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 회)
제 1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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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미총독이 드디여 흉포성을 드러내놓은것이 1937년 2월에 《국어(일본어)상용》을 강행하기 시작한 그때이다.
력대 총독치고 식민지통치에서 악랄하고 무모하지 않은 놈이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미나미만큼 정치적식견도 리성도 없는 놈은 없었다.
미나미의 《국어(일본어)상용》강행은 한마디로 말하여 조선의 말과 글자를 없애기 위한 책동이였다. 그러나 이 이상 어리석고 무모한 수작은 없을것이다.
민족이란 한 민족의 력사와 함께 생성발전하여 그 민족의 사상감정이 내포되고 민족의식이 깃들어있는것이다. 더우기 오랜 력사를 통하여 한강토에서 단일민족으로 살아온 조선민족은 민족의식이 강한 겨레이다. 이 민족에게서 고유한 말과 글자를 없애려면 력사적으로 형성된 민족의식과 민족문화, 도덕과 륜리, 민족적인 풍속과 관습까지 모조리 없애야 할것이니 이것이 실지 가능한 일이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매한 일본정부와 그의 총독 미나미는 우리 말과 글자를 단시일에 없애버리고 일본말과 글자의 사용을 강요하여 그에 동화시키려는 어문정책을 썼고 나아가서 조선민족을 일본인화시키려는 민족말살정책을 썼던것이다. 이런 무모한 수작을 합리화하기 위하여 《일시동인》이니, 《내선일체》니, 《동조동근》이니 하는 무근거하고 사리에도 맞지 않는 궤변으로 조선사람들을 우롱했다.
조선민족을 말살하려는 일본정부와 조선총독의 시정방침이 집중적으로 구현된것이 조선에서의 교육방침이였다.
1911년 8월에 식민지조선에 대한 교육방침을 규정하는 《조선교육령》을 공포했는데 그때 데라우찌총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조선의) 교육은 특별히 덕성의 함양과 국어(일본어)의 보급에 힘써서 제국신인으로서의 자질과 품성을 갖추게 하여야 한다.》
그후 《조선교육령》은 일본국내정책의 변동에 따라 세차례 개정되였지만 조선말을 말살하고 조선민족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려는 근본방침에서는 변함이 없었다.
《한일합방》의 조작과 함께 일본어를 《국어》라고 개칭하고 일본어과목을 조선어과목의 2배로 늘여 일본어교육에 주력하다가 3차《교육령개정》에서는 한주일에 한시간밖에 없는 조선어과목을 완전페지를 전제로 하는 수의과목으로 하더니 《국어(일본어)상용》을 강행하고 드디여 조선어교육을 완전히 페지하는데로 나아갔다.
미나미총독밑에서 가장 실권이 있었다는 학무국장 시오하라는 이렇게 지껄였다.
《내선융화는 리상이 아니다. 리상은 선인(조선인)의 일본화다. 그런데 선인의 일본화가 가능한가라고 묻는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대답하고싶다. 그 론거는 골격, 혈액형 등의 인류학 의학상의 점으로, 기질상으로 또한 언어상 우랄 알따이계에 속한다는것, 종교상 샤마니즘(령혼을 믿는 미신)에 속해있다는 점으로, 일언으로 말하면 일본인을 지나화한것이 조선인이므로 그 지나화를 벗겨버리고 도로 일본인을 만드는 일이다. 이처럼 일본화는 가능하다. 그러므로 일본인을 만드는 교육을 하는것이다.》
학무국장쯤 되는 놈으로서 너무도 현학적이고 언어도단인 망설이다.
미나미총독의 식민지언어정책을 구현한 《국어(일본어)상용》이 주로 강행된것은 역시 학교였다.
조선인학교 교실들에는 《국어상용함》이라는 상자가 놓여 조선아이들이 제 나라 말을 한마디만 해도 거기에 그 이름을 써넣게 했다. 학생들이 서로 감시하고 밀고하게 하여 그들의 순결한 마음까지 더럽히였다.
조선말을 쓰다가 걸린 학생은 가차없이 처벌을 받았고 심지어 벌금까지 내야 했다.
조선사람이 경영하고 조선학생이 공부하는 사립학교는 총독정치에서 암적존재였다. 그리하여 당국에서는 초등학교에는 교감을, 중등학교에는 학감을 왜놈으로 파견하고 감시와 통제를 강화했다.
