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 회)

 

제 1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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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에 아버지가 감옥에 가고 가정을 유지할수가 없어 근화가 방이골 고모네 집에 얹혀살 때에는 처지가 가긍했지만 지금처럼 괴롭지는 않았다. 마을의 간이학교에서 학교에 못 가는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생활의 목표가 있었기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일본놈군대의 성노예로 끌려갈가봐 피신한다는것밖에는 아무런 생활의 목적도 없이 도망군처럼 불의에 오기 싫은 걸음을 하게 되였으니 다정한 고모네 집에 와서도 그의 마음은 집에 가있었던것이다.

더우기 근화는 난생처음 사랑의 애달픔을 느꼈다. 대보름날 저녁에 정인선에게 박종식이 찾아오고 허월도 놀러와서 근화가 차를 들여갔다가 붙들려 윷놀이를 하였고 그것이 싫증나자 영화관에 프랑스영화 《망향》을 넷이서 구경하러 갔다. 영화관에서 나오자 정인선과 허월은 딴데 가버리고 부득이 근화는 박종식과 단 둘이서 밤길을 걷게 되였다. 하늘에는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고 주변에서는 어디서나 봄냄새가 풍기기 시작했고 젊은 그들의 마음속에는 방금 본 영화의 여운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말없이도 마음이 통했다. 그러나 정이 통하자 이튿날 헤여졌으니 방이골에 온 근화의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침울한 조카딸을 보고 고모가 혀를 끌끌 찼다.

《시집갈 나이의 계집애가 이게 무슨 꼴이람. 너는 살 한번 찌는 일이 없구나. 서울의 물이 분명 나쁜게야.》

《물이 탈인가, 왜놈들탓이지. 만주좁쌀에 대두박이나 먹고 사람이 성할수 있나. 자, 별식이나 부지런히 하소.》 하고 고모부가 말했다.

그래서 고모는 하루가 멀다하게 조차떡, 수수경단, 꿀같이 단 호박범벅 등 농촌정취가 푹 풍기는 음식을 했다. 손수 농사지은 곡식으로 별식을 해먹는것이 이 집의 하나의 재미기도 했다.

자식이 없는 고모나 자식복이 없는 고모부는 마음고운 조카딸을 친자식처럼 사랑했다. 세상을 등지고 농촌에 묻혀 외롭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조카딸이 찾아온것도 큰 위로가 되였다.

근화는 고모와 함께 동자질도 하고 절구질도 하고 과수원에 나가서 일손을 돕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몸의 고달픔으로 마음의 무거움을 덜어보려 했다.

근화는 방이골에 이왕 와있는 이상 그전에 간이학교에서 교원을 할 때처럼 이 마을을 위하여 무엇이건 유익한 일을 하고싶었다. 그러나 간이학교는 이미 없어진지 오래여서 교사로 쓰던 마을공회당은 돌보는 사람이 없어 페허처럼 되였다. 헌 학생책상들은 방 한구석에 쓸모없이 무져있고 조그만 운동마당에 세워놓은 철봉대의 철봉은 없어지고 기둥만 두개 남아있다. 그 퇴락상을 바라보는 근화의 가슴은 아팠다. 그것이 이 마을의 퇴락상같았기때문이다. 오랜 세월 오붓하게 살아가던 이 마을에도 전쟁의 모진 바람이 휩쓸어 생활도 인심도 날을 따라 쇠퇴해졌다. 식량을 비롯한 모든 농산물을 공출이라는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수탈해가니 원래 근근히 살아가던 이 고장이 만성적인 기근지대로 화했다. 쌀독에서 인심이 난다고 후하던 인심도 박해졌다. 청장년들은 때없이 《보국대》로, 징용으로 끌려갔다. 여러명의 청년들이 이미 징병으로 끌려갔고 아직 징병에 끌려가지 않은 청년들도 청년훈련소나 경방단에 끌려가 농번기에조차 농사는 뒤전으로 되였다.

