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7 회)

 

제 8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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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회가 재발족한 후 새로 제정한 규칙에도 있듯이 학보의 발간은 어학회의 사명으로 보나 시대적요구에 비추어보나 절실한 문제임은 누구나 인정했지만 걸음마다 뒤따르는 자금난으로 한해동안 질질 끌고있었다.

무엇보다도 시급한 맞춤법통일안의 완성과 사전편찬을 위한 자금조달을 위하여 한해동안 악전고투한 간사장 리극로는 기관잡지발간까지는 손이 미치지 못한채 1932년 1월 9일 제12회 정기총회에서 다시 선거된 간사장 신명균에게 이 미해결문제를 넘겨주고말았다. 정기총회에서는 기관잡지 《한글》을 월간으로 시급히 발간할것을 결정했다. 그러나 조선어학회 간사장으로서 《한글》잡지의 발행을 책임진 신명균은 자금 한푼 없이 월간잡지를 시작할 일이 난감했다. 1927년 2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거의 두해동안 《한글》잡지를 동인지형식으로 겨우 9호까지 내고 자금난으로 휴간하고만 쓰라린 경험이 있었기때문이다. 그때 중앙인서관을 경영하는 리중건이 희생적으로 인쇄비를 부담해주지 않았더라면 이나마도 못했을것이다.

돈없고 힘없는 조선사람이 대중오락잡지가 아니라 독자가 극히 제한된 전문잡지를 낸다는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힘겹고 자기희생적인 일이였다. 그래서 그 당시에 《잡지 3호》라는 말까지 있었는데 그것은 잡지를 몇호 내다가는 경영난으로 휴간하고마는것을 야유해서 이른 말이다.

그해 2월 13일에 《한글》잡지의 경영에 대하여 토의할 때 인쇄비만은 신명균이 어떻게 하든 해결해보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보다 못지 않은 난관은 편집을 전적으로 담당한 주간을 맡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것이였다. 그 일을 일단 맡으면 무슨 편집부가 있는것도 아니고 원고수집으로부터 편집, 교정, 교정지검토, 원고검열로 인한 당국출입, 제품검사 심지어 발송에 이르기까지 무제한 시간을 빼앗는 잡지로 혼자 시달려야 하기때문이다. 시간을 돈보다도 귀중히 여기는 학자들이 이런 일을 달가와할리가 없다. 뿐아니라 우리 조선사람의 신문잡지가 역병처럼 겪는 당국의 박해와 탄압을 념두에 두지 않을수 없다. 더우기 민족운동으로서의 한글운동의 기수로 되는 《한글》잡지는 총독부와 경찰의 관리들에게는 눈안의 가시처럼 느껴질것이다. 그들이 트집은 얼마든지 잡을수 있고 압수정간놀음도 거듭될것이며 경찰서 고등계출입을 밥먹듯이 해야 할것이다. 자기희생적인 각오가 없이는 선듯 손을 대기 어려운것이다.

침묵한 좌중을 이윽히 바라보던 신명균의 시선이 리윤재에게 가서 멎었다. 아무리 둘러봐야 그만한 적임자는 없다. 난관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의지와 락천성, 불의에는 타협을 모르는 정의감, 자기 일에 대한 정열과 사랑, 리윤재의 이 모든 점을 신명균은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러나 그처럼 바쁜 사람도 없고 그만큼 생활이 곤난한 사람도 이가운데는 없다. 조선어학회의 기본사업인 사전편찬, 맞춤법통일안제정에 핵심성원으로 참가하고있으며 게다가 연희전문학교를 비롯한 여러 학교에서 조선어강의시간을 담당하고있다. 그 얼마 안되는 교수수입이 재산도 없는 그의 생활비의 전부이다. 이런 리윤재에게 아무 수입도 없을뿐아니라 오히려 피가 나올 지경으로 해나가야 할 잡지를 떠맡긴다는것은 지나친 처사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는 어쩔수없이 말했다.

《동인지시절부터 <한글>잡지의 편집을 맡아주셨던 리윤재님이 이번에도 맡아주셨으면 좋겠는데…》

끝말이 흐려지는것은 자신이 없었기때문이다. 그런데 모두가 안도의 숨을 쉬고 일제히 찬동했다.

줄곧 말이 없던 리윤재가 일어섰다.

《간사장의 제의에 여러분이 찬동하는것을 나에 대한 믿음으로 알고 <한글>편집을 맡겠습니다. 그러면서 두가지 의견을 말하겠습니다. <한글>은 우리 학회의 기관지인것만큼 매 개인의 학설이 아니라 학회의 통일적인 의사를 대변해야 할것입니다. 물론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 못한 학설에 대해서는 충분히 존중하겠습니다.

<한글>은 여러분의 잡지인것만큼 이따금 원고나 써주면 자기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험한 길을 잡지와 함께 걸어가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한글운동의 길을 밝혀준 선각자 주시경선생은 <서재안의 학자>가 아니였습니다. 민중계몽을 위한 한글운동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나는 주시경선생의 발자국이 찍힌 그 길을 따라 민중계몽을 위하여 이 잡지를 편집하겠습니다.》

그의 이 말은 오래동안 생각해온것을 피력한것이였지만 그때 리극로 이외에는 아무도 이 말에 특별한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이튿날 신명균은 하는수없이 중앙인서관에 리중건을 찾아갔다.

리중건의 방에 들어서며 신명균이 여느때없이 떠들어대였다.

《원, 립춘을 거꾸로 붙였나, 날씨가 꽤나 맵짜군. 그런데 리선생은 여전하시군요. 이런 궂은날에도 아랑곳없이 나와서 독서에만 전념하고계시니.》

책을 읽고있던 리중건이 돋보기우로 신명균을 치떠보며 빙그레 웃었다.