《국어(일본어)상용》의 강행은 사회를 침식하여 부패를 촉진했고 이에 편승하여 친일파가 날뛰였다. 가정에서까지 온 가족이 왜말을 쓰는 작자들도 생겨 그런 집에는 《국어애용의 집》이라는 패를 붙여주고 표창했다. 뻐스나 전차칸에서도 조선사람으로서 왜놈처럼 왜말을 쓰고도 낯간지러운줄 모르게쯤 되였다.
왜놈들은 조선사람이 오랜 관례대로 대문에 《립춘대길》이라고 써붙이는것도 극력 통제하고 《국어상용》이라고 써붙이게 하여 조선사람의 오랜 풍속조차 짓밟았다.
그러나 혹심한 언론탄압으로 조선인들이 경영하는 출판사들도 이 해괴망측한 놀음들에 대하여 꼬집거나 항거하는 글은 거의 쓸수가 없었다. 약간 비치기만해도 중세기적인 사전검열에 의하여 신문은 온통 복자(글자자리에 어떤 부호를 넣어 대신하는 활자 또는 인쇄된 부호)투성이가 되였다.
친일파를 제외한 조선사람은 다 숨을 죽인것 같았다. 미나미의 공포정치밑에서는 조선사람이 숨도 크게 쉴수 없었다. 민족의 얼은 어디로 스러지고 3. 1인민봉기의 민족적기상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제 나라 말을 두고 제 마음대로 말하지 못하고 제 나라의 글자를 두고 자기의 사상을 제 마음대로 써내지 못하는 무서운 시대가 도래했다.
그런데 왜놈들이 우리 말과 글자를 없애려고 미쳐날뛸 때 서울일각 화동에서는 어학자들이 여전히 모여앉아 우리 말과 글자를 지키기 위하여 사전을 편찬하고 《한글》잡지를 발간하고있었으니 총독부관리들은 눈을 할기고 경찰은 도끼눈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리윤재라고 어찌 이것을 느끼지 않을수 있었겠는가. 조선사람이 자기나라 말과 글자를 연구하는것이 큰 비극을, 아니 무서운 위기를 배태하고있음을 시시각각으로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이 위기는 그 개인과 가정과 일생을 바쳐온 모든 사업의 총파탄을 예고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 위기에서
민족어를 지키자는 일념으로 연자말처럼 살아온 그의 한생에서 다른 길은 없었기때문이다. 그것이 곧 현실에 대한 그의 저항이였다.
너무나 힘에 부치는 폭력에 대한 저항이였다. 그의 발목을 잡아맨 가정도, 그
그는 올해 세는 나이로 쉰살이 되였다. 옛말에도 쉰살을 지천명(하늘의 뜻을 아는것이라는 말로서 쉰살을 달리 이르는 말.)이라 했는데 그는 지난 생애를 돌이켜보고 앞날을 집계해야 했다. 그런데 앞날은 암담하다. 그렇다고 앞날을 생각하여 오늘의 걸음을 멈출수도 없다. 모든것이 모순이다. 모순속에서 모순을 풀지 못한채 살아가는것이 그의 천명인것 같았다.
그의 마음은 한난계처럼 외계의 온도를 민감하게 감수하면서도 그의 표정은 언제나 태연했고 생활의 일과에서도 변화가 없었다.
아침 일찌기 조선어학회에 출근한 그는 우선 《한글》편집실에 들어갔다. 역시 최기봉이 혼자서 《한글》 5권 7호의 첫 교정지를 보고있다가 벌떡 일어섰다. 그는 성대예과학생사건이 있은 후 한동안 자리를 비웠다가 약속대로 다시 나와서 엉뎅이를 딱 붙이고 《한글》잡지편집에 종사하고있었던것이다.
《7호교정지가 벌써 나왔소?》
《예, 오늘 아침에 인쇄소에 들려서 받아왔습니다.》
《종서에 익숙했던 눈에는 횡서가 좀 읽기 거북하지 않소?》 하고 교정지를 한참 들여다보던 리윤재가 문득 물었다.
《한글》잡지는 5권 1호부터 판형을 국판으로 바꾸고 횡서로 고치였던것이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했습니다만 익숙해지니 일없습니다.》
《앞으로는 반드시 횡서가 추세로 되겠는데 우선 우리가 시범해보는것도 나쁠것 없지.》
《잡지의 표지를 따로 씌우고 판형을 바꾸고 횡서로 하니 잡지의 체모가 딴판이 되였습니다.》
《잡지의 정가를 이이상 높일수 없는 우리의 실정에서 이만큼 할수 있은것도 리우식선생이 인쇄비를 부담해주지 않았더라면 엄두도 내지 못했을거요. 잡지를 만드는 사람도 사보는 사람도 가난하니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가난한 사람들이 만드는 잡지, 이것이야말로 《한글》잡지의 정곡을 찌르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최기봉이 빙그레 웃었다.
