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 회)

 

제 17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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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디서 벼탈곡을 하는지 족답기 돌리는 소리가 잠시도 멎지 않는다. 날씨는 선선한데 방앞 퇴마루에 한낮의 뙤약볕이 한가득 내려쪼여 자글자글 끓는것 같다. 들리는 소리에도, 맑은 공기에도, 쟁글거리는 해볕에도 가을의 정취가 느껴진다. 가을의 정취란 왜 그런지 쓸쓸한것이다.

리윤재는 빈집같이 쓸쓸한 방에 혼자 앉아서 《훈민정음해례》에 관한 원고를 쓰고있다.

《훈민정음해례》란 있는지도 모르는채 5백년동안이나 묻혀있다가 지난 7월에 경상북도 안동의 한 집 다락에서 표지와 첫장을 떼여버린 상태로 발견된 책이다.

새로 발견된 《훈민정음해례》에는 첫머리에 세종대왕이 친필한 《훈민정음례의》가 올라있고 그 다음에 이 책의 기본부분인 《훈민정음해례》가 실려있으며 마감으로 정린지의 서문이 달려있다.

이때까지 훈민정음원본으로 알려진것은 《훈민정음례의》뿐이였다.

《훈민정음례의》는 세종 25년 12월(양력 1444년 1월)에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그 매개 문자의 음과 그것을 결합하여 쓰는 규칙들을 간단히 서술한 책이였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후 세종대왕은 1444년 2월에 집현전안에 언문청을 설치하고 8명의 학사 즉 정린지(집현전 대제학), 최항(집현전 응교), 박팽년(집현전 부교리), 신숙주(집현전 부교리), 성삼문(집현전 수찬), 강희안(돈녕부 주부), 리개(집현전 부수찬), 리선로(후에 이름을 리현로로 고침. 집현전 부수찬)에게 명령하여 훈민정음의 제자원리, 글자사용의 규칙과 규범을 밝히도록 했다. 그리하여 세종 28년 9월(양력 1446년 10월)에 《훈민정음해례》의 편찬을 완성하게 되였다.

이 책에서는 제자해, 초성해, 중성해, 종성해, 합자해 그리고 용자례라는 제목의 《해》와 《례》에서 훈민정음의 제자원리와 그 음운리론, 사용규칙과 규범을 해설하였다.

훈민정음과 같은 표음문자를 만들자면 조선말의 소리를 연구확정하고 그에 기초하여 음운리론을 확립하지 않고서는 안되였다.

훈민정음에서는 우리 말의 소리가 어느 조음기관에 의하여 이루어지는가에 따라 아(ㄱㅋ), 설(ㄷㅌㄴ), 순(ㅂㅍㅁ), 치(ㅈㅊㅅ), 후(ㅎㅇ), 반치(ㅿ), 반설(ㄹ)의 7음으로 나누었다.

모음도 역시 조음의 특성에 따라 분류하였는데 발음할 때 혀의 상태와 입의 모양에 따라 《ㆍ-ㅣ》를 평순모음이라 하여 기본모음으로 하고 원순모음(ㅗ ㅜ)과 장순모음(ㅏㅓ)을 구분하였으며 초출모음(ㅗㅏㅜㅓ)과 재출모음(ㅛㅑㅠㅕ)을 나누었다.

음성학이 아직 유럽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말의 소리를 구분하는 기구조차 없던 15세기에 우리 말의 소리를 직접 관찰하여 정확히 분류확정하고 그에 기초하여 훈민정음과 같은 자모식문자를 창제했다는것은 세계에 자랑할만 한 일이다.

발음할 때의 조음기관의 모양을 본따서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이 문자제작의 과학성을 중시하는것으로서 세계문자사상 그 류례를 볼수 없는것이다.

그래서 이와 같은 우수한 글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하는데 대하여 내외학자들속에서 각이한 주장이 나돌았다.

그러나 《훈민정음해례》가 발견되고 그 원리가 밝혀짐으로써 이 모든 기원설이 랑설임이 증명되였다.