어느날 웃마을의 최순녀라는 처녀가 근화를 찾아왔다. 순녀는 3년전에 근화가 간이학교에서 가르친 제자이다. 아버지는 오른쪽눈이 애꾸이고 어머니는 왼쪽눈이 애꾸여서 지꿎은 사내아이들이 놀리느라고 두눈을 차례로 깜짝거리면 순녀가 울며 교실에 뛰여들어오군 하던게 어제 같은데 벌써 열여덟살이다. 워낙 곱게 생긴 얼굴이 한창나이에 활짝 피여 치장이나 잘 시키면 멋쟁이서울처녀가 도리여 부러워할만 한 미인이였다.

한참 저고리고름만 만지작거리며 쭈밋거리던 순녀가 말했다.

《선생님, 이 일을 어쩝니까? 제게 <정신대>소집령이 내렸습니다. <정신대>에 나가면 안된다고들 하던데.》

근화는 깜짝 놀랐다. 무서운 환영처럼 느껴지던 《정신대》가 현실로 눈앞에 닥쳐온것이다.

대답없이 눈만 크게 뜬 근화의 기색을 살펴보던 순녀가 말을 이었다.

《소집령 받고도 아무도 응하지 않으니까 그저께 송파(면소재지)에서는 자동차를 들여대고 마구 잡아서 싣고 갔답니다. 저는 막 무서워요.》

근화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나가면 안돼. 절대로 안돼. 일본군<위안부>가 뭔지 아니. 전쟁에 나간 왜놈병정들에게 녀자를 섬겨바치는거야. 그런데 끌려갔다간 일생을 망친다.》

《그럼 어쩌면 좋아요?》하고 겁에 질려 근화를 쳐다보는 순녀의 눈에 눈물이 함초롬히 고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근화자신도 모른다. 자기자신도 바로 일본군《위안부》를 피하여 여기에 와있는게 아닌가.

《달아나고싶지만 그러면 부모를 잡아다가 못살게 군대요.》

그제서야 근화가 자르듯이 말했다.

《달아나야 한다. 부모님들을 잡아다 못살게 굴어도 놓여나면 그만이지만 네가 <정신대>에 끌려갔다가는 성하게 돌아오지 못한다.》

《서울로 달아나고싶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요.》

근화는 드디여 결심을 했다.

《우리 집으로 가거라. 내 동생 영애를 만나면 방직공장에 취직시켜줄수도 있다.》

그리고 근화는 창신동 집주소를 순녀에게 대주었다.

《선생님,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근화를 쳐다보는 순녀의 눈에 이번에는 감사의 눈물이 어리였다.

왜놈의 세상에서 일본군성노예에 걸린 처녀를 이렇게 빼돌리는것이 얼마나 위험한짓인가 하는것을 근화도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죽음의 함정앞에 선 순녀를 보고 구원의 손을 내밀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마음을 진정하느라고 한참 침묵했던 근화가 이윽고 말했다.

《네 동창가운데 <정신대>나 징용에 끌려간 아이들이 더러 있느냐?》

《그저께 송파에 사는 아기가 자동차에 실려갔답니다. 웃마을의 개똥이는 올봄에 장가를 들었는데 새각시와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얼마전에 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갔답니다.》

근화는 그들이 생각났다. 개똥이는 삼대독자로서 명이 길라고 그런 흉한 이름을 붙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명이 길어 살아남았지만 청상과부인 홀어머니가 바란대로 가문을 이어가기는 어렵게 되였다. 아기는 재주와 용모가 출중하여 농촌에 묻혀 살기는 아까운 처녀였으나 이제는 차라리 농촌에 묻혀 살기보다도 못하게 되였으니 그 재색이 무슨 소용인가!

근화는 인간의 귀중함도, 그들의 소원도 무참히 짓밟아버리는 왜놈들에 대하여 치솟는 분노를 느끼였다.

며칠후 점심시간에 면사무소 로무계 최서기가 찾아왔다. 면서기라 하면 왜적의 말단주구로서 악질의 대명사로 불리우지만 이 최가만큼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은 드물것이다.

과수원에서 막 돌아와서 손을 씻고있던 김한규에게 최서기가 방자하게 수작질을 했다.