《선생님은 사전편찬일을 마저 보십시오. 교정지는 제가 혼자서 보겠습니다.》
《그럼 수고 좀 해주오. 그런데 볼일이 있으면 아무때고 교정지를 내게 주고 나가보도록 하오.》
리윤재는 최기봉이 낮이고 밤이고 찾아다닐데가 많다는것을 알고있었고 그래서 그에게 될수록 시간을 주려고 마음을 썼다.
그가 사전편찬실에 들어가니 이 방의 책임자인 리극로와 전임편찬원들인 정인승, 한길, 리중화가 제각기 책상에 돌아앉아서 카드를 집필하거나 집필한 카드를 카드함에 정리해넣고있었다.
서로 목례만 나누었을뿐 아무도 입을 떼지 않는다. 방안의 공기가 무겁게 느껴질 정도로 이 방 사람들의 일은 바쁜것이다. 리윤재도 묵묵히 어제 하던 카드집필을 계속했다.
정오가 거의 다되여 최현배가 방안에 들어와서 방 한복판에 놓인 긴 탁자우에 자기가 분담집필한 카드를 놓고 숨을 돌리더니 말했다.
《오늘 새벽에 한결이 경찰에 검거됐습니다.》
한결은 김윤경의 호다. 말수가 적고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는다고 할만큼 매사에 신중한 김윤경이 검거되였다는 뜻밖의 말에 모두 어안이 벙벙해서 일손을 놓고 최현배를 돌아보았다.
《아니, 이게 무슨 아닌 밤중에 홍두깨같은 소리요. 어째서 그렇게 됐답디까?》하고 리극로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최현배는 한마디 던져놓고는 한참 입을 꾹 다물고있다가 시름겹게 말했다.
《아직은 아무도 모른답디다.》
《<동아일보>의 탄압으로 첫선을 보인 미나미가 이번에는 어학회를 건드려보자는게 아니요?》하고 정인승이 낯을 붉히며 말했다.
《건재(정인승의 호), 당치 않은 말씀이요. 그렇다면 어째 한결 하나를 잡아가겠나요.》하고 리극로가 반박했다.
《워낙 교활한 왜놈들이라 래일은 고루를 잡아갈는지 누가 압니까.》 하고 최현배가 시까스르듯 말했다.
《외솔은 어학회의 총검거를 념두에 두고 하는 말 같은데 총독부의 정식인가를 받은 합법적인 학술단체인 어학회를 어떻게 그렇게 할수 있단 말이요, 아무리 간악한 왜놈이기로…》하고 리극로가 말했다.
《참 답답한 말씀이군. 우리 어학회의 활동이 우리측에서 보면 학술연구지만 왜놈측에서 보면 소위 비국민적행위가 아닙니까. 게다가 조선말을 없애버리려는 왜놈에게 합법, 비합법이 무슨 문제이고 리유와 조건이 무슨 상관입니까. 이제 고루가 점심을 자셔야 할 그만한 리유도 없어 무방할겁니다.》 하고 최현배가 사람을 깔보듯 여전히 시까스르는 투로 말했다.
《그럼 외솔은 어떻게 하자는겁니까?》하고 리극로가 어성을 높였다.
최현배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그럼 내가 나가서 자세한걸 알아보고 오리다.》하고 리극로가 방에서 나가버렸다.
리윤재는 한마디도 말참녜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서는 많은 생각이 끓어올랐다. 김윤경은 어학회의 전임일군이 아니고 본직은 배화녀고의 교원이다. 그러니 어학회가 아니라 배화녀고에서 무슨 문제가 터진게 아닐가? 그렇다면 같은 배화녀고에서 교장을 하는 리만규간사장에게서 무슨 기별이 있음직한데 감감무소식이다. 혹 김윤경이 관계하고있는 수양동우회에서 문제가 생긴게 아닐가? 그렇다면 나는 왜 아직까지 무사한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김윤경의 검거리유는 아리숭할뿐이다. 그러나 어쨌든 위기의식은 이전보다 더 세게 그의 가슴을 조이였다.
저녁이 다 되여 리극로가 돌아왔다. 그때는 이미 다 집으로 돌아가고 리윤재와 한징만이 남아서 그날 할 일을 마저 끝내려고 서두르고있었다.
최기봉이 교정지의 교정을 끝내고 건너와서 리윤재가 수북이 써놓은 카드를 카드함에 정리해넣고있었다. 오후에 늦게 나온 정렬모도 집필해온 카드를 정리하고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리극로에게 쏠리였다.