또한 《훈민정음해례》의 정린지의 서문에는 《정통11년 9월 상한》 즉 1446년 음력 9월 상순이라는 날자가 밝혀있어 훈민정음반포날자를 더욱 정확히 확정할수 있게 되였다. 그리하여 어학회에서는 이 날자를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9일을 한글날로 새로 정했다.

훈민정음반포 495돐이 되는 이해에 또 하나 뜻깊은것은 지난 6월 25일에 외래어표기법통일안이 10년만에 완성되여 세상에 나간것이다.

문화가 발전하고 다른 나라와의 교류가 많아짐에 따라 우리 말에 외래어가 많이 들어왔으나 외래어를 쓰는 법이 통일되여있지 않아 그 혼란과 람용이 매우 우심하였다.

조선어학회에서는 1931년부터 외래어표기법제정사업에 착수하여 국내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리였다. 외래어표기법에 관한 리론실천적문제들을 확정하기 위한 어학회의 전문학자들뿐아니라 사회각계의 인사 수백명의 의견을 종합하였다. 1935년 7월에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2차 국제음성학회와 1936년 8월에 단마르크 쾨뻰하븐에서 열린 세계언어학자대회에 각각 대표를 파견하여 우리 말과 글자의 우수성과 그 과학적원리를 널리 소개선전하였다.

이렇게 10년간의 고심어린 노력으로 외래어표기법통일안이 완성됨으로써 조선어사전편찬의 세가지 기초작업이 완성되였으며 우리 말의 통일을 완전히 이룩할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외래어표기법통일안의 기본원칙은 외래어를 우리 말의 특성에 맞게 자기식으로 표기한다는데 있다.

이에 대해서는 외래어표기법제정위원회를 책임지고있던 리극로의 다음과 같은 말이 잘 말해준다.

《한 민족의 언어는 그 민족의 특수한 음운으로 조직된것이다. 다른 민족의 특수한 음운을 적기 위하여 새 문자나 부호를 만들 필요가 없는것이다. 그것을 만들어놓았자 일반으로 바로 읽지도 못하고 또 그 소리를 바로 듣지도 못한다. … 다른 민족들이 하는것을 보아도 외래어를 적기 위해 새 문자나 새 부호를 창작한 례가 없다. 외국어가 우리 말에 들어올 때에는 우리화를 하는것이 옳다.》

외래어표기법통일안이 세상에 태여났으나 그것이 쓰일 사이도 없이 왜놈의 탄압으로 빛도 보지 못하고말았다.

오늘은 조선어연구에서 큰 의의를 가지는 이 모든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여론을 환기시킬 신문조차 없다. 지난 8월 10일에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페간호가 나갔던것이다. 지난 20년동안 민족과 운명을 같이하며 풍상고초를 겪어온 두 신문은 총독 미나미의 발악적인 폭거에 의하여 드디여 문을 닫게 되였다. 미나미는 두 신문을 페간시키고 사이또총독이 뿌려놓은 악의 종자를 뽑아버렸다고 자랑했다는것이다.

이런 암흑세상에 한글날기념식이란 엄두도 낼수 없지만 어학회에서는 소박하게 월례회형식으로 《훈민정음해례》에 관한 연구모임이라도 가지기로 의견을 모았다. 죽은 자식 나이 세여보는 심정이였던것이다.

리윤재는 쓰던 원고를 마저 쓰고 문갑에서 이미 써놓은 《도강록》원고를 찾아내여 함께 책보에 쌌다. 점심요기를 간단히 하고 그는 집을 나섰다.

광나루는 참 묘한 곳이다. 리윤재가 사는 마을은 완전히 농촌마을인데 거기서 한 10분 나가면 신작로가 되고 그 길가에는 술집과 점방들이 따닥따닥 붙어있어 서울의 뒤골목을 련상시킨다. 그 신작로를 따라 왼쪽에는 남한산성을 향하여 긴 다리가 놓여있고 오른쪽은 북한강지류가 끝없이 뻗어있다. 단풍든 산기슭과 들쑹날쑹한 벼랑으로 구곡양장을 이루며 먼 보라색산사이로 사라진 도래굽이는 실로 몰골로 그린 한폭의 묵화같다.