《여보 령감, 조카딸 어디 있어?》

김한규는 대꾸도 하지 않으려다가 방에서 상을 챙기고있을 근화가 들으라고 큰소리로 대답했다.

《어디 있긴 어디 있어. 며칠 다니러 왔던 애가 제 집으로 돌아갔지. 왜 그래?》

최가는 사나운 눈길로 김한규를 쏘아보더니 신을 신은채 냉큼 마루에 올라서서 안방 방문을 홱 열었다. 그때는 이미 근화가 벽장속에 숨은 뒤였다. 최가는 신발을 신은채 차마 방안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마루를 건너서 건너방 방문을 열어보았다.

김한규는 격분해서 얼굴이 새하얘졌다.

《이놈, 무엄하게도 남의 집 마루에 신을 신고 올라가? 저런 방자한 놈이 있나!》

최가도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이놈의 령감태기가 누구더러 이놈저놈 하는거야. 조카딸년이 무슨짓을 저질렀는지 알기나 해? <정신대>에 나가게 된 아이를 빼돌렸단 말이야. 그게 무슨 죄로 가는지 알기나 하는가 말이야. 남을 빼돌렸으면 제년이 대신 가야지. 난 머리수라도 맞춰야 하니까. 조카딸년을 데려다놓으란 말이야.》

《이놈, 너는 돌짬에서 나온 놈이냐? 네가 면서기를 하면 네겐 이상사람도 없단 말이냐? 저런 머리에 소똥도 안 벗겨진 놈이 저렇게 기승을 부리니 세상은 과연 말세로다!》

《그럼 좋다. 주재소에 붙들려가서 경을 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이 전시하에 령감 같은게 바로 비국민이다.》

김한규는 너무도 격분한 나머지 《이놈, 이놈!》하고 외마디소리를 지르다가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고말았다.

금옥이가 얼른 부엌에서 달려나와 김한규를 가까스로 일으켜세워가지고 방안에 데려다가 눕히였다.

최가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그사이에 슬그머니 가버렸다.

그때부터 김한규는 말 한마디 없이 자리보전하고 누운채 일어나지 못했다. 송파에 의원을 부르려 사람을 보냈으나 의원은 바쁘다는 구실로 저녁이 다되여서야 나타났다. 그는 집맥을 해보더니 중풍이라고 진단을 내리고 침을 몇대 놓았다. 침은 별로 효험이 있는것 같지 않았으나 그가 보내준 약은 사향이 들어있어 그런지 환자가 좀 진정되여 잠이 혼곤히 들었다.

밤이 깊어갔다. 의사를 부르려 그리고 약을 가지려 두번씩이나 송파에 갔다온 옆집의 김춘삼은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환자를 지켜보고있었다. 아마 이 마을에서 김춘삼보다 더 가난한 사람은 없을것이다. 투전을 밥먹기보다 좋아하고 살림살이를 아무렇게나 하여 못살다나니 친동기간조차 그를 얕잡아보지만 그도 남에게 한번 돋보일 때가 있으니 마을에서 두레가 벌어질 때 혹은 초상이 나서 상여가 나갈 때 소리를 먹이는 그는 과연 명창이였다.

재작년 보리고개때 절량이 되여 굶다싶이 하는 춘삼을 김한규가 데려다가 과수원일을 시키고 품삯을 후하게 주어 살아가게 해준것이 계기가 되여 춘삼은 김한규를 아버지처럼 따르고 그 집일을 제 집일처럼 돌보게 된것이다. 혼곤히 자다가 소스라치듯 깨여난 김한규는 자기를 지켜보고있는 안해와 근화와 춘삼을 번갈아보다가 마음이 놓이는듯 후- 하고 한숨을 쉬더니 춘삼에게는 구장을 데려오라고 이르고 근화에게는 지필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그의 말소리는 굳어져있었다. 근화는 처음에 무슨 말인지 몰라 두리번거리다가 고모가 지필을 가져오란다고 일깨워주어서야 고모부의 문갑에서 그가 흔히 한시를 쓰군하던 두루마리 한지를 꺼내고 벼루를 꺼내여 먹을 갈았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아닌 밤중에 불리워온 구장이 자리에 앉자 김한규가 천정을 멍하니 바라보며 힘들게 말했다.