그는 바삐 온듯 숨을 돌리더니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동아일보사에 가서 경찰출입기자를 겨우 붙들어 물어보았더니 총독부 경무국장 미바시가 어제 밤에 전국 경찰에 수양동우회간부들을 모조리 체포하라는 비상명령을 내렸답니다. 오늘 새벽에 동우회사무실을 습격한 형사들은 회원명단을 압수하고 체포대상에 대한 수사망을 늘이고있답니다. 한결이 필경 여기에 걸려든것 같습니다.》
리윤재는 자기가 곧 체포될수 있다는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그는 불안한 마음을 누르려고 애썼다. 그래서 남보기에는 그가 자못 무사태평해보였다. 리극로가 말을 걸었다.
《지난 3월에 총독부에서 일본어상용을 명령했을 때 동우회간부들이 모여 이에 대처할 방안을 토의했다지 않습니까. 그때 환산선생도 참가하셨겠는데.》하고 리극로가 상기시켰다.
《참가했지요. 그때 지리멸렬로 끝나고말았어요.》
그때 일을 생각하면 리윤재는 지금도 분통이 터질것 같다.
조선말을 지키는것은 민족을 지키는 관건적인 문제여서 누구나 심각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여러가지 대책이 토의되고 론의가 한창 벌어질 때 리광수가 엉뚱한 발언을 했다.
《협조, 비협조의 방법은 몹시 복잡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방법에 따라선 협력이 실질적인 저항수단이 될수도 있고 비협조가 협조의 결과를 낳을수도 있는 사태까지 우리는 예상해야 합니다.》
이 괴상한 말에 리윤재가 놀라서 따지고들었다.
《그러니 춘원(리광수의 호)은 우리가 당국의 일본어상용방침에 비협조하는것이 도리여 협조의 결과를 낳을수 있다는 말이요?》
원래 중처럼 생긴데다가 아닌보살하기를 좋아하는 리광수는 그 항의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말만 계속했다.
《몇몇 사람이 협력하는체 하고 시일을 끌면서 저들의 과격한 수단이나 심술의 방향을 다소라도 돌려세울수 있다면 한두사람쯤 변절자의 락인이 찍히더라도 많은 사람을 위해서 희생되는것이 오히려 그들에 대한 저항이 된다는 말입니다. …》
리윤재는 더는 참고 들을수가 없어 그의 말허리를 꺾었다.
《춘원, 당신은 지금 변절을 합리화하는 궤변을 늘어놓고있소. 변절이 어떻게 저항으로 둔갑할수 있단 말이요. 나는 일찌기 <소년>잡지에 쓴 <고주>라는 글에서 당신이 <나는 외로운 배와 같이 이리저리 밑리며 닿을 곳을 모른다.>고 썼는데 그때 이미 당신은 무의지, 무사상, 무지향의 본색을 드러냈소. 그것이 오늘은 변절로 나아가고있소.》
그리고 그는 자리를 차고 방에서 나가버렸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는 분이 삭지 않아 맞춤법통일안의 보급을 위하여 없는 시간을 짜내며 철자법교정을 해준 리광수의 장편소설 《사랑》을 찢어서 아궁이에 쓸어넣고말았다.
그후 그는 리광수와 의절했고 수양동우회에는 나가지도 않았다. 왜놈의 탄압과 함께 리광수 같은자의 부패작용으로 동우회는 안창호가 창립하던 그 당시의 취지와는 멀리 떨어져 이미 있으나마나한 존재였다. 그러나 일단 경찰이 동우회에 손을 댄 이상은 자기도 무사하지는 못할것이다.
그가 이렇게 우울한 생각에 잠겨있는데 리극로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그를 생각에서 깨웠다.
《불쾌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특종소식을 알리겠습니다. 우리의 혁명군대가 국내에 쳐들어와서 갑산군 보천보란 고을을 들이쳤습니다. 자, 보십시오.》
그리고 그는 큼직한 조끼호주머니에서 아직 잉크냄새도 가시지 않은 《동아일보》 6월 5일부 석간 한장을 꺼내여 긴 탁자우에 펴놓았다. 2면 최상단에 큰 활자로 찍은 제목이 첫눈에 띄웠다.
《공산군 대부대 월경습래, 주재소 등 관공서에 충화, 4일 오후 갑산 보천보에서.》
동우회문제로 기분을 잡쳤던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다싶이하고 기사를 읽어갔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소식이였다. 조선의 모든것이 다 죽어가고 왜놈의 세상으로 일색화되여가는 이 숨막히는 세월에 조선사람이 무력으로 국내의 한 고을을 쳤다는것은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고 피가 끓는 일이였다.