《신선생이 쾌활할 때도 다 있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는가요?》

《어째 저라고 늘 우거지상을 하겠습니까. 좋은 일이 있고말고요. 조선어학회에서 <한글>잡지를 속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몇해 묵은 체증이 뚝 떨어지는것 같습니다.》

《허, 그거 반가운 소식이군. 하지만 그게 신선생에게는 큰 근심거리 일텐데.》

《하긴 그렇습니다. 우리에겐 맨주먹밖에 없으니까요.》

리중건이 신명균의 의도를 떠보듯이 지그시 바라보았다. 신명균이 말을 이었다.

《리선생이 27년도 <한글>창간호에 <세종대왕과 훈민정음>이란 글을 써주시여 잡지를 장식하셨는데 이번에도 뭘 하나 써주지 않겠습니까?》

리중건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만 두시오. 그때 그 같잖은걸 하나 내주고 내게 잡지 아홉호나 인쇄비를 부담시키지 않았소. 필자에게 원고료를 안 줄뿐아니라 인쇄비까지 부담시키는 그런 잡지는 세상에 둘도 없을거요.》

신명균도 따라웃지 않을수 없었다.

《원, 그럴리 있습니까. 그건 순전히 우리 국문운동에 대한 리선생의 크나큰 기여지요. 그 후의를 우리는 잊지 않을겁니다. 혹 후날 <한글>잡지창간 50주년쯤 기념할 때 리선생의 독지(남을 돕는 친절한 마음)를 기리여 기념비라도 하나 세워줄지 누가 압니까.》

《나를 자꾸 추어올리는걸 보니 심상치 않군. <한글>잡지인쇄때문에 온게 아니요? 뭘 그리 에둘러 말하시오.》

《사실은 그렇습니다.》 하고 신명균이 웃음을 거두었다.

《내 그럴줄 알았소, 맨주먹으로 잡지를 내겠다고 하기에.》

《그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거긴 뭘 어떻거겠소. 원고를 여기에 가져다놓으시오. 떠맡기려고 온걸 퇴놓을수야 있겠소.》

《됐습니다!》하고 신명균이 희색이 만면하여 소리쳤다.

《그러나 너무 기대를 걸지는 마시오. 이 무서운 불경기속에서 골병이 든 인쇄소가 언제 찌부러질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그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덧붙여 말했다.

《곤궁한 학계에 비명을 지르는 출판업계, 이것이 식민지조선의 지성사회로구려.》

《학자가 간상배로 되여야 책 한권이라도 낼수 있는 세상이니 살아간다는 그자체가 고역이군요.》

신명균이 다시 우거지상으로 되돌아갔다.

하여간 리중건의 자기희생적인 지원으로 조선어학회 기관잡지 《한글》의 창간호인 1권 1호가 세상에 나갔다.

잡지 머리글에서 리윤재는 이렇게 썼다.

《…우리가 우리 글을 잘 알자 하는 소리가 근년에 와서 더욱 높아간다. 우리는 하루바삐 묵정밭같이 거치른 우리 한글을 잘 다스리여 옳고 바르고 깨끗하게 만들어놓지 아니하면 안될것이다. 이때문에 4년전에 몇분의 뜻 같은이들끼리 <한글>잡지를 내기 비롯하여 1년나마 하여오다가 온갖것이 다 침체되는 우리의 일인지라 이것마저 힘이 모자라서 지금까지 쉬게 된것은 크게 유감되는바이다. 우리는 이제 시대의 요구에 맞추어 본회의 사명을 다하고저 하여 이 <한글>잡지를 내게 된다. 이로써 우리 한글의 정리와 통일이 완성되는 지경에 이를것을 믿는다.…》

리윤재는 이 길지 않은 글을 쓸 때 왜놈검열관의 찡그린 상통을 몇번이나 눈앞에 떠올렸는지 모른다. 하고싶은 말을 내놓고 하지 못하고 요리조리 에돌며 암시나 하는 정도로 글을 쓴다는것이 얼마나 괴롭고 펜대가 무거워지는가 하는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온갖것이 다 침체되는 우리의 일인지라…》하고 써놓고 그는 한숨을 푹 쉬며 읽는이들이 그의 뜻을 알아주기만 바랄뿐이였다. 어째서 《시대의 요구》니 《본회의 사명》이니 하고 막연한 말만 골라써야 하는가. 우리 글을 정리통일하고 민족의 얼을 고수해야 한다고 내놓고 쓸수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안타까움은 그뿐이 아니였다. 철자법의 통일, 보급을 사명으로 하고 나온 《한글》잡지자체도 통일된 철자법을 쓰는데 고충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으니 그 일단을 잡지벽두에 실린 《철자법에 대한 본지의 태도》에서 엿볼수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맞춤법통일안이 완성되지 않아 한 잡지에서조차 철자법의 통일을 이룩할수 없는 딱한 사정을 구구히 설명하고 독자대중이 철자법에 관한 연구토의에 널리 참가해주기를 호소했지만 새로 나온 《한글》잡지가 독자대중과 그런 련계가 아직 지어져있지 않았고 또 그 당시 일반독자들이 철자법에 관한 연구론문(혹은 의견)을 잡지에 낼만큼 준비되여있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한글》잡지도 동인지시절과 거의 다름없이 전문학자들의 전문적인 론문을 싣는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면 전문가들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일반독자들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지금 맞춤법통일안이 완성단계에 이르고있는 이때 이에 대한 대중의 각성을 불러일으키고 온 겨레의 힘을 이에 집결해야 했으니 《한글》잡지는 마땅히 그 원동력으로 되여야 할것이다.

그러자면 《한글》잡지를 어떻게 편집해야 할것인가? 리윤재는 이 문제를 놓고 오래동안 모색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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