놈들이 가장 싫어하는 진실을 말했다. 자기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이런 용기와 고집이 어디서 나왔는가? 거짓을 모르고 왜적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는 그의 됨됨이때문인가? 흔히 령리한 사람들이 말하듯이 그가 과연 세상을 모르는 바보이기때문인가? 그럴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실지로 힘을 얻은것은 집단의 단결에서였고 더우기 조국광복회 비밀조직성원이라는 자각이 더욱 컸기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 조직의 비밀을 생명과 바꿀 결심을 했다.

그 다음사람도 또 다음사람도 고문으로 날조한 경찰조서를 완강히 부인했다. 이 험악한 장소에서 바른말을 못할바에야 차라리 침묵으로 대항했다.

한두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이러하니 검사도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저들의 계획이 이렇게 파탄될줄은 몰랐다. 그러나 놈들은 피의자들의 일치한 증언이 아니라 저들이 쥐고있는 권력을 더 믿었다.

그날 밤 이슥해서 리윤재는 야스다에게 불리워나갔다. 그들은 곧바로 고문실로 들어갔다. 얼근하게 술을 먹은 야스다의 얼굴은 여느때보다도 더 시뻘겋다. 여느 사람보다 목 한기장은 더 큰 키, 양, 돼지처럼 피둥피둥 살찐 몸덩이, 이 모든것이 사나운 짐승같다.

잔인한 랭소를 띠고 야스다가 씨벌였다.

《아까 검사앞에서 한 말을 내 앞에서 다시한번 해봐.》

리윤재는 침묵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왜, 내 말이 말같지 않은가.》

야스다는 리윤재를 육체적으로 말살할수 있는 무제한한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와 맞서면 인간으로서 렬세에 떨어지는 자신을 느끼고 분이 치밀었다. (오늘은 누가 이기나 어디 해보자. 나는 너를 죽지는 않으면서 죽음보다 괴로운 순간을 이어가게 할테다.) 하고 생각하며 야스다는 입을 사려물었다.

그는 리윤재의 두손목을 합쳐 포승으로 꽁꽁 동여매고 그앞의 탁자우에 끝을 뾰족하게 깎은 대가치를 한줌 좌르르 쏟아놓았다.

리윤재가 침묵을 지키니 야스다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리윤재의 침묵은 곧 단말마적인 비명으로, 자기의 침묵은 정복자의 웃음으로 바뀌리라는것을 야스다는 믿었다.

그는 이미 고문으로 상하고 얼어서 손톱발톱은 다 빠지고 그 흔적만 남은 리윤재의 엄지손가락손톱밑에 대가치를 푹 꽂았다. 비명대신 이를 뿌드득 가는 소리가 들렸다.

둘째손가락에 대가치를 또 꽂았다. 이제는 앙다문 이사이로 모두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또 하나… 또 하나… 손톱밑에 꽂는 대가치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리윤재의 숨은 멎은듯 기척이 없고 심장이 마지막힘을 짜내듯 높뛸뿐이였다.

《이건 예비운동이다. 이제 너를 거꾸로 매달아놓고 네 얼굴을 숯불로 군고기를 할테다.》 하고 야스다가 지껄였다.

이것은 문초를 위한 고문이 아니였다. 꺾이지 않는 인간의 의지에 대한 도전이고 복수였다. 그러나 이제는 대가치를 쥐고 달려드는 야스다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리윤재가 비명을 지르거나 풀썩 쓰러지면 이 놀음을 일단 중지하고도싶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리윤재의 심장이 영영 멎어버릴수도 있기때문이다.

그러나 리윤재는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고 쓰러지지도 않았다. 그의 입에서는 담담한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야스다, 너에게 안정모라는 성명을 달아준 네 애비가 가련하구나. 온전한 사람이라면 지금은 그걸 후회하고있을게다. 우리의 민족이 살아있고 말과 글이 남아있는 한 너의 자식과 그 자식의 자식이 이 땅에 태여나 그 말과 글을 익힌걸 죄로 여기며 네게 영원한 저주를 퍼부을것이다. 조선의 하늘은 시퍼렇게 굽어보고있다!》

그리고 그는 벌떡 일어서서 피가 철철 흐르는 묶인 두손을 쳐들고 야스다에게 한발작 다가섰다. 야스다는 그럴 필요도 없는데 흠칠해서 한걸음 물러섰다.

리윤재는 간신히 말을 마치자 왈칵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그 검붉은 피우에 의식을 잃고 쓰러지고말았다.

그후 리윤재는 감방에 누워있었다. 혹독한 고문과 극도의 영양실조로 병든 몸이 그래도 한동안은 정신력으로 지탱되였으나 이제는 그 한계조차 지나가고있다는것을 그도 어렴풋이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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