《아아, 조선은 죽지 않았구나!》 하고 한징이 흥분해서 웨쳤다.
그는 《조선중앙일보》에서 언론활동을 하다가 올해 3월에 어학회에서 사전편찬사업을 재개하자 생활을 보장해주는 직업도 버리고 명예도 보수도 없는 사전편찬에 자진하여나선 사람이다. 그는 계명구락부에서 사전편찬을 시도할 때에 이미 리윤재와 함께 그에 종사했었는데 박승빈에 의하여 그것이 실패되자 몹시 분하여 속을 썩이다가 끝내 어학회 사전편찬에 다시 나선것이다. 사전편찬의 력사에는 이런 헌신적인 인사들의 숨은 노력이 적지 않게 깃들어있다.
그는 좌중에서는 가장 나이도 많고 몸도 튼튼한 편이 아니지만 갱핏한 얼굴에 강한 의지가 내비치고있었다.
한징의 말에 리만규는 한수 더 떠서 《조선이 광복될 날은 꼭 오고야말거요.》라고 힘주어 말하였다. 그로 말하면 조선어학회 간부급인물이였다.
보천보의 총소리는 누구에게나 우선 조선이 죽지 않았다는것을 느끼게 했다. 시들어가는 민족의 넋을 부르며 통곡하는 오늘이 아닌가. 오죽하면 손기정이 올림픽에서 마라손 1등을 했다고 온 민족이 물끓듯 했겠는가. 조선사람이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왜적을 조국땅에서 무력으로 쳤다는것을 어찌 이 마라손우승에 비기겠는가. 조국은 죽지 않고 민족은 살아있으며 우리도 왜적과 싸워서 이길수 있다는 힘의 과시였다.
《신문에는 공산군이라고 했으니 독립군은 아니고 공산군이라면 대체 누가 이런 대담한 작전을 벌렸을가?》 하고 정렬모가 감탄하며 말했다.
그는 사전편찬실의 전임편찬원이 아니고 김천고보에서 교장을 하면서 사전원고집필에 참가한 학자이다.
그는 중등학교에 있을 때 후일에 항일혁명투사로 활동한 젊은 시절의 오중화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아 그 시기부터 이미 혁명적인 경향을 가졌었다고 한다.
《내가 1930년에 만주에 갔을 때 이미 동만일대에서
《그렇습니다. 이건
평소에 말이 없던 그의 이 단호한 말에 모두 놀라서 그에게 시선을 모았다. 전설처럼 전해듣던
《
《좋지요.》 하고 한징이 맞장구를 쳤다.
둘의 이야기를 유심히 듣고있던 최기봉이 얼른 일어섰다.
《그럼 선생님들, 좀 기다려주십시오.》
《아니, 단심이 무슨 마련이 있어서… 정 그렇다면 하는수 없지, 내 경리주머니를 털어내는수밖에…》 하고 리극로가 조끼호주머니에서 지전을 꺼내며 최기봉에게 내밀었다.
최기봉이 미안한듯 그 돈을 받아가지고 방에서 나갔다. 그가 나가자 한징이 말했다.
《아무리 봐야 단심이 보통사람 같지 않아요. 여기 오기 전에 동냥중노릇을 했다는데 동냥중을 하기에도, 잡지편집에 종사하기에도 사람의 틀이 너무 크거던.》
《효창이 과연 형안이요.》 하고 정렬모가 고개를 끄덕이였다.
리윤재는 속으로 빙그레 웃었다. 최기봉이 독립군 부령까지 했고 그후
한참후에 최기봉이 약주를 가득 담은 되병과 마른명태 몇마리를 들고 방에 들어왔다.
《허, 내가 공연한 말을 해서 단심군에게 괴로움을 끼쳤군.》 하고 미안해하면서도 반색을 한것은 정렬모였다.
최기봉은 가지고온것을 긴 탁자우에 주섬주섬 차려놓고 빌려온 놋주발들에 노르끼레한 약주를 남실남실 따랐다.
《오늘은 비록 이렇게 초라하지만 나라가 독립된 날의 대향연으로 생각하시며 드셨으면 합니다.》하고 그는 말했다.
《조선사람이 왜놈과 싸워이길수 있다는걸 세상에 시위한 보천보전투를 축하해서 이 잔을 듭시다.》 하고 리극로가 잔을 들었다.
차린 술좌석의 분위기와는 동떨어져서 리윤재는 묵묵히 생각하는것이였다. 이것도 그의 괴벽의 하나였다.