리윤재는 온 봄, 여름 광나루에 살면서도 이 훌륭한 산천경개를 즐길줄도 몰랐고 때없이 소고기 굽는 냄새가 흘러나오는 음식점에 들려볼 생각 한번 해보지 못했다. 언제나 상복을 걸치다싶이 한 그의 마음에는 그러한 여유가 없었던것이다.

어학회는 회원의 반수도 모이지 않았다. 시세에 민감한 사람들은 오늘의 모임을 리극로의 우직한 소행으로 여겼을것이다. 그래도 성대생 댓명이 찾아왔고 춘천의 신명철에게서 《한글날을 축하합니다.》라는 축전이왔다. 그는 근래에 서울에는 오는 일이 통 없었지만 어학회의 활동에 늘 관심을 돌리고있었던것이다.

저녁 5시까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런데 와야 할 사람들은 끝내 오지 않고 뜻밖에도 종로경찰서 고등계형사가 불쑥 나타났다. 그는 어학회에 드문드문 오군 하는 형사로서 다소 교양도 있고 례절도 밝아 여느때는 형사라는 인상을 별로 주지 않으나 개별담화를 할 때 한눈을 파는듯 하다가도 불의에 상대자를 쏘아보는 그 눈이 매눈처럼 날카로와 그의 직업은 숨길래야 숨길수 없었다.

그는 오늘 어학회행사에 림석하러 왔다는듯이 말도 없이 늘어지게 앉아있었다.

난처해진 리극로가 그에게 물었다.

《한글날기념식허가신청을 냈는데 회답이 없어 오늘 간단히 월례회형식으로 발표모임을 가졌으면 하는데 일없을가요?》

《조선어학회 집회금지조치가 해제되였던가요?》

형사가 능청맞게 되물었다.

리극로는 말문이 막혔다. 오늘 어떠한 집회도 못하게 하려고 나온 형사에게 집회에 대하여 묻는것이 어리석었다.

어슬어슬해오는 창밖을 멍하니 내다보기도 하고 책상우의 원고를 읽지도 않으면서 뚫어지게 보며 사람들은 침묵에 잠겨있었다. 깨여진 한글날, 무언의 집회였다.

참다못해 성대생들이 일어나 2층계단을 발로 쾅쾅 구르며 가버렸다. 그들은 여기서 그 어떤 말보다도 더 웅변적인 침묵의 저항과 분노를 가슴속속들이 느꼈던것이다.

리윤재는 《도강록》원고를 받으러온 문장사 일군과 함께 밖에 나가서 원고를 넘겨주고 그길로 귀로에 올랐다.

분노하면 그의 걸음은 더욱 빨라진다. 땅으로 곧추 뻗은 두주먹은 더 세게 쥐여져 몸을 더 크게 흔들게 된다.

미나미란 놈의 횡포무도한 소리가 기억에 떠올랐다.

《총독부시책을 반대하는 놈들은 국법으로 다스리고 협력을 거부하는 놈들은 비국민으로 몰아치면 된다. 경무국장은 특히 그리스도교인들의 버릇을 고쳐주며 학무국장은 협력단체들을 좀더 확대하라.》

그래서 지난달에는 무슨 사건이라는것을 조작하여 수많은 그리스도교인들이 검거되였다. 《황도정신》을 고취하기 위하여 각급 학교, 종교단체, 공동단체들이 의무적으로 신궁참배를 할것을 명령했으나 그리스도교인들의 신궁참배거부가 예상외로 완강했기때문에 그들에 대한 탄압이 무자비하게 벌어졌던것이다.

이제는 언제 어학회에 탄압의 마수가 뻗칠지 모른다.

하루도 참기 어려운 이 비인간적생활을 하루라도 더한다는것이 죽기보다 괴로운것이다. 왜놈이 없는 세상에서 단 하루를 살다 죽어도 한이 없을것이다.

그는 절망에 신음하며 왜적의 패망과 민족의 구원을 갈구하여 하늘을 우러러 절규하고 땅을 향해 호곡하며 어둠속을 정신나간 사람처럼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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