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 회)
제 1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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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에서 조국통일을 위하여 목숨걸고 투쟁하던 김삼룡, 리주하에 뒤이어 성시백까지 체포구금되였다는 소식은
늦은 저녁녘에 적들이 떠들고있는 《성시백사건》과 관련한 자료가
극도의 피로가
(귀중한 사람들이… 잃어서는 안되는 민족의 재사들이 한사람, 두사람 적들의 손에 체포처형되고있다. 이제는 성시백까지 놈들의 손에 잡혀 들어갔다.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나의 한쪽팔처럼 여기던 그가…)
(나는 지금 왜 이러고만 있는가. 다른 사람들의 일은 토지를 잃거나 부부가 갈라졌거나 사랑이 깨여진 생활상의 문제들도 용허하지 않고 바로잡도록 하면서도 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가장 귀중한 생명안전을 놓고는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있어야 한단 말인가. 정숙동무에게도 그랬었고 오늘은 또 성시백에게도… 과연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이 모든 민족수난의 비극을 과연 언제까지 참고만 있어야 하는가. 가만, 내가 서기가 가져온 신문자료들을 보고있었지? 그런데 서기는 어디 갔는가? 나는 또 무엇을 하려댔는가? 여기는 어디고?…)
비로소
잠에 취하시여서도 손은 그냥 수저를 움직이고있었는지 밥사발의 밥알 몇알이 헤쳐져있고 흘려서 떨어져있는것도 드문드문 보였다.
어머니를 잃은지 몇달밖에 되지 않는
(그래도 나는 나이 스물에 어머니를 잃었는데 이 애들은… 엄마없인 단 한순간도 살수 없는 너무도 어린 나이에 이런 불행을 당했구나. 그리고 또 나는…)
몹시도 힘겹게
저택의 뒤정원에 봄을 맞으며 심어놓은 여러그루의 애어린 살구나무들이 바람결에 파릇파릇한 새 움을 흔들며 서있었다.
뒤에서 인적기가 났다.
김책도 성시백의 체포가 이제 이룩해야 할 통일위업수행에서 어떤 커다란 손실과 후과를 가져올수 있는가를 누구보다 못지 않게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이밤 괴로움에 잠 못 이루실
일이 다 끝났으나
《난 지금까지…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분렬주의자들의 만행에 대하여… 참을수 있는껏 참아왔습니다. 우린 마지막까지…》
김책의 가까이로 다가서시여서는 그가 아니라 뒤쪽으로 시선을 돌려 방금
《마지막까지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인내성을 발휘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실 때
《언제인가 공화국창건을 경축하자고 김책동무랑 최용건동무랑 모여앉았던 일이 생각나는구만. 그때 솔직히 동무들이 너무 급작스럽게 들이닥치는 바람에 내가 얼마나 바빠났던줄 압니까? 하지만 처음으로 만시름을 잊고 동무들과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댔습니다.》
김책은
《그때 누가 그랬던가? 삼일포에 휴양을 가자고 했댔지? 김일동무였던지 강건동무였던지 삼일포보다 모란봉에 가는것이 더 낫다고 그랬고. 아마 삼일포처럼 먼곳이 아니라 가까운 곳의 모란봉이면 래일이라도 당장 갈수 있지 않겠냐 하는 기대를 가지고 그런 말을 했댔을겁니다. 그런데 난 동무들이 삼일포는커녕 눈앞에 있는 모란봉에도 한번 마음놓고 올라가 즐기게 해주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어쩐지 마음에 걸리는구만.》
《
《아니, 아닙니다. 만약 이제 전쟁이 일어난다면 전선에 나가 싸울 사람들은 바로 그들입니다. 그래서 난 그때 우리 동무들이 다시는 죽음의 그림자가 뒤따르는 포화속을 걷지 않기를 기대했고 우리 인민전체가 오로지 평화롭고 즐거운 환경속에서 들놀이도 산놀이도 마음껏 할수 있게 나라를 통일하리라 마음다지였댔습니다. 그런데 그 소원을 오늘까지 이루지 못했습니다. 나라는 의연히 분렬되여있고 요즘 와서는 전쟁의 위험도 더 가증되였습니다. 더우기 우린 그동안에 귀중한 혁명동지들을 잃는 아픔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오늘은 성시백동무까지 적들의 손에 잡혀들어갔습니다. 오로지 통일을 바랬다는 리유로, 민족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투쟁했다는 리유로 체포되였습니다. 김책동무, 이런 때 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보위상에게 군대를 서울로 진격시켜 체포된 혁명가들을 모두 구출해오라고 명령을 내리고싶습니다. 사실 우리가 일단 결심을 품고 진격한다면 서울을 타고앉는것쯤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우리의 군력도 국력도 인민들도 그렇게 준비되여있습니다. 그래 어쩌면 좋겠습니까?》
김책은 한동안 동안을 두었다가 대답을 올렸다.
《전
《그건 어떻게 하는 소리입니까?》
《방금전에 전 조국전선중앙위원회의 김창준서기국장과 허헌, 홍명희선생도 만나보았습니다. 그들은
김책은 말끝을 맺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서
《나는 전쟁이나 전투보다먼저 평화에 대하여, 통일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나의 뒤에는 수많은 인민들의 귀중한 생명과 생활이 있습니다. 갓 전쟁을 끝내고 새생활창조에 들어선 유라시아대륙의 수많은 민족들의 운명도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한번 우리의 아량과 성의를 남조선괴뢰정부에 보이자고 생각했습니다. 6월 7일에 열리는 조국전선확대회의에서 온 겨레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하기로 했습니다. 전쟁을 할것이 아니라 통일을 이루자는것을 다시한번 열렬히 호소하자는것입니다. 조국전선확대회의에서 평화통일호소문이 채택되면 그것을 남조선의 제 정당, 사회단체들에 배포해주기 위해 조국전선위원회가 서울에 대표를 파견할것입니다. 물론 신문과 방송으로도 공개하겠지만 그래도 우리의 대표들을 직접 파견하여 우리의 평화통일의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
《조국통일에 대한 우리 공화국정부의 의지는 드팀이 없습니다. 이번에 진행된 남조선의 5. 30〈국회선거〉에서 리승만의 반통일세력이 대참패를 당하고 〈국회〉무대에서 정치적지반을 완전히 잃어버린것도 다 겨레의 통일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온 우리 공화국 당과 정부의 립장에 대한 인민들의 지지와 공감의 발현입니다. 우린 리승만의 친미사대주의세력이 력사의 교수대로 향하고있는 이 유리한 정세에 토대하여 조국통일의 전환적국면을 열어나가야 합니다.》
김책은
밤은 점점 깊어가고 저택의 정원에는 고요가 깃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