(세종대왕과 같은 현군이 아니고 왕의 전제권력이 아니였더라면 한문의 세상이였던 그 시대에 훈민정음과 같은 고유문자의 창제와 그 시행장려가 가능했겠는가? 그런데도 훈민정음이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가? 하물며 왜적의 압제밑에서 우리 말을 지키는 일의 힘겨움에 있어서랴. 우리에게 왜적에게 맞설 힘의 안받침이 없음이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보천보의 총소리는 우리에게도 그런 힘이 있다는것을
일깨워주었다. 바로 그분은
이미 최기봉으로부터
《요즘 나의 마음을 괴롭히는것은 나의 신변의 위험에 한한것이 아니고 우리가 과연 우리 말을 끝까지 지켜내겠는가 하는것이였습니다. 그런데 보천보의 총소리는 우리가 고립무원하지 않다는것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우리의 어문운동을 마땅히 저 총소리와 결합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나도 잔을 들겠습니다.》
《옳은 말씀이요. 우리의 주권이 있고서야 어문운동도 있을수 있지요. 그런데 주권을 살리는건 저 총소리거던.》 하고 한징이 잔을 높이 들었다.
《나는 환산선생이 정치이야기는 제일 싫어하시는줄 알았는데 오늘은 중대한 정치견해를 피력하셨습니다. 이것도 하나의 전변이지요.》 하고 정렬모가 빙그레 웃으며 리윤재의 술잔에 자기 술잔을 찧었다.
술을 들자 긴장했던 기분도 풀리고 말도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넙적한 얼굴이 불그레해진 정렬모가 가슴츠레한 눈으로 리극로를 돌아보며 말을 꺼냈다.
《나는 간도에 가있던 시절이 지금도 그립군 해요. 왜놈의 압박이 여기보다는 덜하고 독립군운동의 책원지로서 인재도 모이고 활기도 있었으니까. 훌쩍 건너가고말가 하는 생각이 날 때도 있어요.
리극로님, 지난해에 만주려행을 또 하셨는데… 지금 거기 형편이 어떻습니까?》
리극로는 이야기를 한바탕 펴놓을듯 좌중을 둘러보고 말을 시작했다.
《내가 지난해에 만주에 간건 녕안현 동경성에 있는 단애 윤세복을 만나기 위해서였지요. 꼭 만나야겠다는 전보가 거듭 오기에 거기 형편도 알아볼겸 갔던거예요.》
《고루가 단애와는 어떻게 되기에요?》 하고 한징이 물었다.
《내가 서간도 동창학교에서 공부할 때 단애에게서 배웠지요. 그래서 20여년만에 만나보니 이름있는 의병장이던 그가 백발로인이 되였더군요. 몸만 아니라 마음도 늙은게 알립디다. 그는 독립운동이 쇠퇴해가고 사람들이 타락해가는것이 그들의 마음에서 민족의 넋이 스러진탓이 라고 한탄하며 단군을 섬기는 조선의 종교 대종교를 널리 포교해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민족의 넋을 불러일으켜야 한다고 말합디다. 그러더니 그는 대종교를 이끌어갈 사람을 물색하다 못해 리극로를 불렀는데 대종교 교주를 이어받아달라고 간곡히 말합디다. 정말 난처했어요. 내가 이미 하던 일을 다 내던지고 어떻게 대종교에 귀의한단 말이요.》
《허허, 우리가 리극로님을 단애에게 빼앗길번 했군요. 그래서 어떻게 됐는가요?》 하고 한징이 어이없는듯 웃었다.
《단애가 나를 어찌나 끈덕지게 설복하던지 그냥은 안되겠더군.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그분을 설복했지요. 대종교도 조선의 넋을 살리기 위한것이고 어학회의 조선어통일운동도 민족의 넋을 지키기 위한것이니 대종교와 어학회가 손잡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워나가자고 말이요. 그랬더니 그가 그 말을 그럴사하게 여기고 그런 의미에서 대종교의 노래를 하나 지어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청은 받아들였어요.
그런데 그때 만주일대에서는 무송현성전투의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지요. 이건
리극로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주는 감동은 컸다. 이래서 이 초라한 잔치가 진수성찬을 차린 어느 잔치보다도 마음으로는 더 화려하고 화기애애했다.
술좌석을 파하고 《한글》편집실에 돌아온 리윤재는 최기봉이 빌려온 식기들을 거두어 아래층에 내려다주고 돌아올 때까지 혼자 생각에 잠겨 앉아있었다.
