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3 회)

 

제 19 장

 

4

 

야스다는 리윤재의 심문이 조금도 진척되지 않는데서 악도 받치고 조바심도 났다.

리윤재는 조선어학회의 간부의 한사람이고 어학회 기관잡지 《한글》의 편집 겸 발행인을 다년간 한 사람이다. 3. 1인민봉기에 관계하여 3년간 감옥살이를 했고 동우회사건에 관계하여 수감되였던 전과자이다. 불온단체로서 강제해산된 진단학회(왜놈의 조선력사외곡을 반대한 조선력사연구단체)의 창립자의 한사람이고 그 기관잡지 《진단학보》의 주필이였다. 이렇게 그의 일생이 반일활동으로 일관되여있음은 두말할것도 없는데 그의 문초에서는 범법행위로 규정할 증거를 받아낼수 없었다.

그래서 야스다가 리윤재의 문초에서 가장 중시한것은 그가 1927년에 상해에 갔다온 문제였다. 조선어학회를 어떻게 하든 학술단체로 가장한 독립운동단체로 만들자면 리윤재가 상해로 갔던것이 요진통이였다.

조선어학회가 상해림시정부의 비밀지령을 받고 독립운동을 했다는 자백을 상해에 직접 갔다온 리윤재에게서 받아내야 했다.

경찰조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여있다.

야스다: 1927년에 상해에 가서 림시정부에서 받아온 비밀지령을 자백하라.

리윤재: 받은 일도 없고 보지도 듣지도 못한 그런 비밀지령을 강제로 자백하라면 허구로 지어내는수밖에 없지 않느냐.

야스다: 지어라도 내라.

리윤재: 그건 지어낸다 해도 거짓말을 론거세울 증거가 없지 않는가?

야스다: 그때 상해에 독립운동자금 200원을 송금한게 그 증거다.

리윤재: 아무리 림시정부가 가난하기로 돈 200원으로 독립운동을 하겠는가. 그 돈은 김두봉에게 그가 가진 사전원고를 완성해서 보내겠다는 약속으로 보낸 돈이다. 그런 돈도 독립운동자금인가.

이것은 그야말로 희화적인 동문서답이였다.

야스다가 흰것은 검다고, 검은것은 희다고 우기자니 그렇게밖에 될수 없었고 말에서 딸리니 그에게 주어진 폭력밖에 행사할게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야스다는 리윤재를 육체적으로뿐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최대한으로 괴롭히고 그의 의지와 자존심을 깡그리 뭉개치울 묘안을 생각해냈다.

야스다는 조선어학회사건 피의자들가운데서 가장 약한 고리의 하나로 보고있는 장지운을 끌고 왔다. 그는 몇차례의 고문으로 제정신이 아닌것 같았다. 조선어학회 초창기에 한때 간사장까지 했던 그의 위신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무엇이나 아는체 잘하고 남을 업신여기기 잘하던 그의 오만성은 어디로 갔는지 형사나부랭이에게도 필요이상으로 굽실거린다.

야스다가 장지운에게 격검채를 주며 명령했다.

《장지운, 네가 나를 대신해서 리윤재를 문초하라. 그가 상해림시정부에서 받아온 비밀지령을 자백할 때까지 격검채로 치라. 만일 약간이라도 사정을 본다면 거꾸로 네가 리윤재의 문초를 받아야 한다. 시작!》

너무도 뜻밖의 일에 장지운은 안경을 끼지 않은 근시안을 두리번거릴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해서 서있었다.

《안하겠는가!》

등뒤에서 악에 받친 소리가 그의 뒤통수를 후려치듯 했다.

그는 하는수없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리윤재에게 사정했다.

《환산, 어찌겠소. 이렇게 된바에야 불고맙시다.》

리윤재의 눈에 불이 번쩍했다.

《뭘 말이요. 거짓말을 불란 말이요?》

장지운이 고개를 푹 숙이였다.

《쳐라!》 하고 야스다가 위협조로 소리쳤다.

그러나 장지운은 차마 격검채를 쳐들지는 못했다.

리윤재가 장지운에게 말했다.

《장선생, 나를 치시오.》

수치감을 느낀 장지운은 그 말도 들을수가 없었다.

성이 꼭뒤까지 오른 야스다가 격검채를 리윤재에게 주며 소리쳤다.

《장지운이 문초를 잘못하니 이번에는 리윤재가 장지운을 치라.》

그러나 리윤재는 격검채를 받지도 않았다.

끝내 리윤재는 장지운의 격검채가 아니라 야스다의 란장질에 쓰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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