《내가 부르는대로 써라. 유서…》

유서라는 말에 근화는 소름이 끼쳐 쓰지 못하고 백지장같은 고모부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빨리 써라. 시간이 없다.》

유서라고 쓰는 근화의 손은 떨리고 하얀 종이우에 눈물방울이 뚝 떨어졌다.

《첫째, 농막을 경계로 동쪽에 있는 김한규의 소유인 과수원 800평과 그곳에 잇닿은 밭 700평을 처 리금옥에게 상속한다.》

《여보, 상속이라니. 이게 무슨 망녕된 말씀이요!》 하고 금옥이 울음을 터뜨렸다.

《둘째, 농막을 경계로 서쪽에 있는 과수원 700평과 그곳에 잇닿은 밭 800평과 농막은 나의 처남 리윤재에게 양도한다.》

근화가 쓰다말고 흐느꼈다.

《근화야, 마저 써라. 그리고 년월일을 적고 내 이름을 써라. 인감도장을 문갑에서 꺼내여 찍어라. 내 이름옆에 립회인 방이리 구장 김근배와 김춘삼의 이름을 쓰고 그들의 도장도 찍어라.》

춘삼이 놀라서 소리쳤다.

《생원님, 이게 무슨 일이옵니까. 제가 어떻게… 제가 어떻게…》

김한규가 할 일을 다한듯 축 늘어져서 눈을 감고 대답이 없었다. 의지에 의한 한순간의 진정이 지나자 그는 심한 경련을 일으켜 사지가 굳어지고 말도 전혀 못하게 되였다. 눈만 펀히 뜨고 온밤 진통을 겪다가 그는 이른새벽에 운명하고말았다.

두 녀인의 비명과 같은 곡성이 고요한 마을의 새벽공기를 흔들었다.

고인을 림종까지 한 김춘삼이 마을로 뛰여다니며 사람들을 불러다가 장례준비를 서둘렀다. 고인의 렴습(죽은 사람의 몸을 씻고 옷을 입히고 묶는것)도 입관도 그가 손수 했다.

이집저집에서 팥죽동이를 날라오고 조문오는 마을사람들이 꼬리를 물었다. 언제나 쓸쓸하던 이 집이 끊임없이 들고나는 사람들로 날아갈듯 했다.

급보를 받은 리윤재가문사람들이 당도한것은 한낮이 기울어서였다. 호상도 설 자식이 없어 마을사람인 춘삼이 호상을 서있는 임자없는 빈소를 바라보니 리윤재의 마음은 괴롭고 아팠다. 그는 외로우면서도 호협하고 의롭게 살아간 김한규의 불우한 생애를 머리에 떠올리며 보잘것없는 인간에 의해서 비명으로 숨진 그의 기구한 운명을 생각하며 령전에 술을 붓고 눈물을 흘렸다. 그를 죽인것이 결국 왜놈이라는것을 생각하니 치미는 분격에 땅을 치고 고함이라도 치고싶었다.

김한규가 가버리니 금옥은 또다시 과부가 되였다. 청상과부로 청춘을 설음으로 쌓아가다가 초로에 김한규 같은 좋은 사람을 만나 이제야 사람같은 삶을 누리는가 했더니 또다시 지아비를 앞세우니 이보다 더한 박명이 어디 있겠는가. 과부로 일생을 살고나면 한숨이 구만구천두라고 하지않던가. 리윤재는 절망에 빠진 누이를 위로할 길이 없었다.

장례는 삼일장으로 거행했다. 붉은 상두복색으로 휘감은 상여를 스무나문명의 장정들이 지고 늘어섰고 상여가 마을을 한바퀴 돌아도 호상군의 꼬리가 끝나지 않았다. 한생을 외롭게 산 그가 죽어서야 사람들에게 떠받들렸다. 됨됨이가 호협한 그에 대한 인망이 얼마나 높았는가를 잘 말해주는것이다.