이윽고 방안에 들어온 최기봉은 어스크레해지기 시작하는 방안에 창백한 낯빛을 하고 우두커니 앉아있는 리윤재를 보고 흠칫 놀랐다.
《어디 편찮으십니까? 다 가셨는데 어째 안 가십니까?》
《술은 역시 좋은게 못되는군. 필요이상으로 사람을 흥분시키니까. 그런데 좀 앉기요.》 하고 리윤재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중국에 있는 조선인독립운동자들의 우심한 파벌싸움을 본 후 나는 정치활동이라고 하면 파벌싸움을 상기하게 되였다오. 그래서 베이징에서는 어떤 정치단체에도 가담하지 않았고 내 할 일은 오로지 학문이라는 생각으로 굳어져있었어요. 그래서 정렬모님이 말한것처럼 나는 정치이야기조차 듣기 싫어하는 편벽한 인간이 되였던거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하고있는 사전편찬만 해도 왜적의 조선어말살정책에 저항한다는 의미에서 가장 격렬한 정치싸움이 아니겠어요. 이거야말로 자가당착이지.》 하고 그는 호인다운 웃음을 지었다.
최기봉은 리윤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있는 변화를 예리하게 주시하고있었다.
리윤재가 말을 이었다.
《독립운동자들의 활동이 다 무익하다고는 할수 없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독립운동을 바로 지도할 힘은 없었어요. 민족운동에 한생을 바친 도산 안창호도 회한으로 생애를 총화하지 않을수 없었지요. 왜적의 탄압속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우리 어학회활동도 돌이켜보면 한 일이 너무도 적어요. 아직 사전 한권 만들지 못했지요. 그런데 보천보에서 울린 총소리는 온 민족의 가슴에 왜적격멸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켰거던.》
최기봉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리윤재가 불현듯 말했다.
《오늘래일로 내가 왜경에게 체포될거요. 이럴 때는 속에 품은 생각을 말하고싶어지는거요.》
《말씀하십시오.》 하고 최기봉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단심이
《당장 뵈올수는 없어도
《그렇다면
《알았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최기봉은 리윤재의 손올 꽉 거머쥐였다.
리윤재는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듯 가볍게 일어섰다.
《자, 갑시다.》
《선생님, 먼저 가십시오.》
리윤재가 밖에 나가니 1층 현관계단에 종주가 무릎에 팔굽을 짚고 볼을 두손으로 받치고 무엇을 생각이라도 하는듯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아버지를 기다리기에 지쳤던 모양이다. 꽤 처량해보였다.
재작년에 화동에서 신당리로 이사한 후 신당리에는 전학할만 한 소학교가 아직 없어서 종갑과 종주는 이미 다니던 재동소학교에 그냥 다니고있었는데 통학거리가 너무 멀어서 괴로움을 적지 않게 당하고있었다. 종갑은 이미 5학년이라 혼자서도 다니지만 종주는 아직 어리기도하고 막냉이라 그런지 아버지를 워낙 따라서 아침저녁 아버지와 먼길을 다니는것이 버릇으로 되였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것이 즐거움으로 되였다.
종주는 올해 열한살이다. 그 나이에 세상을 똑바로 알리가 없고 학교에서 배우고 듣는것이 그 아이의 전세계였다. 그런 아이에게 학교에서는 왜놈의 정신을 가르치고있다. 현재로서는 풀길 없는 모순이다.
어제 종주가 《선생님이 우리 나라 <황군>이 세계에서 제일 세다고 했어. 그렇지, 아버지?》 하고 물었을 때 리윤재는 참지 못하고 역증이 있는 목소리로 《일본은 우리 나라가 아니다.》하고 단마디로 문질러버렸다.
그리고 멍하니 바라보는 아이를 보고 그
아버지는 아들에게 다가서서 다정하게 말했다.
《종주야, 오래 기다렸지. 자, 가자.》
종주가 벌떡 일어서서 달려와 아버지의 손에 매달렸다.
《왜 혼자 있니? 형은 먼저 갔니?》
《언젠 혼자 안 가나, 잘난체 하구.》
《배고프지 않니?》
《배고파.》
《자, 빨리 가자.》
아버지와 어린 아들은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아버지, 어제 하던 이야기 끝나지 않았어.》
《오냐오냐, 어디까지 했더라.》
아버지와 아들이 막 골목길을 나서려는데 길목에서 불쑥 두 사나이가 나서며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리윤재선생, 안녕하십니까.》 하고 전투모를 약간 들었다놓는자는 집에도 자주 찾아오고 조선말을 조선사람 못지 않게 능통하게 하는 종로경찰서 고등계형사부장 야스이였다. 또 하나는 낯설은 조선인형사였다.
