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회)

 

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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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빈이 조선어학회에 대립하여 조선어학연구회라는 새 단체를 조직하고 어학회의 철자법통일운동에 반기를 들고 소란을 일으키니 언론계, 교육계가 조용할수 없었다.

그리하여 동아일보사에서는 1932년 11월 7일부터 9일까지 사흘동안 《한글철자법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첫날은 된소리의 쌍서(ㄲ, ㄸ, ㅃ, ㅆ, ㅉ 등) 문제, 둘째날은 겹받침 (ㅄ ㄶ 등)과 ㅎ받침문제, 셋째 날은 용언의 어미활용문제를 가지고 어학회에서는 신명균, 리희승, 최현배가, 반대파측에서는 박승빈, 백남규, 정규창이 개인자격으로 출연하였다. 각자가 50분씩 강연을 한 다음 문제별로 1시간 20분씩 질의와 론전을 벌리였다.

토론회에는 사회 각계 인사 수백명이 방청으로 참가하였다.

어학회학자들이 박승빈일파를 공격한것은 대개 다음과 같은 문제였다.

첫째, 박승빈이 창조해서 쓴 경음부호라는것은 훈민정음에도 없고 아무런 학리상근거도 없는 외람된것이다.

(례) 봄바람(봄바람), 안고(안고)

ㅅ라, ㅅ랴, ㅅ러, ㅅ려 등과 같은 괴이한 문자를 만들어 쓴것.

이것이 관습을 중시했다는것인가?

둘째, ㅎ받침을 부정하기 위하여 격음부호라는것을 만들어 쓴것.

(례) 됴ㄱ고(좋고), 만ㄱ고(많고)

ㅎ보다 ㄱ이 비교할수도 없이 괴이하지 않는가?

셋째, 리치에 맞지도 않는 중간음을 쓴것.

(례) 소으나무(소나무), ㅅ다으님 (따님), 아으디마는(알지마는), 사으네(사네)

넷째, 력사주의적기사법이라고 하면서 정을 《덩》으로, 조를 《됴》로 적는것은 사실은 일본말의 발음에 기초한것이다.

다섯째, 소리의 표기법이 괴이한것.

(례) 나무가 커쓰니ㅅ가 올에는 녈매가 열개쓰오 코끼리는 코가 기은ㅅ고리처럼 길다. 련디, 덩거당, 당군, 뎡서방

박승빈의 문법에는 《하되》 가 없고 《뫼》가 없기때문에 시조까지 다음과 같이 변형하여 썼다.

산이 높다 하야도 하놀아래 모이로다.

여기에 렬거한 실례는 모두 박승빈의 저서 《조선어학강의요지》에서 뽑은것이다.

셋째날 박승빈의 《단활용》설에 대한 공격이 가장 격렬하게 벌어졌다.

박승빈의 《단활용》설에서는 원단의 음(어간의 말음)을 아단, 어단, 여단, 오단, 우단, 으단, 이단 일곱가지에만 국한하고 《애, 에, 외, 위》의 단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기괴한 표기가 생기게 되였다.

(례) 책을 보나이오(책을 보내오), 날이 가이다(날이 개다), 그사람이 굳서이다(그 사람이 굳세다)

최현배가 박승빈의 《단활용》설에 의한 기괴한 표기의 실례를 들고 그의 장끼인 날카롭고 조리있는 말씨로 공격하였다.

《이 얼마나 대담한 문법학자인가요! 문법이란것은 사실에 있는 말의 법을 그 말에서 찾아 정리하는것이요. 결코 사실에 도무지 없는 법을 창작한다든지 또는 자가의 독단으로 사실적언어를 제 마음대로 생살좌우하는 권능을 가진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 조선의 문법학자 박님은 자가의 독단에 의하여 우리 말을 마음대로 생살개조하니 이는 월권이 아니면 무식이요.

이제 가만히 박님이 <단활용>설에서와 아, 어, 여, 오, 우, 으, 이 일곱가지만 인정한 경위를 생각하면 실로 웃지 않을수 없는 일입니다. 박님은 일본문법에서 4단활용이란것이 한줄에서 어미가 변하는것임을 보고 옳지, 활용이란 같은 행에서의 말음의 변화이구나 하고만 속단하고 그것을 모방하여 조선말의 단활용이란것을 창조한것입니다. 남의것을 조급하고 손쉽게 모방한것이 박님의 리론과 실제를 멀리 떨어지게 한것입니다.》

청중에서 웃음이 터지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박승빈은 자기가 전공적으로 연구했다는 《단활용》설에 대하여 많은 말을 했지만 하면 할수록 언어학에 대하여 전혀 기초지식이 없이 여기저기서 주먹치기로 주어모은 잡동사니를 드러내보일뿐이였다.

끝내 그는 《량자의 소견은 백지 한장의 차이뿐이라.》하고 안깐힘을 쓰면서도 항복하고말았다.

박승빈파의 일류리론가로 자처하는 정규창은 그 무식으로 청중의 웃음거리가 되였고 백남규는 거의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그들은 이 토론회에서의 참패와 수치를 교훈으로 삼을만 한 리지도 없는 인물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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