김춘삼이 상여머리에 서서 소리를 먹이니 그 구슬픈 소리에 산천이 호곡하는것 같고 그것을 받는 상두군의 화답소리가 앞뒤산에 메아리친다.

 

너화홍 너화홍 너화넘자 너화홍

 

인생 일장춘몽이요

세상공명 꿈밖이라

 

너화홍 너화홍 너화넘자 너화홍

 

북망산천이 먼줄 알았더니

방문밖이 북망산이라

 

너화홍 너화홍 너화넘자 너화홍

 

황천수가 멀다더니

앞내물이 황천술세

 

너화홍 너화홍 너화넘자 너화홍

 

동산에 오르는 고개길앞에서 상여는 비칠거리고 뒤걸음질을 치며 숨가쁜듯 허덕이였다.

김춘삼이 소리를 뽑았다.

 

못 가겠네 못 가겠네

북망산이 웬 말이냐

 

너화홍 너화홍 너화넘자 너화홍

 

목이 말라 못 가겠네

주막없는 황천길을

 

너화홍 너화홍 너화넘자 너화홍

 

녀인들이 눈물을 머금고 술동이들을 내왔다. 상여를 내려놓고 상두군들이 목을 추긴 다음 상여는 씽씽 동산을 넘어 과수원남쪽둔덕에 가닿았다. 온 과수원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사방이 탁 트인 곳이였다. 봉분까지 쓰고나니 해가 서산에 기울었다.

삼일제까지 지낸 리윤재는 안해를 당분간 외로운 금옥이와 함께 있게 하고 근화는 데리고 창신동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가나오나 근화로 인한 근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성노예에 끌려나갈지 모르기때문이다. 근화가 이미 시집갈 나이도 되였으니 출가만 시키면 만사형통(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는것)이겠지만 이런 가정문제나 자기 개인의 일을 푸는데서는 그만큼 무능한 사람도 없다. 무능하다기보다 아득바득 애를 쓰지 않는것이다. 참을성이 많은 정씨에게 남편에 대한 불만이 있다면 바로 그 점이였다. 그래서 언제나 이런 가정문제를 푸는것이 김해댁이였다.

이번에도 역시 그렇게 되였다.

한동안 자리에 누워 집안일에 전혀 관여를 안하던 김해댁이 자리를 털고일어나 아들을 건너방으로 불렀다.

김해댁은 잠시 뜸을 들이듯 입을 다물고있다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내 어제 인선이더러 근화의 신랑감을 물색해보라고 했더니 그애 말이 근화와 종식이사이에는 이미 약속이 있으니 다름없다고 하더라.》

《그래요?》

리윤재는 금시초문이라 놀라서 어머니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래서 내가 종식이를 불러다가 물어봤더니 사실이더군. 우리만 이런걸 모르고있었구나.》

모자는 서로 바라보며 어이가 없는듯 웃었다.

《젊은것들이 서로 좋아한다면 맞추어주면 그만이지만 한편 서운한 점도 없지 않다. 종식이에겐 부모도 없고 재산도 없고 당자는 글뒤주이니 이런 사람을 한평생 따라다니다가는 가난밖에 차례질게 더 있겠느냐.》

《하긴 저도 못살아 떠돌아다니던 농부의 자식이 아닙니까.》

《그 사람이 살아온게 신통히도 너와 비슷하구나. 가재는 게편이라고 하는수 없군.》

《어머니 의향에 따르겠습니다.》

《그럼 좋다. 혼사를 작정하고 서둘러야겠다. 집안에 궂은일은 있었지만 근화의 사정이 급박하니 혼사를 미룰수도 없구나. 강남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3월삼짇날이 좋을것 같다. 혼사란 미루면 미룰수록 좋은 일은 없어. 잔치에서 종식이에게 바랄건 쥐뿔도 없으니 앉은잔치를 하는수밖에 없지. 이 방을 신방으로 꾸려주고 나는 안방으로 건너가겠다.

며느리의 의향도 묻고 잔치준비도 해야겠으니 방이골에서 애에미를 빨리 오게 해라.》

《어머니가 그처럼 힘써주시니 마음이 놓입니다.》 하고 리윤재는 안도의 숨을 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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