리윤재는 닥쳐올 일이 드디여 오고야말았구나 하고 생각하며 그들을 묻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경찰서까지 좀 가셔야겠는데.》
《무슨 리유로요?》
《가보면 알겠지요.》
종주도 불안해지는지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울먹이였다.
《아버지, 가지마!》
리윤재는 아들의 머리우에 다른 한손을 얹었다.
《어떻게 한다? 오늘은 네가 혼자 집에 가야겠는데… 아니, 오늘은 날도 저물었으니 큰누나한테 가서 자거라.》
《싫어, 난 아버지하고 갈래.》
조선인형사가 종주를 타일렀다.
《오늘은 너 먼저 가거라. 아버지도 곧 가게 된다. 이녀석, 고집이 세구나. 타이를 때 말을 들어야지.》
마지막말은 욱박지르는 소리였다. 종주는 단념한듯 꼭 쥐였던 손을 스르르 놓더니 땅거미가 기여드는 행길로 타박타박 걷기 시작했다. 손등으로 눈을 문대며 훌쩍거리다가는 돌아보고 몇걸음 걷다가는 다시 돌아보군 하는 종주의 애처로운 모습은 아버지의 가슴을 갈가리 찢는것 같았다. 저 애가 그 먼길을 혼자서 무사히 가낼가, 저 조그만 가슴이 얼마나 아풀가 하는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일단 당할 일을 당하고보니 당하기 전의 불안과 위구감은 도리여 사라지고 이제는 될대로 되라는 체념만이 남았다.
《갑시다.》하고 리윤재는 걸음을 내디디였다.
형사들이 리윤재의 좌우에 바싹 다가섰다.
이튿날에야 리윤재가 체포되였다는것을 알게 된 최기봉은 리극로와 의논한 후 리윤재가 그렇게도 간난신고하며 키워왔고 마지막으로 편집한 《한글》잡지 5권 7호의 교정지 후기란에 《리윤재님 사정에 따라 본회의간사와 사전편찬위원과 <한글>잡지편집 겸 발행인을 사임하다.》라는 짤막한 글을 써넣어 그의 체포소식을 사회에 알리도록 한 후 미진한 일들을 부랴부랴 처리하고 조선어학회에서 나가고말았다. 이것은 지하공작을 하는 그로서 불가피한 일이였다.
한달이 지나자 리윤재의 가정은 산산이 흘어지고말았다. 가장이 경찰에 잡혀가고 수입 한푼 없이 그 많은 식솔이 한집에서 살아갈수 없었기때문이다.
올봄에 동덕녀고를 졸업하고 집에서 놀고있던 근화는 고모부 김한규의 권고로 방이골에 가서 그가 후원회장으로 되여있는 간이학교에서 학교에 못 가는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였다.
영애는 숙명녀고졸업을 한해 앞두고 부득이 학교를 중퇴하고 영등포방직공장에 녀공으로 들어가 그곳 기숙사로 가고말았다.
종주는 맏누이 순경이 데려갔다. 교과서를 가득 넣은 두툼한 가방을 들고 옛날같으면 어머니벌이나 다름없는 큰누나의 손에 이끌리여 집을 떠나는 종주의 모습은 처량했다. 눈물이 글썽해서 집을 한번 돌아보고 방금 형과 함께 메뚜기잡이를 하던 앞벌을 한번 더 둘러보는 종주의 단념한듯 한 눈에는 아이로서는 너무도 심각한 애수가 어려있었다. 응석과 떼가 심한 막냉이의 이 부자연한 모습이 어머니의 가슴에 못질을 하는것이였다.
그러나 정씨는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다. 세상에 그처럼 어질고 정직한 사람이 흔하겠는가. 거짓을 모르니 이 어지러운 세상과 타협할줄 모른다. 그래서 스스로 불행과 고통을 사서 겪지만 그것이 그의 됨됨이인걸 어찌하겠는가. 정씨는 남편을 하늘처럼 믿고 살아왔기때문에 그로 인한 가난도 외로움도 묵묵히 감수해왔다. 왜놈경찰이 남편을 아무리 잡아가도 그가 죄인이 아니라는것을 철석같이 믿고있기때문에 수치도 죄의식도 터럭만큼도 느끼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정씨는 외유내강한 녀인이였다.
반수가 줄어든 집안에는 김해댁과 정씨와 맏아들 종갑만이 남았다.
이 왜놈의 세상에서 이 세식구나마 유지되겠는지 그것은 아무 담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